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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나는 힘겹게 몸을 끌며 겨우 별장 구역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막상 나가 보니 갈 곳이 없었다.

서준과 함께한 지난 3년 동안 나는 가족을 잃고, 친구들과 단절되었으며, 모든 사회적 관계를 끊었다.

결국 남은 것은 이런 비참한 결말뿐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해 손으로 더듬으며 나아가던 중, 강한 술 냄새가 내 코끝을 찔렀다.

그리고 잠시 후, 거친 손이 나를 완전히 감싸안았다.

역겨운 술 냄새가 내 몸에 퍼져갔고, 나는 비명을 질렀다.

“살려주세요!”

그러나 돌아온 것은 상대방의 비열한 웃음뿐이었다.

마침내, 나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눌려 손이 떨리며 애원했다.

“제발, 제발 저를 건드리지 말아요. 돈이 있어요. 얼마든지 드릴게요.”

상대는 흥미를 보이며 혐오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로? 얼마든지?”

“네.”

나는 불안하게 침을 삼키며 서준의 전화번호를 말했다.

“서준에게 전화하세요. 원하는 만큼 드릴 거예요.”

전화를 걸고, 상대는 스피커폰을 켰다.

그쪽에서는 영화 소리가 들려왔다.

서준은 이미 다니와 함께 영화를 보고 있었다.

“살려줘!”

나는 핸드폰 쪽으로 기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서준아, 누가 나를 해치려고 해. 돈 좀 줘서 나를 풀어주라고 할 수 있어?”

전화기 너머에서 잠시 미묘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서준의 낮은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뭐야, 연희. 나랑 헤어지자고 해놓고 후회한 거야? 이런 연극을 해서 나한테 돌아올 빌미를 만들려고? 내가 받아줄거 같아?]

그러자 남자는 전화기를 빼앗아 가면서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네 전 남자친구였구만! 진짜로 돈을 줄 줄 알았는데. 이 비열한 것, 나를 속다니!”

남자는 내 얼굴을 세게 때렸고,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며 피를 뱉어냈다.

그러나 서준은 더욱 흥겹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계속 연기해 봐. 네가 대단한 줄 알았어? 돈 한 푼도 없이 나가서는 물 한 병도 못 사면서, 이제서야 내가 얼마나 너를 관대하게 대해줬는지 알겠지? 그리고 이게 네가 생각한 돈 버는 방법이야? 이런 역겨운 방법으로 내 돈을 뜯어내겠다고?]

서준의 노골적인 조롱에 나는 마치 얼음물에 빠진 듯 절망에 빠졌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힘겹게 말했다.

“나는 너를 속인 게 아니야.”

그때, 전화 너머에서 다니의 목소리가 멀리서부터 다가왔다.

[서준아. 그만 괴롭혀. 연희 씨, 얼마나 필요해요? 내가 돈을 보내줄게. 너도 여자고, 시각장애인인데 괜히 다치지 말고. 그러다 아무도 널 원하지 않게 될 거야.]

남자의 손이 내 허리를 강하게 짓누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무기력하게 입을 열었다.

“정말요?”

[그럼, 정말이죠!”]

다니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저한테 애원하면 말이죠. 어때요?]

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남자의 숨결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때, 남자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래서 돈을 줄 거야, 말 거야?”

남자는 내 목 근처에 얼굴을 바짝 붙이며 속삭였다.

“돈이 없다면 재미라도 봐야겠어!”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리며, 나는 자존심을 버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탁할게요. 제발. 다니, 부탁할게요. 제발.”

[그만.]

서준이 갑자기 내 말을 끊었다.

그 순간, 내 안에 희망이 피어올랐다.

서준이 다니의 무리한 요구를 중단시키려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준이 한 말은 내 기대와 정반대였다.

“괜히 돈 낭비하지 마. 본인이 참지 못하면, 알아서 돌아오겠지. 돈은 주지 마. 난 그저 이 몇 년 동안 누구 덕에 살아왔는지 깨닫게 해주려는 거야. 밖에 나가면 연희는 시각장애인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야.”

마치 차가운 물 한 통을 머리 위에 쏟아 부은 듯 나는 절망에 휩싸였다.

내가 믿어왔던 모든 것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다니의 새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서준, 너 참 무정하네.”

나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억눌렸던 감정이 폭발했다.

“서준아, 난 너를 속인 적 없어!”

나는 핸드폰을 잡으려고 손을 뻗으며 눈물로 흐려진 눈으로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너 정말 잊었어? 정말 다 잊었어? 내가 너에게 눈을 주지 않았다면, 너는 강씨 집안을 이을 수 없었을 거야. 어쩌면 지금쯤 어디선가 쓰레기를 주워 먹고 있을지도 몰라!”

절망에 빠진 나는 울부짖으며 외쳤다.

“그런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전화 너머로 순간적인 정적이 흘렀다.

그 침묵 속에서, 서준이 갑자기 차가운 웃음을 터뜨렸다.

[연희야, 아직도 연기를 하고 있는 거야?]

나는 급하게 숨을 몰아쉬며 서준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네가 나와 결혼하고 싶어서 교통사고를 만들고, 나를 불쌍하게 만들어 내 은인이 되려 한 거 아니었어? 내가 두 눈을 잃은 것도 너 때문이잖아.]

나는 마치 벼락을 맞은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공포에 휩싸였다.

“말도 안 돼! 나는 그런 적 없어.”

[시치미 떼지 마! 네가 정말 모욕을 당한 거라 해도, 그건 네가 자초한 거야! 역겨워!]

서준은마지막 말을 내뱉고 이내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자 곁에 있던 남자가 나에게 다시 손찌검을 하며 소리쳤다.

“이 비열한 것, 너랑 시간 낭비하는 게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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