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승훈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강 부장이 뺏은 거 아니야?”“당신 솔로 아니셨나요?”남자의 눈을 마주한 강하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구승훈에게 이어서 말했다.“솔로이신데 송유라 씨 남자를 뺏었다는 말은 대체 어디서 나온 말일까요?”“강 부장, 앞으로도 영원히 지금처럼 떳떳하길 바라.”코웃음을 치며 말하는 구승훈의 말에 강하리는 대꾸하지 않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사실 자신이 하나도 떳떳하지 못하다는 건 오직 그녀만 알고 있을 것이다. 비록 구승훈이 솔로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했지만, 그의 마음은 송유라를 향해 있었다. 구승훈은 강하리를 데리고 마구간을 한 바퀴 돌며 몹시 사나워 보이는 말 한 마리를 골랐다.“진짜 안 탈 거야?”구승훈의 물음에 강하리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녀는 승마를 배운 적이 있었다. 구승훈은 그녀에게 승마, 펜싱, 골프 모든 것을 가르쳐줬었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 말을 타고 싶지 않았다.“내가 태워줄게.”눈썹을 찌푸린 강하리가 미처 거절할 새도 없이 구승훈이 안아서 말 위에 앉혀 놨다. 말에 올라탄 구승훈이 미끈한 다리를 구르자 말이 맹렬히 질주했다.“승훈 씨!”겁에 질린 강하리가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승마를 배왔다고는 하지만 너무나 빠른 속도를 감당할 수 없었다. 팔을 그녀의 허리에 두른 구승훈이 옅은 웃음을 터뜨리자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뭐가 무서워? 날 꽉 잡아.”강하리가 남자의 손을 꼭 잡자, 남자는 자기 손을 빼서 그녀의 손을 감쌌다. 구승훈은 그녀를 데리고 승마장 두 바퀴를 돌고 나서야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언덕 앞에 이르자 그는 마침내 말을 멈춰 세웠다. 저 멀리 석양이 이미 하얀 구름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강하리는 넋 놓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그와 함께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이런 장면을 그녀는 수없이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이런 상황에서 실현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강하리.”구승
강하리가 나오는 모습을 본 구승훈은 이쪽으로 걸어왔다.“힘들어?”“괜찮아요.”“그럼 조금 있다 같이 밥 먹으러 가.”흠칫 놀란 강하리는 몸이 금세 굳어버렸다.“대표님, 전 심 대표님이랑 돌아가면 돼요.”“강하리, 내 차에 앉기 싫어?”구승훈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하자 강하리는 씁쓸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송유라 씨를 만나러 가는 거 아니었어요?”“그냥 밥만 먹을 거야. 같이 먹고 돌아가자.”“그렇지만 전 송유라 씨와 함께 있는 게 싫은데요. 대표님도 아실 거 아니에요? 송유라 씨도 사실 저를 몹시 미워한다는 걸.”강하리가 떨떠름한 기색을 내비치자 구승훈이 냉소를 흘렸다.“그럼 강 부장이 다른 남자 차에 타는 걸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겠네.”“시내에 도착하면 내려줘요. 전 택시를 타고 돌아갈게요.”구승훈은 더는 말이 없었다. 동의한 건지 아닌지도 모른 채 강하리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심준호가 다가와서 작별 인사를 하며 겸사겸사 물었다.“언제 연성으로 돌아갈 계획이야?”사실 이번 출장에서 해야 할 일은 이미 다 마무리한 상태였다. 하지만 구승훈은 강하리를 힐끗 쳐다보고는 말했다.“두 날 더 있을 거야. 강 부장이랑 좀 더 놀다 갈 거야.”“그럼 내일 점심에 우리 집에 와서 밥 먹을래? 부모님이 너를 많이 보고 싶어 하시거든. 하리 씨도 같이 와요.”강하리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진심이 가득 담긴 심준호의 눈을 보고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몇 마디를 주고받고 헤어졌다. 강하리와 구승훈이 가고 나서 계속 말이 없던 심예진이 갑자기 한마디를 내뱉었다.“오빠, 이 사진 봐. 사진 속 하리 씨 분위기 미현 언니랑 정말 닮았어.”심준호가 다가가서 사진을 보니, 바람을 맞으며 저녁노을 아래에 서 있는 사진 속 강하리는 훨씬 부드럽고 온화해 보였다. 사진 속의 심미현이랑 분명 어딘가 닮아 있었다. 한참을 보던 심준호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왠지 강하리가 낯익다 했더니 심미현과 조금 닮아서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안현우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세 사람 모두 뻔히 알고 있었다. 구승훈의 얼굴은 살얼음이라도 낀 것처럼 차갑게 굳어 있었다. 사실 예전에는 안현우의 이런 모욕적인 발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근본이 저열한 인간이니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볼 때면 마음이 근질거리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시샘하고 질투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구승훈은 지금 꾹 참고 있는 강하리의 작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마음에 불쾌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안 대표, 만약 한가해서 할 일이 없는 거라면 내가 다시 일거리를 만들어 줘?”간신히 표정 관리를 한 안현우는 한참이 지나서야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승훈아, 고작 이런 년 때문에 친구와 사이가 틀어질 필요는 없잖아?”“있고 말고는 내가 판단할 일이야. 안 대표가 그래도 여전히 시도해 보고 싶다면 내가 제대로 상대해 주지.”흥, 콧방귀를 낀 안현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구승훈에게 시달릴 때의 그 고통을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구승훈이 가볍게 던진 한마디로 안현우는 피를 토할 것 같은 고통에 몸부림쳐야 했다. 이 남자는 그들 무리에서도 속내를 알 수 없고 무자비하기로 명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그가 강하리를 좋아한다고 말한다면 안현우는 여전히 믿지 못했다. 구승훈, 이 남자는 쉽게 마음이 흔들릴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송유라도 있는데 그가 어떻게 강하리를 좋아할 수나 있을까? 그를 적대한 이유는 아마도 남자의 소유욕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물건을 본인은 싫어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염두에 두는 것이 못마땅할 뿐이다.“그냥 해본 말이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 승훈아.”구승훈은 그를 흘끗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송유라는 구승훈의 옆에 앉아 있는 강하리를 보고 미소를 머금었던 얼굴이 금세 굳어 버렸다.“강 부장님도 왔네요?”그녀의 말에 강하리는 대꾸하지 않았다. 송유라는 입술을 삐죽였다.“오빠, 왜 강 부장이 온다고 말해주지 않았어요?”기분이 별로인 구승훈은 송유라를
구승훈은 그녀의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어디 불편해?”“불편하면 먼저 가라고 할 거예요?”확실히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저 마음만 있을 뿐 그녀는 그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약 가져다 달라고 할 테니까 밥 먹고 가.”강하리는 웃는 얼굴로 그의 손을 뿌리치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구승훈이 왜 굳이 그녀에게 이 식사 자리에 남으라고 하는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려고? 아니면 송유라와 자신이 얼마나 사이가 좋은지 보여주기 위해서?’밖으로 나온 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룸 안, 구승훈은 송유라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왜 자꾸 저 여자 괴롭히는 거야? 재미있어?”그 말에 송유라는 펄쩍 뛰었다.“괴롭히긴 누가 괴롭혀요? 난 분명 좋게 좋게 얘기했다고요. 언짢은 얼굴로 퉁명스럽게 말한 사람은 강하리예요.”“그냥 못 본 척하면 될 거 아니야?”그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그럼, 오빠는 저 여자 왜 데리고 온 거예요? 왜 나한테 이러냐고요? 나 좋아한다고 했었잖아요.”“송유라, 말은 똑바로 해야지. 애초에 먼저 헤어지자고 한 사람은 너였어.”“아직도 나한테 화난 거예요?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해서?”송유라는 눈시울을 붉히며 물었다. “아니.”사실 그 일에 대해 화난 건 아니었다. 감정이라는 건 원래 그 사람의 자유니까. 송유라가 떠나기를 원한다면 그는 굳이 붙잡을 생각이 없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갔다.“잠깐 나갔다 올게."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봤죠? 구 대표가 점점 강하리에 대해 신경 쓰고 있는 거.”옆에 있던 안현우는 불난 집에 부채질이라도 하듯 한마디 내뱉었고 그의 말에 송유라의 안색은 더더욱 어두워졌다. 사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그녀는 눈치챌 수 있었다. 구승훈이 강하리에 대해 점점 더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최근 들어서는 그가 강하리를 좋아하고 있다는
그 당시, 송유라가 올린 사진 때문에 인터넷은 난리가 났었다. 하지만 그 사진은 사실 오래전부터 찍혀 있던 사진이었고 막 회의장에 도착했을 때 찍힌 사진이었다. 송유라는 단지 적당한 시기에 그걸 인터넷에 뿌렸을 뿐이다. 그녀는 강하리가 구승훈을 찾아가 따지고 성질을 부리기를 바랐다. 구승훈 같은 성격이라면 여자가 끊임없이 따지고 성질부리는 걸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몇 번 말다툼이 있다 보면 그는 분명 싫증을 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승훈 오빠는 널 전혀 신경 쓰지 않아. 넌 네 신세가 불쌍하지도 않니?”가슴이 답답해진 강하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실 그녀는 송유라의 말을 그다지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만은 잘 알고 있다. 그 사진이 언제 찍혔던지 구승훈의 묵인이 없었다면 송유라가 그런 상황에서 트위터에 사진을 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가 그 일에 대해 신경 썼다면 아마 진작에 그 게시물을 삭제하도록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게시물은 아직도 인터넷에 버젓이 걸려 있다. 두 사람이 화해하지 않았더라도 두 사람 사이에 다른 사람은 끼어들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분명히 보여주는 듯 말이다. 강하리는 깊을 숨을 들이마시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송유라, 나랑 구 대표가 어떻게 되든 그건 우리 두 사람 사이의 일이야. 그 사람이 날 신경 쓰든 안 쓰든 그건 너랑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네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두 사람 사이를 간섭할 수 있는지 모르겠네?”웃으며 말하는 강하리를 보고 송유라는 이를 악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송유라한테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전 여자친구의 입장에서 그것도 구승훈이 스스로 자신은 솔로라고 밝힌 이 시점에서 그녀에게 무슨 자격이 있겠는가?“그냥 네가 불쌍해 보여서. 오빠 곁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명분도 없이. 역시 마음이 없는 사람한테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니까. 강하리, 오빠한테 넌 그냥 섹스 파트너일 뿐이야.”그 말을 들은 강하리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진
다행히 저녁 식사는 이내 끝이 났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 송유라가 갑자기 놀러 가고 싶다고 입을 열었다. 구승훈은 아무 말도 없이 강하리만 쳐다보았다.“난 안 될 것 같아요. 세 사람만 놀러 가요.”“승훈이 넌?”안현우가 물었다.“좀 피곤해. 다음에 하자.”나른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그는 많이 피곤한 것 같았다. 송유라는 입을 삐죽거리더니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잠시 후, 밖으로 나오던 그들은 마침 정주현과 마주쳤다. 정주현은 그들보다 나이가 어렸다. 양복 차림이 아닌 캐주얼한 옷을 입고 그는 활기찬 소년의 모습이었다. 강하리를 발견한 그가 눈빛을 반짝거렸다.“강하리 씨.” 그가 그녀한테 먼저 인사를 건네고는 그제야 구승훈을 향해 입을 열었다.“구 대표님,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반가워요.”한편, 강하리는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얼굴이 굳어진 구승훈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그러나 정주현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강하리만 쳐다보았다.“하리 씨,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요.”“조금 피곤해서요. 미안하지만 먼저 가볼게요. 그럼, 이만.”말을 마친 그녀는 이내 자리를 떴다. 정주현은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그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고는 그제야 구승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어 그는 구승훈 옆에 찰싹 붙어있던 송유라를 힐끗 쳐다보았다. “구 대표님, 대표님과 강 부장님 두 분 사귀는 사이 아니죠? 아니라면 제가 강 부장님한테 대시할 생각이거든요.”그 말에 구승훈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차갑게 웃었다.“정주현 씨, 남의 여자는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걸 모르는 겁니까?”말하는 그의 눈빛에 싸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가뜩이나 기분이 안 좋았는데 정주현의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더 안 좋아졌다.사실 정주현은 구승훈이 조금 두려웠다. 구승훈이라는 사람은 상류층에서 신 같은 존재였다. 그의 아버지뻘 되는 사람이라도 젊은 구승훈 앞에서는
그의 키스에 깜짝 놀란 강하리는 그를 밀어냈다.“승훈 씨.”이곳은 레스토랑 입구의 주차장이었고 오가는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 그러나 구승훈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고 그녀에게 반항할 여지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키스는 화가 잔뜩 난 사람처럼 거칠었다. 오늘 밤, 자신이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와 이러고 싶지는 않았다.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그녀는 있는 힘껏 발버둥 쳤다.“강하리, 계속 발버둥 칠래?”그의 싸늘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려왔고 그 소리에 그녀는 몸이 뻣뻣해졌다.“여기서 이러지 말아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애원했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그녀에게 어찌할 생각이 없었다. 잠시 후, 정주현이 자리를 뜬 것을 확인한 그는 바로 강하리를 안아 차에 태웠다. 차에 올라탄 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구승훈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는 시동을 걸었다.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그녀를 문으로 있는 힘껏 밀어붙였다. 미친 듯이 몰아치는 그의 키스에 그녀는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고 거침없이 그의 키스에 호응했다. 이 남자 앞에서 반항은 아무 소용이 없었고 그녀를 더 힘들게 할 뿐이었다.강하리는 팔을 뻗어 그의 목을 감싸고는 까치발을 들고 그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흠칫하던 구승훈은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옷이 흐트러지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후끈 달아올랐다. 그는 단번에 그녀의 옷을 찢어버렸다. 쌀쌀한 기운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그에게 달라붙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구승훈은 피식 웃었다.“왜? 벌써 안달이 난 거야?”“추워요.”그는 그녀를 번쩍 안아 올리고는 그녀의 쇄골에 얼굴을 묻고 그녀를 거침없이 탐했다. “강 부장, 걱정하지 마. 곧 뜨겁게 만들어 줄 테니까.”이내 그가 그녀를 침대에 거칠게 내던졌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그의 입술이 또다시 그녀의 입술을 덮어버렸다.뜨거운 키스는 점점 아래로 향
“샤워요.”그녀가 한마디 툭 내뱉고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욕실로 들어갔다.욕실로 들어온 후,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왈칵 쏟았다.그동안 사실 그 아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많이 애를 썼다. 그러나 기억은 끌어안고 있을수록 그녀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내려놓으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오늘 밤, 그 남자가 또다시 그녀의 상처를 끄집어냈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에 그녀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뜨거운 물이 샤워부스에서 흘러내렸고 그녀는 뜨거운 물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자신의 몸을 감쌌다. 이렇게 해야만 마음의 고통이 조금 풀리는 것만 같았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지만 그녀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가슴이 찢어지지만 그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울었다. 구승훈에 대한 그녀의 사랑도 그렇다.처음에는 뜨겁고 강렬하고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하루하루 반복되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랑도 소리 없이 다 사라져 버린 것 같다.잠시 후, 그제야 마음이 가라앉은 그녀는 타올을 잡아당겨 몸에 둘렀다.욕실을 나가니 그가 담배를 손에 쥔 채 창가에 서 있었다.그녀를 발견한 그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욕실로 들어가 드라이기를 가지고 나왔다.“이리 와.”그녀는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고 그 모습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이리 오라고. 내 말 안 들려?”강하리는 앞으로 다가가 드라이기를 잡았다.“내가 할게요.”그러나 그는 손을 놓지 않았고 그녀를 자기 앞에 있는 의자에 앉혔다. 따뜻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그의 손이 지나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잠시 후, 머리를 다 말리고 나서야 그가 입을 열었다. “강하리, 이제 다시 그런 말 하지 마. 나 그런 말 듣기 싫어.”“내가 틀린 말 했어요? 사실이잖아요. 승훈 씨는 내가 승훈 씨한테 다른 걸 원하기를 바라는 거예요?”차갑게 말하는 그녀를 그는 힐끗 쳐다보았다.“그럼 내가 한 말 사실이라는 거야?”
사실 그동안 주해찬이 달라졌다는 건 느끼고 있었다.온화하고 따뜻했던 남자가 근래 왠지 모르게 강압적인 집착을 보였다.구승훈을 좋아하지 말라던 말도, 자기가 낫지 않으면 곁에 계속 있어 줄 거냐고 물었던 것도...다만 강하리는 그를 나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에 다리를 다쳐서 마음이 불안한 것이라고 여겼다.강하리는 손을 꽉 말아쥐었다.“무슨 오해가 있었던 건 아닐까?”피식 웃은 구승훈이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나쁜 놈이란 걸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그렇게 말한 후 그는 강하리를 밖으로 끌어당겼다.“어디 가?”“그 자식 만나러.”강하리가 걸음을 멈칫했지만 구승훈은 그녀를 안고 차에 태웠다.“가서 네 선배가 어떤 사람인지 만나봐.”강하리는 심호흡하고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언젠간 주해찬을 만나러 가야 했으니까.가는 길에 강하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구승훈은 마음이 괴로웠다.고작 주해찬 때문에 이렇게 괴로워할 가치가 있는 걸까.차가 경찰서 앞에 멈춰 선 뒤 구승훈이 갑자기 강하리를 끌어당기자 그녀는 얼굴을 찡그렸다.“왜 그래?”구승훈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가락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렸다.“이따가 꼭 왼손 보여줘.”“...”주해찬은 강하리만 기다린 것처럼 보였고 강하리는 유치장 문 앞에 서서 낮게 불렀다.“선배.”주해찬은 강하리를 바라보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하리야, 그래도 날 보러 와줘서 기쁘네.”강하리는 아무 말 없이 주해찬을 바라보았고 가뜩이나 조용했던 공간에 적막이 감돌았다.문득 주해찬의 시선이 강하리의 손으로 향했다.구승훈의 말처럼 한심하게 일부러 왼손을 보여주려던 건 아니지만 손가락에 낀 반지는 여전히 주해찬의 눈에 들어왔다.그가 피식 웃었다.“그 사람이랑 결혼해?”강하리는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이렇게 되물었다.“왜 그랬어요?”주해찬은 그녀와 시선을 맞추면서도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그가 대답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 때 주해찬이 쓴웃음을 지으며 갑자기 입을 열
강하리는 조용히 구승훈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 다시 물었다.“진심이야?”구승훈은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몸을 숙이며 다가갔다.“이런 걸로 농담 안 해.”강하리의 눈은 촉촉했고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좋아.”구승훈은 몸을 숙여 강하리를 껴안았지만 그녀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의 얼굴에 머금었던 미소가 말끔히 사라졌다.강하리와의 결혼...그가 얼마나 바라온 일인지 모른다.하지만 지금은... 구승훈은 고개를 숙여 강하리의 머리카락에 입맞춤했다.앞으로도 계속 멀쩡하게 지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강하리를 놓아줄 수 없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주해찬을 껴안고 있는 그녀를 봤을 때 얼마나 주해찬을 죽이고 싶었는지 아무도 모를 거다.자신이 죽더라도 다른 남자가 강하리를 건드리는 건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그렇다면 차라리 함께 손을 잡고 헤쳐 나가리라.결과가 좋든 나쁘든 적어도 곁에 강하리가 있으니까.다다를 그곳이 천국이든 지옥이든 다시는 이 손 놓지 않을 거다.강하리와 구승훈이 위층에서 내려왔을 때 구승재는 소파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다가 두 사람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황급히 휴대폰을 치웠다.“형, 하리 씨, 괜찮아요?”구승재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지만 이내 자신의 걱정이 기우라는 것을 알았다.형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고 강하리의 희고 깨끗한 얼굴은 어렴풋이 홍조를 띠고 있었다.이런, 또 애정행각을 봐버렸다.“아직도 안 갔어?”구승훈은 눈썹을 치켜들고 구승재를 바라보았다.“... 알았어, 갈게.”떠나기 직전, 그는 강하리와 구승훈을 돌아봤다.“저기 하리 씨, 앞으로 계속 형수님이라고 불러도 돼요?”강하리는 입술을 다물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세요.”구승재는 기쁜 마음으로 불렀다.“네, 형수님.”그러고는 힘찬 발걸음으로 떠나자 구승훈이 옆에서 혀를 찼다.“왜 나보다 쟤가 더 기뻐하는 것 같지?”강하리가 그를 흘겨봤다.“원래도 승재 씨가 당신보다 나한테 더 잘해줬어.”구승훈은 여자를
진태형은 뒤에 있는 저택을 돌아보았다.“내가 알아낼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 하리 잘 부탁해.”눈을 뜬 강하리는 아직 정신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몸을 살짝만 움직였는데도 곳곳에 불편함이 느껴졌다.순식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가워지는 걸 느끼며 얼굴의 핏기도 사라졌다.일이 벌어지기 전의 상황이 머릿속에 번뜩이자 이불을 걷어 올린 강하리는 자기 몸의 흔적을 내려다보며 이불을 꽉 움켜잡았다.지금 자신이 구승훈의 저택에 있다는 건 알지만 누가 자기 몸에 흔적을 남겼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찢어질 것 같은 통증에 다시 주저앉았다.마음속 불안감은 점점 더 커졌다.설마 구승훈이 그녀를 이렇게 다치게 했을까.그녀는 고통을 참으며 이불을 걷어내고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무심코 옷 한 벌을 몸에 걸친 뒤 비틀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구승훈이 막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창백한 얼굴로 계단을 내려오는 강하리가 보였다.“일어났어?” 웃음기 섞인 구승훈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강하리는 온몸을 감싸고 있던 차가운 기운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응, 일어났어. 어디 갔었어?”구승훈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가득했다.“일이 좀 있어서. 왜, 나 보고 싶었어?”강하리는 눈앞에 있는 남자의 장난기 어린 표정을 보고 불안했던 마음을 내려놓았지만 그래도 그에게 물었다.“구승훈, 당신 짓이야?”구승훈은 강하리를 바라보다가 그녀가 약에 취한 뒤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괜스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가 기억하지 못해서 다행이었다.구승훈은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가 발그레해진 눈가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내가 아니면 누구이길 바라는데?”강하리는 그의 어깨를 잡더니 갑자기 그의 턱을 콱 깨물었다.“미친 거야? 너무 아프잖아!”구승훈의 몸이 굳어졌다가 이윽고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널 안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어. 많이 아파? 가자, 내가 확인해 볼게.”강하리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줄곧 거실에 있던 구승재가 헛기침을
진시연은 진태형의 시선에 순간 마음에 찔렸지만 이내 다시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진태형의 곁으로 걸어갔다.“아빠, 화내지 마. 하리 씨 문제는 제대로 밝혀질 거야.”그렇게 말한 후 그녀는 석연란을 화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방금 내 동생에 대해 모함하는 말 전부 똑똑히 들었어요. 앞으로 다시 또 그런 말이 내 귀에 들리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석연란은 깜짝 놀랐다.“내가 한 말은 전부 사실이야. 스폰 받은 것 맞잖아!”“그 입 다물어요. 내 동생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정말 그랬다고 해도 사모님께서 하실 말씀은 아니죠.”진시연의 말은 마치 강하리가 정말로 그런 짓을 했다는 걸 인정하는 것처럼 들렸다.사람들은 눈을 번뜩이며 어느 정도 추측에 확신을 더하는 모습이었다.진태형이 고개를 돌려 진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아빠, 걱정하지 마. 하리 씨 일은 우리 진씨 가문 일이잖아.”진태형은 그녀를 바라보다 돌아섰다.“이번 일은 철저히 조사해서 관련된 그 누구도 그냥 두지 않을 겁니다.”진시연은 저도 모르게 양옆으로 늘어뜨린 손으로 주먹을 꽉 말아쥐면서도 이내 다시 진태형을 따라갔다.“아빠, 나 하리 씨 보러 갈래.”“그럴 필요 없어. 승훈이가 잘 돌봐줄 거야.”말을 마친 진태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진시연의 얼굴에는 억울함이 가득했지만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구승훈은 저택에서 나와 곧장 경찰서로 향했고 주해찬은 이미 진술을 마치고 유치장에 구금되어 있었다.소란스러운 소리에 고개를 든 그는 상대가 구승훈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 다시 시선을 바닥으로 보냈다.구승훈이 다가와 휠체어에 앉은 주해찬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공범이 누구야?”주해찬은 고개를 들어 그와 시선을 맞췄다.“구승훈, 아직도 모르겠어? 넌 하리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해. 네 곁에만 있으면 빈번하게 일이 생기잖아!”구승훈은 차갑게 웃었다.“난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지만 너처럼 해치지는 않아!”주
석연란의 말에 사람들이 표정이 확 바뀌었다.아무도 이런 가십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심씨 가문의 손녀, 진태형의 딸이 스폰을 받았다고?심씨 가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니 사람들은 믿지 못해도 저마다 좋지 않은 추측을 할 수밖에 없었다.다들 봤다시피 강하리의 외모는 아름다웠고 누군가 돈을 주고 취하고 싶어 하는 것도 당연했다.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약간의 경멸이 그들의 눈에 보였다.돈 많은 사람일수록 원래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든다.예전 같았으면 이 사람들이 강하리처럼 배경도 없고 뒷배도 없는 여자에게 눈길조차 주지도 않았겠지만 갑자기 심씨 가문의 조카이자 진태형의 딸이 되니 당연히 수많은 사람의 질투를 불러왔다.이제 석연란의 말까지 더해지자 순식간에 사람들은 싸늘하게 조롱하기 시작했다.“심씨 가문의 손녀라고 해서 얼마나 고귀한가 했더니, 그런 물건이었어? 같은 하늘 아래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 역겹네.”“어떻게 스폰까지 받지? 그러면 돈만 주면 아무 남자와 잔다는 말이잖아?”“모르지. 그러니까 이런 곳에서도 구 대표 몰래 남자를 찾은 거 아니겠어?”히죽거리는 사람들의 말 속엔 조롱만이 가득했고 석연란은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말에 의기양양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심씨 가문이 지켜준다고 해서 정말 머리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강하리를 철저히 망가뜨리겠다고 다짐했으니 반드시 해내리라.그때 누군가 석연란을 툭 쳤다.“또 어떤 정보가 있어요? 재밌는 일 있으면 공유 좀 하죠.”석연란이 콧방귀를 뀌며 말하려는 순간 뒤돌아보니 진태형의 무표정하고 차가운 얼굴이 보였다.순간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만 곧 다시 차갑게 웃었다. 어차피 다 사실만을 얘기했는데 무서울 게 뭐가 있나.“태형 씨, 방금 안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강하리랑 우리 해찬이가 무슨 짓을 했길래 구 대표가 그렇게 가요?”적나라한 의도가 담긴 말이었다. 강하리가 주해찬과 낯 뜨거운 짓을 해서 구승훈이 화가 났다는 뜻이다.사람들
강하리는 구승훈에게 안긴 채 올라가 샤워를 한 뒤 깊은 잠에 빠졌다.구승훈은 조용히 잠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그의 눈에는 복잡하게 억눌린 감정이 가득했다.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약을 챙겨 그녀의 몸에 난 잇자국에 조금씩 발라주었다.하는 내내 구승훈의 움직임은 부드러웠지만 이마에 툭 튀어나온 핏줄이 그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약을 다 바른 뒤 그는 침대 옆 탁자 서랍에서 벨벳 상자를 꺼냈다.상자 안에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 있었다.사실 지난번에 강하리를 데려왔을 때 준비했던 반지인데 한번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니 이젠 감히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구승훈은 반지를 꺼내 강하리의 왼손 약지에 끼워주고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손가락에 입맞춤하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미안해.”그러고는 일어나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서둘러 도착한 구승재가 노민준에게 받은 진정 효과가 있는 주사를 구승훈에게 건넸고 구승훈은 망설임 없이 주사를 자기 팔에 꽂았다.구승재는 순간 마음이 아팠다.“형...”구승훈이 시선을 들어 올렸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구승재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형, 우리 해외로 가자. 해외 연구소에 가자, 응?”입꼬리를 올리는 구승훈의 눈에 조금의 온기도 없었다.“그럴 필요 없어. 민준이 형도 어쩔 수 없다면 해외로 가도 마찬가지야.”약을 다 밀어 넣은 그는 조심스레 주사기를 종이로 감쌋다.“여기서 잘 지켜보고 있다가 강하리가 깨어나면 같이 말동무나 해줘. 근데 해서는 안 될 말은 하지 마, 알았지?”그렇게 말한 뒤 그는 밖으로 나가서 주사기를 쓰레기통에 버렸다.진씨 가문의 생일 파티에서 강하리와 함께 떠나는 구승훈을 많은 사람이 목격했고 석미란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더욱 시선을 끌었다.구승훈에게 맞은 주해찬은 얼굴과 입술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모든 과정을 보진 못했지만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진태형은 사람을 시켜 현장을 정리하고 지켜보던 사람들을 모두 내보낸 뒤 방으로 들어갔다.무거운
걸음을 멈춘 구승훈이 뒤돌아 주해찬에게 주먹을 날렸고 참을 수 없다는 듯 주해찬에게 주먹을 연달아 내리꽂았다.그때 갑자기 방문이 열리면서 석미란이 비명을 지르며 뛰어 들어왔다.“구승훈! 뭐 하는 거야! 감히 해찬이를 때려? 경찰 부를 거야, 신고할 거야!”구승훈이 비아냥거렸다.“그래요, 신고하세요.”그렇게 말한 뒤 그는 곧장 강하리를 안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방을 나갔다.석미란이 화가 나서 뭐라고 말하려는데 주해찬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그는 휠체어에 멍하니 앉아 강하리를 안고 떠나는 구승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사실 그는 오늘 강하리에게 무슨 짓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한 번만 기회를 얻고 싶었다.주먹질에 맞아도 싸다.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하리에게 빚을 졌다.이정숙에게 잡혀 발을 뺄 수 없었던 진태형이 서둘러 도착했을 땐 구승훈이 강하리를 안고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두 눈에 감출 수 없는 살기에 진태형이 구승훈의 팔을 붙잡았다.이대로 강하리를 해칠까 봐 두려웠는데 걸음을 멈춘 구승훈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아버님, 저 하리 다치게 하지 않아요.”진태형은 잠시 구승훈을 바라보다가 손을 놓았고 구승훈의 차는 빠르게 달려 거의 순식간에 별장으로 돌아왔다.강하리는 조수석에서 이미 잠들어 있었고 구승훈은 차를 세우고 문을 쾅 닫은 뒤 조수석에서 강하리를 안고 내려왔다.그녀를 안는 힘이 너무 셌던 탓인지 강하리가 갑자기 몸부림을 쳤고 구승훈은 참지 못하고 그녀를 차 위로 밀어붙인 채 키스를 했다.거칠고 난폭했다.키스라고 하기엔 물고 뜯는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깊은 욕망과 살기가 뒤섞인 눈빛은 당장이라도 여자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 같았다.그가 아프게 깨물자 강하리는 밀어내기 시작했고 구승훈은 그녀의 손을 포박한 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나 말고 주해찬이랑 키스하려고?”남자의 목소리가 싸늘했고 흐릿한 눈을 뜬 강하리는 구승훈의 분노로 가
화장실 문 앞에 도착한 구승훈은 강하리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옆 벽에 기대어 기다렸다.하지만 10분이 지나도 강하리가 인기척을 보이지 않자 심장이 철렁하며 휴대폰을 꺼내 강하리에게 전화를 걸었다.상대의 휴대폰이 꺼졌다는 음성에 남자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지며 곧장 발을 뻗어 화장실 문을 발로 차서 열었다.안에선 강하리의 모습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강하리는 머릿속이 어지럽고 몸에서 주체할 수 없이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누군가 자신을 안는 느낌이 들었지만 뿌리칠 수 없었고 곧바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힘겹게 눈을 뜨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구승훈의 얼굴이 보였다.“구승훈...”강하리가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만지려 했지만 갑자기 눈물로 인해 시야가 흐려졌다.“왜 나랑 결혼하지 않는 거야? 나랑 결혼한다고 했잖아, 연정이한테 온전한 가정을 만들어 준다고 했잖아. 구승훈, 한 달의 시간을 줄게. 나랑 결혼해 줘, 알았지?”그녀의 첫마디를 듣자마자 주해찬의 눈이 번쩍 뜨였지만 강하리의 입에서 구승훈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그는 차가운 얼음 동굴에 빠진 것 같았다.그랬구나.진시연은 강하리가 기꺼이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할 방법이 있다고 했다.그게 그를 구승훈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일 줄이야.그는 쓴웃음을 내뱉으며 휠체어 팔걸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하리야, 넌 내가 그렇게 싫어?”강하리는 눈가에 눈물을 머금었지만 입가엔 웃음이 흘러나왔다.“내가 충분히 보여주지 않았어? 구승훈, 얼마나 좋아해야 날 전적으로 믿어줄 거야?”웃는 그녀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난 사실 당신이 항상 날 믿지 않는 게 무척 괴로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둘이 같이 짊어지고 싶은데 항상 날 빼놓잖아. 구승훈, 어떻게 해야 나한테 온전히 마음을 열어줄 건데?”주해찬의 손가락이 살짝 떨리며 앞으로 다가가 강하리의 손을 잡았다.“하리야, 구승훈 사랑하지 마, 응?”강하리는 웃으며 그를 밀쳐냈다.그녀도 더 이상 구승훈을 사랑하고 싶지
그런데 갑자기 진태형에게 친딸이 하나 더 생기고 그게 심씨 가문의 손녀일 줄 누가 알았겠나.이제 진시연의 처지가 어색해진 건 당연했고 사람들은 진시연을 보고 웃으며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흩어졌다.진시연은 짙은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샴페인 잔을 손에 들고 있었다.그녀는 사람들의 의미심장한 시선을 못 본 척 걸음을 옮겨 구승훈에게 다가갔다.“구승훈 씨, 오랜만이네요.”구승훈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무심하게 와인 잔을 들고 와인을 한 모금 더 마셨다.대답하지도 않았고 그녀와 대화를 나눌 생각도 없어 보이자 진시연은 그의 옆에 서서 우울한 표정으로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구승훈 씨, 내가 F 대륙에서 야생동물에게 공격당했을 때 날 구해주고 밤새 업고 병원으로 가 치료받게 해준 거 기억나요?”구승훈이 피식 웃었다.“그땐 개나 소나 다 구해줬을 겁니다.”진시연의 얼굴이 다소 일그러졌다.그녀는 오랜 세월 기억하고 있던 것이 구승훈의 입에서 개나 소나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우울한 눈빛을 감춘 채 말을 이어갔다.“그래도 저한텐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에요. 구승훈 씨, 우리 앞으로 잘 지내봐요, 네? 전 정말 그쪽이랑 잘 지내고 싶어요.”구승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진시연 씨, 진심으로 살려줘서 고마우면 나한테서 멀리 떨어져요. 내 아내가 날 오해하는 건 싫으니까.”진시연은 당황했다.“아내요? 두 사람 결혼해요?”구승훈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진시연 씨, 멀리하라고요. 못 알아들어요?”구승훈이 그렇게 말한 뒤 걸음을 옮겨 강하리에게 다가가는데 진시연이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그의 뒤에서 소리쳤다.“구승훈 씨, 강하리가 정말 좋은 여자라고 생각해요? 그쪽 잡고 놓아주지 않으면서 주해찬이랑 알콩달콩 지내는데 정말 하나도 신경 안 쓰여요?”구승훈은 걸음을 멈추고 얼음같이 싸늘한 얼굴로 돌아보았다.“진시연 씨, 멀쩡히 진씨 가문에 남고 싶으면 얌전히 있어요. 아니면 심씨 가문도, 나도 그쪽 무사히 B시에 남겨두지 않을 테니까.”진시연의 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