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야가 가려지면 다른 감각이 더욱 예민해지는 법이다.지금 성유리에게는 청각이 특히 그러했다.다가오는 발소리가 점점 더 또렷해지는 순간, 그녀의 손도 저도 모르게 꽉 쥐어졌다.손톱이 살갗을 파고들 듯했지만 그 미미한 통증은 지금의 성유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몇 분이 지났을 수도 있고 어쩌면 겨우 몇 초였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성유리의 세계에서 이 순간은 끝없이 늘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숨을 들이쉬는 매 순간이 마치 한 세기처럼 길게 느껴졌다.마치 영화 속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장면처럼 말이다. 성유리는 아직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했는데 박한빈은 이미 그녀의 곁에 누워 있었다.킹사이즈 침대가 이 순간만큼은 지나치게 좁게 느껴졌다.성유리는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그의 체온과, 은은하게 풍기는 샤워 후의 비누 향을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그때, 박한빈의 성유리의 허리에 닿았다.그저 그것뿐인데도 성유리의 온몸이 얼어붙었다.그리고 원래도 꼭 쥐고 있던 손이 더욱 꽉 말려 들어갔다.그 순간, 박한빈이 성유리의 이불을 살짝 들추었다.“너무 답답하지 않습니까?”박한빈이 물었다.그러면서 몸을 더 가까이 붙이며 입술을 성유리의 귓가에 닿게 만들었다.따뜻한 숨결이 귓가를 간질이자 성유리는 더욱 몸을 움츠렸다.무슨 대답이라도 하려고 입술을 달싹였지만 어떠한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그러나 박한빈은 서두르지 않았다.그저 그녀의 옆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며 대답을 기다릴 뿐이었다.성유리는 지금 마치 단두대에 묶인 죄인 같았다.이미 형이 선고된 것도 알고 있었고 그 단두대의 칼날이 곧 떨어질 것도 알고 있었다.아니, 어쩌면 지금 목덜미 위에 그대로 걸려 있는지도 몰랐다.하지만 그 칼날은 떨어지지 않았다.그렇기에 기다리는 시간이... 더 잔인했다.그러나 박한빈은 그걸 즐기는 듯했다.급할 것 없이, 그저 미소를 머금고 성유리를 바라볼 뿐이었다.결국, 성유리가 견디지 못하고 눈을 떴고 몸을 홱 돌렸다.그 바람에 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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