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화한참을 석현의 품에서 울던 정호는 아이처럼 들릴 거라는 걸 알면서도, 울음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진짜, 다 그만두고 아무도 모르는 데로 도망가서, 석현 씨랑 같이 살고 싶어요.”정호의 말에 석현이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나도 그래요, 나도. 근데 난 정호 씨 연기가 너무 좋은데?”이마에 꾹 입을 맞추고는,“정호 씨도 좋아하잖아요, 연기도, 영화도.”안은 팔로 등을 토닥이며 조곤조곤 말했다.“언젠가 정호 씨가 너무 힘들고 지쳐서, 막 연기가 너무 싫어지고 정말로 그만두고 싶어지면, 그때는 꼭, 꼭 다 그만두고 나한테 와요.” “하지만 단지 나랑 같이 있기 위해서 정호 씨 인생에 중요한 뭔가를 포기하진 말아요. 정호씨 정말 내가 존경하는 대단한 사람이니까.”석현의 말이 너무 어른 같아서 정호는 제가 정말 떼쓰는 아이처럼 느껴졌다.“정호 씨, 길게 봐요 길게.나는 길게 보고 여기까지 왔어요.”이제 몇 시간 후면 다시 떨어져야 하는데,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침착하고 여유로운 건지. 2년 전에 헤어질 땐 눈이 빨개질 때까지 울었으면서.“나는 괜찮으니까. 언제든 정호 씰 기다릴테니까.”정호의 속도 모르고 석현의 말은 이어졌다.“내가 정호 씨에게 갈 테니까.”다정하고 나직하게 한 마디씩, 자꾸 마음을 두드려,“봐요, 시간은 좀 걸렸지만 결국 내가 왔잖아요.”겨우 멎었던 눈물을 기어코 다시 흐르게 만들었다.“그러니까 어디 너도 한 번 죽어 보라구.”정호는 낮은 목소리로 싸늘하게 말했다. 손에 쥔 나이프가 조용히 빛났다. 한 번, 두 번, 세 번... 나이프를 휘두를 때마다 점점 가슴속이 끓어올라왔다. 정호는 서서히 냉정을 잃고 제 감정을 가두어두었던 문을 열어젖혔다. 낮은 신음과도 같은 욕지거리를 내뱉고 눈을 희번덕거리며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댔다. 그래도 속이 시원해지지 않았다.“컷!”감독님의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온 정호는 온몸의 힘이 풀려 천천히 주저앉았다. 제 것이 아닌 분노가 채 가시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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