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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강하리는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아마도 18살 되던 해부터일 것이다. 강찬수는 시도 때도 없이 다가와서 그녀의 몸을 지분거렸다. 정서원과 수도 없이 싸우면서도 그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그녀는 대학에 붙으면서 집을 떠난 다음에야 강찬수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물론 이는 절대 구승훈에게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구승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짧게 대답했다.

“아뇨.”

“이런 일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

구승훈은 여전히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다. ‘이런 일’이란 다름 아닌 강찬수가 회사에 찾아와서 난동을 부리는 일을 가리켰다.

“다음은 없을 거예요. 저 사직하기로 했잖아요.”

구승훈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피식 웃었다.

“홧김에 한 말이 아닌가 보네.”

“네.”

“하하... 그래, 그럼 나도 시간을 뺏지 않을게.”

구승훈의 웃음소리는 아주 차가웠다. 그런데도 강하리는 영혼 없이 대답하기만 했다.

“네.”

마지막으로 강하리를 힐끗 본 구승훈은 창가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의 곁에는 함께 온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는 도발적이고 비웃음 섞인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구승훈이 다른 여자와 가까이 지낸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기 때문이다. 옷보다도 여자를 더 빨리 바꾸는 사람이 구승훈이었다.

구승훈이 어떤 사람인지 똑똑히 알면서도 그녀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아랫배를 쓰다듬는 손에는 힘이 들어갔고, 가슴은 자꾸만 욱신거렸다.

‘괜찮아, 난 이제 떠날 거니까. 떠나면 분명히 잊을 수 있을 거야.’

회사 정문에 도착한 그녀는 심호흡하면서 감정을 추슬렀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또 누가 퍼뜨렸는지, 회사 단톡방에는 벌써 그녀가 사직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강하리가 용감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구승훈이 냉정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주제를 모른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강하리는 단톡방을 힐끗 보기만 하고 나왔다. 회사 단톡방은 언제나 이 모양이다. 그저 오늘은 그녀가 먹잇감이 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별로 신경 쓸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강하리가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직원들은 삽시에 조용해졌다. 이때 안예서가 눈시울을 붉히면서 물었다.

“보스, 사직한다는 소문 사실이에요?”

강하리는 사무실에 있는 직원들을 쓱 둘러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들 그동안 고마웠어요.”

말을 마친 강하리는 조용히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수군대는 소리는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대충 정리를 끝냈을 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낯선 번호여서 받아보니, 전화 건너편에서는 강찬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하리, 나 지금 어디 있게?”

강하리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조금 전 강찬수가 떠나기 전 그녀를 노려보던 눈빛이 떠올랐던 것이다.

“엄마는 건드리지 마요!”

“내 요구는 간단해. 돈 줘, 돈만 주면 이 여자를 건드리지 않을게.”

강찬수의 당당한 말투에 강하리는 몸이 다 벌벌 떨렸다.

“돈 없다고요! 병원비로 진작 다 썼어요!”

“그럼 이 여자를 죽이면 되겠네. 돌려받은 병원비는 내가 알아서 챙기마.”

“야!”

강하리는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곧바로 진정하고 부탁하는 어투로 말을 이었다.

“두 사람 20년이나 같이 살았잖아요. 그간 같이 산 정을 봐서라도 극단적인 행동을 안 하면 안 돼요?”

“정?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고 돈이나 내놔. 이틀 줄게, 이틀 안에 2억 원을 내놓지 않으면 치료포기서에 사인할 거야. 내가 이 여자 서류상 남편이라는 건 잊지 않았지?”

강찬수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강하리가 다시 걸었을 때는 전화가 꺼져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정서원의 간병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찬수가 병원에 갔었어요?”

“네, 아까 와서 병원비가 얼마 남았는지 확인하고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갔어요.”

‘나한테 겁주려는 게 아니라 진짜였어...?’

강하리는 몸을 벌떡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보스, 어디 가요?”

그녀의 안색이 하도 어두워서 안예서는 걱정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급한 일이 있어서 잠깐 다녀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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