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나리, 마님을 탐하지 마십시오: Chapter 51 - Chapter 60

70 Chapters

제51화

임우진은 시온이 서실로 가져온 음식을 깡그리 먹은 후에야 이상한 낌새를 알아챘다.‘나 아직 화내는 중이잖아!’“예, 나리. 부르셨습니까?”문 앞을 지키던 남혁수가 곧장 안으로 들어왔다.“그릇들을 부엌으로 가져가거라.”“예. 지금 바로 계집종들에게 분부하겠습니다.”순간 임우진이 미간을 찌푸렸다.“네가 직접 가져가거라.”이에 남혁수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언제 이런 허드렛일까지 해왔던가?임우진은 꿈쩍 않는 남혁수를 보더니 눈썹을 치켰다.“왜? 이제 내 말이 말 같지 않은 것이야?”“분부 받들겠습니다.”주인이 이상야릇하게 나오는데 그가 뭘 더 어쩌겠는가. 남혁수는 마지못해 수저를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하지만 대문 밖을 나서기도 전에 하선을 마주치고 인사를 건넸다.하선이 먼저 의아한 듯 그에게 물었다.“어디로 가시는 겁니까?”남혁수는 식기를 두드리며 그녀에게 답했다.“부엌에 가는 길이다.”“네? 이런 건 계집종들에게 맡기면 될 것을 뭣 하러 남 호위가 직접 다녀오셔요?”그는 주인장이 무슨 수틀리는 일이라도 생긴 것인지 모르겠다고 푸념하고 싶었지만 감히 입밖에 내뱉지 못하고 손을 흔들면서 대문 밖을 나섰다.“하선아, 작은 마님께서 찾으시는데 여기서 뭐 하고 있어?”하선이 마당에서 멍하니 넋 놓고 있자 추월이 부랴부랴 달려와서 그녀에게 말했다.“알았어. 금방 갈게.”하선은 재빨리 본채로 돌아갔다.“부르셨습니까, 마님?”양진아가 하선을 바라보며 자상하게 말했다.“너한테 묻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어서 불렀는데 다른 용무가 있는 것이더냐?”하선은 재빨리 고개를 내저었다.“아닙니다. 뭐든 물어보세요. 좀 전에 남 호위가 직접 그릇을 부엌으로 가져가길래 이런 일은 계집종들에게 맡기면 된다고 말했을 뿐입니다.”‘남혁수가 직접 부엌에?’양진아는 경혜가 서실로 음식을 들고 간 광경을 되새기더니 입꼬리를 씩 올리고 속으로 구시렁댔다.‘유치하긴.’“아무 일 없다니 다행이구나. 너랑 추월이한테 여쭐 일이 하나 있어. 내일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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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그녀는 어떻게 하면 하루빨리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시누이부터 만나게 되었다.다음 날 아침 문밖을 나선 양진아는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임우진을 마주쳤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제 일이 떠올랐는데 조금 웃기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임우진은 비록 성격이 별로지만 저택의 뭇사람들 앞에서 양진아의 체면을 충분히 살려주고 있었다.신혼인 요 며칠간 그는 종래로 다른 곳에서 머문 적이 없다.양진아가 신속하게 저택의 사람들을 제압하고 시어머니께 존중을 받게 된 이유도 다 임우진이 평상시에 충분히 그녀를 믿어주고 면을 살려줬기 때문이다.양진아는 이 점을 매우 잘 알고 있다.그녀는 또다시 임우진과 아이를 가질 생각에 전념했다.임우진은 양진아와 나란히 본채로 들어가면서 자존심 때문에 차마 아내에게 먼저 말을 걸지 못했으나 한참을 기다려도 상대는 아무 말이 없었다.힐긋 쳐다보니 그녀는 멍하니 넋 놓은 채 길을 걷고 있었다.임우진이 기가 차서 피식 웃으며 일부러 옆으로 걸어갔더니 그녀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하지만 바로 옆은 풀숲이라 그대로 빠지고 말았다.“아이고!”“조심해야지!”양진아가 이제 막 풀숲에 빠지려 할 때 임우진이 긴 팔을 내뻗으며 그녀를 잡아당겼다.양진아는 넋이 나간 채 그의 품에 안겨 연신 중얼거렸다.“고마워요, 서방님.”“쯧쯧.”임우진은 입꼬리가 씩 올라갔지만 곧장 정색한 표정으로 돌아왔다.“길 똑바로 보고 다니거라!”양진아는 놀란 마음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가슴팍을 두드리면서 답했다.“암요. 잘 보고 다녀야죠!”방금 임우진이 없었다면 크게 망신당할 뻔했다.임우진은 알겠다고 말한 후 무심코 그녀에게 물었다.“아직도 고정수를 생각하고 있느냐?”“네?”양진아가 화들짝 놀라서 되물었다.“칫!”이에 임우진은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이미 사람을 보내서 고정수 감시하도록 했으니 앞으로 걔랑 말 섞을 생각 마.”“그런 적 없거든요!”양진아는 재빨리 해명했다.“저는 고 귀공이 제게 불리하게 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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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그딴 식으로 말할 거면 승은 제후 저택으로 돌아가세요!”임우진은 양진아를 든든하게 지켜주면서 싸늘한 눈빛으로 임현주를 쳐다봤다. 그의 눈가에 혐오의 뜻이 가득 담겼다.“진아는 저랑 정정당당하게 혼인한 사이이자 장차 제후 저택의 주인이 될 사람입니다. 누이 따위가 함부로 삿대질할 자격이 없다는 말입니다.”임현주는 입이 쩍 벌어졌다. 그저 까칠하게 몇 마디 한 거로 동생이 이렇게까지 화낼 줄이야.그녀는 냉큼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흐엉, 어머니! 우진이 좀 보세요. 제가 몇 마디 한 거로 이렇게까지 화내는 게 맞습니까?”“정말이지 확 죽어버리고 싶습니다.”“그럼 가서 죽든가!”임우진은 양진아와 함께 문밖을 나섰다.“어머니, 아버지, 앞으로 누이가 또 집에 온다고 해도 저희는 부르실 필요가 없습니다.”“거기 서지 못할까!”이선화는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원수 같은 두 자식을 낳아서 단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임우진은 온몸에 한기를 내뿜으며 마치 전혀 못 들은 것처럼 계속 걸어 나갔다.이에 양진아가 한숨을 내쉬고 그의 손을 잡아당겼다.“서방님, 어머님이 부르시잖습니까?”임우진이 시부모님 앞에서 자신을 보호해준 건 무척 고마운 일이지만 이대로 신랑과 함께 가버릴 순 없었다.임현주는 임우진의 누이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임우진이 아무리 화를 낼지언정 양진아는 절대 똑같이 해선 안 된다.그가 걸음을 멈추자 양진아가 나지막이 말했다.“어머님, 아버님이 아직 안에 계시잖습니까? 이대로 가버리면 저는 앞으로 무슨 면목으로 어머님을 마주하겠습니까?”그제야 임우진은 화가 좀 가라앉아서 그녀와 함께 몸을 돌렸다.이선화는 좀 전보다 화가 풀린 아들을 보더니 재빨리 말했다.“우진아, 현주가 진심으로 그런 건 아니잖아. 얘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이야?”그녀는 말하면서 임현주를 따끔하게 노려봤다.“얼른 진아한테 사과하지 못할까!”임현주는 입술을 꼭 깨물고 내키지 않는다는 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대충 얼버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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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임현주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양진아를 흘겨봤다.“올케가 대신 전해준다고요?”이에 양진아는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어머님도 말했다시피 저는 그저 전달하는 것뿐입니다. 만약 형님께서 정 그렇게 못 미더우시다면 서방님 돌아오시고 직접 얘기하세요!”“이럴 줄 알았어. 아무런 쓸모가 없다니까.”임현주는 그녀를 힐긋 째려봤다.하지만 양진아는 아예 무시해버렸다. 어차피 매일 집에 돌아오는 것도 아니니 형님과 대판 싸워봤자 시부모님도 실망하실 테고 시간이 길어지면 서방님도 그녀를 편들어주지 않을 게 뻔하니까.그녀는 그저 시부모님께 효도하고 형님께 깍듯이 대한다면 이 여자가 아무리 트집을 잡고 싶어도 서방님과 시부모님이 선뜻 앞장서주신다는 걸 잘 알고 있다.혼례를 치른 이 며칠 동안 양진아는 대충 파악이 됐다.제후 저택은 대체로 화목하고 가족관계도 매우 간단하다. 시아버지는 가내 사정에 신경을 쓰지 않고 시어머니도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면서 며느리를 괴롭히는 분이 아니다.그러니 양진아도 한순간 홧김에 이토록 어리석은 형님과 맞서 싸울 필요가 없다.그녀는 시어머니 옆에 다소곳하게 서서 며느리답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때 임현주도 자리에서 일어나 이선화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아양을 떨면서 말했다.“어머니, 실은 우진이한테 아주 작은 부탁이 있어서 그러는데 어머니가 대신 전해주실래요?”이선화는 눈썹을 치킬 뿐 허락하지 않았다.“난 우진의 일에 간섭 안 한다. 일단 무슨 일인지나 말해 보거라.”임현주는 곧장 양진아를 쳐다보며 말을 머뭇거렸다.이에 이선화가 인상을 찌푸리고 그녀에게 쏘아붙였다.“진아가 남이야? 할 말 있으면 얼른 하란 말이다.”“네, 알겠어요. 말하면 될 거잖아요.”임현주는 친정에 돌아온 뒤로 뜻대로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다. 이제 어머니까지 짜증을 내려고 하니 그녀는 얼른 다소곳해졌다.“다름이 아니라 우진이가 출정한다고 들었는데 식량을 옮기는 사람은 믿음직한 일꾼으로 골라야 하지 않겠습니까?”“우리 도련님이 병부에서 요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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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이제 곧 허락할 것만 같던 이선화는 이 말을 듣더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무슨 방법?”임현주도 울음을 그치고 날카로운 눈길로 양진아를 째려봤다.한편 양진아는 그런 임현주를 거들떠보지 않은 채 이선화에게 답했다.“어머님, 만약 형님 뜻대로 전하의 말 한마디에 식량을 옮기는 사람이 결정된다면 체면을 따져봐도 아주버님이 한 수 위 아니겠어요?”이선화와 임현주는 나란히 양진아에게 시선이 쏠렸다. 두 여자는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뜻이지?”이에 양진아가 웃으며 답했다.“아주버님은 승은 제후 저택의 세자이자 전하에게 글공부를 가르쳐주시는 분이니 동생을 위해 일거리를 하나 마련해주는 건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닌 듯싶어요.”“이렇게 되면 유능한 인재를 추천하여 전하의 부담도 덜어줄 터이니 형님도 굳이 먼 길을 에돌아갈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이선화는 두 눈이 반짝거렸다.“그래, 현주야, 진아 말이 맞아. 얼른 돌아가서 네 서방과 상의해 보거라. 어려서부터 전하와 함께 쌓아온 정이 있으니 당연히 허락해줄 거야.”순간 임현주는 안색이 일그러지면서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어머니, 이런 사소한 일로 제 서방님이 전하께 아뢰는 건 가당치 않다고 봐요. 게다가 우리 도련님은 큰일을 해낼 사람도 아닌데 만에 하나 일을 망쳤다가...”임현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선화는 표정이 확 굳었다.“제 서방은 아깝고 내 아들은 선뜻 전하 앞에 내세우는 것이냐?”“제 도련님이 일을 그르칠까 봐 친정에 와서 동생 등쳐먹으려고?”이선화는 분노가 치밀었다.“우진이는 네 동생이란 말이다!”임현주도 더는 참을 수 없었다.“그러니까 이렇게 찾아온 거잖아요! 어머니,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우진이만 더 예뻐하고 챙겨주면서 저는 키우기도 귀찮아 할머니께 보내버렸잖아요.”“이제 시집가서 도움 좀 받으려고 하니 또 거절부터 하시네요! 됐네요, 저도 더는 이 집에 안 돌아올 겁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곧장 자리를 떠났다.“현주야...”이선화가 잔뜩 화나서 그녀를 부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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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손해 본 게 없다니요? 큰 아씨는 방금 마님께 욕설까지 퍼부을 기세였습니다.”시온은 점점 흥분했다.“서방님이 나 대신 복수해줬지 않느냐?”양진아는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시온아, 내가 이 저택에서 살아가는 한 형님이 나보다 윗분이니 어느 정도 체면은 살려줘야 한단다.”“어머님은 어쨌거나 며느리인 나보다 제 딸을 더 챙길 것이야. 게다가 형님도 시댁에서 소문만큼이나 잘 사는 건 아니니 어머님은 어느 정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거야.”“이전에 친정에 돌아와서 아무리 발칵 뒤집어도 어머님은 늘 맞춰주셨지만 이제 내가 있으니 내 체면을 고려하기 마련이야. 또한 서방님이 항상 나를 존중해주니 어머님도 체통을 지키는 거란다.”“그런데 내가 여기서 멋도 모르고 날뛰어서는 되겠느냐?”양진아는 본인의 처지를 매우 잘 안다. 친정은 그녀의 뒷배가 되어줄 수 없으니 이 저택에서 오직 자신을 향한 임우진의 존경과 배려만 믿고 의지해야 한다.남편의 존중이 있었기에 그녀 또한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임현주와 대판 싸우는 건 그녀에게 딱히 이득이 될 게 없다. 하지만 절대 임현주에게 만만하게 보여선 안 된다.이 여자가 제멋대로 나올 게 뻔하니까.시온은 속상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마님, 소인이 볼 때 나리께서 마님을 꽤 많이 신경 써주시는 것 같은데 왜 이토록 조심스럽게 지내는 것입니까?”“바보야, 서방님이 나를 존중해주는 건 단지 그이가 교양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나는 혼인할 때 선뜻 바꿔치기한 것 말곤 다른 잘못이 없잖아.”양진아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네 말도 일리는 있어. 서방님이 날 지켜주셨으니 나도 서방님 대신 귀찮은 일 하나 해결해줬으니.”“마님께서 마음 쓰셨군요. 큰 마님은 큰 아씨께 정말 살갑게 대하는 것 같습니다. 부인께서도 마님께 그렇게만 해주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마님도 이토록 많은 걸 우려하면서 살아가진 않겠지요.”양진아의 얼굴에 띈 웃음기가 서서히 사라졌다.그녀라고 든든한 뒷배가 부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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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이번 일은 신경 안 써도 된다.”임우진은 평상에 앉아서 그의 옷을 정리해주는 양진아를 바라보며 살짝 날카로운 눈빛으로 변해갔다.“승은 제후 저택의 둘째는 흥청망청 살아가는 놈이야. 방위영에서 도박을 하고 기생집을 드나들다가 감찰사 나리께 잡히고 말았지.”“지금 병부에서 하급 관리를 맡고 있지만 도벽은 여전히 못 고쳤어.”“승은 제후 저택에서도 바로 이 때문에 변방에 식량을 보내는 일거리를 담당하여 공로도 쌓고 돈도 벌라는 목적일 거야.”양진아는 미간을 구겼다.“그래도 우리한테 사정하는 건 아니죠! 이까짓 사소한 일을 세자께서 해내지 못한답니까?”“못해내는 게 아니라 해낼 엄두가 안 나는 거란다.”임우진은 깨고소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호부 시랑으로 있다가 일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려서 전하께 된통 혼났지 뭐야. 이제 전하 앞에서 죽은 사람처럼 잠자코 있기도 바쁜데 언제 그런 사정까지 하겠어?”양진아는 그제야 알아챘다. 어쩐지 이 제안을 했을 때 임현주의 안색이 잔뜩 일그러졌더라니.“어머님께서 아시면 형님을 더더욱 걱정하실 겁니다.”임우진은 잠깐 머리를 굴리다가 그녀에게 답했다.“어머니께는 내가 가서 말씀드릴 테니 너는 이번 일을 신경 쓰지 말거라.”“고마워요, 서방님.”양진아가 활짝 웃었다.그녀의 환한 미소에 임우진도 흐뭇한 표정으로 번졌다.이토록 온화한 그녀가 꽤 좋을 따름이었다.한때 호탕하게 웃던 소녀를 만났지만 이제 더는 마주칠 수 없다는 게 참 유감스러웠다. 그래도 그녀만 행복하게 지낸다면 만족할 따름이었다.두 사람은 간만에 화기애애하게 지냈고 임우진도 긴장했던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이때 경혜가 들어와서 식사를 알리며 두 사람을 화청으로 모셨다.임우진이 나름 기분이 좋아 보이자 양진아는 경혜더러 술을 데워오라고 했다.식탁에 놓인 음식들은 대부분 임우진이 좋아하는 요리였다. 그는 한입씩 먹을 때마다 양진아의 손맛이 그리워졌다.“너는 언제 내게 음식을 차려줄 셈이냐?”이에 양진아가 눈썹을 치켰다.“서방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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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양진아는 어느덧 침대에 누운 임우진을 보더니 묵묵히 본인 침대로 돌아왔다.비록 아이를 가져서 제후 저택에서 입지를 굳혀야 하지만 그녀 또한 자존심이 있으니 이런 일을 무작정 몰아붙이고 싶지만은 않았다.임우진은 대체 왜 그녀와 합방하길 꺼리는 걸까?설마 마음속에 딴 여자를 품은 것일까?어둠 속에서 양진아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사색에 잠겼다.전생에 임우진은 혼인한 지 이틀 만에 출정했다. 만약 그때도 딴 사람을 마음에 품은 거라면 안정미를 제치고 출정한 것도 이해는 된다.이번 생에 양진아의 상황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임우진이 아직 안 떠났으니까. 하지만 둘 사이는 이 남자가 출정하기만도 못했다.임우진이 합방을 꺼리는 이유가 아마도 마음에 품은 그녀를 위한 듯싶다.마치 전생에 고정수가 안정미를 위하던 것처럼 말이다.양진아는 싸늘한 표정에 이를 악물고 구시렁댔다.‘개자식! 내가 너 아니면 안 될 줄 알아? 퉤!’전생에 고정수네 집에서 그토록 고달프게 다 버텨왔는데 이번 생이라고 두려울 게 있을까.다만 이제 더는 제후 저택에 모든 걸 바라면 안 될 듯싶었다.양진아는 혼수로 챙겨온 몇몇 가게를 재운영하기로 했다. 그러자면 일단 고정수부터 해결해야 한다.며칠 뒤에 양호석을 보러 갔다가 그 틈에 가게도 쭉 둘러보고, 그리고 또...그녀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잠들어버렸다.같은 시각 바깥에 누운 임우진은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았다. 머릿속엔 온통 양진아의 새하얀 손가락과 잘록한 허리만 맴돌았다.주먹을 불끈 쥐고 눈도 감았지만 귓가에는 고른 숨소리가 들려와서 또다시 마음이 요동쳤다.임우진은 오늘처럼 오감이 다 선명하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모든 감각이 예민해지는 건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었다.마침내 그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밖을 나섰다.그의 신변을 지키는 호위무사 남혁수는 진작 쉬러 갔다. 평상시에 그는 임우진의 저택 옆에 있는 작은 정원에서 쉬고 있다.오늘 임우진이 누이가 저택에 돌아온 일로 기분이 언짢아졌고 또한 어서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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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양진아는 그 약을 달갑게 받았다.“고마워요, 서방님.”한편 임우진은 어젯밤 남혁수가 알려준 노선대로, 고정수가 전에 양진아를 데리고 다녔던 노선대로 우선 성남의 먹자골목으로 향했다.성남은 서민과 상인들이 매우 많고 고씨 일가도 바로 이곳에 있다. 이곳의 먹자거리는 성남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다.양진아는 가림막을 걷고 시끌벅적한 거리를 보면서 전생에 일부러 지웠던 순간들이 순식간에 되살아났다.그녀는 사색이 되어 임우진에게 물었다.“서방님은 여기 오는 걸 좋아하십니까?”임우진은 그녀의 이상한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가 왜 고정수와 함께 자주 이곳을 드나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만 좋다면 선뜻 시도해보고 싶었다.“네가 전에 여길 자주 왔으니 이번엔 나도 함께 와본 거란다.”양진아는 가림막을 내리고 가볍게 웃었다.“저는 괜찮습니다. 서방님께서 용무가 있으시다면 내려서 볼일 보세요. 저는 마차에서 기다리면 됩니다.”그녀는 고정수에게 시집간 이후로 성남의 비좁은 마당에서 10년이나 지냈다. 고정수가 정3품 상서로 승급한 후에야 그녀도 비로소 이곳을 떠날 수 있게 됐다.지금 다시 이곳에 돌아오니 문득 고씨 일가에서 지냈던 나날이 떠오르고 멍청했던 그녀의 전생이 떠올랐다.이제 드디어 그 악몽에서 벗어났으니 돌이키고 싶지 않았다.임우진은 그제야 안색이 어두워진 그녀를 발견했다. 되새기고 싶지 않은 고정수와의 추억이 떠올라서 괴로워하는 듯싶었다.‘남혁수, 이 개자식! 내게 이딴 방법이나 알려주는 거야?’다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마부에게 마차를 돌리라고 분부했다.“여기가 별로라면 다른 곳으로 가야지. 어디 가고 싶은데는 있느냐?”양진아는 그제야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임우진이 만약 아이 문제로 그녀에게 보상해주고 싶은 거라면 이참에 실질적인 걸 요구하는 게 나을 듯싶었다.“금순당으로 가요. 서방님도 이렇게까지 번거롭게 굴 필요 없고 이참에 그냥 제게 장신구 하나 선물해주세요.”임우진은 흔쾌히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었다.금순당.양진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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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양진아는 미간을 구기고 속으로 뻔뻔스럽다고 욕설을 퍼부었다.두 여자는 이미 사이가 틀어질 대로 틀어졌는데 안정미가 뭇사람들 앞에서 이토록 친한 척을 하고 있으니 마냥 역겨울 따름이었다.지금 그녀의 수작은 기껏해서 양진아가 명성을 중요시하니 굳이 자신의 체면을 짓밟지 않을 거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내가 오늘 톡톡히 보여줄게. 네 체면을 반드시 짓밟고 만다!’안씨 일가에서 수년간 어떤 식으로 양씨 일가의 등골을 처먹었는지 아직 제대로 알리지도 못했는데 안정미가 제 발로 문 앞까지 찾아올 줄이야. 이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지 않으면 안정미의 ‘친절함’을 무시하는 격이 된다.생각을 마친 양진아는 아무것도 못 본 척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순간 안정미는 표정이 굳었다. 양진아가 진짜 통째로 무시할 줄은 몰랐으니까.뭇사람들은 그녀에게 야유에 찬 시선을 보냈고 옆에 있던 여인도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언니, 나 오늘 나현 군주랑 함께 왔는데 아무리 나한테 화가 덜 풀렸다고 해도 나현 군주 체면은 봐줘야 하는 거 아니야?”안정미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옆에 있던 여인이 미간을 구겼다. 굳이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신분을 거론하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다만 그녀는 임우진을 힐긋 보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안정미의 말을 들은 양진아는 다시 걸음을 멈추고 옆에 있는 정나현을 바라봤다.어딘가 눈에 익은 모습이지만 막상 어디서 봤던지는 떠오르지 않았다.“저자는 정빈 대군의 딸, 나현 군주란다.”양진아는 아득해진 기억을 되짚으며 나현 군주를 겨우 떠올렸다.“2층으로 모실게요, 나현 군주.”정나현은 안정미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왔다. 그제야 양진아도 비로소 그녀와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현 군주.”“그래, 반갑구나.”정나현은 그윽한 눈길로 임우진을 바라봤다.“두 사람 너무 격식 차릴 필요 없어. 오늘은 단지 바람 쐬러 나온 것뿐이니 다들 편하게 있으면 돼.”양진아는 정나현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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