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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그날, 송연아가 나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연아인 연아는 위장 출혈로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모른 채, 단지 내가 우는 소리만 듣고는 주사 바늘을 뽑고 나를 만나러 달려왔다.

연아는 엉망이 된 나를 꼭 끌어안으며 안쓰럽게 말했다.

“연희야, 왜 우리에게 미리 말하지 않았어? 그렇게 힘들었다면서. 엄마 아빠가 정말 너를 원망할 리 없잖아. 그저 먼저 손 내미는 게 자존심 상했던 거야?! 그리고 그놈이 우리 송씨 사람을 괴롭혔다고? 가만두지 않을 거야!”

송씨 가문이 비록 강씨 가문처럼 대대손손 부유한 가문은 아니었지만, 재정적으로는 충분히 여유가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부모님이 내가 강서준과의 결혼을 고집하는 것에 그렇게 화를 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내가 돈도 사랑도 부족하지 않은데 어째서 이렇게 사랑에 빠져 이성을 잃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도 그때의 내가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었다.

연아는 잠시 나를 다른 곳으로 보내 마음을 달래도록 배려해 주었다.

보름 동안 나는 강력한 금단 증상을 느꼈지만, 단호하게 마음을 다잡고 서준에게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마침내 어느 날 저녁, 서준이 나를 떠올린 모양이었다.

서준은 음성이 아닌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가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그래서 기차 안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 그 메시지를 읽게 했다.

[그만해. 몇 년 동안 함께 했는데 이럴 필요까지 있냐? 며칠 후면 우리 결혼식이야. 네가 화내고 싶은 건 알겠는데, 결혼식 끝나고 나서 얘기하자고!]

내가 답장을 하지 않자, 서준은 또 화가 난 듯 느낌표를 여러 개 붙여서 보냈다.

[그날에 친척들 다 올 텐데, 정말로 날 망신 주고 싶은 거야?!!]

나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결국 서준은 내가 말한 헤어지자는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서준에게는 내가 서준을 떠날 수 없는 존재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래, 시각장애인인 내가 서준을 떠나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나는 고마움을 표하며 더듬어 문자 한 줄을 눌렀다.

[갈게.]

서준이 얼마나 만족스러워할지 상상할 수 있었다.

‘이 눈먼 여자는 너무 쉽게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결혼식 준비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결혼식장 장식에 쓸 꽃 종류를 묻는 웨딩 회사에서 전화가 왔을 때, 나는 대답했다.

“노란 장미로 해주세요. 이다니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에요.”

그러나 그들은 다니가 누구인지 몰랐기에 그저 모호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연아가 말하길, 결혼식 당일, 노란 장미를 보고 다니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 했다.

“서준아, 너는 나를 아직 사랑하고 있구나. 그럼 연희와 쇼만 마치고 결혼식을 끝낸 후, 몇 년 뒤에 이혼하고 나한테 돌아와. 난 언제까지나 너를 기다릴 테니까.”

서준은 웃으며 결혼식장의 입구를 응시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신부인 연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바람에 서준의 얼굴에 점점 초조함이 드러났다.

서준은 미친 듯이 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나는 이미 서준의 번호를 차단해 놓았다.

그 와중에 사람들이 계속해서 축하 인사를 건네왔다.

“서준 님, 눈을 다시 보게 된 것은 부인의 헌신 덕분이라던데요. 두 분 정말 잘 어울리세요.”

“서준 님이 회사를 이렇게 키우고도 한결같이 아내를 위해 사는 모습이 감동적이네요!”

칭찬이 쏟아지자 서준은 완전히 분노와 초조함에 휩싸였다.

이윽고 서준은 연아를 찾아와 따지듯 물었다.

“연희는 지금 어디 있어?! 너희 송씨 가문이 연희를 숨긴 거야?”

서준은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고, 분노로 가득 찬 표정이었다.

연아의 말에 따르면 서준은 억대 계약을 놓쳤을 때보다 더 안절부절못했다고 한다.

나는 그게 속이 시원했다.

그러자 연아는 서준의 초조한 표정을 보며 일부러 놀란 듯 말했다.

“연희? 너희는 이미 헤어졌잖아? 난 오늘이 너와 다니의 결혼식인 줄 알았네! 게다가 방이 전부 다니가 좋아하는 노란 장미로 가득하잖아!”

순간 결혼식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서준의 아버지마저 뛰쳐나와 서준의 뺨을 세게 때리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냐!”

서준의 어머니 또한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 강씨 가문에선 연희밖에 인정하지 않아! 어떻게 감히 다른 여자를 집에 들이려 해?”

주변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주인 자리를 첩에게 넘겨준다는 얘기야?”

“난 서준이 정이 깊고 의리 있는 남자인 줄 알았는데 결국 여자 문제로 이렇게 무너지네.”

“가련하다. 송씨 가문의 딸이 서준을 위해 눈까지 잃었는데!”

한창 잘 진행되던 결혼식이 순식간에 서준을 향한 질타의 장이 되었다.

서준은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 속에서 점점 얼굴이 창백해지고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궁지에 몰리자 서준은 안절부절못하던 모습에서 격노로 변하며, 연아의 휴대폰을 빼앗아 방으로 뛰어들어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낮고 깊은 목소리로 따지듯 말했다.

“연희야,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이게 네 복수 방법이야?”

서준은 이를 빠득빠득 갈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오랜 침묵 끝에, 서준은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좋아, 그만해. 내가 사과할게, 그거면 되지? 어서 돌아와. 이 결혼식은 반드시 이어져야 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 강씨 가문의 명성이 다 끝장이라고! 가출하고, 강간당한 척하고, 이제는 결혼식까지 망쳐놓고, 이제는 그만해도 되잖아?!”

그때였다. 연아가 문을 세게 밀치고 들어왔다.

연아는 눈이 빨개진 채 서준의 휴대폰을 빼앗아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는 서준에게 삿대질하며 분노에 찬 채 소리쳤다.

“서준, 너는 인간도 아니야! 너, 연희가 그날 밤에 정말 끔찍한 일을 당한 걸 알고는 있어?”

서준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멈춰서며 표정이 일그러졌다.

한참 동안 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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