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대표님의 새로운 타깃이겠지. 관심 없는 여자에겐 가까이할 기회조차 안 주니까. 양 부장은 이번이 벌써 세 번째네.’강하리가 문 앞에서 꿈쩍하지 않자 임정원이 미간을 살짝 구겼다.“왜 그래요?”그녀는 재빨리 정신을 가다듬었다.“우리 그냥 딴 데 길까요?”임정원이 대답하기도 전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 부장님도 이리로 식사하러 오셨네요?”양 부장이 유난을 떨며 강하리를 불렀다.강하리는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고개 돌린 순간 구승훈과 눈이 마주쳤는데 짙은 눈빛에서 어떠한 감정도 보아낼 수 없었다.강하리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그에게 인사했다.“대표님.”구승훈은 무덤덤하게 머리를 끄덕이곤 임정원에게 시선을 옮겼다.임정원도 한창 그를 훑어보는 중이었다.구승훈은 출중한 재능에 거만함이 하늘을 찌른다.연성시에서 그에 관한 전설을 모르는 자가 거의 없을 지경이다.구승훈은 19살 때 아빠를 제치고 SH그룹의 오너 자리에 앉았고, 몇 해 지나지 않아 지루해졌는지 SH그룹을 내팽개치고 독립하여 자기 회사를 세웠다.4년이 지난 지금 구승훈의 회사는 여전히 전성기에 처해 있고 그도 구씨 일가의 도련님이 아닌 연성시의 빅 보스로 거듭났다.아무도 감히 그와 겨룰 자가 없다.임정원도 줄곧 그를 만나고 싶었으나 기회가 좀처럼 차려지지 않았다.강하리가 구승훈의 회사에 다니는 걸 알고 있지만 그녀를 이용하고 싶진 않았다.그러던 중 오늘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안녕하세요, 구승훈 대표님.”임정원은 그와 눈이 마주치자 깍듯이 인사했다.“저는 정인 로펌 파트너 변호사 임정원이에요. 하리 씨랑도 친구 사이고요.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구승훈이 담담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이곤 강하리를 쳐다봤다.“친구?”그는 비난 섞인 말투로 이 두 글자를 곱씹었다.“두 분 꽤 친한 사이인가 봐요?”강하리가 눈썹을 치키며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임정원이 덥석 가로챘다.“네, 아주 친해요.”구승훈은 가볍게 웃었다.“그렇다면 임 변호사 우리랑 협
더없이 짤막한 네 글자에 강하리는 거절하려던 말을 꾹 집어삼켰다.그녀는 고개 돌려 임정원을 쳐다보면서 살짝 미안한 듯 웃었다.한편 임정원은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구승훈과 함께 식사할 수 있다니 그는 되레 뿌듯할 따름이었다.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양희수가 강하리의 팔을 툭툭 쳤다.“솔직히 말해봐요. 두 사람 데이트 중이었죠?”강하리는 무심코 구승훈을 쳐다봤는데 그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제야 대답했다.“양 부장님과는 무관한 일인 것 같은데요.”양희수는 화를 내기는커녕 원망 어린 눈길로 구승훈에게 말했다.“승훈 씨도 참, 직원들 데이트하는 것까지 간섭해야겠어요? 하리 씨랑 옆에 있는 이분 얼마나 잘 어울려요.”말을 마친 양희수가 강하리를 쳐다보며 윙크를 날렸다.“하리 씨, 대표님 무서워하지 말아요. 연애하는 게 뭐 어때서요? 데이트하면 안 되나요? 이 사람 상사이긴 해도 직원들 사생활까지 간섭하진 못해요.”강하리는 웃으며 맞받아쳤다.“희수 씨, 그만 얘기하고 스테이크나 드세요!”양희수는 순간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하리 씨,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나 지금 하리 씨 도와주고 있잖아요.”“고맙지만 사양할게요.”강하리는 그녀의 체면을 전혀 봐주지 않았다.두 여자 사이에 팽팽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구승훈은 아무것도 모른 척 느긋하게 스테이크를 썰었다.양희수가 수중의 포크로 식탁을 내리치자 임정원이 본능적으로 강하리를 감쌌다.그제야 구승훈도 시선을 올리고 강하리의 앞을 가로막은 양정원의 팔을 보면서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임 변호사 매너 좋으시네요.”임정원이 웃으며 말했다.“저는 대표님처럼 담담하지 못해서요. 하리 씨는 제 친구라 이런 장소에서 상처받게 내버려 둘 순 없네요.”강하리는 머리가 띵해졌다. 계속 이러다가 억울한 누명까지 뒤집어쓸 판이다.그녀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죄송해요, 대표님. 제가 입맛이 없어서 양 부장님이랑 천천히 드세요.”말을 마친 그녀는 곧게 밖으로 나갔고 임정원도 뒤따라갔다.레스토랑 입구에
강하리는 택시를 안 잡고 그냥 길을 따라 목적 없이 걸어갔다.이때 익숙한 차가 그녀 앞에 멈춰 섰고 도어가 내려가더니 구승훈의 얼굴이 보란 듯이 나타났다.“타.”강하리는 잠시 침묵한 후 차 문을 열고 올라탔다.“검사결과 언제 나와?”“오늘 오후 세 시에요.”구승훈은 무관심한 태도로 알겠다며 대답한 후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이에 강하리가 먼저 해명했다.“아버지 때문에 임 변호사님한테 문의할 일이 있었어요.”구승훈이 그녀를 힐긋 쳐다봤다.“그래서 함께 밥까지 먹어야 했어?”“신세 지고 싶지 않아서요.”“모든 신세는 돈으로 갚는 게 제일 간편해.”“전 돈이 없잖아요.”강하리가 대답했다.그녀는 구승훈을 빤히 쳐다보며 생각했다.‘내가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당신이 누구보다 잘 알면서.’구승훈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경멸의 미소를 날렸다.“어제 준 2억을 그새 다 썼어? 강 부장 혹시 밖에서 슈가마미 놀이하는 건 아니지?”“아니에요, 그런 거!”강하리가 해명하려 들자 구승훈은 코웃음을 쳤다.그녀는 더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집안 사정을 구승훈에게 너무 많이 알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구승훈도 딱히 관심 없을 것이다.강찬수가 처음 회사에 찾아왔을 때 구승훈이 그를 바라보는 짜증 섞인 눈빛을 그녀는 잊을 수 없다.다행히 구승훈도 더는 캐묻지 않았다. 강하리는 몰래 한숨을 돌렸다.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준 후 구승훈은 바로 자리를 떠났고, 시동 걸기 전에 잊지 않고 그녀에게 당부했다.“강 부장, 우리 계약 잊지 마.”강하리와 구승훈 사이에 근로계약서 외에도 스폰 협의서가 하나 더 있다.그 협의서에는 구승훈이 갑이고 강하리가 내연녀이자 을이라고 명확히 적혀 있다.그리고 바로 그 협의서에 계약 기간 강하리는 이성과 그 어떤 관계도 유지할 수 없다고 보란 듯이 적혀 있다.강하리가 웃으며 대답했다.“기억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대표님.”구승훈은 그녀를 힐긋 바라보며 더 말하지 않고 바로 자리를 떠났다.오후 세 시를 넘
강하리는 인상을 찌푸렸다.“누군지는 얘기했어?”안예서는 고개를 내저었다.“인제 어떡하죠?”강하리는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내가 가서 대표님 뵙고 올게.”구승훈의 사무실 앞에 도착하자 안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와 통화 중인 듯싶었는데 목소리가 유달리 부드러웠다.강하리는 저도 몰래 심장이 쿡쿡 쑤셨다. 그래서 숨을 깊게 몰아쉬며 마음을 다잡고 노크했다.“들어와.”구승훈의 목소리가 안에서 전해졌다.강하리는 문을 열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그래, 나 지금 볼일 있어서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구승훈은 전화를 끊고 강하리를 쳐다봤다.“할 얘기 있어?”“신제품 출시 모델에 관해서요, 우리 기획안이 이미 통과됐는데 대표님이 왜 또 사람을 바꾸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구승훈이 넥타이를 살짝 풀었다.“강 부장은 더 물을 필요 없이 지시대로 움직이면 돼.”강하리의 안색이 살짝 일그러졌다.기획안은 그녀가 무려 반년이나 공들여 겨우 통과됐는데 이 남자 한 마디에 바로 캔슬 당하다니.“그럼 누구로 바꾸셨는지만 알려주세요. 저도 모니터링 해야 해서요.”“내 친구야.”구승훈이 무심한 척 대답했다. 그의 태도는 더없이 간결하고 단호했다. 강하리에게 이 결과를 바꿀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그녀도 구승훈의 태도에 바로 짐작했다. 그가 정한 일이니 더이상 의논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강하리는 잠시 침묵한 후 대답했다.“그럼 대표님 친구분더러 되도록 빨리 저한테 연락 주라고 하세요. 기획안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하거든요.”“원래 계획대로 하면 돼. 귀찮지도 않아? 기획안 다시 짜는 거.”“원래 기획안이 안 맞을 수도 있잖아요.”“맞든 말든 상관없어. 속은 좀 나아졌어?”구승훈은 수중의 계약서를 확인하며 그녀에게 물었다.강하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네, 많이 나아졌어요.”“그래. 몸을 차갑게 굴지 마.”“알겠습니다.”강하리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대표님, 신제품 모델을 다시 한번 고려해주시길 부탁드릴게요. 친구
강하리는 손가락을 살짝 구부렸다.“아직도 위가 약간 불편해요.”“약 먹고 술은 적게 마셔. 샴페인은 별로 독하지 않아.”강하리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더 말했다가는 오히려 들통날 것이다.사실 구승훈은 그녀에게 술을 강요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는 이런 면에서 항상 신사다웠다.하지만 오늘 그는 고집스러웠는데, 아직도 그녀가 임신했다고 의심하는지 일부러 떠보는 것 같았다.파티장에 도착하자 강하리는 정신을 가다듬고 구승훈의 팔짱을 낀 채 파티장 안으로 들어갔다.들어서자마자 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안현우를 발견했다.안현우는 제 자리에서 그녀를 향해 샴페인 잔을 들어 보였고, 구승훈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강 부장 매력이 대단한가 보네.”그러자 강하리가 웃으며 말했다.“구 대표님 안심하세요. 저는 돈에만 관심 있어요.”구승훈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그녀를 바라보았다.“그 말은 누구든지 돈만 주면 강 부장이랑 잘 수 있다는 거네?”강하리는 덤덤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구 대표님께서 더 많은 돈을 내놓으시면 되잖아요. 그럼 전 절대 다른 사람한테 가지 않을 겁니다.”순간 구승훈의 표정이 확 굳어졌고, 강하리는 더 말하지 않았다.구승훈에게 다가와서 샴페인을 권하는 사람은 많았다. 강하리는 예의 있게 그들을 맞이하고 샴페인을 살짝 입술에 대는 식으로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면서 샴페인을 마시지 않았다.“저 좀 쉬러 가도 될까요?”한참 사람들과 얘기를 나눈 강하리는 다소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구승훈은 그녀를 보내주며 말했다.“가서 뭐 좀 먹어.”“네.”강하리는 접시를 들고 가서 케이크 두 조각을 챙긴 후 구석으로 가서 앉았다.어느새 안현우가 그녀의 옆으로 와서 앉았다.“안 대표님.”강하리는 정중하게 인사했다.안현우는 그녀에게 샴페인 잔을 건넸지만 그녀는 그것을 받지 않았다.그런데 이번에 안현우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구 대표랑 잘 지내요?”강하리가 대답했다.“그럭저럭 괜찮아요.”안현우가 웃으
구승훈은 강하리의 옆에 와서 앉고 큰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지만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고 있어? 나도 들어보자.”강하리가 웃으며 말했다.“안 대표님께서 대표님의 첫사랑이 곧 돌아오신다고 하셨어요.”구승훈은 그 말을 듣고 코웃음을 치더니 별다른 대답하지 않고 계속 물었다.“그래서 강 부장이 그렇게 즐겁게 웃고 있었던 거야?”강하리는 가슴이 답답했다. 웃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를 붙잡고 울며불며 왜 첫사랑은 사랑하면서 자신은 사랑하지 않냐고 묻기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그녀는 눈치 있는 사람이었다.“전 그저 구 대표님께는 좋은 일인 것 같아서 기뻤을 뿐입니다.”구승훈의 안색은 어둡게 가라앉았다.“그렇다면 강 부장의 관심에 고마워해야겠네.”강하리는 입을 꾹 다물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안현우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구 대표님, 첫사랑분이 돌아오시면 저한테 알려주세요. 제가 강 부장을 데려갈게요. 이건 구 대표님의 사람을 빼앗는 거 아니죠?”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구승훈은 그 말을 듣고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왜요? 두 사람 벌써 협상했어요?”“아니요!”강하리는 바로 부정했다.안현우는 구승훈의 기분을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강하리는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저 조금 전에 이미 안 대표님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그러나 안현우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강 부장, 그렇게 빨리 거절하지는 마요. 겪어보지 않으면 뭐가 진짜 자신한테 어울리는 것인지 몰라요.”안현우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강하리의 안색은 더할 나위 없이 어두웠다. 그녀는 안현우가 일부러 자신한테 보복하는 것이라 생각했다.“대표님, 저는 진짜 안 대표님한테 마음이 없어요.”구승훈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샴페인 잔을 흔들고 있었다.“강 부장은 돈만 있으면 되잖아. 왜 안 대표는 안 되는 거지?”강하리의 입술을 하얗게 질렸다
강하리는 마음이 씁쓸했다.“전 그저 예의상 웃었을 뿐이에요.”구승훈이 코웃음을 쳤다.“강 부장 매너 좋네.”강하리는 더 말하지 않았다.구승훈은 참았던 것을 분출하듯 그녀의 어깨에 키스하면서 가슴까지 내려왔다.몇억 되는 드레스는 한 번밖에 입지 못했는데 구승훈이 잡아당겨 찢어지는 바람에 다시는 못 입게 되었다.“대표님, 오늘 안 하면 안 돼요?”구승훈은 그녀의 턱을 잡고 물었다.“왜? 안현우 때문에 그래? 남겨 두었다가 걔랑 하려고?”강하리는 그제야 자신이 안현우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눈 것 때문에 구승훈이 얼마나 기분이 나빴는지 알아차렸다.어이없게도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미친 듯한 소유욕을 드러내고 있었다.남자들은 다 이런 걸까. 자신이 놀다 버린 장난감을 절대 다른 사람이 다치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제가 피곤해서 그래요. 살살 하면 안 돼요?”구승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강 부장, 나한테 빌어봐.”차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강하리는 자신을 향한 이 남자의 뜨거운 욕구를 견뎌내면서 조심스럽게 배를 가렸다.끝나고 구승훈은 그녀를 안고 집으로 올라갔다. 강하리는 구승훈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구승훈은 그녀를 안고 바로 욕실로 향했다. 그는 그녀를 씻긴 후 다시 안아서 침대 위에 내려놓고 이불을 덮어주었다.강하리는 배가 불편한 것을 느꼈다. 그런데 구승훈은 아직 만족하지 못한 듯했다. 그는 머리를 숙여 그녀에게 키스를 퍼부었다.강하리는 그를 밀어냈다. “대표님, 저 오늘 진짜 피곤해요.”그러나 구승훈은 무릎을 그녀의 두 다리 사이에 놓고 거절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막 욕구가 솟구칠 때 그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그는 관계가 진행될 때 방해받는 걸 제일 싫어했다.그는 짜증이 난 채 핸드폰을 들어 확인했는데, 예상밖으로 화를 내지도 않고 전화를 끊지도 않았다. 그저 갑자기 하던 일에 흥미를 잃었을 뿐이었다.구승훈은 일어나서 가운을 걸치고 핸드폰을 들고 나갔다.강하리는 침대
“자간전증이야.”손연지는 초음파 소견서를 들고 강하리에게 보여주었다.“이 개자식, 안 하면 죽는대?”강하리는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 마음을 진정시켰다.손연지는 답답해서 말했다.“아니면 그냥 그 남자한테 말해.”강하리는 잠시 침묵하다가 눈을 떴다. 그녀는 구승훈에게 말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그렇지 않으면 이 아이는 조만간 구승훈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설령 말한다고 해도 아이를 지키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그러나 그녀는 아이를 포기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차라리 구승훈에게 그 잔인한 일을 맡기는 게 나을 것 같았다.“어떻게 말할지 생각해 볼게.”손연지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결정한 거야?”강하리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이렇게 끄는 건 해결책이 아니야.” 손연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빨리 결심하고 끝내. 다 끝나면 그 남자 차버리고 혼자 당당하고 멋지게 살면 돼!”강하리는 슬픔을 삼키고 말했다.“아직 엄마 병원비도 벌어야 하는데 어떻게 멋지게 살아?”손연지가 물었다.“요즘 어머님 상태는 어때? 좀 나아졌어?”강하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여전히 똑같아.”손연지가 무슨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 외쳤다.“강하리!”강하리가 뒤를 돌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 강찬수가 서 있었는데, 얼굴이 너무 부어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의 양손은 두꺼운 거즈로 감싸고 있었다.“이년아, 네가 사람 시켜서 날 때렸지?”강찬수는 포효하며 강하리에게 달려들었다.강하리는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나라면 당신을 죽이라고 했을 거야!”“이 년이...”“강찬수, 당신 뭐 하는 짓이에요!”손연지는 그 모습을 보고 강하리 앞에 황급히 막아섰다.“움직이면 당장 경비원을 부를 거예요!”강찬수는 차갑게 웃으며 강하리에게 말했다.“너 딱 기다려!”강찬수는 화를 내며 자리를 떴다.손연지는 눈살을 찌푸리고 강하리에게 물었다.“무슨 일이야?”강하리가 강찬수가 찾아왔었던
가서 팔찌를 가지고 백아영의 생일을 보낸 후 출국할 생각이었고 그 외 일은 지금 당장 처리할 기분이 아니었다.구승훈이 무슨 말을 하려는데 손연지의 집 밑에 우산을 쓴 남자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주해찬이었다.비 오는 밤, 가로등에 반사된 남자의 모습은 약간 서늘한 기운을 풍겼다.구승훈이 피식 웃었다.“무척 적극적이네.”강하리는 입술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렬한 불빛이 주해찬에게 비추자 뒤를 돌아본 그가 구승훈의 차에서 내려 걸어오는 강하리를 발견했다.구승훈은 보지 못한 듯 강하리를 향해 걸어가는 그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검은 우산이 머리 위로 드리워지며 주해찬의 낮은 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걱정돼서 보러 왔어.”강하리는 입술을 달싹이며 웃었다.“난 괜찮아요. 걱정시켜서 미안해요.”그때 주해찬이 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하리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구 대표님.”구승훈은 고개를 숙이고 담배에 불을 붙인 뒤 가벼운 웃음을 내뱉으며 주해찬을 향해 시선을 들어 올렸다.“주해찬 씨가 뭐라고 저한테 감사 인사를 하는 거죠?”주해찬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하리의 선배로서요.”그는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려 강하리를 바라보았다.“시간도 늦었는데 일찍 집에 가서 쉬어.”강하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해찬이 우산을 들고 건물 쪽으로 따라나섰다.구승훈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굴에 서리가 낀 것 같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헤드라이트가 두 사람의 실루엣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비를 맞으며 우산 아래서 두 사람의 어깨는 단단히 맞닿은 것 같았다.건물 입구에 다다랐을 때야 강하리가 나지막이 말했다.“선배, 나 혼자 올라가면 돼요.”주해찬의 시선이 강하리의 입술에 닿았다.입술이 어딘가 부딪힌 것처럼 살이 갈라져 있었다.갈 때는 괜찮았는데 돌아올 땐 입술이 찢어진 채로 왔다.구승훈에 대한 강하리의 쌀쌀맞은 태도는 다 지켜보고 있었다.“구승훈이 강요했어?”주해찬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강하리는 몸이 굳어지더
한편 여초연은 거실 소파에 앉아있고 도우미가 옆에서 옷을 걸쳐주었다.“사모님, 시간이 늦었는데 일찍 쉬세요.”여초연은 밖의 하늘을 바라보다가 옷을 두른 채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승훈이는 요즘 어떻게 지내요?”도우미는 얼굴을 찡그렸다.“잘 지내지 못해요. 강하리라는 여자가 우리 집안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세요. 어르신까지 들여보냈는데 큰 도련님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여자한테 홀딱 넘어간 게 틀림없어요.”여초연은 밖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앞으로 그런 말 하지 마요. 승훈이가 좋아하는 사람이고 내 며느리니까.”도우미가 입술을 달싹였다.“그래도 구씨 집안이 그 여자 때문에 이 모양이 됐잖아요!”SH그룹이 합병되면서 구씨 집안은 뿌리 없는 나무처럼 흔들리고 있었다.도우미들의 일자리도 위협받는 상황에서 정작 여초연은 조금의 초조함도 보이지 않았다.“게다가 큰 도련님도 그 여자 때문에 사모님께 화를 냈잖아요.”여초연은 부드럽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우산을 들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따라오지 마요.”그녀가 속삭이자 도우미는 즉시 발걸음을 멈췄다.비 내리는 어느 날 밤, 검은색 승용차가 구씨 집안 저택에서 시내 반대편 목란정원을 향해 유유히 달렸다.목란정원은 여초연이 소유한 정원인데 그녀는 때때로 며칠씩 이곳에 오곤 했다.구승재는 그녀를 따라 목란정원 입구까지 갔다가 차를 멈췄다.그는 목란정원의 출입구를 바라보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그동안 형의 지시로 구씨 저택에 머물면서 집안사람들을 돌보고 있었지만 사실은 여초연을 감시하는 것이었다.여초연의 차가 목란정원에 들어가는 것을 본 구승재는 휴대폰을 꺼내 구승훈에게 전화를 걸었다.고요한 밤, 구승훈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강하리의 몸이 굳어졌고 구승훈의 입술은 그녀의 귀에 닿은 상태였다.“전화 좀 받고 올게.”구승훈이 떠난 후 강하리 휴대폰도 울렸다.주해찬의 전화였다.“하리야, 비행기표 샀으니까 내일 데리러 갈게.”“그래요.
구승훈은 상처받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웃었다.“하리야, 넌 늘 그렇듯 매정하네.”강하리가 뒤돌아 휴대폰으로 택시를 부르려는데 구승훈이 그녀의 휴대폰을 움켜잡았다.“딱 하룻밤만. 너 안 건드릴게, 응?”강하리의 몸이 굳어졌고 구승훈은 그녀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하리야, 내 소원 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해. 네가 이 집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는 모습을 몇 번이나 상상했는지 몰라. 여기가 우리 집이야.”강하리의 코끝이 시큰거렸지만 그래도 결국 구승훈의 손을 뿌리쳤다.너무도 분명한 그녀의 거절에 구승훈은 답답한 가슴에 고통이 밀려왔고 쓴웃음을 짓던 그는 더 그녀에게 강요하지 않았다.“샤워하고 나오면 다시 데려다줄게.”말을 마친 그는 돌아서서 화장실로 들어갔다.구승훈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데 강하리는 통화 중이었다.발걸음이 멈칫한 그는 통화 상대가 주해찬이란 것을 알아차렸다.“선배, 전 괜찮아요.”“알았어, 항공편 예약해. 나도 같이 갈게.”강하리가 전화를 끊는데 구승훈이 갑자기 다가와 그녀를 껴안고 고개를 숙여 입 맞추었다.“구승훈!” 강하리는 그의 키스에 깜짝 놀라 그를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구승훈은 점점 더 꽉 그녀를 붙잡았다.그는 강하리의 턱을 잡고 깊숙이 파고들며 조금의 부드러움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게, 마치 화풀이나 비난하듯 키스를 퍼부었다.강하리는 벽에 단단히 밀려서 몸부림을 치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그녀가 다리를 들어 그의 아랫도리를 가격하려는데 구승훈이 먼저 그녀의 다리를 붙들었다.강하리가 입술을 꽉 깨물었지만 구승훈의 키스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힘의 격차로 인해 그녀는 반격할 방법이 없었다.강하리는 화가 나서 얼굴마저 하얗게 질렸고 구승훈은 실컷 헤집어놓은 뒤에야 그녀를 놓아주었다.강하리가 그의 뺨을 때렸고 이내 구승훈의 얼굴엔 손자국이 생겨났다.그러나 그의 손가락은 키스로 인해 부어오른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하리야, 나 생각이 바뀌었어.”강하리가 멈칫했다.“무
그리고는 강하리를 곧장 차에 밀어 넣었다.차는 빗속을 뚫고 달려 나갔다.구승훈의 차는 굉장히 빨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시내를 벗어나 한 별장 앞에 멈춰 섰다.구승훈은 주차가 끝나자마자 차에서 내려 강하리를 빌라 안으로 끌어당겼다.빌라는 강하리가 선호하는 스타일로 안팎을 의도적으로 꾸몄다.안으로 들어선 강하리는 몸이 굳어버렸다.“여긴 내가 준비한 신혼집이야.”구승훈이 문득 등 뒤에서 이렇게 말했다.“결혼하면 여기서 지내려고 했어. 하리야, 정말 이대로 날 버릴 거야?”강하리는 꾸며진 방을 둘러보며 마음이 씁쓸했지만 애써 두 눈에 담기는 감정을 감추었다.“구승훈, 내가 그렇게 고통받는 걸 어떻게 지켜보기만 했어?”말문이 막힌 구승훈은 갑자기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미안해.” 남자의 목소리는 죄책감으로 가득했다.“다 내 잘못이야.”강하리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며 낮은 웃음을 지었다.너무 지쳤다.한때 열정적이었던 사랑이 이제는 고문처럼 느껴졌다.그날 구승훈이 아직도 자기를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강하리는 답을 알 수 없었다.어쩌면 오랫동안 사랑했던 남자일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미워하는 마음이 더 컸다.강하리는 구승훈이 진심으로 미웠다.그의 무자비함과 강압적인 성격이 싫었다.둘 사이에서 그는 항상 그녀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행동했고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입장이었다.그래, 어쩌면 그는 그녀를 위해, 아이를 위해 그랬을 수도 있다.하지만 자신이 해준 것들이 그녀가 진정 원하는 것인지 물어본 적은 없었다.강하리가 발버둥쳤지만 구승훈은 더 꽉 끌어안았다.“구승훈, 그만하자.”구승훈의 목소리가 잠겼다.“그만하자니, 무슨 말이야? 하리야, 우리 사이가 이대로 끝날 것 같아? 문씨 집안도, 구씨 집안도 망했고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다 사라졌는데 이제 와서 그만하자고?”“우리 아이가 죽었잖아!”뒤돌아선 강하리의 눈엔 온통 고통만이 가득한 채로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구
“어떻게 알았어?”구승훈은 웃으며 눈을 내리깔고 테이블 아래 두 사람이 잡고 있는 손을 바라보았다.“이상해?”강하리는 입술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구승훈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하리야, 내가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잖아. 당연히 네 일에 대해선 다 알고 있지.”강하리는 잠시 침묵하다가 손을 빼냈다.“그럴 필요 없어.”유난히 침착한 그 말이 구승훈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필요한지 아닌지는 네가 결정하는 게 아니야. 강하리, 내가 뭘 하든 그건 내 일이야.”강하리가 비웃었다.“하지만 난 이제 당신이랑 더 엮이고 싶지 않아.”구승훈의 목울대가 꿈틀거리며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몇 마디 말로 두 사람 사이는 또다시 교착 상태에 빠졌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온 강하리는 그제야 휴대폰을 꺼내 안예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녀는 최소한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는 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구승훈이 옆에 앉아있자 마치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았던 치유할 수 없는 상처, 두 사람의 목숨이 다시금 떠오르는 듯했다.그녀의 어머니와 아이...강하리가 가정에서 나오는데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멍하니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데 문득 연정이가 사고를 당한 날 밤도 비 오는 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그날 밤이 어땠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연정이가 이렇게 비 오는 밤에 춥고 무서워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강하리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비를 바라보다가 눈가에 차오르는 시큰함을 꾹 참고 빗속으로 걸어가는 순간 머리 위로 드리워진 우산이 그녀를 덮었다.고개를 들자 미소를 머금은 주해찬의 눈동자와 마주쳤다.“그렇게 비속우로 달려가면 감기 걸리잖아.”강하리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우산 챙기는 걸 깜빡해서.”“왜 전화 안 했어?”주해찬의 우산은 완전히 그녀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내가 마침 저녁을 먹으러 오지 않았으면 이대로 비를 맞으며 돌아가려고 했어?”주해찬의 눈에는 나무람과 관심이 가득했고 강하리는 웃으며 시선을 다른 곳
B시 대양그룹.정양철이 사무실로 들어가니 이미 비서가 대기하고 있었다.“강하리 검색어는 어떻게 된 거야?”비서는 잠시 머뭇거렸다.“사모님께서 대양그룹 명의로 매수한 것인데 아마도 회장님을 시험하려는 의도 같습니다.”정 회장이 강하리를 아낀다면 이 일을 거론할 것이고 신경 쓰지 않는다면 하든 말든 넘어가겠지.정양철의 얼굴에 알 수 없는 표정이 스쳤고 그가 말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주현이 통해 강하리에게 연락해서 대양그룹이 JM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라고 해.”말을 마친 그가 멈칫했다.“집사람이 물어보면 강하리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고.”비서의 눈이 번뜩이더니 대답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강하리는 정주현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지난번 구승훈과 함께 대양그룹 입찰을 뺏은 이후 정양철 측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하지만 이번에는 정양철이 무슨 꿍꿍이로 합작을 원하는 건지 모르겠다.지금은 정양철을 상대로 놀아줄 기분이 아니었다.“정주현 씨, 대양그룹에서 마음만 먹으면 파트너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겠죠?”정주현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듣고는 다소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강하리 씨, 우리랑 같이 일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강하리가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려던 찰나, 정주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B시에 언제 와요? 얼굴 보고 얘기할까요? 협업 안 해도 오랜만에 얼굴 한번 봐요. 우리 안 본 지 오래됐잖아요.”강하리는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알았어요, 그럼 가면 연락할게요.”정주현이 전화를 끊자 사무실 앞에 서 있는 연미숙의 모습이 보였다.“엄마, 여기서 뭐 해?”연미숙이 웃었다.“우리가 강하리랑 같이 일해?”정주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아빠가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구씨 집안에 매달리는 게 아니라 밖으로 사업을 넓히려는 것 같아.”연미숙은 인상을 찌푸렸다. “꼭 강하리여야만 대외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거야?”정주현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강하리가 왜?”연미숙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
구승훈은 차갑게 웃으며 자신도 모르게 핸들을 꽉 움켜쥐었다.그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두 사람이 차 안에서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모르겠지만 강하리의 얼굴에 번진 미소가 전혀 억지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화사한 아침 햇살 같은 그 미소가 구승훈은 왠지 모르게 눈에 거슬렸다.강하리는 차에서 내려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된 구승훈의 차가 보였다.그녀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지만 시선을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강하리가 안으로 들어간 후 주해찬은 차에서 내려 구승훈의 차 쪽으로 걸어갔다.그가 창문을 살며시 두드리자 구승훈이 창문을 내렸다.“구 대표님 시간 있으세요? 얘기 좀 할까요?”구승훈은 가볍게 웃었다.“주해찬 씨는 남의 연애에 참견하는 걸 좋아하나 봐요?”구승훈의 가시 돋친 말에도 주해찬은 계속 웃기만 했다.“구승훈 씨, 당신과 하리가 잘 지낸다면 나도 굳이 끼어들고 싶진 않은데 당신은 하리를 행복하게 해준 적이 있긴 한가요?”그의 말에 구승훈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그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들이마신 후 말을 시작했다.“주해찬 씨, 행복하든 아니든 그건 다 나와 강하리 사이의 일이지 당신이랑은 아무 상관이 없잖아요.”주해찬은 조롱 섞인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웃었다. “구승훈 씨, 내가 하리 데려간다고 했죠. 이번엔 말한 대로 합니다.”말을 마친 그는 돌아서서 다시 차로 향했다.구승훈의 얼굴에서 미소가 조금씩 완전히 사라진 채 떠나는 차를 바라보았다.그는 한참 동안 손에 쥔 휴대폰을 내려다보면서 결국 강하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했다.[그 자식이랑 떠날 거야?]강하리가 위층으로 올라가는데 전화벨이 울렸고 그녀는 한참 동안 들여다보다가 그냥 대화창을 닫아버렸다.구승훈은 전송된 메시지에 답장이 오지 않자 가벼운 웃음을 터뜨리며 입안의 쓴맛을 삼키고 휴대폰을 치우려던 찰나, 구승재의 전화가 걸려 왔다.“형, 큰어머니가 그
“죽기 전엔 안 해.”심준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극단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구승훈의 손가락이 한참을 굳어 있다가 말을 꺼냈다.“안 해.”하고 싶었지만 그게 그녀를 더 멀리 밀어낼까 봐 더 두려웠다.심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사이 문제의 핵심은 아이였기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곧바로 아이 문제로 말을 돌렸다.“아이는 어떻게 된 거야? 문연진이 어떻게 아이의 존재를 안 거야?”구승훈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구승재가 통화하는 걸 들었어.”심준호는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정말 문연진이 아니야?”구승훈은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그 여자가 아니야.”문연진은 이미 연정이를 죽였다고 인정했는데 굳이 연정이를 차로 치어 산에서 떨어뜨렸다고 말할 필요는 없었다.그녀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단 한 가지, 도중에 가정부가 연정이와 함께 차에서 내린 사실을 모른다는 것.“그럼 문연진 말고 또 아는 사람이 있어?”구승훈은 잠시 침묵했다.“여초연, 문연진 말로는 그날 밤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침 여초연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했어.”멈칫한 심준호의 눈에서 차가움이 번뜩였다.여초연이란 사람은 솔직히 줄곧 속내를 알 수 없었다.전에는 여러 번이나 구승훈을 죽이려고 했다가 지금은 무척 다정하게 굴었다.그 여자는 지금까지도 끔찍한 존재로 느껴졌다.“설마 그 사람이?”심준호는 문득 구승훈이 안타까웠다.정말 여초연이라면 구승훈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구승훈은 잠시 침묵했다.“아직 확인하고 있어.”심준호는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만 해.”구승훈은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심준호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고 이 문제가 해결되었기에 그도 떠났다.심준호를 배웅하고 차로 돌아온 구승훈의 휴대폰이 울렸다.“형, 어제 강하리 씨 인기 검색어가 대양그룹과 관련이 있어.”구승훈의 눈에 냉기가 감돌았다.“최근 정양철 측에서 어떤 움직임이 있었어?”“아니, 이 검색어 말고는 그동안 잠잠했
강하리의 입꼬리가 굳어지며 다시 말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고맙다고 전해주세요.” 심준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무슨 말을 하려던 찰나, 한 대의 자동차가 도로변에 멈춰 서는 것을 목격했다.주해찬이 차에서 내려 이쪽으로 걸어왔다.심준호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이렇게 말했다.“직접 만나서 고맙다고 말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말을 마친 그는 강하리에게 눈썹을 치켜세웠고 강하리는 길 건너편에 주차된 너무나도 낯익은 차를 보았다.검은색 마이바흐 창문은 반쯤 내려져 있고 차에 탄 남자는 담배를 손에 쥐고 있었다. 멀리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구승훈이 이쪽을 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그쪽을 힐끗 쳐다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그러면 나중에 메시지 보낼게요.”심준호는 웃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해찬을 바라보기만 했다.“그러면 그동안 잘 돌봐주세요.”주해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말을 마친 그가 강하리를 이끌고 나가려는 순간 갑자기 강하리의 손목이 잡혔다.어느 틈엔가 구승훈이 길을 건너 이쪽으로 걸어왔고 주해찬이 얼굴을 찡그리며 막으려는데 심준호가 옆에서 말렸다.강하리의 손가락이 살짝 조여졌다.“구승훈 씨, 이거 놔요.”구승훈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웃었다.“하리야, 이제 고맙다는 말도 안 할 거야?”강하리의 몸이 굳어지고 입꼬리가 몇 번 움직이다가 말을 꺼냈다.“고마워요.”말을 마친 그녀는 구승훈을 바라보았다.“이제 놔줄래요?”구승훈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나한테 꼭 이래야겠어?”강하리가 시선을 피했다.“구승훈 씨,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잖아요.”그가 원망스러웠다.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그를 보면 연정이가 생각난다는 사실이었다.숨도 쉴 수 없을 것만 같은 고통은 더 이상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구승훈은 차갑게 웃었다.“나도 놔주지 않겠다고 했잖아. 하리야, 얘기 좀 하자.”강하리의 눈이 빨개지며 입을 열자 목소리까지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