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 준우는 땅콩을 잘못 먹고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다. 나는 집에 있던 항히스타민제를 모두 버리고, 남편이 걸었던 119 응급 전화마저 끊어버렸다. 그리고 눈앞에서 준우가 호흡 곤란으로 질식사하는 것을 지켜봤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이번 생의 결말이었다. 하지만 이전 생에서, 준우가 호흡 곤란 증상을 보였을 때, 나는 곧바로 차를 몰아 병원으로 데려갔었다. 긴급한 치료 끝에 준우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나를 뒤쫓아 병원으로 온 시어머니는 날 향해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너 같은 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니? 넌 내 손자를 죽인 살인자야!” 나는 황급히 해명했다. “아니에요, 준우는 무사해요. 치료도 끝났고 곧 퇴원할 수 있어요!” 그러나 내가 의사의 진단서와 퇴원 확인서를 꺼내 보이려는 순간, 그것들은 갑작스레 ‘응급 치료 실패’, ‘사망’이라는 문구가 적힌 사망 진단서로 바뀌어 있었다. 게다가, 조금 전까지 중환자실에서 회복 중이던 준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준우가 있는 곳은 차가운 병원 영안실이었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준우는 분명 살아 있었는데...’ 진실을 찾기 위해 병원 CCTV를 확인했지만, 모니터 속에서 내가 본 건 끔찍한 현실이었다. 화면 속에서 준우는 애초에 수술실에서 나오지도 않았고, 나 혼자만 아들이 아직 살아 있다고 믿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점점 더 큰 혼란에 빠졌다.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았고, 결국 나는 정신이상자로 몰려 정신병원에 갇혔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병원 내에서 발작을 일으킨 사람들이 내게 몰려들었다. 나는 산 채로 이들에게 잔인하게 물어뜯겨 끔찍하게 살해되었다.
View More주성언의 얼굴빛이 변했다. ‘드디어 감출 수 없게 됐네.’ 나는 망설임 없이 이어 말했다. “준우가 태어난 이후, 어머님의 모든 관심은 준우에게 쏠렸어.” “당신이 매주 심리상담을 받고 스스로 아무리 최면을 걸어도, 그 질투심은 사라지지 않았지. 당신은 준우가 어머니를 빼앗아 갔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당신은 계획을 세웠어. 준우에게 꾸준히 여러 가지 약물을 먹이면서, 그 애에게 알레르기가 있다는 착각을 심어줬지.” “그리고 오늘, 당신은 진짜 손을 쓴 거야. 준우에게 미리 약을 먹였고, 그 약이 바로 준우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진짜 원인이고.”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준우를 살릴 방법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야. 하지만 주성언은 모든 걸 철저히 계산했어. 내가 준우를 집에 데려오지 않았다 해도, 결국 아이는 죽을 수밖에 없었을 거야.’ 시어머니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아들, 정말... 정말 이 애가 말한 게 사실이야?” “엄마는 네 말만 믿어. 성언아, 말해봐.” 시어머니는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마지막으로 붙잡은 나뭇가지를 움켜쥐듯, 주성언의 옷깃을 꼭 붙잡았다. 하지만 의외로, 주성언은 가볍게 웃었다. “어머니, 미안해요. 어머니를 실망하게 할 수밖에 없겠어요. 지금 소하정이 말한 게 전부 사실이에요.” 친아들의 고백에 시어머니는 완전히 무너졌다. 시어머니는 주성언의 가슴을 두드리며 울부짖었다. “왜, 왜 그랬어! 대체 왜! 준우는 네 친동생이야. 네가 그 애를 키우면서 얼마나 아꼈니, 너는 그 애를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거 아니야?” 시어머니는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그러나 그 순간, 주성언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은 점점 섬뜩해졌고, 남자의 눈빛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왜냐고요? 난 그 애를 죽이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그 애는 내가 받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다 가졌으니까!!” “처
시어머니는 잠시 안도하는 듯했지만, 이내 바닥에 누워 있는 준우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다시 충격에 빠졌다. “소하정! 네가 감히 준우의 죽음을 가지고 날 협박해?” 주성언도 때를 맞춰 입을 열었다. “나도 준우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 게 아니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모두가 똑똑히 봤잖아. 준우가 케이크를 먹고 증상이 나타났잖아.” 그는 잠시 말을 멈췄지만, 애써 침착한 척하며 말을 이었다. “나도 알아. 준우가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이 당신한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그래서 당신이 나와 어머니를 원망하며 준우를 해치려 했겠지... 내가 뭐라고 할 자격이나 있겠어.” 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 “하정아, 인정해. 네 잘못을 인정하라고. 나도 당신을 미워할 자격은 없지만, 내가 준우 곁을 지키면서 당신 대신 죗값을 치를게.” 주성언의 말은 진심인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다 뻔한 연기야. 이런 말로 모든 책임을 나한테 떠넘기려는 거겠지.’ 나는 차분히 가방에서 문서를 꺼냈다. “이걸 보면 얘기가 달라질 거야.” 그 문서는 준우와 함께 병원에 다녀온 뒤 받은 검사 결과였다. 나는 케이크를 산 후 준우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모든 알레르기 검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명백했다. ‘준우는 땅콩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지 않아.’ 시어머니는 문서를 낚아채듯 받아 들더니 빠르게 훑어보았다. “이건 네가 조작한 거지, 그렇지?” “만약 준우에게 땅콩 알레르기가 없었다면, 케이크를 먹고 이렇게 될 리가 없잖아!” 나는 고개를 살짝 들며 조용히 말했다. “답은 아드님한테 있어요.” 내 말에 방 안의 시선이 모두 주성언에게 쏠렸다. 주성언의 눈빛은 어두워졌고,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는 결국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래, 준우는 내 아들이 아니야. 하지만 내 친동생인데 내가 어떻게 그 애를 해치겠어?” 시어머니도 곧바로 자기 아들의 편을 들었다. “맞아. 준우가 땅콩에 알레르기
욕설이 한순간에 멈췄다. 주성언의 동공이 살짝 흔들리는 게 보였지만, 그는 짐짓 침착한 척하며 말했다. “당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준우가 어떻게 당신 친아들이 아니라는 거야?” 그는 강하게 손을 들어 맹세하듯 말했다. “난 당신한테 잘못한 게 없어. 절대 그런 일은 없었어.” 나는 조용히 주성언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맞아, 당신은 나한테 잘못한 게 없어.” “왜냐하면, 준우는 내가 낳은 아이가 아니니까.” 내 차분한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그리고, 준우는 당신 친아들도 아니야.” 내 말은 폭탄처럼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모두가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경찰도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곧 차분하게 물었다. “그럼, 사망자는 두 분이 입양하신 아입니까?” 나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직 내가 답을 하기 전에, 주성언이 서둘러 말을 가로챘다. “아니야. 준우는 분명 우리 친아들이야!” “당신이 거의 열 달 동안 뱃속에 품었던 것도 내가 옆에서 다 지켜봤고, 당신이 병원에서 준우를 낳을 때, 내가 그 모든 과정을 직접 봤어.” “그리고 준우가 태어난 이후로, 당신이 준우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면서 손에서 놓지 않았는지, 내가 똑똑히 봤잖아. 준우가 당신이 낳은 아이가 아니라니, 그게 말이 돼?” 주성언의 말은 논리적으로 보였고, 모든 상황을 설명하는 듯했다. 시어머니도 그를 거들며 울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소하정! 우리가 도대체 너한테 뭘 잘못했길래, 우리한테 이런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우는 거야? 준우를 죽인 것도 모자라서, 이제 이런 헛소리까지 하려고?” 시어머니와 주성언은 하나가 된 듯 나를 몰아붙였다. 경찰은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누구도 억울하게 만들지 않을 겁니다. 다만, 부검은 당장 진행하기 어렵습니다. 혹시 이와 관련된 다른 증거가 있습니까?” 나는 미소를 지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물론 있습니다.”
모두가 충격에 빠진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다들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겠지. 살인자가 스스로 자기 범죄를 경찰에 신고하다니.’ 그러나 나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며 경찰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경찰이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사람들은 벌 떼처럼 몰려들어 나를 고발하기 시작했다. “경찰관님, 바로 이 여자예요. 자기 아들에게 땅콩 케이크를 먹여 알레르기 반응 일으키게 해서 죽였어요!” “구할 수 있었던 약도 일부러 버리고, 애가 숨을 못 쉬는데도 멍하니 지켜만 봤다고요.” “우리가 다 봤어요. 이 여자가 살인자라고요!” 아직 집에 있던 의사도 증언했다. 즉, 내 아들 준우의 사망 원인은 명백한 질식사였고, 이는 알레르기 반응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내 앞에 다가와 말을 꺼냈다. “소하정 씨, 수사에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경찰서로 동행해 주시죠.” 나는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안 됩니다.” 내 거부에 순간적으로 공기가 얼어붙었다. 사람들은 내가 더 큰 문제를 일으키려 한다고 생각하며 분노로 가득 찬 눈빛을 보냈다. 경찰도 눈살을 살짝 찌푸렸지만, 나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저는 살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남편 주성언을 고발합니다. 저와 제 아들을 살해하려 했던 혐의로요.” 내 말에 방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헛소리하지 마! 완전 미친년 아니야?” “네가 준우를 죽였으면서 이제 성언이까지 끌어들인다고?” “진짜 제정신이 아니네. 이런 여자는 당장 잡아가야 해!” 시어머니는 화가 치밀어 올라 내 얼굴을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 “소하정! 네가 우리 준우를 죽여 놓고 이제 내 아들한테 그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해? 넌 정말 천벌을 받을 거야!” 사람들은 더 큰 목소리로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 여자는 감옥에서 썩어야 해!” “사회에는 이런 쓰레기가 필요 없어. 당장 사형시켜야 해!” 사람들의 분노가
“여보, 당신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주성언은 마치 큰 상처를 입은 사람처럼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남자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고, 눈에는 깊은 슬픔을 담고 있었다. “준우도, 당신도... 둘 다 나에게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이야.” 주성언의 상심한 모습은 숨길 수 없을 만큼 분명했다. 그에 비해 나는 냉정한 모습이었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를 동정하기 시작했다. “저 여자가 어떻게 저런 좋은 남편을 가졌을까?” “진짜 세상이 불공평하다. 이런 남편이 저런 여자를 아내로 맞다니.” “내 남편이었으면 좋겠다. 만약에 내가 잘못하면 나 스스로 뺨이라도 때릴 거야.” 질투와 분노 섞인 말들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나는 더 이상 주성언의 연기를 볼 가치를 느낄 수 없었다. ‘아직도 저런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속이려 하다니.’ 나는 팔짱을 끼고 가방에서 한 장의 문서를 꺼냈다. “당신이 정말로 중요하게 여기는 건 아마 이 60억짜리 보험 증서일 거야.” 나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생명보험 계약서를 주성언의 앞에 내밀었다. 생명보험 계약서에는 일주일 전에 가입한 날짜가 선명히 적혀 있었다. 피보험자는 나와 준우였고, 수익자는 단 한 명, 바로 주성언이었다.배우자를 살해하고 보험금을 노리는 사례가 종종 뉴스에 나오다 보니, 사람들의 의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이 생명보험 계약서를 확인하는 순간 술렁이기 시작했다. “설마... 이거 진짜야?” “말도 안 돼, 혹시 보험금을 노린 살인 아니야?” “너무 섬뜩하다. 이제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네.” 의심과 추측이 뒤섞인 목소리들이 점점 더 커졌다.그러나 주성언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여보, 기억 안 나? 우리 매년 이런 생명보험 가입해 왔잖아.” 그는 침착한 태도로 말했다. “이번에는 보험 설계사가 실수로 연락을 안 해서 늦게 가입한 것뿐이야. 원하면 지금이라도 예전
“소하정, 미쳤어?” “준우를 살릴 약을 없앤 건 네 짓이잖아! 아이를 죽인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죄를 다른 사람한테 뒤집어씌우겠다고?” 시어머니의 눈은 분노로 불타올랐고, 목소리는 떨릴 정도로 격앙되어 있었다. 주성언은 내가 한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쓰디쓴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가 범인이었으면 차라리 좋겠어.” “그랬다면 내가 먼저 준우를 막을 수 있었을 테니까. 우리 아들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지도 않았을 거고, 아이는 지금도 우리 옆에 있겠지.” 그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대신 죽는 거라면, 난 언제든지 그럴 준비가 돼 있어.” 주성언의 울먹이는 말투와 진심이 담긴 눈물이 흘러나오는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은 더욱 격분했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비난은 나를 향해 폭발했다. “이 여자는 진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자기 애를 죽여 놓고 반성은커녕 남한테 죄를 뒤집어씌운다고? 이 여자가 죽는 게 맞는 거 아니야?” “저 남편하고 시어머니가 너무 불쌍하다. 저런 독사 같은 여자랑 살아야 했으니, 진짜 집안 망쳤네.” “넌 인간도 아니고 쓰레기야. 제발 사라져!” 친구들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하정아, 진짜 어떻게 그러냐? 성언이가 그렇게 널 감싸주는데, 이제 와서 죄를 그 사람한테 덮어씌운다고?” “맞아. 성언이가 너 기쁘게 해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네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내려고 우리한테 물어보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던 거 다 알잖아.” “우리가 다 보고 기억하고 있어. 성언이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지 말이야.” “그런데 너는 지금 그 사람을 이렇게 대한다고? 진짜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결국, 너는 준우만 죽인 게 아니야. 너는 이 집을 완전히 망가뜨렸어.” 사람들의 날카로운 말들이 마치 비수처럼 내 온몸을 찔렀다.
아무도 내가 그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 주변은 작은 핀이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고요해졌다. 나는 준우의 온몸에 번진 붉은 발진을 힐끗 바라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아니, 하필이면 왜 내 생일날 죽는 거야? 재수 없게.” 그렇게 중얼거리자, 사람들은 나를 향해 분노로 가득 찬 눈빛을 보냈다. “소하정! 네 친아들이 죽었는데도 그게 네가 할 소리야?” “준우는 겨우 세 살이야! 방금까지 엄마랑 같이 케이크 먹겠다고 신나서 웃던 애였다고!” “소하정, 내가 어떻게 너 같은 사람과 친구였을 수 있지? 정말 소름 끼쳐.” 사람들은 하나둘씩 격앙된 목소리로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모든 분노가 내게 집중됐다. 그때, 주성언이 내 손목을 잡았다. 남자의 손아귀는 강했고, 그의 얼굴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여보, 제발 그만 말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나도 알아. 준우가 떠난 게 당신한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하지만 이렇게 스스로를 탓한다고 해서 준우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잖아. 준우가 살아 있었다면, 엄마가 자기 때문에 이렇게 망가지는 걸 절대 원하지 않았을 거야!” 주성언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내가 아이를 잃은 슬픔에 이성을 잃었다고 믿고 있었다. ‘아직도 이렇게 날 이해하려고 하는 거야?’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들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야. 나, 일부러 약 안 준 거야. 준우에게 먹일 생각도 없었어.” 이 말에 방 안은 다시 정적에 휩싸였지만, 내 얼굴엔 죄책감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입꼬리가 올라갔다. ‘드디어 말했네. 이게 나야.’ 그 순간, 시어머니가 미친 사람처럼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소하정! 넌 진짜 악마야! 넌 앞으로 절대 편히 눈감지 못할 거야!” “네가 내 손자를 죽였어! 넌 살인자야!” 사람들도 그 뒤를 이어 소리쳤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 공개해야 해! 얼마나 악랄한 엄마인지 모든 사람이 알아야
15분이 지나자 의사가 도착했다. 사람들은 급히 자리를 비켜주며 숨을 죽이고 준우의 응급처치를 기다렸다. 하지만 준우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아이의 온몸에는 이미 심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인한 붉은 발진이 가득했고, 손발의 경련도 거의 멈춰 있었다. 누가 봐도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나는 한쪽에서 차갑게 서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내 무심한 태도에 참다못한 누군가가 날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소하정, 네 아들이 지금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데, 넌 정말 아무 걱정도 안 되는 거야?” “네가 그 아이의 친엄마가 맞긴 해?”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주성언이 먼저 나섰다. “죄송합니다. 하정이도 지금 너무 놀라서 그래요.” 그는 나를 감싸며 변호하듯 말을 이었다. “게다가 집에서 준우를 제일 신경 쓰는 사람이 하정이예요. 그러니 더 이상 뭐라고 하지 말아 주세요.” 주성언은 나를 향해 위로하듯 미소를 지었다. ‘늘 그랬지. 어떤 상황에서도 날 대신해 앞에 나서던 사람이었어.’ 의사는 여전히 준우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미 늦어버린 상황이었다. 준우의 동공은 9mm 이상으로 풀려 있었고, 심전도는 결국 직선을 그렸다. 삐-의사는 고개를 떨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시어머니는 절규하며 준우에게 달려들었다. “우리 준우, 아직 살릴 수 있어요! 선생님, 제발 다시 한번만... 제발요!” “준우야, 눈 좀 떠봐! 할머니 여기 있잖아. 할머니는 너 없으면 못 산단 말이야...” 시어머니의 울음은 거실을 가득 채웠고, 그 슬픔은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주성언은 충격에 휩싸인 듯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자신에게 말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우리 준우가 겨우 세 살인데, 단
“준우야, 괜찮아?!” 주성언의 다급한 목소리가 문을 뚫고 방 안까지 울려 퍼졌다. 나는 침착하게 문을 열었다. 시계의 바늘은 정확히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딱 그 시간이야. 전생에서 준우가 쓰러진 바로 그 시간.’ 거실로 나가자, 준우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아이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작은 손은 본능적으로 가려운 목을 긁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는 내가 사 온 케이크가 놓여 있었고, 이미 한 조각이 잘려나가 있었다. ‘땅콩 알레르기... 이게 다시 시작된 거야.’ 주성언은 초조하게 여기저기를 뒤적이며 약을 찾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 눈에 희망이 깃들었다. “여보, 준우가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당신이 항상 약 챙겨서 다니잖아,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나한테 약 있어.” 하지만 나는 약을 꺼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준우는 기도가 좁아져서 얼굴이 점점 보랏빛으로 변하자, 시어머니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약이 있으면 빨리 좀 꺼내! 지금 애가 얼마나 힘든데!” 손님 중 한 명이 거들었다. “그러게요, 지금 애가 이렇게 괴로워하는데, 약이 어디 있는지 빨리 찾아야죠!” “하정 씨, 약 어디 있어요? 평소 들고 다니는 가방에 있어요, 아니면 옷 주머니예요? 빨리 생각해 봐요!” “진짜 답답하네요. 다들 어서 약 찾아봐요.” 순식간에 사람들이 준우의 약을 찾기 위해 거실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거실은 이내 혼란 그 자체로 변했다. ‘...다들 이렇게 난리를 치고 있지만, 아무도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묻지 않네.’ 나는 차분히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번에는 다르게 끝날 거야.’“찾을 필요 없어요.” 나는 차분하게 입을 열며 그들의 행동을 멈췄다. “약은 제가 가지고 있어요.” 내 손바닥 위에 옅은 하늘색 약 한 알이 놓였다. 주성언의 얼굴에는 한 줄기 희망이 떠올랐다. “그래, 맞아! 그거야. 여보, 빨
“엄마, 이거 먹고 싶어.” 아들 준우의 부드럽고 애교 섞인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나는 잠깐 멍하니 있다가 아들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고작 세 살인 준우가 유리 진열장 안의 케이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이의 동그란 눈동자엔 케이크에 대한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직원은 나와 아이에게 다가와 환하게 미소 지으며 친절히 설명했다. “손님, 이건 저희 가게에서 새로 나온 땅콩 맛 케이크입니다. 국내산 유기농 땅콩 함량이 무려 50%나 돼요.” “위에는 저희가 직접 만든 수제 땅콩 누가를 올렸는데 오늘 남은 건 이게 마지막이에요.” “엄마, 나 이거 꼭 먹을래.” 준우가 내 다리를 꼭 안으며 고집을 부렸다. ‘엄마가 안 사주면 안 갈 거야’라는 태도가 역력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엔 여러 기억이 물밀듯이 되살아났다. 오늘은 내 생일이었다. 그리고 전생에서, 준우는 땅콩을 먹고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다. 그 일이 벌어졌던 시간까지 앞으로 고작 1시간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내가 샀던 건 분명히 딸기 케이크였어. 게다가 준우가 먹는 모든 음식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또 확인했는데...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거지?’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꼬집으며 혼란에 빠졌다. 내 머릿속을 의문이 가득 채우던 그때, 주머니 속 휴대폰이 갑자기 진동했다. 시어머니가 보낸 음성 메시지였다. [하정아, 집에 알레르기 약이 다 떨어졌더라.][준우가 땅콩 알레르기가 있잖니. 나중에 잘 살펴봐야 한다. 땅콩 들어간 음식은 절대 사지 말고.]여전히 다정한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이것도 전생에서와 똑같은 당부였다. 눈앞의 준우가 환하게 웃으며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얼굴이 전생에서 새하얗게 질린 준우의 모습과 겹쳤다. ‘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까?’내 머릿속에 또 하나의 의심이 스쳤다. ‘...이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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