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보스 아내의 복수 게임: Chapter 1 - Chapter 10

40 Chapters

제1화

비 내리는 하늘 아래, 빗물이 모든 소리를 집어삼킨 탓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나는 무기력하게 게스트룸에 앉아 하염없이 빗소리를 들으며 손에 쥔 검사 결과지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의사는 말했다. 내 상태는 이미 위암 말기라고. 제대로 치료를 받으면 3년 정도는 더 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치료를 받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이미 너무 지쳐 있었다. 장연아와의 이혼 후 지금까지 내가 놓치고 있던 지난 8년이라는 시간을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떠나고 싶었다. 방문이 노크 소리에 흔들렸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사 결과지를 베개 밑에 감추었다. 문을 두드린 사람은 요즘 연예계에서 가장 떠오르는 스타, 노태호였다.그는 상반신을 드러낸 채, 갓 남겨진 신선한 ‘애정의 흔적들’을 자랑하듯 보여주고 있었다.노태호는 장연아를 ‘정성껏 모신 덕분에’, 결국 연예계에서 가장 뜨거운 배우로 자리 잡았다.지금 나를 바라보는 노태호의 입가에는 조롱 섞인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형, 연아 누나가 형 부르는데요.” “알았어.” 나는 장연아가 가장 좋아하는 망고를 손에 들고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녀는 와인잔을 손에 든 채 창가에 서서 빗소리를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지만, 재빨리 표정을 바로잡았다. 장연아는 내 잔소리를 노골적으로 싫어했고, 내가 술 냄새를 싫어한다는 사실도 아마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어릴 적, 아버지는 술을 즐겨 마셨다. 그리고 술에 취하기만 하면 온갖 방법으로 나를 괴롭혔다. 술 냄새를 맡을 때마다 의식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그래서 예전에는 장연아가 술 냄새를 풍기며 집에 돌아오면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샤워하는 것이었다. 흐릿해지던 생각이 장연아의 목소리에 끊겼다.“오늘 나 찾았다며, 무슨 일이야?” 그녀가 걸어와 와인잔을 창가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혹시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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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진통제도 없이, 위장을 칼로 도려내는 듯한 통증을 나는 홀로 견뎌야 했다. 고통을 참느라 이를 악물고 버티며 앓는 소리가 적막한 방 안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아팠다. 정말로 아팠다. 갑자기 휴대폰 벨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하지만 나는 전화를 받을 힘조차 없었다. 벨소리는 한 번 끊겼다가 다시 울렸고, 상대방은 포기할 줄 모르고 집요하게 전화를 걸어왔다.내가 받지 않으면 절대 멈추지 않을 듯한 끈질긴 전화벨이었다.통증이 겨우 가라앉고 나서야, 다시 울린 전화에 간신히 손을 뻗어 받았다.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건 장연아의 차가운 목소리였다.[변진섭, 당신 배짱 한번 두둑하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그녀가 내 상태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무슨 일이야?” [책상 위에 계약서 한 부 있어. 그거 나한테 가져다줘.]내가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그녀는 덧붙였다. [그리고 당신 정장 한 벌 챙겨서 태호한테도 가져다줘. 오늘 저녁 옥션에 태호를 데리고 가야 하는데, 맞춤 제작할 시간이 없어서.]“알았어.” 노태호의 체격은 내가 병들기 전과 비슷했다. 내 정장은 그에게 잘 맞을 것이다. 옷장을 열었을 때, 나는 잠시 멍해졌다. 병에 걸린 이후로 이 옷장은 한 번도 열어본 적이 없었다. 다시 보니, 옷장 속 물건들은 마치 다른 시공간에서 온 유물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다양한 정장들과 세트로 정리된 커프스 단추들은 여전히 정갈하고 아름다웠다. 이 모든 것을 정리해 둔 건 장연아였다.옷과 액세서리는 변함이 없지만, 나와 장연아의 관계는 이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달라져 있었다. 계약서를 들고 회사로 갔을 때, 사방에서 다양한 시선이 나를 따라왔다. 동정, 조롱, 그리고 비웃음이 뒤섞인 눈빛들.회사 안에서 장연아의 불륜은 이제 비밀도 아니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시선을 견디기 어려웠고 화가 났겠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임선우는 장연아와 회사 창립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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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가게 주인은 감회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기억을 못 하겠어요? 그 여자애가 항상 그 쪽에게 매달려 다니다시피 했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죠.”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고등학생 때, 이 재래시장이 언제 망할지 확인해 보겠다고 나는 매일 장연아와 이곳을 드나들었다. 그때만 해도 장연아의 아버지는 건재했고, 그녀는 아무 걱정 없이 살던 부잣집 아가씨였다. 부잣집 아가씨가 재래시장 같은 곳을 와 볼 기회가 얼마나 있었겠나? 그래서 장연아는 시장에 올 때마다 신나게 돌아다니며 나를 끌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그 덕에 시장 사람들 모두 눈에 띄는 그녀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도 지금처럼 해가 저문 오후였다. 나는 장연아와 함께 시장에 갔다가 우연히 고깃집 사장이 탕수육을 만들고 있는 걸 보았다. 진한 소스 냄새가 시장을 가득 채우며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나와 장연아도 그 냄새에 홀린 듯 발걸음을 멈췄다. 사장은 그런 우리를 보고 웃더니 맛이 한번 해 보고 말했다. 그때 고깃집 사장은 장연아에게 장난스레 말했다. “너 고등학생이라면서 요리도 못 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래?” 장연아는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며 당당하게 말했다. “탕수육 정도야? 정말 간단한 건데, 눈으로 보면 바로 할 수 있어요.” 이 말을 했던 고등학생 장연아는 조금 전에 내가 만났던 장연아와 분명 같은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 수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누군가 그 이야기를 꺼낼 때면 나는 아직도 장연아가 가장 빛나 보였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장연아 때문에 마음이 아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속 깊은 곳에서부터 신물이 올라왔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꾹 삼키며 간신히 마음을 다잡았다. 가게 주인은 내 표정을 눈치채지 못하고 물었다. “그 여자애는 지금 어떻게 지내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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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함께한 8년의 세월, 나는 어떻게 하면 장연아가 괴로운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장연아처럼 자존심 강한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는 이런 무심한 태도로 대하는 것이었다. 내 턱을 잡은 손에 더 힘을 주자 통증은 점점 더 강해졌다. 여자가 이렇게 힘이 셀 수 있나 싶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더는 장연아를 보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내 이런 모습에 장연아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은 듯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그녀가 내뱉은 말은 독사처럼 차갑고도 잔인했다. “변진섭, 잊지 마. 당신이 자란 보육원에 지금까지 후원하는 건 나야. 내가 화가 나서 그 후원을 철회해 버리면, 보육원에 있는 애들은 어떻게 될 것 같아? 돈이 없어진다면, 그 아이들은 다 길바닥에 나앉겠지?” 그녀의 무정한 말에 온몸이 덜덜 떨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의지할 데 하나 없는 고아가 되었다. 장연아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보육원에서 겨우 살아남았다는 표현이 맞았다. 만약 그때 보육원에서 지내지 못했다면, 나는 일곱 살의 어느 비 오는 날, 병으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거기서 살아온 세월이 길었던 만큼, 그곳 상황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 정말로 후원이 끊기면, 거기 있는 아이들의 미래는 암울해질 것이다. 내가 떨고 있는 것을 보자, 장연아는 더욱 독하게 몰아붙였다. “변진섭, 보육원은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면서 왜 나는 네 마음속에 없는 거야? 한때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했는데, 넌 내 사랑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냥 떠나버렸어. 이제 와서 내가 보육원 후원을 철회한다는 말 한마디에 이렇게 겁을 먹는 거야?”탁자 위에 놓인 장연아의 핸드폰이 갑작스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나를 거칠게 밀어냈다. 핸드폰 너머로 노태호의 작고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제가 너무 철없었죠. 하지만 정말 무서웠어요. 혹시 누나가 정말로 저를 버리려고 하는 건 아닌지...]갓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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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장연아는 노태호를 잡아 일으켰다. 노태호의 손에는 깨진 접시 조각에 베인 작은 상처가 있었다. 그는 불안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형... 저를... 저를 이렇게 싫어하실 줄 몰랐어요...” 장연아는 찌푸린 얼굴로 나를 쏘아보며 날카롭게 말했다. “변진섭, 언제까지 이렇게 도련님과 같이 성질을 부릴 거야? 애초에 태호는 이런 일 하는 애가 아니야!” 이런 식의 비난은 이미 익숙했다. 장연아의 마음이 나에게서 떠난 이후, 나는 매일 이런 말을 들어왔다. 내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디서부터 이 혼란을 정리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나는 멍하니 내 손가락 끝 상처에 굳어버린 작은 핏방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치 모든 것을 잃은 사람처럼 허탈한 눈빛으로 장연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우가 아파. 돈이 필요해.” 장연아의 회사에 내가 직접 찾아온 일은 거의 없었다. 물건을 전달하거나 돈을 요청하는 것이 회사 방문의 주목적이었다. 장연아는 노태호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노태호의 작은 상처를 마치 자신의 상처처럼 아파하며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돈? 좋아. 바닥에 있는 이 조각들부터 치워.” 임선우가 나를 도와주려 허리를 숙이려 했지만, 장연아는 그를 단호히 막았다. 주변은 조용해졌다. 모두 나를 바라보며 다음 순간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잠시 숨을 고른 뒤, 몸을 숙여 깨진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 담았다. 날카로운 접시 파편들에 베이고 긁혀 여러 작은 상처가 났지만, 장연아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내가 장연아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가자, 노태호 역시 함께 뒤따라 들어왔다. 나는 아까 했던 말을 반복했다. “지우가 아파. 돈이 필요해. 2억.” 수술비와 항암 치료비, 그리고 후속 치료비까지 포함한 최소한의 금액이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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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아침 8시가 되자마자, 나는 다짜고짜 임선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전화를 받자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변진섭? 무슨 일이야?] 어제 나와 장연아가 회사에서 벌인 싸움은 이미 소문이 쫙 퍼져서 회사 전체가 알고 있었다. 우리의 싸움이 아이 때문에 벌어졌다는 사실도 모두가 알았지만, 그 아이가 어디서 온 아이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나는 임선우에게 부탁했다. “혹시 돈 좀 있어? 돈이 필요해.” 임선우는 어제 일을 떠올렸는지 금방 결론을 내렸다. [입양한 아이에게 문제라도 있는 거야?] ‘다른 사람들도 우리가 아이를 입양했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는데, 정작 연아는 그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어...’ 나는 마음속의 씁쓸함을 누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급성 백혈병이래. 그래서 돈이 필요해. 돈이 안 되면, 나 일자리라도 좀 알아봐 줘.” 장연아와 결혼한 이후로 나는 한 번도 밖에서 일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집에 돌아왔을 때 누군가 집에서 기다리며 반겨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 한마디에, 나는 집에서 8년을 아내만 기다렸다. 이제는 더 이상 아내만을 바라보며 집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이미 사회와 단절된 나로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임선우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 그 상태로 무슨 일을 하겠다고 그래?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말해 봐. 내가 방법을 찾아볼게. 나머지는 그 다음에 생각하자.]2억...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금액이었다. 임선우에게도 이 돈은 몇 년 치 저축을 모아야 가능한 액수였다. 게다가 임선우도 최근 동생 결혼을 돕느라 이미 가진 돈을 대부분 써버린 상태였다. 그는 여기저기 돈을 긁어모아 3000만을 보내줬다. [이 정도가 지금 가진 전부야. 좀 기다려봐. 오늘 퇴근하고 나서 또 알아볼게.]나는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다시 말했다. “내가 일할게. 힘든 건 못 하겠지만, 가벼운 일이라면 할 수 있어.” 지우는 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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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노태호는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이 목걸이, 가격이 수십억이잖아요. 너무 비싸요. 누나, 다음에는 이런 거 저한테 함부로 사주지 마세요.” ‘몇 십억? 우리 지우의 치료비는 고작 2억이면 충분한데, 한 푼도 내주지 않았어.’ ‘애인을 기쁘게 하려고 수십억을 쓰는 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면서.’ 두 가지 일이 머릿속에서 교차하며 나를 짓누르자, 나는 마음이 아파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어려웠다. 내 몸이 휘청거리자, 장연아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노태호를 뿌리치고 내게 손을 뻗어 나를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지금의 장연아가 보이는 그 어떤 행동도 나를 역겹게 만들 뿐이었다. 나는 반걸음 뒤로 물러서며 옆에 있는 테이블을 붙잡아 겨우 몸을 지탱했다. 장연아의 손은 허공에 멈춰 섰고, 표정은 금세 차가워졌다. “변진섭, 지금 뭐 하는 거야?”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내가 뭘 할 수 있겠냐고?’ 비웃는 듯 웃고 싶었지만, 간헐적으로 몰려오는 통증이 너무 견디기 어려웠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술집의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도 누가 봐도 내 모습은 다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며, 몸속에서 몰아치는 고통을 꾹 참고, 빠르게 손을 뻗어 노태호의 목에서 목걸이를 확 낚아챘다. 목걸이가 닿았던 노태호의 목 부분의 살이 벗겨져 상처가 났다. 노태호는 갑작스러운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변진섭!!!” 역시, 사람은 고통을 겪을 때 가장 밑바닥에 있는 본성을 드러낸다. 노태호의 눈빛에는 순식간에 악의가 서렸다. 나는 고개를 약간 갸웃거리며 말했다. “노태호, 네 누님 앞에서는 그렇게 불쌍한 척하는 연기 잘하더니, 왜 지금은 다른 거야?” 노태호는 즉시 입을 닫고 장연아를 쳐다봤다.하지만 장연아의 시선은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고, 노태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나는 장연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말했다. “장연아, 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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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임선우가 나를 억지로 침대 위에 눌러 앉히며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어디 가려고 그래?” “지우 보러 가려고.” “안 가도 돼... 지우...” 임선우의 말이 목구멍에서 걸렸다. 마치 목이 졸린 닭처럼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나는 그의 표정을 보며 서서히 웃음을 멈췄다. 믿기 어려운 불길한 예감이 갑자기 내 마음속에 떠올랐으니 나는 바로 임선우를 밀쳐내고 비틀거리며 지우를 찾아 나섰다. 임선우는 내 등 뒤에서 나를 붙잡고 가벼운 힘으로 내 몸부림을 막아냈다. “이미 짐작했잖아. 왜 그러는 거야? 지우는 네가 이렇게 무너지길 원하지 않을 거야.”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는데, 머릿속이 하얘졌고, 눈물은 소리도 없이 흘러내렸다. 꼭 수도꼭지가 고장 난 것처럼 멈추지 않았다. 나도 그제야 알았다. 남자가 울 때도 이렇게 비참할 수 있다는 것을. 임선우는 나를 다시 침대로 끌고 갔다. 그는 전혀 망설임 없이 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낮은 목소리로 진실을 전했다. 사실 나는 하루 종일 의식을 잃고 있었고, 지우는 어젯밤 세상을 떠났다.‘그때 나는 뭐 하고 있었던 걸까? 아, 술집에서 노태호의 목걸이에 화를 내고 있었지.’ ‘그런 사소한 일 때문에, 나는 지우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지 못했어!!’ ‘만약 그때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지우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볼 수 있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은 나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나는 몸을 웅크리고 침대에 엎드린 채 목 놓아 울음을 터뜨렸다. 임선우는 말없이 곁에 앉아 묵묵히 내 옆을 지켰다. 장연아가 병실에 나타났을 때, 나는 아직 깊은 슬픔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내 초라한 모습이 마치 길 잃은 떠돌이 개로 비쳤다. 그리고 내게 카드를 한 장 던졌다. “카드 안에 6억이 있어. 이걸로 충분히 치료할 수 있어.” 카드는 가볍게 침대 위로 떨어졌다. 너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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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이제 와서 이런 얘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 ‘예전이라면 정말 신경 쓰였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나는 무표정하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이제는 다 부질없어.” 운전석 쪽에서 안전벨트를 푸는 가벼운 소리가 들렸다. 장연아는 몸을 기울여 내 얼굴을 손으로 돌리며 억지로 나를 보게 만들고 이를 악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변진섭, 중요하지 않다면서 표정은 왜 그 모양이야?”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당신이 이렇게 구차해지는 걸 보는 게 좋거든. 내가 질투하는 모습을 살짝만 보이면, 당신은 꼭 다시 돌아오잖아.” 장연아는 갑자기 손을 거칠게 치웠다. 그녀의 날카로운 손톱이 내 얼굴을 긁고 지나가며 상처를 내자 피가 맺혔다. 내 머리도 그녀의 힘으로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 순간, 내 귓가에 다시금 장연아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변진섭, 당장 꺼져.” 나는 망설임 없이 차 문을 열고 내렸다. 밖에서 내리던 이슬비는 억수 같은 폭우로 변해 있었다...그리고 장연아의 차가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애초에 연아도 날 그렇게 사랑한 적이 없었을 거야. 단지 내가 예전에 너무 쉽게 떠난 것이 못내 아쉬웠을 뿐이고.’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졌다. 나는 품에 안고 있던 지우의 소지품 상자를 최대한 비에 맞지 않도록 지켰지만, 결국 다 젖고 말았다. 임선우가 나를 찾았을 때, 나는 나무 아래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임선우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맨 먼저 상자를 열어 지우의 물건을 확인했다. 다른 물건들은 괜찮았지만, 지우의 그림은 망가져 있었다. 지우가 남긴 그림들은 비에 젖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그저 얼룩덜룩한 색깔만 남아 있었다. 나는 담요를 둘러쓰고 임선우의 작은 아파트 창가에 앉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비가 점점 잦아들며, 구름 사이로 햇살이 뚫고 나와 교외의 산을 비추었는데, 마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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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임선우는 ‘죽는다'는 말에 나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는 입을 굳게 다물고, 처음으로 나에게 날카롭게 말했다. “진섭아! 제발 헛소리 좀 그만해. 너 아직 오래 살 수 있어. 벌써 유언 같은 말 하지 말라고.”나는 가볍게 웃었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늘에서는 다시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거세지는 않았지만, 그 빗줄기 때문에 나와 임선우는 잠시 산 위에 머물러야 했다. 살짝 찌푸린 내 표정을 본 스님이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아마도 아이도 아버지를 더 떠나보내기 싫어서, 여기서 하룻밤 더 머물라고 하는 걸지도 모릅니다.”지우가 정말 나를 붙잡고 있는 거라면, 그건 괜찮았다. ...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시 임선우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임선우는 얼마 안 되는 내 짐을 손님방으로 옮기며, 조금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뭐 필요한 물건들이 준비되어 있지 않네. 오늘 일 끝나고 돌아오면 같이 필요한 거 사러 가자.”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의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조용히 정리했다. 저녁에 임선우와 함께 마트에 갔을 때, 그가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며칠만 더 일하고 마무리하면, 회사로 다시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장연아를 떠나서 생각하면, 그 회사의 근무 조건은 꽤 좋은 편이었다. 퇴사는 손해라고 느껴졌지만, 임선우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원래 장연아 옆에 남아 있었던 건, 너희 둘의 로맨스를 지켜보려는 거였거든. 근데 이제 내 커플링도 깨졌잖아. 더 이상 거기 있을 이유가 없어.”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정말 몰랐다. 임선우가 장연아 옆에서 일하게 된 이유가 그런 거였다는 것을. “그것 참 미안하네. 내가 네 커플링까지 깨버렸으니.” “진섭아, 장연아는 너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랑에 자격이 어디 있겠어? 다른 사람 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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