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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1화

“미연아, 무슨 일인데?” 박유진이 먼저 입을 떼며 성큼성큼 다가와 심미연 옆에 앉았다. 심미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태하 해외 계좌에 갑자기 사백억이 들어왔어. 확인해 보니까 이노하이브 그룹에서 보낸 돈이더라.” ‘우리 아들, 진짜 대단한데?’ 박유진은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노트북을 덮으며 피식 웃었다. “예전엔 네가 공짜로 방화벽을 관리해 줬으니까 그나마 버틴 거지. 네가 빠지니까 이노하이브 보안망이 엉망이 된 거고. 태하 같은 세 살짜리 애한테 뚫릴 정도면 이노하이브 정보기술팀은 단체로 폐급 인증한 거지.”심미연이 피식 웃었다. “태하가 오빠 시켜서 내 기분 좀 풀어보라고 보낸 거지? 그 녀석, 진짜 약아빠졌네.” “네가 화나면 스트레스라도 받을까 봐 걱정되긴 했는데 막상 어떻게 풀어줘야 할지 몰라서 내가 자진해서 올라왔지.” 박유진은 그녀 얼굴에 웃음이 번지는 걸 보고서야 비로소 안심했다. 사실 심미연이 계속 화를 안 풀면 어쩌나 걱정됐다. 한번 토라지면 좀처럼 쉽게 풀리지 않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바로는 태하가 강지한한테 그렇게 많은 돈을 빼앗았으니 강지한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그 사람은 원한을 갚는 데 철저하고 잔인한 성격이니까 분명 나를 찾아올 거야.” 심미연은 원래 지금 강지한과 만날 생각이 없었다. 이번에 경서시 프로젝트 입찰에 참여해서 그를 완전히 당황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심태하의 행동으로 그녀의 계획은 예상치 못하게 틀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돌려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강지한이 자신에게 갚아야 할 건 단지 사백억에 그치지 않았다. ‘그냥 미리 이자 챙기는 거지 뭐.’“괜찮아. 내가 있잖아.” 박유진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널 지켜줄게.” 심미연은 장난스럽게 그를 쳐다보며 눈을 깜빡였다. “나도 오빠를 지킬 수 있어.” 지금의 그녀는 몇 년 전 강지한 앞에서 억울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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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2화

“그럼 이따가 어머니한테 전화할게.” 박유진은 입가의 미소가 한층 깊어졌다. 심미연이 그의 부모님을 뵙겠다고 하니 그는 당연히 기뻤다. 사실 그들은 이미 20년 넘게 얼굴을 봐 온 사이였지만 이제 그때와는 전혀 다른 관계가 되어 있었다.“얼른 회사 가 봐. 일 빨리 끝내고 집에 일찍 가자.” 심미연은 박유진을 살짝 밀며 재촉했다.그와 함께 있으면 늘 마음이 편안했다. 불필요한 걱정도 애써 꾸밀 필요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일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심태하가 놀이 매트 위에 앉아 레고를 맞추고 있었다. 작은 손으로 블록을 하나하나 끼우며 제법 진지한 얼굴로 집중하고 있었다. 박유진은 고개를 숙여 심미연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회사 다녀올게. 퇴근하면 바로 너랑 태하 데리러 올게.” 심미연은 눈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얼른 다녀와. 기다리고 있을게.” 박유진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곤 한층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를 불렀다. “태하야, 아빠 회사 갔다 올게. 엄마랑 집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어.” 심태하는 그제야 고개를 번쩍 들고 통통한 손을 흔들며 밝게 외쳤다. “아빠, 잘 다녀오세요.” 박유진은 아이를 향해 한 번 더 미소 짓고 나서야 아쉬운 듯 천천히 몸을 돌려 집을 나섰다. 심태하는 손에 쥐고 있던 레고를 내려놓고 천천히 일어섰다.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손은 몸 옆에 붙인 채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엄마...” 심미연은 깊은 숨을 내쉬며 가슴 속 복잡한 감정을 억누르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태하야, 미안해. 엄마가 네 친아빠에 대해 제대로 얘기해주지 못했어.” 심태하는 급히 말을 끊으며 고개를 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저 알아요. 내 친아빠는 엄마한테 못된 짓만 한 나쁜 사람이에요. 바람도 피웠잖아요.”비록 그 기사들이 이미 모두 삭제됐지만 심태하는 여전히 인터넷에서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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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3화

대화 기록 속에서 두 사람은 본처를 어떻게 죽일지 끔찍하게 의논하고 있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남자와 불륜녀가 인터넷으로 청산가리와 쥐약 같은 독극물을 구매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두 사람은 이를 사용할 용기는 없었다. 심미연은 분노를 억누르며 계속해서 기록을 넘겨보았다. ‘요즘 불륜녀들은 정말 뻔뻔하네.’ ‘남자 하나 차지하려고 뭔 짓이든 가리지 않더라.’계속해서 걸려오는 박유진의 전화를 확인한 후 심미연은 그제야 컴퓨터를 껐다. 임현이 수집한 모든 증거를 다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두 사람의 대화 내용과 인터넷에서 청산가리와 쥐약같은 독극물을 구매한 사실만으로도 그들이 본처를 죽이려 했다는 점은 명백히 드러났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그 두 사람이 직접 입으로 고백하게 만들어야 했다. 재판이 열리기 전에 반드시 그들이 본처를 죽였다는 사실을 인정한 녹음 파일을 손에 넣어야만 했다. 물건을 정리한 후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니 심태하가 레고로 거대한 성을 완성해 놓았다. 심미연은 가끔 심태하의 집중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번 자리에 앉으면 오후 내내 꼼짝도 하지 않고 몰입해서 만들기만 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엄마, 다 끝났어요?” 심태하는 그녀가 내려오자마자 급히 일어나 그녀에게 달려갔다. “위층 가서 옷 갈아입고 아빠 집에 가서 할머니랑 할아버지 뵙자.” 심미연은 그를 품에 안고 기분 좋게 말했다. “좋아요! 바로 갈게요.” 심태하는 서둘러 그녀의 품을 벗어나 위층으로 달려갔다. 짧은 다리가 빠르게 흔들리며 공중을 나는 듯했다. 심미연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태하가 있으면 아무리 피곤해도 행복하네.’그때 갑자기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심미연은 정신을 가다듬고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미연아, 나다. 할아버지야.”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노인의 격앙된 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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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4화

“알겠어요. 일이 끝나면 그때 다시 함께 식사해요.” 최근 몇 건의 소송 때문에 심미연은 정말 바빴다. “그래. 그럼 방해하지 않을게. 나중에 보자.” 강준형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심미연도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그를 만날 수 없는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미연이가 일이 끝난 후에나 보면 되지.’ 심미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전화를 끊었다.“엄마, 누구한테서 온 전화예요?” 심태하는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조용히 물었다. 심미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나중에 엄마가 다 말해줄게.” 강지한과 강씨 가문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시간이 될 때 천천히 말해주기로 했다. “뭐야? 둘이 무슨 얘기를 이렇게 진지하게 하고 있어?” 박유진이 신발을 갈아 신고 들어오며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빠가 돌아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어.” 심미연은 그에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 미소는 눈과 입꼬리가 함께 올라가면서 마치 그의 마음을 뒤흔드는 듯했다. 박유진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는 잠시 눈을 내리깔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속으로 깊게 숨을 들이켰다. “준비 다 끝났으면 얼른 가자.” 심미연이 자신과 함께 집으로 가 부모님을 만날 생각에 박유진은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으로 들떠 있었다. 웃음이 절로 얼굴에 번졌다. “태하야, 가자.” 심미연은 아들의 작은 손을 잡고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박유진은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오늘 저녁 너를 위한 특별한 서프라이즈가 준비되어 있어.” “서프라이즈?” 심미연은 큰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긴 속눈썹이 두 마리 나비처럼 깜빡였다. 박유진은 항상 기념일마다 그녀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오늘은 무슨 기념일일까?’“곧 알게 될 거야.” 박유진은 신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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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5화

“소식을 듣자마자 그 사람을 찾아갔는데 그 사람이 지금 조사를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이런 일이 갑자기 일어나다니 분명 누군가 뒤에서 손을 쓴 거예요.”심미연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마음속의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알겠어요. 고위층에 연락해서 긴급 회의를 소집하세요. 지금 바로 회사로 갈게요.”“네. 그럼 제가 먼저 공지 보내겠습니다.”전화를 끊자마자 박유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 있어? 도와줄 거 있으면 말해.” 그는 도와주고 싶었지만 허락 없이 도와주면 그녀가 화낼까 봐 걱정됐다. 심미연은 잠시 숨을 고르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 오늘 저녁에 어머님, 아버님 만나러 못 갈 것 같아. 회사에 일이 생겼거든. 하린이는 지금 병원에 있고 내가 회사 일 처리하러 가야 해.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할게.” 심미연은 박유진 가족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괜찮아. 회사 일 먼저 처리해. 밥은 다음에 같이 먹어도 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박유진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씁쓸한 감정이 남아 있었다. 그가 준비한 서프라이즈도 이제 다음으로 미뤄져야 했다. “그럼 오빠랑 태하는 먼저 가고 나는 차로 회사로 갈게.” 심미연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내가 데려다줄게.” 박유진이 급히 그녀를 불렀다. “아니야. 오빠가 나 데려다주면 시간만 더 걸릴 거야. 아버님, 어머님 기다리실 거잖아. 얼른 가.” 심미연은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태하야, 할아버지, 할머니 댁 가면 말 잘 들어야 해.”심태하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작게 투덜거렸다. ‘돌아온 후로 엄마는 진짜 너무 바쁜 것 같아.’‘나랑 밥 먹는 시간도 많이 줄어든 것 같아.’ 심미연은 차에 올라타자 바로 가속을 밟았다. 차는 주차장을 빠져나가며 도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박유진은 출구를 바라보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작은 보석 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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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6화

마치 일부러 그런 것처럼 여러 번 걸었지만 전화는 모두 끊어졌다. 심미연은 화가 난 나머지 웃음이 나왔다. ‘강지한, 정말 대단하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성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심미연은 거침없이 말했다. “성 비서님, 전화 바꿔요. 강지한 대표님한테 할 말이 있어요.” “심미연 씨, 대표님은 지금 많이 바쁘신데요...” “그럼 지금 어디 있는지 말해봐요. 내가 찾아갈 테니까.” 심미연은 속에서 뜨거운 분노가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강지한에게 꼭 한바탕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회사에 있습니다.” “좋아요. 10분 내로 도착할 테니 기다리고 있어요.” 심미연은 말을 마친 뒤 곧장 전화를 끊었다. 강지한은 손에 든 서류를 보면서도 성무진과 심미연의 대화를 놓치지 않으려 귀를 기울였다. 성무진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은 후에야 강지한이 든 서류가 뒤집혀 있음을 알아챘다. 잠시 망설인 성무진은 결국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대표님, 서류가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강지한은 서류를 던지듯 내려놓고 목을 풀며 짧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심미연 씨가 회사로 오겠다고 하셨습니다.” 성무진은 강지한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그런데 강지한의 표정은 생각보다 온화해 보였다. “난 만나겠다고 말한 적 없잖아.” 강지한은 입술을 살짝 삐죽이며 중얼거렸다. “알았다. 너 나가 있어. 서류 좀 볼게.” 성무진은 그를 한 번 더 힐끗 쳐다봤다. ‘대표님도 참...’ 만약 강지한의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면 성무진은 그가 심미연을 만나는 걸 정말로 싫어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내색은 안 해도 아마 누구보다 심미연 씨를 보고 싶어할 거야.’성무진은 대표님의 사무실을 나온 후 강지한이 자주 찾는 회전식 고공 레스토랑을 세심하게 예약했다. 몇 년 동안 강지한이 가장 좋아했던 레스토랑이었다. 높이도 충분하고 시야는 탁 트여 있어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심미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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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7화

심미연은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대표님 사무실로 곧장 들어섰다. 문이 크게 열리며 들린 소리에 강지한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예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졌다. 마치 잘 가꿔진 꽃처럼 눈에 띄게 싱그럽고 매혹적이었다. 강지한은 심장이 한 박자 빠르게 뛰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잠시 숨을 고쳤다. “강지한, 비겁한 놈. 너 진짜 역겨워.” 심미연은 그동안 쌓였던 분노를 한꺼번에 터뜨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울증을 극복하고 나서 이렇게 감정을 폭발시킨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강지한이 너무 지나쳤다. 강지한의 눈빛은 깊고 어두웠다. “심미연, 여긴 내 구역이야. 내 앞에서 이렇게 난리치면 내가 경찰에 신고할 거라는 생각 안 해?” 강지한의 목소리는 차갑고 담담했다. 예전 이 여자는 그 앞에서 항상 온화하고 단정한 모습만 보여줬다. 그를 향해 화를 내는 일도 없었고 목소리조차 높아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여자는 그에게 소리치며 거침없이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그에게 유난히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그의 마음속에 뜨겁게 불타는 불씨가 하나 떨어진 듯 그의 심장은 뜨겁게 뛰기 시작했다. “어디 한 번 신고 해 봐. 경찰이 그 더럽고 비열한 짓을 한 널 잡을지 아니면 나를 잡을지 한 번 보자고.” 심미연은 망설임 없이 그의 책상 앞으로 다가가 위에 있던 펜통을 들고 강지한에게 던졌다. “정말 뻔뻔하네.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평소 그녀는 차분하고 이성적이었다. 변호사로서 무엇이 가능한지 무엇이 불가능한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강지한과 마주한 그녀는 더 이상 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냥 미쳐버려도 상관없다. ‘강지한이 그토록 추악한 짓을 했는데 내가 어떻게 침착할 수 있겠어.’비록 그녀가 미리 뒷문을 통해 프로젝트를 가져왔지만 그것도 그녀의 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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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8화

강지한은 그녀를 정말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 있는 장난감이라도 된는 것처럼 생각하는는 것 같았다. 원하면 가지겠고 필요 없으면 버리고. “네가 동의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난 최고의 변호사를 써서 아들을 빼앗아 올 거니까. 심미연, 그때 와서 나한테 구걸하지 마.” 강지한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담담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심미연은 이미 임현에게서 강지한이 자신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아들 심태하의 양육권을 빼앗으려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듣게 되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강지한은 어떻게 이렇게 무자비할 수 있지?’ ‘정말 한 점의 인간미도 없네.’“강지한, 너랑 이혼하고 나서 낳은 아이야. 너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어.” 심미연은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분노 어린 시선을 꽂았다. 그 짧은 순간 그녀는 강지한이 온지유때문에 자신을 얼마나 괴롭혀왔는지 수많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이 남자는 단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나랑 상관있는지 없는지는 친자 검사를 하면 바로 나오겠지. 심미연, 못 하겠어?” 강지한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이미 그는 심태하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걸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어떻게든 아들을 자기 품에 데려오는 것뿐이었다. 아들만 손에 넣으면 심미연도 결국 그의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내 아들이야. 네가 무슨 자격으로 친자 검사를 하겠다는 거야?” 심미연은 싸늘하게 웃으며 쏘아붙였다. “그렇게 친자 검사가 하고 싶으면 차라리 집에 가서 네 딸 샘플이나 가져와서 해보는 게 어때?” 이제야 그의 역겨운 속내를 똑똑히 알게 되었다. 그걸 알고도 가만히 있을 이유는 없었다. 이런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했다. 강지한의 표정이 굳었다. 그가 3년 동안 키운 딸이었지만 단 한 번도 그 아이의 친부모를 찾으려 하거나 친자 검사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 아이는 애초부터 그가 주운 아이였고 자신의 친딸이 아니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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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9화

강지한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움켜잡고 들어올렸다. 그 순간 그녀의 손목에 새겨진 끔찍한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벌레처럼 비틀어진 그 흉터 자국이 손목에 깊숙이 새겨져 있었다. 강지한의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머릿속에 억지로 떠오른 장면이 하나 있었다. 강지한은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며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심미연은 재빨리 손을 빼고 소매를 잡아당겨 흉터를 가린 뒤 다시 한 번 차갑게 얼굴을 굳혔다. “너랑은 상관없어.” 그 흉터는 그녀가 깊은 우울증에 시달리던 시절 자해의 흔적이었다. 당시 너무 많은 피가 흘렀고 만약 제때 구출되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미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 해 그녀는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 그리고 매번 그녀를 구해준 사람은 박유진이었다. 그녀는 박유진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박유진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다시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생에서 그녀는 오직 박유진과 함께 평온한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심미연, 넌 내 여자라는 걸 잊지 마. 당연히 내가 너를 신경 써야지.” 강지한은 그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의 논리 속에서 심미연은 그와 결혼하고 함께 잠자리를 가졌으니 평생 그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다른 남자가 꿈꿀 자리는 없었다. 방금 전의 감정이 격하게 흔들린 탓에 심미연은 점차 기운이 빠지고 있었다. 더 이상 강지한과 언쟁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가서 꿈이라도 꾸던가.” 그 말을 남기고 심미연은 사무실을 박차고 나갔다.“성 비서가 레스토랑 예약했어. 같이 가자.” 강지한이 뒤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심미연, 넌 도망칠 수 없어. 돌아왔으면 내 곁으로 돌아와서 다시 함께 살아야지.” ‘박유진과 함께 있겠다고?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을 거야.’ 심미연은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그녀는 이곳을 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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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0화

심미연이 방금 한 말이 갑자기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딸이 점점 자신을 닮아가는데 이건 아마도 그 아이를 자신이 키우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 사이에 혈연 관계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전엔 왜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네. 알겠습니다.” 성무진은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그저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지한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강지한은 전화를 끊은 뒤 차를 몰고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박시훈은 조금 늦게 도착했다. 그가 도착했을 때 강지한은 이미 두 잔의 술을 홀로 마신 상태였다. 박시훈을 보자 강지한은 옆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앉아. 할 말이 있어.” 박시훈은 가슴에 손을 얹고 저항하며 말했다. “지한아, 우리 이렇게 친한데 그건 좀 아니지 않아?” 그는 자신의 성향이 바뀔까 봐 두려웠다. “앉아!” 강지한은 짜증이 난 듯 목소리에서 압박감을 느낄 수 있었다.박시훈은 몸을 살짝 떨며 조심스럽게 강지한 옆에 앉았다. 그의 엉덩이를 살짝살짝 의자 가장자리로 밀어냈다. 강지한은 그런 박시훈의 모습을 보고 짜증이 더욱 커졌다. “박시훈, 제발 좀 정상적으로 행동해.” “난 정상인데 너가 이상한 거지.” 박시훈은 속으로 생각했다. ‘너야말로 성적 취향에 문제가 있어 보여.’ “그만해. 이제 입 닫아!” 강지한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박시훈은 손으로 입가에 지퍼를 닫는 제스처를 하며 말했다. “말해 봐.”그 목소리는 코로 나는 듯 매우 이상하게 들렸다. “당시 상미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확인해봐. 정확한 출생일도 알려줘.” 그는 그때 문소영과 심서연이 말한 것만 믿고 너무 쉽게 넘어갔다. 사실 처음부터 조사를 했어야 했다. “상미의 출생에 의문이 드는 거야?” 박시훈은 강지한이 자신에게 손대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자 조금 더 용기가 생겼다. 강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이제서야 깨달았냐? 벌써 3년이나 지났는데 반응이 너무 느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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