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날, 암 투병 중인 6살짜리 아들 도윤이는 상태가 점점 악화되어갔다. 아이는 크리스마스날 아빠의 선물을 몹시 갈망하고 있었다. 나는 미친 듯이 남편에게 전화해댔지만 돌아오는 건 짜증 섞인 남편의 고함뿐이었다. “왜 맨날 전화질이야? 나 그냥 유리네 집 강아지 초코를 찾고 있다고 했잖아. 이런 것까지 간섭해야겠어?!” “초코 못 찾으면 유리 엄청 슬퍼할 거라고!” 초코? 남편 첫사랑 한유리의 강아지를 찾는 중이라고?! 나는 차오르는 분노를 참으며 아들 임도윤이 오늘 밤을 넘길 것 같지 못하다고 남편에게 알렸다. 그런데 남편이란 자가 피식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야, 반보영, 내가 모를 줄 알아? 도윤이가 다 너한테서 몹쓸 버릇 배운 거잖아! 걔가 갑자기 초코를 걷어차지만 않았어도 초코가 도망칠 리가 있겠어? 내일 당장 도윤이더러 유리한테 사과하라고 해!” 전화를 끊은 후 나는 눈물을 머금고 아들과 함께 마지막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냈다. 다음날 남편의 SNS는 여전히 개를 찾는 내용으로 도배됐다. 다만 나의 SNS는 아들을 추모하는 내용이었다. 10년간의 결혼 생활은 그렇게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더 보기정신을 차린 한유리는 내 뒤에서 귀청이 째질 듯 고함을 질렀다.“야 이 독한 년아! 네가 우리 선우 씨 사업을 다 망쳤어!”그것참 웃기지도 않았다. 내가 어디 임선우 사업만 망쳤을까? 한유리가 재벌가에 시집가려는 허망한 꿈도 망쳐버린 셈이었다.그녀는 나를 덥석 잡으려고 뛰어왔지만 내가 잽싸게 몸을 피하고 가방에서 태블릿 PC를 꺼내 영상을 하나 틀었다.흐릿한 불빛의 바 안에서 임선우와 한유리가 꼭 껴안고 주위 시선도 무시한 채 딥 키스를 나누는 장면, 한유리는 심지어 임선우의 옷 속에 손을 집어넣고 제멋대로 더듬고 있었다.그녀가 내게 도발할 때 얼마나 의기양양했을까? 인과응보라고 어느덧 그녀는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한유리는 내게 달려오며 한창 라방하는 내 휴대폰을 바닥에 내던졌다. 곧이어 가면을 내려놓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너 미쳤어? 선우 씨는 진작 너한테 마음 떠난 남자야! 왜 그것도 모르는 건데?”“나랑 선우 씨는 서로의 첫사랑이야. 우린 줄곧 서로를 가슴에 간직했고 옛 감정이 되살아나서 이렇게 만나게 된 거야!”이때 임선우가 황급히 부인했다.“아니야, 보영아! 내 말 좀 들어봐. 그날은 내가 술에 취해서 아무것도 기억 안 나!”한유리는 그의 변명을 듣더니 못 믿겠다는 눈빛으로 이 남자를 째려봤다.임선우가 자신과의 감정을 부정할 거라곤 꿈에도 예상치 못한 듯싶었다.저희끼리 뒤죽박죽이 되어 싸우는 꼴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한유리는 끝내 분노가 극에 달해서 임선우가 줄곧 숨겨왔던 큰 비밀을 하나 터트렸다. 그건 바로 임선우가 뇌물을 받은 사실이었다.넋이 나간 임선우는 멍하니 제 자리에 서 있었다. 이제 사업을 망친 것뿐만 아니라 감방에 들어갈 판이었다.나는 더 이상 두 인간을 거들떠보지 않고 라방을 끄고서 자리를 떠났다.이제 막 아파트 단지에서 나왔을 때 뒤에서 한유리의 비명이 들렸다.“으악, 배 아파! 선우 씨! 나 배 아파!”뒤돌아보니 한유리가 임선우 앞에 드
임선우는 선뜻 나서서 말리려고 했으나 내가 날카롭게 째려보자 머뭇거리면서 한유리에게 말했다.“유리야, 너 당당하다며? 뭐가 걱정이야. 지금처럼 투명한 사회에 보영이도 감히 함부로 나오진 못할 거야.”나는 한유리를 질질 끌고 그녀의 차 옆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문득 내가 뭘 하려는지 눈치챈 듯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야, 반보영! 너 대체 왜 이러는 거야?”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한없이 차가운 미소를 날렸다.“트렁크 열어!”처음엔 나도 추측뿐이었다. 한유리가 강아지를 안고 주차장에서 모습을 감췄으니 자차 트렁크에 숨긴 거라고 예상만 하고 있었다.라방에서 한유리 팬들이 내게 미친 듯이 공격했다.[야 이 미친년아! 지금 당장 경찰에 신고할 거야!][진짜 너무하네! 우리 여신님 괴롭히지 말란 말이야!][대체 왜 이러는 거야? 아이는 떠났어. 여신님이 거짓말한 것도 아닌데 뭣 하러 애먼 여신님한테 화풀이냐고?]나는 라방에 대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본인들 한 말 잘 기억해! 강아지를 그토록 사랑한다는 이 여자가 뒤에서 무슨 짓이나 하고 다니는지 똑똑히 보여줄게! 우리 도윤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줄 거야 내가!”한유리는 황급히 임선우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선우 씨, 나 믿지? 난 절대 거짓말 안 해. 선우 씨 속이는 일 없다고!”임선우도 나를 떼어내려고 애를 썼다.“보영아,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아. 도윤이 일은 다 내 탓이야...”나는 기가 막혀서 그에게 귀싸대기를 날렸다.“임선우!”“그래 맞아. 너도 도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있어! 그렇다고 얘가 무죄로 되는 건 아니야!”“잘 들어. 한유리 강아지는 아예 잃어버린 적도 없어! 바로 이 차 안에 있다고! 너한테 관심받으려고 부린 수작이야. 이제 그만 정신 좀 차릴래, 선우야?”임선우는 한유리를 바라보다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그런 남편에게 계속 말을 이었다.“도윤이가 너희들 장난감이니? 이년은 우리 도윤이 이용해서 네 사랑을 구걸하고 너는
나는 그 영상들을 몇 번씩 돌려보면서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르고 숨이 턱턱 막혔다.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도 나처럼 울화가 치밀었다.임선우를 대신해 산타할아버지 분장을 했던 의사가 가장 먼저 나서서 눈시울을 붉히며 카메라에 대고 외쳤다.“도윤이는 개털 알레르기가 있어요! 아이는 그저 피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토록 허약한 아이가 어떻게 강아지를 찰 수 있겠어요?!”“게다가 도윤이는...”의사는 목이 메서 도저히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도윤이는 그날 밤... 사망했어요! 이미 죽었다고요! 근거도 없는 댓글은 부디 삼가세요 제발!”그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화면 속 임도윤은 산타할아버지의 품에 겨우 안겨 있었고 이 장면이 아이의 마지막 순간으로 돼버렸다.의사의 발언에 네티즌들은 금세 태도가 변했다.[어떻게 이럴 수가! 아이가 죽었대... 불쌍해서 어떡해!][도윤의 엄마가 이런 기사들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가히 상상할 수가 없어 정말!]또 일부 사람들은 임선우에게 질의를 날렸다.[그러니까 이 아이가 죽어갈 때 아빠란 자는 딴 여자랑 함께 개나 찾아다녔단 말이야?]바로 이때 한유리가 입장을 밝혔다. 초코는 확실히 임도윤 때문에 놀라서 도망쳤지만 그녀는 임도윤의 병세가 악화된 걸 전혀 알지 못했다고 했다. 라방에서 그녀는 서럽게 울면서 하룻밤 사이에 많은 팬들을 보유하게 됐다.나는 휴대폰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속이 다 울렁거렸다. 그날 밤에 분명 임선우에게 수없이 전화했는데 아무것도 몰랐다는 게 과연 말이 될까?나는 문득 피곤이 몰려와서 더는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인간들은 언젠가 꼭 죄의 대가를 치를 것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고 있었다.이어진 며칠 동안 나는 방안에 꼭 갇혀서 의사가 제공해준 CCTV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봤다.영상에서 한유리의 강아지가 먼저 임도윤의 병실을 뛰쳐나왔고 뒤이어 그녀가 쫓아갔다. 몇 분 후 임선우도 병실을 떠나는 모습이었다.이 모든 게 내가 병실을 떠난 직후에
집에 돌아온 나는 한참 고민한 후 일단 귀국하기로 했다. 귀국해서 우선 내 일들을 다 처리하고 그때 다시 반민규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를 서포트해줄지 말지 결정하면 되니까.귀국 당일, 나는 일부러 새 휴대폰으로 바꿨다. 이렇게 해야만 아주 잠깐이라도 임선우의 ‘미행’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비행기가 착륙한 후 나는 곧바로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갔다.도윤의 죽음은 줄곧 내 마음속에 응어리 채로 남아 있어서 진짜 사인을 이번엔 반드시 알아내야만 했다.임도윤의 주치의는 나를 보더니 난감한 표정을 드러냈다.“보영 씨, 저희도 최선을 다했어요. 도윤이가 이미 발인을 마쳐서 병세 악화가 개털 알레르기와 연관이 있는지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를 찾기 힘들어요.”“게다가 상대방이 도윤이가 알레르기를 앓는 사실을 몰랐다면 저희도 책임을 추궁하기 어렵습니다.”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모든 게 내 예상대로였다. 증거를 수집하기가 어렵다는 건 나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곧이어 의사가 USB를 내 손에 쥐여줬다.“보영 씨, 이건 이브날 밤 병원의 모든 CCTV 영상이에요. 병실에 CCTV가 설치되지 않은 것만 제외하고 다른 곳들은 거의 다 녹화되어 있으니 좀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나는 USB를 받고 의사에게 고마움을 표한 후 임선우의 회사로 향했다.회사에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고 직원들은 나를 보자 구세주라도 찾은 듯 우르르 몰려들었다.“사모님! 드디어 오셨네요! 대표님께서 며칠째 연락 두절이에요. 회사가 다 망하게 생겼어요.”매니저가 초조한 말투로 내게 보고했다.“많은 협력사에서 갑자기 계약을 해지했어요. 이제 어떡해요? 우리 회사 망하는 거 아니죠?”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10년 전에 임선우가 창업하겠다고 할 때 나는 대폭 지지해주었고 반민규도 국내 인맥을 동원하여 몰래 뒤에서 조력자가 돼주었다.그 덕에 이안 그룹이 탄생했고 짧디짧은 몇 년 사이에 회사 입지를 굳혔다.상업계의 단맛을 본 임선우는 산업을 확장하여 호텔, 백화점 등등 수많은 업
반민규의 경호원들이 임선우를 꼼짝달싹 못 하게 제압했다. 그는 허리를 구부린 채 임도윤의 죽음을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퀭한 눈빛으로 뭐라 중얼거렸다.한유리는 옆에서 경호원의 손을 쉴 새 없이 내리치며 고함을 질렀다.“이거 놔! 선우 씨는 이안 그룹 대표란 말이야! 너희들이 뭔데 감히 우리 선우 씨를 건드려?”이에 반민규가 피식 웃으며 야유 조로 쏘아붙였다.“대표? 이 인간이 제 실력으로 대표 자리까지 올라간 것 같아?”“내가 뒤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임선우는 그냥 폐인이야!”한유리는 못 믿겠다는 눈길로 반민규를 쳐다봤다. 그녀의 눈빛 속에 충격과 분노로 휩싸였다.나는 그런 그들이 너무 시끄러워 경호원더러 두 사람을 끌고 저 멀리 가라고 했다.그러고는 홀로 바닷가를 거닐었다. 겨울의 바닷바람은 살을 엘 듯 매서운 칼바람이었다. 나는 도윤의 유골을 조금씩 조금씩 바다에 뿌렸다.“오늘은 동짓날이자 네가 태어난 날이야. 우리 도윤이 드넓은 바다로 돌려보내 줄게.”나는 목이 점점 메고 눈물이 서서히 앞을 가렸다.“도윤아... 다음 생엔 이런 아빠를 절대 만나지 말길 바라.”유골을 다 뿌린 후 나는 끝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만큼 대성통곡했다.“다 엄마 탓이야... 엄마가 널 그냥 놔두고 나오는 게 아닌데...”반민규는 외투를 내 어깨에 걸쳐주면서 나지막이 위로했다.“보영아, 네 잘못 아니야.”그 뒤로 며칠 동안 임선우는 줄곧 유령처럼 별장 근처를 맴돌았다.그러던 어느 날 반민규한테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그가 스피커폰으로 전환하자 상대가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대표님, 가게에 지금 한 남성분이 취해서 인사불성이 되었는데 아까부터 계속 반보영이란 이름만 부르고 있어요. 누가 며칠 전에 대표님 집 앞에서 이 남성분을 본 적이 있다고 하던데 혹시 아시는 분이에요?”곧이어 상대는 사진을 한 장 보내왔다. 사진 속 임선우는 수염이 터부룩하게 자라고 남루한 옷차림에 그야말로 처참한 몰골이었다.반민규는 내가 속상해할
반민규는 일찌감치 공항에서 기다리다가 내 손에 든 유골함을 보더니 목이 꽉 멨다.그는 차에서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걱정 마. 임선우 절대 잘 살게 내버려 두지 않아. 내가 그 꼴 못 봐!”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반민규의 별장에 입주했다. 내일 도윤이 유골을 바다에 뿌릴 예정이었다.하지만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아래층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가정부와 한 남자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는데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니 임선우가 별장까지 찾아온 것이었다.그는 가정부에게 대뜸 고함을 질렀다.“반보영 나오라고 해!”가정부는 그를 문밖에서 가로막고 단호하게 쏘아붙였다.“안 돼요. 대표님이 들어오지 말라고 하셨어요. 이만 돌아가시죠.”다만 임선우는 끈질기게 고집을 피웠다.“내가 내 와이프 만나겠다는데 너희 대표님 허락을 맡아야 해?!”곧이어 대문을 향해 버럭 고함을 질렀다.“야, 반보영, 너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남자 꼬시겠다고 이 먼 곳까지 찾아온 거야? 대단하다 너!”“당장 나와! 우리 도윤이 내놓으란 말이야.”이웃 주민들이 슬슬 몰려들었고 나는 더 이상 반민규에게 폐를 끼칠 수가 없어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에 내려가려 했다.이때 반민규가 나를 덥석 잡아당겼다.“보영아, 그냥 무시해도 돼.”나는 그런 오빠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아직 이혼한 건 아니잖아. 언젠가 해결해야 할 일이야.”문이 열리고 임선우가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노려봤다.“나왔네 그래도? 외딴 남자랑 놀아나니 좋아?”분명 잘못을 저지른 건 임선우인데 어떻게 이토록 뻔뻔스러운 몰골로 내 앞에 나타날 수 있을까?나는 두말없이 그에게 귀싸대기를 날렸다.“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임선우는 내가 손찌검을 할 거라곤 예상치 못했는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실소를 터트렸다.“네 휴대폰 내가 사준 거야. 위치 추적쯤은 껌이지.”...그는 말하면서 내 뒤를 훑어보았다.“도윤이는? 당장 나오라고 해. 나랑 함께 집에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들끓는 분노를 겨우 집어삼키고는 돌아서서 목소리를 낮추고 임선우에게 말했다.“임선우, 잘 들어! 도윤이가 오늘 밤을 못 넘길 것 같아.”전화기 너머로 1초간 침묵이 흐른 후 피식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또 무슨 수작이야? 좀 전까지 유리 SNS에서 미쳐 날뛰더니 이제 또 도윤이 앞세워서 불쌍한 척하는 거니?”그 순간 나는 온몸의 피가 굳어버릴 것만 같았다. 가슴 찢어질 듯한 고통과 분노에 휩싸인 채 도윤이를 바라봤는데 아이를 앞에 두고 또 감히 고함을 지를 순 없었다. 나는 마지못해 슬픈 마음을 추스르며 남편에게 애원했다.“선우 씨, 제발...”눈물이 하염없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간호사에게 잠깐 도윤이를 맡기고 복도로 달려나가 임선우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당장 병원에 오란 말이야! 도윤이 크리스마스 선물 사주겠다고 약속했잖아!”“그럴 시간 없어!”이에 임선우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유리네 강아지 초코를 찾아야 한단 말이야. 초코 못 찾으면 유리가 엄청 슬퍼할 거야.”곧이어 또 한 마디 덧붙였다.“내일 크리스마스잖아. 뭘 이렇게 보채? 내가 유리랑 같이 있다고 질투하는 거네, 쯧쯧.”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눈물이 정처 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10년이란 결혼 생활 동안 이 남자의 마음속에서 나와 임도윤은 개만도 못한 존재였다니.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차가운 말투로 쏘아붙였다.“선우 씨, 오늘 밤엔 원래 선우 씨가 도윤이 병간호해줘야 해. 선우 씨가 자리를 비우지만 않았어도 도윤이는 이렇게까지 될...”다만 임선우는 귀찮다는 듯 내 말을 잘랐다.“됐거든. 아까 밤에 일부러 도윤이 보러 갔는데 애가 아무 이상 없었어!”“그리고 유리도 좋은 마음으로 도윤이 병문안 간 건데 애가 어쩌면 초코를 발로 차버리냐?”“뭐라고?”나는 거의 포효하다시피 그에게 말했다.“도윤이 강아지 무서워하는 거 몰라? 어떻게 한유리에 개까지 데려올 수가 있어? 당신이 그러고도 아빠야?”문득 전화기 너머
크리스마스이브, 병원에서 전화 한 통 걸려왔는데 의사가 몹시 착잡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보영 씨, 도윤이 상태가 악화돼서 지금 긴급 치료를 받고 있어요! 임선우 씨가 도통 연락이 안 되네요. 지금 빨리 병원에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나는 뭘 더 정리할 겨를도 없이 부랴부랴 병원에 달려갔다. 전에는 늘 내가 옆에서 병간호하다가 오늘 잠깐 시간을 내서 도윤이 먹일 국을 끓이려고 집에 왔는데...사실 오늘은 임선우가 병간호할 차례였다. 그는 분명 아이를 돌보겠다고 나와 약속했었다.하지만 지금 대체 어디로 간 걸까?병원으로 가는 길에서 나는 끊임없이 임선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이 인간이 도통 받지를 않았다.분노에 휩싸인 나는 온몸을 파르르 떨면서 그에게 카톡을 보냈다.[임선우! 오늘 밤에 애 본다며?! 도윤이 지금 응급조치 받고 있대!]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미친 듯이 응급실로 달려갔지만 의사가 그런 나를 덥석 막고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보영 씨...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나는 의사를 밀치고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아니야! 아닐 거야! 어제까지 잘만 지냈잖아!”의사는 내 어깨를 꽉 잡아주었다.“도윤의 상태가 원래 불안정했어요. 병실에 모니터가 있지만 옆에 있는 가족만이 제일 먼저 이상 징후를 감지할 수 있어요. 오늘 밤 도윤의 곁에 아무도 없어서... 저희도 한 발 늦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이 소식을 들은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휴대폰을 꽉 잡은 채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제대로 숨 쉴 수조차 없었다.“임선우!”얼마나 기다렸을까. 수술실 불이 꺼지고 의사가 걸어 나왔다.“임도윤 씨 가족분, 도윤이랑 마지막 크리스마스이브를 함께 보내세요...”마지막이라...어떻게 이럴 수가...임종실에 돌아온 후 임도윤은 겨우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엄마, 아빠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는 거 맞죠? 그런 거죠?”나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비통한 마음을 겨우 추슬렀다.“그래, 맞아. 아빠 크리스마스엔 꼭
크리스마스이브, 병원에서 전화 한 통 걸려왔는데 의사가 몹시 착잡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보영 씨, 도윤이 상태가 악화돼서 지금 긴급 치료를 받고 있어요! 임선우 씨가 도통 연락이 안 되네요. 지금 빨리 병원에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나는 뭘 더 정리할 겨를도 없이 부랴부랴 병원에 달려갔다. 전에는 늘 내가 옆에서 병간호하다가 오늘 잠깐 시간을 내서 도윤이 먹일 국을 끓이려고 집에 왔는데...사실 오늘은 임선우가 병간호할 차례였다. 그는 분명 아이를 돌보겠다고 나와 약속했었다.하지만 지금 대체 어디로 간 걸까?병원으로 가는 길에서 나는 끊임없이 임선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이 인간이 도통 받지를 않았다.분노에 휩싸인 나는 온몸을 파르르 떨면서 그에게 카톡을 보냈다.[임선우! 오늘 밤에 애 본다며?! 도윤이 지금 응급조치 받고 있대!]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미친 듯이 응급실로 달려갔지만 의사가 그런 나를 덥석 막고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보영 씨...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나는 의사를 밀치고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아니야! 아닐 거야! 어제까지 잘만 지냈잖아!”의사는 내 어깨를 꽉 잡아주었다.“도윤의 상태가 원래 불안정했어요. 병실에 모니터가 있지만 옆에 있는 가족만이 제일 먼저 이상 징후를 감지할 수 있어요. 오늘 밤 도윤의 곁에 아무도 없어서... 저희도 한 발 늦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이 소식을 들은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휴대폰을 꽉 잡은 채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제대로 숨 쉴 수조차 없었다.“임선우!”얼마나 기다렸을까. 수술실 불이 꺼지고 의사가 걸어 나왔다.“임도윤 씨 가족분, 도윤이랑 마지막 크리스마스이브를 함께 보내세요...”마지막이라...어떻게 이럴 수가...임종실에 돌아온 후 임도윤은 겨우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엄마, 아빠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는 거 맞죠? 그런 거죠?”나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비통한 마음을 겨우 추슬렀다.“그래, 맞아. 아빠 크리스마스엔 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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