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리는 창백한 얼굴로 구승훈을 잠시 바라보다가 힘없이 이마를 그의 어깨에 살짝 기대었다.“고마워.”그녀는 구승훈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구승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맙다는 인사를 왜 하냐며 따져 묻고 싶었지만 입가에 차오른 말을 곧바로 바꿨다.“천만에.”곧 경찰이 도착하고 강하리는 조사를 위해 구승훈의 차로 이동했다. 경찰서에 앉은 강하리는 여전히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뜨거운 물 한 컵을 손에 들고 있었다.“무서워?”시선을 내려 그녀를 바라보는 구승훈의 눈엔 가슴 아픈 기색이 가득했다.강하리는 입술마저 하얗게 질려 있었다.“복수를 하기 전에 죽을까 봐 무서워.”구승훈은 가슴이 저릿했다.“하리야, 너...”하지만 강하리는 아무 말 없이 눈앞에 있는 경찰만 바라보고 있었다.조사를 마친 경찰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두 차가 미리 상의하고 이 아가씨를 노린 것 같은데요.”강하리가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고 구승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이건 청부 살인인데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을까요?”“최선을 다해 수사하겠습니다.”구승훈은 고개를 끄덕였다.강하리를 경찰서 밖으로 데리고 나온 그는 전화 한 통을 걸었다.다른 사람들이 조사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본인이 직접 알아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통화가 끝난 후 그는 강하리를 곧장 병원으로 데려갔다.강하리의 몸 상태를 철저하게 체크한 후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같은 시각 구승재 측에서 다시 전화가 왔고 전화기를 움켜쥔 구승훈의 표정이 굳어졌다.“문씨 가문이야?”강하리가 낮은 목소리로 묻자 구승훈은 침묵하며 그녀를 바라봤다.“문씨 가문이 왜 그랬는지 알지?”강하리는 고개를 들어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알아, 내가 문연진을 건드려서 그런 거잖아.”구승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알면서도 계속할 거야? 강하리, 네가 기어코 하겠다면 앞으로 이런 일은 수도 없이 일어날 거야. 복수는 너만 해? 네가 복수를 시작하면 그 사람들도 너한테 보복할 거야!”웃고 있는 강하리의 눈가에 눈
강하리는 창밖만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구승훈이 강하리를 집에 데려다주며 막 차를 주차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강하리가 시선을 내리고 휴대폰을 바라보니 노진우의 전화였다.강하리가 그를 쳐다보자 구승훈은 자연스러운 태도로 전화를 끊었다.“노진우 씨 해고하지 않았어?” 강하리가 갑자기 묻자 구승훈이 답했다.“근데 애 키우는 게 너무 힘들다며 계속 돌아오고 싶대.”강하리의 입꼬리가 굳어지며 한참이 지나서야 말을 이어갔다.“오늘 노진우 씨를 봤어”구승훈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어디서?”강하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구승훈을 바라보기만 했다.“구승훈 씨, 나 어디서 만났어?”그녀는 연구소에서 막 나오기 바쁘게 구승훈의 연락을 받았던 것을 기억했다.구승훈은 시선을 돌렸다.“정신과 의사한테 상담받으러 갔어, 요즘도...”강하리는 멈칫하다가 곧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차에서 내렸다.구승훈은 극도로 복잡한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휴대전화를 들고 노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당분간 연락하지 마.”노진우는 잠시 침묵했다. “강하리 씨가 의심해요?”구승훈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강하리가 의심하는지도 모르겠다.그녀는 너무 똑똑하고 지나치게 예민해서 의심하든 의심하지 않든 조심해야 했다.구승훈은 노진우의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 뒤 미간을 꾹 눌렀다.강하리가 집으로 돌아오니 손연지가 게임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노민우, 이 멍청아. 대체 게임을 어떻게 하는 거야? 가서 때리라고, 왜 자꾸 나만 따라와?”방에서 손연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강하리는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괜한 생각이겠지.아이가 정말 살아있다면 구승훈이 그녀에게 숨길 이유가 없었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하지만 방으로 돌아와서도 그녀는 결국 나문빈에게 전화를 걸었다.“나문빈 씨, 연구소에 대해 알아봐 줘요. 네, 모든 정보와 연
구승훈의 말을 듣던 구승재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강하리가 이 사실을 알면 더 화를 내겠지?나중에 강하리가 진실을 알게 되면 형을 어떻게 대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그는 살짝 한숨을 내쉬더니 바로 화제를 돌렸다.“문씨 가문에서 이번에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으니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구승훈의 짙은 눈동자가 가늘어졌다.“그럼 감히 움직이지 못하게 해.”문연진은 이틀 동안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특히 오늘은 강하리가 가벼운 상처만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저 나쁜 년은 매번 구승훈의 보호를 받는데 왜 그녀는 안 되는 걸까!문연진은 친구들과 술집에서 약속을 잡았고 술집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밖에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그녀는 비틀거리며 차로 가서는 옆에 있던 대리기사에게 차 키를 던졌다.대리기사는 차 키를 받으면서 잠시 눈을 번쩍이더니 곧바로 차 문을 열었다.차에 올라탄 문연진은 곧바로 시트에 기대앉았다.“임페리얼 팰리스.”대리 기사가 대답하고 시동을 걸며 차를 출발시켰다.“아가씨, 눈이 와서 길이 미끄러우니 속도가 느릴 수 있어요. 너무 급한 건 아니죠?”“안 급해.” 문연진이 어눌하게 대꾸하자 대리 기사는 더 말하지 않았다.고급 외제차가 얼마 지나지 않아 시내를 빠져나갔고 시트에 기대앉은 문연진은 진작 잠이 든 지 오래였다.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자신의 차가 외딴곳 한가운데에 주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이윽고 그녀가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트럭 한 대가 옆으로 돌진해 오며 그대로 추돌했다.“꺄아악!” 처절한 비명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문연진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문원진은 B시에서 급히 달려왔다.이마와 팔에 붕대를 감은 채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문연진을 보자마자 그는 피를 토할 뻔했다.“할아버지!”문연진은 문원진을 보자 불쌍하게 외쳤다.문원진의 얼굴은 분노로 파랗게 질렸다.“걱정하지 마, 할아버지가 널 위해 반드시 처리해 줄게!”문원진은 분노에
“구승훈! 너 진짜 우리랑 등 돌릴 거야?”구승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전 이미 등 돌린 걸로 알고 있는데요.”문원진은 콧방귀를 뀌었다.“구승훈, 내가 정말 강하리를 죽일까 봐 두렵지 않아?”“그럼 제가 문연진을 죽이는 것도 각오하세요.”“너...”“보시다시피 강하리가 입은 모든 부상은 문연진에게 두 배로 돌려줄 겁니다. 그러니 어르신, 행동하기 전에 잘 생각하시고 움직이세요.”구승훈은 그렇게 말한 뒤 전화를 끊고 사무실 문을 열었다.그곳엔 최하영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비서 불러서 마실 것 좀 드릴까요?”최하영이 웃었다.“마실 건 됐고 오늘 좀 볼 일이 있어서 왔어요.”구승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말씀하세요.”최하영은 빙빙 돌리지 않고 구승훈 앞에 직접 기획안을 내밀었다.“그쪽 아내가 오늘 아침 저한테 보낸 거예요.”구승훈은 깜짝 놀라 황급히 그것을 집어 들고 살펴봤다.놀랍게도 문씨 가문 강북의 합병 기획안이었다.[문씨 가문의 강북 시장은 문연진의 부친이 쥐고 있는데 요즘 해외 에너지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으니 제가 덫을 놓아 큰 손해를 보게 하죠. 그러면 문씨 가문의 주식시장은 반드시 폭락할 것이고 그 기회를 틈타 그쪽이 강북의 시장을 집어삼키세요.]“아내분께서 직접 저한테 한 말 그대로예요.” 최하영은 구승훈을 바라봤고 구승훈은 꾹 누르더니 잠시 후 다소 씁쓸한 표정으로 기획안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계획서에는 문씨 가문을 유인하고 문씨 가문의 신뢰를 얻으며 사후에 책임을 회피할 방법까지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그는 강하리가 똑똑하고 사업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문씨 가문의 강북에 눈독을 들이고 문씨 가문의 뿌리를 건드리며 심지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완벽한 계획까지 내놓았다는 사실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더 놀라운 건 그가 거절한 뒤 최하영을 찾아갔다는 거다.평소 최하영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이 일은 또다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진행됐을 것이다
최하영은 정안그룹 건물에서 나와 길가에 주차된 랜드로버로 곧장 향했다.강하리는 운전석에 앉아 눈썹을 치켜뜬 채 최하영을 바라봤다.“어때요?”최하영은 복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예상한 거 아닌가요?”강하리는 쓴웃음을 지었다.“네, 예상했죠.”그래도 시도해 보고 싶었다.아이 아빠인데 아이의 복수를 위해 누군가와 손을 잡아야 한다면 그 사람이 구승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은...“기획안 가져가세요.”최하영이 웃었다.“구승훈 씨가 앞으로 구씨 가문 남은 구역은 제 거라네요. 강하리 씨는 뭘 약속하실 거죠?”강하리는 눈을 내리깔고 차갑게 웃었다.“구씨 가문뿐만 아니라 문씨 가문도 당신 것이 될 수 있어요.”최하영은 웃음을 터뜨렸다.“오케이!”그렇게 말한 뒤 그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어 통화 중이던 전화를 끊었고 저쪽에서 구승훈이 눈썹이 찡그렸다.곧 빠르게 최하영의 휴대폰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나도 똑같이 문씨 가문을 줄 수 있습니다.][늦었어요, 전 약속 지키는 사람입니다.]최하영이 떠난 후 강하리는 나문빈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다.“L국에 좋은 에너지 프로젝트가 있는데 파트너를 찾고 싶다고 소문을 내봐요.”나문빈은 짧게 대답하며 물었다.“구승훈이 협력하기로 했어요?”강하리는 잠시 침묵했다.“꼭 그 사람과 협력할 필요는 없죠.”나문빈은 혀를 찼다.“그래요. 참, 알아보라고 한 연구소에 대한 정보 가져왔어요.”강하리가 멈칫했다.“어떤데요?”“노민준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곳인데 미숙아를 전문으로 데려오는 곳이에요.”강하리는 전화기를 꽉 쥐었다.“노진우 씨 아이에 대한 정보는요?”나문빈 쪽에서 서류를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아빠가 노진우인 아이가 있긴 한데 아이는 열흘 전에 데려왔고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미숙아로 태어났다고 나와 있어요.”“열흘 전에요?” 강하리의 마음속에 어렴풋이 피어오르던 희망은 순식간에 실망으로 바뀌었고 반짝이던 눈빛이 꺼져 들어갔다.“네.”강하리는 입술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고 문원진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뒤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지?”저쪽에서 구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르신, 우리 만날까요?” ...강하리가 집으로 돌아오자 손연지의 통화 소리가 들렸다.유난히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잠시 당황하다가 곧 웃음을 터뜨렸다.아마 소 교수겠지.그녀는 손연지를 슬쩍 바라보고는 돌아서서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나문빈은 일 처리가 매우 빨랐고 북유럽 에너지 웹사이트에 L국의 동북구 유전이 개발을 앞두고 있다는 뉴스를 올렸으니 이제 문씨 가문이 미끼를 물기만 기다리면 되었다.그녀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이것은 첫걸음에 불과했다.문씨 가문이든 구씨 가문이든 반드시 피의 대가를 치르게 할 거다!손연지는 전화를 끊고 설렘 가득한 얼굴로 다가와 강하리를 안았다.“하리야! 나 소 교수님이랑 데이트하기로 했어!”강하리는 깜짝 놀랐다.“정말? 언제?”손연지는 윙크했다.“오늘 밤에.”강하리는 얼굴을 찌푸렸다.“둘만?”손연지는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이지, 안 그러면 왜 데이트겠어?”강하리가 슬쩍 눈을 번뜩였다.“정말 노민우 씨는 별로야?”손연지는 입을 삐죽거렸다.“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미친놈은 아니야!”강하리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알았어, 그럼 소 교수님하고 데이트 잘해. 하지만 명심해, 술은 안 돼. 술 먹기 전에 주소 알려주면 내가 데리러 갈게.”손연지는 서둘러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넌 집에서 푹 쉬어, 알겠지?”손연지가 나간 뒤 강하리는 씻고 나와서 컴퓨터를 켰다.컴퓨터에는 주해찬이 다운해 놓은 영화 몇 편이 있었고 강하리가 무심하게 화면을 들여다보는데 잠시 후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손연지의 전화인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나문빈이었다.“정양철이 구정우와 함께 프로젝트를 입찰할 건데 내일 오전에 공개 입찰이 있으니 참석하려면 지금 당장 B시로 와야 해요.”강하리는 멈칫했다.“그걸 왜 지금 말해요?”“누가 우리 쪽으로 오는 정보를
그들의 대화를 듣던 노민우의 표정이 굳어지며 문을 열고 곧장 걸어 들어왔다.소영준은 노민우를 보고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노민우 씨, 오늘 웬일로 여길 다 왔네요?”노민우가 웃었다.“마침 이렇게 만나네요. 소 교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왔어요.”소영준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영광이네요, 한잔하실래요?”노민우가 테이블에서 술잔을 하나 들어 올리는데 그가 마시기도 전에 옆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소리쳤다.“엇, 노민우 씨. 그 술잔은 당신을 위해 준비한 게 아니에요.”노민우가 멈칫하다가 곧 웃으며 말했다.“오호, 이 술은 특별한 건가 봐요?”남자가 히죽 웃었다.“오늘 소 교수님이 데리고 온 아가씨를 위해 준비한 거랍니다.”노민우의 얼굴에 싸늘한 기색이 스쳐 지나가며 술잔을 들어 올린 그는 무심하게 소영준의 얼굴에 부어버렸다.“미안해요, 손이 미끄러졌네요.”옆에 있던 여자와 농담을 주고받던 소영준은 갑자기 노민우가 술을 들이붓자 순식간에 안색이 어두워졌지만 그래도 노씨 가문의 체면을 봐서 화를 꾹 참았다. “노민우 씨, 뭐 하는 겁니까!노민우는 웃기만 했다. “이미 말했잖아요, 손이 미끄러졌다고.”그렇게 말하며 그는 와인 잔을 하나 더 집어 들었다.“소 교수님께 배상해 드리면 되잖아요.”소영준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졌지만 결국엔 노민우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테이블에서 휴지를 뽑아 얼굴을 닦은 뒤 와인 잔을 들고 노민우와 잔을 부딪치려는 순간 노민우가 이번에는 소영준의 바지에 술을 흘렸다.하필 액체가 중요 부위 쪽에 흘러내렸고 그제야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노민우, 너 이 자식...”소영준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노민우가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내리쳤다.“내가 뭐?”얼떨결에 맞은 소영준은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너한테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그런데 말을 꺼내기 바쁘게 그의 눈동자가 번뜩였다.“설마 손연지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지?”소영준은 손
“노민우, 한 번만 더 때리면 내가 너 가만 안 둬!”멈칫하던 노민우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영준은 이 틈을 타 노민우의 얼굴에 주먹 두 방을 날렸다.이미 시뻘겋게 물들어 있던 노민우의 얼굴은 순식간에 더욱 일그러졌다.그는 손연지를 힐끗 바라보다가 손을 들고 다시 소영준에게 주먹을 날렸다.손연지는 너무 화가 나서 그의 가슴을 때렸다.“너 미쳤어, 왜 소 교수님을 때려?”노민우가 차갑게 웃었다.“왜 때리겠어, 맞을 짓을 했으니까!”소영준은 옆에서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손 선생님, 앞으로는 감히 선생님과 데이트 못하겠네요.”그렇게 말한 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데 두 발짝도 떼기 전에 노민우가 그에게 발차기를 날렸다.“앞으로 또 손연지 건드리면 그땐 내가 너 죽여버릴 거야!”손연지가 서둘러 그를 끌어당겼다. “노민우, 그만해!”노민우는 손연지를 바라보며 화를 냈다.“저런 쓰레기 같은 자식이 뭐가 그렇게 좋아?”그렇게 말한 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손연지는 너무 화가 났고 소영준에게 다가가 사과를 하려는데 노민우가 갑자기 돌아와서 손연지를 잡아끌었다.밖으로 나온 뒤에야 노민우는 손연지를 노려보았다.“이제부터 소영준이랑 말도 섞지 마.”말을 마친 그가 잠시 멈칫했다.“아니, 앞으로 중앙병원에 출근도 하지 마. 그 쓰레기한테서 멀어져.”손연지는 화가 났다.“노민우, 오늘 제대로 미친 거야?”노민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소영준이 네 술에 약을 탄 건 알고 있어? 손연지, 내가 조금만 늦게 왔어도 넌 오늘 큰일 났어!”멈칫하던 손연지가 반박했다.“말도 안 되는 소리, 소 교수님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하지만 전보다 한결 낮아진 목소리였다.노민우는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못 믿겠으면 룸 안에 있던 사람들한테 가서 물어봐. 손연지, 소영준한테 미쳐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손연지는 조금 씁쓸한 표정이었다.“입 다물어.”말을 마친 그녀가 돌아서서 가려는데 노민우는 곧장 그녀에게
“말도 안 돼. 우리 시연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해? 시연이는...”“주해찬 씨로부터 이미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습니다.”말을 마친 기자는 두 어르신을 향해 입술을 삐죽이며 자리를 떠났고 노부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무슨 말이야? 당신들 이 영상을 어디에 내보내려는 거야? 당신들...”이정숙이 기자를 따라잡기도 전에 기자와 카메라맨은 함께 차를 몰고 떠났다.이정숙은 화가 나서 발을 굴렀다. 만약 이 일이 알려지거나 인터넷에 영상이 공개되면 이시연이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나.“태형이한테 전화해. 이 일이 알려지면 태형이도 망신당할 거야.”진강석이 서둘러 말하자 이정숙은 망설이지 않고 서둘러 진태형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진태형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전화를 받은 강하리가 서둘러 회사로 달려가는데 그녀가 도착하기도 전에 기자들이 먼저 와 있었고 기자 앞에서 말문이 막힌 진강석 내외를 보며 한참 후 그녀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번졌다.누가 시킨 건지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구승훈 말고는 이렇게 할 사람이 있을까.강하리는 문득 이제 정말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는 걸 느꼈다.여전히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그녀의 모든 안정감은 이 남자로부터 온다는 것을.마치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 앞에 굳건히 버티고 서 있어 줄 것 같았고 두 사람이 함께 있는 한 어떤 고통과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강하리는 운전대를 꽉 움켜쥐고 알 수 없는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휴대폰을 꺼내 구승훈에게 전화를 걸었다.“강 대표님, 시키실 일이라도 있나?”시선을 떨군 강하리가 결심한 듯 말했다.“구승훈, 혼인신고 하러 가자.”전화기 너머 구승훈의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그래.”그가 웃으며 답했다.“내가 데리러 갈 테니 기다려.”강하리는 구승훈과 통화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갔는데 문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하리야, SNS 봐!”강하리의 발걸음이 멈칫했다.“왜 그래? 또 무
JM회사 아래층에서 늘 정교하게 치장하던 석미란은 지금 전혀 화장하지 않은 상태였다.창백한 안색에 피곤함을 감추기 어려웠지만 눈빛에는 증오가 가득했다.불과 며칠 만에 아들은 유치장에 들어갔고 남편은 해당 부문에서 조사받고 있다.멀쩡하던 가정이 여자 하나 때문에 파괴되었는데 이젠 그 여자에게 사과까지 해야 한다.석미란은 내키지 않았고 여전히 강하리가 미웠다.어디선가 튀어나온 잡종이 어느새 그녀의 머리 위로 기어오르고 있었다.석미란의 뒤에 서 있던 석연란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석미란과 석연란 외에도 진씨 가문 어르신 내외가 경호원 몇 명까지 대동하고 찾아와 열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함께 JM회사 입구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왜 아직도 안 와?”이정숙이 다소 짜증스럽게 물었다.원래는 곧장 심씨 가문으로 가서 강하리를 만나고 싶었지만 놀랍게도 강하리가 심씨 가문에 없어서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회사까지 찾아왔다.하지만 한 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여전히 강하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이정숙의 말애 석씨 자매의 표정도 한층 더 일그러졌다.누가 봐도 강하리가 일부러 나타나지 않는 게 분명했다.“누구 앞에서 텃세를 부리는 거야!”이정숙의 얼굴이 차가워지면서 당장이라도 화를 낼 기세였고 진강석이 막 말을 하려는 순간 앞에 차 한 대가 멈춰 섰다.다들 강하리가 오는 줄 알았지만 차에서 내린 사람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다가올 줄이야.그들의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기자가 일행의 앞으로 다가왔다.“여러분들은 인터넷에서 강하리 씨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사과하기 위해 여기 계신 건가요?”그 말에 석미란의 표정이 확 바뀌었고 그녀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기자가 다시 물었다.“게다가 얼마 전에 강하리 씨 출신에 대한 루머를 퍼뜨려서 고소당해 법원까지 갔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석미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무, 무슨 헛소리에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 망할...”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석연란이 옆에서 끌어당겼고 석미란
다시 입을 연 구승훈의 목소리가 살짝 갈라져 있었다.“자기야, 한 번만 더 불러봐. 응?”강하리의 표정이 어색함으로 물들었다.조금 전에는 몰랐는데 이제야 얼굴에 열기가 치솟는 게 느껴졌다.“내 남편이라고.”그녀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했고 구승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네 남편은 나잖아?”강하리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를 바라보았다.“누가 나랑 결혼하면 그 사람이 내 남편이지.”구승훈은 홧김에 그녀를 콱 끌어안았다.“우리 강 대표님이 주방에서 하고 싶나 봐?”남자가 말하며 그녀의 옷 속으로 손을 뻗자 놀란 강하리가 순간적으로 몸부림을 쳤다.두 사람은 부엌을 난장판으로 만들었고 손연지가 내려와서 그 광경을 목격했다.그녀는 부엌에 있는 두 사람을 조용히 바라보며 말로 표현 못할 감정을 느꼈다.부러움?아마도 부러운 거겠지.하지만 사실 그녀는 강하리의 결단이 더 부러웠다.구승훈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도 강하리는 망설임이 없었다.매번 노민우와 깨끗이 손절하려고 마음먹었어도 몇 번이나 다시 엮이고 타협하는 자신과 달리.그래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거다.손연지는 마음이 답답했다. 사실 누구도 탓할 수가 없었고 탓하려면 결단력이 부족했던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심호흡한 뒤 마음을 추스르며 아래로 내려갔고 강하리는 손연지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황급히 구승훈에게서 떨어졌다.“연지야, 아침 뭐 먹을래?”손연지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애정 행각에 이미 배가 불러.”강하리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밥 먹고 연정이 데리러 갈 거야.”손연지의 눈빛이 순식간에 밝아졌다.“좋아. 내가 연정이 선물도 챙겨왔어.”하지만 그다음 순간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그녀의 얼굴에 머금은 미소엔 씁쓸함이 섞여 있었다.강하리는 그걸 분명히 알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때론 본인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것들이 있다.지금 손연지를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손연지를 돌봐주는 것뿐이고 손연지가 몸을 추스르고 나면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었다.
구승훈은 강하리가 보낸 메시지를 보며 세 식구라는 단어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다가 피식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좋아.]그의 의견을 묻다니, 어떻게 감히 싫다고 하겠나.답장을 마친 구승훈은 욕실로 들어갔고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쉬지 않고 울리는 휴대폰을 바라보던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전화가 끊어지려고 할 때쯤 통화 버튼을 눌렀다.전화기 너머에서 구동근의 연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정안그룹과 에비뉴를 강하리한테 다 넘겼어?”구승훈은 비웃었다.“네, 왜요? 불만 있으세요, 어르신?”구동근은 그의 말에 피를 토하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구승훈, 그건 다 우리 구씨 가문 재산이야! 네가 뭔데 그 여자한테 줘!”강하리가 심씨 가문 출신이라는 사실을 안 후 구동근은 더 이상 구승훈과 강하리의 만남을 반대하지 않았고 심지어 몸을 굽혀 심씨 가문에게 사죄할 수도 있었지만 구씨 가문의 재산이 그렇게 쉽게 넘어갔다는 사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게 다 구씨 가문의 재산이었는데!이 망할 자식이 그렇게 쉽게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다니!구승훈은 여전히 나른한 목소리로 가볍게 웃었다.“왜요? 벌써 잊으셨어요? 구씨 가문 재산은 어르신 귀한 손주가 다 망쳐버렸어요.”“너!” 말을 꺼내지 않으면 모를까, 그 말을 하자 구동근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차갑고 냉정한 손자가 한 여자 때문에 자기 가족을 내팽개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구승훈은 웃음을 터뜨리며 목소리가 점점 더 차가워졌다.“다시는 나랑 강하리 사이 방해하지 마세요. 저한테도 할아버지가 꼭 필요한 건 아니니까요.”구승훈이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자 저쪽에서 구동근은 너무 화가 나서 전화기를 부술 뻔했다.전화를 끊자 옆에 서 있던 구씨 가문의 둘째가 다소 불안한 듯 물었다.“아버지, 어떻게 됐어요? 정말 그 두 회사를 강하리한테 다 줬대요?”구씨 가문의 둘째는 노인의 표정을 보고 순간적으로 불안해졌다.“그놈이 무슨 권리로 두 회사를 망할 년에게 넘겨줘요? 거기
거칠게 원하던 구승훈이 마침내 움직임을 멈춘 순간 강하리는 비틀거렸고 구승훈이 단숨에 그녀를 품에 낚아챘다.“너무 좋아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겠어?”강하리는 너무 화가 나서 그를 발로 차버리고 싶었다.“좋기는 개뿔!”구승훈은 웃으며 강하리를 안고 화장실로 들어갔다.“응, 나도 좋았어.”“...”개자식과 더 실랑이를 벌일 기운도 없었다. 뻔뻔한 걸로는 절대 그를 이길 수 없었다.구승훈은 강하리를 씻겨주고 그녀를 안아 침대로 돌아왔다.강하리는 손가락을 들 수 없을 정도로 피곤했지만 그래도 꿋꿋이 옷을 끌어당겨 입었고 구승훈은 그녀의 움직임을 보며 눈썹을 치켜들었다.“어디 가?”“연지 보러 갈 거야. 오늘 밤엔 연지랑 잘 거야.”구승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강하리, 넌 내 아내야.”강하리가 그를 슬쩍 보았다.“아직 결혼 안 했잖아.”구승훈이 그녀를 껴안았다.“그러면 내일 혼인신고 하러 갈래?”강하리의 몸이 경직되며 문득 지난번에 구승훈이 혼인신고 하자는 말을 했던 게 떠올랐다.그러다 그녀에게 돌아온 건 심미현의 죽음과 오지 않는 구승훈이었다.강하리의 몸이 눈에 띄게 굳어지자 구승훈은 무거운 마음으로 그녀를 품에 안았다.“더 이상 지난번 같은 일은 없어.”강하리가 그를 돌아보았다.“만약 또 그런 일이 생기면...”구승훈의 짙고 검은 눈동자에 밝은 빛이 비쳤다.“또 그런 일이 생기면 난 고자가 될 테지만 걱정하지 마, 강 대표님. 내가 손으로도 잘 모실 수 있으니까.”“... 닥쳐!”말을 마친 그녀가 잠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가다가 두 걸음도 못 가서 갑자기 고개를 돌려 구승훈을 바라보았다.“또 콘돔 안 썼어?”강하리는 말하며 지난번에도 구승훈이 콘돔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구승훈, 미쳤어? 난 지금...”구승훈이 그녀의 턱을 그러쥐었다.“걱정하지 마, 임신 안 해.”강하리는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는 눈빛으로 구승훈을 바라봤고 구승훈은 손으로 강하리의 턱을 어루만지기만 했다.“나 묶었어.”
손연지는 식사를 마치고 잠을 청하기 위해 방으로 돌아갔다.아직 몸조리가 필요한 그녀는 도저히 찾아갈 데가 없어 결국 강하리를 찾으러 B시까지 왔다.강하리는 구승재에게 전화를 걸었다.손연지는 자신이 겪은 일을 몇 마디로 설명했지만 강하리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다.구승재도 별말 없이 바로 손연지에 대해 알아본 사실을 강하리에게 전했고 대충 손연지가 말한 내용과 거의 같았지만 몇 가지 세부적인 내용이 빠져 있었다.손연지가 병원에서 손가락질받고 있었다는 것, 노민우의 약혼녀라는 사람이 손연지를 머물 곳도 없게 궁지로 내몰았다는 것 등등...손연지는 노민우를 그냥 두지 않았다고 했지만 사실은 노민우의 어머니가 노민우 몰래 손연지를 노씨 가문으로 데려와 심한 모욕을 준 것뿐이었다.그래도 손연지가 고분고분 말을 듣는 성격은 아니라 노씨 가문에서 한바탕 소란을 피웠고 상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손연지에게 수표를 던지며 연성을 떠나라고 했다.손연지는 자신이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했고 노민우의 결혼을 파탄 낼 생각도 없었기에 처음엔 연성을 떠나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노민우의 어머니가 그녀의 부모님까지 찾아갔다.강하리는 죄책감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손연지에게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는데도 그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구승훈이 강하리를 뒤에서 껴안았다.“나를 이렇게 걱정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강하리는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어떻게 같아?”구승훈은 납득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뭐가 다른데?”강하리는 시선을 떨구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많은 일을 겪었지만 그녀를 정말로 기쁘게 만드는 건 별로 없었다.어릴 적 강찬수의 가정 폭력부터 나중에 구승훈에게 받은 상처까지,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손연지가 곁에 있었고 그녀에게 손연지는 가족이었다.강하리는 대답이 없었고 구승훈도 더 묻지 않아 거실은 무척 조용했다.하지만 조용한 시간은 얼마 가지 않았고 구승훈이 귓불을 깨물며 그녀의 몸을 달구기 시작했다.강하리는 조금 긴장한
구승훈은 강하리를 다소 시무룩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도 결국 순순히 입을 다물었고 손연지는 구승훈을 보고 웃었다.구승훈은 굳어진 표정으로 두 사람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다가 모퉁이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강하리를 한 손으로 잡아당긴 뒤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오늘 밤에 보상해 줄 거야?”강하리는 순간 조금 전 당황스러운 장면이 떠올랐고 손연지가 지금 슬픈 상황에서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싶지 않았다.“가만히 있어.”구승훈의 입술이 그녀의 귀에 닿았다.“그러면 손으로만 하는 건?”남자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가로질러 그녀가 승낙할 때까지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이 꽉 감싸자 강하리는 결국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이따가 내려가선 얌전히 있어.”구승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아내 말은 들어야지.”손연지는 식사 내내 먹는 둥 마는 둥 했고 식사가 끝날 무렵 강하리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노민우였다.강하리는 손연지를 바라보며 바로 전화를 끊었고 손연지는 못 본 척했지만 표정이 한층 어두워졌다.하지만 잠시 후 구승훈의 휴대폰도 울렸고 그는 눈썹을 치켜들며 전화를 집어 든 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바깥에 도착하고 나서야 구승훈은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노민우가 아닌 노민준의 전화였고 그는 뒤를 돌아보고는 전화를 받았다.“그 주사 효과가 어때?”구승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괜찮아. 지난 이틀 동안 상태가 전보다 훨씬 안정됐어.”거짓말이 아니었다. 구승훈은 노민준이 건넨 주사를 맞고 나서부터 지난 이틀 동안 단 한 번의 이상도 느끼지 못했고 그것이 그가 오늘 유난히 기분이 좋았던 이유였다.노민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포기하지 말라고 했잖아.”짧게 대꾸한 구승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말을 마친 노민준이 잠시 멈칫했다.“참, 내 동생이 할 말이 있대.”곧이어 저쪽에서 노민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승훈아, 손연지는 지금 어때?”구승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네 여자를 왜 나한테 물어봐?”“승훈아, 나도 네가 강하리 씨
강하리는 사실 자신이 꽤 한심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거듭되는 상처에도 수없이 용서했다.마치 구승훈이 없으면 모든 게 그대로 멈춰버릴 듯이.구승훈이 사라져도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가지만 구승훈이 없는 세상이 되어버리고 그건 그녀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또 무슨 일이 생기면 난 당해도 싸.”강하리는 손연지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손연지는 다가와 강하리를 껴안았다.“구승훈 이 개자식이 전생에 우주라도 구한 거야?”강하리는 미소를 지으며 손연지의 어깨에 기대었다. 의지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위로에 가까웠다.“그러는 넌, 대체 무슨 일인데?”자기 일을 언급하자 손연지는 순식간에 흥미가 사라진 표정이었다.“별건 아니야. 사실... 하리야, 나 임신했었어.”강하리는 깜짝 놀랐다.“뭐? 그래서? 지금은 어떤데? 아기는?”손연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노민우는 다른 여자와 약혼하고 있었어. 노민우에게 말할 생각도 없었고 사실 아이도 남길 생각 없었어. 노씨 가문이나 노민우에겐 관심 없어. 40일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술하려고 했는데 그날 밤 내가 당직일 때 노민우 약혼녀가 병원에 찾아와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난동을 부렸어. 병원에서도 노씨 가문에 밉보일 수 없어서 날 해고했어.”강하리의 표정이 차가워졌다.“그러고 나서?”손연지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그리고 다음 날 아이를 지웠는데 노민우가 어떻게 알았는지 낙태한 걸 알고는 나한테 화를 냈어.”강하리의 가슴에 고통이 밀려왔다.노민우가 약혼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때 손연지에게 연락했을 때만 해도 그녀는 멀쩡했었다.고작 얼마나 됐다고 노민우 그 개자식이 손연지를 이렇게 힘들게 한 건지!“왜 나한테 말 안 했어?”손연지는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웃었다.“말해도 달라질 게 뭐가 있어. 그래도 노민우를 그냥 두지는 않았어. 자기가 뭐라고 나한테 화를 내? 약혼까지 했는데 내가 아이를 낳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노씨 가문에 찾아가서 업무에
강하리의 눈빛이 번쩍이며 구승훈의 말에 담긴 의미를 순식간에 알아차렸다.그가 오늘 인터넷 속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녀에게 매달리는 역할을 자처했으니 이젠 그녀가 자신을 데려가야 한다는 말이었다.강하리는 구승훈의 목에 팔을 걸고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속삭였다.“보답이라, 문제없지. 구 대표님이 우선 그 쓸데없는 여자들 먼저 해결하면!”이번 일에 진시연이 연루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석미란이 심준호에게 고소당한 이후 석연란조차 한동안 잠잠했고 그녀가 대외적으로 자신에 대한 악담을 퍼뜨릴지 몰라도 온라인에 증거를 남기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니 누가 이 모든 일을 주도하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개자식, 하여간 여자가 너무 많이 꼬인다.강하리는 계속해서 구승훈과 사무실에서 꽁냥거리진 않았다.집에 손연지가 있었기에 가는 길에 백아영에게 전화를 건 강하리는 구승훈을 따라 별장으로 돌아왔다.어두운 별장을 보며 강하리는 손연지가 아직 자는 줄 알았다.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인공지능이 불을 켜자 갑자기 별장 전체가 환하게 밝아졌다.강하리가 가방을 내려놓고 손연지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가려는 순간 갑자기 구승훈이 뒤에서 안았고 곧이어 그녀가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소파에 쓰러뜨렸다.강하리가 말하기도 전에 구승훈은 그녀의 입술을 막았고 남자의 손이 불순하게 그녀의 다리를 어루만졌다.“자기야, 다리 예쁘다.”강하리는 남자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챘다.이 개자식!머릿속엔 그 짓밖에 없는 건지.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그녀는 손연지에 대해 말하는 것도 잊어버렸다.“당신... 읍...구승훈은 거침없이 그녀의 스타킹을 찢어버리고는 그녀의 손을 끌어 벨트로 가져갔다.“도와줘, 자기야.”강하리의 얼굴이 화끈거렸다.“일단 기다려.”구승훈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종아리를 잡고 부드럽게 주물렀다.“못 기다려.”강하리는 그를 세게 밀었다.“아니, 내 말은...”“어머!”강하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계단 너머에서 손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