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승훈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강 부장이 뺏은 거 아니야?”“당신 솔로 아니셨나요?”남자의 눈을 마주한 강하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구승훈에게 이어서 말했다.“솔로이신데 송유라 씨 남자를 뺏었다는 말은 대체 어디서 나온 말일까요?”“강 부장, 앞으로도 영원히 지금처럼 떳떳하길 바라.”코웃음을 치며 말하는 구승훈의 말에 강하리는 대꾸하지 않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사실 자신이 하나도 떳떳하지 못하다는 건 오직 그녀만 알고 있을 것이다. 비록 구승훈이 솔로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했지만, 그의 마음은 송유라를 향해 있었다. 구승훈은 강하리를 데리고 마구간을 한 바퀴 돌며 몹시 사나워 보이는 말 한 마리를 골랐다.“진짜 안 탈 거야?”구승훈의 물음에 강하리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녀는 승마를 배운 적이 있었다. 구승훈은 그녀에게 승마, 펜싱, 골프 모든 것을 가르쳐줬었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 말을 타고 싶지 않았다.“내가 태워줄게.”눈썹을 찌푸린 강하리가 미처 거절할 새도 없이 구승훈이 안아서 말 위에 앉혀 놨다. 말에 올라탄 구승훈이 미끈한 다리를 구르자 말이 맹렬히 질주했다.“승훈 씨!”겁에 질린 강하리가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승마를 배왔다고는 하지만 너무나 빠른 속도를 감당할 수 없었다. 팔을 그녀의 허리에 두른 구승훈이 옅은 웃음을 터뜨리자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뭐가 무서워? 날 꽉 잡아.”강하리가 남자의 손을 꼭 잡자, 남자는 자기 손을 빼서 그녀의 손을 감쌌다. 구승훈은 그녀를 데리고 승마장 두 바퀴를 돌고 나서야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언덕 앞에 이르자 그는 마침내 말을 멈춰 세웠다. 저 멀리 석양이 이미 하얀 구름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강하리는 넋 놓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그와 함께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이런 장면을 그녀는 수없이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이런 상황에서 실현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강하리.”구승
강하리가 나오는 모습을 본 구승훈은 이쪽으로 걸어왔다.“힘들어?”“괜찮아요.”“그럼 조금 있다 같이 밥 먹으러 가.”흠칫 놀란 강하리는 몸이 금세 굳어버렸다.“대표님, 전 심 대표님이랑 돌아가면 돼요.”“강하리, 내 차에 앉기 싫어?”구승훈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하자 강하리는 씁쓸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송유라 씨를 만나러 가는 거 아니었어요?”“그냥 밥만 먹을 거야. 같이 먹고 돌아가자.”“그렇지만 전 송유라 씨와 함께 있는 게 싫은데요. 대표님도 아실 거 아니에요? 송유라 씨도 사실 저를 몹시 미워한다는 걸.”강하리가 떨떠름한 기색을 내비치자 구승훈이 냉소를 흘렸다.“그럼 강 부장이 다른 남자 차에 타는 걸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겠네.”“시내에 도착하면 내려줘요. 전 택시를 타고 돌아갈게요.”구승훈은 더는 말이 없었다. 동의한 건지 아닌지도 모른 채 강하리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심준호가 다가와서 작별 인사를 하며 겸사겸사 물었다.“언제 연성으로 돌아갈 계획이야?”사실 이번 출장에서 해야 할 일은 이미 다 마무리한 상태였다. 하지만 구승훈은 강하리를 힐끗 쳐다보고는 말했다.“두 날 더 있을 거야. 강 부장이랑 좀 더 놀다 갈 거야.”“그럼 내일 점심에 우리 집에 와서 밥 먹을래? 부모님이 너를 많이 보고 싶어 하시거든. 하리 씨도 같이 와요.”강하리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진심이 가득 담긴 심준호의 눈을 보고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몇 마디를 주고받고 헤어졌다. 강하리와 구승훈이 가고 나서 계속 말이 없던 심예진이 갑자기 한마디를 내뱉었다.“오빠, 이 사진 봐. 사진 속 하리 씨 분위기 미현 언니랑 정말 닮았어.”심준호가 다가가서 사진을 보니, 바람을 맞으며 저녁노을 아래에 서 있는 사진 속 강하리는 훨씬 부드럽고 온화해 보였다. 사진 속의 심미현이랑 분명 어딘가 닮아 있었다. 한참을 보던 심준호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왠지 강하리가 낯익다 했더니 심미현과 조금 닮아서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안현우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세 사람 모두 뻔히 알고 있었다. 구승훈의 얼굴은 살얼음이라도 낀 것처럼 차갑게 굳어 있었다. 사실 예전에는 안현우의 이런 모욕적인 발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근본이 저열한 인간이니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볼 때면 마음이 근질거리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시샘하고 질투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구승훈은 지금 꾹 참고 있는 강하리의 작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마음에 불쾌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안 대표, 만약 한가해서 할 일이 없는 거라면 내가 다시 일거리를 만들어 줘?”간신히 표정 관리를 한 안현우는 한참이 지나서야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승훈아, 고작 이런 년 때문에 친구와 사이가 틀어질 필요는 없잖아?”“있고 말고는 내가 판단할 일이야. 안 대표가 그래도 여전히 시도해 보고 싶다면 내가 제대로 상대해 주지.”흥, 콧방귀를 낀 안현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구승훈에게 시달릴 때의 그 고통을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구승훈이 가볍게 던진 한마디로 안현우는 피를 토할 것 같은 고통에 몸부림쳐야 했다. 이 남자는 그들 무리에서도 속내를 알 수 없고 무자비하기로 명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그가 강하리를 좋아한다고 말한다면 안현우는 여전히 믿지 못했다. 구승훈, 이 남자는 쉽게 마음이 흔들릴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송유라도 있는데 그가 어떻게 강하리를 좋아할 수나 있을까? 그를 적대한 이유는 아마도 남자의 소유욕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물건을 본인은 싫어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염두에 두는 것이 못마땅할 뿐이다.“그냥 해본 말이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 승훈아.”구승훈은 그를 흘끗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송유라는 구승훈의 옆에 앉아 있는 강하리를 보고 미소를 머금었던 얼굴이 금세 굳어 버렸다.“강 부장님도 왔네요?”그녀의 말에 강하리는 대꾸하지 않았다. 송유라는 입술을 삐죽였다.“오빠, 왜 강 부장이 온다고 말해주지 않았어요?”기분이 별로인 구승훈은 송유라를
구승훈은 그녀의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어디 불편해?”“불편하면 먼저 가라고 할 거예요?”확실히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저 마음만 있을 뿐 그녀는 그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약 가져다 달라고 할 테니까 밥 먹고 가.”강하리는 웃는 얼굴로 그의 손을 뿌리치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구승훈이 왜 굳이 그녀에게 이 식사 자리에 남으라고 하는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려고? 아니면 송유라와 자신이 얼마나 사이가 좋은지 보여주기 위해서?’밖으로 나온 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룸 안, 구승훈은 송유라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왜 자꾸 저 여자 괴롭히는 거야? 재미있어?”그 말에 송유라는 펄쩍 뛰었다.“괴롭히긴 누가 괴롭혀요? 난 분명 좋게 좋게 얘기했다고요. 언짢은 얼굴로 퉁명스럽게 말한 사람은 강하리예요.”“그냥 못 본 척하면 될 거 아니야?”그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그럼, 오빠는 저 여자 왜 데리고 온 거예요? 왜 나한테 이러냐고요? 나 좋아한다고 했었잖아요.”“송유라, 말은 똑바로 해야지. 애초에 먼저 헤어지자고 한 사람은 너였어.”“아직도 나한테 화난 거예요?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해서?”송유라는 눈시울을 붉히며 물었다. “아니.”사실 그 일에 대해 화난 건 아니었다. 감정이라는 건 원래 그 사람의 자유니까. 송유라가 떠나기를 원한다면 그는 굳이 붙잡을 생각이 없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갔다.“잠깐 나갔다 올게."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봤죠? 구 대표가 점점 강하리에 대해 신경 쓰고 있는 거.”옆에 있던 안현우는 불난 집에 부채질이라도 하듯 한마디 내뱉었고 그의 말에 송유라의 안색은 더더욱 어두워졌다. 사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그녀는 눈치챌 수 있었다. 구승훈이 강하리에 대해 점점 더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최근 들어서는 그가 강하리를 좋아하고 있다는
그 당시, 송유라가 올린 사진 때문에 인터넷은 난리가 났었다. 하지만 그 사진은 사실 오래전부터 찍혀 있던 사진이었고 막 회의장에 도착했을 때 찍힌 사진이었다. 송유라는 단지 적당한 시기에 그걸 인터넷에 뿌렸을 뿐이다. 그녀는 강하리가 구승훈을 찾아가 따지고 성질을 부리기를 바랐다. 구승훈 같은 성격이라면 여자가 끊임없이 따지고 성질부리는 걸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몇 번 말다툼이 있다 보면 그는 분명 싫증을 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승훈 오빠는 널 전혀 신경 쓰지 않아. 넌 네 신세가 불쌍하지도 않니?”가슴이 답답해진 강하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실 그녀는 송유라의 말을 그다지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만은 잘 알고 있다. 그 사진이 언제 찍혔던지 구승훈의 묵인이 없었다면 송유라가 그런 상황에서 트위터에 사진을 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가 그 일에 대해 신경 썼다면 아마 진작에 그 게시물을 삭제하도록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게시물은 아직도 인터넷에 버젓이 걸려 있다. 두 사람이 화해하지 않았더라도 두 사람 사이에 다른 사람은 끼어들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분명히 보여주는 듯 말이다. 강하리는 깊을 숨을 들이마시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송유라, 나랑 구 대표가 어떻게 되든 그건 우리 두 사람 사이의 일이야. 그 사람이 날 신경 쓰든 안 쓰든 그건 너랑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네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두 사람 사이를 간섭할 수 있는지 모르겠네?”웃으며 말하는 강하리를 보고 송유라는 이를 악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송유라한테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전 여자친구의 입장에서 그것도 구승훈이 스스로 자신은 솔로라고 밝힌 이 시점에서 그녀에게 무슨 자격이 있겠는가?“그냥 네가 불쌍해 보여서. 오빠 곁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명분도 없이. 역시 마음이 없는 사람한테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니까. 강하리, 오빠한테 넌 그냥 섹스 파트너일 뿐이야.”그 말을 들은 강하리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진
다행히 저녁 식사는 이내 끝이 났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 송유라가 갑자기 놀러 가고 싶다고 입을 열었다. 구승훈은 아무 말도 없이 강하리만 쳐다보았다.“난 안 될 것 같아요. 세 사람만 놀러 가요.”“승훈이 넌?”안현우가 물었다.“좀 피곤해. 다음에 하자.”나른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그는 많이 피곤한 것 같았다. 송유라는 입을 삐죽거리더니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잠시 후, 밖으로 나오던 그들은 마침 정주현과 마주쳤다. 정주현은 그들보다 나이가 어렸다. 양복 차림이 아닌 캐주얼한 옷을 입고 그는 활기찬 소년의 모습이었다. 강하리를 발견한 그가 눈빛을 반짝거렸다.“강하리 씨.” 그가 그녀한테 먼저 인사를 건네고는 그제야 구승훈을 향해 입을 열었다.“구 대표님,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반가워요.”한편, 강하리는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얼굴이 굳어진 구승훈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그러나 정주현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강하리만 쳐다보았다.“하리 씨,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요.”“조금 피곤해서요. 미안하지만 먼저 가볼게요. 그럼, 이만.”말을 마친 그녀는 이내 자리를 떴다. 정주현은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그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고는 그제야 구승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어 그는 구승훈 옆에 찰싹 붙어있던 송유라를 힐끗 쳐다보았다. “구 대표님, 대표님과 강 부장님 두 분 사귀는 사이 아니죠? 아니라면 제가 강 부장님한테 대시할 생각이거든요.”그 말에 구승훈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차갑게 웃었다.“정주현 씨, 남의 여자는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걸 모르는 겁니까?”말하는 그의 눈빛에 싸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가뜩이나 기분이 안 좋았는데 정주현의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더 안 좋아졌다.사실 정주현은 구승훈이 조금 두려웠다. 구승훈이라는 사람은 상류층에서 신 같은 존재였다. 그의 아버지뻘 되는 사람이라도 젊은 구승훈 앞에서는
그의 키스에 깜짝 놀란 강하리는 그를 밀어냈다.“승훈 씨.”이곳은 레스토랑 입구의 주차장이었고 오가는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 그러나 구승훈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고 그녀에게 반항할 여지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키스는 화가 잔뜩 난 사람처럼 거칠었다. 오늘 밤, 자신이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와 이러고 싶지는 않았다.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그녀는 있는 힘껏 발버둥 쳤다.“강하리, 계속 발버둥 칠래?”그의 싸늘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려왔고 그 소리에 그녀는 몸이 뻣뻣해졌다.“여기서 이러지 말아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애원했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그녀에게 어찌할 생각이 없었다. 잠시 후, 정주현이 자리를 뜬 것을 확인한 그는 바로 강하리를 안아 차에 태웠다. 차에 올라탄 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구승훈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는 시동을 걸었다.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그녀를 문으로 있는 힘껏 밀어붙였다. 미친 듯이 몰아치는 그의 키스에 그녀는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고 거침없이 그의 키스에 호응했다. 이 남자 앞에서 반항은 아무 소용이 없었고 그녀를 더 힘들게 할 뿐이었다.강하리는 팔을 뻗어 그의 목을 감싸고는 까치발을 들고 그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흠칫하던 구승훈은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옷이 흐트러지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후끈 달아올랐다. 그는 단번에 그녀의 옷을 찢어버렸다. 쌀쌀한 기운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그에게 달라붙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구승훈은 피식 웃었다.“왜? 벌써 안달이 난 거야?”“추워요.”그는 그녀를 번쩍 안아 올리고는 그녀의 쇄골에 얼굴을 묻고 그녀를 거침없이 탐했다. “강 부장, 걱정하지 마. 곧 뜨겁게 만들어 줄 테니까.”이내 그가 그녀를 침대에 거칠게 내던졌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그의 입술이 또다시 그녀의 입술을 덮어버렸다.뜨거운 키스는 점점 아래로 향
“샤워요.”그녀가 한마디 툭 내뱉고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욕실로 들어갔다.욕실로 들어온 후,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왈칵 쏟았다.그동안 사실 그 아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많이 애를 썼다. 그러나 기억은 끌어안고 있을수록 그녀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내려놓으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오늘 밤, 그 남자가 또다시 그녀의 상처를 끄집어냈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에 그녀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뜨거운 물이 샤워부스에서 흘러내렸고 그녀는 뜨거운 물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자신의 몸을 감쌌다. 이렇게 해야만 마음의 고통이 조금 풀리는 것만 같았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지만 그녀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가슴이 찢어지지만 그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울었다. 구승훈에 대한 그녀의 사랑도 그렇다.처음에는 뜨겁고 강렬하고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하루하루 반복되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랑도 소리 없이 다 사라져 버린 것 같다.잠시 후, 그제야 마음이 가라앉은 그녀는 타올을 잡아당겨 몸에 둘렀다.욕실을 나가니 그가 담배를 손에 쥔 채 창가에 서 있었다.그녀를 발견한 그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욕실로 들어가 드라이기를 가지고 나왔다.“이리 와.”그녀는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고 그 모습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이리 오라고. 내 말 안 들려?”강하리는 앞으로 다가가 드라이기를 잡았다.“내가 할게요.”그러나 그는 손을 놓지 않았고 그녀를 자기 앞에 있는 의자에 앉혔다. 따뜻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그의 손이 지나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잠시 후, 머리를 다 말리고 나서야 그가 입을 열었다. “강하리, 이제 다시 그런 말 하지 마. 나 그런 말 듣기 싫어.”“내가 틀린 말 했어요? 사실이잖아요. 승훈 씨는 내가 승훈 씨한테 다른 걸 원하기를 바라는 거예요?”차갑게 말하는 그녀를 그는 힐끗 쳐다보았다.“그럼 내가 한 말 사실이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