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의 모든 챕터: 챕터 11 - 챕터 20

30 챕터

제11화

호텔 객실 안, 고영훈은 며칠 면도도 하지 못하고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고 헝클어진 머리로 소파에 반쯤 누워 있었다. 눈은 근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얼굴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고영훈의 곁에는 Y 시에서 나름대로 세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 하나가 서 있었다. “형님, Y 시 전역에 제 사람들을 풀어서 찾아봤는데요.” “제 능력이면 반나절 안에 형님께서 찾는 사람 소식을 알아낼 수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도 없으니, 그분 아마도 이미 이 세상에 없는 게 아닐까요?” 그 사람은 말하며 목을 그어 올리는 동작을 했다. “말도 안 돼!” 고영훈이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여기에 없는 것뿐이지, 이 세상에 없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어.”나는 고영훈이 왜 이렇게까지 내가 살아 있다고 확신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혹시 이 남자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싶지 않은 걸까?’ ‘설마 아직도 나를 신경 쓰는 걸까?’ 이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자마자 나는 스스로를 비웃고 말았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그가 나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기를 기대하다니, 정말 어리석기 그지없었다. ‘아니겠지. 이 사람이 정말 나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면, 내가 죽을 위험에 처했을 때 ‘그냥 죽어버려’라는 말을 할 수 있었겠어? 강민아, 이 멍청이!’ ‘...’Y시에서도 나에 대한 소식을 찾지 못한 고영훈은 낙담한 표정으로 도시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경찰관님, 저... 신고하려고요.” 고영훈이 경찰서로 들어섰을 때, 한 중년 여성이 수줍은 듯 작은 목소리로 앞에 있던 경찰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경찰은 잘 알아듣지 못하고 자기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고영훈이 다가가서 말했다. “아주머니, 무슨 일인지 제게 말씀해 보세요.”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자기 몸을 감싸며,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어떤 사람이... 사람이 죽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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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나는 고영훈이 마치 영혼을 잃어버린 것처럼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교차했다. 이 길은 결혼식 호텔에서 우리 신혼집으로 가는 길목으로, 이 길을 거치지 않으면 집으로 갈 수 없었다.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자 생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당시 나는 바로 이 근처에서 고영훈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다. 살인범의 눈을 피하려 애썼지만, 고영훈의 차가운 말 한마디가 살인범에게 내 위치를 들키게 했고, 결국 나는 목숨을 잃게 되었다. 고영훈은 억지로 자신을 진정시키려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 “결혼식 날, 강민아가 나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하지만 나는...” 그날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리자 그는 더 이상 회상할 수 없었다. ‘만약 강민아가 그 순간 정말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면, 내가 했던 그 말은 강민아를 지옥으로 내몬 것이나 다름없었을 거야!’ 고영훈은 머릿속의 상상을 떨쳐내며 신고자인 중년 여성을 향해 물었다. “혹시 더 기억나는 게 있어요? 그 당시 살인범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아니면 피해자가 무언가 말하지 않았나요?” 김재국은 고영훈의 긴장감을 눈치채고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위로했다. 그리고 중년 여성을 향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그냥 절차적인 질문일 뿐이니, 천천히 기억을 떠올려 보세요. 놓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중년 여성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팀장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자 김재국이 고개를 돌렸다. 한 경찰이 증거물을 들고 뛰어오고 있었다. “팀장님, 피가 묻은 숄을 발견했습니다. 웨딩드레스의 일부로 보입니다.” 그 숄을 보자 나는 순간 멈춰 섰다. 그것은 바로 내가 결혼식 날 입었던 웨딩드레스의 숄이었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고영훈을 바라보았다. 고영훈은 온몸이 굳어 버린 채, 완전히 멍해 있었고,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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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김재국은 속이 상한 듯 신고자를 바라보며 약간의 원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일을 왜 그때 바로 신고하지 않았습니까?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아십니까?” 중년 여성은 몸을 웅크리고 떨며 고개를 숙였다. “저는 너무 무서웠어요. 그 사람은 온몸을 검은 옷으로 가리고 있었고, 얼굴까지 가리고 있었어요. 정말 무서웠습니다. 게다가 손놀림이 너무나도 날렵했어요...” 그녀는 꿀꺽 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이틀 동안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눈만 감으면 그 장면이 떠오르거든요. 더는 견딜 수 없어서 이렇게 신고하러 온 거예요.” 김재국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는 신고자를 비난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누구라도 그런 일을 목격했다면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으니, 살인범이 언급했던 ‘민아’가 아직 살아 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김재국은 신고자를 보호하도록 조처를 취한 뒤, 고영훈과 함께 경찰서로 돌아왔다. 경찰들은 즉시 근처의 모든 CCTV 기록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조사 시간을 고영훈의 결혼식 날로 맞추고 나니, 곧 CCTV 영상에서 내 모습이 발견되었다. 화면 속 나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두려움에 가득 찬 얼굴로 허겁지겁 뛰어가고 있었다. 내 뒤로는 온몸을 검은 옷으로 감싸고 얼굴을 가린 남자가 맹렬히 나를 뒤쫓고 있었다. 나는 공포에 질려 휴대폰을 들고 다급하게 전화하는 모습이었고, 얼굴에는 눈물이 가득했고, 절박한 표정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나는 곧 CCTV 사각지대로 들어가며 화면에서 사라졌다. 그 후로 더 이상 내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때, 고영훈은 책상에 손을 짚으며 간신히 서 있으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강민아는 거짓말하지 않았어. 그때 정말 위험한 상황에 부닥쳐 있었어!!!’ ‘하지만 그때 나는 너무 냉정했고, 차갑게 ‘그냥 죽어버려’라고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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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만약 내가 아직 살아 있다면, 고영훈이 나 때문에 이렇게 상심하는 모습을 보고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미 죽었고, 그것도 고영훈의 가장 사랑하는 여동생이라던 강주희 때문에 이렇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내가 살아 있을 때, 고영훈은 항상 강주희와 자신이 소꿉친구로 자랐으며 그녀를 가장 사랑하는 여동생처럼 여긴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이유로 나에게 여러 차례 소홀하게 대했으며, 나는 두 사람의 이상한 ‘남매 사이’ 때문에 고영훈과 숱하게 다투었다. 그런데도 고영훈은 여전히 나와 결혼하길 원했고, ‘연애 바보’였던 나는, 고영훈이 진심으로 나를 사랑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고영훈의 마음속에 내가 정말 있었는지, 아니면 단지 정략결혼의 도구로만 여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문 앞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나를 생각에서 깨어나게 했다. 강주희가 다급한 표정으로 집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녀는 허둥지둥 고영훈에게 다가가 그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았다. “오빠, 무슨 일이에요?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신 거예요?” 강주희는 눈살을 찌푸리며 바닥에 널린 술병들을 훑어보고, 고영훈의 얼굴에 묻은 술을 닦아주며 말했다. “혹시 무슨 어려운 일이 생긴 거예요? 무슨 일이든 나에게 말해요.” 고영훈은 소파에 반쯤 누운 채로 셔츠 단추가 풀린 상태였다. 그의 눈은 반쯤 감겨 있었고,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분간하지 못한 채 강주희를 와락 끌어안았다. “민아야... 네가 돌아왔구나.” “내가 알고 있어. 너는 절대 날 떠나지 않을 거라고...” 고영훈의 품에 꼭 껴안긴 강주희는 잠시 얼굴에 증오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감추고 남자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오빠, 난 주희예요. 언니가 아니라고요.” 고영훈은 그녀의 말을 듣고, 점차 정신을 차리며 힘겹게 눈을 떴다. 자신이 끌어안고 있던 사람이 ‘강민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본능적으로 강주희를 밀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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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만약 오늘 밤 이 두 사람이 정말 한 침대에 든다면...’ 그 결말을 상상하자, 나는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그래, 만약 그 둘이 그렇게 된다 한들 무슨 상관이야? 나는 이미 차가운 시체 보관소에 누워 있는 조각난 시체일 뿐,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데...’ ‘아니, 나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했잖아? 그런데 왜 아직도 이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고 있는 거야?!’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마음을 정리한 후, 한쪽에서 이들의 연극을 보기로 했다. 과연 강주희의 수작이 고영훈에게 통할지 지켜보고 싶었다. 나는 고영훈의 주량이 누구보다도 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 몇 병의 술은 고영훈에게 그저 입가심일 뿐이다. 강주희는 다시 술병을 건네며 말했다. “오빠, 조금만 더 마셔요.” 그러나 고영훈은 술병을 밀어내고, 소파에 엎드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강주희는 조심스럽게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오빠, 괜찮아요? 영훈 오빠?” 남자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녀는 상의를 벗으며 소파 위의 고영훈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나... 정말 오빠를 좋아해요. 오빠와 평생 함께하고 싶어요. 언니가 오빠를 위해 했던 모든 일들, 나도 다 할 수 있어요.” 강주희는 고영훈을 힘겹게 일으켜 세우고, 그의 품에 몸을 맡겼다. 그러면서 그녀는 남자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오빠, 오늘 밤 모든 것은 내가 원해서 하는 거예요. 오빠가 책임지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래도 오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 그녀는 점점 고영훈의 얼굴 가까이 다가갔고, 입술이 닿으려는 순간, 나는 눈을 감았다. 이런 추악한 장면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으악!” 그러나 내가 예상했던 소리가 아니라, 강주희의 비명이 들려왔다. 눈을 떠 보니, 고영훈은 맑은 눈빛으로 강주희를 바라보고 있었고, 강주희는 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당혹감이 가득했다. “오빠, 지금 뭐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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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어두운 조명 아래, 고영훈은 술에 취해 흐릿한 눈으로 눈앞의 강주희를 바라보았다. 예전의 강주희는 고영훈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존재였지만, 지금은 처제인 그녀가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다. 이 순간, 고영훈은 20년 넘게 함께 해온 강주희를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지금 그 말 무슨 뜻이야?” “별 뜻 없어요.” 강주희는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 김 팀장님께서 언니가 사고를 당했다고 했으니, 이제 나도 더 이상 자매간의 정을 고려하지 않을래요.” “내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든 쓸 거예요.” 그녀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 고영훈의 헝클어진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 “영훈 오빠, 나 오빠 남자로 좋아해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서라도 오빠를 꼭 가질 거예요.” 고영훈은 본능적으로 침을 삼키며 물었다. “내가 너를 좋아하지 않아도?” 강주희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오빠는 날 좋아해요. 다만 아직 그걸 깨닫지 못한 것뿐이에요.” “아마 언니 때문일 수도 있고, 다른 이유 때문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언젠가 분명히 오빠도 날 좋아하게 될 거라고 믿어요.” 강주희는 웃으며 고영훈을 향해 손을 흔들고 나서 뒤돌아섰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완전히 사라졌고, 어두운 표정으로 별장을 떠났다. 어두운 조명 아래 강주희의 음산한 얼굴을 본 순간, 나는 귀신임에도 몸이 떨렸다. ‘만약 내가 정말 강주희의 손에 죽었다면, 이 죽음이 그렇게 억울하지는 않겠네.’ ‘강주희 같은 마음이 치밀하고 얼굴이 바뀌는 속도가 번개처럼 빠른 여자를 누가 당해낼 수 있겠어?’ 나는 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만약 내가 환생한다면, 그때는 강주희를 상대할 수 있을까?’ ‘내가 죽기 전에 시골에서 10년 넘게 살며 고생했고, 돌아와서는 간신히 금융학을 배워 경영을 익혔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어린 시절부터 호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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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나는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스쳤고,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며 강주희를 노려보았다.‘설마...? 이 향초도 내 뼛가루로 만든 거야?’내 시신은 이미 조각조각 나뉘었고, 지금까지 내 머리는 여전히 찾지 못한 상태였다. ‘혹시 이 안에 내 머리의 뼛가루가 들어 있는 건 아닐까?’그 가능성을 떠올리자마자, 내 가슴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내 눈앞의 강주희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의 증오가 퍼져 나갔다.예전에는 단지 의심만 했을 뿐이지만, 지금 강주희의 눈에 서린 조롱의 빛을 보고 나는 확신했다.내 죽음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는 강한 심증이 들었다.아니, 강주희가 처음부터 나를 제거하려고 계획했던 것이 분명했다. 나는 향초에서 벗어나 강주희를 향해 달려들려고 했지만, 내 몸은 그녀를 그대로 관통할 뿐이었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원망과 분노로 발을 동동 구르며 뛰어다녔다. ‘강주희, 너는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도대체 내가 너한테 무슨 잘못을 했길래, 나를 이렇게까지 증오하니?’ ‘이제는 내 뼛가루로 만든 향초를 내 가장 사랑했던 남자에게 선물하다니!’ ‘강주희! 네가 정말 나를 죽어서도 편히 쉴 수 없게 만들고, 끝끝내 나를 놓아주지 않는구나.’ 나는 붉어진 눈으로 강렬하게 강주희를 노려보았다. 내 시선이 칼이 될 수 있다면, 그녀는 이미 천 갈래 만갈래로 찢겼을 것이다. 내 분노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고영훈은 향초를 조심스레 받아들며 말했다. “고맙다. 마음 써줘서.” 나는 고영훈 앞에 서서 두 손을 휘저으며 외쳤다. “쓰지 마! 그거 내 뼛가루!” “내 말을 듣고 있어? 절대 쓰면 안 돼!!” 나는 미친 듯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소리치고 몸짓했지만, 결국 나 혼자만의 헛된 외침일 뿐이었다. 강주희는 떠나갔고, 고영훈은 향초를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나는 그저 텅 빈 머리로 아무 생각도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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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나는 고영훈이 다시 침대에 누워버린 모습을 보며 천천히 그의 침대 앞으로 다가갔다. 나는 목을 가다듬으며 조용히 물었다. “혹시... 내가 무서워서 미친 건 아니겠지?”“괜찮아? 만약 네가 이러다 죽으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 침대에 누워 있는 고영훈은 아무 반응도 없었고, 고개를 떨군 채 쓴웃음을 지었다. “민아야, 내가 너무 너를 그리워한 거야... 너를 그리워하다 보니 환각까지 보이네.” 그 말을 듣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환각이었구나. 다행이다. 정말로 내가 보이는 줄 알았잖아.” 내 시선은 곧바로 그 향초로 향했다. 그동안 고영훈 옆에 붙어있던 내내, 그는 한 번도 이런 환각을 본 적이 없었다. ‘혹시 이 향초가 이 사람의 환각을 유발한 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자 나는 다시 향초로 들어가, 그것이 정말 내 머리뼈와 관련이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나는 무언가를 느끼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졸음이 몰려왔고, 내 의식이 희미해지며 속으로 외쳤다. “고영훈!! 네 사랑스러운 여동생이 선물한 향초 참 잘도 듣는다! 심지어 나도 그렇게 푹 잘 수 있다니!” ...눈을 다시 떴을 때, 나는 침대 옆 테이블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깼다. 고영훈도 그 소리에 눈을 떴다. 전화기 액정에는 ‘할아버지’라고 적힌 이름이 뜨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처음 고영훈의 할아버지인 고정한을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고정한은 굳은 얼굴로 나를 대했고, 시골에서 온 내가 잔뜩 주눅 들게 했다. 고정한은 나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고, 마치 고영훈이 누구와 결혼하든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결국 나는 고정한이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끝까지 알 수 없었다. 고영훈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네, 할아버지.” 전화기 너머에서 고정한의 깊고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른 시간인데, 방해가 된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고영훈이 대답하며 향초를 힐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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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역시 고정한은 마음속 깊이 나를 무시하고 있었다. 고정한의 말을 듣자 나는 상황이 이해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다. ‘두 사람 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왜 굳이 나와 고영훈을 결혼시키려고 했을까?’ 고정한은 고영훈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도 안다. 옛날에 그 강씨 집안 노인네가 너와 민아를 결혼시키라고 했을 때, 네가 얼마나 불편했을지...” “하지만 우리 고씨 집안이 강씨 집안에 빚진 게 있어. 그 노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긴 유일한 소원이 그거였는데, 그걸 무시하면 우리 고씨 가문 체면이 서지 않을 거야.”고영훈은 얼굴에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손에 들고 있던 바둑돌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고정한을 향해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할아버지, 민아와의 결혼이 저는 싫지 않았습니다. 불편하다거나 그런 건 없어요.”고정한은 잠시 그를 응시하더니,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민아가 시골 출신이라 듣기엔 좀 그렇긴 해도, 다루기 쉬운 사람이잖아. 게다가 민아는 강씨 집안의 진짜 금지옥엽이지. 밖에서 보면 체면도 서고.”“그리고 민아 부모가 언젠가 세상을 떠나면, 강씨 집안은 자연스럽게 민아에게 넘어갈 테니까.”나는 고정한의 말을 들으며 갑작스럽게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깨달음을 얻었다.고씨 가문 사람들이 하나같이 나를 깔보고, 고영훈이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결혼 상대자로 나를 선택했는지.단순히 우리 할아버지의 유언 때문만은 아니었고, 더 중요한 이유는 내가 강씨 집안의 진짜 ‘금지옥엽’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법적으로 강씨 집안의 모든 결정권은 나에게 있었다.만약 내 부모님이 미리 유언장을 작성하지 않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면, 모든 재산과 권리는 나에게 귀속되게 되어 있었다.이 모든 이해관계를 떠올리자,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며 식은땀이 흘렀다.결국 나는 철저히 이용만 당하게 될 바보였다.고영훈이 만들어준 ‘달콤한 감옥’ 속에서 나는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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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그 사람이 왜 돌아오는 거죠?”고영훈의 눈빛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그가 이렇게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고정한이 말한 ‘시환’은 다름 아닌 바로 자기 아들이자, 고영훈의 막냇삼촌인 고시환이었다.나는 고시환을 본 적은 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 사람의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고영훈의 막냇삼촌인 고시환은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자랐고, 나보다 몇 년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하지만 고시환은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대단한 인물이었다.고씨 가문으로 돌아온 뒤, 고시환은 바로 옆의 J 시에서 회사를 설립해 단기간에 상장까지 성공시켰다.현재 고시환은 J시에서 손에 꼽히는 부자라고 들었다.처음 고시환이 고씨 가문으로 돌아왔을 때, 고영훈도 삼촌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내가 고영훈과 알게 된 후에도, 그는 종종 자기 삼촌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고영훈이 말하길, 삼촌이라는 고시환은 예의도 없고, 고집불통에다 너무 제멋대로라는 것이다.들리는 이야기로는, 고시환은 어릴 적부터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기본적인 예절조차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차갑고 냉정한 사람으로, 심지어 아버지인 고정한에게조차 어떠한 가족애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했다.사실 내 입장에서 고시환의 태도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어릴 때부터 가족과 떨어져 자랐고, 게다가 사생아라는 낙인이 찍힌 상황에서 고씨 가문으로 돌아왔으니, 고시환이가 가족들에게 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온갖 편견 어린 시선을 견디며 살아온 고시환의 입장에서, 그런 감정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지도 모른다.하지만 내가 의아한 것은, 이미 J 시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히 다지고 성공을 이룬 고시환이 왜 다시 고씨 가문이라는 불구덩이로 돌아오려는지였다.고씨 가문이 이 지역에서 대단한 배경을 가진 건 사실이지만, 고시환 역시 J시에서만큼은 고씨 가문에 뒤지지 않는 위치에 있고, 서로 간섭하지 않으며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는가?더구나 고정한의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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