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을 듣자마자 그 사람을 찾아갔는데 그 사람이 지금 조사를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이런 일이 갑자기 일어나다니 분명 누군가 뒤에서 손을 쓴 거예요.”심미연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마음속의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알겠어요. 고위층에 연락해서 긴급 회의를 소집하세요. 지금 바로 회사로 갈게요.”“네. 그럼 제가 먼저 공지 보내겠습니다.”전화를 끊자마자 박유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 있어? 도와줄 거 있으면 말해.” 그는 도와주고 싶었지만 허락 없이 도와주면 그녀가 화낼까 봐 걱정됐다. 심미연은 잠시 숨을 고르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 오늘 저녁에 어머님, 아버님 만나러 못 갈 것 같아. 회사에 일이 생겼거든. 하린이는 지금 병원에 있고 내가 회사 일 처리하러 가야 해.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할게.” 심미연은 박유진 가족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괜찮아. 회사 일 먼저 처리해. 밥은 다음에 같이 먹어도 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박유진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씁쓸한 감정이 남아 있었다. 그가 준비한 서프라이즈도 이제 다음으로 미뤄져야 했다. “그럼 오빠랑 태하는 먼저 가고 나는 차로 회사로 갈게.” 심미연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내가 데려다줄게.” 박유진이 급히 그녀를 불렀다. “아니야. 오빠가 나 데려다주면 시간만 더 걸릴 거야. 아버님, 어머님 기다리실 거잖아. 얼른 가.” 심미연은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태하야, 할아버지, 할머니 댁 가면 말 잘 들어야 해.”심태하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작게 투덜거렸다. ‘돌아온 후로 엄마는 진짜 너무 바쁜 것 같아.’‘나랑 밥 먹는 시간도 많이 줄어든 것 같아.’ 심미연은 차에 올라타자 바로 가속을 밟았다. 차는 주차장을 빠져나가며 도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박유진은 출구를 바라보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작은 보석 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다
마치 일부러 그런 것처럼 여러 번 걸었지만 전화는 모두 끊어졌다. 심미연은 화가 난 나머지 웃음이 나왔다. ‘강지한, 정말 대단하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성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심미연은 거침없이 말했다. “성 비서님, 전화 바꿔요. 강지한 대표님한테 할 말이 있어요.” “심미연 씨, 대표님은 지금 많이 바쁘신데요...” “그럼 지금 어디 있는지 말해봐요. 내가 찾아갈 테니까.” 심미연은 속에서 뜨거운 분노가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강지한에게 꼭 한바탕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회사에 있습니다.” “좋아요. 10분 내로 도착할 테니 기다리고 있어요.” 심미연은 말을 마친 뒤 곧장 전화를 끊었다. 강지한은 손에 든 서류를 보면서도 성무진과 심미연의 대화를 놓치지 않으려 귀를 기울였다. 성무진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은 후에야 강지한이 든 서류가 뒤집혀 있음을 알아챘다. 잠시 망설인 성무진은 결국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대표님, 서류가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강지한은 서류를 던지듯 내려놓고 목을 풀며 짧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심미연 씨가 회사로 오겠다고 하셨습니다.” 성무진은 강지한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그런데 강지한의 표정은 생각보다 온화해 보였다. “난 만나겠다고 말한 적 없잖아.” 강지한은 입술을 살짝 삐죽이며 중얼거렸다. “알았다. 너 나가 있어. 서류 좀 볼게.” 성무진은 그를 한 번 더 힐끗 쳐다봤다. ‘대표님도 참...’ 만약 강지한의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면 성무진은 그가 심미연을 만나는 걸 정말로 싫어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내색은 안 해도 아마 누구보다 심미연 씨를 보고 싶어할 거야.’성무진은 대표님의 사무실을 나온 후 강지한이 자주 찾는 회전식 고공 레스토랑을 세심하게 예약했다. 몇 년 동안 강지한이 가장 좋아했던 레스토랑이었다. 높이도 충분하고 시야는 탁 트여 있어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심미연은
심미연은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대표님 사무실로 곧장 들어섰다. 문이 크게 열리며 들린 소리에 강지한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예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졌다. 마치 잘 가꿔진 꽃처럼 눈에 띄게 싱그럽고 매혹적이었다. 강지한은 심장이 한 박자 빠르게 뛰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잠시 숨을 고쳤다. “강지한, 비겁한 놈. 너 진짜 역겨워.” 심미연은 그동안 쌓였던 분노를 한꺼번에 터뜨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울증을 극복하고 나서 이렇게 감정을 폭발시킨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강지한이 너무 지나쳤다. 강지한의 눈빛은 깊고 어두웠다. “심미연, 여긴 내 구역이야. 내 앞에서 이렇게 난리치면 내가 경찰에 신고할 거라는 생각 안 해?” 강지한의 목소리는 차갑고 담담했다. 예전 이 여자는 그 앞에서 항상 온화하고 단정한 모습만 보여줬다. 그를 향해 화를 내는 일도 없었고 목소리조차 높아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여자는 그에게 소리치며 거침없이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그에게 유난히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그의 마음속에 뜨겁게 불타는 불씨가 하나 떨어진 듯 그의 심장은 뜨겁게 뛰기 시작했다. “어디 한 번 신고 해 봐. 경찰이 그 더럽고 비열한 짓을 한 널 잡을지 아니면 나를 잡을지 한 번 보자고.” 심미연은 망설임 없이 그의 책상 앞으로 다가가 위에 있던 펜통을 들고 강지한에게 던졌다. “정말 뻔뻔하네.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평소 그녀는 차분하고 이성적이었다. 변호사로서 무엇이 가능한지 무엇이 불가능한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강지한과 마주한 그녀는 더 이상 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냥 미쳐버려도 상관없다. ‘강지한이 그토록 추악한 짓을 했는데 내가 어떻게 침착할 수 있겠어.’비록 그녀가 미리 뒷문을 통해 프로젝트를 가져왔지만 그것도 그녀의 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
강지한은 그녀를 정말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 있는 장난감이라도 된는 것처럼 생각하는는 것 같았다. 원하면 가지겠고 필요 없으면 버리고. “네가 동의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난 최고의 변호사를 써서 아들을 빼앗아 올 거니까. 심미연, 그때 와서 나한테 구걸하지 마.” 강지한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담담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심미연은 이미 임현에게서 강지한이 자신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아들 심태하의 양육권을 빼앗으려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듣게 되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강지한은 어떻게 이렇게 무자비할 수 있지?’ ‘정말 한 점의 인간미도 없네.’“강지한, 너랑 이혼하고 나서 낳은 아이야. 너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어.” 심미연은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분노 어린 시선을 꽂았다. 그 짧은 순간 그녀는 강지한이 온지유때문에 자신을 얼마나 괴롭혀왔는지 수많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이 남자는 단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나랑 상관있는지 없는지는 친자 검사를 하면 바로 나오겠지. 심미연, 못 하겠어?” 강지한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이미 그는 심태하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걸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어떻게든 아들을 자기 품에 데려오는 것뿐이었다. 아들만 손에 넣으면 심미연도 결국 그의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내 아들이야. 네가 무슨 자격으로 친자 검사를 하겠다는 거야?” 심미연은 싸늘하게 웃으며 쏘아붙였다. “그렇게 친자 검사가 하고 싶으면 차라리 집에 가서 네 딸 샘플이나 가져와서 해보는 게 어때?” 이제야 그의 역겨운 속내를 똑똑히 알게 되었다. 그걸 알고도 가만히 있을 이유는 없었다. 이런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했다. 강지한의 표정이 굳었다. 그가 3년 동안 키운 딸이었지만 단 한 번도 그 아이의 친부모를 찾으려 하거나 친자 검사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 아이는 애초부터 그가 주운 아이였고 자신의 친딸이 아니라는
강지한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움켜잡고 들어올렸다. 그 순간 그녀의 손목에 새겨진 끔찍한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벌레처럼 비틀어진 그 흉터 자국이 손목에 깊숙이 새겨져 있었다. 강지한의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머릿속에 억지로 떠오른 장면이 하나 있었다. 강지한은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며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심미연은 재빨리 손을 빼고 소매를 잡아당겨 흉터를 가린 뒤 다시 한 번 차갑게 얼굴을 굳혔다. “너랑은 상관없어.” 그 흉터는 그녀가 깊은 우울증에 시달리던 시절 자해의 흔적이었다. 당시 너무 많은 피가 흘렀고 만약 제때 구출되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미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 해 그녀는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 그리고 매번 그녀를 구해준 사람은 박유진이었다. 그녀는 박유진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박유진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다시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생에서 그녀는 오직 박유진과 함께 평온한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심미연, 넌 내 여자라는 걸 잊지 마. 당연히 내가 너를 신경 써야지.” 강지한은 그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의 논리 속에서 심미연은 그와 결혼하고 함께 잠자리를 가졌으니 평생 그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다른 남자가 꿈꿀 자리는 없었다. 방금 전의 감정이 격하게 흔들린 탓에 심미연은 점차 기운이 빠지고 있었다. 더 이상 강지한과 언쟁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가서 꿈이라도 꾸던가.” 그 말을 남기고 심미연은 사무실을 박차고 나갔다.“성 비서가 레스토랑 예약했어. 같이 가자.” 강지한이 뒤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심미연, 넌 도망칠 수 없어. 돌아왔으면 내 곁으로 돌아와서 다시 함께 살아야지.” ‘박유진과 함께 있겠다고?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을 거야.’ 심미연은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그녀는 이곳을 떠나고
심미연이 방금 한 말이 갑자기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딸이 점점 자신을 닮아가는데 이건 아마도 그 아이를 자신이 키우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 사이에 혈연 관계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전엔 왜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네. 알겠습니다.” 성무진은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그저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지한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강지한은 전화를 끊은 뒤 차를 몰고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박시훈은 조금 늦게 도착했다. 그가 도착했을 때 강지한은 이미 두 잔의 술을 홀로 마신 상태였다. 박시훈을 보자 강지한은 옆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앉아. 할 말이 있어.” 박시훈은 가슴에 손을 얹고 저항하며 말했다. “지한아, 우리 이렇게 친한데 그건 좀 아니지 않아?” 그는 자신의 성향이 바뀔까 봐 두려웠다. “앉아!” 강지한은 짜증이 난 듯 목소리에서 압박감을 느낄 수 있었다.박시훈은 몸을 살짝 떨며 조심스럽게 강지한 옆에 앉았다. 그의 엉덩이를 살짝살짝 의자 가장자리로 밀어냈다. 강지한은 그런 박시훈의 모습을 보고 짜증이 더욱 커졌다. “박시훈, 제발 좀 정상적으로 행동해.” “난 정상인데 너가 이상한 거지.” 박시훈은 속으로 생각했다. ‘너야말로 성적 취향에 문제가 있어 보여.’ “그만해. 이제 입 닫아!” 강지한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박시훈은 손으로 입가에 지퍼를 닫는 제스처를 하며 말했다. “말해 봐.”그 목소리는 코로 나는 듯 매우 이상하게 들렸다. “당시 상미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확인해봐. 정확한 출생일도 알려줘.” 그는 그때 문소영과 심서연이 말한 것만 믿고 너무 쉽게 넘어갔다. 사실 처음부터 조사를 했어야 했다. “상미의 출생에 의문이 드는 거야?” 박시훈은 강지한이 자신에게 손대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자 조금 더 용기가 생겼다. 강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이제서야 깨달았냐? 벌써 3년이나 지났는데 반응이 너무 느린
강지한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 “왜 그 여자한테 물어봐야 해? 이런 건 내가 결정하면 되는 거지.” 그는 자신이 내린 결정을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심미연이 낳은 아들은 결국 그의 아들이고 자신은 아이의 친아빠니까 심미연은 당연히 그와 함께 있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뭐?” 박시훈은 입을 크게 벌리며 충격을 받았다. 그 입이 너무 커서 닭알 하나 정도는 거뜬히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정말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강지한이 이런 말을 하다니...’ 외부인인 그가 듣기에도 분노가 치밀어 오를 정도였는데 심미연이 들으면 얼마나 화가 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입 그렇게 크게 벌리고 뭐 하는 거야. 닫아!” 강지한은 박시훈을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그 후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들며 무심히 덧붙였다. “상미의 친부모는 빨리 찾아야 해. 찾으면 그들에게 돈이라도 줄 생각이야.” 강상미는 그가 정성껏 키운 아이였다. 비록 강상미가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더라도 그는 그 아이를 절대 떠나보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친부모가 그때 상미를 버렸다면 이제 와서 그 아이를 찾을 리가 없을 거다.“알겠어. 내가 알아봐 줄게. 하지만 충고 하나 하자.” “네 전처, 이제 예전처럼 너한테 목매는 여자가 아니야. 지금 그 여자에겐 회사도 있고 로펌도 있어. 물론 자산 규모로만 보면 너와 비교가 안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제 그녀는 충분히 강한 사람이 됐어.” 그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니 네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지 마.” 박시훈은 오랫동안 강지한과 협력하며 지냈고 둘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만약 그들 사이에 심미연이 없었다면 그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유지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강지한이 심미연을 되찾으려 한다면 그는 주저 없이 심미연의 편에 설 것이다. “그 여자가 아무리 강해졌다 한들 나만 하겠어?” 강지한은
그는 심미연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태하가 시끄럽게 굴면 아버님, 어머님이 제대로 쉴 수 있을까?” 심미연은 아들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 그를 귀여워해 주면 태하는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방방 뛰어다닌다. “걱정 마. 아무 일 없을 거야.” 박유진은 부드럽게 심미연을 안심시켰다. 박유진의 말을 듣고 심미연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위치 보내줘. 내가 차로 갈게. 도착해서 만나자.” 박유진은 잠시 침묵한 뒤 알겠다고 대답했다. 전화를 끊고 박유진은 곧바로 위치를 보냈다. 심미연은 곧장 방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가벼운 메이크업을 마쳤다. 능숙하게 준비를 끝내며 외출 준비를 마쳤다. 박유진이 보낸 위치를 따라 심미연은 차를 몰고 산장에 도착했다. 차가 입구에 다다르자 입구에서 차량을 멈춰 세웠다. “안녕하세요. 손님, 회원 카드 부탁드립니다.” 심미연은 이 산장이 회원 전용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창문을 내리고 물었다. “지금 회원 가입을 할 수 있을까요?” 경성에 살고 있고 앞으로 자주 올 것 같아서 회원 가입을 하면 편리할 것 같았다.그때 귀에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풍림산장의 회원 연회비가 1억 원이 넘는데 심미연 씨는 그 정도 돈이 있나?” 심미연은 고급 브랜드로 치장한 여자를 차가운 눈빛으로 힐끗 쳐다봤다. 온지유의 가장 친한 친구 한서윤이었다. 예전에 온지유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제일 먼저 등장하던 사람이었지만 심미연은 그녀를 한 번도 신경 쓴 적이 없었다. 마주쳐도 아예 모른 척하며 항상 그녀를 무시했다.“너 강지한 씨 찾으러 온 거지? 몇 년이나 죽었는데 아직도 미련 못 버리다니. 진짜 역겨워.” 한서윤은 심미연을 쓰레기라도 보는 듯한 눈초리로 쏘아봤다. 심미연은 그 여자의 악의적인 기운을 똑똑히 느꼈고 아름다운 도화 같은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차분히 응시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
“우린 서로 잘 알지도 않잖아요. 그러니까 박시훈 씨, 이런 농담은 삼가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좋은 소리는 안 나올 거예요.” 심미연의 말은 단호했고 표정에는 조금의 여지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불편하게 만든 사람에게 결코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박시훈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바로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화내지 마요. 농담 안 할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 살짝 겁이 났다. 정색한 심미연의 얼굴은 꽤 무서웠다. 강지한이랑 맞먹는 수준이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심미연은 노골적으로 그를 내보내려는 기색을 멈추지 않았다. “저... 진짜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에요. 한 번 생각해보는 건 어때요?” 박시훈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연애도 해본 적 없고 야자 마음을 얻는 방법도 몰랐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속 생각을 그대로 내뱉는 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심미연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리고 곧장 소파에서 일어나 말했다. “이제 가세요.”그녀는 주저함 하나 없이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박시훈은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진심이었고 말 그대로 사실이였다. ‘난 능력도 있고 괜찮은 사람인데 서로 마음만 맞으면 잘될 수 있는 거 아닌가?’그렇게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심미연은 이미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박시훈 씨, 조심히 가세요. 멀리는 안 갈게요.”그녀는 박시훈이 불쾌해하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가 무슨 감정을 느끼든 어떤 생각을 하든 그건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방금 전 그의 자기중심적인 말투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으니까. 박시훈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솔직히 이대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뭔가 씁쓸하고 아쉽고 괜히 찬물 끼얹힌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는 마음속으로
심미연은 그가 심태하까지 조사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순간적으로 본능처럼 눈앞의 남자를 다시 보게 됐다. 겉보기엔 멋대로 굴고 책임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한량 같았지만 그의 눈빛만은 달랐다. 지나치게 날카롭고 마치 사람의 속까지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그건 결코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눈이었다. ‘이 남자, 뭐지... 정말 이상한 사람인데.’겉모습만 보면 철없어 보이다가도 또 어떤 순간에는 의외로 능력 있어 보였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들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게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건 그가 왜 굳이 자신을 찾아와 이런 말을 꺼내는가였따. ‘설마 진심으로 그냥... 내 정체가 궁금해서?’“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저 진짜 악의는 없어요.” 박시훈은 양손을 번쩍 들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하늘에 맹세할게요.”심미연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그래서 당신이 날 찾아온 목적이 뭐죠?”박시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진짜 이유를 말해도 돼요?” 그의 갈색 눈동자가 살짝 번쩍였고 그의 얼굴엔 순진해 보일 정도로 천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심미연은 속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돈 뜯어내려는 건가? 내가 그런 일에 쉽게 넘어갈 만큼 만만해 보였나.’“좋아합니다.”그가 느닷없이 말했다. “그 말 하려고 온 거예요. 좋아해도 될까요?” 심미연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박시훈의 얼굴엔 서서히 불안한 기색이 떠올랐다. 결국 그는 숨겨왔던 속마음을 한 번에 쏟아냈다. 망설일 시간 따윈 없었다. 그보다 먼저 마음을 전하지 않으면 강지한이 그녀를 데려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컸다. 심미연은 그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또박또박 물었다. “당신 지금 자기가 무슨 말 하고 있는지는 알아요?”그녀는 그가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웠다. 서너 번 얼굴을 마주친 게 전부였고 제대로 된 인사조차 나눈 적 없는 사이였다. ‘그런데 나타
심미연은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심, 심 대표님... 아까 어떤 남자분이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대표님을 찾으러 올라가셨어요.”프런트 직원의 목소리는 떨렸고 말도 더듬었다. “누구라고요?” 심미연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장미를 들고 자신을 찾아올 만한 사람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확실히 저를 찾은 거 맞아요?” “네... 확실합니다. 제가 막으려고 했는데 그분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올라가셨어요...” 잘릴까 봐 겁이 난 프런트 직원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얼버무렸다. 그녀는 심미연이 이 거짓말을 영원히 눈치채지 않길 바랐다.심미연은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장미를 들고... 누굴까?’그때 사무실 문 밖에서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났다. 심미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조용히 말했다. “알겠어요. 일 보세요.”말을 마치기도 전에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갔다. ‘설마... 강지한? 다시 만날 일 없다고 말했는데 또 온 건가?’ 전화를 끊은 심미연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당신...?” 며칠 전, 하늘 하우스 앞에서 명함을 건넸던 그 남자였다.심미연은 그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전화 달라고 했었는데... 내가 깜빡했네. 근데 사무실까지 찾아올 정도면 꽤 급한 일이 있나?’ ‘자, 받아요. 이거 당신한테 주는 거예요.” 박시훈은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는 듯 장미꽃을 밀어넣으며 말했다. “할 말 있어서 왔어요. 들어가서 얘기합시다.” 심미연은 그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할 말이 뭔데요?” “앉아서 얘기해요. 당신이 힘들면 안 되니까.” 박시훈은 너무 자연스럽게 그녀 옆을 지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깔끔하고 단정한 분위기의 공간. 묘하게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박시훈은
이진영은 핸드폰을 쥔 채 반쯤 감긴 눈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아무리 뒤져도 끝내 밝혀내지 못한 아버지의 비밀. ‘설마... 한석훈이 정말 뭔가 알고 있는 건가?’‘아니면 그냥 떠보는 소리일까?’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머릿속을 뒤엉켰다.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찾고 싶은 충동이 다시 치밀었지만 이진영은 고개를 돌려 이다은의 병실로 향했다. ...이노하이브 대표실. 강지한은 막 성무진에게서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문소영이 한 무리의 남자들에게 쫓기다 결국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은 심하게 어질러졌고 문이 잠겨 있어 그녀는 도망칠 틈조차 없었다. 결국 팔과 다리가 부러진 채 119에 실려 갔다. 강지한은 메시지를 닫고 입술을 천천히 매만졌다.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가벼운 경고’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음에도 제멋대로 날뛰면 그땐 진짜로 살아남지 못하게 만들 작정이었다. 막 서류를 집어 들려는 순간,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그가 전화를 받자 박시훈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한아, 큰일 났어!” 강지한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해.” “온지유가... 나왔어.” 박시훈은 말끝을 떨며 믿기지 않는 듯 말을 이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이 어떻게...?’ 믿기 힘든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무슨 수로 온지유를 꺼낸 거지?’ 강지한의 눈빛이 서서히 싸늘하게 식어갔다. “어떻게 된 거냐.” 그 말을 뱉는 순간, 심미연과 심태하가 본능처럼 떠올랐다. ‘온지유가 풀려났다고? 그럼 미연이랑 태하가 위험할 수도 있어.’‘도대체 어떤 놈이 감히 이런 짓을 벌인 거지?’ “나도 방금 들었어. 지금은 육현성 별장에 있다는 것 같아.” 박시훈은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알기에 곧장 강지한에게 알린 것이었다. “확실해?” 강지한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는 성무진을 시켜 교도소 내부를 철저히 관리하게 했었다. 온지유가 아무리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아이가 축복받지 못한 존재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고 싶지 않았다. “안 돼.” 이진영은 단호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하더니 곧장 의자에 앉아 이다은의 창백한 손끝을 조심스레 감쌌다. 그리곤 한 톤 낮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육현성 그 자식은 아버지 자격 없어. 네가 그 인간 아이를 낳으면 평생 끌려다닐 거야. 정말 그걸 바라는 거야?” 이다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결국 참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육현성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는 순간, 이진영의 말처럼 그 인연은 평생 끊어낼 수 없었다. 반면 아이가 없다면 그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이다은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 곧 마음을 다잡은 듯 결심이 담긴 목소리가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알았어. 오빠, 지금 바로 수술 예약해줘.”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언젠가는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면 되는 거라고. “그래. 병실에 얌전히 있어. 어디 가지 말고. 알았지?” 이진영은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는 이미 진운혁과 연락을 마친 상태였다. 진운혁은 이다은이 재판에서 반드시 승소할 수 있도록 돕겠다 했고 육현성의 재산 절반은 가져올 수 있을 거라 자신 있게 말했다. 이진영은 믿고 있었다. 동생이 건강만 회복하고 이혼만 잘 마무리된다면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육현성 같은 쓰레기는 다은이 앞에 다시는 나타나선 안 돼.’ “알겠어. 오빠, 이제 가봐.” 결정을 내린 이다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마음 한쪽이 가볍게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언젠가는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만날 테니까. 이진영은 병원 접수처로 향해 곧바로 수술 일정
“오빠, 나한테 이렇게 잘해줘서 정말 고마워.”온지유는 그의 목에 팔을 감고 눈을 반쯤 감은 채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하면서도 애교가 섞여 있었다. 지금의 온지유에게 육현성은 유일한 의지처였다. 그를 잃는다면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육현성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됐다. ‘심미연, 기다려. 복수할 기회는 반드시 만들 거야.’“세상에 이렇게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은 오빠밖에 없어.”온지유는 그의 품에 몸을 기댄 채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유야, 그런데 만약 네가 날 배신한다면 그때는 나도 내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르겠어.”육현성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경고했다. 그의 말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이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걸 수 있었다. 그 사랑은 너무 깊어서 그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그래서 더더욱 만약 온지유가 그를 배신한다면 그는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았다. 그의 팔이 점점 더 세게 조여오는 걸 느낀 온지유는 잠시 두려움이 스쳤다. 그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강지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을 죽음보다 더 끔찍하게 대할 것이라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그 상상만으로도 차가운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오빠, 걱정하지 마. 난 절대 오빠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이번 생엔 오빠만 사랑할 거고 영원히 오빠 곁에 있을 거야.” 온지유는 속마음을 감추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은 여전히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앞으로 육현성 앞에선 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조금이라도 의심을 품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날 거라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네가 날 사랑한다면 나도 너를 끝까지 사랑할 거야.” 그의 말은 무엇보다 진심이 담겨 있었다. “지유야, 이제 좀 쉬어. 나는 아래층 좀 보고 올게. 밥 먹을 때 부를게
보통이라면 그녀가 화를 내면 강지한은 한 발 물러섰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전혀 양보하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핸드폰을 꺼내 성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무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소영은 성무진을 보는 순간 얼굴이 창백해지며 공포에 휩싸였다. 이번엔 정말 끝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강지한에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이렇게까지 몰리게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의 차갑고 무표정한 시선만이 머릿속에 반복되었다. 성무진은 그녀 앞에 서서 공손히 손짓하며 말했다. “큰 사모님, 모시겠습니다.”문소영은 강지한을 향해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눈빛을 보냈다. “강지한! 너 계속 이렇게 나를 몰아붙인다면 정말 당장 죽어버릴 거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책상 쪽으로 달려가 머리를 책상 모서리에 부딪히려 했다. 그러나 강지한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으며 어두운 표정으로 단호하게 명령했다. “성 비서, 데려가.”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그는 문소영의 모습이 점점 더 불쾌하게 느껴졌다. 성무진은 빠르게 다가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실례하겠습니다. 큰 사모님.” 그 말과 함께 그는 차가운 손길로 문소영을 밖으로 끌고 나갔다. “놔! 당장 놔!” “손 떼! 지금 당장!” 문소영은 크게 외치며 저항했지만 성무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거칠게 차에 태웠다. 차에 태운 후 성무진은 팔을 놓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문소영은 재빨리 차 문을 열려 손을 뻗었다. “큰 사모님, 죄송합니다.”성무진은 고개를 숙이며 손을 들어 그녀의 목덜미를 강하게 내리쳤다. 문소영은 그대로 기절했다. 성무진은 그녀를 차 안에 눕히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차 밖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역시 대표님을 화나게 하면 끝이 좋을 리가 없지.’‘어쩔 수 없군.’ 그 순간, 성무진은 갑자기 떠오른
도진혁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바로 대답했다. “물론이죠. 저는 진지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신하린 곁에 이렇게 오랜 시간 머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어제 하린이를 하늘 하우스로 데려갔어요. 한 번 들러보세요. 하린이 곁에 조금 있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심미연은 서류봉투를 흘깃 바라본 뒤 덧붙였다. “이 서류는 제가 꼼꼼히 검토하고 나서 다시 연락드릴게요.”도진혁이 직접 합작 제안서를 들고 찾아온 이상 함부로 거절할 수는 없었다. 수익이 보장된 일이라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 이상 놓쳐선 안 되는 법이었다. “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도진혁은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사무실을 나섰다.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그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갔다. 심미연은 그가 사라진 문 쪽을 한참 바라보다 방금 전 그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왠지 모르게 마음 한쪽에서 조용한 불안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하린이 목에 남은 상처가 아직 그대로일 텐데...’‘진혁 씨가 그걸 보면... 혹시 이진영 씨에게 따지러 가는 건 아닐까?’강지한 사무실.성무진은 문소영을 데려다주고 서둘러 떠났다. 강지한의 얼굴엔 냉기가 서려 있었고 성무진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사무실 안에서 뭔가 큰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문소영은 익숙하다는 듯 안으로 들어섰고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느긋하게 쏘파에 앉았다. “비서한테 차 좀 가져오라 해. 괜찮은 차로.” 그녀는 비서부가 꽤 유능하단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웬만한 건 다 알아서 해줄 정도로. 하지만 강지한은 말없이 서랍을 열어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와 그 봉투를 그녀의 무릎 위에 떨어뜨렸다. “직접 보시죠.”“뭘 보라는 거야?” 문소영은 그를 향해 냉정하게 시선을 던졌다. “보면 알아요.” 강지한은 담담하게 말하고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뭐가 들어있길래...?” 문소영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봉투를 들었다. 무
심미연은 박유진이 수년 동안 마음을 다해 사랑해온 여자였다. 그런 여자를 박유진이 쉽게 놓을 리 없었다. 조용히 그의 뒤를 따르던 비서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표님, 정말 모든 걸 걸고 계시는군요... 제발 심미연 씨가 그 진심을 외면하지 않기를...”한편, 심미연은 전화를 끊자마자 문 쪽을 향해 말했다. “들어오세요.”조심스레 열린 문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도진혁이었다. 그는 마치 급히 돌아온 듯 피곤하고 바쁜 기색이 역력했다. “도 비서님...?” 심미연은 예상치 못한 사람을 보고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명 휴가를 낸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왜 지금... 여기 있는 거지?’그의 뒤에서 따라 들어온 비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조용히 말했다. “심 대표님, 실례하겠습니다. 이분은 저희 도강홀딩스의 대표, 도진혁 대표님이십니다.”비서는 서류봉투를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말없이 한 걸음 물러섰다. “이 서류는 도강홀딩스와 은성 그룹이 합작할 프로젝트에 관한 제안서입니다. 먼저 검토 부탁드립니다.”심미연은 비서가 놓고 간 서류를 잠시 바라보다가 도진혁을 천천히 되돌아보며 눈썹을 살짝 올렸다. ‘도진혁 대표님...?’ ‘그렇다면 도진혁 씨가 휴가를 낸 이유는... 회사를 물려받기 위한 준비였던 건가?”그때 도진혁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최 비서, 잠깐 나가 있어. 심 대표님과 단둘이 얘기할 게 있어.” 도진혁은 정장을 완벽하게 차려입고 평소보다 더 단정하고 신경 쓴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말투와 행동은 여유롭고 예의 바르며 그에게서 흐르는 것은 전형적인 사회 엘리트의 품위였다. “네. 대표님.” 최세라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문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떠나기 전에 조심스럽게 심미연을 한 번 쳐다봤다. ‘이분이 대표님이 좋아하는 여자분인가... 정말 예쁘다. 대표님이 회사를 물려받은 이유가 이분 때문이라면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