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재가 나를 집까지 데려다줬을 때, 나는 이미 눈을 감고 잠든 척하고 있었다.그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뭐가 있겠나?진정우와 닮았지만 그 이유로 그와 함께 밤을 보낼 순 없었다. 그렇게까지 하면 나를 너무 쉽게 가질 수 있다고 착각할 테니까.차에서 나를 안아 들고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가 귓가에 낮고도 짓궂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아직도 원해요?”그 말투에는 묘한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대신, 그가 침대에 나를 내려놓으려 할 때 그의 팔을 붙잡았다.그렇게, 그를 나와 함께 침대에 눕게 했다.너무 오랫동안 혼자였기에 오늘 밤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 그냥 그의 곁에서 자고 싶었다.그는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그리고 어두운 방 안에서 들려온 조용한 속삭임.“미안해요. 조금만 더... 기다려 줘요.”그 한마디에, 나는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이유가 있어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좋아, 기다려 줄게. 내가 직접 듣게 될 때까지. 네가 내게 ‘나는 진정우야’라고 말하는 그날까지.’아침이 밝아오고 익숙한 냄새가 퍼졌다. 부엌에서 나는 따뜻한 죽 향기를 맡자 묻지 않아도 배성재가 아직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일어나 거실로 나가자, 예상대로 부엌에서 뭔가를 준비하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꿀물을 가득 담은 유리컵 하나가 놓여 있었다.사실, 어젯밤 나는 깊이 잠들지 못했다. 너무 오랜만에 가까이에서 그를 느꼈기에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그리고 분명 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는 내내 가만히 있었지만 나는 그의 숨소리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흔들림을 알고 있었다.그 모든 생각을 떠올리자,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떠올랐다.나는 천천히 다가가며 능청스럽게 물었다.“어? 배성재 씨, 왜 여기 있어요?”일부러 놀란 듯한 연기를 하자, 그가 살짝 돌아보며 어이없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그런데 그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는 그의 목 아래쪽에서 어젯밤 내가 남긴 흔
‘이 남자, 날 가지고 놀았던 거야.’나는 천천히 입안의 음식을 씹으며 손가락 끝으로 배성재의 턱을 살짝 들어 올리더니 입술을 가까이 가져가면서 속삭였다.“배성재 씨, 이미 내 사람이잖아요? 그 정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 않아요?”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깊어졌다.그가 뭔가 행동을 취하려는 찰나, 나는 재빠르게 손을 거두고 몸을 피했다.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욕실로 들어가 손을 씻었다.솔직히 말해, 아침까지 배성재가 곁에 있어 준 게 싫진 않았다.그런데도 이렇게 장난을 치고 싶은 건, 그가 여전히 ‘배성재’라는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한편으로는 어젯밤 강진혁이 나에게 보인 집착이 떠올랐다.그가 내게서 무언가를 빼앗으려는 그 순간 그 모습이 너무 위협적이었다.어쩌면 이제 더 이상 그를 이용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그에게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나는 결국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그리고 어젯밤 일로 강진혁이 배성재를 그냥 둘 리 없었다.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그의 계획을 망쳤으니 반드시 무언가를 꾸미고 있을 것이다.욕실에서 나왔을 때, 배성재는 이미 아침상을 다 차려놓고 있었다.그의 손에는 따뜻한 죽 한 그릇이 들려 있었다.나는 테이블에 앉아 숟가락을 들어 올리며 무심히 물었다.“오늘 어디 가요?”“왜요? 뭐 부탁할 일이라도 있어요?”“어젯밤에 그렇게 강진혁을 자극했으니 아무 일 없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겠죠?”배성재는 별 대답 없이 내 앞에 반찬을 하나 더 올려놓으며 말했다.“이거 좀 먹어 봐요.”나는 그를 노려보았다.“진짜 걱정 안 돼요? 강진혁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요?”그는 조용히 숟가락을 내려놓았다.“어차피 가만히 두지 않았을 거예요.”그 말은 그가 이미 강진혁이 자신을 없애려 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잠시 정적이 흘렀고 나는 그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낮게 중얼거렸다.“강진혁은 절대 직접 손에 피를 묻히는 타입이 아니에요. 대신, 자기 손이 아닌 다른 손을 움직이겠죠.”배성재는 아
솔직히 나도 정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싶었다.이미 배성재가 진정우라는 걸 확신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으로 인정받는 것만이 마지막 퍼즐 조각이었다.배성재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정면으로 마주 본 채 대답했다.“저는 저예요. 도련님이라면 제 정체를 이미 충분히 조사하지 않으셨나요?”그 말을 듣자마자, 전화기 너머에서 용준호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행운을 빌게.”그렇게 말한 뒤, 그는 가차 없이 전화를 끊었다.배성재도 조용히 폰을 내려놓고는, 아무렇지 않게 남은 식사를 마저 끝냈다.그는 통화를 하면서도 계속 식사를 했고 그에 비해 나는 한 입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나도 모르게 젓가락을 내려놓고 그를 바라봤다.“안 먹어요? 이러다 다 식겠는데요.”방금까지 강진혁과 용준호 사이에서 위협을 받고 있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그의 태도는 너무나 태연했다.나는 답답한 마음에 조용히 입을 열었다.“방금 전화, 경고였어요. 그리고 위험할 수도 있다는 암시였고요.”배성재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여유롭게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다.“알고 있어요.”“알면서도 이렇게 태연해요? 걱정은 안 돼요?”그는 휴지 한 장을 접으며 담담히 말했다.“걱정한다고 바뀌는 게 있나요?”그의 태연한 모습이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나는 어떻게든 그를 지킬 거라고 이미 결심했다. “배성재.”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한번 묻기로 했다.“방금 용준호가 했던 질문, 나도 해볼게요. 당신... 진짜 진정우 맞죠?”그는 휴지를 접던 손을 멈추고 깊고 어두운 눈동자로 나를 꿰뚫듯 응시했다.“지원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또다시 되묻는 그의 태도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나는 알아요. 진정우 맞아요.”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나는 천천히 그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분명 그의 얼굴은 진정우와 똑같았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달랐다.“근데 이상해요.”“뭐가요?”휴지가 뭐가 재밌다고 그는 계속 접
배성재가 손가락으로 내 반지를 가리킬 때, 혹시나 하나를 빼가며 답을 해주려나 싶었지만 그는 예상과 다른 말을 내뱉었다.“하지만 나름 잘 어울려요. 개성도 있고.”나는 순간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결국 끝까지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지.’나는 그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그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고 그에겐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내 앞에서만큼은 솔직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그는 나를 믿지 않는 걸까, 아니면 나조차 경계하는 걸까?하지만 나는 이미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으니까 상 없었다.“오늘 시간 있으면 나랑 한 사람 좀 만나러 가줘요.”나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전에 말했던 진소영 말이에요.”내가 진소영이와 한 약속을 지키려는 거였다.그녀는 어떻게든 ‘진정우’와 한 번 만나고 싶어 했고 내가 만든 ‘대역’을 직접 확인해야 안심할 수 있을 테니까.배성재는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좋아요.”그는 내 앞에 놓인 아침 식사를 가리키며 말했다.“그러니까 빨리 먹어요.”그가 정성 들여 만든 아침이었고 내 입맛에도 잘 맞았기 때문에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무엇보다 어젯밤에는 거의 먹지도 못하고 술만 마셨으니 지금쯤 허기가 질 때였다.내가 식사를 하는 동안, 배성재는 테라스로 나갔다. 나는 슬쩍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아마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거겠지.그는 겉으로 태연한 척했지만 그 역시 방금 전 대화로 인해 흔들리고 있었다.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가 나를 속이고 있는 동안, 그 역시 속으로는 흔들리고 있었던 거였다.그가 그렇게까지 애써 감추는 걸 보면 어쩌면 나보다 더 괴로운 건 그일지도 모른다.그런 생각이 드니 괜히 마음이 짠해졌다.그래서 내가 식사를 마치자마자, 일부러 부엌 정리를 시작했다.“그거 놔요. 제가 할게요. 지원 씨는 가서 씻고 준비나 하세요.”그가 내게 다가왔을 때, 그의
나는 배성재가 말한 뜻을 이해했다.이소희를 만나고 싶다면 오늘 밤이 기회라는 거다.나는 그 말을 되새기며 배성재와 함께 유치원으로 향했다.도착했을 때 마침 진소영이 아이들을 데리고 바깥에서 놀이를 하고 있었다.태어나서부터 죽기 전까지, 가장 행복한 시절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유치원 시절이 아닐까. 공부에 쫓길 필요도 없이, 그저 신나게 뛰어놀기만 하면 되는 시기.나와 배성재는 아이들의 놀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멀찍이서 조용히 지켜보았다.하지만 아이들은 우리가 신경 쓰지 않아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봤다.특히, 배성재에게 관심이 집중됐다.그러던 중, 한 장난꾸러기 아이가 갑자기 소리쳤다.“선생님! 또 새로운 남자 친구 생긴 거예요?”진소영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남자 친구 아니고 우리 오빠야.”하지만 아이들은 믿지 않는 눈치였고 여기저기서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남자 친구! 남자 친구.”진소영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나는 준비해 온 선물 꾸러미를 들고 아이들에게 다가갔다.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손을 내밀었고 선물을 받고 나자, 앞서 떠들던 아이가 다시 한마디 했다.“고마워요! 선생님 남자 친구.”나는 순간 빵 터졌고 진소영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애들은 너무 조숙하다니까.”진소영이 그렇게 말하며 우리 앞으로 다가왔고 그녀는 배성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순간 심장이 두근거리며 긴장감이 몰려왔다.만약 진소영이 배성재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나는 여태껏 그가 진정우라고 확신해 왔지만 어쩌면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가 직접 인정해 주지 않는 한, 완전히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하지만 진소영은 1분 가까이 그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한 걸음 다가가더니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오빠...”그녀의 떨리는 목소리가 내 가슴을 울렸다.배성재 역시 그녀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낮게 말했다.“선생님 역할, 잘하고 있네.”
아이들은 ‘선물’이라는 말에 환호성을 지르며 순식간에 내 곁을 떠나 소지훈에게 달려갔다.아이들이 이렇게 거리낌 없이 그에게 다가가는 걸 보면 이미 친숙한 존재가 된 듯했다.나는 바닥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이들 틈에서 엉망이 된 머리를 손으로 대충 정리하고 얼굴과 이마에 남은 아이들의 입맞춤 자국도 휴지로 닦아냈다.그때, 소지훈이 다가와 휴지를 내밀었다.“아이들 장난이 좀 심하죠?”나는 휴지를 받아들며 웃었다.“네, 하지만 참 귀여워요. 아이들이랑 있으면 나도 같이 어려지는 기분이에요.”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서 배성재와 진소영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소지훈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가끔은 너무 말썽을 부려서 소영이도 몇 번 울더라고요.”그가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피하는 걸 보니 그가 무슨 이야기를 숨기려는지 알 것 같았다.“그럼 이제 확실해졌어요? 진소영 씨에 대한 감정이 어떤지.”소지훈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소영이는... 희연 씨와는 달라요.”그 한마디가 모든 걸 설명해 주는 듯했다.그는 지금 진소영이 유희연의 심장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녀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었다.“그렇다면 나와 유희연 씨가 닮은 건 궁금하지 않아요?”그는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그러다 이내 시선을 돌리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혹시... 먼 친척이라도 되는 거예요?”나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정확해요.”그러고는 내가 유희연과 어떤 관계인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러자 소지훈은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녀가 살아 있었다면 정말 기뻐했을 거예요. 항상 형제자매가 없어서 외롭다고 했거든요.”그녀가 살아 있었다면 나와 함께 가족처럼 지낼 수 있었을 텐데.그러나 세상은 늘 원하는 걸 쉽게 주지 않는다.나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소지훈에게 진소영을 서울여대로 보내는 계획을 이야기했다.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그의 표정이 딱딱
나는 결국 두 사람을 갈라놓는 그 악역을 맡아야 했다.소지훈과 진소영의 관계에 대해 너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도 이제는 지칠 정도였는데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그래서 소지훈은 아직 진소영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녀를 놓아주는 게 낫다.“누나가 말하는 건... 저보고 소영이랑 거리를 두라는 뜻인가요?”소지훈이 망설이며 물었다.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솔직하게 답했다.“네. 소영이에게서 멀어져 보세요. 그러면 본인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소지훈은 멀리 서 있는 진소영을 바라보았다.“그런데... 소영이는 저한테 너무 의지해요. 제가 연락을 하루만 덜 해도 불안해하는데...”사랑에 빠진 사람은 늘 상대방의 세계 속에 온전히 존재하고 싶어 한다. 진소영이 그에게 얼마나 깊이 빠져 있는지, 그 말 한마디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그래서 그런 거예요.”나는 단호하게 말했고 소지훈은 고개를 떨궜다.나는 그를 지켜보다가 다시 물었다.“혹시, 이제 익숙해진 건가요? 매일 그녀가 곁에 있는 게 당연하다고 느껴지세요?”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조금만 시간을 주실 수 있나요?”나는 그가 언제까지고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걸 알았다.“얼마나요?”“최대한 빨리 생각을 정리할게요.”나는 두어 초 고민하다가 말했다.“일주일. 딱 일주일 동안 본인의 감정을 확실히 정하세요. 소영이를 사랑한다면 솔직하게 고백하고 정식으로 만나세요. 소영이가 서울여대로 가면 남자 친구로서 옆에서 지켜주고요. 그런데 만약 아니라면... 확실하게 말해줘야 해요.”소지훈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아마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그럼 더 좋고요.”그가 고민을 질질 끌수록 진소영에게 더 큰 상처가 될 테니까.그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있을 때쯤, 배성재가 다가왔다.“더 볼일 없으면 이제 가도 되죠?”“오빠, 저녁 같이 먹고 가요
여전히 시치미를 떼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재미가 없어진 나는 고개를 숙여 핸드폰을 보았다.“남자들한테 인기도 많아.”배성재는 갑자기 무심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나는 눈을 부릅뜨고 그를 바라보았다.“응. 비록 누구나 나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인기는 있어.”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왜? 나랑 지훈 씨가 대화 나누는 것을 보고 질투하는 거야?”배성재는 물을 마신 후 대답했다.“아니.”배성재는 승인하지 않았다.그의 말을 들은 나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그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너의 마음속엔 오직 진정우뿐이잖아.”‘허허...’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동안 이 남자는 내가 그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기에 나에게 함부로 대했다.하지만 그가 이렇게 자신만만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손에 그와 맞춘 반지와 방울 달린 팔찌를 착용하고 있었고 진정우에 대한 감정도 부정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나는 팔찌에 달린 방울을 흔들며 말했다.“맞아. 그를 사랑하고 있어. 그러나 만질 수도, 잡을 수도 없는 이 사랑을 얼마나 견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리고...”잠시 머뭇거리거든 나는 장난스럽게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그리고 이 세상에는 유혹도 많기에 이러다가 내가 언젠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될지도 몰라.”배성재는 눈살을 찌푸렸다.“지원 씨는 갈대 같은 여자구나.”“응, 맞아. 그러니까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사랑하고 있을 때 내 옆에 있어,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때 돌아온다고 해도 이미 늦었어.”말을 마친 나는 강유형이 피를 토하던 모습이 생각났다.강유형이 제일 좋은 사례이다.진소영과 소지훈이 돌아오니 배성재와 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진소영은 웃고 떠들며 아주 즐거워 보였으나 소지훈은 걱정 가득한 얼굴이었다.진소영과 함께한 식사 자리는 아주 화목했다. 심지어 그녀는 결혼을 재촉하기도 했다.“오빠. 언니한테 프러포즈한 지도 한참 되었는데 언제쯤 결혼할 거야?”“곧 할 거야.”배성재는 자연스럽
나는 용준호가 이 요구를 제시한 것이 하나도 놀랍지 않았다. 그리고 예전에 내가 살던 집 주소지로 안리영에게 택배를 보낸 것은 나를 끌어들이기 위함이다.정말 청춘어람이라고 그의 아버지 모습을 그대로 잘 이어받았다.“먼저 무슨 일이신지 말씀해 보세요.”나는 그가 마음대로 나의 약점을 가지고 나를 협박하지 못하게 했다.그가 나를 마음대로 협박하는 것도 나의 약점이 안리영이라는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나는 그를 눈치채게 하면 안 되었다.“지원 씨, 정우가 준 물건을 내놔.”용준호는 직접적으로 말했다.나는 웃으면서 말했다.“정우 씨가 나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면 믿으실 수 있어요?”용준호는 가볍게 비웃으며 말했다.“지원 씨, 이러면 재미가 없어.”나는 조롱 하며 말했다.“믿지 않으셔도 말할게요. 전에 휴링턴에 있을 때 정우 씨와 제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직접 두 눈으로 보셨죠? 그러다 정우 씨가 사고 난 후 그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용씨 가문 딸인 설아 씨가 화장해 버렸어요. 정우 씨를 접촉하지도 못했는데 나에게 준 것이 뭐가 있겠어요?”용준호는 턱을 어루만지며 나를 바라보았다.용준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 못하게 나도 그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정말 정우 씨에게 뭐가 있다고 생각되면 준호 씨의 고모를 찾아가야 할 것 같아요.정우 씨를 제일 마지막으로 접촉한 사람이 설아 씨에요.”나는 모든 것을 용씨 가문에 떠넘겼다. 용설아가 지금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모르지만 모든 것을 그녀가 떠안는 것이 내가 떠안는 것보다 낫다.“지원 씨의 속내를 모를 줄 알아? 나의 고모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나 보지?”용준호도 바보는 아니었다.“그건 준호 씨와 고모 사이의 일이고요. 아무튼 정우 씨는 저에게 준 것이 없어요.만약 있다고 해도...”나는 일부러 머뭇거리며 말했다.“그건 바로 정우 씨가 저에게 남긴 상처뿐이죠.”나는 손으로 가슴을 찔렀다.“여기요, 칼로 한번 갈라 볼래요?”
그녀가 온라인 쇼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의 표정에서도 알 수 있었다.나는 하루 종일 수술만 한 안리영을 대신해 택배를 받아 받는 사람 이름을 확인했더니 확실히 그녀에게 온 택배였다.“설마 또 너를 애모하는 누군가가 보낸 거 아니야?”나는 택배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안리영은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책상 위의 커터 칼로 택배를 열어보았다.나도 그녀처럼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쳐다보았지만 택배의 외부 포장을 뜯어 내부 상자를 열자 그녀와 나는 동시에 돼지를 잡는듯한 비명을 질렀다.그리고 이 비명은 계속 되였다...밖에서 이 소리를 듣고 누군가가 달려 들어와 여기저기 기어다니는 뱀을 잡을 때까지 말이다.나와 안리영은 놀라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방금 택배를 여는 순간 뱀이 툭 튀어나왔고 심지어 그 뱀이 나와 안리영의 얼굴을 스쳐지났다...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와 안리영은 연체동물을 제일 무서워한다. 심지어 뱀뿐만 아니라 애벌레도 무서워한다.이는 분명히 일부러 안리영이 겁먹게 하려고 협박하는 것이다.송장에 있는 배송지를 확인해 보니 내가 전에 살던 동네였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철거된 상태이기에 협박 소포를 보낸 사람은 나를 아는 사람일 것이다.이 사람은 나를 알고 있고 지금 또 안리영도 협박한 걸 보니 나는 바로 무슨 의미인지 이해되었다.안리영이 피해를 본 여자들의 일을 조사하는 것을 도운 것이 발각된 것이다. 이는 그녀더러 더 이상 참견하지 말라는 경고이다.“리영아, 미안해. 결국엔 너도 이 일에 연루됐어.”새하얗게 질린 안리영의 얼굴을 보고 마음이 아팠던 나는 그녀에게 사과했다.내가 제일 두려워하던 일이 결국엔 일어나고 말았다.“리영아, 이 일은 여기서 그만하자. 너는 더 이상 참견하지 마. 뱀을 보낸 것을 보면 그냥 너에게 참견하지 말라는 경고야. 앞으로 더 이상 너에게 허튼짓하지는 않을 거야.”나는 안리영에게 말했다.안리영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협박 같은 거 나는 두렵지 않아.”안리영은 고집이 센
그가 나에게 할 말이란 자신의 후사에 관한 일이었다.“삼촌, 이런 말씀 하실 필요 없어요. 삼촌은 괜찮으실 거예요.”나는 그를 위로했다.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자산과 부동산 그리고 세상 물정들을 나에게 당부했다.그는 유언을 남기는 것이었다. 그와 비록 감정이 깊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이별의 아픔을 느꼈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슬퍼하는 나를 위로했다.“지원아, 누구나 다 죽게 돼 있어. 언젠가 그날이 온다면 슬퍼할 필요 없어, 나와 외숙모는 희연이와 재회하러 간 거야, 우리 가족이 다시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함께 살 수 있어.”이제야 그가 딸을 잃은 후 얼마나 슬프고 외로웠으며 그에게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게 되었다.그는 유희연에 대한 그리움을 마음속 깊이 담아두고 있었고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삼촌한테는 제가 있잖아요, 이젠 저한테도 가족이 삼촌밖에 없어요.”나와 그는 혈연이 있으나 늦게 만난 탓에 정이 깊지 않았다.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를 보고 나는 그가 삶에 대한 욕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그의 가족이지만 친딸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그는 딸을 찾으러 가려는 것이다.지금까지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내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가 무사하길 원한다면 외숙모에게 아무 일도 없어야 한다.“리영아, 구 교수님을 만나면 나를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봐 줄 수 있어?”나는 안리영을 찾아 그녀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외숙모가 넘어져 이렇게 된 후 의사는 심근경색이라고 했다. 이 분야는 구안석전문이었다.“알았어, 마침 요 며칠 사이에 선배가 돌아올 거야.”안리영이 흔쾌히 대답해서 나는 그녀의 안색이 어둡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잘됐네.”나는 흥분해서 말했다.심장 분야 전문인 구안석이 진소영의 심장 이식도 성공했기에 외숙모의 일도 희망이 있을 것이다.안리영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용은서를 언급했다.“은서가 너무 불쌍해. 집으로 일찍
“아니에요, 저는 단지 은서가 나에게로 빨리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에요.”함소은의 얼굴은 수척해 보였다.하지만 나는 그녀가 불쌍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다.“소은 씨, 며칠도 참았는데 사흘만 더 참으세요.”나의 말을 들은 함소은은 화를 냈다.“지원 씨, 지금 무슨 뜻이에요?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하는 건 아니죠?”“전 소은 씨에게 이삼일만 더 기다려달라고 하는 거예요.”나는 그녀에게 설명했다.“왜 기다려야 하는데요? 뭘 하려고 그래요?”그녀는 머리가 좋았다.나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누군가 무사하게 돌아오기를 기다리려고요.”함소은은 나를 붙잡고 말했다.“은서로 성재 씨를 맞바꾸려고 그러는 거죠?”함소은도 배성재가 무엇을 하러 갔는지 알고 있다. 나도 대범하게 인정했다.“네.”“지원 씨!”함소은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어떻게 이렇게 비열할 수가 있어요, 은서는 아직 아이일 뿐이에요.”“네, 맞아요. 은서는 당신이 딸이기도 하죠. 그런데 당신도 은서를 도구로 이용하지 않았나요?”나는 그녀에게 거침없이 말했다.게다가 윤은서도 함소은이 직접 나한테 보내온 도구였기에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던 함소은은 몇 초 후 김빠진 공처럼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이 세상에는 믿을 사람이 오직 자신뿐이네요.”나는 그녀의 인생을 꿰뚫어 본 듯한 발언을 무시한 채 차분하게 말했다.“은서는 무사할 거예요, 며칠 소은 씨와 늦게 만날 뿐이에요.”함소은은 더 말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를 데려다준 후 함소은은 떠났다. 나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음식을 주문했다. 배불리 먹고 물건을 사서 유희연의 집으로 갔다.그곳에 갇혀있는 동안 나는 꿈에서 유희연을 보았다. 비록 꿈은 무의식적인 행동이지만 나는 그녀가 나에게 무언가를 암시해 주는 것이라고 느껴졌다.유희연이 세상에서 가족은 오직 부모뿐이었기에 나는 그녀의 걱정도 그들이라고 생각
“뭔데요?”그녀의 말을 들은 안리영은 놀라지 않았다.누구든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으면 나도 그에게 보답을 원한다. 이른바 오는 것이 있어야 가는 것이 있는 법이다.“지원 씨는 제 딸을 납치한 죄를 뒤집어써야 해요.”함소은의 말을 들은 안리영은 그녀의 뜻을 이해했다.“소은 씨는 지금 이 상황을 수습하기 힘들죠?”그녀의 마음을 간파한 안리영이 말했다.함소은도 숨기지 않고 말했다.“진표 그 개자식은 은서를 매우 사랑하는 것 같지만 이 상황이 되도록 그는 조급해하지 않아요.”그녀는 자신이 딸 용은서로 용진표에게서 돈을 바꾸고 싶었지만 그는 속지 않았다. 게다가 며칠 동안 갇혀 있던 딸은 울고불고 난리를 피워 보러 가고 싶었으나 노출이 될 것이 두려웠고 그녀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그녀는 아무 이유 없이 납치당한 아이를 돌아오게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들은 바에 의하면 용진표는 누가 자신의 딸을 납치했는지 조사 하라고 시켰고 그녀를 의심하는 것 같았다.그래서 그녀는 최대한 빨리 은서를 무사히 돌아오게 해야 했다, 그러면 용진표도 조사를 멈출 것이다.“그러나 지원이가 죄를 뒤집어쓴다면 용 대표님이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을 거예요.”안리영이 말했다.“진표 씨는 지원 씨 부모님께 목숨값 두 개를 빚진 것이 있기에 지원 씨가 그의 딸을 납치했다고 해도 아무 일 없을 거예요. 게다가 은서가 다치지 않았기에 진표 씨는 지원 씨를 난처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함소은의 분석이 매우 정확했다.안리영은 웃으면서 말했다.“소은 씨는 얼굴이 이쁠 뿐만 아니라 지능도 좋아요.”함소은은 조롱하듯 웃었다. 만약 용진표가 그녀의 외모에 반해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의 숨겨둔 애인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정태성과 함께 연수해서 회사원이나 성공적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모든 것을 용진표가 망가뜨렸다. 이쁜 얼굴이 싫었던 그녀는 누가 그녀를 이쁘다고 칭찬하면 화를 냈다.누군가는 아름다운 외모를 밑천으로 생각하지만 그녀에게는 모든 불행의 시작이
함소은은 안리영의 말을 확신하는 듯 그녀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만약 태성 씨를 만나고 싶으시다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말을 마친 안리영은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저 말고 지원이가 도울 수 있어요.”안리영을 본 함소은은 첫눈에 그녀를 보낸 것이 윤지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윤지원의 상황을 생각한 함소은은 비웃으며 말했다.“지금 지원 씨 자신도 돌볼 수 없는 상황인데 나를 도울 수 있다고요?”“지원이 이 보살이 그곳에 들어가 나랏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기회를 만들어준 소은 씨에게 감사드려야죠.”안리영은 힌트를 주었다.함소은은 안리영의 눈길을 피해 다른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랑 뭔 상관이에요?”안리영은 직설적으로 말했다.“소은 씨, 여기까지 말했으면 더 이상 시치미를 떼지 마세요. 사실 은서는 소은 씨가 사람을 시켜 데려간 거죠?”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함소은은 화를 내며 소파를 내리쳤다.“무슨 헛소리에요? 제가 왜 제 딸을 납치해요. 저...”“소은 씨는 딸로 정태성을 맞바꾸려고 그러는 거잖아요.”안리영은 그녀의 말을 자르고 말했다.얼굴을 돌린 함소은은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아니에요.”“제가 용 대표님에게는 말하지 않을게요. 두려워 마세요.”안리영은 그녀를 안심시켰다.“그럼, 이 말을 저에게 한 이유가 뭐예요?”함소은은 직접적으로 안리영에게 물었다.안리영은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지원이가 저를 보낸 게 맞아요. 지원이는 지금 그곳에서 너무 불편해서 나오고 싶어 해요.”“나오고 싶으면 경찰을 찾으면 될 것을 저를 찾아 뭐 해요?”함소은은 콧방귀를 뀌었다.안리영은 가볍게 웃었다.“소은 씨가 지원이를 그곳에서 꺼내준다면 정태성을 만나게 도와줄 거예요.”안리영의 말을 들은 함소은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갑자기 웃음을 터뜨린 함소은의 모습을 본 안리영은 그녀의 마음을 가늠할 수 없었다.“지원 씨가 나오려고 하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많을 텐데, 왜 저를 찾아오신 거죠?”함소은은 웃으면서 안리영에게
‘위선적이야!’그냥 거절하면 될 것을 방금까지 그녀와 여자 친구가 없다고 부정하던 조시언은 지금 또 여자 친구가 있다고 말했다.“못 믿겠으면 물어봐요.”조시언은 안리영을 가리키며 말했다.안리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나랑 뭔 상관이야?’사실 이쯤 되면 여인은 조시언에게 거절을 당했기에 즉시 떠나는 것이 맞으나 여인은 대답을 요구하듯 안리영을 바라보았다.안리영은 그런 그녀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조시언을 노려봤다. 이어서 안리영이 대답하려는데 조시언이 먼저 말했다.“조금 전 여자 친구랑 산부인과에 갔던 일을 물어봤어요.”안리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놀란 여인은 얼굴이 빨개서 뒤돌아 도망갔다.“삼촌은 여인들의 고백을 거절하는 법도 다양하네요.”안리영은 조시언을 조롱하며 말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조시언이 말했다.“쌀국수 왔어.”조시언이 말을 마치자 복무원이 쌀국수를 들고 왔다. 조용하게 앉아서 쌀국수를 먹던 안리영은 열심히 먹는 조시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자신도 열심히 먹었다.역시 장사가 잘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쌀국수가 정말 맛있었다. 얼큰하게 먹었던 안리영은 코끝에 땀이 났다.반면 우아하고 차분한 조시언의 모습은 마치 프랑스 파스타를 먹는 것 같았다.쌀국수를 먹은 후 조시언이 그녀와 할 말 도 다 했기에 안리영은 그와 작별했다.“삼촌, 나 먼저 갈게, 다음에 봐.”“리영아.”조시언이 귀국 후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어릴 적 그는 그녀를 항상 이렇게 불렀기에 안리영은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조시언을 바라본 그녀는 그가 말하기를 기다렸다.“나중에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직접 물어봐, 스스로 추측하지 말고.”조시언의 말을 들은 안리영은 난감했다.다시는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기에 나중은 없을 것이다.조시언과 헤어진 후 함소은을 찾아온 안리영은 문전박대를 당했다. 안리영은 전혀 놀라지 않고 그녀를 거절한 사람에게 말했다.“태성 씨가 보냈다고 소은 씨에게 전해주세요.”이 말은 확실히
“소고기 쌀국수 하나요. 맵기는 3단계로 해주세요.”안리영은 카운터에서 자신의 입맛에 따라 주문했다.조시언이 먹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녀는 그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주문을 마치자 그도 따라서 주문했다.“야채 쌀국수 하나 주세요. 맵기는 1단계로 해주세요.”안리영은 의아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삼촌도 먹을 거야?”조시언은 차분하게 말했다.“그럼, 너만 먹고 나는 앉아서 네가 먹는 걸 보고만 있으라고?”그의 농담을 들은 식당 주인은 웃더니 그들에게 말했다.“저희 가게에는 한 그릇을 같이 먹는 커플들도 많아요.”안리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또 오해를 받은 그녀는 이미 이 상황이 익숙해졌다. 예전에 조시언이 출국하기 전 그들이 함께 있으면 커플로 오해하곤 했었다. 심지어 학교 다닐 때도 개인 사정을 잘 모르던 선생님도 그들이 조기 연애한다고 오해하고 부모를 불렀다.현재 그들이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오해받고 있다.조시언을 힐끗 바라본 안리영은 그가 여전히 멋있고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았다.“네, 맞아요. 삼촌은 담백한 음식을 좋아해요, 고추를 너무 많이 넣지 마세요.”안리영은 일부러 사장님에게 이렇게 말했다.사장님은 멈칫하더니 멋쩍게 웃었다.“직계 가족은 아니죠?”혈연관계가 없었기에 직계가족은 아니었다. 그러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를 친자식처럼 키웠기에 직계가족이나 다름없었다.이 화제에 유난히 민감한 그녀는 급히 사장님의 질문에 대답했다.“맞아요, 직계가족이에요.”그 상황을 말없이 지켜보던 조시언은 자리를 찾아 앉았다.안리영은 한숨을 쉬고 조시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삼촌, 뭐 마실래요?”“옆 가게에서 밀크티를 주문했어, 조금 있으면 가져다줄 거야.”조시언의 행동에 안리영은 놀랐다.‘언제 밀크티까지 주문한 거야? 왜 나는 모르지?’그러나 그의 이 모든 변화는 안리영에게 그가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예전의 그는 그녀가 밀크티와 쌀국수를 먹는 것을 동의하지 않았다. 이
소름이 돋은 안리영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왜 또 만난 거야?”반갑지 않았지만 그녀는 고개를 들어 인사했다.“삼촌.”검은색 셔츠에 짙은 색의 바지를 입은 조시언은 항상 변함없는 옷차림이었으나 안리영은 그를 볼 때마다 처음 만난 것만 같았다.“여긴 볼일이 있어서 온 거야?”조시언은 또다시 안리영에게 물었다.안리영은 고개를 흔들었다.“아니, 친구가 여기에 있어.”“도움이 필요해?”조시언이 안리영에게 말했다.안리영은 생각에 잠겼다. 현재 윤지원이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조시언에게 말한다면 그는 도울 것이다.그런데 윤지원이 그녀더러 함소은을 찾아가라고 했기에 그에게 말할 필요가 없었다.“아니, 고마워 삼촌.”안리영의 말에 가볍게 대답한 조시언이 물었다.“오늘 휴무야?”“응.”안리영은 대답하고 바로 후회했다. 조시언이 뭐라고 말할지 예측하였기 때문이다.그녀가 알고 있는 그는 필요 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안리영의 생각대로 조시언이 그녀에게 물었다.“그럼 같이 밥이나 먹을까?”그 당시 서로의 마음을 알아버린 이후부터 그에 대한 감정이 달라진 그녀는 조시언과 단둘이 있는 것이 불편했다.“아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안리영은 거절했다.“너에게 물어볼 게 있어, 아니 너랑 할 말이 있어.”조시언도 그녀의 말을 거절했다.조시언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시간을 얼마 뺏지는 않을게, 그리고 너도 점심은 먹어야 할 거 아니야.”그랬다. 마침 열두 시였다. 모든 것이 그렇게 공교로웠다.조시언이 말을 들은 나는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고 또 그는 할 말이 있다고 하였기에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뭘 먹고 싶어?”차에 타자 조시언이 안리영에게 물었다.“아무거나.”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거나 다름없었다.조시언은 핸들을 잡고 말했다.“그럼, 네가 좋아하는 매운탕 먹자.”확실히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하지만 부잣집 도련님 기품이 넘쳐흐르는 조시언과매운탕을 먹는다면 그녀 자신을 매운탕에 넣어서 끓여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