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천하무적, 여섯째 황자: Chapter 11 - Chapter 20

40 Chapters

제11화

깊은 밤, 황궁 안.“다 확인하였느냐?”문제가 황급히 들어온 영위에게 물었다.“다 확인하였사옵니다. 폐하.”벽파원의 원래 호위병들의 입에서 나온 말을 영위가 허리를 굽힌 채 조심스럽게 보고했다.“뭐라!”문제가 탁자를 내리쳤다.“셋째가 간땡이가 부었구나. 내 허락도 없이 감히 여섯째를 옥에 가두겠다고? 여섯째가 죽음을 각오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화가 난 문제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고정하시옵소서, 폐하.”옆에 있던 목순이 조심스럽게 말했다.“셋째 황자님께선 여섯째 황자님을 겁주려 한 것 같사옵니다. 태자마마의 심복이 죽기 전 여섯째 황자님을 찾아갔다더군요.”문제가 고개를 들어 날카로운 눈빛으로 목순을 쳐다보았다.“네 생각에 여섯째가 태자 모반 사건에 연루되었을 것 같으냐?”“저…”목순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이 늙은이는 잘 모르옵니다.”“모른다는 건 연루되지 않았다는 뜻이겠지?”문제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만약 태자라면 그 무능한 놈과 역모를 꾸미겠느냐? 군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략도 없는데.”‘여섯째를 끌어들이는 것은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격이니 생각이 있다면 절대로 그리하지 않지.’목순은 겁을 먹고 입을 꾹 다물었다.문제가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또다시 영위에게 물었다.“여섯째가 그 천한 궁녀들을 어찌 처벌했다더냐?”그러자 영위가 답했다.“무릎을 꿇리고 자신들의 뺨을 때리게 했사옵니다.”“다른 처벌은?”문제가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영위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없었사옵니다.”“무능하기 짝이 없는 놈 같으니라고.”얼굴에 실망감이 가득한 문제가 노발대발하였다.“그년들을 처벌하라고 짐이 호위병까지 교체해 주었는데. 병신 같은 놈! 내가 왜 이런 못난 놈을 낳았는지.”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오른 문제가 욕설을 퍼붓자, 영위와 목순은 듣기만 할 뿐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문제가 운정을 병신이라 말한 것은 아비가 자식을 욕하는 것이어서 별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만약 다른 사람들이 어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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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운정이 현재 거주하는 곳은 그가 성인이 되기 전에 머물던 거처였다.운정을 생각하며 문제는 마음속으로 또다시 욕하기 시작했다.‘내가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면 스스로 제기했어야지. 못난 놈 같으니라고.’잠시 생각에 잠긴 문제가 목순에게 명했다.“죄인 우민의 저택을 지금 즉시 청소한 후 내일 아침 일찍 운정에게 조서를 내려 그 저택을 하사하라. 그리고 저택의 하인들은 운정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삼황자 저택.운림의 아랫도리는 아직도 약간의 통증이 있었다.운림을 보러 온 서승우와 숙비가 이런 운림의 모습을 보고는 안타까움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운림이 무능한 운정에게 제대로 당했네!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게 생겼네.’화가 치밀어올라 서승우는 운림을 꾸짖었다.“너도 참 어리석구나. 운정 그놈에게 죄명을 씌울 거면 다른 걸로 하지, 왜 하필 태자와 내통했다는 누명을 씌우는 것이냐 말이다. 이걸 믿는 사람이 있을 것 같으냐? 조정의 신하들뿐만 아니라 너 자신도 믿지 않으면서.”‘하긴 운정이 태자와 내통해 모반을 꾀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믿지 않지. 그 무능한 놈이 피만 봐도 벌벌 떠니 내통할 리가 없어. 그걸 믿는 사람은 머리가 아둔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해도 무방하지.’운림은 답답함과 분노가 치밀어올라 입술을 깨물었다.“저는 단지 겁주려 했을 뿐 그놈이 반격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반격하지 않으면 죽음뿐인데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리 없지.”서승우는 화 난 눈빛으로 운림을 노려보며 당부했다.“당분간은 안정을 취하고 운정에게 시비 걸지 마라.”“왜요?”운림이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소리쳤다.“가만 놔둔다면 분을 어찌 삭이란 말입니까.”“이 어리석은 놈아!”서승우는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호통쳤다.“폐하께서는 이미 전후 사정을 다 아셨을 거다. 지금까지 너를 찾지 않은 건 너를 떠보려는 것이야. 만에 하나 이 시점에 네가 또다시 운정을 괴롭힌다면 너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일이란 걸 왜 모르느냐!”애송이인 우림과 달리, 서승우는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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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다음 날 아침, 목순이 찾아와서 문제의 조서를 전달하자, 운정은 만감이 교차했다.궁궐을 벗어나 있어서 비밀리에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기쁘기는 했으나 한편으로는 문제가 갑자기 자신에게 미안함을 느껴 혼인시킨 후에 송북으로 보내지 않을까 봐 걱정되었다.그리되면 모든 계획이 수포가 될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 와서 걱정한들 아무 소용이 없어서 운정은 일단 조서를 받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벽파원에서 오랫동안 거주했지만, 소지품이 많지 않아서 운정은 짐만 간단히 챙긴 후, 두 호위병과 함께 떠났다.우민의 저택에 도착해보니 간판은 이미 여섯째 황자 저택이라고 씌어있는 새 간판으로 바뀌어져 있었다.다만 유칠이 덜 말라서 한눈에 봐도 급하게 만든 티가 확 났다.“어서 오십시오. 여섯째 황자님.”저택 안에 있던 하인들이 일제히 절을 올렸다.‘하인들이 꽤 많구먼.’사내와 계집을 합쳐보니 족히 30명은 넘어 보였는데 대부분은 시녀와 머슴들이었고, 이 중 6명은 호위병이었다.하지만 이들이 모두 문제(文帝)가 보낸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운정은 불편함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이들 중에 아바마마의 밀정이 몇 명이나 되는지.’“다들 일어나거라.”운정이 손을 들어 올리며 부드럽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딴생각을 품고 있었다.‘믿을 만한 심복을 따로 구해야겠네.’저택 내부를 둘러본 후, 운정은 고운과 주밀을 대동하고 저잣거리로 나갔다.“황자님, 마차 타시는 게 어떨는지요?”고운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황자님께서는 평소 말을 타신 적이 드물 터이니, 혹여 나중에 사고라도 난다면 큰일이 아닙니까. 해서…”“그러자꾸나.”운정이 깊은 한숨을 들이쉬며 말했다.“하긴 전장에 나갈 사람이 말도 탈 줄 모른다면 아바마마의 얼굴에 먹칠하는 거나 다름없지.”말하면서 운정은 손과 발을 쓰며 말에 올라타려 했다.전에 말을 타본 적이 없던지라 그가 허둥지둥하며 겨우 중심을 잡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주밀과 고운은 탄식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참, 말도 제대로 못 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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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운정이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예를 갖췄다.불같은 성격의 심해원도 예의를 차리는 것을 보고 운정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뭐야? 그새 성격이 변했나? 어젯밤에 폐하를 뵙지 못해서 이제 순순히 현실을 받아들이겠다는 건가?’“다 한 가족이니 이런 격식은 필요 없습니다.”운정은 대수롭지 않게 웃은 뒤에 시선을 기개가 넘치는 젊은 사내에게 향했다.“그대는 누구인가?”그 순간, 젊은 사내는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운정을 흘끗 쳐다본 뒤 허리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황자님, 소인은 좌둔위 기도위 원규라 합니다. 아버지는 좌둔위 대장군 원종이시고요.”‘원종이라면 셋째 형님의 사람이 아니던가? 어제 대전에서 그 누구보다 즐겁게 춤을 추던데. 그렇다면 난 예를 차리지 않아도 되겠구나.’“아, 원 도위구만.”운정이 허허 웃으며 물었다.“그래 원 도위는 무슨 일로 온 것이오?”원규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서둘러 답했다.“심 낭자가 기분이 안 좋으시다고 해서 특별히…”“어험!”영자가 기침 소리로 원규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원 도위는 저의 먼 친척입니다. 원래는 저와 함께 성 밖으로 나가 말을 타며 나들이 하려다가 해원이 기분이 안 좋다는 말을 듣고 같이 가려 했습니다.”말을 마치고 영자는 원규에게 눈짓을 보냈다.‘이 멍청한 놈아, 해원은 곧 황자비가 될 사람인데 그녀와 둘이서 말 타고 나들이 간다면 안 되지. 비록 해원이 네놈을 명확히 거절했다고는 하나 황자님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찌 나올지 아무도 몰라.’영자의 눈짓에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원규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번복했다.“예. 영자 누님과 함께 나들이하려고…”“그렇구먼.”운정이 웃으며 영자를 흘끗 쏘아보았다.‘이 여인이 눈치가 있구먼. 원규를 혼낼 좋은 기회였는데.’이때 심 부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어젯밤 궁 밖에서 밤새 무릎을 꿇고 있었더니 고뿔에 걸린 것 같습니다. 황자님께 전염될 수도 있어서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말을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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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말타기를 가르쳐 달라고?’원규는 어리둥절해하다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소인이 어찌 감히 황자님의 부탁을 거절하겠습니까.”‘그래. 내 승마 솜씨를 보여줄 테니 너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지 똑똑히 보거라. 폐하께서 네놈과 해원과의 혼사를 주선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분명 내 여인이 되었을 텐데. 이제 와서 결과를 바꿀 수 없겠지만 네놈의 체면을 구겨버려서 마음속에 쌓인 원한을 풀어야겠다.’“그러면 두 분이 가세요.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원래 흥미가 없는 데다 운정이 억지로 따라가려 하자, 그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 심해원은 아예 가기를 포기해 버렸다.심해원의 말에 영자는 서둘러 그녀를 달랬다.“아가씨, 기분도 전환할 겸 같이 가시지요. 그래야 황자님과 친해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영자는 마음이 답답했다.‘폐하가 오해할까 봐 내가 나선 건데 이제 와서 안 간다면 내가 뭐가 되냐? 저 한심한 놈을 너뿐만 아니라 나도 보기 싫단 말이다.’“그래. 같이 가자꾸나.”원규도 심해원을 설득했다.“여섯째 황자님이 위풍당당하게 말을 타는 솜씨를 구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지 않느냐.”그 말에 마음이 움직인 심해원은 슬쩍 운정을 곁눈질했다.‘그래. 저 오만방자한 놈의 기를 확실히 꺾어줘야겠다. 장군 가문의 딸인 내가 너 같은 놈은 안중에도 없단 걸 보여주마.’이렇게 생각하고 심해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심씨 저택을 나서자, 머슴들이 말을 끌고 왔다.원규는 운정에게 자랑하려는 듯, 한 손으로 가뿐히 말에 올라탔다.‘관심받고 싶어서 환장했네.’운정은 마음속으로 욕하면서도 칭찬을 늘어놓았다.“역시 기도위답게 승마술이 뛰어나군.”그러자 원규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황자님도 어서 말에 올라타시죠.”운정의 추태 부리는 모습을 볼 생각에 그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일단 내려오시오.”운정이 원규를 불렀다.“말 타는 법부터 배워야겠소.”“예.”원규는 우아하게 말에서 뛰어내렸다.그 모습을 보고 운정이 또 칭찬했으나 역시 속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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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그녀는 원규를 다시 보게 되었다.“이제 보니 네놈은 지혜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냥 멍청하구나.”영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원규를 흘끗 쏘아본 뒤, 옆에 있던 심해원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조금 자제하라는 신호를 보냈다.“괜찮은 거냐?”운정이 일어난 후에 서둘러 주밀을 일으켰다.“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소인은 괜찮습니다.”주밀은 옷의 먼지를 털면서 말했다.“괜찮다면 됐다.”운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고개를 원규에게 돌렸다.“원 도위, 다음부터 나를 밀 때 힘을 너무 주지 마시오.”‘뭐라?’원규는 어리둥절했다.‘힘을 많이 안 주고 그저 살짝 밀었을 뿐인데.’“원규, 네 이놈! 감히 황자님을 밀쳐 말에서 떨어뜨려?”갑자기 고운의 고함이 원규의 귀에 들려왔다.원규는 깜짝 놀라 허둥지둥 해명했다.“난… 난 힘을 주지 않았다. 황자님께서 스스로 말에서 떨어진 것이다.”“닥쳐라!”고운의 눈동자에서 날카롭고 차가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황자님이 너를 모함이라도 했다는 말이냐?”“됐다, 됐어.”중재에 나선 운정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원 도위이 실수로 힘 조절을 못 했을 뿐 고의는 아니었을 거다.”운정의 말에 원규가 펄쩍 뛰었다.‘중재하는 줄 알았더니만 오히려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 있잖아.’고운과 주밀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이놈이 고의로 밀친 것이 맞네. 보나 마나 황자님을 심해원 앞에서 망신 주려고 그랬겠지.’두 사람이 쏘아보자, 원규는 할 말을 잃은 채 애원하는 눈빛으로 심해원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심해원은 입을 삐쭉거리며 코웃음을 쳤다.“황자님이 말 타는 솜씨가 서툴러서 넘어진 것이…”“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심 아가씨.”고운이 고개를 들어 심해원을 쳐다보았다.“곧 여섯째 황자비가 될 분이 이리 말하면 안 되지요.”심해원이 씩씩거리며 대거리하려 했지만, 영자가 막아 나섰다.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운정이 속으로 고운을 칭찬했다.‘고운의 눈치가 빠르구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다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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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원씨 저택.“뭐라!”원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원규를 발로 걷어차며 호통쳤다.“이 미친놈아! 여섯째 황자님을 말에서 밀어뜨렸다고? 죽고 싶어서 환장했느냐?”“아버지! 제가 밀친 것이 아닙니다.”원규는 바닥에 엎드린 채 울부짖었다.“황자님이 스스로 떨어졌어요.”“그래도 이놈이!”원종의 분노가 폭발했다.“밀치지 않았다면서 어찌하여 큰 소리로 웃은 거냐?”“그것이…”원규는 억울했지만,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서방님, 그만하세요.”원 부인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원규가 고의로 무능한 여섯째 황자님을 밀쳤다 한들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폐하께서는 그런 아들 있는지조차 모르실 텐데. 그 무능한 놈 때문에…”착!원 부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원종은 그녀의 뺨을 후려갈기며 소리쳤다.“닥치시오! 비록 그동안은 잊고 살았다고 하나 변방 가서 죽으려 하는 여섯째 황자님을 폐하께서는 지금 안쓰러워하고 있단 말이오. 이런데도 별일이 없을 거라고?”“그것이 참말입니까?”원종의 말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원 부인이 얼굴의 통증도 잊은 채 물었다.“그… 그러면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폐하께서 알게 되면 우리 원규를 가만두지 않을 것인데.”인제야 사태 파악이 되자, 그녀는 공포감이 몰려왔다.“어떡하긴 뭘 어떡한단 말이오!”원종이 씩씩거리며 원규를 쏘아보았다.“어서 썩 일어나라! 선물을 준비하여 나와 함께 여섯째 황자님을 찾아가 사죄라도 해야 할 거 아니야.”“예. 예…”원규가 허겁지겁 일어났다.이들은 귀중한 물품을 챙겨 곧바로 여섯째 황자 저택으로 향했다.문제가 이 사실을 알기 전에 운정에게 사과해야 하므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마차를 타지 않고 말을 탔다.운정이 뇌물을 받으면 원규를 용서한다는 뜻이나 다름없어서 이에 대해 나중에 문제(文帝)가 추궁한다고 할지라도 엄벌에 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이들이 황급히 달려온 바람에 여섯째 황자 저택에는 금방 도착했다.원종 부자가 들고 있는 상자를 보며 운정은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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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원종이 초대장을 쓰는 족족 운정은 그것을 대신들에게 전달하라고 하인들에게 명했다.글 쓰는 와중에 운정은 차와 약과를 대접하기도 했다.그렇게 오후가 되어서야 원종은 100개의 초대장을 다 작성했다.“원 장군은 참으로 겸손하십니다. 제가 쓴 글씨보다 훨씬 낫군요.”운정이 빙그레 웃으며 원종을 칭찬했다.“저는 이따가 조정 충신들에게 직접 초대장을 전달하러 가겠으니, 저녁은 대접 못 하겠습니다.”“예. 괜찮습니다.”원종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황자님, 그러면 제 자식은 용서해 주시는 겁니까?”“용서하고 안 하는지가 어디 있겠어요.”운정이 손을 내저었다.“원 도위가 고의가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운정의 말에 원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원규를 쏘아보았다.“어서 황자님께 감사 인사를 하지 않고 뭣 하는 게야?”원규는 억울함을 참으며 울며 겨자 먹기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황자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되었소. 제가 두 분을 배웅해 드리겠습니다.”운정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괜찮습니다.”원종이 사양하려 하자 운정은 손사래를 쳤다.“이리 큰 도움을 주셨는데 당연히 배웅해 드려야죠.”원종 부자가 어쩔 수 없이 운정과 함께 밖으로 나왔을 때는 머슴들이 이미 이들 부자의 말을 끌고 온 뒤였다.“이 말은…”눈앞의 말을 보더니 원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건 내가 타고 온 말이 아니잖아.’“이 말이 왜요?”운정이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황자님, 이건 소인들의 말이 아닙니다.”원종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예? 그럴 리가요?”운정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설마 그렇다면 아까 하인들이 타고 간 것이 두 분의 말이겠군요.”‘하인들이 타고 갔다고?’운정의 말에 원종 부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원 장군님. 이거 미안하게 됐습니다.”운정이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이 말들은 모두 아바마마께서 보낸 것이라 저도 잘 몰라서…”“괜… 괜찮습니다.”원종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억지로 말했다.“말이 다 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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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원종 부자를 배웅하고 나서 초대장을 셋째 황자의 외숙부인 서승우에게 전달하려고 운정은 고운을 대동하고 곧바로 정국공 저택으로 향했다.‘정국공만 잘 구워삶는다면 다른 사람들은 알아서 예물을 보내겠지.’“황자님, 소인이 할 말이 있는데…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가던 도중, 고운이 망설이던 끝에 입을 열었다.“무슨 일인데 그러느냐?”운정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고운은 쓴웃음을 짓더니 정색하며 말했다.“황자님께서 직접 정국공 저택에 가서 초대장을 전하는 게 스스로 굴욕을 자초하는 일인 것 같아서요.”“그들이 날 얕보는 걸 나도 알고 있다.”운정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들이 내 초대에 응하지 않겠지만 나는 예의를 다해야지 않겠나.”고운은 말문이 막힌 듯 잠잠해졌다.잠시 후, 해가 저물어갈 때쯤 두 사람은 정국공 저택에 도착했다.“여섯째 황자가?”운정이 찾아온 소식을 듣고 서승우와 그의 가족들은 어리둥절했다.‘여섯째 황자가 무슨 일로 왔을까? 설마 사죄하러? 하지만 사죄할 거면 삼황자 저택에 갔을 것인데.’“다들 나가 맞이합시다.”서승우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가족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비록 운정을 얕잡아보더라도 여섯째 황자인 그를 영접조차 하지 않는다면 황실을 능멸한 거나 다름없었으니.“어서 오십시오, 여섯째 황자님.”저택 입구에서 서승우는 가족들과 함께 억지로 절을 하며 예를 갖췄다.‘조정의 충신이란 자가 내게 절까지 하니 모욕감이 많이 느껴지겠구나.’“정국공, 어찌 이러십니까.”운정은 수줍게 웃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정국공께 초대장을 전하려고 이리 왔습니다.”“초대장이라고요?”서승우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황자님과 심해원의 혼삿날이 잡혔습니까?”서승우가 운정을 저택 안으로 초대할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운정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그것이 아니라 제가 새 저택으로 이사했습니다. 해서 조정의 여러 대신들을 초대하여 연회를 열려고 하니 정국공도 참석하시라고요.”말하면서 운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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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운정은 일부러 쭈뼛쭈뼛하며 말하자, 서승우는 하마터면 그에게 욕사발을 퍼부을 뻔했다.‘자기는 예의를 다 하면 되니 우리더러 알아서 하라고? 황자가 직접 초대장을 전하러 왔으니, 성의를 보여달란 말이잖아! 하긴 황자란 놈이 이 정도까지 했는데 우리가 아무 성의도 보이지 않는다면 폐하께서는 우리가 예의 없다고 생각하겠지.’서승우는 억지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황자님, 비록 연회에 참석하지는 못하나 소소한 예물이라도 보내 새 저택으로 이사한 것을 축하하도록 하겠습니다.”“예?”운정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을 내저었다.“저… 저는 예물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굳이 해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서승우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황자님께서 친히 납시셨는데 저희가 어찌 가만히 있겠습니까.”“저…”운정이 난처해하며 말했다.“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고 이만 가보겠습니다.”“황자님을 배웅하라!”서승우는 큰 소리로 외쳤지만, 손에 들고 있던 초대장을 보자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물론 그와 달리 운정은 입이 귀에 걸렸다.‘나와 셋째 황자가 적대 관계인데, 그의 외숙부인 서승우가 예물을 보내기로 했으니 다른 대신들도 예물을 보내지 않고서는 못 배길 거야. 헤헤! 또 적지 않은 재물을 모을 수 있게 됐군. 황자에게 보내는 예물이니 너무 볼품없지는 않겠지. 어차피 술과 음식도 제공할 필요가 없으니 손해 볼 것은 없을 테고. 자, 그러면 이제 다른 대신의 저택으로 가볼까?’의아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고운의 시선을 무시한 채 운정은 흐뭇해하며 장규의 저택으로 향했다.이번에는 좀 더 직설적으로 말했다.“정국공 저택에서 오는 길입니다. 정국공께서는 조정 일이 많아 예물만 보내시겠다 하시더군요. 장 어르신은…”“이 늙은이도 할 일이 많아서 참석하지 못하겠습니다.”장규가 운정의 말을 끊었다.“예물만 보내겠으니 이해해 주세요. 황자님.”“그렇군요…”운정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기쁘기 그지없었다.‘예물만 보내면 되니 네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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