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3화

“잠깐만, 그러니까 이세 부부 사이 일이었다고?”

“난 또 작가님이 내연녀라도 된 줄 알았네.”

“어머님도 마음이 급해서 그랬겠죠. 저는 이해할 수 있어요...”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듣고 나는 한 시름 놓았다. 다행히 내가 내연녀라는 오해는 생기지 않을 듯했다.

내가 다들 듣는 데서 반박할 줄은 모른 듯, 강은주는 잠시 얼빠져 있다가 눈물을 흘렸다.

“너 진짜 실망이다. 내가 유건이 자식이 다른 여자랑 호텔에 들어가는 걸 똑똑히 봤다고 하지 않았니. 근데 무슨 말을 더 들을 게 있어. 내가 너한테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거니? 너 그냥 유건이한테서 돈 받을 작정이잖아! 내가 어쩌면 너 같이 돈만 밝히는 딸을 낳았을까!”

그녀는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서 아우성쳤다.

“오늘 당장 이혼하지 않으면 나랑 연 끊을 줄 알아!”

말을 마친 그녀는 또 심장을 감싸며 곡소리를 냈다.

“아이고... 아이고 심장이야...”

나는 늘 봐온 연기 루트다. 그러나 처음 보는 사람은 동정심을 보내기 마련이다.

강은주는 아주 건강했다. 심장은 물론이고 머리카락 한 올도 튼튼했다. 산에 가면 호랑이도 때려잡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평온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얼굴에는 실망으로 가득했다. 나를 위할 줄밖에 모른다던 어머니는 동정표를 사려고 아픈 척까지 하고 있었다.

비록 나는 그녀가 건강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 한 사람이 와서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어머님, 진정하세요. 제가 병원에 모셔다드릴게요.”

“안 가요! 나 안 가요!”

자신의 편을 들만한 사람이 나타난 것을 보고 그녀는 흥분하며 말했다.

“서윤이가 이혼 안 하면 난 병원에 못 가요! 여기서 확 죽어버릴 거예요!”

나는 머리가 아팠다.

“엄마 지난달 금방 건강검진 했잖아요. 아무 문제 없었으면서...”

“아이고! 나 죽는다!”

그녀는 허벅지를 내리치면서 울었다.

“남편 잃고 나 혼자 널 키우는 게 어디 쉬운 줄 아니? 힘들게 키워 놨더니, 중학교 때부터 연애질을 하지 않나. 집안 형편 모르고 귀족 학교나 가겠다고 하지 않나. 학비를 안 준다고 네가 얼마나 난리를 쳤니. 큰 다음에는 멀쩡한 직장 놔두고 예술을 하겠다면서 가출까지 했지. 내가 힘들게 고른 참한 남자를 내치고 바람이나 피는 남자랑 결혼해서 돈이나 받아먹지. 내가 죽은 네 아빠 얼굴을 어떻게 보겠니!”

그녀의 울음은 아주 진실했다. 정말 딸을 위해 평생 고생한 어머니와 같았다. 동시에 나는 불효녀가 되어버렸다.

“세상에, 어떤 이런 자식이 있을 수 있지? 요즘은 드라마도 이렇게 안 찍어.”

“이런 사람이 그린 그림을 봐서 뭐 해? 시간이 다 아깝네.”

“어머님, 일단 일어나세요. 건강이 더 중요하죠. 제가 병원에 모셔다드릴게요...”

“맞아요, 못돼 먹은 자식 놈들은 그래 봤자 알아주지 않아요.”

그렇게 교양 있는 사람들도 험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보낸 초대장을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신발을 더럽혔다는 듯이 말이다.

강은주는 부축해 주려는 사람의 손을 뿌리치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림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과일칼을 꺼내 그림을 찢기 시작했다.

“이 그림 때문에 내 딸이 이상해진 거야! 버려야 해! 전부 찢어 버려야 해!”

그녀는 미친 듯이 그림들을... 내 자식과 같은 그림들을 파괴했다. 사람들은 옆에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은 당해야 정신 차린다고 했다.

나는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그녀가 무슨 짓을 하는지 인식했다.

“그만해요!”

나는 소리를 지르며 과일칼을 빼앗으려고 했다. 이곳에 있는 그림들은 내가 작품 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것들이었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특별히 가져온 것이라는 말이다.

찢긴 그림과 함께 나의 마음도 갈기갈기 찢어졌다. 나는 있는 힘껏 과일칼을 빼앗았다. 손이 상처투성이가 된 건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내가 꼭 오늘 이혼까지 해야겠어요?”

나는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피는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런데도 나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칼날을 꽉 잡고 있었다.

강은주는 내 상처를 보는 체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Related chapters

Latest chapter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