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승훈은 강하리의 옆에 와서 앉고 큰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지만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고 있어? 나도 들어보자.”강하리가 웃으며 말했다.“안 대표님께서 대표님의 첫사랑이 곧 돌아오신다고 하셨어요.”구승훈은 그 말을 듣고 코웃음을 치더니 별다른 대답하지 않고 계속 물었다.“그래서 강 부장이 그렇게 즐겁게 웃고 있었던 거야?”강하리는 가슴이 답답했다. 웃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를 붙잡고 울며불며 왜 첫사랑은 사랑하면서 자신은 사랑하지 않냐고 묻기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그녀는 눈치 있는 사람이었다.“전 그저 구 대표님께는 좋은 일인 것 같아서 기뻤을 뿐입니다.”구승훈의 안색은 어둡게 가라앉았다.“그렇다면 강 부장의 관심에 고마워해야겠네.”강하리는 입을 꾹 다물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안현우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구 대표님, 첫사랑분이 돌아오시면 저한테 알려주세요. 제가 강 부장을 데려갈게요. 이건 구 대표님의 사람을 빼앗는 거 아니죠?”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구승훈은 그 말을 듣고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왜요? 두 사람 벌써 협상했어요?”“아니요!”강하리는 바로 부정했다.안현우는 구승훈의 기분을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강하리는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저 조금 전에 이미 안 대표님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그러나 안현우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강 부장, 그렇게 빨리 거절하지는 마요. 겪어보지 않으면 뭐가 진짜 자신한테 어울리는 것인지 몰라요.”안현우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강하리의 안색은 더할 나위 없이 어두웠다. 그녀는 안현우가 일부러 자신한테 보복하는 것이라 생각했다.“대표님, 저는 진짜 안 대표님한테 마음이 없어요.”구승훈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샴페인 잔을 흔들고 있었다.“강 부장은 돈만 있으면 되잖아. 왜 안 대표는 안 되는 거지?”강하리의 입술을 하얗게 질렸다
강하리는 마음이 씁쓸했다.“전 그저 예의상 웃었을 뿐이에요.”구승훈이 코웃음을 쳤다.“강 부장 매너 좋네.”강하리는 더 말하지 않았다.구승훈은 참았던 것을 분출하듯 그녀의 어깨에 키스하면서 가슴까지 내려왔다.몇억 되는 드레스는 한 번밖에 입지 못했는데 구승훈이 잡아당겨 찢어지는 바람에 다시는 못 입게 되었다.“대표님, 오늘 안 하면 안 돼요?”구승훈은 그녀의 턱을 잡고 물었다.“왜? 안현우 때문에 그래? 남겨 두었다가 걔랑 하려고?”강하리는 그제야 자신이 안현우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눈 것 때문에 구승훈이 얼마나 기분이 나빴는지 알아차렸다.어이없게도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미친 듯한 소유욕을 드러내고 있었다.남자들은 다 이런 걸까. 자신이 놀다 버린 장난감을 절대 다른 사람이 다치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제가 피곤해서 그래요. 살살 하면 안 돼요?”구승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강 부장, 나한테 빌어봐.”차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강하리는 자신을 향한 이 남자의 뜨거운 욕구를 견뎌내면서 조심스럽게 배를 가렸다.끝나고 구승훈은 그녀를 안고 집으로 올라갔다. 강하리는 구승훈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구승훈은 그녀를 안고 바로 욕실로 향했다. 그는 그녀를 씻긴 후 다시 안아서 침대 위에 내려놓고 이불을 덮어주었다.강하리는 배가 불편한 것을 느꼈다. 그런데 구승훈은 아직 만족하지 못한 듯했다. 그는 머리를 숙여 그녀에게 키스를 퍼부었다.강하리는 그를 밀어냈다. “대표님, 저 오늘 진짜 피곤해요.”그러나 구승훈은 무릎을 그녀의 두 다리 사이에 놓고 거절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막 욕구가 솟구칠 때 그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그는 관계가 진행될 때 방해받는 걸 제일 싫어했다.그는 짜증이 난 채 핸드폰을 들어 확인했는데, 예상밖으로 화를 내지도 않고 전화를 끊지도 않았다. 그저 갑자기 하던 일에 흥미를 잃었을 뿐이었다.구승훈은 일어나서 가운을 걸치고 핸드폰을 들고 나갔다.강하리는 침대
“자간전증이야.”손연지는 초음파 소견서를 들고 강하리에게 보여주었다.“이 개자식, 안 하면 죽는대?”강하리는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 마음을 진정시켰다.손연지는 답답해서 말했다.“아니면 그냥 그 남자한테 말해.”강하리는 잠시 침묵하다가 눈을 떴다. 그녀는 구승훈에게 말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그렇지 않으면 이 아이는 조만간 구승훈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설령 말한다고 해도 아이를 지키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그러나 그녀는 아이를 포기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차라리 구승훈에게 그 잔인한 일을 맡기는 게 나을 것 같았다.“어떻게 말할지 생각해 볼게.”손연지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결정한 거야?”강하리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이렇게 끄는 건 해결책이 아니야.” 손연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빨리 결심하고 끝내. 다 끝나면 그 남자 차버리고 혼자 당당하고 멋지게 살면 돼!”강하리는 슬픔을 삼키고 말했다.“아직 엄마 병원비도 벌어야 하는데 어떻게 멋지게 살아?”손연지가 물었다.“요즘 어머님 상태는 어때? 좀 나아졌어?”강하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여전히 똑같아.”손연지가 무슨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 외쳤다.“강하리!”강하리가 뒤를 돌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 강찬수가 서 있었는데, 얼굴이 너무 부어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의 양손은 두꺼운 거즈로 감싸고 있었다.“이년아, 네가 사람 시켜서 날 때렸지?”강찬수는 포효하며 강하리에게 달려들었다.강하리는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나라면 당신을 죽이라고 했을 거야!”“이 년이...”“강찬수, 당신 뭐 하는 짓이에요!”손연지는 그 모습을 보고 강하리 앞에 황급히 막아섰다.“움직이면 당장 경비원을 부를 거예요!”강찬수는 차갑게 웃으며 강하리에게 말했다.“너 딱 기다려!”강찬수는 화를 내며 자리를 떴다.손연지는 눈살을 찌푸리고 강하리에게 물었다.“무슨 일이야?”강하리가 강찬수가 찾아왔었던
그 의사는 말하다가 갑자기 멈칫했다.“그런데 송유라와 함께 온 남자는 꽤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 아우라가 너무 강했어요.”“맞아요. 남자 연예인보다 훨씬 더 잘생겼던데, 설마 송유라의 남자친구는 아니겠죠?”“맞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한밤중에 병원에 같이 왔겠어요?”두 의사가 이미 다른 화제로 넘어간 것을 본 손연지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하리를 바라보았다.강하리는 아무렇지 않을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난 이만 돌아가야겠어.”손연지는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마음이 불편할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다른 사람들은 강하리와 송유라의 관계를 모르지만 손연지는 알고 있었다.송유라는 강하리의 이복동생이다. 강하리는 언니지만 사실 송유라보다 고작 30분 일찍 태어났다.같은 날 태어난 두 사람의 운명은 완전히 달랐다.강하리의 어머니 정서원은 송동혁이 길가에서 발견하고 데려온 여자이다.송동혁이 그녀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엉망인 모습으로 자신의 이름이 정서원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 못 했다.정서원은 젊었을 때 매우 아름다웠고 아무 기억도 없었지만 몸에 두른 액세서리들은 전부 비싼 것들이었다.송동혁은 예쁜 여자를 보고 좋았는지 아니면 정서원의 몸에 있는 액세서리들 때문인지 그녀를 데리고 있기로 결정했다. 심지어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거짓말을 했다.나중에 정서원이 임신을 했는데도 송동혁은 결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정서원이 참지 못하고 묻자 그제야 그는 본모습을 드러냈다.그때서야 모든 사람들은 송동혁이 정서원과만 만난 게 아니라, 제약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의 딸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우연히도 그 제약 회사 사장의 딸도 임신했고 송동혁은 그녀와의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었다.그는 정서원과 만난 것이 폭로될까 봐 두려워서 그녀에게 아기를 낙태하도록 강요했다.정서원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몰래 병원에서 도망쳤다.아이를 낳은 후 그녀는 거의 10년 동안 떠돌다가 연성시로 다시 돌아왔다. 강하리는 어머니를
강하리는 그들과 엮이기조차 싫었고, 송하양이라는 이름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그들이 괴롭히지만 않는다면 강하리는 평생 그들 앞에 나타나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3년 전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해 수술비가 절실히 필요했던 그녀는 송동혁 앞에서 구걸을 해야 했다.그때 그녀는 송동혁의 차가움을 완전히 알게 되었고, 그 후 그녀는 그의 가족과 다시는 마주치지 않았다.단지 가끔 TV나 트위터에서 송유라의 이름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송유라는 4년 전 해외에서 데뷔했다.4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녀는 예뻤고 국민 첫사랑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으며 국내에서도 어느 정도 유명세를 탔다.강하리는 집으로 돌아와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꿈속에서 그녀는 다시 한번 그 해변으로 돌아왔다. 겨울의 해변은 찬바람이 강했다. 해변가 별장의 창문이 윙윙 거리며 날아갔다.송유라는 팔찌를 잃어버려서 그녀에게 소리를 지르며 가서 팔찌를 되찾아오라고 명령했다.강하리는 그 팔찌를 본 적이 있다. 다이아몬드가 아름답게 박혀 있는 팔찌에는 ‘하양’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송동혁이 송유라에게 준 생일 선물이었다.송유라는 이 팔찌를 끼고 사진을 많이 찍었다.잃어버려서 정말 안타까웠지만, 강하리는 그녀가 그것을 찾도록 도와주지 않았다.어두운 밤, 그런 강풍이 부는 날에 외출하는 것은 죽으려는 것과 같았다.송유라의 포효가 별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송동혁은 그녀를 서재로 불러와서 물었다.“네 엄마가 얼마 전에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며?”당시 강하리는 사회생활을 하지 않아서 잘 몰랐지만, 그의 말에 담긴 위협을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녀는 그에게 물었다. “오늘 여기 오라고 하신 이유가 정확히 뭐죠? 내 생일 때문인가요, 아니면 죽이려고 부른 건가요?”송동혁은 즉시 얼굴이 어두워졌다.강하리는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않고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해변으로 향했다.강찬수가 하루 종일 술을 마셔대니 집안 살림은 모두 어머니에게 의존했다. 게다가 어머니는 때때로 장진영
그렇다면 구승훈은 어제 첫사랑의 전화를 받고 나간 것일까?강하리는 마음이 찌릿찌릿 아파왔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배를 만졌다. 그녀는 구승훈의 첫사랑이 정말 돌아왔다면, 자신이 떠나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녀가 떠나가서 배 속의 아이를 낳아도 되는 것인가?강하리는 자신의 배를 쳐다보았다.안예서는 또 뭐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전혀 집중하지 않았다. 마음이 너무 복잡했다.“보스?”강하리는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었다.“이제 일하자. 이런 건 그만 얘기하고, 대표님께서 들으시면 혼내실 수 있으니까 조심해.”안예서는 무안해서 혀를 내밀며 부끄러운 듯한 표정을 짓더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강하리도 일하는 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점심시간이 되자 안예서가 문을 두드렸다.“보스, 대표님께서 부르십니다.”...구승훈의 사무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안에서 새어 나오는 구승훈의 목소리를 들었다.아마도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는 듯했는데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부드러운 목소리였다.강하리는 심지어 그에게 이렇게 부드러운 모습이 있는 줄도 몰랐다.그때 전담 비서가 다가왔다.“강 부장님, 대표님께서 강 부장님께 바로 들어오시라고 하셨습니다.”강하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피곤하면 좀 쉬어. 여기저기 다니지 말고. 그래, 난 일이 있어서 이만 먼저 끊을게.”구승훈은 전화를 끊은 후 넥타이를 살짝 풀고 강하리 쪽을 힐끗 쳐다봤다.그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검은 눈동자로 강하리를 바라보았다.“어젯밤에 전화했던데, 무슨 일 있었어?”그를 본 순간, 강하리를 생각이 바뀌었다. 그녀는 구승훈에게 사실을 숨기기로 결심했다.그가 첫사랑과 잘 이어지면, 강하리는 떠나면 된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몸이 좀 불편했어요.”구승훈은 코웃음을 쳤다.“난 또 내가 가서 아쉬워하는 줄 알았네.”강하리는 한참 아무 말도 없다가 입을 열었다.“그
강하리는 그의 말에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구승훈은 절대 그녀에게 벗어날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한 번도 그녀의 감정을 신경 쓴 적이 없었다.이 몇 년 동안 그녀는 저항할 수 없다면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그가 지시한 임무도 그렇고, 그가 준 아픔도 마찬가지였다.“알겠어요.”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점심 식사를 했다,구승훈은 천천히 우아하게 밥을 먹었는데, 그는 원래부터 식사 시간에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극도로 수양을 따지는 사람이었다.한편 강하리는 넋이 나가 있었다. 그녀는 최대한 오전에 들은 소문을 신경 쓰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그래도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그들이 식사를 마치자 구승훈의 핸드폰이 울렸다.강하리가 힐끔 쳐다보자 스크린에 ‘S’가 떠 있었다.구승훈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또 무슨 일이야? 먹었어... 응, 너도 잘 챙겨 먹어... 알았어, 끊어.”강하리는 이미 누가 전화를 한 건지 짐작이 갔다.그 첫사랑 말고는 아무도 구승훈을 이렇게 부드럽게 변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어젯밤 그렇게 급하게 나가시더니, 첫사랑이 돌아온 거였어요?”강하리는 무심한 듯 한 마디 물었다.구승훈은 옆에서 향초를 켜려고 하다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그건 내 개인적인 일이야. 강 부장이 신경 쓸 게 아니야.”강하리는 몇 초간 침묵했다.“전 그저 제가 잘릴까 봐 걱정돼서요.”구승훈은 향초에 불을 붙이려다가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강 부장, 혹시 다른 데로 가려고 그래?”강하리는 입꼬리를 올렸다.“굶어 죽을 수는 없잖아요.”구승훈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는 가라앉은 눈빛으로 강하리를 바라보았다.“걱정 마. 강 부장 돈 못 벌게 하지는 않을 거야. 난 아직 여자를 바꿀 생각이 없거든.”강하리는 그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가슴이 찌릿찌릿 아파오다가 점점 무감각해졌다.그녀는 웃으며 말했다.“그럼 감사합니다, 대표님.”구승훈은 다시 고개를
송유라는 갑자기 당황했다.“내가 언제 쫓아냈어요? 난 그저 자리를 비켜달라고 한 거라고요.”그녀는 억울한 듯 구승훈을 바라보았다.“승훈 오빠, 설마 부장 따위로 나한테 화내는 건 아니죠?”송유라는 말을 마치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졌다.이 몇 년 동안 그녀는 해외에서 늘 구승훈이 먼저 자신에게 연락하기를 기다렸었다. 그런데 4년 동안 구승훈이 그녀에게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이 4년 동안 그녀는 몇 번이나 그를 만나러 돌아오려고 했다.하지만 송유라에게도 자존심이 있었다. 당시 그녀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으니...구승훈은 그녀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그는 그녀에게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하양이란 애칭을 부르기도 하고 필요할 때 제일 먼저 그녀 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심지어 그녀를 위해 기꺼이 친한 친구들과 싸우기도 한다.하지만 그런 특별함에도 선이 있었다.그는 절대 그녀를 만지지 않았고 결혼 얘기를 꺼낸 적도 없었으며, 심지어 부모를 만나려 하지도 않았다.원래 송유라는 이 남자를 압박해서 위기감을 주고 당장 그녀와 결혼하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그녀가 어떻게 구승훈의 옆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지는 오직 그녀 본인만 알고 있다.이 결혼을 빨리 성사시키지 않으면 마음이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그런데 구승훈이 헤어지자는 말에 바로 동의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홧김에 외국으로 나갔다. 가기 전에 그녀는 구승훈이 직접 와서 빌지 않는 이상, 절대 돌아오지 않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었다.원래 송유라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타협할 줄로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4년이 흘러갈 줄은 예상치 못했다.최근에서야 그녀는 구승훈과 강하리의 소문을 듣게 되고 더는 견딜 수가 없어 돌아온 것이었다.그녀는 강하리를 싫어했다. 강하리의 존재를 알았을 때부터 더할 나위 없이 그녀를 싫어했다.강하리는 송유라보다 예쁘고 품위가 있었으며 성적도 좋았다. 집안 환경을 빼고는 모든 것이 그녀보다 뛰어났다. 그래서 송유라는 강하리를 미친 듯이 싫어했다.만약 구승
“그동안 누가 임희주를 지원했는지 조사해 봐.”준봉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그러나 사무실 문을 나서기도 전에 구승훈이 다시 한마디 했다.“임희주와 여초연 씨의 관계를 확인해 줘.”...결혼식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심문석은 병원에 며칠 입원했다가 퇴원했고 결혼식의 모든 과정과 세부 사항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 했다.강하리는 처음에는 노인의 건강이 걱정되었지만 심문석이 바빠지자 오히려 더 건강해 보였고 그녀는 그가 바쁘게 지내는 것을 그대로 두었다.이 시기 구승훈은 유난히 바빠 보였다.매일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돌아왔고 돌아올 때마다 얼굴에 피곤함을 숨기지 못했지만 강하리는 그가 돌아올 때마다 얼굴에 여유 있는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시곗바늘은 이미 자정이 가까운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강하리는 옆에 빈 침대에 잠시 눈을 두고 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주방에서 우유 한 잔을 데웠다.서재의 불빛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강하리는 서재 문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문을 두드렸다.“들어와.”문을 열고 들어간 강하리는 우유를 책상 위에 놓았다.구승훈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휴대폰 화면을 끄고 강하리를 바라보았다.“나에게 주는 거야?”구승훈이 그렇게 물었을 때 강하리는 그를 꾸짖을 줄 알았지만 의외로 그냥 ‘응’하고 대답한 후 그의 옆에 앉았다.“내가 도와줄 일이 있어?”구승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정말 도와줄 거야?”강하리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대답했다.“그냥 내 부하들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살펴보러 온 거야.”구승훈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맞아. 이제는 에비뉴와 정안 모두 강 부장이 최대 주주라서 그런 것들이 다 중요하겠지.”강하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옆에 있는 의자 하나를 가져다 앉아 책상 위의 서류를 하나씩 넘기기 시작했다.그녀는 금세 서류에 몰입했고 구승훈은 그녀 옆에 앉아 있는데도 자꾸만 그녀에게 시선이 갔다.서재의 불빛은 따뜻하지 않았지만 강하리가 앉자 공간 곳곳이
차 안은 숨 막힐 듯한 정적에 휩싸였다.구승훈은 팔꿈치를 팔걸이에 올린 채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두드렸다.준봉은 그가 곧 움직일 거라 예상했다.심지어 M국으로 떠날 준비까지 마친 상태였지만 30분이 흘러도 구승훈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준봉이 막 입을 떼려던 순간 구승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노진우에게 사람을 데리고 곧장 그 장소로 가라고 해. 그가 출발하면 구승재에게 연락해 조용히 그쪽으로 가게 해. 노진우가 움직이는 순간 구승재는 바깥을 봉쇄하도록 해.”준봉은 잠시 말을 잃었다.“대표님, 혹시 함정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자리에서 몸을 기댄 구승훈은 표정을 읽기 어려웠다.그는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하고 있었다.여초연은 복수를 위해서라면 망설임이 없는 사람이었다.그가 아는 여초연이라면 일부러 그를 또 다른 함정으로 유인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쉽게 자신의 흔적을 드러낼 리 없었다.그때 노연정을 납치했던 일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이 몇 년 간 여초연은 분명 자신의 세력을 키워왔을 것이다.그는 여초연을 항상 감시할 사람을 배치해 두었지만 그녀가 이를 눈치채지 못했을 리는 없었다. 그런데도 여초연은 별다른 은폐 없이 M국으로 갔고 유일하게 예상하지 못한 점은 나문빈이 너무 빨리 그녀의 위치를 파악했다는 사실이었다.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가장 큰 손실은 단지 노연정을 곁에 두는 시간이 짧았고 그 사이 구승훈과 강하리는 오랜 시간 고통을 겪어야 했으며 결국 그녀가 계획한 대로 그 약물이 그의 몸에 투여되었다.여초연의 계획은 모든 것이 치밀하게 짜여 있었고 그랬다면 지금 이 순간 구승훈과 강하리가 점차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여초연이 이렇게 허술한 실수를 저지를 리가 없다.게다가...구동근이 했던 말도 마음에 걸렸다.구승훈은 구동근과는 좋은 관계를 맺고 있지 않았지만 여초연보다는 그를 조금 더 신뢰하는 편이었다.한편 M국에서 여초연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집사에게서 휴대폰을 건네
손연지는 강하리와 천아름의 손을 잡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이런 사람들한테 시간 낭비하지 말아요. 진짜 역겹다니까요.”천아름은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손연지를 따라가며 뒤를 돌아보며 날카롭게 던졌다.“여씨 가문의 두 분 내 가게에서 당장 꺼져요.”여명희는 순간 얼어붙었다.“천아름 씨, 미쳤어요? 이런 천한 년 하나 때문에 우리를 쫓아내겠다고요?”천아름은 걸음을 멈추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쫓아내는 게 아니라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거죠.”그러고는 매장 직원을 향해 손짓하며 덧붙였다.“앞으로 이 두 사람 내 모든 매장 출입 금지야. 알아들었지?”그러자 강하리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두 분은 심 씨 가문 명의로 된 모든 장소에 출입할 수 없어요.”그렇게 단호하게 선언한 후 더 이상 그녀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손연지와 함께 매장을 빠져나왔다.밖으로 나온 뒤 손연지는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통유리 창에 몸을 기댄 채 안쪽을 몰래 들여다봤다.“하하. 저렇게 분노에 차서 발악하는 꼴을 보니까 속이 다 시원하네요.”그러더니 갑자기 강하리를 와락 껴안으며 말했다.“하리야, 정말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이 울분을 풀지도 못했을 거야. 너 모를 거야 그때 직장에서 쫓겨났을 때 내가 얼마나 억울했는지. 이쁜이 정말 고마워...”그러자 천아름이 가볍게 헛기침하며 말을 끊었다.“저기...나한테는 고맙다는 말 없어요?”손연지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었다.“고마워요!”천아름은 손연지에게 장난스럽게 윙크하며 웃었다.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래요? 결혼할래요? 내가 말인데 나랑 같이 지내면 앞으로 주얼리랑 옷은 내가 다 사줄게요.”“콜!”옆에서 듣고 있던 강하리는 입을 삐죽이며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손연지의 해맑은 웃음을 보자 결국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천아름 씨, 고마워요.”강하리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천아름은 손을 휘휘 저으며 시큰둥하게 답했다.“우리 사이에 무슨 고맙다는 말을 해요? 진짜로 고맙다면 당신 남편
여명주가 반박하려는 순간 강하리 뒤에서 한 여자가 걸어 나왔다.그녀는 다른 사람이 아닌 이 작업실의 주인인 천아름이었다.천아름은 짙은 눈동자와 붉은 입술 크고 우아한 웨이브 헤어 거기에 하이힐까지 착용하고 있었다.강하리 옆에 멈춰 선 천아름이 먼저 입을 열었다.“강하리 씨, 오랜만이에요.”강하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두 사람이 마주한 건 단 한 번뿐이었다.그때 경매장에서 스쳐 지나간 적은 있었지만 에비뉴를 인수하고 나서야 강하리는 그 두 개의 약혼반지가 사실 천아름의 작품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단지 ‘에비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을 뿐이었다.천아름은 조용히 강하리의 손목을 바라보다가 반지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여전히 마음에 드세요?”강하리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정말 감사합니다.”천아름은 그녀의 손을 살짝 들어 올려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반지가 예쁜 게 아니라 사실은 당신의 손이 예쁜 거예요. 구승훈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요.”그 순간 손연지가 눈을 반짝이며 맞장구쳤다.“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구승훈 씨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거예요. 아니면 어떻게 하리를 사로잡을 수 있었겠어요?”천아름은 손연지를 향해 윙크하며 장난스레 말했다.“역시 미녀끼리는 생각도 비슷하네요.”셋은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고 여명주는 그들 사이에서 철저히 외면당한 채 서 있었다.그녀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이건 대놓고 날 무시하는 거잖아.’“천아름 씨, 이게 무슨 뜻이죠?”천아름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아직도 못 알아들었어요? 여명주 씨 B시에서는 당신네 가문이 모든 걸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정말 그렇게 대단하다면 노민우 씨를 붙잡아다 가문 재정을 끊고 강제로 결혼이라도 시키시지 그러세요? 그런데 왜...”천아름은 옆에 있던 손연지를 바라보며 물었다.“이쁜 아가씨,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소연지입니다.”“아. 맞아요. 소연지
강하리는 안에서 밖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고 구승훈은 그 모습을 보며 저절로 입꼬리를 올렸다.“떠나기 아쉽네.”그가 나지막이 말했다.노민준은 갑자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침묵했지만 구승훈이 무엇을 아쉬워하는지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정 안 되겠으면 강하리 씨에게 솔직하게 말해. 그러면 강하리 씨도 기꺼이 너와 함께 돌아갈 거야. 그리고 계속 숨기기만 하면 강하리 씨도 불편할 거잖아?”구승훈은 잠시 침묵한 뒤 고개를 숙여 담배에 불을 붙였고 한참이 지나고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응.”그는 작업실 안에서 웃고 있는 강하리를 바라보며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자신을 다잡았다.노민준은 더 할 말이 없었고 그때 서야 노민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구승훈, 손연지 씨 지금 어때?”구승훈은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궁금해?”노민우는 급히 두 번 응답했다.“그러면 직접 와서 보면 되잖아?”“손연지 씨는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어.”구승훈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러면 그때 내가 나가라고 했을 때는 왜 안 나갔어?”노민우는 한 박자 늦게 말했다.“그것도 그렇네.”구승훈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곧장 준봉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임희주를 철저히 조사해 줘.]강하리는 마침내 손연지에게 어울리는 주얼리를 골랐다.손연지는 몸에 맞춰보며 환하게 웃었지만 강하리는 그 웃음이 예전처럼 맑고 순수하지만은 않다는 걸 느꼈다.감정의 상처는 결국 스스로 치유해야 했고 강하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손연지 곁을 지켜주는 것뿐이었다.주얼리를 고른 뒤 강하리는 손연지와 함께 의류 브랜드 매장으로 향했다.“곧 결혼식인데 다른 건 안 고를 거야?”손연지가 물었다.강하리는 가볍게 기침하며 말했다.“구승훈이 몇 벌 주문해 놨고 또 에비뉴에서 우리 결혼식에 맞는 주얼리 세트를 준비해 줬어.”손연지는 이를 갈며 말했다.“그놈의 자본주의.”강하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두 사람은 웃으며 의류
구승훈은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왜 갑자기 왔어?”강하리는 구승훈을 째려보며 말했다.“안 오면 당신이 예쁜 여자랑 데이트하는 거 못 볼 거 아냐?”구승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질투나?”“아니.”그렇다고 말은 했지만 강하리의 목소리에는 질투의 냄새를 숨길 수 없었다.그녀는 실제로 구승훈과 임희주 사이에 아무 일이 있을 거로 의심하지는 않았다.그저... 다른 여자가 어떤 면에서 그녀의 남편을 더 잘 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구승훈은 강하리의 손을 잡고 길게 뻗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손목에 남은 자국을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럼 어쩌지? 오늘 밤 당신이 나를 침대에 묶어 두는 건 어때? 복수의 기회를 줄게.”강하리는 질색을 하며 손을 빼냈다.“염치를 좀 챙겨.”구승훈은 웃으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휴대폰이 옷 속에서 가볍게 진동했지만 그는 그것을 확인하지 않고 그저 눈빛이 깊어졌다.마침내 강하리는 차를 개인 작업실 앞에 세웠고 구승훈이 주문한 주얼리를 오늘 착용해 보려고 했다.마침 이틀 후 손연지의 생일이었고 강하리는 손연지가 휴식 중인 틈을 타 그녀를 불러냈다.강하리가 차에서 내리자 손연지는 작업실의 큰 창문 앞에 앉아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녀는 강하리를 보고서야 마치 살아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구승훈은 손연지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손연지 씨, 이렇게 한가해요?”손연지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구승훈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강하리를 따라 들어가자 직원이 다가왔다.“구승훈 씨, 주문하신 주얼리가 다 준비되었습니다.”구승훈은 대답하려던 찰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고 그는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나서 직원에게 말했다.“주얼리는 내 아내에게 전달하세요.”그러고는 강하리를 향해 말했다.“전화 받고 올게. 주얼리 먼저 착용해 보고 안 맞으면 다시 수정해 달라고 하면 돼.”강하리는 그의 휴대폰 화면을 흘끗 보았는데 화면에 나타난 이름은 노민준이었다.강하리는 본능적으로 손
‘심리 의사들은 원래 이렇게 강한 심장을 가진 걸까 아니면 이 임 선생이 유독 뻔뻔한 걸까? 만약 이 사람이 노민준 씨의 소개가 아니었다면 대표님은 진작 화를 냈을지도 몰라.’하지만 임희주는 분위기를 살피고는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은 채 바로 다른 치료 방안을 구승훈에게 설명했다.“간단히 말하면 이전 치료 방안은 증상을 억제하는 방식이었어요. 예를 들어 노민준 씨가 처방한 약들도 증상을 완화하는 역할을 했죠. 하지만 이런 억제는 일시적인 효과에 불과해 약효가 떨어지면 증상이 더 심해질 위험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억제보다는 근본적인 해소를 목표로 하는 방향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해요. 약효를 완전히 끌어낸 뒤 점차 증상을 약화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물론 한 번에 모든 약효를 없애는 건 아니고 몸과 신경이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하지만 이 방법은 다소 위험할 수도 있어요. 구승훈 씨가 신중히 고민한 후 결정하시면 좋겠습니다.”임희주가 말을 마치자 구승훈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준봉이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이 방법을 선택하면 어떤 위험이 따를까요?”임희주는 커피를 천천히 저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약효를 모두 끌어낼 경우 증상이 얼마나 심각해질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어요. 그렇기에 위험이 따를 가능성이 큽니다.”준봉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반면 구승훈은 여전히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그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짐작할 수 없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구승훈이 평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이 방안을 만든 사람이 누구죠? 노민준인가요?”임희주는 여전히 잔잔한 미소를 유지하며 대답했다.“제가 만든 방안이지만 노민준 씨와도 논의했습니다. 그는 이 방법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어요.”구승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생각해 보겠습니다.”임희주는 한 발짝 다가서며 덧붙였다.“빠른 답변 부탁드려요.”구승훈은 대답 없이 조용히 카페
구동근은 방에서 밤새 소란을 피운 끝에 다음 날 아침 병원으로 실려 갔다.그는 병원에 가면 좀 나아질 줄 알았지만 도착한 후에도 구승훈의 철저한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휴대폰조차 사용할 수 없었다.그가 난동을 부린 탓에 병실은 엉망이었지만 구승훈은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아직도 부수고 있네요? 그럼 내가 잠깐 밖에서 기다렸다 들어올까요?”구동근은 화가 나서 거의 기절할 뻔했다.“이미 말했잖아. 여초연 씨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구승훈은 대꾸하지 않은 채 보온병에서 밥을 퍼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모르는 건가요? 아니면 말할 수 없는 건가요?”구동근은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확실히 몰라. 여초연 씨가 떠날 때 난 보내주기로 약속했고 그 이후로 여초연 씨의 일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했어. 물론 나중에 행방을 알아보려고 사람을 보냈지만 얻은 단서는 거의 없었고 여초연 씨는 아마도 M국에 있을 거야. 그 팔찌는 어제 아침 하인이 집 앞에서 발견한 거야. 안에는 쪽지가 한 장 들어 있었고 여초연 씨의 필체로 ‘너희 부인에게 주는 결혼 선물’이라고 적혀 있었어.”말을 마친 구동근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예전에는 여초연 씨가 다루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결국 내가 여초연 씨에게 휘둘리고 있었더라고. 만약 그때 여초연 씨가 너에게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면 넌 여전히 나를 미워하고 있었을까?”구동근은 말을 마친 뒤 묵묵히 구승훈을 바라보았다.그러나 구승훈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그때 너희가 여초연 씨에게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면 여초연 씨가 나에게 그렇게 했을까요?”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인 구동근을 내려다보았다.“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죠. 결국 저지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예요.”구승훈은 말을 마치고 병실을 나섰다.밖으로 나온 구승훈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고 그 웃음 속에는 조롱이 가득했다.그가 조롱하는 대상이 다른 사
강하리는 구승훈이 그 팔찌를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아마 그 감정 속에는 분노가 섞여 있었을 것이다.이 시점에서 여초연이 팔찌를 보내는 것은 분명 도발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구승훈의 모습에서 오히려 더 큰 슬픔을 느꼈다.강하리는 고개를 돌려 그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내가 안아줄까?”구승훈은 억지로 웃으며 그녀의 목덜미를 가볍게 물었다.“그럼 강 부장님은 어떻게 나를 위로할 생각이에요?”강하리의 눈에 미소가 번졌다.“키스해 주고 안아주고 오빠라고 불러주면서 달래주면 되지 않을까?”구승훈은 순간 머리가 멍해졌고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다.하늘에서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 그는 빗속을 얼마나 오랫동안 걸었는지 알지 못했고 그저 그때 그는 매우 슬펐고 심지어… 죽고 싶다고 느꼈다.구승훈이 강가에 서서 몸을 던지려는 순간 한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스쳤다. “구승훈 오빠.”그가 돌아보자 한 어린 소녀가 비를 맞으며 구승훈에게 달려와 작은 분홍색 우산을 그의 손에 건네며 말했다.“구승훈 오빠, 슬퍼하지 말아요.”그 말이 끝나자 그녀는 젖은 옷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어 비가 내리는 중에 힘겹게 사탕 포장을 뜯고 그에게 사탕을 건네주었다.“달콤한 거 먹으면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빗속에서 소녀는 반달처럼 꺾인 눈으로 웃으며 물었다.“달콤해요?”구승훈은 그때 자신이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고 그저 그 장면이 떠오르자 가슴속에 있던 서글픈 감정이 점차 따뜻하게 변해갔다.그의 어린 시절은 아마도 온통 계산과 속임수로 가득했을 것이다. 심지어 어머니조차 그의 마음에 조금의 사랑도 주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잊힌 구석에서 어린 시절의 달콤함을 맛본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그것은 구승훈의 삶에 존재한 빛과 같았고 아주 달콤했다.강하리는 구승훈이 말하지 않자 여전히 그가 마음속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녀가 무언가를 말하려던 찰나 구승훈이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