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Chapter 701 - Chapter 710

748 Chapters

제701화

강진혁이 나에게 가졌던 인내심이야 지난 10년 동안 충분히 증명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더 흔들어 보는 게 나쁠 건 없었다.“미안해요, 오빠. 좀 일이 있어서 늦었어요.”나는 자리에 앉으며 적당히 가식적인 사과를 건넸다.“괜찮아. 네가 와준다면 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그는 망설임 없이 이런 말을 내뱉는 사람이었다.솔직히 듣고 있자니 어색해서 나는 괜히 테이블 위의 식기를 정리하며 시선을 피했다.그가 직원을 불러 내게 메뉴를 고르라고 했지만 이미 배 속에는 배성재가 해준 미트볼이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솔직히 한 입도 들어갈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 먹을 수도 없으니 적당히 간단한 메뉴만 골랐다.그런데 막상 음식이 나오고 보니 내가 시킨 것 외에도 다양한 요리가 가득 깔려 있었다.“오빠, 그냥 간단히 먹으면 되잖아요. 배만 채우면 되는 건데 이렇게 많이 시키면 남는 게 더 많을걸요?”나는 테이블 위의 요리를 가리키며 덧붙였다.“음식 하나하나 다 소중한 거예요.”“이건 다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야. 조금씩만 맛봐. 못 먹으면 싸 가면 되니까.”그의 말이 현실적이라 딱히 반박할 수 없어 그저 수긍하며 젓가락을 들었다.“와인 한잔할래?”나는 순간, 저번에 술에 취한 척했던 기억이 떠올랐다.그때 나는 끝까지 취한 척을 밀어붙였고 모든 걸 모른 척할 수 있었다.그의 의도를 알기에, 더욱 태연한 척하며 답했다.“좋아요. 근데 저 또 취하면 오빠가 집까지 바래다줘야 해요.”“당연하지.”그는 웨이터를 불러 우리에게 와인을 따르게 했다.솔직히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없었지만 그는 예상이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말을 이끌었다.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나와 강유형이 항상 그를 뒷전으로 두었다는 이야기까지.그러다가 강유형의 이름이 나오자,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그가 피를 토하던 모습이 떠올랐다.그 피가 단순한 감정적인 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몸 상태가 심각한 건지 모르겠지만.“오빠, 요즘 강유형 만난 적 있어요?”“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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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2화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얼어붙었고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 피하려 했다.하지만 상대는 강진혁이었고 그가 원하면 내가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지원아, 왜 다른 사람은 되고 나는 안 돼? 나도 그들만큼 널 사랑하는데.”그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고 마치 집착과 분노가 뒤섞인 듯한 말투였다.나는 힘을 다해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단단하게 붙잡힌 몸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그의 입술이 내 이마를 스치고 뺨을 따라 내려왔다.그리고 내 목덜미로 파고들려는 순간 갑자기 허리를 감싸고 있던 그의 팔이 강하게 밀려났다.“강진혁 씨, 남녀 사이의 일은 서로의 동의가 있어야 즐거운 법이죠. 억지로 하면 재미없지 않겠어요?”배성재의 목소리는 진정우와 정말 달랐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더 없는 안정감을 주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배성재의 옷깃을 붙잡았고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그래도 놓지 않았다.배성재는 나와 강진혁 사이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강진혁이 마셨던 술이 그의 정신을 흐리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선을 넘은 건 단순한 술기운 때문만은 아니었다.강진혁은 강유형이 떠난 후, 자신에게 기회가 생길 거라고 믿었을 것이다.그런데 뜻밖에도 진정우를 닮은 남자가 나타났다.강진혁은 한 번 죽였다고 생각한 진정우가 다른 모습으로 돌아오자, 분명 더 초조해졌을 터였다.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넌 뭔데 나한테 훈계질이야?”분노로 가득 찬 시선이 배성재를 향했다. 하지만 배성재는 여전히 태연한 얼굴로 답했다.“명망 있는 집안 자제라도, 강요하는 건 좀 치사한 거 아닌가요?”배성재는 가볍게 웃으며 내게 시선을 돌렸다.그러나 그의 눈빛 속에는 싸늘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그렇지 않나요, 강진혁 씨?”강진혁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눈빛이 서서히 위험하게 변해갔다.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극단적으로 치닫기 전에,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었다.나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그의 소매를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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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3화

“가만히 있어요.”배성재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고 그동안 만들어낸 가짜 목소리가 아닌, 내가 익숙한 진정우의 본래 목소리였다.그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나는 그를 더욱 떠보며 몸을 기대었다.“몸이 차갑네요. 좋아요...”그때,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이 나오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주변의 시선이 느껴지자, 배성재는 단숨에 나를 번쩍 안아 차로 향했다.그의 품에 안긴 채, 나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고 오히려 그의 셔츠 단추를 건드리거나, 품 안에 더 파고들며 장난을 쳤다.그리고 확실히 그의 몸이 점점 긴장하는 게 느낄 수 있었다.팔에 힘이 들어가고 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졌으며 체온까지 뜨거워지고 있었다.‘거봐, 아무리 버티려고 해도 결국 못 버티잖아.’그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이 남자는 결국 내게 무너질 운명이니까.그가 조수석에 나를 내려놓으려는 순간, 나는 그의 목을 다시 감싸안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입술이 그의 목젖 근처를 스쳤고 망설임 없이 그의 목을 강하게 빨아버렸다.쪽!솔직히 말해, 나도 꽤 흥분한 상태였다. 진정우와 헤어진 이후로, 너무 오랫동안 남자와 아무런 접촉 없이 지냈다.그리고 이 남자야말로 내가 그토록 원했던 바로 그 사람이기에 내 몸이 먼저 반응하고 말았다.배성재는 내 팔을 단단히 붙잡아 내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고 깊고 날 선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지원 씨, 제대로 보세요. 저는 배성재예요. 당신의 진정우가 아닙니다. 그래도 원하시나요?”이 남자는 분명 진정우인데 끝까지 아닌 척을 하고 있다.나는 단숨에 몸을 밀어 올려 그에게 바짝 다가가 그의 목젖을 망설임 없이 세게 빨아버렸다.이건 단순한 도발이 아니라 그를 미치게 만들 의도적인 공격이었다.그는 짧은 숨을 삼켰고 어깨가 움찔하는 게 느껴졌지만 나를 밀어내지는 않았다.나는 끝까지 버텨보려 했지만 결국 힘이 풀려 의자에 기대듯 쓰러져 숨을 고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배성재도 나를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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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4화

배성재가 나를 집까지 데려다줬을 때, 나는 이미 눈을 감고 잠든 척하고 있었다.그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뭐가 있겠나?진정우와 닮았지만 그 이유로 그와 함께 밤을 보낼 순 없었다. 그렇게까지 하면 나를 너무 쉽게 가질 수 있다고 착각할 테니까.차에서 나를 안아 들고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가 귓가에 낮고도 짓궂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아직도 원해요?”그 말투에는 묘한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대신, 그가 침대에 나를 내려놓으려 할 때 그의 팔을 붙잡았다.그렇게, 그를 나와 함께 침대에 눕게 했다.너무 오랫동안 혼자였기에 오늘 밤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 그냥 그의 곁에서 자고 싶었다.그는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그리고 어두운 방 안에서 들려온 조용한 속삭임.“미안해요. 조금만 더... 기다려 줘요.”그 한마디에, 나는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이유가 있어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좋아, 기다려 줄게. 내가 직접 듣게 될 때까지. 네가 내게 ‘나는 진정우야’라고 말하는 그날까지.’아침이 밝아오고 익숙한 냄새가 퍼졌다. 부엌에서 나는 따뜻한 죽 향기를 맡자 묻지 않아도 배성재가 아직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일어나 거실로 나가자, 예상대로 부엌에서 뭔가를 준비하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꿀물을 가득 담은 유리컵 하나가 놓여 있었다.사실, 어젯밤 나는 깊이 잠들지 못했다. 너무 오랜만에 가까이에서 그를 느꼈기에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그리고 분명 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는 내내 가만히 있었지만 나는 그의 숨소리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흔들림을 알고 있었다.그 모든 생각을 떠올리자,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떠올랐다.나는 천천히 다가가며 능청스럽게 물었다.“어? 배성재 씨, 왜 여기 있어요?”일부러 놀란 듯한 연기를 하자, 그가 살짝 돌아보며 어이없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그런데 그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는 그의 목 아래쪽에서 어젯밤 내가 남긴 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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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5화

‘이 남자, 날 가지고 놀았던 거야.’나는 천천히 입안의 음식을 씹으며 손가락 끝으로 배성재의 턱을 살짝 들어 올리더니 입술을 가까이 가져가면서 속삭였다.“배성재 씨, 이미 내 사람이잖아요? 그 정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 않아요?”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깊어졌다.그가 뭔가 행동을 취하려는 찰나, 나는 재빠르게 손을 거두고 몸을 피했다.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욕실로 들어가 손을 씻었다.솔직히 말해, 아침까지 배성재가 곁에 있어 준 게 싫진 않았다.그런데도 이렇게 장난을 치고 싶은 건, 그가 여전히 ‘배성재’라는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한편으로는 어젯밤 강진혁이 나에게 보인 집착이 떠올랐다.그가 내게서 무언가를 빼앗으려는 그 순간 그 모습이 너무 위협적이었다.어쩌면 이제 더 이상 그를 이용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그에게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나는 결국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그리고 어젯밤 일로 강진혁이 배성재를 그냥 둘 리 없었다.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그의 계획을 망쳤으니 반드시 무언가를 꾸미고 있을 것이다.욕실에서 나왔을 때, 배성재는 이미 아침상을 다 차려놓고 있었다.그의 손에는 따뜻한 죽 한 그릇이 들려 있었다.나는 테이블에 앉아 숟가락을 들어 올리며 무심히 물었다.“오늘 어디 가요?”“왜요? 뭐 부탁할 일이라도 있어요?”“어젯밤에 그렇게 강진혁을 자극했으니 아무 일 없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겠죠?”배성재는 별 대답 없이 내 앞에 반찬을 하나 더 올려놓으며 말했다.“이거 좀 먹어 봐요.”나는 그를 노려보았다.“진짜 걱정 안 돼요? 강진혁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요?”그는 조용히 숟가락을 내려놓았다.“어차피 가만히 두지 않았을 거예요.”그 말은 그가 이미 강진혁이 자신을 없애려 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잠시 정적이 흘렀고 나는 그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낮게 중얼거렸다.“강진혁은 절대 직접 손에 피를 묻히는 타입이 아니에요. 대신, 자기 손이 아닌 다른 손을 움직이겠죠.”배성재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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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6화

솔직히 나도 정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싶었다.이미 배성재가 진정우라는 걸 확신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으로 인정받는 것만이 마지막 퍼즐 조각이었다.배성재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정면으로 마주 본 채 대답했다.“저는 저예요. 도련님이라면 제 정체를 이미 충분히 조사하지 않으셨나요?”그 말을 듣자마자, 전화기 너머에서 용준호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행운을 빌게.”그렇게 말한 뒤, 그는 가차 없이 전화를 끊었다.배성재도 조용히 폰을 내려놓고는, 아무렇지 않게 남은 식사를 마저 끝냈다.그는 통화를 하면서도 계속 식사를 했고 그에 비해 나는 한 입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나도 모르게 젓가락을 내려놓고 그를 바라봤다.“안 먹어요? 이러다 다 식겠는데요.”방금까지 강진혁과 용준호 사이에서 위협을 받고 있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그의 태도는 너무나 태연했다.나는 답답한 마음에 조용히 입을 열었다.“방금 전화, 경고였어요. 그리고 위험할 수도 있다는 암시였고요.”배성재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여유롭게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다.“알고 있어요.”“알면서도 이렇게 태연해요? 걱정은 안 돼요?”그는 휴지 한 장을 접으며 담담히 말했다.“걱정한다고 바뀌는 게 있나요?”그의 태연한 모습이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나는 어떻게든 그를 지킬 거라고 이미 결심했다. “배성재.”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한번 묻기로 했다.“방금 용준호가 했던 질문, 나도 해볼게요. 당신... 진짜 진정우 맞죠?”그는 휴지를 접던 손을 멈추고 깊고 어두운 눈동자로 나를 꿰뚫듯 응시했다.“지원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또다시 되묻는 그의 태도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나는 알아요. 진정우 맞아요.”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나는 천천히 그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분명 그의 얼굴은 진정우와 똑같았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달랐다.“근데 이상해요.”“뭐가요?”휴지가 뭐가 재밌다고 그는 계속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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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7화

배성재가 손가락으로 내 반지를 가리킬 때, 혹시나 하나를 빼가며 답을 해주려나 싶었지만 그는 예상과 다른 말을 내뱉었다.“하지만 나름 잘 어울려요. 개성도 있고.”나는 순간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결국 끝까지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지.’나는 그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그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고 그에겐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내 앞에서만큼은 솔직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그는 나를 믿지 않는 걸까, 아니면 나조차 경계하는 걸까?하지만 나는 이미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으니까 상 없었다.“오늘 시간 있으면 나랑 한 사람 좀 만나러 가줘요.”나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전에 말했던 진소영 말이에요.”내가 진소영이와 한 약속을 지키려는 거였다.그녀는 어떻게든 ‘진정우’와 한 번 만나고 싶어 했고 내가 만든 ‘대역’을 직접 확인해야 안심할 수 있을 테니까.배성재는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좋아요.”그는 내 앞에 놓인 아침 식사를 가리키며 말했다.“그러니까 빨리 먹어요.”그가 정성 들여 만든 아침이었고 내 입맛에도 잘 맞았기 때문에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무엇보다 어젯밤에는 거의 먹지도 못하고 술만 마셨으니 지금쯤 허기가 질 때였다.내가 식사를 하는 동안, 배성재는 테라스로 나갔다. 나는 슬쩍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아마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거겠지.그는 겉으로 태연한 척했지만 그 역시 방금 전 대화로 인해 흔들리고 있었다.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가 나를 속이고 있는 동안, 그 역시 속으로는 흔들리고 있었던 거였다.그가 그렇게까지 애써 감추는 걸 보면 어쩌면 나보다 더 괴로운 건 그일지도 모른다.그런 생각이 드니 괜히 마음이 짠해졌다.그래서 내가 식사를 마치자마자, 일부러 부엌 정리를 시작했다.“그거 놔요. 제가 할게요. 지원 씨는 가서 씻고 준비나 하세요.”그가 내게 다가왔을 때,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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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8화

나는 배성재가 말한 뜻을 이해했다.이소희를 만나고 싶다면 오늘 밤이 기회라는 거다.나는 그 말을 되새기며 배성재와 함께 유치원으로 향했다.도착했을 때 마침 진소영이 아이들을 데리고 바깥에서 놀이를 하고 있었다.태어나서부터 죽기 전까지, 가장 행복한 시절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유치원 시절이 아닐까. 공부에 쫓길 필요도 없이, 그저 신나게 뛰어놀기만 하면 되는 시기.나와 배성재는 아이들의 놀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멀찍이서 조용히 지켜보았다.하지만 아이들은 우리가 신경 쓰지 않아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봤다.특히, 배성재에게 관심이 집중됐다.그러던 중, 한 장난꾸러기 아이가 갑자기 소리쳤다.“선생님! 또 새로운 남자 친구 생긴 거예요?”진소영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남자 친구 아니고 우리 오빠야.”하지만 아이들은 믿지 않는 눈치였고 여기저기서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남자 친구! 남자 친구.”진소영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나는 준비해 온 선물 꾸러미를 들고 아이들에게 다가갔다.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손을 내밀었고 선물을 받고 나자, 앞서 떠들던 아이가 다시 한마디 했다.“고마워요! 선생님 남자 친구.”나는 순간 빵 터졌고 진소영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애들은 너무 조숙하다니까.”진소영이 그렇게 말하며 우리 앞으로 다가왔고 그녀는 배성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순간 심장이 두근거리며 긴장감이 몰려왔다.만약 진소영이 배성재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나는 여태껏 그가 진정우라고 확신해 왔지만 어쩌면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가 직접 인정해 주지 않는 한, 완전히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하지만 진소영은 1분 가까이 그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한 걸음 다가가더니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오빠...”그녀의 떨리는 목소리가 내 가슴을 울렸다.배성재 역시 그녀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낮게 말했다.“선생님 역할, 잘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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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9화

아이들은 ‘선물’이라는 말에 환호성을 지르며 순식간에 내 곁을 떠나 소지훈에게 달려갔다.아이들이 이렇게 거리낌 없이 그에게 다가가는 걸 보면 이미 친숙한 존재가 된 듯했다.나는 바닥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이들 틈에서 엉망이 된 머리를 손으로 대충 정리하고 얼굴과 이마에 남은 아이들의 입맞춤 자국도 휴지로 닦아냈다.그때, 소지훈이 다가와 휴지를 내밀었다.“아이들 장난이 좀 심하죠?”나는 휴지를 받아들며 웃었다.“네, 하지만 참 귀여워요. 아이들이랑 있으면 나도 같이 어려지는 기분이에요.”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서 배성재와 진소영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소지훈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가끔은 너무 말썽을 부려서 소영이도 몇 번 울더라고요.”그가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피하는 걸 보니 그가 무슨 이야기를 숨기려는지 알 것 같았다.“그럼 이제 확실해졌어요? 진소영 씨에 대한 감정이 어떤지.”소지훈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소영이는... 희연 씨와는 달라요.”그 한마디가 모든 걸 설명해 주는 듯했다.그는 지금 진소영이 유희연의 심장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녀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었다.“그렇다면 나와 유희연 씨가 닮은 건 궁금하지 않아요?”그는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그러다 이내 시선을 돌리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혹시... 먼 친척이라도 되는 거예요?”나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정확해요.”그러고는 내가 유희연과 어떤 관계인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러자 소지훈은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녀가 살아 있었다면 정말 기뻐했을 거예요. 항상 형제자매가 없어서 외롭다고 했거든요.”그녀가 살아 있었다면 나와 함께 가족처럼 지낼 수 있었을 텐데.그러나 세상은 늘 원하는 걸 쉽게 주지 않는다.나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소지훈에게 진소영을 서울여대로 보내는 계획을 이야기했다.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그의 표정이 딱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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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0화

나는 결국 두 사람을 갈라놓는 그 악역을 맡아야 했다.소지훈과 진소영의 관계에 대해 너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도 이제는 지칠 정도였는데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그래서 소지훈은 아직 진소영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녀를 놓아주는 게 낫다.“누나가 말하는 건... 저보고 소영이랑 거리를 두라는 뜻인가요?”소지훈이 망설이며 물었다.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솔직하게 답했다.“네. 소영이에게서 멀어져 보세요. 그러면 본인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소지훈은 멀리 서 있는 진소영을 바라보았다.“그런데... 소영이는 저한테 너무 의지해요. 제가 연락을 하루만 덜 해도 불안해하는데...”사랑에 빠진 사람은 늘 상대방의 세계 속에 온전히 존재하고 싶어 한다. 진소영이 그에게 얼마나 깊이 빠져 있는지, 그 말 한마디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그래서 그런 거예요.”나는 단호하게 말했고 소지훈은 고개를 떨궜다.나는 그를 지켜보다가 다시 물었다.“혹시, 이제 익숙해진 건가요? 매일 그녀가 곁에 있는 게 당연하다고 느껴지세요?”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조금만 시간을 주실 수 있나요?”나는 그가 언제까지고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걸 알았다.“얼마나요?”“최대한 빨리 생각을 정리할게요.”나는 두어 초 고민하다가 말했다.“일주일. 딱 일주일 동안 본인의 감정을 확실히 정하세요. 소영이를 사랑한다면 솔직하게 고백하고 정식으로 만나세요. 소영이가 서울여대로 가면 남자 친구로서 옆에서 지켜주고요. 그런데 만약 아니라면... 확실하게 말해줘야 해요.”소지훈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아마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그럼 더 좋고요.”그가 고민을 질질 끌수록 진소영에게 더 큰 상처가 될 테니까.그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있을 때쯤, 배성재가 다가왔다.“더 볼일 없으면 이제 가도 되죠?”“오빠, 저녁 같이 먹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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