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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9화

소준섭은 세상을 떠났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의 유골도 재로 변해 바람에 날려 흔적조차 사라졌다. 그는 마치 가벼운 바람처럼 이 세상을 잠깐 스쳐 갔을 뿐,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고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은 채 사라져 버렸다.

주서희는 그의 유골이 어느 나라 어느 바다에 뿌려졌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사진 한 장 없는 묘비만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한참 동안 그렇게 서 있다가 제국 도시에 내린 빗물이 그녀를 적시고, 소수빈이 우산을 씌워주었을 때에야 주서희는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는 소수빈에게 말했다.

“가요.”

그녀는 다시 A시로 돌아와 이전과 같은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구하며, 가끔 소아과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기도 하고 때때로 윤주원을 챙기기도 했다. 그녀는 겉으로는 예전과 다를 바 없이 지냈지만 밤이 깊어지면 약을 먹어야 잠들 수 있었다. 꿈속에서도 소준섭은 나타나지 않았다.

주서희가 꿈에서 보는 것은 언제나 자신이 총을 쏘는 장면이었다. 매번 총을 쏠 때마다 꿈에서 깨어났고 깨어난 후엔 자신의 두 손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그녀는 약물의 양을 늘렸고 결국 더 이상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긴급 환자를 진료하던 중, 주서희는 갑자기 구급차에서 내리는 우아한 모습의 소준섭을 보았다. 그는 생전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까맣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뒤로 빗어 넘긴 채 깨끗하고 단정한 이마가 드러나 있었다. 그의 이목구비는 마치 그림처럼 완벽했고 그 아래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가 있었다.

그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주서희의 심장은 멈춘 듯했다. 그녀는 경직된 몸으로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준섭 씨...”

소준섭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자신보다 한참 작은 주서희를 바라보았다.

“나 여기 있어.”

그는 그 말을 하며 미소를 지었고 눈웃음이 번져졌다.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주서희의 눈은 어느새 붉어져 있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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