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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Author: 연기비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2-23 17:52:50
‘이제 와서 이런 얘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

‘예전이라면 정말 신경 쓰였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나는 무표정하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이제는 다 부질없어.”

운전석 쪽에서 안전벨트를 푸는 가벼운 소리가 들렸다.

장연아는 몸을 기울여 내 얼굴을 손으로 돌리며 억지로 나를 보게 만들고 이를 악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변진섭, 중요하지 않다면서 표정은 왜 그 모양이야?”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당신이 이렇게 구차해지는 걸 보는 게 좋거든. 내가 질투하는 모습을 살짝만 보이면, 당신은 꼭 다시 돌아오잖아.”

장연아는 갑자기 손을 거칠게 치웠다. 그녀의 날카로운 손톱이 내 얼굴을 긁고 지나가며 상처를 내자 피가 맺혔다.

내 머리도 그녀의 힘으로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 순간, 내 귓가에 다시금 장연아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변진섭, 당장 꺼져.”

나는 망설임 없이 차 문을 열고 내렸다. 밖에서 내리던 이슬비는 억수 같은 폭우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장연아의 차가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애초에 연아도 날 그렇게 사랑한 적이 없었을 거야. 단지 내가 예전에 너무 쉽게 떠난 것이 못내 아쉬웠을 뿐이고.’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졌다.

나는 품에 안고 있던 지우의 소지품 상자를 최대한 비에 맞지 않도록 지켰지만, 결국 다 젖고 말았다.

임선우가 나를 찾았을 때, 나는 나무 아래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임선우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맨 먼저 상자를 열어 지우의 물건을 확인했다.

다른 물건들은 괜찮았지만, 지우의 그림은 망가져 있었다.

지우가 남긴 그림들은 비에 젖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그저 얼룩덜룩한 색깔만 남아 있었다.

나는 담요를 둘러쓰고 임선우의 작은 아파트 창가에 앉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비가 점점 잦아들며, 구름 사이로 햇살이 뚫고 나와 교외의 산을 비추었는데, 마치 신의 기적처럼.

창문 너머로 산도 보였다. 그 산에는 작은 사찰이 있었는데, 신통하기로 꽤 유명한 절이었다.

학창 시절, 나는 매 시험 때마다 그곳에서 점괘를 보고 복을 빌곤 했다.

임선우는 내 시선을 따라 보더니 내 생각을 짐작했는지 물었다.

“절에 가보고 싶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지우의 유골도 함께 가져가고 싶다고 말했다.

지우도 자신을 산속에 뿌려달라고 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것은 임선우가 나를 따라올 거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이미 장연아와 노태호와 엮이며 회사에 출근하지 않을 핑계를 찾았고, 이번에는 휴가를 받았다며 나를 따라왔다.

그러나 나는 이 친구가 사실 나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이 사찰의 신통함은 여전했다.

내가 세 번째로 좋지 않은 괘를 뽑아 다시 넣었을 때, 점괘 풀기를 거부하던 스님이 혀를 차며 말했다.

“야, 고를 수 있는 좋은 점괘 중 하나를 고르세요. 그럼 제가 풀어드리겠습니다.”

스님은 임선우에게도 물었다.

“점괘를 보시겠어요?”

임선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고, 이제야 지우를 잃은 슬픔이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았다.

스님은 내가 이미 최악의 운명을 경험했으니, 앞으로는 서서히 나아질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스님의 말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는데, 그보다 더 나쁜 일이 있을까?

그러나 현실은 그것보다 더 나쁜 일이 있을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나는 절을 나와 지우의 유골을 품에 안고 임선우와 함께 뒷산의 나무다리로 향했다.

깊은 산허리 위에 놓여 있는 나무다리는 백 년이라는 긴 세월을 버텨온 견고한 다리였다.

절은 이 다리의 견고함을 이용해 다리 위에 동심 자물쇠를 매다는 이벤트를 운영하고 있었다.

자물쇠 아래에는 작은 나무통이 매달려 있어, 바람이 불 때 나무통들이 부딪쳐 맑은소리를 냈다.

지우의 유골을 이곳에서 뿌리면, 이 아이도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고, 매일 이 소리를 들으며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생전에 지우는 가진 것이 거의 없었고, 죽어서 남긴 것 역시 고작 한 줌의 재가 전부였다.

예전에 뼛가루와 유골함이 거의 1kg 정도 된다고 들었지만, 내가 안고 있는 지우의 유골함은 1kg조차 되지 않는 듯했다.

지우의 유골을 뿌리고 돌아가려는 순간, 나는 갑자기 장연아와 노태호가 다리 위에서 동심 자물쇠를 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더 이상 이 두 사람과 엮이고 싶지 않아 발길을 돌렸지만, 노태호는 나를 그냥 보내지 않았다.

노태호는 일부러 내게 들릴 정도로 말했다.

“누나, 이건 어린애가 쓴 동심 자물쇠 같네요. 여기엔 연아 누나와 진섭 형 이름이 적혀 있어요.”

발길을 돌리던 내 걸음이 멈추며 기억 속에서 감춰졌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맞네, 그 자물쇠는 지우가 쓴 것이었어.’

그 동심 자물쇠는 내가 장연아와 함께 지우를 입양한 지 2년째 되던 해에 채운 것이었다.

지우는 우리가 함께 해온 곳들을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장연아와 함께 지우를 데리고 이 절에 들른 적이 있었다.

지우는 다리 위의 동심 자물쇠에 담긴 의미를 알게 되자 손뼉을 치며 웃었다.

“저도 엄마랑 아빠가 영원히 함께하면 좋겠어요!”

갑자기 들려온 자물쇠 여는 소리가 나를 현재로 돌아오게 했다.

고개를 들어 보니 노태호의 손에 작은 머리핀과 자물쇠가 들려 있었다.

그는 지우가 쓴 동심 자물쇠를 풀고 있었다.

노태호는 말했다.

“아이들이 쓴 건 별 의미 없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는 자물쇠를 다리 아래로 던지려고 했지만, 내 몸은 이미 내 마음보다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나는 소리쳤다.

“그만둬!!!”

노태호는 내 목소리에 놀라 나를 쳐다봤다.

그는 내가 여기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나는 손을 뻗으며 그의 손에 있는 동심 자물쇠를 달라고 했다.

그 순간, 장연아가 갑자기 노태호의 손에서 자물쇠를 낚아채더니 망설임 없이 다리 아래로 던져버렸다.

지우가 적어놓은 작은 쪽지는 자물쇠 아래에 매달린 나무통 안에 들어 있었다.

하지만 자물쇠가 오랜 시간 바람과 햇빛에 노출된 탓에 나무통을 매달고 있던 끈은 이미 느슨해진 상태였다.

자물쇠는 떨어졌지만, 나무통은 여전히 다리에 남아 있었다.

나는 두세 걸음을 뛰어 나무통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어 그 안의 쪽지를 소중히 품에 안았다.

다행히도 지우가 쓴 작은 쪽지는 떨어지지 않았다.

장연아는 내 행동을 보고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설마 이 여자... 내가 자물쇠를 가지러 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나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장연아와 노태호를 뒤로 하고 임선우와 함께 절로 돌아갔다.

내 몸 상태는 점점 나빠지고 있어서 고작 몇 걸음을 걸었을 뿐인데도 숨이 턱턱 막혀왔다.

점을 봐주던 스님은 내가 너무 지쳐 보였는지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밀며 말했다.

“이 유골함은 그냥 여기에 두고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제가 두 분 대신 이 어린아이를 위해 위패를 마련해 드릴 테니, 조금이라도 마음의 위안을 얻으셨길 바랍니다.”

나는 잠시 생각했지만, 결국 고개를 저었다.

장연아와 노태호도 이곳에 올 것이니 나는 지우가 죽어서도 이 두 사람과 엮이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내가 다시 창밖을 바라보며, 오가는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이 담긴 얼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무심히 임선우를 불렀다.

“선우야, 내가 죽으면 나도 지우처럼 내 유골을 이곳에 뿌려줘.”

‘지우와 약속했었는데... 앞으로 지우를 잘 지켜주겠다고... 하지만 결국 나는 우리 지우의 마지막 순간조차 지켜주지 못했어...’

‘아이가 살아 있을 때 지키지 못한 그 약속, 죽어서라도 반드시 지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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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선우는 조심스럽게 내 안색을 살폈다. 내가 정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자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면 탕수육 어때? 며칠 전에 먹고 싶다고 했잖아.” 탕수육은 달고 느끼해서 내 위와는 좀 맞지 않고, 한 끼를 먹고 나니 위경련이 다시 시작되었다. 칼로 도려내는 듯한 고통이 위장에서 퍼져 나갔고, 나에게 아무런 대비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내 이마에는 가느다란 땀방울이 금세 맺히더니 이내 굵은 땀방울로 흘러내렸다. 이번 통증은 너무 강렬하고 갑작스러워, 나는 소리조차 지르지 못한 채 푹 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내가 쓰러지는 소리를 듣고 임선우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달려왔다. 나는 또 병원으로 실려 갔고, 이번에는 밤새 응급실에서 처치를 받았다. 다음 날 아침, 내가 깨어났을 때, 의사가 내 침대 옆에서 등을 돌린 채 임선우와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깨어난 소리에 의사가 고개를 돌리더니, 입가에 냉소를 띠며 비꼬듯 말했다.“아니, 이게 누구신가요? 며칠 전 몰래 퇴원하셨던 그 멋진 환자분 아니십니까? 이번에는 또 무슨 일로 돌아오신 겁니까?”나는 몇 번이나 병원에 실려 왔는데도 매번 같은 의사와 마주치는 게 신기했다. 임선우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우리 둘은 병실에 갇힌 채 꼼짝없이 아침 내내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누군가 의사를 부르러 오자 비로소 그 의사는 자리를 떠났다. 의사를 보내고 나서야 임선우는 숨을 돌리며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그러셨는데, 네 병변은 절제가 가능한 상태래. 절제하면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고 했어.” ‘수술이라니, 아플 것 같은데...’ 나는 고개를 저으며 별로 치료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네 말대로 가능성일 뿐이잖아. 선우야, 난... 죽기 전에 괜히 고생하고 싶지는 않아.” 임선우는 잠시 침묵하다가 핸드폰을 꺼내 동문회 일정을 보여주었다. “봐봐, 올해 동문회 일정이 연기됐잖아. 내년이 됐는데, 그때까진 버텨야 하지

    Last Updated :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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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스 아내의 복수 게임   제40화

    내 옅은 미소는 노태호의 가슴을 찔렀다. 노태호가 뭔가 말하려던 순간, 사무실 안에서 장연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변진섭, 왔으면 들어와.” 나는 노태호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그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노태호, 장연아가 나와 이혼하지 않는 한, 넌 절대 세상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거야.” 내가 괜히 자만하는 것은 아니었다. 장연아는 JP 그룹의 명성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부부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 노태호를 공식적인 자리에 데려가지 않을 것이다. 사무실 안. 장연아는 의자에 앉아 완벽히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빙빙 돌며 말장난하고 싶지 않았다. 노태호와의 쓸데없는 감정 싸움에도 지쳐 있었기에, 장연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생각이 맞다면, 당신은 내가 공식 석상에 파트너로 참석하길 원하는 거겠죠.” 장연아는 더 숨길 생각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방금 들었다면 알겠지만, 상대방은 쓸데없는 사람이 나타나는 걸 좋아하지 않아.” 장연아의 솔직한 태도에 나는 약간 당황했다. “좋아, 동의할게. 하지만 조건이 있어.” 장연아는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나를 바라보았다. “조건? 변진섭, 이제 날 상대로 조건을 걸겠다는 거야?” 우리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지만, 그녀의 시선이 차가워지며 나를 꿰뚫어 볼 듯 쏘아보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이미 이혼 준비 중이잖아. 당신이 계속 동의하지 않고 질질 끌지 않았다면, 이혼 서류는 벌써 효력을 발생했을 거고, 우리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타인이 되었을 거야.” “당신은 내가 조건을 내세울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나?” 나는 장연아가 지금 얼마나 나를 증오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런 건 나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장연아는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되물었다. “내가 알기로 변진섭, 당신 지금

  • 보스 아내의 복수 게임   제39화

    노태호가 장연아의 사무실에 있다는 사실보다, 내가 더 궁금한 건 이 사람이 도대체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지였다. 그리고 노태호가 장연아와 함께 가고 싶어 하는 그곳이, 장연아가 나를 불러낸 이유와 관련이 있는지도 말이다. “누나, 제발 저도 데려가 주세요! 이번 ‘사업 협력’은 저도 꼭 도움이 될 거예요!” ‘협력’이라는 단어가 노태호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나는 약간 의문이 들었다. ‘설마 노태호가 참석하려는 자리가 정말 JP 그룹의 사업과 관련이 있는 걸까?’ 이제야 왜 장연아가 갑자기 나에게 전화를 걸었는지 이해가 됐다. 나는 JP 그룹에서 근무한 적은 없지만, 중요한 자리에서는 여전히 장연아가 여전히 나를 파트너로 데리고 나가곤 했다. 그리고 지금, 노태호가 그 자리에 함께하려는 속셈은 뻔히 드러나 보였다. 나도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노태호에게 늘 관대한 장연아가 어린 애인의 요구를 들어줄까?’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나는 장연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태호야, 이번 연회는 JP 그룹의 사업에 중대한 자리야. 내 말 들어. 다음번에 데려갈게.” 장연아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애정 어린 어조는 나에게 숨길 수 없었다. 나와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명령조나 냉소적인 말투였던 그녀였기에, 이런 부드러운 목소리는 나도 정말 오랜만에 듣는 것이었다.“왜요?” “이런 자리에는 반드시 동반할 파트너가 필요할 텐데, 누나 주변에 적합한 사람이 없잖아요. 그런데 왜 저는 안 되는 거죠?” 노태호의 목소리는 점점 격앙되었고, 아마도 장연아가 선택한 파트너가 누구인지 짐작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장연아 앞에서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노태호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아지고 어딘가 억울해하는 것처럼 들렸다. “누나, 설마 이번에도 연회에 진섭 형님을 데려가려고 하시는 거예요?” 장연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노태호의 목소리가 떨리며 이어졌다. “그

  • 보스 아내의 복수 게임   제38화

    전화가 너무 오래 울려 자동으로 끊기는 걸 보고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마치 나를 쫓아내려는 것처럼 요란한 초인종 같은 전화벨이 또다시 울려댔다. 나는 체념하고 결국 전화를 받았다. 장연아의 어머니는 장연아만큼이나 강압적인 분이었다.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몇십 번이고 계속 전화를 걸 것이고, 심지어 여기까지 찾아올지도 모른다.“장모님...” 그러나 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핸드폰 너머에서 어머니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모님이라고 부르지도 마라! 예전에는 내 앞에서 당당하더니, 지금은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는 꼴이라니. 내가 널 잘못 본 건 아니었네. 자네 여전히 어디 하나 쓸데없는 사람이야!]‘나에게 시비 걸려고 전화를 건 걸까?’ 어머니의 비난은 그동안 참아온 분노와 함께 나를 폭발하게 했다. “제가 그렇게 쓸모없다고 생각하신다면서, 전화는 왜 하셨죠?” 내가 단호한 어조로 되받아치자, 어머니는 순간 말을 잃은 듯 잠시 침묵했고, 한참 지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난 자네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어. 하지만 자네보다는 노태호가 더 우리 장씨 집안을 망신시킬 놈이야! 그러니 자네가 아직 살아 있다면, 어떻게든 연아가 노태호와 완전히 관계를 끊고 정리하도록 하게.]어머니의 최후통첩을 듣고 나는 피식 웃었다. “연아가 노태호와의 관계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이유는, 아마 저보다 장모님께서 더 잘 아실 겁니다.” “그리고, 저와 연아는 곧 장모님 뜻대로 이혼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 저 같은 쓸데없는 사람에게 협박하느니, 차라리 연아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 쓸데없다는 사람인 나는, 사실 ‘장모님’이 상류층 귀부인들 사이에서 체면을 잃지 않도록 해준 사람이기도 했다. 명문가 사모님들이 참석하는 티타임 모임에서, 내 ‘장모님’은 항상 가장 품격 있고 흠잡을 데 없는 모습으로 주목받았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입는 모든 옷과 착용하는 모든 장신구는 내가 직접

  • 보스 아내의 복수 게임   제37화

    장연아가 더는 내 차가운 비아냥을 들으러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던 그때, 그녀는 다시 한번 나를 찾아왔다.초인종 소리가 한 번, 두 번, 끊임없이 울렸다.문밖에 서 있는 장연아의 모습이 도어 뷰어를 통해 보였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을 열지 않으면, 그녀도 지쳐서 돌아가겠거니 했다.하지만 예상 밖으로 장연아는 벽에 기대어 문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나는 방 안을 이리저리 걷다가 나가서 그녀를 쫓아내야 하나 고민했다. 이 여자를 더는 보고 싶지 않았지만, 문 앞에 앉아 있는 그녀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채자 나는 밖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췄다.‘오늘 떠날 때 노태호의 전화를 받았던 게 틀림없는데, 갑자기 이렇게 찾아온 게 혹시 노태호와 싸워서? 그렇다 해도,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나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장연아와 노태호의 다툼 따위는 상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내 마음은 문밖에서 밤새도록 앉아 있을 그녀를 그냥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결국 문을 열고, 장연아를 허리까지 감싸 안아 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소파에 눕혔다. 술 냄새가 진동하는 여자를 보며 수건을 가져와 닦아주려던 찰나, 그녀가 내 소매를 잡아채며 나를 소파로 넘어뜨렸다. 장연아는 곧바로 내 위로 올라탔고, 작고 가냘픈 몸이 내 가슴에 파묻혔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방 안에는 우리 둘뿐이었기에 여자의 속삭임이 명확히 들렸다. “진섭아, 가지 마.” 그 한마디에 내 마음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우리가 처음 만난 순간부터 결혼하고 지금까지 함께한 시간이 벌써 10년이다. 나는 장연아가 단 한 번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과거 우리 사이는 깊고 달콤했던 연인이었다. “장연아, 나를 사랑하긴 했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는 내 말에 장연아는 희미하게 눈을 뜨려 했지만, 쉽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물었다. “네 마음속

  • 보스 아내의 복수 게임   제36화

    ‘지난번? 서혜가 말한 도움이라면, 나와 장연아의 이혼을 돕겠다는 걸까?’ “고마워요. 하지만 도움은 필요 없어요.” 내 말에 서혜는 눈살을 찌푸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설마 아직도 연아에게 마음이 남아 있는 거예요?” “진짜로 연아와 이혼하려는 건가, 아니면 단지 연아의 관심을 더 끌고 싶어서?” 서혜의 날카로운 태도는 예전 그녀가 장연아와 지인들을 동반하여 나를 조롱하던 때와 다를 바 없었다. “서혜 씨, 우리 그렇게 가까운 사이 아니에요. 그리고 이건 나와 연아 둘의 문제예요.” 서혜가 내 어깨에 손을 뻗으려다, 닿기 직전에 멈췄다. “하지만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이 있어요. 연아는 당신을 쉽게 놔주지 않을 거예요. 이번 보육원 사건 바로 연아가 당신에게 보내는 경고라고요.” 그녀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며 내 어깨를 양손으로 꽉 잡았다. “변진섭 씨, 내가 도와줄게요. 당신이 장연아에게서 벗어나도록 내가 도울게요!” “변진섭 씨가 투병 중인 것도 알아요. 그런데도 연아는 여전히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도 당신은... 대체 뭣 때문에 미련이 남는 거죠?” 서혜의 말은 장연아를 잘 아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그럴 만도 했지만, 서혜의 태도는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예전에 연아가 자기 친구들 앞에서 나를 모욕할수록 서혜는 내가 그런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는 태도였는데, 이제는 직접 나서서 나를 돕겠다고? 대체 무슨 이유로?’ 나는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장연아와 관련된 모든 사람 때문에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연아의 의도가 무엇이든, 이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을 겁니다.” “이건 나와 연아의 일이고, 누구에게 털어놓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어요.” 내 말을 들은 서혜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맞아요, 두 사람은 아직 부부니까요. 명목상 부부이긴 하지만...” 서혜는 더 이상 머물 생각이 없는 듯, 이 말을 남기고 곧장 떠날 준비를 했다.

  • 보스 아내의 복수 게임   제35화

    ‘돈 걱정?’ 서현철 대표가 의뢰한 보석 디자인 작업을 맡은 뒤 재정상태에 여유가 생기자, 나는 더 이상 일에 집착하지 않았다. “무슨 일 있는 거야?” 임선우의 어색한 태도와 말투는 평소 그답지 않아서 나는 이 친구가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너 아직 모르고 있었구나?” 임선우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뭘 말이야?” 임선우가 뭔가 숨기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왜 내가 당연히 알아야 할 것처럼 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핸드폰을 꺼내 내게 보여주었는데, 화면에 뉴스가 하나 떠 있었다. ‘JP그룹, 성남 보육원 후원 중단 논란’이라는 제목이었다. 댓글란은 JP그룹이 ‘은혜를 모른다’며 비난하는 글로 가득했다. 반면, 일부는 JP그룹이 경영난에 처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 추측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JP그룹이 위기에 처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임선우는 내 얼굴이 굳어지자 곧장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장연아라면 분명히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낼 거야.”‘해결? 장연아는 절대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야. 이렇게 한 데에는 분명 내 문제도 관련이 있을 텐데.’ 나는 아무 일도 아닌 척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이런 작은 일에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곧이어 나는 덧붙였다. “그런데 나, 다른 작업실에 들어갈지도 몰라. 혹시 너도 관심 있으면 같이 할래?” 임선우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네가 다른 작업실에 들어간다고? 난 네가 혼자서 뭔가 해낼 줄 알았는데!”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혼자서 잘해 나갈 수 있다면야 나도 그러고 싶지.” 하지만 나는 내 이름으로는 큰 작업을 따내기 어렵다는 현실을 알고 있었다. “그 얘긴 그만하고, 밥 먹으러 가자!” 임선우는 나를 질질 끌고 나가 근처 식당에서 식사한 후 자기 집으로 갔다. 집에 돌아왔

  • 보스 아내의 복수 게임   제34화

    하지만, 나는 노태호를 집에서 자연인으로 수없이 마주쳤기 때문에, 그리고 질투심에 그 잘생긴 얼굴과 완벽한 체형의 톱스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노태호도 이지석 선생님을 알고 있는 듯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눈 후 이지석 선생님은 노태호를 주최 측에서 마련한 사무실로 데려갔다. 나는 노태호가 이지석 선생님을 빼앗아 갈까 봐 걱정되지는 않았지만, 그 둘 사이가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때 나는 고민에 빠졌다. ‘이지석 선생님의 작업실에 정말 합류해야 할까?’ ‘만약 이지석 선생님과 노태호가 특별한 관계라면, 선생님과 함께 일하는 동안 노태호를 자주 마주치게 될 텐데...’ 내 옆에 있던 몇몇 젊은 여성들은 이지석 선생님과 노태호가 있는 방향을 주시하며 소곤거리고 있었다. “우리 오빠 진짜 대단해! 이지석 선생님까지 알다니!” 짧은 머리의 한 여자애가 흥분된 얼굴로 말했다. “이지석 선생님이 누구야? 그렇게 유명해?” 이 여자애 옆에 있던 친구는 이지석 선생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아마 노태호 때문에 이곳에 온 것 같았다. “당연히 알지! 노태호가 새 드라마 준비 때문에 이지석 선생님께 디자인을 배우러 왔대. 다음 작품 진짜 기대된다!” ‘작품? 노태호가 다음에 촬영할 작품이 디자이너와 관련된 건가?’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노태호의 일을 신경 쓰고 있다는 게 우스웠다. 떠날 채비를 하려던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진섭이, 너 맞지?!” 급히 다가오는 발소리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그곳에는 이지석 선생님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석 선생님이 나를 알아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진섭아, 너 정말 많이 말랐구나!” 이지석 선생님은 눈살을 찌푸리며 지금의 내 상태를 몹시 안타까워했다. 나는 그 곁에 있던 노태호를 보고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선생님,

  • 보스 아내의 복수 게임   제33화

    “당신... 무슨 일인데 지금 말 못 한다는 거야?” 장연아는 내 팔을 꽉 붙잡으며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압박했다. 그녀는 내 귀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아직 이혼도 안 했는데 벌써 내 제일 친한 친구랑 엮이려는 거야?” 나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장연아를 응시했다. 이 여자라면 나를 잘 알 텐데, 내가 서혜와 뭔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을 리 없다는 것을. 하지만 장연아는 여전히 나도 그녀처럼 한 관계가 끝나기도 전에 다른 감정에 빠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농담도 좀 심하네. 우리 이혼 서류만 안 썼을 뿐이지, 이미 관계는 끝난 거나 다름없잖아. 나는 장 대표님이 우리 ‘각자 알아서 하자’고 묵인한 줄 알았는데?” 내 입가에 떠오른 냉소가 장연아의 눈에 그대로 들어갔다. 그녀는 내 손목을 더욱 강하게 쥐었다. 나는 고통스러워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여러 차례 치료를 받은 내 몸은 뼈에 살가죽만 얹혀 있을 정도로 약해졌기에, 조금만 힘을 줘도 엄청난 고통이 따랐다. “뭐든 해도 좋아.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건드리지 마. 내 친구들은 널 몰라서 속을 수도 있거든.” 장연아는 나를 가장 아프게 할 말만 골라서 던졌고, 그녀의 말은 늘 가차 없었다. 이때, 서혜가 와인잔을 들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서둘러 장연아의 손을 밀어냈다. 이미 우리 사이가 이혼 절차를 밟고 있다는 걸 다들 아는데, 굳이 남들 앞에서 거짓으로 애정을 과시할 이유는 없으니까. 장연아는 갑자기 내 팔을 끌어당기더니 서혜와 건배하며 말했다. “우리 남편 돌봐줘서 고마워.” 서혜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마침 누군가가 장연아를 불렀고, 그녀가 대화를 나누는 틈을 타 나는 재빨리 방에서 빠져나왔다. 서혜가 뒤따라온 것은 그 이후였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날 장연아는 서혜의 태도에서 서혜

  • 보스 아내의 복수 게임   제32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사람은 내가 장연아와 결혼한 이유가 그녀의 신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 사람들의 오해를 굳이 풀려 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내가 내 힘만으로도 풍족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 리 없었다. ...지난 한 주 동안 나는 정말 충실한 시간을 보냈다. 장연아가 없는 삶에 점점 익숙해졌고, 더 이상 그녀로 인한 불안감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놀랍게도 장연아가 꽤 오랫동안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연아는 분명 나를 붙잡으려 애썼지만, 과연 그녀는 내게 진심이었을까? 서현철 대표와의 거래가 이미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서혜는 오히려 종종 나에게 만나자고 연락해 왔다. 나는 서혜의 제안을 한 번도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나는 장연아와 관련된 사람들과 어떤 식으로든 얽히고 싶지 않았고, 그 사람들 중에는 서혜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서혜에게 어떻게 내 뜻을 전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그녀로부터 한 장의 초대장을 받았다. 그 초대장은 곧 B 시에서 열릴 디자인 전시회의 초대장이었다. 그 전시회에는 내가 좋아하는 외국 디자이너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초대장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서혜가 나와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닌데, 내가 이 전시회에 관심이 있을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하지만 나는 결국 초대장을 돌려주기로 결심했고, 서혜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다. 전화를 받은 서혜의 주변은 무척 소란스러웠다. “서혜 씨, 혹시 지금 시간 좀 있어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 [시간은 있어요. 그런데 지금 움직이기가 어려워요. 조금 있다가 내가 주소를 보낼게요. 급하면 그리로 와요.] 나는 더 이상 이 일을 미루고 싶지 않았다. 서혜가 초대장을 보낸 진짜 이유가 무엇이든, 그녀와 어떤 관계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나는 서혜가 보낸 주소로 찾아가 보니, 그곳은 한 조용한 고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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