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천하무적, 여섯째 황자: Chapter 21 - Chapter 30

40 Chapters

제21화

새 저택으로 이사한 운정은 이틀 후 관례대로 여러 신하들을 초대하여 연회를 열었다.가끔 조정 관리들이 보낸 하인이나 자식들이 선물을 가져와 육황자 저택 밖은 꽤 북적거렸다. 하지만 모두 선물만 놓고 갈 뿐 저택 대문조차 들어가지 않았다.북적거리는 밖과 달리 안은 한산하기만 했다.운정은 홀로 뒤뜰에 앉아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했다. 오늘 받은 선물로 자금은 확보되었고 이젠 그의 사람을 만들어야 했다.하지만 야망을 드러내서는 안 되기에 대놓고 문객이나 협객을 모을 수는 없었다. 이건 꽤 골치 아픈 일이었다.“황자님, 심 낭자께서 오셨습니다.”그때 한 시녀가 다가와 보고했다.“들여보내라.”운정은 겉으로는 씁쓸한 척하며 손을 흔들었지만 속으로는 의아하기 그지없었다.‘심해원이 왜 왔지? 내 꼴이 어떤지 비웃으러 왔나? 아니면 오늘 이 자리에 다른 사람은 오지 않아도 되지만 심해원은 꼭 와야 한다는 걸 깨달은 건가?’심해원이 들어오자 운정은 시녀를 물렸다.“조정의 신하들을 초대했다 하지 않았습니까? 왜 술상도 차리지 않은 겁니까?”심해원은 들어오자마자 인사도 없이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운정은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를 들먹였다.“어차피 아무도 오지 않을 텐데 술상을 차리는 건 낭비 아니냐?”‘아무렇지 않은 척하긴.’심해원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면서 차갑게 말했다.“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한 분이군요. 전 또 혼자 숨어서 울 줄 알았습니다.”‘울긴 개뿔. 내가 울긴 왜 울어?’운정은 기분이 언짢아졌지만 이내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그럼 나와 혼인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그날 넌 숨어서 울었느냐?”“그건...”심해원의 안색이 급변하더니 주먹을 꽉 쥐고 앞으로 다가섰다.“왜? 아직도 날 때리고 싶은 것이냐?”그는 심해원을 차갑게 쏘아보았다.“장군의 여식이라는 자가 시집가면 지아비를 따라야 한다는 것도 모른단 말이냐?”그 말에 심해원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 찰나였지만 정말 주먹으로 한 대 내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를 생각하고 꾹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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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운정이 피식 웃었다.“큰소리치긴. 그럴 배짱이 있었더라면 눈물을 흘리면서 어명을 받들진 않았겠지.”“그건...”말문이 막혀버린 심해원은 너무도 화가 나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음 같아서는 쥐어 패버리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어 혼자 씩씩거렸다.운정은 그런 심해원을 재미있다는 듯 쳐다보며 물었다.“혼자 온 것이냐, 아니면 누가 시켜서 온 것이냐?”심해원이 콧방귀를 뀌었다.“어머니가 편찮으시지 않았다면 절대 오지 않았을 겁니다.”정말 오고 싶지 않았지만 싫어도 와야 했다. 둘째 새언니 영자의 말마따나 이곳도 곧 그녀의 집이 될 것이기에 형식적인 절차일지라도 얼굴은 비춰야 했다.마뜩잖은 심해원의 표정에 운정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내가 보기 싫으면 다른 곳으로 가거라. 아니면 네 집으로 돌아가도 좋고.”그 말에 심해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발걸음은 떼지 못했다. 잠시 후 다시 자리에 앉아 운정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왜 그러는 것이냐?”운정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자 심해원이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둘째 새언니에게서 들었는데 황자님은 뒤에서 나쁜 짓이나 하는 음흉한 자라고 하더군요. 며칠 전에 일부러 말에서 떨어져 원규에게 누명을 씌운 게 맞습니까?”‘응? 그 여자가 눈치를 챘다고? 만만치 않은 여자군.’운정은 속으로 살짝 움찔했지만 겉으로는 진지하게 말했다.“음흉한 게 아니라 관종 짓이라고 해두지.”‘나 말고는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없을걸?’“관종 짓? 그건 또 뭡니까?”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또 물었다.“아무튼 일부러 말에서 떨어져 원규에게 누명을 씌웠다는 걸 인정한다는 거지요?”“그래.”운정은 깔끔하게 인정했다.“대체 왜...”심해원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제가 원씨 가문에 고자질할까 두렵지도 않습니까?”“두려울 게 뭐가 있다고.”그는 가볍게 웃으면서 주변을 둘러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실 오늘 내가 신하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인 건 이 기회에 재물을 모아 송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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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잔치인데도 운정의 주머니는 두둑해졌다.문제는 나랏일로 바빠 직접 오진 못했지만 선물을 보내왔다. 문제가 선물을 보낸 이상 다른 황자들과 공주들 또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그들뿐만 아니라 초대장을 받지 못한 자들까지도 사람을 시켜 선물을 보내왔다. 선물들의 가치를 얼핏 계산해보니 은자 십만 냥은 족히 되었다.하지만 골치 아픈 건 이 물건들을 어떻게 돈으로 바꾸냐는 것이었다. 받은 다음 날에 바로 팔아 치우면 좋지 않은 소문이 날 게 뻔했다.운정은 밤늦도록 고민했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 결국 생각을 포기했다.어차피 혼인할 때 또 한 번 선물을 받기 때문에 그때 가서 돈으로 바꿀 방법을 생각해보기로 했다.늦은 밤 황궁.“여섯째 쪽 상황은 어떠하냐?”문제는 다른 사람들을 물리고 영위만 불러 상황을 물었다. 영위가 답했다.“조정의 문무백관 대부분이 선물을 보냈사오나 직접 찾아가 축하한 이는 여섯째 황자비 말고 아무도 없었사옵니다.”“여섯째 반응이 어떠하더냐?”문제가 또 묻자 영위가 대답했다.“저택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여섯째 황자님의 심기가 불편한 것 같다고 했사옵니다. 점심도 드시지 않고 홀로 뒤뜰에 오래 앉아 계셨다고 하나이다.”“어휴...”그 말에 문제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왜 이렇게까지...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 초대장을 왜 그리도 많이 보낸 건지. 예를 다해도 결국 속상한 건 여섯째 본인인데.’영위는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폐하, 다른 일이 더 있사옵니다.”“말해보라.”“며칠 전 여섯째 황자님께서 심씨 저택에 방문하셨다가 좌둔위 기도위인 원규 도위를 우연히 만났사옵니다. 원 도위에게 승마술을 배우려 하셨으나 원 도위가 황자님을 밀쳐 말에서 떨어지게 한 것도 모자라 그 자리에서 대놓고 비웃었다고 하나이다...”“원규? 원종의 아들 말이냐?”“그러하옵니다.”순간 문제의 눈에 무서운 빛이 번뜩이더니 한참 침묵하다가 다시 물었다.“원종은 뭐라 하더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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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화친을 할 것인지 전쟁을 할 것인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군사력은 북성에 미치지 못했고 태자 난도 완전히 잠잠해지지 않았으며 주변의 다른 나라들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설령 북성을 이긴다 하더라도 대건의 피해가 너무 크면 호시탐탐 노리는 나라들을 제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때 가서 그 나라들이 일제히 대건을 공격한다면 대건은 끝장난다.하지만 북성에 식량을 주는 건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어찌하면 좋을지 정말 너무도 골치가 아팠다.문제는 거의 날이 밝아올 때까지 고민하다가 결단을 내렸다.‘그냥 주자. 대건은 아직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지금 전쟁한다면 승산이 아주 희박해.’...이틀 후 오후.운정이 하마터면 노름꾼 아버지 때문에 기루에 팔릴 뻔한 계집종을 사자마자 궁에서 사람이 찾아왔다.“폐하께서 오늘 밤 만수궁에서 북성 사절단을 위한 연회를 여시니 황자비와 함께 시간 맞춰 오시기 바랍니다.”“알겠소. 수고하셨소.”운정은 대답한 후 전갈을 전하러 온 내관에게 사례를 주라고 했다. 돈을 받은 내관은 감사 인사를 한 다음 기쁜 얼굴로 떠났다.“오늘부터 네 이름은 새봄이다.”“이름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황자님.”“됐다. 데려가 씻겨라.”운정은 저택의 시녀에게 명령하고 고운과 함께 떠났다.잠시 후 고운이 마차를 몰고 심씨 저택에 도착했다. 심 부인은 이번에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지 않았다.저택 안으로 들어갈 때 운정은 일부러 영자를 힐끗 쳐다보았다. 영자의 시선도 그에게 향해 있었는데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었다.운정은 눈을 깜빡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내가 심해원을 통해 전하려던 신호를 알아챈 모양이네. 역시 똑똑한 여자야. 내 밑에 둘 가치가 있겠어.’간단한 인사를 나눈 다음 운정은 용건을 말했다.심해원은 내키지 않았지만 문제의 특별한 요구였기에 거절할 수 없어 마지못해 승낙했다.“오늘 밤 아주 망신을 제대로 당하겠네요.”마차 안, 심해원이 운정과 거리를 둔 채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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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만수궁.연회 시작까지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궁궐 밖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오늘 이 연회는 문제가 북성 사절단을 환영하기 위해 마련한 연회로 대건왕조의 위엄을 드러내는 자리라 절대 늦어선 안 되었다.심해원의 예상대로 황족 외에 조정의 충신들만 참석했고 삼품 이하의 관료들은 참석할 자격도 없었다.“오늘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여섯째가 다 참석했을까?”“난 여섯째가 또 꾀병을 부릴 줄 알았는데.”“이분이 바로 여섯째 형님이십니까? 본 기억이 없는 것 같습니다.”“네가 이제 고작 몇 살이라고. 우리도 여섯째를 본 적이 거의 없다. 양반댁의 귀한 여식보다도 더 만나기 힘들어...”운정과 심해원이 도착하자 황자들과 공주들이 일제히 비웃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열세 살인 여덟째 황자마저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를 비웃었다.뭇사람들의 조롱에 속으로 울화통이 터진 심해원과 달리 운정은 이상하리만큼 차분했고 얼굴에도 흔들린 기색이 전혀 없었다.“여섯째야, 말 좀 해보거라.”다섯째 황자 운휘가 운정을 보며 비꼬았다.“며칠 전 조정에서 말을 아주 기가 막히게 했다던데 오늘은 어찌 또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냐?”“그러게요, 형님.”여덟째 황자가 경멸 섞인 표정으로 웃었다.“황자비를 우리에게 소개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그러자 둘째 황자가 여덟째 황자의 어깨를 두드렸다.“너무 뭐라 하진 마라. 여섯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많으면 말을 못 하지 않느냐...”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 없었던 심해원은 운정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뭐라고 말 좀 하세요. 다 황자잖아요.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지만 할 말은 하고 살아야죠.’분위기가 거의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운정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둘째 황자를 보며 말했다.“둘째 형님,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말해 보거라.”둘째 황자가 조롱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사내대장부라면 쭈뼛거리지 말고 말해야지. 넌 지금 호렬장군이란 걸 잊지 말거라.”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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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운정은 고개를 들고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다른 황자들과 공주들을 쳐다보았다.운정의 시선이 닿은 순간 사람들은 그가 은자를 빌려달라고 할까 봐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멍청이들이 사라지자 운정은 주변 공기마저 상쾌해진 것 같았다.“창피하지도 않으세요?”심해원이 화를 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저분들이 은자를 빌려주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 얘기를 꺼내요? 제가 다 창피하네요.”“나도 어쩔 수가 없어서 이러는 거다.”운정은 코를 훌쩍이면서 심해원에게 시선을 돌렸다.“아니면 너라도 조금만 빌려...”“꿈도 꾸지 마세요.”심해원은 운정의 생각을 단칼에 잘라버리고 고개를 홱 돌렸다.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바로 그때 운림이 사람들의 호위를 받으며 도착했다.셋째 황자는 현재 조정에서 세력이 가장 강했다. 운림이 등장하자마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운림은 한쪽에 따로 서 있는 운정과 심해원을 발견했다. 그 순간 운림의 눈에 날카로운 빛이 스치더니 이내 운정에게 다가갔다.“여섯째야, 며칠 못 본 사이에 안색이 많이 좋아졌구나.”운림이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다.“이게 다 셋째 형님 덕분이지요.”전에 무능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입이 찢어지도록 웃으며 말했다.“셋째 형님, 아랫도리 아직도 아프십니까?”‘아직도 아프냐고?’운림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고 두 눈에 싸늘함이 가득했다.며칠 쉰 덕분에 아랫도리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말을 꺼내자 또다시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었다.“며칠 못 본 사이에 배짱이 두둑해졌구나.”운림은 차가운 눈빛으로 운정을 쏘아보더니 귓가에 다가가 험악하게 속삭였다.“걱정하지 말거라. 내 손으로 직접 널 보내줄 테니.”“형님, 또 제가 역모를 꾀하려 한다고 모함하시려는 겁니까?”운정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그 일은 형님께서 더 이상 애쓰실 필요 없습니다. 송북으로 가서 역모를 일으키겠으니 독주 한 잔을 내려달라고 아바마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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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은자를 빌려달라고?’운정의 말에 운림의 얼굴이 잿빛이 되었다.‘빌어먹을 놈. 아주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자연스럽게 빌려달라네? 됐어. 빌려주지, 뭐. 이참에 사람들 앞에서 앙금을 털고 화해했다는 걸 보여줘야겠어. 그러면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날 찾아오진 않겠지.’“얼마나 빌리고 싶으냐?”운림이 물었다.“삼만 냥입니다.”운정은 터무니없는 금액을 제시하더니 가여운 표정으로 딱한 사정을 늘어놓았다. 다시 말해 삼만 냥으로 부족하니 더 빌려주면 좋겠다는 뜻이었다.‘삼... 삼만 냥?’운림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고 하마터면 발로 걷어찰 뻔했다.‘우리 황자들의 한 달 녹봉이 고작 천 냥인데 삼만 냥이나 빌려달라고? 빌어먹을 놈. 날 아주 국고로 여기는구나.’운림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차마 발끈할 수 없어 품에서 은표 몇 장을 꺼내 운정에게 건넸다.“지금 가진 은표를 전부 네게 주마. 부족하면 둘째나 다른 형제들에게 빌리도록 해라.”그러고는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나중에 가만두지 않을 테다.’‘어리석은 놈.’운정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은표를 세기 시작했다.‘음. 만 삼천 냥이면 적은 액수는 아니군. 역시 셋째 황자는 부자야. 만 냥이 넘는 은표를 가지고 다니다니.’“어서 넣으세요. 창피하게 굴지 마시고요.”심해원은 운정을 무섭게 째려보면서 속으로 욕했다.‘정말 뻔뻔하기 짝이 없어. 돈 좀 빌리겠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구나. 그나저나 이놈 너무 멍청한 건 아닌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돈을 뜯어낼 줄도 알고. 그래. 멍청이는 아닌데 너무 무능해.’운림이 당하는 모습을 본 후 이젠 아무도 운정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괜히 말을 섞었다가 돈을 빌려달라고 매달릴 수도 있으니까.만수궁 밖에서 이각 정도 더 기다린 후 문제는 마침내 사람들에게 안으로 들어오라는 명령을 내렸다.사람들은 나이와 관직에 따라 차례로 자리에 앉았다.운정은 심해원과 함께 구석에 앉고 싶었지만 내관에게 끌려가 다섯째와 여덟째 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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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운정은 그들이 사신으로 온 게 아니라 전쟁을 선포하러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거만하기 짝이 없는 북성 사절단의 모습에 강경파 사람들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문제의 눈빛 또한 차갑기 그지없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억누르며 방휘승을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5년 전 송북을 정벌하러 갔을 때 바로 방휘승의 계략에 빠져 북성의 병사들에게 포위당했었다.심남정이 필사적으로 포위망을 뚫어 그를 구했지만 대건의 사기는 이미 떨어질 때로 떨어졌다. 결국 백수하 이남의 세 개 현을 북성에 넘기고서야 간신히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원수나 다름없는 방휘승을 다시 마주하니 분노가 저도 모르게 끓어올랐다.“폐하, 5년 만에 뵙습니다. 예전보다 더욱 위엄이 넘치시는군요.”방휘승은 자리에 서서 환하게 웃으며 문제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는 조롱이 가득했다.“너무 무엄한 것 아니오?”유국공 소만욱이 책상을 치며 호통쳤다.“옥좌 앞에 섰거늘 어이하여 폐하께 예를 갖추지 않는 것이오?”소만욱은 대건의 장군이자 조정 내 강경파의 핵심 인물이었다. 방휘승이 이리도 무례하게 구는데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예를 갖추라고 했소?”방휘승은 허허 웃으면서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우리 북방의 사내들은 오직 강자에게만 예를 갖추오. 우리에게 졌으면서 무슨 예를 갖추란 말이오?”방휘승의 말에 사람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너무 무례한 것 아니오?”기회를 엿보던 운림 또한 벌떡 일어나 날카롭게 소리쳤다.“아바마마께서 연회까지 베풀어 맞이했거늘 어이하여 이리 오만하고 무례한 것이오? 이번에는 우리 대건에 식량을 구걸하러 왔다는 걸 잊지 마오.”“구걸?”방휘승이 거만하게 웃었다.“이보시오, 황자.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것 같은데 우린 식량을 구걸하러 온 게 아니라 요구하러 온 것이오.”그의 말에 사람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국사, 너무 무례해선 아니 되오.”“오랑캐 놈들. 예법이라곤 전혀 모르는구나.”“5년 전 송북 전투에서 우리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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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저건 고대 버전의 큐브야?’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3단계 색깔돌이였고 게다가 옥돌로 만들어졌다.방휘승이 들고 있는 물건을 보며 사람들은 궁금증을 감추지 못했다. 운정을 제외하고 대건의 사람들은 그 물건을 본 적이 없었다.방휘승은 거만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대건은 예로부터 문학이 융성하고 박학다식한 인재가 많다고 들었소. 그래서 오늘 이 물건으로 여러분을 시험해볼 생각이오. 대건에 이 물건을 풀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보겠소. 만약 대건에 용맹한 무사도 없고 박학다식한 인재도 없다면 예를 갖출 필요가 없지 않소?”방휘승의 말에 사람들은 더욱 의아해했다.“내가 해보겠소.”소만욱이 가장 먼저 나서면서 하찮은 표정을 지었다.“이런 허접한 물건이야 아주 쉽게 부숴버릴 수 있지.”운정의 얼굴이 파르르 떨리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부수는 게 아니라 푸는 거라고.’“소 장군은 아무래도 내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하오.”방휘승이 대놓고 비웃었다.“이 물건을 풀라고 했지 부수라고 하지 않았소.”“푼다고?”소만욱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어떻게 푸는 것이오?”“간단하오.”방휘승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물건은 여섯 면에 각기 다른 여섯 가지 색깔이 칠해져 있소. 반 시진 안에 이 물건을 망가뜨리지 않고 같은 색깔의 작은 조각들을 한 면에 모으면 되는 것이오.”“그게 다란 말이오?”소만욱이 코웃음을 쳤다.“이깟 어린아이 장난이야 반 시진은커녕 눈 깜짝할 사이에 해낼 수 있소.”그러고는 방휘승의 손에서 색깔돌이를 빼앗아 돌리기 시작했다.방휘승은 소만욱을 비웃으면서 그가 망신당하기를 기다렸다.소만욱은 최선을 다해 돌렸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여섯 면은 고사하고 한 면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점점 초조해진 소만욱은 마음 같아서는 부숴서 다시 맞추고 싶었다.그 모습을 보던 방휘승이 피식 웃었다.“장군은 무장이라 이런 물건을 푸는 데 적합하지 않은 듯하오. 조정에서 머리가 똑똑한 문관들에게 맡기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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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방휘승은 하찮다는 표정으로 운림을 보며 말했다.“겨우 한 면만 맞춰놓고 뭘 그리 좋아하는 것이오? 아직 다섯 면이나 남았소.”“이치는 다 똑같소이다.”운림이 득의양양하게 웃었다.“한 면을 맞췄으니 나머지 면들도 다 똑같은 것 아니겠소?”그 말에 사람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계속해서 색깔돌이를 돌리는 운림을 보며 운정은 몰래 고개를 내저었다.‘어리석은 것. 그리 쉬웠다면 저 사람들이 색깔돌이를 가져와 기선 제압을 하려 했겠어? 정말로 자기가 엄청 똑똑한 줄 아나? 쓸데없이 나대기는 왜 나대.’그가 고개를 젓자 심해원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질투하는 겁니까?”“내가 셋째 형님을 질투한다고?”운정이 입을 삐죽거렸다.“형님은 맞추지 못할 것이다.”“질투하는 게 분명하네요.”심해원이 피식 웃었다.“황자님이 할 줄 알면 해보시든가요. 여기서 질투하면서 저주하지 말고.”운정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혹시 셋째 형님을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이야?”“그게 무슨 헛소리입니까?”그러자 그녀가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황실 사람들이 얼마나 무정한데요. 전 절대 황실의 그 누구와도 엮이지 않을 겁니다.”‘오호? 바보는 아니네. 황실 사람들이 가장 무정하다는 것도 알고. 음. 나쁘지 않군. 좀 멍청하긴 하지만 적어도 셋째 황자를 좋아하진 않으니까 이 정도면 봐줄 만 해.’두 사람이 귓속말을 주고받는 동안 운림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한 면을 맞추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두 번째 면을 맞추려 하자 전과 완전히 달랐다.아무리 애를 써도 두 번째 면을 맞출 수가 없었고 심지어 아까 맞췄던 첫 번째 면마저 엉망이 돼 버렸다.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어 운림은 더욱 초조해졌다. 하지만 초조해할수록 더 맞추기 어려웠다.지금 포기하면 체면이 말이 아닐 것 같아 계속 돌렸다.사람들은 운림의 안색이 좋지 않은 걸 알아채고 긴장하기 시작했다.“셋째 황자, 어떻소?”방휘승이 조롱 섞인 눈빛으로 운림을 쳐다보았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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