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는 그 목소리를 듣고 차가운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연지유가 하이힐을 신은 채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고, 그녀의 뒤에는 조종기를 들고 있는 봉태규와 두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는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이승하의 음침한 눈빛은 봉태규의 손에 있는 조종기를 강하게 응시했다. 그는 S 멤버들의 명단을 가지고 있었고, 1-2는 그를 높이 평가해 칩의 조종권을 그에게 맡긴 상태였다. 이승하가 연지유에게 손을 대기만 하면 봉태규는 조종기를 사용해 그를 제어할 것이고, 이승하가 봉태규에게 손을 대면 1-2가 칩의 프로그램을 가동해 그를 고통에 빠뜨리며 복종하게 만들 것이다. 이렇게 그들 사이의 관계는 이미 완벽한 고리로 얽혀 있었다. 그의 뇌에 이식된 칩의 조종이 누구 손에 있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서유가 떠날 수 있는 권한을 1-2가 연지유에게 넘겼다는 것이었다. 이제 연지유의 손에는 서유의 목숨이 달려 있었다. 이승하는 차가운 눈빛을 들어 연지유를 쳐다보며 말했다. “권한을 해제할 수 있는 조작대는 어디에 있지?” 방금 그가 사용한 조작대는 소용이 없었다. 이곳을 통제하는 조작대를 찾아야만 프로그램을 해제할 수 있었다. “1-2가 가지고 있어. 하지만 너는 상구역에 갈 권한이 없어. 보스를 찾을 수 없으니 이곳을 떠나는 프로그램도 해제할 수 없겠지.” 연지유는 매번 이승하 앞에 나섰을 때 예상치 못하게 그에게 제압당하곤 했다. 이번에는 조심해서 나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과거 죽음의 문에서 이승하를 제압했던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들을 데리고 왔다. 비록 그가 죽음의 문에서 혼자 열 명을 상대할 수 있었지만 결국 수적으로 밀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제압당해 두개골을 열고 강제로 칩을 이식당했다. 이승하가 머리를 강제로 절개당하고 피가 흘러내릴 때조차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았던 모습을 떠올리자 연지유의 마음이 잠시 흔들렸지만, 이승하는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위해 검은 옷을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아무 말 없이 이혼 협의서를 건네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을 떼려 했지만 여러 번 울컥거려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가에 맺힌 물기가 번져나가 점차 눈물을 이뤘고, 그 뜨거운 눈물이 눈꺼풀을 타고 떨어지더니 이혼 협의서 위로 뚝뚝 떨어졌다. 그 눈물은 종이를 적셨고 동시에 이승하의 눈가도 촉촉하게 만들었다. 그는 서유를 제대로 바라볼 용기가 없었다. 서류를 그녀의 손에 쥐여준 뒤, 빠르게 몸을 돌려 등을 보인 채 한마디를 남겼다.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지만 차가운 어조 속에 그 떨림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사인해.” 서유는 미소를 살짝 지으며 눈앞에 서 있는, 자신을 보호했던 그 커다란 등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결국 그를 더 사랑하고 있었기에 심한 말을 꺼내지 못했다. 대신, 작은 손으로 그의 소매를 잡아 그를 돌려세웠다. 그가 다시 자신을 향해 돌아서자, 서유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생의 문 위에 있는 스크린을 가리켰다. “아까 나보고 가라고 했죠. 계속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직 시간이 안 돼서 못 갔을 뿐이에요. 시간 되면 바로 떠날 거예요. 다시는 승하 씨를 찾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제발 이혼만 하지 말아줘요, 응?” 서유는 이승하가 자신을 떠나게 하려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가 그녀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서 그런다는 것을. 그래서 마지막에는 그의 말에 순순히 따랐고 게임의 아홉 번째 생의 문 안에 남아 있었다. 문이 닫히지 않았기에 그녀는 떠나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런 식으로 그녀를 떠나게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서유는 눈물이 가득 고인 채로,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승하를 바라보았다. “몇 년 전, 당신은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나를 버렸어요. 이제 나도 알아요. 당신은 또다시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나를 떠나게 하려는 거겠죠. 나는 당신이 원한다면 떠날게요. 그런데 왜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고 이렇게 매정하게
이미 말을 이렇게까지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역시나 그녀를 밀어내는 것이라는 걸 깨달은 서유는 자신이 참으로 처참하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그럼 이유는요? 최소한 약속을 어긴 이유는 있어야 하지 않아요?” 연지유는 이승하의 팔을 꼭 끌어안으며 그의 팔에 머리를 기댔다. “못 알아차리겠어? 승하 씨는 이제 나랑 함께하려고 해.” 서유는 차가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사람이 당신을 그렇게 싫어하는데 어떻게 함께하겠어요. 날 죽이고 싶으면 그냥 바로 해요. 승하 씨를 더럽히지도 말고 나도 불쾌하게 하지 마요.” 연지유는 그 말을 듣고도 화내지 않고 하얀 손으로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예전엔 나를 싫어했지. 하지만 이제는 달라. 내가 승하 씨 아이를 임신했으니 당연히 책임을 져야지.” 이 말에 그동안 간신히 버텨온 몸이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차가운 한기가 번지며, 이승하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것이라는 믿음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서유의 시선은 연지유의 득의양양한 얼굴에서 서서히 이승하의 얼굴로 옮겨졌다. “아니라고 말만 해주면 믿을게요.” 이승하는 극심한 두통으로 차가운 땀을 흘리며, 머릿속에서 울리는 빠듯한 카운트다운 소리를 들었다. 그는 서유의 얼굴을 지나 그녀의 머리 뒤에 겨눠진 붉은 저격선에 시선을 두었다. 그의 눈가에 섞인 붉은 빛은 조명에 반사되며 사라졌다. 이내 그 자리에 차가운 빙하처럼 무표정한 얼굴이 드러났다. 감정을 통제하는 데 능한 그였기에 그 붉은 기운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하고 차가운 태도였다. “술에 취해서 실수했어.” 이 한마디는 서유를 깊은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쳤지만 수많은 손들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어둠 속으로 끌고 갔다. 그 순간, 서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
서유의 눈에 담긴 감정은 이전에 본 적 없는 차가움이었다. 마치 더 이상 그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는 듯한 눈빛. 그런 눈빛을 본 이승하는 깨달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면 그녀를 영원히 잃게 될 것이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과거에도 그는 그녀를 이렇게 상처 입힌 적이 있었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수년이 걸렸다. 이번에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서유의 성격상 어떤 이유가 있든 두 번째 기회를 주지 않을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이승하는 서유를 잃는 것이 두려웠다. 다른 남자와 그녀가 함께하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러나 그녀의 생명과 아이의 안전을 생각하면 나머진 그 모든 것보다 하찮아 보였다. 그는 서서히 주먹을 풀고 서유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승하의 답을 들은 서유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고 결국 그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만약 이승하가 단지 술에 취해서 실수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말하면 서유는 그를 믿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연지유를 사랑한다고 인정한 순간, 서유는 그가 단 한 번도 연지유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승하는 서유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며칠 만에 다른 여자를 사랑할 리 없었다. 결국 그가 선택한 모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서유는 이런 방식으로 상처받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에게 몇 번이고 상처를 받으며, 아무것도 모른 채 그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견뎌온 자신이 마치 바보 같았다. 서유는 그를 붙잡아 보았고 분명히 그에게 설명할 기회를 주었다. 심지어 그와 함께 맞서 싸우겠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이승하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더 이상 여기 남을 이유는 없었다.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그를 이곳에 혼자 남도록 내버려두자고 그녀는 결심했다. 서유는 이혼 협의서에 꽂혀 있던 펜을 갑작스럽게 뽑아 들고 자신의 이름을 재빨리 서명한 후, 그 협의서를 이승하
한동안 그 자리에서 굳어있던 이승하는 혼이 빠진 채 이혼 합의서를 찢어버렸다. 그러고는 아픈 마음을 숨기며 싸늘한 눈빛으로 옆에 있는 연지유를 쳐다보였다. “네가 원하는 대로 서유한테 상처도 줬고 이혼 합의서에 사인도 했어. 그러니까 이제 루드웰로 들어가는 권한을 줘.”옆에서 쭉 지켜보고 있던 연지유는 그가 이혼 합의서를 찢어버리는 걸 보고도 가만히 있었다. 어차피 그녀가 원하는 건 이승하가 죽기보다 더 힘들어하는 것이었고 서유에게 또다시 버림받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니까. 그녀의 뜻대로 됐으니 이혼 합의서를 찢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그의 가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손끝이 닿기도 전에 그가 몸을 돌렸다. 흠칫하던 그녀는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척 손을 비볐다.“서유가 이곳에 들어왔을 때부터 태규 씨가 이미 처리해 뒀어.”그녀가 말하는 사람은 바로 번호 2-8의 봉태규였다. 한편, 봉태규는 지금 위쪽 프로그램실에 앉아 칩 컨트롤러를 들고 CCTV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을 노려보고 있었다. 연지유를 차갑게 쳐다보던 그가 빠르게 콘솔로 다가갔고 깨져버린 모니터의 녹색 버튼이 루드웰의 출구 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었다. 루드웰로 향하는 문이 열리고 플레이어들이 안전하게 떠났다는 글자가 나타날 때까지 그는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던 중 차가웠던 그의 눈빛은 점점 살벌하게 변해갔다. 깨진 유리 조각을 쳐다보던 그가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뻗어 한 조각 덥석 손에 쥐고는 다시 9라운드 게임방으로 들어갔다. 한편, 연지유는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콘솔에 기대어 앉아 머리를 만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콘솔 말이야. 프로그램을 수정할 수는 없지만 생의 문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화면에 보이는 지도는 가짜가 아니야. 너랑 한 약속 지켰는데 날 죽일 필요까지 있겠어?”진작부터 그가 배신할 줄 알았던 연지유는 조금도 놀란 기색이 없었다. 게다가 그가 자신에게 손을 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여유만만한
“이승하의 머릿속에 있는 칩은 1-2가 나한테 넣으라고 했던 거고 이승하를 초대자로 만든 것도 1-2이야. 1-2는 이승하의 능력을 눈여겨봤기 때문에 몰래 1-1의 권한을 풀어도 이승하를 죽이지 않았던 거야. 1-2한테 이승하는 아직 필요한 사람이라는 뜻이겠지.”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봉태규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말을 이어갔다. “태규 씨, 1-2가 나한테 30분 동안 권한을 준 건 맞지만 우리 마음대로 하라고 한 건 아니잖아. 그 사람의 권위에 도전하지 말자. 이승하는 구금실로 보내고 1-2가 직접 처벌하게 놔둬.”그 말을 듣고 봉태규는 폭파 버튼에 올려놓은 손가락을 떼고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다.“지금 죽이지 않다가 이승하가 나중에 1-2의 신임이라도 얻어서 1-2의 힘을 빌려 우리를 죽이려고 하면 그땐 어떡할 거야?”“잊었어? 우리가 이승하의 가장 큰 약점을 쥐고 있다는 걸. 만약 1-2가 이승하를 중용한다면 그땐 이승하의 신분을 폭로할 거야. 처참히 죽게 할 거라고.”살의가 가득한 그녀의 눈을 보고 봉태규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봉태규는 이승하와 함께 S 조직에 들어갔지만 강중헌은 이승하를 더 마음에 들어 했다. 직접 이승하를 가르쳤고 어른이 돼서는 리더 자리도 이승하에게 넘겨주었다. 반면, 그는 이승하의 부하가 될 수밖에 없었고 게다가 택이와 소지섭 같은 이승하의 심복도 아니었다. 진작부터 이승하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었다. 늘 당당하고 남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이승하의 모습이 지긋지긋하게 싫었다. 하여 이렇게 루드웰의 존재를 알게 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리고 좋아하는 여자도 생겼다. 이승하한테 버림받고 시달리는 연지유를 보며 그는 이승하가 더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연지유를 데리고 루드웰에 의탁하게 된 것이다. 연지유는 그보다 더 이승하를 원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복수할 기회를 그녀한테 양보했다. 그녀한테 S 조직 멤버의 리스트를 넘겨주고 그녀가 1-2와 거래하여 루드웰의 조작자가 되게 하였다. 그는 기꺼이 뒤로
한편, 생의 문으로 나온 서유는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무인도에 누워있었고 그녀의 옆에는 캐리어와 보너스를 받을 주소가 적힌 종이가 놓여있었다. Ace는 상금을 지정된 장소에 두고 게임에 성공한 플레이어들이 직접 찾아가는 방식이었다. 아마도 사람들이 그들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인 것 같다. 그녀는 주소를 잘 챙겨 다시 캐리어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해안가로 다가갔다. 배를 찾을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하였으나 배는 찾지 못하였고 누군가를 마주치게 되는데 그 사람은 바로 그녀가 가장 만나기 싫었던 연중서였다. 연중서는 딸 때문에 지금은 루드웰에서 일부 검은 옷차림을 한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가 사람들을 데리고 해안가에서 서서 서유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서유, 오랜만이군.”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단번에 알아차린 서유는 바로 도망쳤고 연중서의 손짓에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이 재빨리 앞으로 다가왔다.빠르게 도망친 서유는 이내 풀숲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키와 비슷한 높이의 풀숲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재빨리 피신할 수 있었다.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고 그녀가 도망친 길을 따라가면서 칼로 풀숲을 헤집었다.다들 서유보다 키가 컸던 터라 그녀가 움직인 흔적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저 놀이 삼아 그녀의 뒤를 천천히 쫓았을 뿐. 얼마 후, 인내심이 바닥난 그들은 재빨리 그녀의 위치를 찾아냈고 검은 주머니로 그녀의 머리를 감싼 다음 그녀를 어깨에 메고 바로 배에 올라탔다. 배가 인적이 없는 깊은 바다로 항해할 때, 연중서는 그제야 그녀의 머리에 씌워져 있던 주머니를 벗겼다. 시선이 맑아지는 순간, 서유는 갑판 위에 서 있는 남자를 보며 친아버지인 그가 다른 딸을 위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연중서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를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미간 사이가 연지유와 많이 닮은 듯했고 그와도 많이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서유는 싫은 표정을 지으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당신 덕분에 언니도 죽었어요.”김영주가 Y국 거리에서 굶어 죽고 김초희가 달동네를 떠돌고 그녀가 고아가 된 건 모두 연중서의 탓이었다. 모질고 잔인한 그로 인해 세 모녀는 헤어지게 되었고 각자 처참한 길을 걷게 되었다. 반면, 연중서의 곁에서 연지유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났다. 연중서는 그녀를 위해 모든 뒷길을 열어주었고 남부러울 것 없이 키웠다. 그녀는 김초희처럼 여기저기 구걸하지도 않았고 서유처럼 비참하게 살지도 않았다. “초희도... 죽었다고?”경악하던 그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서유의 손을 덥석 잡았다.“그 바다에서 살아났던 사람들이 왜 죽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서유는 또다시 그의 손을 뿌리쳤다. “걱정하는 척 가식 좀 그만 떨어요. 내 물음에 대답부터 해요. 그 당시 왜 소유진을 도와준 거예요?”그녀는 김영주가 연중서에게 어떻게 죽임을 당했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연중서가 왜 김영주를 도왔는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가 처음부터 소유진의 정체가 김영주라는 것을 알고 김영주의 엄청난 유산이 탐나서 계획적으로 접근한 건 아닐까?정말 그런 거라면 김영주는 그가 놓은 덫에 걸려 지옥으로 끌려들어 간 것이다. 김영주의 일생이 너무나 가치 없는 건 아닌 건지? 쌀쌀한 서유의 태도에도 연중서는 화를 내기는커녕 차분하게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그때 너희 엄마가 엉망이 된 얼굴을 한 채 Y국 거리를 걸어다니는 걸 보고 불쌍한 마음에 집에 데려와 먹을 것도 주고 살 곳도 마련해주고 살아가라고 격려도 해줬었어.”“그 후,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했고 마침 그때 너희 엄마를 공항에서 마주치게 되었었어. 당시 너희 엄마는 이미 성형을 한 상태라 난 알아보지 못했지. 너희 엄마가 먼저 말하는 바람에 알아보게 된 거야. 내가 예전에 도와줬던 여자라는 것을.”“너희 엄마는 고마웠다면서 우리 회사에 투자했고 동아 그룹은 그제야 다시 살아났어. 많이 고마웠어. 그래서 너희 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