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승훈은 강하리의 옆에 와서 앉고 큰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지만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고 있어? 나도 들어보자.”강하리가 웃으며 말했다.“안 대표님께서 대표님의 첫사랑이 곧 돌아오신다고 하셨어요.”구승훈은 그 말을 듣고 코웃음을 치더니 별다른 대답하지 않고 계속 물었다.“그래서 강 부장이 그렇게 즐겁게 웃고 있었던 거야?”강하리는 가슴이 답답했다. 웃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를 붙잡고 울며불며 왜 첫사랑은 사랑하면서 자신은 사랑하지 않냐고 묻기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그녀는 눈치 있는 사람이었다.“전 그저 구 대표님께는 좋은 일인 것 같아서 기뻤을 뿐입니다.”구승훈의 안색은 어둡게 가라앉았다.“그렇다면 강 부장의 관심에 고마워해야겠네.”강하리는 입을 꾹 다물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안현우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구 대표님, 첫사랑분이 돌아오시면 저한테 알려주세요. 제가 강 부장을 데려갈게요. 이건 구 대표님의 사람을 빼앗는 거 아니죠?”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구승훈은 그 말을 듣고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왜요? 두 사람 벌써 협상했어요?”“아니요!”강하리는 바로 부정했다.안현우는 구승훈의 기분을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강하리는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저 조금 전에 이미 안 대표님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그러나 안현우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강 부장, 그렇게 빨리 거절하지는 마요. 겪어보지 않으면 뭐가 진짜 자신한테 어울리는 것인지 몰라요.”안현우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강하리의 안색은 더할 나위 없이 어두웠다. 그녀는 안현우가 일부러 자신한테 보복하는 것이라 생각했다.“대표님, 저는 진짜 안 대표님한테 마음이 없어요.”구승훈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샴페인 잔을 흔들고 있었다.“강 부장은 돈만 있으면 되잖아. 왜 안 대표는 안 되는 거지?”강하리의 입술을 하얗게 질렸다
강하리는 마음이 씁쓸했다.“전 그저 예의상 웃었을 뿐이에요.”구승훈이 코웃음을 쳤다.“강 부장 매너 좋네.”강하리는 더 말하지 않았다.구승훈은 참았던 것을 분출하듯 그녀의 어깨에 키스하면서 가슴까지 내려왔다.몇억 되는 드레스는 한 번밖에 입지 못했는데 구승훈이 잡아당겨 찢어지는 바람에 다시는 못 입게 되었다.“대표님, 오늘 안 하면 안 돼요?”구승훈은 그녀의 턱을 잡고 물었다.“왜? 안현우 때문에 그래? 남겨 두었다가 걔랑 하려고?”강하리는 그제야 자신이 안현우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눈 것 때문에 구승훈이 얼마나 기분이 나빴는지 알아차렸다.어이없게도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미친 듯한 소유욕을 드러내고 있었다.남자들은 다 이런 걸까. 자신이 놀다 버린 장난감을 절대 다른 사람이 다치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제가 피곤해서 그래요. 살살 하면 안 돼요?”구승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강 부장, 나한테 빌어봐.”차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강하리는 자신을 향한 이 남자의 뜨거운 욕구를 견뎌내면서 조심스럽게 배를 가렸다.끝나고 구승훈은 그녀를 안고 집으로 올라갔다. 강하리는 구승훈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구승훈은 그녀를 안고 바로 욕실로 향했다. 그는 그녀를 씻긴 후 다시 안아서 침대 위에 내려놓고 이불을 덮어주었다.강하리는 배가 불편한 것을 느꼈다. 그런데 구승훈은 아직 만족하지 못한 듯했다. 그는 머리를 숙여 그녀에게 키스를 퍼부었다.강하리는 그를 밀어냈다. “대표님, 저 오늘 진짜 피곤해요.”그러나 구승훈은 무릎을 그녀의 두 다리 사이에 놓고 거절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막 욕구가 솟구칠 때 그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그는 관계가 진행될 때 방해받는 걸 제일 싫어했다.그는 짜증이 난 채 핸드폰을 들어 확인했는데, 예상밖으로 화를 내지도 않고 전화를 끊지도 않았다. 그저 갑자기 하던 일에 흥미를 잃었을 뿐이었다.구승훈은 일어나서 가운을 걸치고 핸드폰을 들고 나갔다.강하리는 침대
“자간전증이야.”손연지는 초음파 소견서를 들고 강하리에게 보여주었다.“이 개자식, 안 하면 죽는대?”강하리는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 마음을 진정시켰다.손연지는 답답해서 말했다.“아니면 그냥 그 남자한테 말해.”강하리는 잠시 침묵하다가 눈을 떴다. 그녀는 구승훈에게 말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그렇지 않으면 이 아이는 조만간 구승훈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설령 말한다고 해도 아이를 지키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그러나 그녀는 아이를 포기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차라리 구승훈에게 그 잔인한 일을 맡기는 게 나을 것 같았다.“어떻게 말할지 생각해 볼게.”손연지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결정한 거야?”강하리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이렇게 끄는 건 해결책이 아니야.” 손연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빨리 결심하고 끝내. 다 끝나면 그 남자 차버리고 혼자 당당하고 멋지게 살면 돼!”강하리는 슬픔을 삼키고 말했다.“아직 엄마 병원비도 벌어야 하는데 어떻게 멋지게 살아?”손연지가 물었다.“요즘 어머님 상태는 어때? 좀 나아졌어?”강하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여전히 똑같아.”손연지가 무슨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 외쳤다.“강하리!”강하리가 뒤를 돌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 강찬수가 서 있었는데, 얼굴이 너무 부어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의 양손은 두꺼운 거즈로 감싸고 있었다.“이년아, 네가 사람 시켜서 날 때렸지?”강찬수는 포효하며 강하리에게 달려들었다.강하리는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나라면 당신을 죽이라고 했을 거야!”“이 년이...”“강찬수, 당신 뭐 하는 짓이에요!”손연지는 그 모습을 보고 강하리 앞에 황급히 막아섰다.“움직이면 당장 경비원을 부를 거예요!”강찬수는 차갑게 웃으며 강하리에게 말했다.“너 딱 기다려!”강찬수는 화를 내며 자리를 떴다.손연지는 눈살을 찌푸리고 강하리에게 물었다.“무슨 일이야?”강하리가 강찬수가 찾아왔었던
그 의사는 말하다가 갑자기 멈칫했다.“그런데 송유라와 함께 온 남자는 꽤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 아우라가 너무 강했어요.”“맞아요. 남자 연예인보다 훨씬 더 잘생겼던데, 설마 송유라의 남자친구는 아니겠죠?”“맞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한밤중에 병원에 같이 왔겠어요?”두 의사가 이미 다른 화제로 넘어간 것을 본 손연지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하리를 바라보았다.강하리는 아무렇지 않을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난 이만 돌아가야겠어.”손연지는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마음이 불편할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다른 사람들은 강하리와 송유라의 관계를 모르지만 손연지는 알고 있었다.송유라는 강하리의 이복동생이다. 강하리는 언니지만 사실 송유라보다 고작 30분 일찍 태어났다.같은 날 태어난 두 사람의 운명은 완전히 달랐다.강하리의 어머니 정서원은 송동혁이 길가에서 발견하고 데려온 여자이다.송동혁이 그녀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엉망인 모습으로 자신의 이름이 정서원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 못 했다.정서원은 젊었을 때 매우 아름다웠고 아무 기억도 없었지만 몸에 두른 액세서리들은 전부 비싼 것들이었다.송동혁은 예쁜 여자를 보고 좋았는지 아니면 정서원의 몸에 있는 액세서리들 때문인지 그녀를 데리고 있기로 결정했다. 심지어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거짓말을 했다.나중에 정서원이 임신을 했는데도 송동혁은 결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정서원이 참지 못하고 묻자 그제야 그는 본모습을 드러냈다.그때서야 모든 사람들은 송동혁이 정서원과만 만난 게 아니라, 제약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의 딸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우연히도 그 제약 회사 사장의 딸도 임신했고 송동혁은 그녀와의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었다.그는 정서원과 만난 것이 폭로될까 봐 두려워서 그녀에게 아기를 낙태하도록 강요했다.정서원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몰래 병원에서 도망쳤다.아이를 낳은 후 그녀는 거의 10년 동안 떠돌다가 연성시로 다시 돌아왔다. 강하리는 어머니를
강하리는 그들과 엮이기조차 싫었고, 송하양이라는 이름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그들이 괴롭히지만 않는다면 강하리는 평생 그들 앞에 나타나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3년 전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해 수술비가 절실히 필요했던 그녀는 송동혁 앞에서 구걸을 해야 했다.그때 그녀는 송동혁의 차가움을 완전히 알게 되었고, 그 후 그녀는 그의 가족과 다시는 마주치지 않았다.단지 가끔 TV나 트위터에서 송유라의 이름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송유라는 4년 전 해외에서 데뷔했다.4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녀는 예뻤고 국민 첫사랑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으며 국내에서도 어느 정도 유명세를 탔다.강하리는 집으로 돌아와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꿈속에서 그녀는 다시 한번 그 해변으로 돌아왔다. 겨울의 해변은 찬바람이 강했다. 해변가 별장의 창문이 윙윙 거리며 날아갔다.송유라는 팔찌를 잃어버려서 그녀에게 소리를 지르며 가서 팔찌를 되찾아오라고 명령했다.강하리는 그 팔찌를 본 적이 있다. 다이아몬드가 아름답게 박혀 있는 팔찌에는 ‘하양’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송동혁이 송유라에게 준 생일 선물이었다.송유라는 이 팔찌를 끼고 사진을 많이 찍었다.잃어버려서 정말 안타까웠지만, 강하리는 그녀가 그것을 찾도록 도와주지 않았다.어두운 밤, 그런 강풍이 부는 날에 외출하는 것은 죽으려는 것과 같았다.송유라의 포효가 별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송동혁은 그녀를 서재로 불러와서 물었다.“네 엄마가 얼마 전에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며?”당시 강하리는 사회생활을 하지 않아서 잘 몰랐지만, 그의 말에 담긴 위협을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녀는 그에게 물었다. “오늘 여기 오라고 하신 이유가 정확히 뭐죠? 내 생일 때문인가요, 아니면 죽이려고 부른 건가요?”송동혁은 즉시 얼굴이 어두워졌다.강하리는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않고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해변으로 향했다.강찬수가 하루 종일 술을 마셔대니 집안 살림은 모두 어머니에게 의존했다. 게다가 어머니는 때때로 장진영
그렇다면 구승훈은 어제 첫사랑의 전화를 받고 나간 것일까?강하리는 마음이 찌릿찌릿 아파왔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배를 만졌다. 그녀는 구승훈의 첫사랑이 정말 돌아왔다면, 자신이 떠나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녀가 떠나가서 배 속의 아이를 낳아도 되는 것인가?강하리는 자신의 배를 쳐다보았다.안예서는 또 뭐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전혀 집중하지 않았다. 마음이 너무 복잡했다.“보스?”강하리는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었다.“이제 일하자. 이런 건 그만 얘기하고, 대표님께서 들으시면 혼내실 수 있으니까 조심해.”안예서는 무안해서 혀를 내밀며 부끄러운 듯한 표정을 짓더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강하리도 일하는 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점심시간이 되자 안예서가 문을 두드렸다.“보스, 대표님께서 부르십니다.”...구승훈의 사무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안에서 새어 나오는 구승훈의 목소리를 들었다.아마도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는 듯했는데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부드러운 목소리였다.강하리는 심지어 그에게 이렇게 부드러운 모습이 있는 줄도 몰랐다.그때 전담 비서가 다가왔다.“강 부장님, 대표님께서 강 부장님께 바로 들어오시라고 하셨습니다.”강하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피곤하면 좀 쉬어. 여기저기 다니지 말고. 그래, 난 일이 있어서 이만 먼저 끊을게.”구승훈은 전화를 끊은 후 넥타이를 살짝 풀고 강하리 쪽을 힐끗 쳐다봤다.그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검은 눈동자로 강하리를 바라보았다.“어젯밤에 전화했던데, 무슨 일 있었어?”그를 본 순간, 강하리를 생각이 바뀌었다. 그녀는 구승훈에게 사실을 숨기기로 결심했다.그가 첫사랑과 잘 이어지면, 강하리는 떠나면 된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몸이 좀 불편했어요.”구승훈은 코웃음을 쳤다.“난 또 내가 가서 아쉬워하는 줄 알았네.”강하리는 한참 아무 말도 없다가 입을 열었다.“그
강하리는 그의 말에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구승훈은 절대 그녀에게 벗어날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한 번도 그녀의 감정을 신경 쓴 적이 없었다.이 몇 년 동안 그녀는 저항할 수 없다면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그가 지시한 임무도 그렇고, 그가 준 아픔도 마찬가지였다.“알겠어요.”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점심 식사를 했다,구승훈은 천천히 우아하게 밥을 먹었는데, 그는 원래부터 식사 시간에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극도로 수양을 따지는 사람이었다.한편 강하리는 넋이 나가 있었다. 그녀는 최대한 오전에 들은 소문을 신경 쓰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그래도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그들이 식사를 마치자 구승훈의 핸드폰이 울렸다.강하리가 힐끔 쳐다보자 스크린에 ‘S’가 떠 있었다.구승훈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또 무슨 일이야? 먹었어... 응, 너도 잘 챙겨 먹어... 알았어, 끊어.”강하리는 이미 누가 전화를 한 건지 짐작이 갔다.그 첫사랑 말고는 아무도 구승훈을 이렇게 부드럽게 변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어젯밤 그렇게 급하게 나가시더니, 첫사랑이 돌아온 거였어요?”강하리는 무심한 듯 한 마디 물었다.구승훈은 옆에서 향초를 켜려고 하다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그건 내 개인적인 일이야. 강 부장이 신경 쓸 게 아니야.”강하리는 몇 초간 침묵했다.“전 그저 제가 잘릴까 봐 걱정돼서요.”구승훈은 향초에 불을 붙이려다가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강 부장, 혹시 다른 데로 가려고 그래?”강하리는 입꼬리를 올렸다.“굶어 죽을 수는 없잖아요.”구승훈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는 가라앉은 눈빛으로 강하리를 바라보았다.“걱정 마. 강 부장 돈 못 벌게 하지는 않을 거야. 난 아직 여자를 바꿀 생각이 없거든.”강하리는 그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가슴이 찌릿찌릿 아파오다가 점점 무감각해졌다.그녀는 웃으며 말했다.“그럼 감사합니다, 대표님.”구승훈은 다시 고개를
송유라는 갑자기 당황했다.“내가 언제 쫓아냈어요? 난 그저 자리를 비켜달라고 한 거라고요.”그녀는 억울한 듯 구승훈을 바라보았다.“승훈 오빠, 설마 부장 따위로 나한테 화내는 건 아니죠?”송유라는 말을 마치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졌다.이 몇 년 동안 그녀는 해외에서 늘 구승훈이 먼저 자신에게 연락하기를 기다렸었다. 그런데 4년 동안 구승훈이 그녀에게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이 4년 동안 그녀는 몇 번이나 그를 만나러 돌아오려고 했다.하지만 송유라에게도 자존심이 있었다. 당시 그녀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으니...구승훈은 그녀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그는 그녀에게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하양이란 애칭을 부르기도 하고 필요할 때 제일 먼저 그녀 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심지어 그녀를 위해 기꺼이 친한 친구들과 싸우기도 한다.하지만 그런 특별함에도 선이 있었다.그는 절대 그녀를 만지지 않았고 결혼 얘기를 꺼낸 적도 없었으며, 심지어 부모를 만나려 하지도 않았다.원래 송유라는 이 남자를 압박해서 위기감을 주고 당장 그녀와 결혼하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그녀가 어떻게 구승훈의 옆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지는 오직 그녀 본인만 알고 있다.이 결혼을 빨리 성사시키지 않으면 마음이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그런데 구승훈이 헤어지자는 말에 바로 동의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홧김에 외국으로 나갔다. 가기 전에 그녀는 구승훈이 직접 와서 빌지 않는 이상, 절대 돌아오지 않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었다.원래 송유라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타협할 줄로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4년이 흘러갈 줄은 예상치 못했다.최근에서야 그녀는 구승훈과 강하리의 소문을 듣게 되고 더는 견딜 수가 없어 돌아온 것이었다.그녀는 강하리를 싫어했다. 강하리의 존재를 알았을 때부터 더할 나위 없이 그녀를 싫어했다.강하리는 송유라보다 예쁘고 품위가 있었으며 성적도 좋았다. 집안 환경을 빼고는 모든 것이 그녀보다 뛰어났다. 그래서 송유라는 강하리를 미친 듯이 싫어했다.만약 구승
“어떻게 알았어?”구승훈은 웃으며 눈을 내리깔고 테이블 아래 두 사람이 잡고 있는 손을 바라보았다.“이상해?”강하리는 입술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구승훈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하리야, 내가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잖아. 당연히 네 일에 대해선 다 알고 있지.”강하리는 잠시 침묵하다가 손을 빼냈다.“그럴 필요 없어.”유난히 침착한 그 말이 구승훈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필요한지 아닌지는 네가 결정하는 게 아니야. 강하리, 내가 뭘 하든 그건 내 일이야.”강하리가 비웃었다.“하지만 난 이제 당신이랑 더 엮이고 싶지 않아.”구승훈의 목울대가 꿈틀거리며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몇 마디 말로 두 사람 사이는 또다시 교착 상태에 빠졌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온 강하리는 그제야 휴대폰을 꺼내 안예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녀는 최소한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는 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구승훈이 옆에 앉아있자 마치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았던 치유할 수 없는 상처, 두 사람의 목숨이 다시금 떠오르는 듯했다.그녀의 어머니와 아이...강하리가 가정에서 나오는데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멍하니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데 문득 연정이가 사고를 당한 날 밤도 비 오는 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그날 밤이 어땠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연정이가 이렇게 비 오는 밤에 춥고 무서워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강하리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비를 바라보다가 눈가에 차오르는 시큰함을 꾹 참고 빗속으로 걸어가는 순간 머리 위로 드리워진 우산이 그녀를 덮었다.고개를 들자 미소를 머금은 주해찬의 눈동자와 마주쳤다.“그렇게 비속우로 달려가면 감기 걸리잖아.”강하리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우산 챙기는 걸 깜빡해서.”“왜 전화 안 했어?”주해찬의 우산은 완전히 그녀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내가 마침 저녁을 먹으러 오지 않았으면 이대로 비를 맞으며 돌아가려고 했어?”주해찬의 눈에는 나무람과 관심이 가득했고 강하리는 웃으며 시선을 다른 곳
B시 대양그룹.정양철이 사무실로 들어가니 이미 비서가 대기하고 있었다.“강하리 검색어는 어떻게 된 거야?”비서는 잠시 머뭇거렸다.“사모님께서 대양그룹 명의로 매수한 것인데 아마도 회장님을 시험하려는 의도 같습니다.”정 회장이 강하리를 아낀다면 이 일을 거론할 것이고 신경 쓰지 않는다면 하든 말든 넘어가겠지.정양철의 얼굴에 알 수 없는 표정이 스쳤고 그가 말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주현이 통해 강하리에게 연락해서 대양그룹이 JM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라고 해.”말을 마친 그가 멈칫했다.“집사람이 물어보면 강하리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고.”비서의 눈이 번뜩이더니 대답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강하리는 정주현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지난번 구승훈과 함께 대양그룹 입찰을 뺏은 이후 정양철 측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하지만 이번에는 정양철이 무슨 꿍꿍이로 합작을 원하는 건지 모르겠다.지금은 정양철을 상대로 놀아줄 기분이 아니었다.“정주현 씨, 대양그룹에서 마음만 먹으면 파트너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겠죠?”정주현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듣고는 다소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강하리 씨, 우리랑 같이 일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강하리가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려던 찰나, 정주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B시에 언제 와요? 얼굴 보고 얘기할까요? 협업 안 해도 오랜만에 얼굴 한번 봐요. 우리 안 본 지 오래됐잖아요.”강하리는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알았어요, 그럼 가면 연락할게요.”정주현이 전화를 끊자 사무실 앞에 서 있는 연미숙의 모습이 보였다.“엄마, 여기서 뭐 해?”연미숙이 웃었다.“우리가 강하리랑 같이 일해?”정주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아빠가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구씨 집안에 매달리는 게 아니라 밖으로 사업을 넓히려는 것 같아.”연미숙은 인상을 찌푸렸다. “꼭 강하리여야만 대외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거야?”정주현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강하리가 왜?”연미숙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
구승훈은 차갑게 웃으며 자신도 모르게 핸들을 꽉 움켜쥐었다.그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두 사람이 차 안에서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모르겠지만 강하리의 얼굴에 번진 미소가 전혀 억지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화사한 아침 햇살 같은 그 미소가 구승훈은 왠지 모르게 눈에 거슬렸다.강하리는 차에서 내려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된 구승훈의 차가 보였다.그녀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지만 시선을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강하리가 안으로 들어간 후 주해찬은 차에서 내려 구승훈의 차 쪽으로 걸어갔다.그가 창문을 살며시 두드리자 구승훈이 창문을 내렸다.“구 대표님 시간 있으세요? 얘기 좀 할까요?”구승훈은 가볍게 웃었다.“주해찬 씨는 남의 연애에 참견하는 걸 좋아하나 봐요?”구승훈의 가시 돋친 말에도 주해찬은 계속 웃기만 했다.“구승훈 씨, 당신과 하리가 잘 지낸다면 나도 굳이 끼어들고 싶진 않은데 당신은 하리를 행복하게 해준 적이 있긴 한가요?”그의 말에 구승훈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그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들이마신 후 말을 시작했다.“주해찬 씨, 행복하든 아니든 그건 다 나와 강하리 사이의 일이지 당신이랑은 아무 상관이 없잖아요.”주해찬은 조롱 섞인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웃었다. “구승훈 씨, 내가 하리 데려간다고 했죠. 이번엔 말한 대로 합니다.”말을 마친 그는 돌아서서 다시 차로 향했다.구승훈의 얼굴에서 미소가 조금씩 완전히 사라진 채 떠나는 차를 바라보았다.그는 한참 동안 손에 쥔 휴대폰을 내려다보면서 결국 강하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했다.[그 자식이랑 떠날 거야?]강하리가 위층으로 올라가는데 전화벨이 울렸고 그녀는 한참 동안 들여다보다가 그냥 대화창을 닫아버렸다.구승훈은 전송된 메시지에 답장이 오지 않자 가벼운 웃음을 터뜨리며 입안의 쓴맛을 삼키고 휴대폰을 치우려던 찰나, 구승재의 전화가 걸려 왔다.“형, 큰어머니가 그
“죽기 전엔 안 해.”심준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극단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구승훈의 손가락이 한참을 굳어 있다가 말을 꺼냈다.“안 해.”하고 싶었지만 그게 그녀를 더 멀리 밀어낼까 봐 더 두려웠다.심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사이 문제의 핵심은 아이였기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곧바로 아이 문제로 말을 돌렸다.“아이는 어떻게 된 거야? 문연진이 어떻게 아이의 존재를 안 거야?”구승훈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구승재가 통화하는 걸 들었어.”심준호는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정말 문연진이 아니야?”구승훈은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그 여자가 아니야.”문연진은 이미 연정이를 죽였다고 인정했는데 굳이 연정이를 차로 치어 산에서 떨어뜨렸다고 말할 필요는 없었다.그녀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단 한 가지, 도중에 가정부가 연정이와 함께 차에서 내린 사실을 모른다는 것.“그럼 문연진 말고 또 아는 사람이 있어?”구승훈은 잠시 침묵했다.“여초연, 문연진 말로는 그날 밤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침 여초연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했어.”멈칫한 심준호의 눈에서 차가움이 번뜩였다.여초연이란 사람은 솔직히 줄곧 속내를 알 수 없었다.전에는 여러 번이나 구승훈을 죽이려고 했다가 지금은 무척 다정하게 굴었다.그 여자는 지금까지도 끔찍한 존재로 느껴졌다.“설마 그 사람이?”심준호는 문득 구승훈이 안타까웠다.정말 여초연이라면 구승훈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구승훈은 잠시 침묵했다.“아직 확인하고 있어.”심준호는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만 해.”구승훈은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심준호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고 이 문제가 해결되었기에 그도 떠났다.심준호를 배웅하고 차로 돌아온 구승훈의 휴대폰이 울렸다.“형, 어제 강하리 씨 인기 검색어가 대양그룹과 관련이 있어.”구승훈의 눈에 냉기가 감돌았다.“최근 정양철 측에서 어떤 움직임이 있었어?”“아니, 이 검색어 말고는 그동안 잠잠했
강하리의 입꼬리가 굳어지며 다시 말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고맙다고 전해주세요.” 심준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무슨 말을 하려던 찰나, 한 대의 자동차가 도로변에 멈춰 서는 것을 목격했다.주해찬이 차에서 내려 이쪽으로 걸어왔다.심준호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이렇게 말했다.“직접 만나서 고맙다고 말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말을 마친 그는 강하리에게 눈썹을 치켜세웠고 강하리는 길 건너편에 주차된 너무나도 낯익은 차를 보았다.검은색 마이바흐 창문은 반쯤 내려져 있고 차에 탄 남자는 담배를 손에 쥐고 있었다. 멀리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구승훈이 이쪽을 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그쪽을 힐끗 쳐다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그러면 나중에 메시지 보낼게요.”심준호는 웃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해찬을 바라보기만 했다.“그러면 그동안 잘 돌봐주세요.”주해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말을 마친 그가 강하리를 이끌고 나가려는 순간 갑자기 강하리의 손목이 잡혔다.어느 틈엔가 구승훈이 길을 건너 이쪽으로 걸어왔고 주해찬이 얼굴을 찡그리며 막으려는데 심준호가 옆에서 말렸다.강하리의 손가락이 살짝 조여졌다.“구승훈 씨, 이거 놔요.”구승훈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웃었다.“하리야, 이제 고맙다는 말도 안 할 거야?”강하리의 몸이 굳어지고 입꼬리가 몇 번 움직이다가 말을 꺼냈다.“고마워요.”말을 마친 그녀는 구승훈을 바라보았다.“이제 놔줄래요?”구승훈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나한테 꼭 이래야겠어?”강하리가 시선을 피했다.“구승훈 씨,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잖아요.”그가 원망스러웠다.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그를 보면 연정이가 생각난다는 사실이었다.숨도 쉴 수 없을 것만 같은 고통은 더 이상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구승훈은 차갑게 웃었다.“나도 놔주지 않겠다고 했잖아. 하리야, 얘기 좀 하자.”강하리의 눈이 빨개지며 입을 열자 목소리까지 떨리고 있었다
강하리가 유치장 벤치에 기대어 홀로 앉아 있었다.머릿속에는 구승훈이 차를 막았을 때와 이곳을 떠날 때의 모습만이 가득했다.강하리는 눈을 지그시 감고 그 모든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밀어내려 했지만 그 남자의 움직임은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그가 이름을 불러줄 때, 그 다급하면서도 부드러운 어투가.강하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점점 더 가슴이 아파져 오는 것을 느꼈다.노민우의 말이 틀린 게 없다는 건 안다.구승훈의 의도는 좋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생각만 해도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밤새 달려온 심준호의 시야에 들어온 건 여자가 벤치에 홀로 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가녀린 어깨를 떨고 있는 모습이었다.그는 부드럽게 한숨을 쉬며 음식을 들고 들어왔다.강하리는 고개를 들어 앞에 서 있는 심준호를 보았다.“심 변호사님.” 낮게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엔 어딘가 억울함이 담겨 있었다.심준호는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살살 어루만지며 나지막이 말했다.“겁내지 마요. 내가 아무 일도 없게 할 테니까.”강하리는 눈가에 맺힌 시큰한 감각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심준호는 손에 든 음식을 그녀에게 건넸다.“아직 밥 안 먹었죠?”강하리는 고개를 저었다. “배 안 고파요.”심준호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배 안 고프면 안 먹을 거예요?” 그는 곧바로 음식을 열고 숟가락을 그녀의 손에 밀어 넣었다.“마침 나도 안 먹었는데 같이 먹어요.”강하리는 거절하지 못했지만 그 음식들을 보자마자 그녀의 움직임은 멈췄고 자신도 모르게 숟가락을 꽉 움켜쥐었다.“왜요, 입맛에 안 맞아요?”심준호는 눈썹을 치켜뜬 채 그녀를 바라보았고 강하리는 음식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안 맞는 게 아니라 너무 입맛에 맞아서 문제다.그녀의 취향에 딱 맞는 요리를 주문했다.심준호가 웃었다.“좋아하면 많이 먹어요. 그동안 야윈 것 좀 봐요.”강하리가 그를 슬쩍 쳐다봤다.“구승훈 씨가 주문한 거예요?”심준호는 새우를 그녀의 그릇에 넣어주었다
구승훈이 떠난 후 강하리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하리야...”손연지는 어쩔 줄 몰라 했다.하지만 막상 부르고 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는 노민우를 노려보았다.노민우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미 대략 알고 있었기에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을 꺼냈다.“강하리 씨, 이번 일은 승훈이 잘못이 아니란 걸 누구보다 잘 알 거예요. 승훈이도 아이를 지키기 위한 의도였어요. 아이의 상황이 그렇게 위험하지 않았다면 절대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거예요. 지금까지 힘들게 버텨왔는데 그래도 하리 씨가 조금만 더 너그럽게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요...”“됐어, 입 다물어!”손연지가 끼어들었다.“하리가 얼마나 더 너그럽게 봐줘야 해? 심지어... 아주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하리는 더 원망하지 않았어. 그 사람은 뭔데? 그래, 정말 아이를 지키려고 그랬을지 몰라도 하리를 고통스럽게 한 건 사실이잖아. 한번 또 한 번 하리가 그 사람 때문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 알아? 하리는 이해해 줬는데 그 사람은 하리를 이해해 준 적 있어? 하리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고통까지 겪어야 해?”손연지의 이어지는 반박에 노민우는 할 말을 잃었다.“난 그냥 강하리 씨에게 좋은 말을 해주려고 그런 건데.”손연지는 강하리를 바라보았다.“하리야, 무슨 일이 있어도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 남자든 아이든 너만큼 중요하지 않아, 알겠지?”강하리는 눈가에 담긴 씁쓸함을 감추기 위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알아. 고마워, 연지야.”손연지가 부드럽게 토닥이며 주해찬에게 고개를 돌렸다.“더 달래봐요.”주해찬은 고개를 끄덕였고 손연지는 노민우를 밖으로 끌어냈다.주해찬은 몸을 숙인 채 강하리를 같은 높이에서 바라봤고 강하리는 그의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선배, 난 괜찮아요.”주해찬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거절당할 것을 생각하며 결국 참았다.그는 말을 하기 전까지 한참 동안 침묵했다.“하리야, 이번
구승훈은 강하리의 손을 덥석 잡았다.“하리야, 브레이크가 고장 났고 넌 몸에 이상이 있었어. 문연진이 도망가려고 했던 거야, 알겠어? 알겠냐고?”강하리가 웃었다.“예전에 송유라도 이런 식으로 법의 심판을 받지 않게 도와준 거지?”구승훈은 말문이 막혔다.“하리야...”강하리가 시선을 바닥으로 보냈다.“구승훈, 이제부터 내 일에 신경 쓰지 마.”말을 마친 그녀가 안으로 들어갔고 구승훈의 눈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강하리를 끌어당겼다.“내가 신경 끄면 누가 신경 쓰는데, 주해찬?”강하리는 가만히 그를 쳐다보다가 결국 밀어냈다.앞으로 그 사람이 누가 되든 구승훈은 아닐 것이다.주해찬은 손연지, 노민우와 함께 서둘러 달려왔고 세 사람이 도착했을 때 구승훈은 유치장 바깥을 지키고 있었고 강하리는 바깥을 등진 채 앉아 있었다.두 사람 사이엔 마치 거대한 간극이 있는 것 같았다.손연지는 구승훈을 보고 걸음을 멈칫했다.강하리를 구해주지 않는 구승훈 때문에 화가 났지만 강하리가 한 짓을 알고는 그녀를 지키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났다.“하리야.”강하리는 손연지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뒤를 돌아보았다.그녀는 손연지를 바라보며 속삭였다.“거짓말해서 미안해.”손연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하리야, 너 바보야?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강하리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연지야, 내가 하지 않으면 평생 불안할 것 같았어.”“하리야...” 손연지의 가슴이 터질 듯이 아팠다.“그럼 넌 이제 어떡해?”강하리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한참 후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난 이대로도 괜찮아.”정말 형을 선고받는다고 해도 원망할 건 없었다.“그런 말 하지 마! 하리야, 넌 아직 할 일도 많고 나이도 젊잖아. 아주머니 가족도 있고 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살아 계시면서 네가 돌아오길 기다릴 수도 있잖아, 아니야? 이대로 널 포기하면 안 돼!”강하리는 눈가가 촉촉해진 채 한참이 지난 후 말했다.“나한테 가족이 있을까?”“있
구승훈의 눈동자가 움츠러들었다.거리가 너무 짧아서 피하고 싶어도 이미 너무 늦었다.“하리야!” 그가 차를 향해 소리쳤지만 강하리의 차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가속 페달을 밟았다.강하리가 구승훈을 노려보는 것 같아도 그녀의 시야는 진작 눈물로 흐려졌다.하지만 구승훈을 치기 직전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고 차가 구승훈 바로 앞에서 멈췄다.구승훈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순간도 시선을 돌리지 않고 강하리만 바라보았다.조금 전 강하리가 정말로 그를 차로 쳐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했다.“하리야.”구승훈이 낮게 부르며 그녀에게 가려는데 그가 막 차 앞을 벗어난 순간 강하리가 다시 액셀을 밟더니 그를 스쳐 지나며 달려갔다.당황한 구승훈이 저쪽을 향해 소리쳤다.“다들 비켜!”문연진을 지키고 있던 몇 명의 경찰이 문연진을 끌어당겨 옆으로 피했지만 문연진은 너무 느렸고 강하리는 지나치게 빨랐다.문연진은 몇 발짝도 뛰지 못하고 쾅 소리와 함께 그대로 부딪혔다.차에 앉아 핸들을 잡고 있던 강하리의 손이 덜덜 떨렸고 눈가에 맺혀있던 눈물이 툭 떨어졌다.성큼성큼 차로 다가온 구승훈이 밖에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하리야, 내려.”“하리야, 차 문 열어.”“하리야, 차에서 내려, 응?”반면 강하리는 들리지 않는 듯 혼자서 운전대에 엎드린 채 울기만 했다.다른 사람은 필요 없다, 구승훈조차도.아이의 복수는 그녀가 할 것이다.그 대가가 그녀 본인이라고 해도 말이다.밖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었고 차에 부딪힌 문연진의 하체에서 선홍빛 액체가 흘러나왔다.류덕구는 서둘러 사람을 시켜 그녀를 병원으로 보냈고 구승훈은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강하리를 달래고 있었다.하지만 강하리는 문을 열어주지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사고 현장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휴대폰을 들고 동영상을 촬영하기도 했다.구승훈은 고개를 돌려 류덕구를 바라보았다.“저 영상 좀 처리 부탁드립니다.”류덕구가 인상을 찌푸렸다.“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