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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연기비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2-23 17:52:50
아침 8시가 되자마자, 나는 다짜고짜 임선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전화를 받자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변진섭? 무슨 일이야?]

어제 나와 장연아가 회사에서 벌인 싸움은 이미 소문이 쫙 퍼져서 회사 전체가 알고 있었다.

우리의 싸움이 아이 때문에 벌어졌다는 사실도 모두가 알았지만, 그 아이가 어디서 온 아이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나는 임선우에게 부탁했다.

“혹시 돈 좀 있어? 돈이 필요해.”

임선우는 어제 일을 떠올렸는지 금방 결론을 내렸다.

[입양한 아이에게 문제라도 있는 거야?]

‘다른 사람들도 우리가 아이를 입양했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는데, 정작 연아는 그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어...’

나는 마음속의 씁쓸함을 누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급성 백혈병이래. 그래서 돈이 필요해. 돈이 안 되면, 나 일자리라도 좀 알아봐 줘.”

장연아와 결혼한 이후로 나는 한 번도 밖에서 일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집에 돌아왔을 때 누군가 집에서 기다리며 반겨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 한마디에, 나는 집에서 8년을 아내만 기다렸다. 이제는 더 이상 아내만을 바라보며 집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사회와 단절된 나로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임선우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 그 상태로 무슨 일을 하겠다고 그래?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말해 봐. 내가 방법을 찾아볼게. 나머지는 그 다음에 생각하자.]

2억...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금액이었다.

임선우에게도 이 돈은 몇 년 치 저축을 모아야 가능한 액수였다.

게다가 임선우도 최근 동생 결혼을 돕느라 이미 가진 돈을 대부분 써버린 상태였다.

그는 여기저기 돈을 긁어모아 3000만을 보내줬다.

[이 정도가 지금 가진 전부야. 좀 기다려봐. 오늘 퇴근하고 나서 또 알아볼게.]

나는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다시 말했다.

“내가 일할게. 힘든 건 못 하겠지만, 가벼운 일이라면 할 수 있어.”

지우는 임선우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아이이니까 나도 계속 이 친구에게만 의지할 수는 없었다.

임선우는 고민 끝에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 친구랑 바를 하나 운영하고 있는데, 밤에는 영업하고 낮에는 청소만 하면 돼. 일은 안 힘들어. 월급은 적어서 한 달에 100만 원 정도인데, 괜찮겠어?]

‘100만 원이면 충분할 것 같아. 평범한 가정의 한 달 식비와 비슷한 금액이라...’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사실 나는 술과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지 좋아하지 않지만, 지우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임선우는 내 상황을 배려해 특별히 배려해 주었다. 일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 임선우와 함께 술집을 운영하는 그의 친구인 윤훈도 먼저 나에게 월급을 가불해주었다.

윤훈은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내가 조금 지쳐 보였는지, 윤훈은 바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말했다.

“저도 선우 형한테 형님 얘기 들었어요. 다른 더 쉬운 일도 해보실래요? 월급은 똑같아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이미 이 두 사람에게 너무 많은 신세를 졌는데, 더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없었다.

...

나는 계좌에 남은 3000만 원과 새로 받은 100만 원을 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3000만은 지우의 치료비로, 100만 원은 병원의 일상 경비로 보탰다.

나는 약간의 돈만 비상금으로 남겨두었다. 어차피 바에서 숙식이 제공되니 나에게는 큰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병원으로 가는 길, 나는 장난감 가게를 지나쳐 가다가 지우가 한참 동안 갖고 싶어 했던 바비 인형을 발견했다.

지우가 한동안 인형을 사달라고 조르곤 했는데, 나는 장연아와의 문제로 잊어버리고 말았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운 좋게 지우가 깨어 있는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작고 여린 아이가 내가 들고 있는 인형을 보자 눈이 반짝이며 말했다.

“꼭 갖고 싶었던 인형이에요!”

나는 웃으며 인형을 아이에게 건네며, 정말 오랜만에 행복을 느꼈다.

지우는 인형을 꼭 안고 침대에 기대며 입술을 내밀었다.

“아빠,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요?”

얼마나 오랜만일까?

아마 거의 1년은 되었을 것이다.

장연아와의 문제로, 나는 지우를 찾을 때마다 급히 물건만 두고 떠나며 아이와 제대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나는 지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약속했다.

“아빠가 앞으로는 자주 보러 올게.”

문밖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원장님은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흘렸다.

면회 시간이 끝나, 나는 지우와 내일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내일’에 대한 약속은 늘 그렇듯 불길한 예감을 남겼다.

술집에서 일을 시작한 지 보름쯤 지났을 때, 마침 술집의 1주년 기념일 행사 준비가 있었다.

기념일 행사 준비를 위해 장식과 다양한 업무가 필요해 직원들은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청소를 끝낸 뒤, 윤훈과 다른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다가가 도움을 제안했다.

주원이라는 어린 직원은 내 제안에 약간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정말 도우실 수 있겠어요?”

문제가 될만한 것은 전혀 없었다. 나는 원래 디자인 관련 전공을 했던 사람이라 장식이나 계산 같은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나는 펜을 들고 몇 번의 스케치로 기존의 재료를 활용한 가게의 1주년 기념 장식 스케치를 그려냈다.

주원도 내 작업을 보고 감탄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와, 형님! 정말 대단하신데요!”

혼란스러웠던 작업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자 일 처리가 훨씬 수월해졌다.

해가 서서히 저물어가는 시간, 주원은 약간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그런데 잠시 기다리실래요? 곧 중요한 고객이 오기로 했는데, 그분을 안내하고 나서 제가 직접 모셔다드릴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지만, 그 ‘중요한 고객’이 장연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장연아는 어김없이 노태호를 데리고 나타났다. 노태호는 그녀의 뒤를 따라오며 자부심 가득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노태호는 아마도 방금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돌아온 듯했으며, 화려한 메이크업은 아직 지우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노태호의 가슴에 걸려 있는 짙은 파란색 보석이었다.

은빛 테두리를 두른 그 보석은, 술집의 화려한 조명 아래서 마치 모든 시선을 빼앗기라도 하려는 듯 눈부시게 반짝였다.

나는 그 보석을 바라보며 천천히 그 이름을 읊조렸다.

“영원한 사랑.”

이 작품은 내가 한때 직접 디자인했던 제품이었다.

장연아에게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제작했기에, ‘영원한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디자인이 완성된 후, 나는 그것을 얼마동안 간직하지도 못하고 곧바로 경매에 내놓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그것이 노태호의 목에 걸려 있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술집 안은 시끄럽고 화려한 조명으로 가득했지만, 노태호는 고개를 돌려 나를 알아봤다.

“진섭 형? 여기서 뭐 하세요?”

그의 말에 장연아도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조명 아래 서 있었고, 나는 술집의 어두운 구석에 서 있었다. 마치 내가 드러내선 안 될 존재처럼 느껴졌다.

주원이 나를 놀란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조용히 두 사람 앞으로 걸어 나갔다.

“우연 맞지?”

나는 장연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 목걸이, 당신이 사준 거야?”

장연아는 잠시 멍해 있다가, 곧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노태호의 옆모습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날 경매장에서 봤는데, 이 이름이 태호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샀지.”

장연아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는 걸 알면서도, 내 위장은 뒤틀리듯 메스꺼워졌다.

‘영원한 사랑? 참, 그 이름이 이젠 한낱 웃음거리네.'

나는 목걸이의 이름과 그 의미를 떠올리며, 지금 그것이 다름 아닌 노태호의 목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정말 도저히 역겨워 참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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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섭아, 이모와 함께 이곳을 떠나고 싶니?” “이모, 됐어요.” 놀라움과 충격에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있었지만, 나는 정수 이모의 제안을 본능적으로 거절하고 말았다. “저, 오래 살지 못해요. 이제 와서 괜히 이모까지 힘들게 할 수 없어요.” 나도 이제 너무 지쳤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싫었다. 최대한 빨리 정신을 차리고 억지로 정수 이모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모, 저 피곤해요. 한숨 잘게요.” 정수 이모는 부드럽게 이불을 덮어주고 조용히 방을 나갔다. 나는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녹음기 속 장연아의 목소리가 저주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불쾌감처럼 나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연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그녀의 입에서 직접 들어서 확인하고 싶었다. 내 마지막 희망의 끈을 확실히 잘라내고 싶었다. 전화는 빠르게 연결됐다. 장연아 쪽은 조용했는데, 아마 회의 중이었을 것이다. 장연아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다정했다. [무슨 일이야?] “보고 싶어서. 병원으로 와.” 장연아 쪽에서 긴 침묵이 흘렀다. 너무 길어서 전화를 끊은게 아닌가 싶었다. [알겠어.]그녀는 낮고 빠르게 대답했다. 병원은 장연아의 회사와 멀지 않았지만, 그녀의 도착은 꽤 늦은 시간이었다. 장연아는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손에는 내가 한때 좋아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들고 나타났다.그녀는 음식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우리 서로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먼저 손에 쥔 녹음기를 장연아 앞에 내밀었고,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 당신에게 줄 깜짝 선물이 있어.” 장연아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침대 옆에 앉아 녹음기를 틀었다. 그러나 녹음기에서 자기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그녀의 얼굴빛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장연아는 녹음기를 끄려 했지만, 나는 그녀의 손을 눌러 막았다. “그냥 끝까지 들

    Last Updated :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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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스 아내의 복수 게임   제40화

    내 옅은 미소는 노태호의 가슴을 찔렀다. 노태호가 뭔가 말하려던 순간, 사무실 안에서 장연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변진섭, 왔으면 들어와.” 나는 노태호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그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노태호, 장연아가 나와 이혼하지 않는 한, 넌 절대 세상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거야.” 내가 괜히 자만하는 것은 아니었다. 장연아는 JP 그룹의 명성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부부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 노태호를 공식적인 자리에 데려가지 않을 것이다. 사무실 안. 장연아는 의자에 앉아 완벽히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빙빙 돌며 말장난하고 싶지 않았다. 노태호와의 쓸데없는 감정 싸움에도 지쳐 있었기에, 장연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생각이 맞다면, 당신은 내가 공식 석상에 파트너로 참석하길 원하는 거겠죠.” 장연아는 더 숨길 생각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방금 들었다면 알겠지만, 상대방은 쓸데없는 사람이 나타나는 걸 좋아하지 않아.” 장연아의 솔직한 태도에 나는 약간 당황했다. “좋아, 동의할게. 하지만 조건이 있어.” 장연아는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나를 바라보았다. “조건? 변진섭, 이제 날 상대로 조건을 걸겠다는 거야?” 우리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지만, 그녀의 시선이 차가워지며 나를 꿰뚫어 볼 듯 쏘아보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이미 이혼 준비 중이잖아. 당신이 계속 동의하지 않고 질질 끌지 않았다면, 이혼 서류는 벌써 효력을 발생했을 거고, 우리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타인이 되었을 거야.” “당신은 내가 조건을 내세울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나?” 나는 장연아가 지금 얼마나 나를 증오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런 건 나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장연아는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되물었다. “내가 알기로 변진섭, 당신 지금

  • 보스 아내의 복수 게임   제39화

    노태호가 장연아의 사무실에 있다는 사실보다, 내가 더 궁금한 건 이 사람이 도대체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지였다. 그리고 노태호가 장연아와 함께 가고 싶어 하는 그곳이, 장연아가 나를 불러낸 이유와 관련이 있는지도 말이다. “누나, 제발 저도 데려가 주세요! 이번 ‘사업 협력’은 저도 꼭 도움이 될 거예요!” ‘협력’이라는 단어가 노태호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나는 약간 의문이 들었다. ‘설마 노태호가 참석하려는 자리가 정말 JP 그룹의 사업과 관련이 있는 걸까?’ 이제야 왜 장연아가 갑자기 나에게 전화를 걸었는지 이해가 됐다. 나는 JP 그룹에서 근무한 적은 없지만, 중요한 자리에서는 여전히 장연아가 여전히 나를 파트너로 데리고 나가곤 했다. 그리고 지금, 노태호가 그 자리에 함께하려는 속셈은 뻔히 드러나 보였다. 나도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노태호에게 늘 관대한 장연아가 어린 애인의 요구를 들어줄까?’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나는 장연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태호야, 이번 연회는 JP 그룹의 사업에 중대한 자리야. 내 말 들어. 다음번에 데려갈게.” 장연아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애정 어린 어조는 나에게 숨길 수 없었다. 나와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명령조나 냉소적인 말투였던 그녀였기에, 이런 부드러운 목소리는 나도 정말 오랜만에 듣는 것이었다.“왜요?” “이런 자리에는 반드시 동반할 파트너가 필요할 텐데, 누나 주변에 적합한 사람이 없잖아요. 그런데 왜 저는 안 되는 거죠?” 노태호의 목소리는 점점 격앙되었고, 아마도 장연아가 선택한 파트너가 누구인지 짐작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장연아 앞에서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노태호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아지고 어딘가 억울해하는 것처럼 들렸다. “누나, 설마 이번에도 연회에 진섭 형님을 데려가려고 하시는 거예요?” 장연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노태호의 목소리가 떨리며 이어졌다. “그

  • 보스 아내의 복수 게임   제38화

    전화가 너무 오래 울려 자동으로 끊기는 걸 보고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마치 나를 쫓아내려는 것처럼 요란한 초인종 같은 전화벨이 또다시 울려댔다. 나는 체념하고 결국 전화를 받았다. 장연아의 어머니는 장연아만큼이나 강압적인 분이었다.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몇십 번이고 계속 전화를 걸 것이고, 심지어 여기까지 찾아올지도 모른다.“장모님...” 그러나 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핸드폰 너머에서 어머니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모님이라고 부르지도 마라! 예전에는 내 앞에서 당당하더니, 지금은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는 꼴이라니. 내가 널 잘못 본 건 아니었네. 자네 여전히 어디 하나 쓸데없는 사람이야!]‘나에게 시비 걸려고 전화를 건 걸까?’ 어머니의 비난은 그동안 참아온 분노와 함께 나를 폭발하게 했다. “제가 그렇게 쓸모없다고 생각하신다면서, 전화는 왜 하셨죠?” 내가 단호한 어조로 되받아치자, 어머니는 순간 말을 잃은 듯 잠시 침묵했고, 한참 지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난 자네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어. 하지만 자네보다는 노태호가 더 우리 장씨 집안을 망신시킬 놈이야! 그러니 자네가 아직 살아 있다면, 어떻게든 연아가 노태호와 완전히 관계를 끊고 정리하도록 하게.]어머니의 최후통첩을 듣고 나는 피식 웃었다. “연아가 노태호와의 관계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이유는, 아마 저보다 장모님께서 더 잘 아실 겁니다.” “그리고, 저와 연아는 곧 장모님 뜻대로 이혼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 저 같은 쓸데없는 사람에게 협박하느니, 차라리 연아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 쓸데없다는 사람인 나는, 사실 ‘장모님’이 상류층 귀부인들 사이에서 체면을 잃지 않도록 해준 사람이기도 했다. 명문가 사모님들이 참석하는 티타임 모임에서, 내 ‘장모님’은 항상 가장 품격 있고 흠잡을 데 없는 모습으로 주목받았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입는 모든 옷과 착용하는 모든 장신구는 내가 직접

  • 보스 아내의 복수 게임   제37화

    장연아가 더는 내 차가운 비아냥을 들으러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던 그때, 그녀는 다시 한번 나를 찾아왔다.초인종 소리가 한 번, 두 번, 끊임없이 울렸다.문밖에 서 있는 장연아의 모습이 도어 뷰어를 통해 보였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을 열지 않으면, 그녀도 지쳐서 돌아가겠거니 했다.하지만 예상 밖으로 장연아는 벽에 기대어 문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나는 방 안을 이리저리 걷다가 나가서 그녀를 쫓아내야 하나 고민했다. 이 여자를 더는 보고 싶지 않았지만, 문 앞에 앉아 있는 그녀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채자 나는 밖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췄다.‘오늘 떠날 때 노태호의 전화를 받았던 게 틀림없는데, 갑자기 이렇게 찾아온 게 혹시 노태호와 싸워서? 그렇다 해도,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나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장연아와 노태호의 다툼 따위는 상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내 마음은 문밖에서 밤새도록 앉아 있을 그녀를 그냥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결국 문을 열고, 장연아를 허리까지 감싸 안아 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소파에 눕혔다. 술 냄새가 진동하는 여자를 보며 수건을 가져와 닦아주려던 찰나, 그녀가 내 소매를 잡아채며 나를 소파로 넘어뜨렸다. 장연아는 곧바로 내 위로 올라탔고, 작고 가냘픈 몸이 내 가슴에 파묻혔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방 안에는 우리 둘뿐이었기에 여자의 속삭임이 명확히 들렸다. “진섭아, 가지 마.” 그 한마디에 내 마음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우리가 처음 만난 순간부터 결혼하고 지금까지 함께한 시간이 벌써 10년이다. 나는 장연아가 단 한 번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과거 우리 사이는 깊고 달콤했던 연인이었다. “장연아, 나를 사랑하긴 했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는 내 말에 장연아는 희미하게 눈을 뜨려 했지만, 쉽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물었다. “네 마음속

  • 보스 아내의 복수 게임   제36화

    ‘지난번? 서혜가 말한 도움이라면, 나와 장연아의 이혼을 돕겠다는 걸까?’ “고마워요. 하지만 도움은 필요 없어요.” 내 말에 서혜는 눈살을 찌푸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설마 아직도 연아에게 마음이 남아 있는 거예요?” “진짜로 연아와 이혼하려는 건가, 아니면 단지 연아의 관심을 더 끌고 싶어서?” 서혜의 날카로운 태도는 예전 그녀가 장연아와 지인들을 동반하여 나를 조롱하던 때와 다를 바 없었다. “서혜 씨, 우리 그렇게 가까운 사이 아니에요. 그리고 이건 나와 연아 둘의 문제예요.” 서혜가 내 어깨에 손을 뻗으려다, 닿기 직전에 멈췄다. “하지만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이 있어요. 연아는 당신을 쉽게 놔주지 않을 거예요. 이번 보육원 사건 바로 연아가 당신에게 보내는 경고라고요.” 그녀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며 내 어깨를 양손으로 꽉 잡았다. “변진섭 씨, 내가 도와줄게요. 당신이 장연아에게서 벗어나도록 내가 도울게요!” “변진섭 씨가 투병 중인 것도 알아요. 그런데도 연아는 여전히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도 당신은... 대체 뭣 때문에 미련이 남는 거죠?” 서혜의 말은 장연아를 잘 아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그럴 만도 했지만, 서혜의 태도는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예전에 연아가 자기 친구들 앞에서 나를 모욕할수록 서혜는 내가 그런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는 태도였는데, 이제는 직접 나서서 나를 돕겠다고? 대체 무슨 이유로?’ 나는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장연아와 관련된 모든 사람 때문에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연아의 의도가 무엇이든, 이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을 겁니다.” “이건 나와 연아의 일이고, 누구에게 털어놓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어요.” 내 말을 들은 서혜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맞아요, 두 사람은 아직 부부니까요. 명목상 부부이긴 하지만...” 서혜는 더 이상 머물 생각이 없는 듯, 이 말을 남기고 곧장 떠날 준비를 했다.

  • 보스 아내의 복수 게임   제35화

    ‘돈 걱정?’ 서현철 대표가 의뢰한 보석 디자인 작업을 맡은 뒤 재정상태에 여유가 생기자, 나는 더 이상 일에 집착하지 않았다. “무슨 일 있는 거야?” 임선우의 어색한 태도와 말투는 평소 그답지 않아서 나는 이 친구가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너 아직 모르고 있었구나?” 임선우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뭘 말이야?” 임선우가 뭔가 숨기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왜 내가 당연히 알아야 할 것처럼 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핸드폰을 꺼내 내게 보여주었는데, 화면에 뉴스가 하나 떠 있었다. ‘JP그룹, 성남 보육원 후원 중단 논란’이라는 제목이었다. 댓글란은 JP그룹이 ‘은혜를 모른다’며 비난하는 글로 가득했다. 반면, 일부는 JP그룹이 경영난에 처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 추측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JP그룹이 위기에 처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임선우는 내 얼굴이 굳어지자 곧장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장연아라면 분명히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낼 거야.”‘해결? 장연아는 절대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야. 이렇게 한 데에는 분명 내 문제도 관련이 있을 텐데.’ 나는 아무 일도 아닌 척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이런 작은 일에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곧이어 나는 덧붙였다. “그런데 나, 다른 작업실에 들어갈지도 몰라. 혹시 너도 관심 있으면 같이 할래?” 임선우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네가 다른 작업실에 들어간다고? 난 네가 혼자서 뭔가 해낼 줄 알았는데!”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혼자서 잘해 나갈 수 있다면야 나도 그러고 싶지.” 하지만 나는 내 이름으로는 큰 작업을 따내기 어렵다는 현실을 알고 있었다. “그 얘긴 그만하고, 밥 먹으러 가자!” 임선우는 나를 질질 끌고 나가 근처 식당에서 식사한 후 자기 집으로 갔다. 집에 돌아왔

  • 보스 아내의 복수 게임   제34화

    하지만, 나는 노태호를 집에서 자연인으로 수없이 마주쳤기 때문에, 그리고 질투심에 그 잘생긴 얼굴과 완벽한 체형의 톱스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노태호도 이지석 선생님을 알고 있는 듯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눈 후 이지석 선생님은 노태호를 주최 측에서 마련한 사무실로 데려갔다. 나는 노태호가 이지석 선생님을 빼앗아 갈까 봐 걱정되지는 않았지만, 그 둘 사이가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때 나는 고민에 빠졌다. ‘이지석 선생님의 작업실에 정말 합류해야 할까?’ ‘만약 이지석 선생님과 노태호가 특별한 관계라면, 선생님과 함께 일하는 동안 노태호를 자주 마주치게 될 텐데...’ 내 옆에 있던 몇몇 젊은 여성들은 이지석 선생님과 노태호가 있는 방향을 주시하며 소곤거리고 있었다. “우리 오빠 진짜 대단해! 이지석 선생님까지 알다니!” 짧은 머리의 한 여자애가 흥분된 얼굴로 말했다. “이지석 선생님이 누구야? 그렇게 유명해?” 이 여자애 옆에 있던 친구는 이지석 선생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아마 노태호 때문에 이곳에 온 것 같았다. “당연히 알지! 노태호가 새 드라마 준비 때문에 이지석 선생님께 디자인을 배우러 왔대. 다음 작품 진짜 기대된다!” ‘작품? 노태호가 다음에 촬영할 작품이 디자이너와 관련된 건가?’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노태호의 일을 신경 쓰고 있다는 게 우스웠다. 떠날 채비를 하려던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진섭이, 너 맞지?!” 급히 다가오는 발소리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그곳에는 이지석 선생님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석 선생님이 나를 알아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진섭아, 너 정말 많이 말랐구나!” 이지석 선생님은 눈살을 찌푸리며 지금의 내 상태를 몹시 안타까워했다. 나는 그 곁에 있던 노태호를 보고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선생님,

  • 보스 아내의 복수 게임   제33화

    “당신... 무슨 일인데 지금 말 못 한다는 거야?” 장연아는 내 팔을 꽉 붙잡으며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압박했다. 그녀는 내 귀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아직 이혼도 안 했는데 벌써 내 제일 친한 친구랑 엮이려는 거야?” 나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장연아를 응시했다. 이 여자라면 나를 잘 알 텐데, 내가 서혜와 뭔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을 리 없다는 것을. 하지만 장연아는 여전히 나도 그녀처럼 한 관계가 끝나기도 전에 다른 감정에 빠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농담도 좀 심하네. 우리 이혼 서류만 안 썼을 뿐이지, 이미 관계는 끝난 거나 다름없잖아. 나는 장 대표님이 우리 ‘각자 알아서 하자’고 묵인한 줄 알았는데?” 내 입가에 떠오른 냉소가 장연아의 눈에 그대로 들어갔다. 그녀는 내 손목을 더욱 강하게 쥐었다. 나는 고통스러워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여러 차례 치료를 받은 내 몸은 뼈에 살가죽만 얹혀 있을 정도로 약해졌기에, 조금만 힘을 줘도 엄청난 고통이 따랐다. “뭐든 해도 좋아.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건드리지 마. 내 친구들은 널 몰라서 속을 수도 있거든.” 장연아는 나를 가장 아프게 할 말만 골라서 던졌고, 그녀의 말은 늘 가차 없었다. 이때, 서혜가 와인잔을 들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서둘러 장연아의 손을 밀어냈다. 이미 우리 사이가 이혼 절차를 밟고 있다는 걸 다들 아는데, 굳이 남들 앞에서 거짓으로 애정을 과시할 이유는 없으니까. 장연아는 갑자기 내 팔을 끌어당기더니 서혜와 건배하며 말했다. “우리 남편 돌봐줘서 고마워.” 서혜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마침 누군가가 장연아를 불렀고, 그녀가 대화를 나누는 틈을 타 나는 재빨리 방에서 빠져나왔다. 서혜가 뒤따라온 것은 그 이후였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날 장연아는 서혜의 태도에서 서혜

  • 보스 아내의 복수 게임   제32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사람은 내가 장연아와 결혼한 이유가 그녀의 신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 사람들의 오해를 굳이 풀려 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내가 내 힘만으로도 풍족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 리 없었다. ...지난 한 주 동안 나는 정말 충실한 시간을 보냈다. 장연아가 없는 삶에 점점 익숙해졌고, 더 이상 그녀로 인한 불안감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놀랍게도 장연아가 꽤 오랫동안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연아는 분명 나를 붙잡으려 애썼지만, 과연 그녀는 내게 진심이었을까? 서현철 대표와의 거래가 이미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서혜는 오히려 종종 나에게 만나자고 연락해 왔다. 나는 서혜의 제안을 한 번도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나는 장연아와 관련된 사람들과 어떤 식으로든 얽히고 싶지 않았고, 그 사람들 중에는 서혜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서혜에게 어떻게 내 뜻을 전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그녀로부터 한 장의 초대장을 받았다. 그 초대장은 곧 B 시에서 열릴 디자인 전시회의 초대장이었다. 그 전시회에는 내가 좋아하는 외국 디자이너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초대장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서혜가 나와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닌데, 내가 이 전시회에 관심이 있을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하지만 나는 결국 초대장을 돌려주기로 결심했고, 서혜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다. 전화를 받은 서혜의 주변은 무척 소란스러웠다. “서혜 씨, 혹시 지금 시간 좀 있어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 [시간은 있어요. 그런데 지금 움직이기가 어려워요. 조금 있다가 내가 주소를 보낼게요. 급하면 그리로 와요.] 나는 더 이상 이 일을 미루고 싶지 않았다. 서혜가 초대장을 보낸 진짜 이유가 무엇이든, 그녀와 어떤 관계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나는 서혜가 보낸 주소로 찾아가 보니, 그곳은 한 조용한 고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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