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Chapter 621 - Chapter 630

720 Chapters

제621화

전하는 은근히 최지습에게 경고하고 있었다.아무리 그래도 형인 자신이 난처하지 않게 조금은 생각해 주었어야지.하지만 최지습이 그 속내를 모를 리 없었다.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먼저 김단을 저격한 건 중전 마마입니다. 그리고 서원도 마찬가지지요. 형님께서야 말로 그들을 올바르게 가르쳐야 하지 않겠습니까?”전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결국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서원은 짐이 버릇을 잘못 들인 게 맞다. 허나 이제 와서 성격이 고쳐지겠느냐? 어차피 시집갈 날도 멀지 않았으니 그냥 모른 척하는 것이다. 그 이후의 일은 짐이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으니까.”그 태도는 마치 무책임하게 모든 걸 내려놓겠다는 뜻 같았다.최지습의 입꼬리가 무겁게 내려앉았다.전하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최지습을 떠보기 시작했다.“그래서 너는 김단을 계속 네 저택에서 지내게 할 생각이냐?”“네.”최지습의 대답은 짧고 단호했다.“제 저택은 넓습니다.”“헛소리!”전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쏘아보았다.최지습이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 모르는 건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했다.“그 낭자가 네 저택에 머무르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제대로 된 명분도 없는 여자가 남자 집에 머무는 건 또 무슨 도리이더냐?”최지습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그 아이는 제 의남매입니다. 그 명분으로는 부족하단 말인가?”전하는 혀를 끌끌 찼다.“그건 네 법칙이고. 의남매이니 의형제이니 하는 거 말이다. 그게 어디 대명천지에 내놓을 수 있는 이름이더냐? 내 차라리 김단에게 군주 작위를 내려주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최지습은 전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밤의 어둠은 꽤 깊었으나 그 눈빛 속에 엿보이는 날카로움은 가려지지 않았다.최지습은 차분하게, 그러나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물었다.“군주로 봉하고 군주부를 내려주고 난 후 단이를 소한에게 맡기시려는 속셈입니까?”전하는 잠시 당황하며 눈동자를 굴렸다.그가 자신의 얕은 꾀를 단숨에 간파할
Read more

제622화

전하는 최지습의 고집스러운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지금 그에게 최지습은 남아있는 유일한 동생이었다.그런 동생이 여덟 해 동안 실종되었다가 가까스로 돌아왔으니 자기가 한발 물러나야지 뭐 어쩌겠는가?전하는 화가 나서 속이 뒤집히는 듯했지만 그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어휴 마음대로 하거라 이 무능한 놈아. 며칠 뒤 내 구 낭자와의 자리를 마련할 테니반드시 나가거라!”“소인 물러가겠습니다.”최지습은 공손히 허리를 굽혀 인사한 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그가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전하도 마음속에 억눌렀던 답답한 감정이 서서히 사라지는 듯했다.최지습의 등장으로 인해 전하는 여덟 해 동안 꽁꽁 묶어두었던 감정들을 하나둘씩 드러내기 시작했다.그는 자신의 동생이었다. 이복형제였지만 같은 아버지의 피를 나눈 유일한 혈육이었다.한때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 칼을 휘둘렀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홀로 싸웠던 존재이다.그로 인해 많은 사람을 죽였고 여덟 해 동안 죄책감에 몸부림쳤던 사람.자신은 지금 임금이 되어 만백성의 존경을 받으며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다.그러니 이제는 그가 최지습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비록 최지습이 크고 건장한 사내로 자랐다고 하지만 그의 눈에는 여전히 호수에 빠져 허우적대던 소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어리숙하고 연약했던 그 소년에게 다시 한번 손을 내밀어 주고 싶었다.궐에서 나오는 길, 최지습의 마음은 여전히 무겁기만 했다.이 궐은 너무도 많은 추억을 품고 있었다.좋은 기억, 나쁜 기억, 따스했던 순간, 그리고 처참했던 순간까지도그러나 결국 그 모든 기억은 피비린내로 물들어 있었다.청회색 벽돌 하나까지도 피를 머금고 있는 듯했다.그는 청석으로 된 작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바로 이곳에서 그는 여섯 번째 형님을 죽였다.그리고 달빛이 비치는 높다란 궁궐 벽에서 그는 열 번째 형님을 장창으로 죽여버렸다.조금 더 걸어가니 궐문이 보였다.그때 그는 저곳에서 저항하던 여덟 번째 형님을 말에서 끌어내려 그의 가슴을
Read more

제623화

오늘 연회 자리에서 최지습은 술을 꽤 많이 마셨다.하지만 그의 주량으로 봐서는 그 정도로 취할 리가 없었다.그러니 김단은 지금 최지습의 상태가 몹시 걱정되었다.혹시나 자신의 편을 들어주다 중전의 심기를 건드렸고 그로 인해 전하가 그에게 이상한 것을 먹인 건 아닐까?원래는 궐문을 나선 후 쉽게 다시 들여놓지 않지만 궐을 지키는 병사가 마침 소하의 부하였고 최지습과도 잘 아는 사이였기에 김단을 허락해 주었다.조심스럽게 최지습을 부축한 후 그의 손목을 잡아 맥을 짚어 보았다.그의 손은 뜨거웠고 맥은 고르게 뛰고 있었다.비록 정식으로 의술을 배운 적은 없지만 소가에서 유 대인과 함께 지내며 맥 짚는 법 정도는 익혀두었기에 맥박을 측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최지습의 맥은 고르고 평온했다.그러니 몸에 해로운 것을 먹은 것은 아닌 듯했다.그렇다면 정말로 술에 취한 것일까?궐 안의 술이 그렇게 독하단 말인가?그런데 그 순간, 최지습은 김단이 얇디얇은 어깨로 자신의 팔을 받쳐주려 애쓰느 모습을 보고 문득 그녀의 힘을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자신의 체중의 반을 실어 그녀에게 기대보았다.뜻밖에도 김단은 그 무게를 감당하며 버티고 서있었다.작은 체구라 힘겨운 기색이 역력했지만 생각보다 나약하지 않았다.“대군 자가, 조금만 버티세요. 마차가 바로 밖에 있어요.”김단은 이를 악물고 무게를 감당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최지습의 단단한 근육과 다부진 체격이 그녀의 어깨를 짓눌러 아팠지만 김단은 묵묵히 버텼다.다행히도 궐문까지는 몇 걸음 남지 않았다.최지습은 그런 김단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몸을 바로 세웠다.작고 여린 몸이지만 그 안에 담긴 강단과 결의가 느껴졌다.그녀의 땀방울이 이마를 적셨고 입술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최지습의 입가에 어느새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나는 괜찮소.”그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순간 김단은 어깨에 실린 무게가 줄어든 듯한 느낌을 받았다.하지만 최지습이 일부러 무리해서 버
Read more

제624화

최지습은 김단이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야 입을 열었다.“아마 형님께서는 낭자와 소한을 이어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소.”그 말을 들은 김단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그럴 리가요? 소한 도련님께서 청혼하려 했을 때 전하께서 친히 그 혼인을 막아주셨잖아요.” 그때 전하가 김단에게 얼마나 큰 자유를 주었던가.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자신은 소가의 둘째 며느리로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또 그 고통 속에 갇혀 평생을 힘들게 살았겠지.김단은 그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최지습은 고개를 약간 숙인 채로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아마도 소한이 낭자 때문에 미쳐가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약해지신 것 같소.”최지습 역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소한이 전장에서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기에 오왕의 난을 겪어본 전하마저 크토록 안타까워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해서 그가 김단에게 저지른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김단은 가늘게 떨리는 손끝을 감추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저는 더 이상 소한 도련님과 엮이고 싶지 않습니다.”그 말에 최지습은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다.“좋소.”그의 목소리는 한결 가벼웠지만 그 안에는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그녀를 향한 깊은 신뢰와 존중이었다.이틀 후 전하는 최지습에게 구연평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었다.최지습은 김단을 데리고 나섰다.마차 안에서 김단은 계속 최지습을 곁눈질하며 바라보았다.그가 부탁할 일이 있다며 데리고 나왔지만 정작 그 부탁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만남 장소는 한양 밖의 대나무 정원이었다.여름의 뜨거운 햇살은 대나무 잎에 걸려 아름다운 금빛 조각이 되어 땅 위로 흩어졌다.대나무 숲 사이로 바람이 스칠 때마다 잎은 살랑거리며 청량한 소리를 냈다.대나무 정원의 하인이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그들을 깊숙한 곳으로 안내했다.정원 깊숙이 자리한 아담한 정자에는 구연평이 기다리고 있었다.오늘 그녀는 달빛 같은 흰색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부드럽게 흐
Read more

제625화

말을 마친 최지습은 김단을 한 번 바라보더니 무심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구 낭자를 좀 돌봐주시오.”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최지습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그의 뒷모습은 여느 때처럼 단호하고 거침이 없었다.정자 안에 남겨진 두 사람은 그저 어색한 눈빛만 주고받았다.김단은 순간 당황했지만 최지습이 자기를 이곳에 데려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아마도 자신이 너무 단호하게 거절하여 구연평이 상처받을까 봐 김단더러 그녀를 위로해 주어라는 의미일 것이다.최지습은 분명 여자들끼리 대화하는 게 더 수월할 거라 생각했겠지만 정작 김단과 구연평은 그날 궐에서 한 번 본 사이일 뿐이었다.서로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는 두 사람은 그저 대책 없이 서로를 마주 보며 어색함 속에 갇혀있었다.그때 갑자기 구연평이 무언가 떠올랐는지 웃음을 터뜨렸다.“그분, 제가 속상할까 봐 낭자를 남겨둔 거지요?”김단도 어색하게 따라 웃으며 얘기했다.“사실 대군자가는 마음이 굉장히 따뜻한 분이에요. 다만 좀 직설적으로 말하는 편이라 차갑게 들리실 수 있습니다.”구연평은 고운 손으로 김단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저는 오히려 그런 단호함이 마음에 듭니다. 괜히 돌려 말하면서 시간 낭비하느니 차라리 한 번에 잘라내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사실 저도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만남은 전하께서 직접 나서서 주선하신 거라 더 부담스러웠거든요. 할아버지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걱정했는데 그분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해 주시니 오히려 속이 시원하네요.”사실 구연평도 이 혼사가 달갑지만은 않았다.김단은 그 사실에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다행이에요. 저는 언니께서 상처받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했습니다.”그날 궐에서 자신을 위해 증언해 주었던 구연평의 모습을 생각하면 한없이 고맙기만 했다.그래서 그녀는 진심으로 구연평이 마음 아파하지 않기를 바랐다.김단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보며 구연평은 더욱 환하게 웃어 보였다.눈빛 속엔 결연함과 자신
Read more

제626화

구연평의 시선이 김단에게로 옮겨졌다.그 눈빛은 차분하면서도 날카로웠고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잠시 망설이던 구연평은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사실 처음엔 낭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낭자는 어릴 때부터 ‘소한’이라는 자 옆에 바짝 붙어 다녔었죠. 왜 진산군 댁 귀한 아가씨의 인생이 남자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제 눈에는 그저 한심하고 답답하게 보일 뿐이었죠.”구연평의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그려졌다.그러나 그녀의 눈동자에는 김단을 향한 경멸이 아닌 연민과 동정이 섞여 있었다.“하지만 낭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는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특히 그날, 낭자가 구서의 눈을 찔러 멀게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비로소 낭자를 다시 보게 되었거든요.”구연평은 대방(大房)의 사람이었다.그래서 이방(二房)에서 나고 자란 그 망나니를 늘 혐오해왔기에 이름조차 입에 담고 싶어 하지 않았다.지금 이 순간도 그랬다. 그의 이름을 언급할 때 얼굴에 드리운 불쾌감과 혐오감은 감출 수 없었다.“그 인간이 얼마나 많은 여인을 해쳤는지 낭자도 잘 알 겁니다. 하지만 정작 그 사람에게 저항하고 상처를 입힌 건 낭자 하나뿐이었습니다. 저는 그 점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세답방에서 지냈던 그 3년이 얼마나 끔찍했을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지만 그래도 버텨내주셨잖습니까. 그 고통을 이겨냈기에 낭자는 이미 새로운 삶을 얻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낭자의 인생은 세답방을 떠나던 그날부터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그 말에 김단의 눈동자가 떨렸다.가슴속에 쌓아두었던 덩어리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그녀의 말이 옳았다.견뎌냈고 깨어났다. 그것은 새로운 삶이었다.김단은 줄곧 한양을 떠나야만 비로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구연평의 말을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자신의 새로운 인생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을.세답방을 떠나던 그 순간부터, 아니 어쩌면 진산군 댁과 소한과의 인연을 끊어낸 그순간부터
Read more

제627화

최지습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김단을 향해 물었다.“그래, 구 낭자가 대체 무슨 말을 한 것이오?”김단은 잠시 머뭇거리며 기억을 떠올렸다.“구 언니가 그러셨어요. 작은 집안에 갇혀서 평생 남을 위해 사느니 차라리 혼자 자유롭게 사는 게 낫다고요.”최지습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그의 눈빛에는 놀라움과 함께 미묘한 감정이 교차했다.그는 그 말을 곱씹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내가 그 낭자를 너무 얕봤던 것 같소.”김단은 가볍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도령님, 걱정 마세요. 구 언니는 오히려 도령님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줘서 고맙다고 하셨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할아버지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몰라서 곤란했을 거라고 말입니다.”최지습은 그제야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렇다면 다행이군.”구연평을 거절한 것으로 인해 따르는 책임을 자신이 전부 떠안아도 상관없었다.어차피 그는 어떤 비난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니까.다음 날, 최지습은 약속대로 김단을 내의원으로 데려갔다.심지어 내의원에서 가장 높은 지위와 뛰어난 의술을 자랑하는 의원장 수 어의가 직접 김단을 가르치게 했다.김단은 전보다 더욱 집중하여 의술을 배우기 시작했다.그녀의 눈빛은 진지함과 결연함으로 빛나고 있었고 움직임 하나하나에 신중함이 배어있었다.예전에 진산군 댁 어의가 남긴 의서 덕분에 배우는 속도는 빨랐고 이해력도 뛰어났다.수 어의는 매일같이 김단을 칭찬하며 그녀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의심의 불씨가 피어올랐다.소한의 두 다리는 자신이 직접 진단했고 앞으로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었다.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멀쩡히 걸어 다니는 것이 아니겠는가?소문에 의하면 그의 다리를 김단이 치료했다고 했다.하지만 김단의 의술은 아직 초보 수준에 불과했다.그녀가 그 어려운 치료를 해냈다는 사실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수 어의는 김단을 슬쩍 떠보듯 물었다.하지만 김단은 그런 질문에도 여전히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Read more

제628화

수 어의는 깊은숨을 몰아쉬며 재빠르게 소한의 상태를 꼼꼼히 살폈다.손끝으로 뼈의 상태를 더듬으며 집중해 보았다.그러나 그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고 눈가에는 절망스러운 기운만 감돌았다.옆에 있던 군의관이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수 어의님, 소 장군께서는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수 어의는 무겁게 숨을 내쉬며 손을 거두었다.“군중에서 이런 상황을 본 적이 많으시겠죠. 알다시피, 소 장군의 상태는 좋지 않습니다.”군의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순간 그의 눈가가 붉어졌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이미 그는 소한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있었기에 급히 수 어의를 모셔온 것이었다.그러나 막상 진단 결과를 직접 듣고 나니 더욱 절망스러웠다.“하지만 소 장군은 체격이 건장하지 않습니까? 보통 사람이 말발굽에 짓밟혔으면 벌써 목숨을 잃었을 텐데 아직 숨이 붙어 있습니다.”수 어의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하지만 흉골이 다 부러졌고 그 뼛조각이 폐를 깊게 찌른 것 같습니다. 소 장군을 살리려면 가슴을 갈라서 폐에 박힌 뼛조각을 직접 꺼내야 합니다.”그때였다.김단이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그렇다면 즉시 가슴을 열어봐야죠!”그녀의 목소리는 결연했지만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말은 쉽게 했으나 그 무게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소한의 숨이 붙어있는 한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제가 만들 수 있는 약이 있습니다. 그걸 먹이면 최소한 한 시간은 깊이 잠들게 할 수 있어요.” 수 어의는 놀란 눈으로 김단을 바라보았다.“무슨 약을 만든단 말이오? 그게 가능하오?”김단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의원님께서 남기신 의서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약을 쓰면 한 시간 동안 깊은 잠에 빠진다 하였습니다. 그 사이에 뼛조각을 꺼내면 됩니다.”수 어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슴을 여는 수술이라니... 너무도 무모한 시도였다.그러나 소한의 희미한 숨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는 점점
Read more

제629화

소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썹을 찌푸렸다.오늘 소한이 낙마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그저 허무맹랑한 소문이라고 생각했다.소한이 어떤 사람인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할 리 없었다.그러나 막상 연병장으로 달려와보니 소한은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믿기지 않는 현실에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이성을 다잡고 근처에 있던 종사관 오혁에게 물었다.“오혁, 네가 말해보거라.”오혁은 최근에 승진한 종사관이었고 현재 소한의 일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소하에게 인사를 하고 입을 열었다.“소 총령님, 저도 정확한 내막은 모릅니다. 소 장군께서 어디서 구해오셨는지 갑자기 붉은 갈기의 말을 끌고 오셨습니다. 딱 봐도 길들여지지 않은 말이었습니다.”오혁은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들어 먼 곳을 가리켰다.멀리 묶여 있는 붉은 갈기 말이 느긋하게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말은 키가 크고 늠름했다. 윤기가 흐르는 털이 햇빛 아래에서 예쁘게 반짝였다.특히 이마에 하얀 털이 눈에 띄게 자리 잡고 있어 더욱 인상적이었다.“저 말은 평소에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얌전하게 풀만 뜯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누군가 올라타기만 한다면 미친 듯이 날뛰었습니다. 오늘 소 장군께서는 그 말을 길들이시려다가 그만...”그 말을 보는 순간 김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오래전의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어린 시절 진산군의 생일 연회에서 누군가가 선물로 팔마군도를 가져왔었고 그녀는 가장 앞에 그려진 붉은 갈기 말을 좋아했었다.그때 김단은 어린 소녀였고 임학과 소한 사이에서 그 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나중에 꼭 저런 말을 탈 것입니다. 저런 말을 타면 정말 멋질 것 같지 않습니까?”어린 시절 마음에 품었던 작은 소망이었고 지금은 잊혀진 추억일 뿐이었다.그 시절 그 작은 소녀의 꿈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그 시절 김단은 순진했고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하지만 왜 하필 그 말을 소한이 데려온 것일까?
Read more

제630화

소하는 김단의 부탁을 듣고 잠시 놀랐지만 최근 임씨 부인 상태를 알고 있었기에 특별히 의심하지 않았다.김단이 끝내 마음이 약해져 찾아가려는 것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김단은 마차가 진산군 댁에 가까워지기 전에 미리 내리겠다고 했다.소하는 그녀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굳이 캐묻지 않았다.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지금 낭자는 평양 관저에 머물고 있으니 안전할 것이오. 그래도 혹시나 난처한 일이 생긴다면 언제든 나를 찾아오시오.”예전처럼 함께하자고 말하지 않았다.이미 그녀는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기에 그 평온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이제 소한조차 그녀를 괴롭히지 못하는 상황이라 김단이 어려움에 처할 일은 없을 것이다.하지만 소하는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다.혹시나 그녀가 외롭거나 힘들 때 곁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김단은 고개를 숙이며 차분하게 말했다.“고맙습니다. 도련님.”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차갑기만 했다.소하는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의 입가에 떠오른 희미한 미소에는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의 문을 닫았다.마차는 천천히 움직였고 김단은 그 마차가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진산군 댁의 후문으로 걸어간 김단은 잠시 숨을 고르며 주변을 살폈다.후문을 지키는 병사에게 몇 냥의 은전을 건네주며 부탁하자 그가 금세 의원을 불러왔다.의원은 김단을 보자 반가운 듯 웃으며 말했다.“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큰 아가씨, 오랜만입니다!”김단은 예의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의원님 오랜만입니다.”의원은 급히 다가와 그녀를 일으키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니, 큰 아가씨께서 왜 이러십니까? 어서 일어나세요.”김단은 지체하지 않고 본론을 꺼냈다.“오늘은 부탁드릴 일이 있어 왔습니다. 누군가의 목숨이 달린 일이거든요.”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절박함을 느낀 의원은 얼
Read more
PREV
1
...
6162636465
...
72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