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그 사진첩 안에 든 지우의 사진들을 발견하자 나는 화가 나서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주인은 바로 노태호였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돌아서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 있던 물건들 다 어디 갔어?”

장연아는 평소 이런 것들을 정리하는 걸 싫어했기 때문에 안방 정리는 분명 노태호가 했을 것이다.

노태호는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고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이렇게 악랄하게 웃지 않았을 것이다.

“그 안에 죽은 아이의 물건이 섞여 있어서 그런지 요새 영 재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전부 내다버렸어. 지금이라도 가서 찾아보면, 쓰레기 더미 속에서는 찾을 수 있겠지.”

지우의 마지막 남은 사진들이 쓰레기 더미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손끝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까지 악랄해질 수 있지? 작은 아이의 유품조차 용납하지 못하다니!!’

노태호는 여전히 비웃고 있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어 그의 코를 향해 강하게 한 방 날렸다.

비록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지만, 그런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노태호는 비명을 지르며 코를 감싸고 나를 노려보았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려 하얀 카펫 위를 물들였다.

나는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노태호를 바라보고 말했다.

“저기...”

그리고 안방 한구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덧붙였다.

“저기에 카메라가 있는 거 알아? 네가 날 때리면, 장연아가 회사에서 다 보게 될 텐데.”

노태호는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무겁게 숨을 내쉬며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여유롭게 방을 빠져나갔다.

방문을 나서는 순간, 벽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태호의 그런 행동에 대해 나도 이해가 되었다. 왜냐하면 노태호 같은 사람은 어디를 가든 주목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이런 굴욕을 당했으니, 분노를 표출하는 것도 당연했다.

나는 경비를 찾아가 이 단지의 쓰레기가 어디로 옮겨지는지 물었다.

경비원은 약간 당황했지만 친절하게 대답했다.

“이 단지의 모든 쓰레기는 도시 내 가장 큰 쓰레기 처리장으로 보내집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택시를 잡아 목적지로 향했다.

처음에 내가 쓰레기를 뒤지겠다고 했을 때, 쓰레기 처리장의 직원들은 몹시 놀랐다.

그러나 내가 딸의 사진을 찾기 위해서라고 하자, 그분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해 주었다.

거기 있던 분들은 대부분 부모로서 내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고, 몇몇은 사진을 찾는 것에 동참해 주었다.

나는 그분들에게 사진 앨범의 특징을 상세히 설명하고 쓰레기 산으로 뛰어들었다.

쓰레기 더미는 끔찍한 악취를 풍겼다.

그 구역질이 나는 냄새 때문에 속이 거북하고 위에 경련이 일어나 더욱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그런 데에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쓰레기 처리장 직원들은 이 쓰레기들이 내일이면 분류 작업 후 매립되거나 소각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진 찾기에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머리 위에서 작열하는 한낮의 태양은 마치 내 무모한 시도를 조롱하는 것만 같았다.

너무 오래 허리를 숙이고 뒤지다 보니 허리를 제대로 펴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런데도 쓰레기 산의 절반도 뒤지지 못했다.

누군가 내게 물 한 잔을 건네며 쉬라고 했지만, 나는 쉴 수 없었다. 만약 잠시라도 쉰다면 그 사진앨범을 영영 찾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위암 투병으로 텅 비어버린 내 몸은 이 뜨거운 햇살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의식을 잃기 직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란 인간은 정말 한심하구나. 지우의 물건 하나도 지키지 못하다니...’

눈을 떴을 때, 눈부신 하얀 천장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내가 병원에 있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지만, 지우의 우표 앨범은 아직 찾지 못했다.

벌떡 일어나 앉으려다가, 침대 끝에 엎드려 있는 장연아를 보고 멈췄다. 그녀의 손 옆에는 바로 내가 찾던 우표 앨범이 놓여 있었다.

‘앨범이 왜 여기 있지?!’

나는 급히 앨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한번 품에 안아본 뒤 펼쳐보기 시작했다.

장연아가 왜 여기에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내 움직임에 잠에서 깬 장연아는, 내가 앨범을 소중히 안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그 앨범이 그렇게 중요해서 네 몸까지 망쳐가며 찾아야 했어?”

나는 그녀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아서 아무 대꾸 없이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다행히도 지우의 사진은 비닐에 잘 보관되어 있어, 아무런 손상도 없었다.

사진 속 지우의 밝게 웃는 얼굴을 보며,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정말 다행이네. 앨범을 되찾았어.’

그러나 갑자기 장연아가 내 품 안의 앨범을 거칠게 빼앗았다.

나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고, 장연아의 매서운 눈빛과 마주쳤다.

“변진섭,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

장연아는 차갑게 말했다.

“당신 같은 이기적이고 무정한 사람은... 내가 왜 이걸 지키려 하는지 절대 이해 못 해.”

장연아는 헛웃음을 지으며, 나를 내려다보는 눈빛으로 말했다.

“당신도 참 대단하다. 어떻게 매번 날 화나게 할 방법을 그렇게 잘 찾아내는지.”

“과찬이야.”

나는 무심히 대답하며 앨범을 다시 빼앗으려고 했지만, 장연아는 앨범을 뒤로 숨기며 내 손을 피했다.

그녀는 손에 든 앨범을 보고는 민망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 온 걸 그렇게 끌어안고 있으면 더럽지 않아?”

‘더럽다’라는 말이 내 신경을 건드렸다. 나는 벌떡 일어나 몸을 앞으로 내밀어 앨범을 다시 빼앗아 품에 안고 말했다.

“더럽긴! 이건 절대 더럽지 않아! 당신이야말로 가장 더러워서 상종하기 힘든 인간이야!”

병실 안에는 갑작스러운 ‘짝’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장연아에게 뺨을 맞아 내 얼굴이 한쪽으로 돌아갔다. 얼굴에는 화끈거리는 통증이 느껴지면서 입가에서는 피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장연아를 바라봤다.

그녀는 자신도 놀란 듯, 나를 때리고 여전히 들고 있던 손을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병실 안은 무서울 정도로 조용해졌다.

그때, 밖에서 소리를 듣고 들어온 간호사가 내 얼굴의 붉은 손자국을 보고는 바로 화를 냈다.

“환자 보호자, 대체 뭐 하시는 거예요?! 어떻게 환자를 때릴 수가 있어요? 당장 나가세요!”

간호사는 장연아를 병실 밖으로 밀어내고, 내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돌아왔다.

내가 품에 안고 있는 우표 앨범을 보더니, 간호사는 잠시 멈칫했다가 조용히 말했다.

“이건 깨끗이 닦아야겠어요.”

나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장연아와 결혼한 이후 그녀가 나에게 손찌검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일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졌을 때, 임선우가 병실에 도착했을 무렵 인터넷에는 부부싸움 소식으로 난리가 나 있었다.

[장연아 대표, 남편과 병실에서 몸싸움!]

장연아가 유명 인사라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화제가 되었고, 이번에는 내가 노태호를 때린 일까지 엮어서 언론에 대대적으로 퍼졌다.

온라인은 예상대로 장연아의 편을 들었다.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듣건 간에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기 때문에 장연아가 무슨 짓을 해도 사람들은 항상 그녀를 변호할 이유를 찾아냈다.

[장연아 대표님, 정말 잘했네요. 이런 남편은 맞아야 제대로 정신 차려요!]

[완전히 공감합니다. 노태호를 이렇게 때린 사람에게 참교육이네요!]

[차라리 길거리에 나가서 차에 치여 죽던가! 그래야 노태호 님 자리가 생기지 않겠어요?]

[우리 장연아 대표님과 노태호 씨 커플 응원해요!]

임선우는 핸드폰을 들고 댓글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결국 그도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이 매섭게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릴 때마다 ‘쾅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만큼 그의 분노는 화면을 넘어서 공기 중에 진동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