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그녀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사방은 어두컴컴하고 조용했고 차창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만 들려왔다. 힘들게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는데 아무런 기척도 없자 강은하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훌쩍거렸다. 이런 환경 속에서 고양이 같은 울음소리가 마치 깃털처럼 남자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둠 속에서 잔뜩 굳어있던 남자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자 그녀가 남자의 목덜미를 끌어안고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성민 씨, 왜 키스 안 해줘요? 내가 싫어요?”어둠 속에서 조롱 섞인 웃음이 터져 나왔고 그녀는 그의 입술을 덮쳤다.그 순간,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당신이 자초한 일이야.”한편, 차를 몰고 온 주성민이 송우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었지만 송우진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뭐예요? 한밤중에 나한테 이런 걸 보여주려고 전화한 거예요?”“주성민, 왜 이렇게 늦었어?”송우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주성민한테 전화를 걸었을 때, 고연석은 이미 주성민의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그런데 서진태가 중간에서 가로챘고 주성민은 이제야 나타났다. 하여간 꾸물대는 성격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허구한 날 뭐가 그렇게 바쁜 건지...“형이 뭘 알아요? 나 지금 좋은 남자가 되려고 엄청 노력 중이란 말이에요. 은하 씨가 책들을 많이 추천해 줬어요. 집에서 책 읽고 필기까지 다 했단 말이에요.”송우진은 말문이 막혔다. 한동안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사람과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참 애쓴다고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차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한번 확인해 봐.”송우진은 그를 위해 이 악연을 끊어줄 생각이었다. 아직 그렇게 깊이 빠지지 않았으니까 얼른 발을 빼는 것이 덜 고통스러울 것이다. “내가요? 좀 아니지 않나?”멀지 않은 곳에 있는 새 차를 보니 왠지 모르게 낯이 익은 느낌이었다. “저건 형이 엊그제 새로 산 차 아니에요?”주성민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