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나리, 마님을 탐하지 마십시오: Chapter 41 - Chapter 50

70 Chapters

제41화

양진아는 시온과 함께 서둘러 방을 나섰다. 임우진이 서실 문 앞에 서서 마당에 무릎을 꿇은 채 벌벌 떠는 춘애를 화가 난 얼굴로 노려보고 있었다. 주변에 많은 계집종들이 서 있었는데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었다.‘화난 건가?’양진아는 임우진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웃었다.“서방님, 혹시 춘애가 서방님 심기를 건드렸습니까? 잘못한 것이 있다면 고치도록 하면 될 텐데 어찌 이리 크게 화를 내십니까?”임우진의 시선이 양진아에게로 향했다. 분노가 담긴 그의 눈빛에 양진아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얼른 시선을 피했다.임우진이 양진아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당장 어머니께 다시 돌려보내서 어머니더러 잘 가르치시라고 해. 만약 사내가 필요하다면 다른 곳에 시집보내든 알아서 하시라고 하고. 아무튼 다신 내 눈에 띄지 않도록 해.”임우진의 말에 무릎을 꿇고 있던 춘애는 몸을 더욱 심하게 떨었다.양진아가 당황해하며 말했다.“서방님, 춘애는 어머님께서 보낸 몸종입니다. 어머님께서 이미...”“어머니께서 주시는 거면 다 받아?”임우진이 더욱 화를 내면서 양진아의 말을 가로챘다.“그렇게 내가 다른 여인을 품에 안았으면 좋겠어?”양진아를 어찌나 무섭게 노려보는지 눈에서 불이라도 뿜어나올 것 같았다.그는 진심으로 양진아에게 묻고 싶었다. 정말로 그의 옆에 다른 여인이 있기를 바라는지, 고정수를 잊지 못해서 그를 이렇게 대하는 건 아닌지 말이다.“혁수야.”임우진은 애써 분노를 억누르며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쟤를 본채로 끌고 가서 어머니께 전해. 내 일에는 쓸데없이 신경 쓰지 마시라고.”“알겠습니다.”남혁수는 바닥에 주저앉은 춘애를 보고는 씩 웃더니 가차 없이 끌어냈다.“잠깐.”깜짝 놀란 양진아가 급히 막아섰다. 남혁수에게 저렇게 끌려간다면 그녀가 중간에서 고자질하고 모자 사이를 이간질했다고 시어머니가 오해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좋은 날이 없을 것이다.“왜? 넌 참 현명한 부인이야. 혼인한 지 사흘밖에 안 됐는데 벌써 나한테 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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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결국 참다못한 시온이 방 안에 계집종이 없는 걸 보고는 양진아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씨, 마님께서 혹시 화나신 건 아니겠지요?”‘어떻게 사람을 한 시진이나 기다리게 할 수 있어? 이건 그냥 며느리를 못살게 구는 거잖아.’양진아는 시온에게 손짓하며 조용히 하라고 했다.한 시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밖에서 기다리게 한 것도 아니었고 앉아서 차도 마실 수 있었다.예전에 김경자에게서 규율을 배울 땐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했다.김경자가 잠들면 옆에서 지켰고 김경자가 식사하면 음식을 집어주었다. 하루 종일 녹초가 되도록 김경자에게 시달렸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고정수의 냉대뿐이었다.지금 이선화는 그녀를 내버려 두고 있기에 괴롭힘과는 거리가 멀었다.안방, 이선화는 침상에 기대앉아 눈을 반쯤 감고 나지막이 물었다.“아직 있느냐?”윤 어멈이 부채질을 하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직 있습니다. 게다가 짜증이라곤 전혀 내지 않고 있어요. 아무리 봐도 작은 마님은 성격이 물렀어요. 춘애가 마님 곁에 있던 몸종이라 내쫓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흥. 쟤는 충분히 하고도 남을 사람이다. 다만 다른 사람한테 밉보이고 싶지 않을 뿐이지.”이선화는 화가 채 풀리지 않았는지 말투도 퉁명스러웠다.“조금 더 내버려 두어라. 진심으로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질투하지 않을 리 없다. 지아비한테 첩을 들여준다는 건 쟤 마음속에 우진이가 없다는 뜻이야.”그녀는 어제 있었던 일을 이미 알고 있었다. 양진아가 하마터면 모자 관계를 이간질할 뻔해서 화가 나긴 했지만 양진아의 마음에 아들이 없다는 게 더 화가 났다.그렇게 반 시진이 더 지나서야 윤 어멈이 나와 양진아를 안으로 안내했다.문안 인사를 마친 후 이선화는 양진아를 앉히지 않고 바로 본론을 말했다.“어제 우진이가 화를 내고 나간 다음에 들어와서 밥은 먹었느냐? 잠은 잘 잤고?”이건 양진아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그녀는 시어머니가 임우진이 돌아오지 않은 것을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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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순간 멍해진 양진아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누가 누구 집에 혼수를 요구하러 갔다고?”시온이 목소리를 낮췄다.“외사촌 아씨의 시어머니 말입니다. 혼수를 요구하러 안씨 가문에 갔대요.”양진아는 그다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김경자의 인색하고 돈만 밝히는 뻔뻔한 성격을 생각하면 그런 짓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하지만 경혜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가득했다.“어떻게 사돈한테 가서 혼수를 요구할 수 있어? 그분은 망신당하는 게 두렵지도 않은가? 고 귀공은 왜 또 그냥 내버려 두는지 이해가 안 가.”“초설이가 그러는데 고 귀공은 아직 어르신이 혼수를 요구하러 안씨 가문에 간 걸 모른대. 알게 됐을 때 고씨 가문 마님은 이미 혼수를 싣고 나갔어.”경혜가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안씨 가문에서 줬단 말이야?”시온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양진아의 눈치를 살피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양진아가 웃으며 말했다.“어머니께서 준 것이겠지.”그러자 시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성을 냈다.“고씨 가문 마님은 원래 혼수를 요구하러 양씨 가문으로 오려 했었습니다. 우리가 그분 며느리의 혼수를 빼앗았다고 했는데 큰 마님께서 내쫓으셨고 하마터면 관아까지 움직일 뻔했답니다. 고씨 가문 마님은 얻어갈 수 없다는 걸 알고 나서야 안씨 가문으로 갔고 나중에 마님께서 따라가셨습니다. 초설이가 마님을 모시는 연지한테서 들었는데 마님께서 은 3천 냥을 줘서 고씨 가문 마님을 돌려보냈다고 합니다.”“얼마?”경혜는 큰 충격을 받은 듯 말했다.“우리 아씨가 시집갈 때 마님께서는 30냥도 주기 아까워하셨는데 외사촌 아씨한테 3천 냥을 주셨다고?”그 말에 모두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고 양진아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몇 년 동안 어머니가 꽤 많은 돈을 모아뒀구나. 그 돈을 전부 빼내야겠어. 안씨 가문에 보태지 못하도록.’“요즘 저택에 다른 일도 있었느냐?”시온이 계속 말했다.“셋째 도련님께서 앞쪽 별채로 옮기는 걸 보고 외사촌 도련님이 셋째 도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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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다음 날 아침 일찍 양진아는 본채로 가서 문안 인사를 한 다음 이선화에게 친정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이번에 그녀가 데려간 사람은 시온과 하선이었다.양씨 가문에 도착한 양진아는 먼저 본채로 가서 할머니께 문안 인사를 드렸다.양진아의 뒤를 따르던 시온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씨, 먼저 본채로 가시면 마님께서 또 뭐라 혼내실 겁니다.”양진아는 눈썹을 치켜올리고 시온의 손을 토닥이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서쪽 별채에 가서 네가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벗들과 얘기 좀 나누고 있거라.”시온은 알겠다고 하고 막 떠나려다가 다시 돌아서서 물었다.“그럼 마님께서 쇤네한테 아씨에 대해 물으면 뭐라 대답할까요?”양진아는 입꼬리를 올리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어머니께서는 지금쯤 서쪽 별채에 계시지 않으니 안심하고 가거라.”양진아의 뒤를 따르던 하선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규율에 따르면 친정에 인사하러 갔을 때 가장 높은 어른에게 문안 인사를 하는 게 당연한데 시온이 왜 이렇게 묻는 거지? 게다가 이 시간이면 마님은 며느리로서 시어머니 옆에서 시중을 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하선은 속으로는 의아해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티도 내지 않고 양진아를 따라 본채로 들어갔다.두 사람이 본채에 들어가자마자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큰 아가, 이 차가 왜 이렇게 뜨겁냐? 날 데 죽이려는 것이냐?”이어서 조금 억울한 듯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님, 제가 마셔봤는데 뜨겁지 않았습니다.”“내가 마시느냐, 네가 마시느냐?”그 소란에 양진아는 눈웃음을 지으면서 하선과 함께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 앞을 지키던 계집종이 양진아를 보고 급히 말했다.“큰 마님, 큰 아씨께서 오셨습니다.”방 안의 소리가 뚝 그치더니 이어서 장춘연이 웃으면서 양진아를 맞이했다.“큰 아씨, 어제 큰 마님께서 큰 아씨가 오늘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 일찍부터 기다리셨습니다.”양진아는 문지방을 넘어서자마자 어머니가 최영옥의 옆에 서 있는 걸 보았다.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지만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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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이 자리에 있는 여인들은 양호석의 생각을 단번에 꿰뚫어 보았다.최영옥은 며칠 전에 있었던 매질이 생각나서 웃음을 머금고 양호석을 격려했다.“호석이는 정말 착한 아이구나. 네 큰형과 둘째 형이 공부를 잘하니 형들에게 배우도록 해라. 양언규, 양성규, 너희는 서원에서 동생을 잘 돌봐야 한다.”“네, 할머니.”양언규는 예의 바른 소년이었다. 양진아의 눈치를 슬쩍 살피고는 공손하게 대답했다.양성규는 성격이 활발했다. 예전에 최영옥 앞에만 서면 응석을 부렸지만 오늘은 장난도 전혀 치지 않고 고분고분 대답했다.어린애들이 조용하고 얌전히 있자 최영옥과 한수경은 양진아를 쳐다보았다.양진아는 동생을 한 번 때렸을 뿐인데 영향력이 이렇게까지 클 줄은 몰랐다. 그녀는 멋쩍은 얼굴로 계집종에게서 상자 세 개를 받은 다음 동생들에게 건네주었다.“양언규, 양성규, 양호석, 이건 벼루 세 개다. 누나가 너희에게 주는 선물이니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받도록 해라.”세 아이는 선물을 받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감사합니다, 누님.”양진아는 양호석의 앞으로 걸어가더니 가슴에서 옥패를 꺼내 양호석에게 걸어주며 다정하게 말했다.“호석아, 오늘은 네가 처음 서원에 가는 날이야. 이 옥패에 너에 대한 누이의 기대가 담겨있어. 또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기대도 담겨있으니까 꼭 열심히 공부해야 해.”양호석은 고개를 숙여 옥패를 내려다보았다. 서원에 가는 것에 대한 불만이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말 그대로 아주 조금이었다.양호석은 예전에 양진아가 자신을 신경 쓰지 않던 날들이 그리웠다.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시집간 후에 갑자기 간섭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는데 말이다.후에 어머니에게 항의했었는데 어머니가 할머니를 찾아갔다가 혼만 나고 돌아왔다. 양호석은 앞쪽 별채로 옮기고 싶지 않았지만 아무리 저항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어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런 날들이 대체 언제쯤 끝난단 말인가.양진아는 양호석이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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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양진아는 그대로 얼어붙었고 최영옥의 안색이 말이 아니게 어두워졌다. 한수경도 잔뜩 굳은 얼굴로 귀걸이를 뺐고 어린아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들고 있던 상자를 내려다보던 양진아는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렸다.만약 안혜선이 양호석을 조금이라도 걱정했다면 한수경에게 잘 보이려고 이리 애를 쓸 필요가 있겠는가?하지만 안혜선의 눈에는 좋은 것만 보였고 그녀가 왜 이렇게 하는지는 생각하려 하지도 않았다.양진아는 상자를 도로 거두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농담도 참. 작은어머니가 왜 남입니까? 절 딸로 인정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이 선물도 원치 않으시겠네요.”그러고는 휙 돌아섰다. 그런데 안혜선이 그녀가 들고 있던 상자를 빼앗았다.“너는 애가 대체 왜 그래? 농담한 걸 가지고 이리 진지하게 받아들여서야 원. 작은어머니한테도 그리 좋은 걸 줬는데 나한테 박하게 굴 리가 있겠어?”안혜선의 모습에 최영옥뿐만 아니라 8살인 양호석조차도 어이없어했다. 양호석은 처음으로 어머니가 부끄럽다고 생각했다.안혜선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평범한 모양의 금비녀가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한수경의 것보다 귀하지 않았다.안혜선의 표정이 확 일그러지더니 상자 뚜껑을 닫고 양진아를 매섭게 쏘아보았다.“이것도 선물이라고 줘? 누가 네 친어미인지 모르겠구나.”그사이 양진아는 최영옥에게 선물을 건네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는 가볍게 웃었다.“선물을 주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일 뿐입니다. 귀걸이는 작은어머니께 어울려서 드린 거고 어머니께서는 금을 좋아하시니 금비녀를 드린 것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다시 돌려주세요.”안혜선은 머뭇거리다가 상자를 움켜쥐었다.“흥. 듣기 좋은 말만 하는구나. 내가 언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느냐? 내게 준 선물이 동서한테 준 선물보다 귀하지 않다고 했지.”“어머니, 선물은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안혜선이 눈을 희번덕거렸다.‘말은 참 번지르르하게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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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안혜선의 말에 방 안의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양진아는 밀려오는 고통과 무력감에 이를 악물었다.손녀의 무력감을 알아챈 최영옥이 미간을 찌푸렸다. 한수경은 눈치 빠르게 아이들을 먼저 내보내라고 했다.최영옥은 양진아의 손을 토닥이면서 진정하라고 했다. 그녀가 입을 열려는데 양진아가 먼저 말했다.“어머니, 인삼황기환이 너무 귀해서 저도 딱 한 상자밖에 얻지 못했습니다. 할머니께서 몸이 안 좋으셔서 할머니께 드린 거고요. 그리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사죄는...”양진아의 눈빛이 차가워졌고 목소리마저 서늘해졌다.“제후 저택과의 혼사를 정한 사람이 누군지 잊으셨습니까?”안혜선은 멈칫하다가 마지못해 말했다.“없으면 없는 것이지, 왜 이렇게 화를 내느냐. 진아 너 성격이 점점 사나워지는구나. 며칠 후에 네 큰 외숙모 생신이니 잊지 말고 가서 축하해드려라.”최영옥을 부축하여 밖으로 나가던 양진아는 그 말에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그녀의 큰 외숙모는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지만 생일을 떠들썩하게 보내는 걸 좋아했다.양진아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염려하지 마십시오, 어머니. 큰 외숙모가 장수하시고 복을 누리시도록 큰 선물을 준비하겠습니다.”안혜선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아무도 그녀의 기분을 신경 쓰지 않았다.안혜선이 또다시 다른 사람을 난처하게 할까 봐 최영옥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식사했다. 최영옥이 아무 말이 없으니 다른 사람들도 입을 다물었다.재빨리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양진아는 아이들을 서원으로 데려다주려고 했다.“할머니, 이미 시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호석이를 서원에 데려다주겠다고요.”최영옥이 고개를 끄덕였다.“가보거라.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사람을 시켜서 알려야 한다.”양진아는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양진아가 떠나자 안혜선은 안절부절못하면서 계속 밖을 내다보았다.최영옥은 얼굴을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몸에 벌레라도 붙어서 간지럽느냐?”명문가 출신인 최영옥은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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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하지만 양진아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양진아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어머니가 서쪽 별채를 다 털어가도 괜찮다면 마음대로 이르거라.”“어머니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양호석이 화를 내며 말했다.“누님은 참견하지 마세요. 어머니께서 그 물건들이 모두 제 것이라고 하셨다고요.”두 남매는 시끄럽게 떠들어대면서 관복 서원에 도착했다.장엄한 서원의 정문을 본 순간 양호석은 내리기 싫었다. 하지만 양진아는 양호석을 억지로 끌어내렸다.“무단결석한다면 스승님께 말해서 널 서원에 머물도록 할 것이다. 믿지 못하겠다면 어디 한번 해보든지.”양호석의 두 눈에 절망이 가득했다. 결국 두 형에게 끌려 안으로 들어갔다.돌아오는 길에 양진아는 서둘러 저택으로 돌아가지 않고 마부에게 성북으로 가라고 했다.할아버지가 혼수로 그녀에게 준 가게 세 개가 전부 성북에 있었다.전생에 그녀는 이 가게들로 고정수의 출세를 도왔다. 이번 생에는 제후 저택에서 먹고사는 데 걱정은 없지만 이 가게들은 그녀의 힘이었고 반드시 잘 운영해야 했다. 하여 오늘 먼저 가서 확인해보기로 했다.시온이 마부에게 길을 안내한 끝에 첫 번째 연지 가게에 도착했다. 양진아가 내리려던 그때 시온이 발을 내렸다.“마님, 방금 고 귀공이 월농에서 나왔습니다.”‘고정수.’양진아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마차의 발을 살짝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선비 옷차림의 고정수가 연지 가게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마님, 고 귀공이 상자 하나를 들고 있습니다. 혹시 마님의 가게에서 연지를 사신 걸까요?”시온이 의아해하며 말했다.“뭔가 이상합니다. 고씨 가문은 서쪽에 있어서 여기까지 오려면 길을 많이 돌아야 하는데. 혹시 월농의 연지가 더 좋습니까?”양진아는 차갑게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월농은 그저 평범한 연지 가게다. 아무리 좋더라도 서쪽까지 알려질 리가 없었다.아무래도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그녀를 떠볼 생각인 것 같았다.전생에 이 가게들을 살리기 위해 양진아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월농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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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서방님, 오셨습니까?”임우진이 화청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양진아가 매우 반갑게 맞이했다.임우진은 고개를 들어 눈앞의 사람을 바라보았다. 붉은색 치마에 허리에는 같은 색의 띠를 두르고 있었는데 허리가 한 손에 잡힐 것처럼 가늘었으며 얼굴을 딱히 치장하지 않아도 참 예뻤다. 양진아는 눈웃음을 지으면서 임우진을 빤히 보았다.임우진은 그녀의 밝은 미소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려 귓불이 붉어지더니 어색하게 시선을 옮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속으로 자신을 한심하다고 질책했다.‘날 보고 이렇게 해맑게 웃는 건 어머니께 한 소리 들은 게 분명해. 안 그러면 진아가 먼저 잘 보이려고 할 리가 없지.’양진아는 임우진의 반응을 눈치채지 못하고 하인에게 물을 가져오게 하고는 손수건을 건넸다. 임우진이 손을 닦은 다음 두 사람은 식탁에 앉았다.“서방님, 제가 직접 만든 오골계탕입니다.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양진아는 직접 만든 오골계탕을 한 그릇 떠서 임우진에게 건네주었다.가늘고 하얀 손가락으로 백자 그릇을 들고 있었는데 둥글고 가지런하게 다듬은 손톱에 칠한 분홍색이 임우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임우진은 아직 먹지 않았는데도 국물의 맛이 아주 일품일 것 같았다.“서방님?”양진아는 그가 오랫동안 받지 않자 아직 화가 채 풀리지 않은 줄 알고 속으로 옹졸하다고 욕했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서방님, 며칠 전에는 제가 잘못했습니다. 허락 없이 서방님께 첩을 들이려 했던 걸 용서해주십시오.”임우진은 정신을 차리고 그릇을 받았다.“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고. 난 첩을 들일 생각이 없어.”“알겠습니다.”양진아는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그가 국을 먹는 걸 보면서 말했다.“내일 형님이 돌아오신다고 어머님께서 서방님도 외출하지 말고 저와 함께 형님을 보러 오라고 하셨어요.”임우진은 잠깐 멈칫하더니 그릇을 내려놓고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일인지는 말씀하셨어?”양진아가 고개를 내저었다.“아니요.”생각에 잠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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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양진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임우진이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몰라 조심스럽게 물었다.“서방님, 절 도와주기 싫으신 겁니까?”임우진이 코웃음을 치더니 조롱 섞인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고정수의 목적은 너 아니야? 대체 나한테 말하고 싶은 게 뭐야? 내 여인이 다른 남자를 탐해도 가만히 있을 정도로 내가 관대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거야?”임우진의 무서운 눈빛에 양진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는 단지 임우진의 도움을 받을 생각만 했지, 그가 오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간과했다.그렇다. 다른 사람은 고정수가 그녀에게 미련이 남아서 그녀의 혼수 가게로 찾아갔다고 오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마음이 떳떳하더라도 임우진의 눈에는 자랑하는 것과 다름없었다.게다가 임우진은 고정수가 그녀에게 해를 끼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임우진에게 있어서 고정수는 언급할 가치도 없는 존재였고 그녀와 엮이지 않았다면 제후 저택의 문턱조차 밟을 수 없었다.하지만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이해서 전생의 고통스러운 일들을 하나하나 하소연할 수 없었다.양진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골머리를 앓았지만 임우진의 눈에는 그 모습이 인정하는 것으로 비쳤다.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임우진은 탁자 위에 올려놓은 손을 꽉 움켜쥐었다.‘어떻게 내 앞에서 고정수 얘기를 꺼낼 수 있지? 두 사람이 전에 사이가 얼마나 좋았는지 내가 모를까 봐 알려주는 건가?’임우진은 식탁 위에 가득 차려진 음식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부인이 그에게 애써 비위를 맞추는 것이 다른 남자를 위해서라니...그는 갑자기 일어나 양진아를 매섭게 노려보고는 소매를 뿌리치며 나가려 했다.하지만 곁눈질로 식탁 위에 놓인 오골계탕 반 그릇을 보더니 집어 들어 단숨에 먹어버렸다. 그러고는 그릇을 던져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나섰다. 양진아에게 화가 나긴 했지만 오골계탕은 죄가 없었다.그 모습에 양진아는 어이가 없었다.“마님, 나리께서 화가 나셨습니까?”임우진의 뒷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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