한편, 생의 문으로 나온 서유는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무인도에 누워있었고 그녀의 옆에는 캐리어와 보너스를 받을 주소가 적힌 종이가 놓여있었다. Ace는 상금을 지정된 장소에 두고 게임에 성공한 플레이어들이 직접 찾아가는 방식이었다. 아마도 사람들이 그들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인 것 같다. 그녀는 주소를 잘 챙겨 다시 캐리어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해안가로 다가갔다. 배를 찾을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하였으나 배는 찾지 못하였고 누군가를 마주치게 되는데 그 사람은 바로 그녀가 가장 만나기 싫었던 연중서였다. 연중서는 딸 때문에 지금은 루드웰에서 일부 검은 옷차림을 한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가 사람들을 데리고 해안가에서 서서 서유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서유, 오랜만이군.”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단번에 알아차린 서유는 바로 도망쳤고 연중서의 손짓에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이 재빨리 앞으로 다가왔다.빠르게 도망친 서유는 이내 풀숲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키와 비슷한 높이의 풀숲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재빨리 피신할 수 있었다.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고 그녀가 도망친 길을 따라가면서 칼로 풀숲을 헤집었다.다들 서유보다 키가 컸던 터라 그녀가 움직인 흔적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저 놀이 삼아 그녀의 뒤를 천천히 쫓았을 뿐. 얼마 후, 인내심이 바닥난 그들은 재빨리 그녀의 위치를 찾아냈고 검은 주머니로 그녀의 머리를 감싼 다음 그녀를 어깨에 메고 바로 배에 올라탔다. 배가 인적이 없는 깊은 바다로 항해할 때, 연중서는 그제야 그녀의 머리에 씌워져 있던 주머니를 벗겼다. 시선이 맑아지는 순간, 서유는 갑판 위에 서 있는 남자를 보며 친아버지인 그가 다른 딸을 위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연중서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를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미간 사이가 연지유와 많이 닮은 듯했고 그와도 많이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서유는 싫은 표정을 지으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당신 덕분에 언니도 죽었어요.”김영주가 Y국 거리에서 굶어 죽고 김초희가 달동네를 떠돌고 그녀가 고아가 된 건 모두 연중서의 탓이었다. 모질고 잔인한 그로 인해 세 모녀는 헤어지게 되었고 각자 처참한 길을 걷게 되었다. 반면, 연중서의 곁에서 연지유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났다. 연중서는 그녀를 위해 모든 뒷길을 열어주었고 남부러울 것 없이 키웠다. 그녀는 김초희처럼 여기저기 구걸하지도 않았고 서유처럼 비참하게 살지도 않았다. “초희도... 죽었다고?”경악하던 그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서유의 손을 덥석 잡았다.“그 바다에서 살아났던 사람들이 왜 죽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서유는 또다시 그의 손을 뿌리쳤다. “걱정하는 척 가식 좀 그만 떨어요. 내 물음에 대답부터 해요. 그 당시 왜 소유진을 도와준 거예요?”그녀는 김영주가 연중서에게 어떻게 죽임을 당했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연중서가 왜 김영주를 도왔는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가 처음부터 소유진의 정체가 김영주라는 것을 알고 김영주의 엄청난 유산이 탐나서 계획적으로 접근한 건 아닐까?정말 그런 거라면 김영주는 그가 놓은 덫에 걸려 지옥으로 끌려들어 간 것이다. 김영주의 일생이 너무나 가치 없는 건 아닌 건지? 쌀쌀한 서유의 태도에도 연중서는 화를 내기는커녕 차분하게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그때 너희 엄마가 엉망이 된 얼굴을 한 채 Y국 거리를 걸어다니는 걸 보고 불쌍한 마음에 집에 데려와 먹을 것도 주고 살 곳도 마련해주고 살아가라고 격려도 해줬었어.”“그 후,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했고 마침 그때 너희 엄마를 공항에서 마주치게 되었었어. 당시 너희 엄마는 이미 성형을 한 상태라 난 알아보지 못했지. 너희 엄마가 먼저 말하는 바람에 알아보게 된 거야. 내가 예전에 도와줬던 여자라는 것을.”“너희 엄마는 고마웠다면서 우리 회사에 투자했고 동아 그룹은 그제야 다시 살아났어. 많이 고마웠어. 그래서 너희 엄
그 순간, 연중서는 난처해졌다. 그의 이상함을 알아차린 연지유가 즉시 물었다.“아빠, 서유가 아빠한테 뭐라고 했어요? 왜 아빠가 서유 그 여자를 위해 사정하는 거냐고요?”평소에 연중서는 연지유의 부탁이라면 무작정 들어주었다. 하늘의 별을 따달라고 해도 어떻게 해서든 따다 줄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서유 그 여자를 위해 사정을 하고 있다?“설마 서유가 아빠한테 꼬치라도 쳤어요? 정말 뻔뻔하고 천하기 짝이 없네.”“그럴 리가. 내가 나이가 몇인데 그런 유혹에 넘어가냐? 그리고 난 평생 너희 엄마만 사랑했어.”그 말에 서유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김영주의 재산으로 연지유 두 모녀를 보살폈으면서 지금 그녀의 앞에서 정부와의 사랑을 운운하고 있다니. 정말 웃기는 일이다. 그녀가 비웃고 있는 걸 연중서는 눈치채지 못하였다. 그때, 전화기 너머로 가슴을 찢는 듯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아빠, 서유가 아무리 사정해도 오늘 반드시 서유를 죽여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을 거라고요.”이런 협박은 어렸을 때부터 잘 먹혔다. 연중서는 고개를 돌리고 서유를 쳐다보았다. 딸이니까 죄책감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감정이 없는 서유보다는 오랜 시간 애지중지 키워온 연지유가 그한테는 훨씬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알았어.”그제야 연지유는 울음을 그쳤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에 신신당부했다.“손정태한테 동영상 찍으라고 해요. 매일 그걸 보면 속이 뻥 뚫릴 것 같으니까.”그녀의 요구에 연중서는 뭐든 다 들어주었고 알았다고 한 뒤 전화를 끊고는 핸드폰을 손정태에게 건네주었다.“카메라 켜고 찍어둬.”말을 마친 그가 서유를 향해 다가갔다.“내 딸이 죽는 걸 난 두고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말인데 초아야... 미안하구나.”그 말에 서유는 차갑게 웃었다. 연중서는 그녀에게 반격할 틈조차 주지 않고 바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그의 팔을 덥석 잡고 그와 함께 배에서 떨어졌다. 도망갈 수 없다면
얼마 후, 이승하가 심장을 움켜쥐며 정신을 차렸다.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아픈 가슴을 꼭 감쌌다.무의식적으로 서유 생각이 나서 더 가슴이 아팠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제멋대로 그녀를 쫓아낸 게 잘한 건지 모르겠다. 자꾸만 불안한 느낌이 들었고 뭔가를 잃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엄청난 고통에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손을 뻗어 쇄골 위의 이빨 자국을 만지고 나니 비로소 아픔이 조금은 덜한 듯했다. 서유가 그에게 남긴 흔적이었다. 고독한 마음이 잠시나마 안정을 되찾았다. 그녀가 남긴 흔적과 함께하니 그렇게까지 외롭지는 않았다. 다만 눈앞이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옆 방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그는 몸을 곧게 펴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고 뒤죽박죽인 모스 코드에서 [내가 넷째 어르신이다]라는 정보를 알아냈다.그는 바로 손가락을 뻗어 벽에 가볍게 두드렸다. 옆쪽 구금실에 갇혀있던 넷째 어르신은 이승하와 암호를 맞춘 후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손을 들어 계속 암호를 보냈다.[육성재는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그의 차가운 눈빛에 음흉한 기운이 감돌았다. 칩에 의해 통제된 그는 연지유와 봉태규를 죽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린다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손가락을 뻗어 담담하게 벽을 두드렸다. [8라운드의 게임이 끝난 후 육성재는 죽었습니다.]벽에 대고 있던 넷째 어르신의 손이 갑자기 뻣뻣하게 굳어졌다. 잠시 후, 그가 다시 벽을 두드렸다.[알았네.]이승하는 긴 속눈썹을 늘어뜨리며 눈 밑의 감정을 숨긴 채 다시 벽을 두드렸다.[누나인 김윤주의 자식 아닌가요? 복수 하셔야죠?]가면을 쓰지 않은 김종수는 훤칠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잘생긴 이목구비에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가 벽에 기댄 채 무심하게 벽을 두드렸다.[육성재는 내가 무사히 떠나보낼 거라고 했잖아.]그는 위층 구역에 사람을 진작에 심어놓았었다. 만약
이승하에 대해 아직 불확실한 건 많지만 1-2는 이례적으로 이승하에게 플레이어 초대자의 신분을 주었다. 비록 칩으로 그를 제어하고 컨트롤러를 봉태규에 맡겼지만 그는 여전히 이승하를 중시했다. 이 일들이 일어났을 때 김종수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플레이어들과 짜고 거액의 베팅을 했다고 연지유가 그를 고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누명을 씌울 수 있었던 건 그가 초대인을 픽업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연지유는 그의 권한을 빼앗고 그가 이끄는 사람들을 빼앗기 위해 몇 번이나 그를 고발하였고 1-2는 S 조직의 멤버 리스트를 위해 그한테 참으라고 했다. 그들이 리스트를 다 토해내면 그들을 제거하겠다고 하면서. 연지유와 봉태규도 똑똑하게 매번 한두 사람의 이름만 공개했다. 그러나 그들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리스트는 두 사람의 머릿속에 있었고 멤버가 얼마나 있는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을 잘 대우해야 했고 높은 자리를 줘야 했다. 이승하가 처음 왔을 때, 김종수는 그 고발 때문에 1-2한테 벌칙을 받고 C 구역으로 이동했다. Ace는 사실 이 한 개 구역만 있는 게 아니었다. ABC의 세 구역으로 나뉘는데 구역마다 또 세 개의 구역으로 나뉘었다. 상, 중, 하 구역으로 구분되었고 이 세 구역의 권한은 모두 잠겨 있는 상태로 모든 층에 감시 카메라가 있어서 누구도 자유롭게 다닐 수가 없었다.그들의 규칙은 간단했다. 중간 구역의 초대자는 아래 구역의 플레이어들이 사활을 걸고 게임을 하는 걸 관람하였고 위층 구역의 배후자는 중간 구역의 초대자가 공평하게 베팅했는지에만 관심을 두었다. 만약 S 조직의 멤버를 발견하게 되면 바로 화학 구역으로 보내버렸다. 화학 구역은 ABC의 3개 구역을 제외한 다른 곳에 있었고 전문적으로 S 조직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그곳의 책임자는 1-3이었다. 1-1은 모든 구역의 프로그래밍과 칩 연구 개발을 담당하였고 1-2는 게임 플레이 프로그래밍과 게임 구역의 관리를 담당하였다
이승하에게 당한 적이 있었던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다가가 이승하의 손과 발을 제압하고 그에게 반격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사실 그가 반격할 생각이었다면 1-2가 들어왔을 때 이미 손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가만히 있었다. 1-1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의 임무를 영원히 완수할 수 없을 것이다. 1-2는 그가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여 가만히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이승하에 대한 좋은 인상도 조금은 줄어들었다. “당신이 아래 구역의 권한을 풀었으니 Ace의 규칙에 따라 그 벌로 전기 충격을 받아야 마땅하나 아무리 해도 당신을 굴복시킬 수가 없어서 방식을 바꿔보기로 했어.”1-2가 턱을 치켜들자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은 이승하를 바닥에 쓰러뜨린 후 칼을 꺼내 소독하고는 이승하의 앞으로 다가가 천천히 몸을 숙였다. 마스크 아래 1-2의 시선을 따라 칼이 이승하의 옷을 살짝 자르고 옆구리 방향으로 천천히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손발이 묶인 이승하는 주먹을 불끈 쥐었고 가지런히 다듬어진 손톱이 손바닥 안에 박힐 정도로 손을 꽉 움켜쥐었다. 엄청난 고통이 몰려왔지만 칼에 베인 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머리를 약간 기울인 채 벽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서유가 아이를 가졌고 벌써 5개월이 지났으니 5개월 뒤면 그도 아빠가 될 것이다.아이가 그를 더 닮을지 아니면 서유를 더 많이 닮을지. 누구를 닮든 엄청 예쁠 것이다.아이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데 칼을 쥐고 있던 1-2의 손에 힘에 더 들어갔다. 아팠지만 꿋꿋하게 이를 악물고 소리를 내지 않았다.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떨고 있는 그의 모습에 연지유가 참지 못하고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를 달래려는데 그녀를 본 순간, 그가 갑자기 싸늘하게 눈을 감았다.순식간에 화가 치밀어 올라 얼굴이 일그러졌다.“쌤통이다.”짧게 욕설을 퍼붓더니 그녀는 고개를 들고 1-2를 바라보았다.“제가 하겠습니다. 어르신의 손을 더럽히지 마세요.”1-2는
서유를 밀던 연중서가 그녀에게 끌려가 배에서 뛰어내리는 순간, 이승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초췌하게 변했고 눈앞이 흐려졌다. 영상 속, 두 사람이 추락한 바다를 쳐다보며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랐지만 결국 연중서 혼자만 헤엄쳐 올라왔고 이내 바닷물은 잠잠해졌다.영상이 멈추자 갑자기 온 세상이 어두워지고 사방이 조용해지면서 몸에 힘이 풀렸다.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고 한 가닥의 희망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손을 뻗었지만 벌벌 떨리는 손은 몇 번이나 축 늘어졌고 온 힘을 다해 뻗어보니 마침내 쇄골 위에 새겨진 이빨 자국에 손끝이 닿았다. 연지유가 내 목숨을 가지고 당신을 위협한다면 난 기꺼이 죽어줄 거예요. 당신을 찾아 이곳에 오면서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으니까요. 당신이 살아있다면 당신과 함께 싸울 것이고 당신이 죽었다면 나 또한 죽을 거예요. 약속했잖아요. 죽든 살든 평생 함께하기로. 서유는 그와 함께 죽는 것도 두렵지 않아 했다. 그런 그녀를 제멋대로 쫓아내다니. 그게 그녀를 위한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정말 그녀를 위한 일인 걸까?그녀에게 좋은 일이었다면 지금 그녀는 왜 바다에 빠진 걸까?예전에도 그녀를 지켜준다고 해놓고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그녀를 위험에 빠뜨릴 줄이야. 이혼 합의서에 강제로 사인하는 그 모습이 떠올라 그는 절망에 빠졌고 온몸이 싸늘해졌다. 독단적인 그의 생각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그녀를 쫓아내면 그녀와 아이가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옥의 악귀가 그녀를 이리 계속 따라다닐 줄이야. 그가 조금만 방심하면 그들은 그녀를 갈기갈기 찢고 산 채로 삼키고 시체조차 그에게 남겨주지 않을 것이다.그가 틀렸다. 큰 실수다. 다른 여자와 연기까지 하면서 그녀한테 상처를 주지 말았어야 했다. 상처를 준 것도 모자라 그녀 혼자 쓸쓸히 떠나는 걸 지켜만 보지 말았어야 했다. 그녀를 안고 모든 것을 막아줘야 했다.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그의 눈이 가늘게 떨리더니 이제야 정신을 차린 듯 시선을 그녀에게로 천천히 옮겼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턱을 치켜올리던 그녀의 손가락이 순식간에 부러졌다.툭하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 마디가 부러졌다.“아악!”아파서 비명을 지르는 순간 손목에서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전해졌다. 이승하가 그녀의 손목을 비틀어 단번에 부러뜨린 것이다. 아픔을 견디기도 전에 차가운 손이 그녀의 목덜미를 졸랐다. 숨이 턱턱 막혔고 웃고 있던 얼굴이 불과 1초 만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만약 누군가가 그의 머리를 통제하지 않았다면 연지유는 지금쯤 그에게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그가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 쓰러질 때, 그녀는 그 틈을 타 그에게서 탈출했다. 목을 감싼 채 낭패한 모습으로 허겁지겁 뒤로 몸을 옮겼다.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후에야 비로소 부러진 왼손을 들고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잠시 후, 마음을 가라앉히자 봉태규가 안으로 들어왔다. 방금 그녀가 한 말을 들은 것인지 그는 그녀를 부축하지 않고 실망한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도 뭔가 알아차린 듯 얼른 봉태규의 손을 잡아당겼다. “태규 씨, 방금은 그냥 헛소리한 거야. 신경 쓰지 마. 내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뿐이니까.”“그래?”피식 웃더니 칼을 꺼내 그녀의 앞에 던졌다. “그럼 가서 한번 찔러봐. 나한테 네 마음을 보여주란 말이야.”흠칫하던 그녀는 다친 손을 핑계로 대려 하였지만 그가 새빨간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봉태규는 미친놈이었다. 만약 그녀가 이승하를 놓지 못했다는 걸 그가 알게 된다면 그는 분명 그녀를 죽이려고 할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칼을 움켜쥐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승하의 앞으로 걸어갔다.이승하, 어떻게 이리 내 마음을 몰라? 차라리 죽어.연지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에 든 칼을 이승하의 허벅지를 향해 푹 찔렀다. 바닥에 쓰러져 몇 번이나 의식을 잃은 남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까만 눈동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