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 결과, 장유건은 집과 회사만 오갔다. 그 시간도 전부 게임 개발에만 썼다. 바람피우는 것도 그에게는 귀찮은 일에 해당할 것 같았다.나는 금방 저장한 CCTV 영상의 캡처본을 강은주에게 보내서 입장을 밝혔다. 이걸로 당분간은 잠잠할 줄 알았다. CCTV의 위협이 3일도 안 갈 줄은 누가 알았는가?미술관은 3일 간의 정돈을 거친 후 다시 열었다. 망가진 그림은 버리지 않고 특수 처리를 거친 후 잠시 창고에 보관했다.오늘은 온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내가 윤미정이 준비해 준 도시락을 먹고 있을 때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두 명이 대뜸 쳐들어왔다.그들은 핸드폰을 들고 미술관의 모습을 대조해 봤다. 그리고 이곳이 맞다는 걸 확인한 후에는 오만하게 외쳤다.“여기 사장 어디 있어?”내가 몸을 일으켰다.“저예요. 무슨 일로...”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여자가 외쳤다.“불효막심한 년! 자기 혼자 잘 살겠다고 어머니를 버려? 네가 그러고 인간이냐?”나는 순간 넋이 나가면서 무의식적으로 귀를 후볐다.“뭐라고요?”그 중 한 사람이 대뜸 달려들더니 내 옷을 찢으려고 했다.“독한 년! 마음 약한 네 엄마 대신 내가 정신 차리게 해줄게. 너 같은 된장녀는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야, 내가!”왼손의 상처가 낫지 않았던 나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다행히 지난번의 경험이 있어서 경비들이 금방 말리러 왔다.험한 말을 들으며 나는 손이 다 덜덜 떨렸다.“신고해요.”그들의 뒤에 누가 있는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경찰서는 미술관 근처에 있었다. 경찰들도 금방 출동했다.나는 참고인 조사를 하며 의심 가는 바를 말했다. 그리고 핸드폰에 저장하고 있던 영상도 증거로 제출했다.세상 정의롭게 미술관에 쳐들어왔던 여자들은 당당하게 사실을 말했다. 그들은 인터넷에서 나를 욕하는 영상을 보고 마침 근처에 있던 참에 왔다고 했다. 경찰서에서도 정의의 화신이라도 된 것 같이 으스대는 모습이었다.나도 그들이 말하는 영상을 확인했다. 강은주는
“아니, 난 얘 엄마라니까요! 내가 내 자식한테 뭘 하든 당신들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낳은 자식이에요! 내가 기술학교에 가라면 가고, 내가 선택한 남자랑 결혼하라면 해야 해요! 내가 이 따위 인생을 살고 있는데 쟤가 왜 누려야 하죠? 내 남편은 도망갔는데, 쟤는 왜 잘 살아야 하냐고요! 내 딸이면 나랑 같이 구렁텅이에 있어야 해요! 내 말만 들어야 해요!”나는 이 순간에 이르러서야 강은주가 ‘나를 위하는’ 이유를 알았다. 그리고 또 이제야 내 아버지는 돌아가신 것이 아닌 강은주가 임신했을 때 다른 여자와 도망간 것을 알았다.그녀는 내 아버지를 증오했다. 그래서 나에게 복수하는 것으로 몰래 만족하고 있었다. 내 인생을 완전히 망쳐버릴 작정이었던 것이다.그러므로...나는 그녀에게 한 번도 딸이었던 적이 없다. 그저 감정을 분출할 도구에 불과했다.날개 꺾여서 손가락질받는 내 모습이 그녀는 아주 보기 좋았을 것이다. 얼마나 고생스럽게 나를 낳았는지 같은 건 잊은 듯했다. 내가 아버지뿐만 아니라 그녀와도 혈연관계가 있다는 것도 잊은 모양이다.“울지 마, 서윤아.”윤미정이 나를 꼭 끌어안았다.“자, 얼른 집에 돌아가자. 내가 갈비찜 해줄게.”윤미정은 내 손을 잡고 법정을 나섰다.오늘은 날씨가 아주 좋았다. 따듯한 햇살이 몸을 비추자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강은주는 감옥에서 잘 지내지 못한다고 했다. 딸을 모함하려고 했다가 감옥에 들어왔다는 소문이 퍼지자 살인자도 그녀를 경멸했다. 짐승만도 못하다고 말이다.대놓고 따돌림당하는 인생이 드디어 그녀에게 돌아갔다. 규칙상 구타는 할 수 없으니 그녀는 부정적인 말만 듣고 살아야 했다.반년도 채 되지 않아서 그녀는 완전히 미쳐버렸다. 그녀는 밤낮 없이 나와 내 아버지를 욕한다고 했다. 감옥에서는 심리 검사를 하고 그녀를 정신병원으로 보냈다.정신병원에서도 그녀의 처지는 나아지지 않았다. 부작용이 가득한 약을 먹는 건 물론 전기 치료도 받아야 했다.임신한 다음 나는 장유건과 함께 그녀를 보러 간 적 있었
어머니에게서 장유건이 바람을 피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사기당한 줄 알았다.장유건이 바람을 피웠다는 걸 믿을 바에는 세상에 귀신이 있다는 걸 믿는 게 나았다.내가 사랑에 눈이 멀거나 그런 건 아니고, 장유건은 시어머니가 다 내가 아니었으면 컴퓨터와 결혼했을 사람이라고 했기 때문이다.“왜 가만히 얼빠져 있어? 빨리 가서 이혼해야지!”어머니 강은주는 내 팔목을 잡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뒤늦게 정신 차린 나는 차분한 말투로 대답했다.“유건 씨가 돌아오면 내가 얘기해 볼게요...”“무슨 얘기를 더 할 게 있어?”강은주는 대뜸 내 귀를 잡아당기며 말을 이었다.“내가 전부터 말했지? 재벌들은 믿을 게 못 돼. 너 같이 학벌 없고, 못 생기고, 성격도 안 좋은 애가 재벌의 눈에 들 리가 있겠어? 난 네 어머니야. 나도 다 너를 위해서 하는 소리라고.”나는 귀가 뜨겁고도 아팠다. 이 대로라면 떨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애써 강은주에게서 벗어난 나는 거리를 벌리며 말했다.“내가 언제 엄마 말 안 믿는다고 했어요? 뭐가 됐든 당사자랑 얘기는 해야 할 거 아니에요. 유건 씨가 정말 바람을 피웠다면 제 권리 제가 알아서 지킬 거예요. 그리고 오늘 전시회 첫날이에요. 지금은 일하느라 바빠요.”나는 장유건이 바람을 피웠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은 빈말이라도 해서 강은주를 떼어내야 했다. 안 그러면 내 전시회까지 망치고 말 것이다.나는 스스로 아주 훌륭하게 변명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은주는 쉽게 포기하지 않고 속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널 된장녀나 되라고 힘들게 키운 줄 아니? 넌 어떻게 된 애가 부끄러운 줄도 몰라. 유건이는 너한테 감정 없어. 언제까지 뻔뻔하게 들러붙을래? 사람들이 널 어떻게 말하는지 알기나 해?”강은주의 목소리는 아주 컸다. 전시회를 보러 온 사람들이 놀란 눈빛을 보낼 정도였다.나는 얼굴이 뜨거워져서 그녀를 잡아당겼다.“여기 아직 사람 있어요. 안에 들어가서 말...”강은주는 손을 뿌리치더
중학교 때, 강은주는 내 지원서를 멋대로 고쳤다. 그렇게 나는 전시 3등의 성적으로 가장 나쁘다고 평가받는 기술학교에 가게 되었다. 고등학교도 아니었다.완전히 무너져 내린 나는 대성통곡을 했다. 그러나 강은주는 내가 가정 형편도 모르고 남자에게 빠져서 귀족 고등학교에 가려고 했다는 듯이 말했다.그녀는 개천에서 용 난다고 주장했다. 라떼는 기술학교 졸업생도 창창한 미래가 있었다고 했다.사람들은 그녀의 연기력에 넘어갔다. 그래서 저마다 나에게 와서 기술학교를 졸업해서 전문대학교에 가면 된다고 위로했다.수능시험을 준비할 때, 그녀는 또 내 수험표를 갈기갈기 찢었다. 그렇게 1년의 노력이 전부 헛되고 말았다.화를 내는 나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요즘 세월에 대학생은 흔해 빠졌어. 대학교 나와서 일자리나 찾을 수 있을 줄 아니? 그러지 말고 학교에서 추천하는 안정적인 일자리나 선택해.”사람들은 몰랐다. 그 ‘안정적인 일자리’가 공장 일일 줄은 말이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머니의 말을 들으라고 설득했다.졸업한 후, 그녀는 또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하며 이상한 남자와 선을 보게 했다. 그녀는 자신이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 사람을 잘 본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소개해 준 남자가 딱 봐도 마누라에게 잘해줄 상이라고 했다.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내가 어머니의 말을 안 듣는다고 비판했다. 마누라에게 잘해줄 상이라는 남자가 재혼남일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강은주는 심지어 애 딸린 남자가 더 좋다고 했다. 애를 직접 낳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다. 돈 없는 남자는 또 더 좋다고 했다. 돈이 있으면 다른 여자를 찾기 마련이라고 했다.내가 결혼할 때, 그녀는 내가 재혼남과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장유건은 나를 가지고 노는 흔한 재벌 2세에 불과하다고 했다.사람들은 당연히 강은주의 편에 섰다. 그들은 전부 강은주의 말이 맞다고 했다.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여겼다.그런데 그게 사실일까?“이서윤! 내 말 듣고 있어?”내
“잠깐만, 그러니까 이세 부부 사이 일이었다고?”“난 또 작가님이 내연녀라도 된 줄 알았네.”“어머님도 마음이 급해서 그랬겠죠. 저는 이해할 수 있어요...”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듣고 나는 한 시름 놓았다. 다행히 내가 내연녀라는 오해는 생기지 않을 듯했다.내가 다들 듣는 데서 반박할 줄은 모른 듯, 강은주는 잠시 얼빠져 있다가 눈물을 흘렸다.“너 진짜 실망이다. 내가 유건이 자식이 다른 여자랑 호텔에 들어가는 걸 똑똑히 봤다고 하지 않았니. 근데 무슨 말을 더 들을 게 있어. 내가 너한테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거니? 너 그냥 유건이한테서 돈 받을 작정이잖아! 내가 어쩌면 너 같이 돈만 밝히는 딸을 낳았을까!”그녀는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서 아우성쳤다.“오늘 당장 이혼하지 않으면 나랑 연 끊을 줄 알아!”말을 마친 그녀는 또 심장을 감싸며 곡소리를 냈다.“아이고... 아이고 심장이야...”나는 늘 봐온 연기 루트다. 그러나 처음 보는 사람은 동정심을 보내기 마련이다.강은주는 아주 건강했다. 심장은 물론이고 머리카락 한 올도 튼튼했다. 산에 가면 호랑이도 때려잡을 수 있을 것이다.나는 평온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얼굴에는 실망으로 가득했다. 나를 위할 줄밖에 모른다던 어머니는 동정표를 사려고 아픈 척까지 하고 있었다.비록 나는 그녀가 건강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 한 사람이 와서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어머님, 진정하세요. 제가 병원에 모셔다드릴게요.”“안 가요! 나 안 가요!”자신의 편을 들만한 사람이 나타난 것을 보고 그녀는 흥분하며 말했다.“서윤이가 이혼 안 하면 난 병원에 못 가요! 여기서 확 죽어버릴 거예요!”나는 머리가 아팠다.“엄마 지난달 금방 건강검진 했잖아요. 아무 문제 없었으면서...”“아이고! 나 죽는다!”그녀는 허벅지를 내리치면서 울었다.“남편 잃고 나 혼자 널 키우는 게 어디 쉬운 줄 아니? 힘들게 키워 놨더니, 중학교 때부터 연애질을 하지 않나. 집안 형편 모르고 귀족 학
강은주는 갑자기 말을 바꾸며 설득했다.“서윤이 넌 어려서 아직 세상 무서운 줄 몰라. 엄마 말 들어. 유건이랑 해어지고 대성이랑 결혼해. 대성이만한 남자가 없다니까 그러네. 대성이는 네가 이혼한 적 있다고 해도 상관없대. 계속 기다릴 수 있다고 했어.”이렇게 말하며 그녀는 눈물까지 닦았다.그녀의 미친 행동에 놀랐던 사람들도 이제 다시 입을 보태기 시작했다.“정신 차려요, 서윤 씨. 돈보다 사람 마음이 중요한 법이에요.”“그러니까요. 어머님 건강도 신경 안 쓸 생각이에요? 그러다 이제 다 후회해요.”“빨리 가서 이혼해요. 바람피운 남자를 위해 어머니랑 싸운다는 게 말이나 돼요? 불효도 정도껏 해야지.”강은주는 득의양양해서 나를 힐끗 봤다.그녀는 다른 사람의 입으로 내 욕을 듣는 걸 아주 좋아했다. 나에게 창피를 주는 것이 그녀에게는 가장 큰 보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사람들의 말은 끊임없이 내 귀에 틀어박혔다. 나는 몸과 마음이 다 지치기 시작했다.강은주는 내 어머니기에 모든 선택이 다 나를 위한 것이 된다. 또 강은주는 내 어머니기에 그녀가 한 말은 전부 들어야 했다.내가 조금이라도 반대할 기미를 보이면 그녀는 이런 식으로 동맹을 끌어모은다. 그리고 나를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한 불효녀로 만들어 버린다.만약 진정한 모성애를 본 적 없었다면 나는 강은주의 말이 맞는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마음속에 간신히 남아 있던 그녀에 대한 기대는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손에 맺힌 핏방울을 털어내고 상처를 더 깊게 만드는 칼을 한쪽에 내던졌다.“한 달에 50만 원밖에 못 벌고, 내 집과 내 차를 얹혀서 쓸 생각만 하는 남자가 엄마 눈에는 그렇게 좋아 보여요? 나랑 결혼하면 시골에 사는 조부모님, 부모님, 누나 세 명까지 전부 내 집에 보낼 거라면서요. 대를 잇기 위해서 아들은 적어도 3명을 낳아야 한다는 김대성 씨의 어느 부분이 어머니는 좋아 보였어요?”내 말이 나온 순간 사람들은 넋이 나갔다. 그들은 놀란 표정으로 강은주를 바라
“우주 테크의 장 대표? 제가 밥도 같이 먹은 적 있는데 일 얘기 반, 와이프 얘기 반 했었어요.”“저도 만난 적 있어요. 집에 돌아가는 길에 와이프 준다고 케이크도 사 가던데요.”“제 초대장은 장 대표님한테서 받은 거예요. 꼭 친구랑 같이 가달라고 하셔서요.”“그렇게 좋은 남자를 두고 왜 이상한 사람이랑 결혼하겠어요?”내 말에도 변하지 않았던 강은주의 안색은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고 확 변했다. 그녀의 연기가 통하지 않은 건 이번이 첫 번째였다.그녀는 미친 듯이 손을 허우적대며 말했다.“함부로 말하지 마요! 대성이가 얼마나 참한데요! 올 때 지방 특산물도 가져다줬어요! 그때 받은 감자를 아직도 채 못 먹었다니까요!”“풉...”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저기요. 장 대표는 20억을 주고 이 미술관을 샀어요. 근데 지금 감자랑 비교하는 거예요?”강은주는 오만하게 머리를 쳐들었다.“사랑은 돈으로 계산하는 게 아니에요! 대성이가 내 딸이 마음에 든다고 했으니까 당연히 시집가야죠!”그녀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차갑게 식었다. 내 학교, 내 진로를 망친 거로 모자라서 이제는 내 혼인까지 짓밟으려고 했다.내 일생이 그녀에게 잡혀 사는 꼴은 절대 못 본다. 내가 왜 그녀의 말만 따라야 하겠는가? 어머니가 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내가 절망에 휩싸여 있을 때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나는 따듯한 품으로 빨려 들어갔다.“서윤아! 이게 무슨 일이니? 손 좀 봐봐. 어쩌다가 이렇게 다쳤어?”나는 고개를 들어서 걱정하고 있는 시어머니 윤미정을 바라봤다. 그 순간 지금껏 참아온 눈물이 결국 버티지 못하고 주르륵 흘러내렸다.“어머니!”나는 밖에서 서러운 일이라도 당한 아이처럼 윤미정의 품에 안겨서 울었다.장유건과 연애하면서 결혼을 망설일 때였다. 나는 그의 집에 가서 밥 한 끼 먹은 다음 바로 망설임을 멈췄다. 장유건도 좋지만 윤미정이 너무 다정했기 때문이다.그녀는 미리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알아봐서 준비해 줬다. 그리고 내 일도 전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