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Chapter 391 - Chapter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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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화

강유형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갑고 굳어 있었다. 평소의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네?”옆에 있던 남자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다시 쳐다보며 말했다.“못 알아볼 리 없는데요? 대표님 약횬녀가 그렇게 예쁘신데... 제가 어떻게 헷갈리겠어요?”“내 약횬녀는 지금 집에서 내 부모님을 돌보고 있어.”강유형은 담담하게 대답한 뒤 긴 다리를 뻗어 걸어갔다.“뭐라고요? 그럴 리가...”남자는 여전히 충격을 받은 듯 내 얼굴을 살피다가 강유형의 뒷모습을 쫓아가며 계속 중얼거렸다.“너무 닮았는데? 완전히 똑같은데?”강유형은 멀어져 갔고 나를 난처하게 만들 법한 말을 하진 않았다. 그가 이렇게 거짓말을 할 줄은 정말 예상 밖이었다.평소 같았으면 분명 사실을 인정하며 나를 곤란하게 만들고 나아가 진정우까지 난처하게 했을 텐데 말이다.그런데 오늘의 강유형은 달랐다. 차가운 태도로 나를 스쳐 지나가며 마치 나를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했다.그는 변한 것 같았다. 더 이상 예전처럼 쉽게 화를 내거나 성급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나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낯선 사람처럼 행동하는 그의 모습은 전에 없던 차분함이었다.강유형은 이번에 돌아온 뒤 한 번도 나를 찾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일상에서 완전히 잊힌 것 같았다. 어쩌면 그가 나를 진심으로 놓아준 건지도 모른다.나는 그런 생각에 잠긴 채 있었고 진정우는 그런 나를 엘리베이터로 조용히 이끌었다. 정신을 차리고 그의 얼굴을 보니 특별히 감정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방금 일이 그에게도 불편했으리라 짐작됐다.내가 그의 손을 살짝 잡아끌자 그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괜찮아. 앞으로도 이런 일은 또 생길 거야.”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곳이든 해동이든 오늘 같은 상황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그리고 오늘 일이 벌어진 이유도 따지고 보면 내가 이 호텔이 지태 오빠가 준비한 장소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태 오빠와 강유형이 친한 사이인 걸 알면서도 무심코 잊어버린 내 실수였다.하지만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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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2화

솔직히 내 핸드폰이 언제 꺼졌는지는 기억도 안 났다. 다만 진정우가 욕실에서 나를 안아 침대로 옮겼을 때 내 몸은 완전히 녹아버린 것처럼 힘이 하나도 없었다. 너무 피곤해서 눈꺼풀조차 들기 힘들었던 나는 이불 속에 파묻혀 그대로 잠들었다.“조금 눈 붙이고 있어. 내가 죽 끓여줄게.”진정우의 낮고 약간 쉰 목소리가 귀에 스며들었다. 나는 희미하게 대답만 하고 꿈속으로 빠져들었다.하지만 잠결에도 핸드폰 소리가 자꾸 들렸다. 뭔가 귀찮았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고, 눈도 뜰 수 없었다. 결국 손을 더듬어 옆자리를 찾았지만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정우 씨... 정우...”나는 그를 부르기 시작했고 진정우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상체를 숙이며 물었다.“왜 그래?”“핸드폰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나는 눈을 뜨지도 않은 채 중얼거렸다.“뭐라고?”그는 내 말을 잘 못 알아들은 것 같았다.“핸드폰, 시끄러워.”다시 한번 반복하자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지원아, 꿈꾼 거야. 네 핸드폰은 꺼놨어.”정말 그랬을까? 그런데도 계속 들렸던 그 소리는 뭐였을까? 나는 다시 묻지 않고 그대로 다시 잠이 들었다.눈을 떠보니 진정우는 방 한쪽의 책상에 앉아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너무나도 집중하고 있어서 내가 깬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그의 손길이 멈추었다. 그는 도면을 그리고 있었다.그가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허진호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됐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이렇게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묵묵히 해내고 있었다.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그의 모습이 방해될까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왔지만 내 움직임에 그가 고개를 돌렸다. 나를 보자마자 펜을 내려놓고 다가왔다.“왜 나를 안 불렀어?”“너무 바빠 보여서.”내가 대답하자 내 목소리가 쉰 소리로 나왔다. 그제야 지난밤의 열정적인 순간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진정우도 알아차렸는지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이따가 목캔디 사다 줄게.”“괜찮아.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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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3화

“머리만 감고 샤워를 안 한 적은 있지.”진정우의 대답에 나는 웃음이 터졌다.“알았어. 네 마음대로 해. 하지만 빨리 씻어 그러다가 밤을 새우겠어.”나는 재빨리 그를 욕실로 밀어 넣었다. 조금만 더 늦었다간 또다시 그에게 끌려갈 것 같았다.처음 진정우를 만났을 때 그는 차갑고 거칠며 여자들에게는 관심조차 없고 성욕이 전혀 없는 남자처럼 보였다.하지만 이제는 이런 남자가 욕망을 자극받으면 얼마나 통제 불가능한지 알게 되었다.그가 씻으러 가고 나는 식탁을 정리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께 배운 습관 덕분에 먹고 난 그릇을 그대로 두는 일이 없었다.아직 주방 정리가 끝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처음에는 착각인가 싶었고 단지 옆방에서 나는 소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울렸다. 확실히 우리 방이 맞았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누구지?나는 손을 닦으며 문 앞으로 다가갔다. 진정우가 방 안에 있다는 사실이 나를 조금 안심시켰다.그래도 습관적으로 문 앞에서 먼저 물었다.“누구세요?”“나야.”귀에 익은 목소리에 몸이 얼어붙었다.강유형이었다.이 늦은 밤에 왜 날 찾으러 온 거지?오늘 아침에 마주쳤을 때도 마치 나를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갔던 그가 왜 지금 내 문 앞에 있는 거지?내가 문을 열지 않자 강유형은 문을 세게 두드리기 시작했다.나는 그가 가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그는 아무리 늦은 밤이라도 주변 사람들을 깨울 걱정은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나는 그와 마주하는 게 싫었지만 이웃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내가 마침내 문을 열자 강유형은 창백한 얼굴로 서 있었다. 머리는 살짝 헝클어져 있었고, 문을 두드리던 손은 멈춰 있었다.“무슨 일이야?”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왜 전화를 받지 않았어?”그의 말에 나는 오늘 전화가 끊임없이 울렸던 기억이 떠올랐다.“못 들었어. 그런데 왜...”그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묻기도 전에 그는 내 팔을 잡았다.“나랑 가자.”그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나는 본능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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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화

“강 대표님, 시간이 없어요!”비행기 승무원이 서둘러 출발을 요청했다.개인 비행기라도 정해진 항로와 시간을 준수해야 하는 규칙이 있었다. 내가 전화하면 출발을 지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됐어.”나는 잠자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딱 1분만 줄게.”강유형이 승무원을 향해 말했고 그 후 그는 자신의 휴대폰을 내게 건넸다.그가 이렇게 내게 전화를 허락한 것이 의외였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그는 얼마든지 규정을 이유로 거절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나는 그의 달라진 모습에 의아함을 느끼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강유형은 내 시선을 피하고 창밖을 응시했다.“출발하세요.”나는 휴대폰을 승무원에게 돌려주며 말했다.강유형은 고개를 돌려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승무원은 그의 의사를 묻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이 비행기의 실제 소유자였기 때문이다.잠시 후, 강유형은 내게서 시선을 돌려 냉정하게 말했다.“출발해.”승무원이 그의 지시를 무전으로 전하며 비행기는 천천히 이륙 준비를 했다.그때, 강유형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화면을 한 번 보고 나서 나를 다시 바라봤다.나는 그것이 진정우의 전화임을 직감했다. 그가 샤워를 마치고 내가 사라진 것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비행기가 이륙 중이었고 나는 이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그의 휴대폰을 받아 확인하니 예상대로 진정우였다. 나는 직접 전화를 끊고 그의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전환했다.비행기가 상공으로 오르고 승무원이 담요와 음료를 가져다주었다.“괜찮아요. 방금 야식을 먹어서요.”말을 끝내기도 전에 강유형이 다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 시선을 외면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검은 밤하늘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고 어두웠다. 그 어둠은 왠지 모르게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가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강유형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삼촌이 갑자기 위독해진 이유도 묻지 않았다.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우리는 병원으로 달려갔다.병실 밖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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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5화

“집에 나랑 네 삼촌뿐이었어. 요즘은 고양이나 강아지도 다 네 삼촌 비위 맞추고 사는데... 누가 삼촌을 화나게 했겠어.”아줌마는 말하다 말고 갑자기 멈췄다.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고 내가 묻기도 전에 그녀가 내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아, 그래. 네 삼촌이 불편하다고 해서 내가 등을 주물러 주고 나니까 소파에 잠깐 눕겠다고 했었어. 그런데 내가 전화 받는 동안 네 삼촌도 전화를 받았던 것 같아.”혹시 그 전화가 삼촌의 상태를 악화시킨 원인이었을까?“아줌마, 삼촌 전화기는 어디 있어요?”나는 서둘러 물었다.아줌마는 주머니를 뒤지며 말했다.“안 가져왔어. 아마 집에 있을 거야.”지금 당장은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지만 그 전화가 중요한 단서가 될 것 같았다.조금 뒤, 강진혁과 강유형이 돌아왔다. 두 사람 모두 얼굴이 어두웠다. 특히 강진혁은 삼촌의 상태를 더 잘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을 강유형에게도 전한 것 같았다.내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그들을 찾아서 진실을 알고 싶었으나 아줌마는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나를 유일한 희망처럼 붙잡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웠다.한 시간이 더 지나서야 응급실 문이 열리고 피곤한 얼굴의 의사가 나왔다.“의사 선생님, 아버지 상태가 어떻습니까?”강진혁과 강유형이 동시에 물었다.“출혈은 멈췄습니다. 하지만 암세포가 간으로 전이됐습니다. 상황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의사의 말은 마치 커다란 바윗덩이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우리 모두 침묵한 채 있었고, 의사는 덧붙였다.“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환자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시간을 조금 더 살 수 있을 겁니다.”하지만 그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삼촌의 생명은 이제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듯했다.“감사합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강유형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삼촌은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보호자 중 한 명만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모두가 나를 추천했다.“지원아, 삼촌이 병원에 오는 내내 네 이름만 불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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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화

삼촌이 힘겹게 말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내가 아는 삼촌은 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약해진 모습은 처음이었다.“울지 마, 지원아... 울지 마.”삼촌은 힘겹게 손을 들어 내 눈물을 닦아주려 했다.나는 그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내 옷으로 훔쳤다.그런데 뭔가 이상했다.이 옷은 내 옷이 아니었다. 강유형의 외투였다.호텔에서 그에게 끌려 나올 때 나는 잠옷 차림이었다. 차 안에서 강유형이 자기 외투를 건넸고 나는 처음엔 거절하려 했지만 슬립형 잠옷만 입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외투를 입었다. 그 외투를 지금도 입고 있었다.“네, 안 울게요.”나는 눈물을 닦으며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삼촌은 나를 바라보며 부드럽고도 복잡한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에 나는 마음이 불편해졌다.나는 삼촌의 손을 더 꽉 잡고 다짐하듯 말했다.“괜찮아지실 거예요. 꼭 괜찮아지실 거예요.”“내 몸 상태는 내가 제일 잘 알지...”삼촌의 목소리는 너무 힘이 없어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였다.그는 평생 온갖 풍파를 겪으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다.“지원아, 너는 네 엄마를 참 많이 닮았구나.”삼촌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그 말을 들으니 문득 예전에 내가 만난 적은 없지만 나와 많이 닮았다는 유희연이 생각났다.우리는 끝내 대화를 나누지 못했지만 그녀는 지금 다른 세상에서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고 있을 거라 믿고 싶었다.“우리 엄마가 정말 예쁘셨나 보네요.”나는 웃으며 대답했다.삼촌도 약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응. 네 엄마는... 아주 현명하고 자애로웠지."“아줌마처럼 말이에요?”나는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삼촌의 눈꺼풀이 천천히 떨렸다.“지원아, 너는... 정말 착한 아이야. 반드시 행복할 거야.”삼촌의 말을 들으니 그의 마음속 깊은 감정이 느껴졌다. 그는 강유형과 내가 헤어진 일에 대해 미안함과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네. 저는 지금도 행복해요. 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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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화

평생 아빠, 엄마의 교통사고에 대해 의문을 품어온 나는 삼촌의 말이 더욱 신경 쓰였다.“아니야.”삼촌은 여전히 부인했다.“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네가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일에 집중하고 진정우와의 미래에만 신경 쓰라는 뜻이야.”삼촌의 목소리는 점점 더 약해지고 있었다. 옆에 있던 간호사가 그를 말리려 다가왔지만 삼촌이 손짓으로 그녀를 막았다. 간호사는 결국 한 마디만 덧붙였다.“마지막으로 1분만 더 하세요.”나는 삼촌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기에 더 묻고 싶었지만 그의 몸 상태를 우선으로 해야 했다.“삼촌, 우리 나중에 얘기해요. 지금은 쉬세요.”하지만 삼촌은 내 손을 단단히 붙잡고 놓지 않았다.“지원아, 약속해 줘.”삼촌의 말을 들은 내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그의 집착은 분명 내 부모님의 사고에 뭔가 숨겨진 진실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하지만 삼촌이 지금 상태로는 더 말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나는 삼촌을 안심시키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약속할게요.”삼촌의 눈빛은 조금씩 안정감을 찾았지만 여전히 내 손을 놓지 않았다.“지원아, 앞만 보고 살아. 삼촌 말 꼭 기억해.”이 말은 얼마 전 내가 소지훈에게 했던 말이었다.하지만 지나간 일을 어떻게 완전히 잊고 앞으로만 나아갈 수 있을까?부모님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알아야만 나는 그들의 무덤 앞에 떳떳하게 서 있을 용기가 생길 것이다.간호사가 삼촌의 산소마스크를 다시 씌우자 그의 호흡은 차츰 안정되었지만 몹시 지쳐 보였다. 그는 눈을 감고 잠들고 싶어 했다. 하지만 간호사는 그를 잠들게 하지 않으려 했고 나는 삼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삼촌은 겨우 “응”과 “아”로만 대답할 뿐이었다.면회 시간이 끝나고 삼촌은 제대로 쉴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자 나는 밖으로 나왔다.복도에는 강진혁과 아줌마가 보이지 않았고 강유형은 혼자 벽에 기대어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 깊이 생각하는 모습이었다.내가 다가가자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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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8화

익숙한 그의 향기, 그리고 숨 막히는 듯한 압박감이 몰려왔다.나는 잠시 멍하니 굳어 있었다. 그의 낮고도 묵직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이제는 진정우를 그렇게 신경 쓰는 거야?”그러자 나는 손끝이 움찔하며 주먹을 쥐었다.한때 나도 그를 그렇게 신경 썼다.안리영과 밥 한번 먹으러 가도 꼭 그에게 알렸고 하지만 그는 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그런데 이제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자 오히려 그가 화를 내며 나를 다그치고 있다.“그래. 내 남잔데 내가 신경 안 쓰면 누가 신경 써?”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상처를 주는 말도 기술이었다.지금의 강유형과 나는 이미 서로 멀어졌지만 그가 내게 남긴 상처는 아직도 생생했다.무심코 떠오르는 순간마다 그 기억은 여전히 내 마음을 후벼 팠다.그래서 그에게 한 방 먹일 기회가 있다면 그동안의 내 아픔을 조금이라도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다.물론 그가 아직 나를 신경 쓰고 있다는 전제 조건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강유형의 눈빛이 점점 차갑게 변했다.이건 그가 화가 날 때 보이는 전형적인 반응이다.그의 모습을 보니 아직도 나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참 우습네.’공식적으로 다른 사람과 엮였다고 알려진 그가 이제 와서 이런 반응이라니.그렇다면 앞으로도 필요할 때마다 이렇게 그의 마음을 찔러서 내 상처를 조금씩 보상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나는 핸드폰을 찾아서 진정우에게 이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진정우는 아직 회복 중인 여동생을 두고 멀리까지 나를 위해 따라와 줬는데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다.더구나 그 대상이 과거의 연인이라면 아무리 그가 나를 사랑하고 이해해 준다고 해도 상처받지 않을 리 없었다.나는 강유형의 품에서 빠져나와 뒤돌아섰다.그런데 그는 내 허리를 다시 한 손으로 붙잡아 그의 품으로 끌어당겼다.“강유형, 지금 뭐 하는 거야!”나는 본능적으로 그의 손을 밀쳤지만 그는 오히려 나를 더 꽉 끌어안았다.“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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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9화

나는 왜 그를 밀쳐내지 못했을까?강유형은 여전히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다.하지만 그가 착각하며 집착한다면 나는 그를 그대로 두기로 했다.결국 가장 큰 상처를 입는 건 그 자신일 테니까.이것은 어쩌면 하늘이 내린 벌일지도 몰랐다.아니면 내 부모님이 하늘에서 내 지난 10년간의 고통을 안타깝게 여기셔서 강유형이 나와의 과거를 잊지 못하게 하는 걸지도 모른다.“조금 있으면 고준석이 핸드폰을 가져다줄 거야. 들어가서 푹 쉬어.”강유형은 그렇게 말하며 내 허리를 감싸던 손을 풀었다.그는 뒤돌아섰고 그의 뒷모습은 여전히 꼿꼿했다.한때 그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르던 내가 이제는 그 모습이 아련하고 낯설게만 느껴졌다.나는 로비로 내려갔다.문을 나서려는 찰나에 고준석이 도착했다.“윤 팀장님.”나는 더 이상 그의 비서가 아니었지만 고준석은 여전히 나를 그렇게 불렀다.하지만 호칭 따위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강 대표님이 직접 주문하신 핸드폰입니다. 윤지원 씨가 쓰시던 브랜드의 최신 모델이에요.”그가 상자를 내밀며 말했다.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괜찮아요. 핸드폰은 필요 없으니 당신 핸드폰 좀 빌려주세요.”고준석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윤 팀장님, 그건 조금...”내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자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한 번 거절한 건 절대 번복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테니까.“핸드폰 빌릴 수 없으면 그냥 됐어요.”나는 말하며 돌아섰다.“아, 알겠어요!”고준석이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 건넸다.그 핸드폰을 받아 들고 나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 전화를 걸었다.“죄송합니다.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자동 응답 메시지가 들려왔다.진정우의 핸드폰이 꺼져 있었다.혹시 진정우가 비행기를 타고 돌아간 걸까?혹시 몰라 내 핸드폰에도 전화를 걸어봤다. 이번엔 통화 연결음이 울렸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진정우가 화가 나서 내 전화를 일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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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0화

“강 대표님께서 지원 씨 목이 잠겼다고 하시면서 특별히 부탁해서 구운 배에 도라지를 넣어달라고 하셨어요. 한밤중에 주문한 건데도 지금도 따뜻하네요.”고준석은 말을 마치며 따뜻한 구운 배가 담긴 봉투를 내 손에 건넸다.손바닥에 전해지는 온기가 느껴졌다.나는 봉투를 들고 고개를 숙였다.고준석이 차를 출발시키며 물었다.“윤 팀장님, 지금 사시는 아파트로 모실까요?”그 아파트는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이었다.그가 이렇게 쉽게 물어본 걸 보니 지난번 한밤중에 강유형이 우리 집 아래에 있었던 이유가 뭔지 알 것 같았다.아마 고준석이 미리 알아보고 강유형에게 정보를 준 게 분명했다.“아니요. 괜찮아요.”나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고준석은 잠시 멈칫하더니 룸미러로 나를 쳐다봤다.“그럼 어디로...”“고 비서님, 차를 세워주세요.”내 말에 고준석은 움찔하며 차를 한쪽에 세웠다.그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윤지원 씨, 무슨 일이세요?"나는 그의 말을 끊고 말했다.“집에 가지 않을 거예요. 병원 외과 병동으로 가주세요.”잠시 잊고 있었던 게 생각났다.아직 병원에서 회복 중인 진소영을 찾아가야 한다는 걸 말이다.고준석은 금세 상황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진소영의 수술 이야기를 알고 있는 걸 보니 강유형도 아마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밤새 제대로 쉬지도 못하셨을 텐데 괜찮으시겠어요?”그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나는 그가 나를 걱정해서 그런지 아니면 강유형의 요구대로 일을 처리 못 하면 돌아가서 욕을 먹을까 봐 두려워서 그런지 몰랐다.“괜찮아요.”나는 말하며 차에서 내리려 했다.“윤 팀장님.”그가 나를 다시 불렀다.그의 시선은 내가 들고 있는 따뜻한 구운 배로 향해 있었다.“강 대표님은 여전히 윤 팀장님을 위해 정말 많이 신경 쓰십니다. 만약 제 실수만 아니었더라면 아마 지금쯤 두 분은 결혼하셨을지도 모릅니다.”그 일이 아직도 그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듯했다.나는 그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제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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