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의 모든 챕터: 챕터 631 - 챕터 640

735 챕터

제631화

박한빈의 말에 하늘이의 손이 뚝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우리 엄마 어디로 데려갔어요?”하늘이가 물었다.“엄마 보고 싶어?”되묻는 박한빈의 말에 하늘이는 침묵할 뿐이었다.“아니면 화난 거야?”그러자 박한빈이 다시 말했다.“그날 엄마가 한 일 때문에?”“아니거든요!”이번에 하늘이 금세 대답했지만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저는 절대 엄마한테 화내지 않아요.”“그냥... 엄마가 이젠 나를 싫어하나 봐요.”아이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박한빈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엄마가 널 싫어할 리가 없잖아.”하지만 하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분명, 사하나의 장례식 날 벌어진 일이 하늘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는 게 분명했다.하늘이가 알던 엄마는 어릴 적부터 자신을 지켜주던 사람이었고 무슨 잘못을 해도 크게 나무라지 않았던 엄마였다.그러나 그날 보인 엄마의 모습은 너무 낯설었기에 하늘이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왜 사람들이 자신이 죽어야 한다고 말했는지, 그리고 왜 믿었던 엄마마저 그렇게 생각했는지.“엄마가 지금 좀 아파서 그런 거야.”박한빈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엄마는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어.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거야. 그래서 지금 병이 난 거고.”그 말에 하늘이는 고개를 돌려 박한빈을 바라봤다.“그러니까 엄마를 너무 탓하지 마.”박한빈은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지금까지는 네가 엄마의 보호를 받았잖아. 이번에는 네가 엄마를 보호해 주면 안 될까?”“어떻게... 보호해요?”“엄마를 도와줘.”박한빈이 말했다.“엄마가 병을 이겨낼 수 있게 돕고 깊은 어둠속에서 나올 수 있게 도와줘. 그러면 되는 거야.”하늘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그를 쳐다봤는데 마치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그 모습을 본 박한빈은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했다.“그냥 엄마를 행복하게 해 주면 돼. 이건 네가 할 수 있는 일이잖아. 그렇지?”하늘은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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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2화

다음 날, 날씨는 너무도 화장했다.박한빈은 다른 사람더러 성유리를 정원으로 데려가 햇볕을 쬐도록 했다.성유리는 이 제안에 별다른 이의 없이 따랐지만 여전히 기운 없는 모습이었다.그러던 중, 하늘이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엄마!”그 목소리를 듣자 성유리는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그리고는 재빨리 고개를 휙 돌렸다.하늘이는 예쁜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땋은 채 흥분한 얼굴로 성유리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하지만 성유리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그 행동은 마치 무언가 무서운 존재를 본 것처럼 다급했다.하늘이는 그 모습을 보고 멈칫하더니 점차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리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성유리를 바라보았다.성유리는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때 박한빈이 빠르게 하늘이 곁으로 다가와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하늘이의 눈가는 여전히 빨갰지만 애써 정신을 다잡으며 눈물을 닦아냈다.그리고 다시 성유리 쪽으로 한 걸음씩 걸어갔다.성유리는 계속 뒤로 물러서고 싶었지만 하늘이가 상처받을까 봐 애써 자신의 정신을 붙들었다.그러던 중, 하늘이가 바로 앞까지 다가와 다시 한번 성유리를 불렀다.“엄마...”그 목소리에는 이미 울음이 섞여 있었다.성유리는 하늘이를 잠시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하지만 하늘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엄마, 나 좀 안아줘. 응?”성유리는 아이의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지만 하늘이는 기다리지 않고 손을 뻗어 그녀를 꼭 안았다.아직 하늘이의 손은 작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온 힘을 다해 성유리를 감싸안았다.그러자 성유리의 굳어 있던 몸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엄마, 많이 보고 싶었어.”하늘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 엄마, 나 버리지 마. 응?”“나 이제 까불지도 않고 말도 잘 들을게. 이모랑 스키 타러 가지도 않을게. 나...”하늘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성유리의 표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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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3화

아마 그것 때문인지, 박한빈은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오늘 날씨 참 좋네요.”아침 식사를 하는 와중, 성유리가 박한빈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저 오늘 사씨 가문에 가고 싶어요. 가도 괜찮을까요?”박한빈은 처음에 성유리가 자신에게 말을 걸자 기뻐했지만 이어진 그녀의 말에 얼굴 표정이 굳어졌다.그러나 성유리는 진지한 눈빛으로 박한빈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전에 약속했잖아요. 아니면 저한테 거짓말한 거예요?”“거짓말한 적 없어.”박한빈은 대답하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하지만 사씨 가문에 가려는 이유가 뭐지?”“그분들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해야 해요.”성유리가 대답했다.“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게 꼭 사과일까?”박한빈은 최근 그녀가 겨우 안정을 되찾은 상황에서, 어떠한 돌발 상황도 발생하지 않기를 바랐다.더구나 지금의 사씨 가문은 분명 성유리를 미워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마치 박한빈의 이런 생각을 읽은 듯, 성유리가 말을 덧붙였다.“물론 그분들이 저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저도 제 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내고 싶어요.”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그동안... 진심으로 감사했어요.”그 말에 박한빈은 입술을 오므리다 천천히 대답했다.“생각해 볼게.”그러자 성유리는 단호하게 말했다.“저는 오늘 꼭 가야겠어요. 만약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오늘 바로 이곳에서 나갈래요. 원래... 여기에 머물 이유도 없으니까요.”그녀의 말에 박한빈은 이를 악물었다.“지금... 협박하는 건가?”“그렇게 느끼신다면 협박 맞아요.”성유리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대답했다.그녀의 태도에 박한빈은 깊게 숨을 들이쉰 뒤 말했다.“좋아. 하지만 지금 바로는 안 돼. 적어도 사씨 가문에 미리 연락은 해야 하니까.”“전 오늘 꼭 가야겠어요.”성유리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박한빈은 그녀가 자신이 동의할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결국 어쩔 수 없이 성유리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그는 더 이상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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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4화

성유리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햇빛을 본 날이 언제였는지도 잊어버렸다.거리의 빨간 장식들과 설렘이 가득한 분위기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새해가 다가오고 있었다는 것을.그렇다면 사하나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은 셈이었다.성유리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사씨 가문 저택은 너무 조용했다.성유리는 이곳에 몇 번 와본 적이 있었다.가끔 사하나가 하늘이를 데리고 이곳에서 놀 때면, 성유리는 직접 하늘이를 데리러 오곤 했다.그럴 때마다 성유리가 문밖에 도착하기도 전에 하늘이가 안에서 즐겁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류수미는 그런 하늘이를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사하나에게 빨리 결혼하라고 재촉하곤 했다.그리고 사하나는 항상 못마땅하다는 듯 엄마인 류수미의 말에 반박했다.류수미는 겉으로는 꾸짖는 말을 했지만 진심으로 딸을 나무라는 적은 없었다.성유리는 그녀가 사하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고 있었다.그래서 나중에 사하나가 결혼하기 싫다고 고집했을 때도 류수미는 끝내 그녀에게 강요하지 않았다.하지만 그 깊은 사랑은 사하나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성유리.”박한빈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그러면서 그는 성유리의 손을 꼭 잡았다.갑작스러운 행동에 성유리는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고 박한빈은 얼굴을 찌푸린 채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저 괜찮아요.”성유리가 금세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 뒤, 차 문을 열고 내리자 박한빈도 곧 따라 내렸다.박한빈이 미리 사씨 가문의 가족들에게 방문을 알렸기에 집안의 도우미들이 매우 공손하게 그들을 맞아주었다.류수미와 달리 사민혁은 비교적 침착하고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그럼에도 그는 웃지 않았다.단지 고개를 살짝 끄덕일 뿐이었다.그의 옷차림은 여전히 깔끔하고 단정했지만 나이가 훨씬 더 들어 보였다.소파에 앉아 있을 때, 사민혁의 등이 다소 굽어 있는 것이 눈에 확 띨 정도였다.“사모님은 어디에 계세요?”성유리가 조용히 물었다.“위층에 있다. 몸 상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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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5화

분명히 사민혁은 자기 아내 상태를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그는 이내 박한빈을 쳐다보며 물었다.“성유리 씨가 제 아내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겁니까?”박한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저도 잘 모릅니다.”아무도 그 답을 알지 못했기에, 두 사람은 그저 조용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박한빈은 수없이 많은 상황을 상상했다.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이곳이 어디든 상관없이 바로 방 안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하지만 의외로 방 안은 계속 조용했다.두 사람의 대화는 마치 차분하게 이루어지는 평범한 대화처럼 느껴졌다.그런데도 박한빈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이 조용함이 폭풍 전야 같은 불길한 신호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곧 큰일이 벌어질 것처럼 느껴졌다.그러나 예상과는 다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유리가 방에서 걸어 나왔다.놀랍게도 그녀의 얼굴은 이전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말이다.사민혁을 마주한 성유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사민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성유리는 그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박한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저희 이제 그만 가요.”박한빈의 머릿속은 여전히 의문투성이였다.하지만 성유리에게 직접 묻지 않고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성유리는 그의 따뜻하고 건조한 손을 잠시 내려다보았지만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은 채 함께 앞으로 걸어갔다.박한빈이 사민혁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 후, 두 사람은 그 집을 나섰다.가는 길에 박한빈이 먼저 성유리에게 물었다.“방금 류수미 씨에게 무슨 말을 했어?”“별거 아니에요.”성유리가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하자 박한빈은 그녀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며칠 전에 하나 씨가 꿈에 나왔어요. 저와 작별 인사를 나누면서 어머니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하나 씨는 어머니를 직접 만나러 가지 못했죠. 아마 어머니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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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6화

박한빈은 원래 성유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녀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전에 하늘이한테 선물 주고 싶다고 하시지 않았어요?”성유리가 물었다.“지금 사면 되잖아요.”“하늘이가 좋아할까?”박한빈은 망설이며 되물었다.그러자 성유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좋아할 거예요. 하늘이는 정말 단순한 아이거든요. 누가 자기를 좋아하는지 또 누가 그렇지 않은지 잘 느끼죠. 또 그렇게 오래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아요. 박한빈 씨가 진심으로 다가가면 금방 받아들일 거예요.”성유리는 박한빈을 바라보며 말을 덧붙였다.“박한빈 씨도 하늘이를 사랑하잖아요. 맞죠?”박한빈은 이런 직접적인 질문에 익숙하지 않았다.잠시 멈칫한 그는 천천히, 그러나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성유리는 그런 박한빈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렇다면 하늘이도 느낄 거예요.”“뭘 사면 좋을까?”결국 성유리의 추천으로 박한빈은 하늘이에게 새 그림 도구 세트와 만화책 세트를 선물로 사기로 했다.두 사람이 엔젤 월드로 돌아갔을 때, 하늘이는 무척 신이 나 있었다.그리고 박한빈이 선물을 건네자 놀란 표정으로 멈칫하더니 이내 성유리를 바라보았다.그 눈빛은 마치 그녀의 허락을 구하는 듯했다.성유리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하늘이는 입술을 깨물며 작은 목소리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뒤 선물을 건네받았다.성유리는 하늘이를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이것이 하늘이가 박한빈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신호임을 알았다.잠시 후, 김서영이 성유리에게 다가왔고 그녀의 눈에는 연민의 감정과 안도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김서영은 아무 말 없이 성유리를 꼭 끌어안고는 등을 토닥여줬다.성유리는 그녀의 품에 가만히 안겨 있다가 김서영이 그녀를 놓아주자 미소 지으며 말했다.“고맙습니다. 그동안 많이 신세를 졌어요.”“신세라니? 하늘이는 원래 내 손녀야. 이렇게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쁜데.”김서영은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표정이 살짝 바뀌었지만 성유리를 쳐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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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7화

밤이 깊어지자 거리에 있는 붉은 색의 등불들이 더욱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붉게 물든 풍경은 기쁨을 상징했지만 성유리의 눈에는 마치 선명한 피처럼 보였다.실버 포레스트로 돌아온 뒤, 박한빈은 곧장 서재로 향했다.요즘 그는 서재에서 잠을 자곤 했다.가끔 성유리가 깨어나 박한빈을 볼 때면 그는 침대 옆에 조용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박한빈은 절대 선을 넘지 않았고 오늘 밤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원래대로라면 성유리는 씻고 나서 바로 침대로 돌아가 쉬어야 했다.하지만 갑자기 아래층으로 내려가 물 한 잔을 따랐고 서재의 불빛은 여전히 환하게 켜져 있었다.문틈으로 보이는 박한빈은 전화 통화를 하며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리고 있었다.그의 속도는 평소보다 더 빨랐고 행동은 더욱 단호했다.그러다 인기척이 들리자 박한빈의 시선이 곧장 문 쪽으로 향했다.그는 아직 업무 모드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눈빛에 날카로움이 묻어 있었다.하지만 방문한 사람이 성유리임을 알아차리자 박한빈의 표정은 빠르게 바뀌었다.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모습에 멈췄다.난방이 잘 돼 있는 실내이긴 하지만, 그녀의 옷차림은 다소 “가볍게” 느껴졌다.성유리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박한빈이 미리 준비해 둔 옷이었다.그는 성유리와 함께 이곳에서 지낼 것을 예상하고 사계절 옷을 마련해 두었다.하얀 슬립 원피스에 헐렁한 가운을 걸친 그녀는 방금 머리를 감은 듯 젖은 머리칼이 어깨를 따라 내려왔고 그중 몇 가닥은 가슴 위로 흘러내렸다.그리고 성유리의 손에는 물이 담긴 컵이 들려 있었다.“박 대표님?”수화기 너머에서 조심스럽게 박한빈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그제야 박한빈은 어렵사리 시선을 거두고 몇 마디 대화를 마친 후 통화를 끊어버렸다.그 사이 성유리는 물컵을 박한빈 앞에 내려놓으며 물었다.“일하시는 데 방해한 건 아니죠?”“아니야.”박한빈이 재빨리 대답했다.그러나 말을 내뱉고 나서야 자신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약간 쉰 것을 깨달았다.그는 무심결에 헛기침을 하고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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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8화

성유리는 자연스럽게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이런 행동은 과거에도 수없이 반복했던 일이었다.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일까. 지금의 상황과 곧 다가올 순간을 떠올리자 성유리는 갑자기 긴장되기 시작했다.그래서 자연스럽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지만 어쩔 수 없었다.박한빈은 이내 그녀를 조심스레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성유리는 이미 눈을 질끈 감고 있었지만 예상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자 혼란스러워하며 눈을 살며시 떴다.박한빈은 성유리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있었다.그 행동에 성유리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러자 박한빈은 살짝 미소를 짓더니 그녀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됐어. 이제 푹 자. 나 여기 있으니까.”성유리는 입술을 꼭 다물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원했던 건 이게 아니었으니까.박한빈의 시선과 행동에서 성유리를 향한 감정이 드러나고 있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박한빈 씨는 하고 싶지 않아요?”결국 의아함을 참지 못한 성유리가 물었다.그 물음에 박한빈은 잠시 멈칫하더니 성유리의 손을 잡아줬다.“너는 이제 막 회복된 상태잖아. 좀 더 쉬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런 일은... 서두를 필요 없어. 앞으로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으니까.”박한빈은 성유리에게 설명해 주는 것 같았지만 사실 자기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 같았다.그리고 그의 손에는 약간의 힘이 더해졌다. 하지만 이내 성유리가 아플까 봐 겁이 난 듯 서둘러 힘을 풀었다.성유리는 박한빈에게 할 말이 더 있었지만 이내 하려던 말을 삼켰다.어차피 이건 박한빈이 선택한 일이었다.‘난 충분히 노력했어.’박한빈이 원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강요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더 이상 미안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성유리는 조용히 눈을 감았고 그저 이렇게 끝내기로 했다.그러나 박한빈의 마음속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그는 속으로 다짐했다.만약 그녀가 한 번 더 요청한다면 이번엔 자신을 억누르지 않겠다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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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9화

‘곧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야.’박한빈은 이런 생각을 했다.그렇게 되면 이제부터 두 사람은 행복하게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다.어떤 사람도, 어떤 일도 더 이상 그들을 방해할 수 없을 것이다....성유리는 새벽녘에 눈을 떴다.이 방에 머문 지도 꽤 되었지만 깨어날 때마다 여전히 낯설고 혼란스러웠다.이곳이 경운시가 아니라는 걸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공간이었다.그러니 한빛시에서 벌어진 일도 단순한 악몽이 아니라는 뜻이었다.그건... 실제로 존재하는 일이었다.하지만 이번엔 성유리 혼자가 아니었다.성유리가 고개를 돌리자 바로 옆에 누워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그의 손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고 얼굴은 그녀의 목덜미에 파묻혀 있었다.따뜻한 숨결이 목을 스치며 약간의 간지러움을 주었다.성유리는 그 손길을 떼어내지 않고 조용히 옆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그러나 그는 꿈속에서도 철저히 경계심을 유지하는 듯했다.성유리가 잠시 박한빈을 바라보고 있자 그는 눈을 번쩍 떴다.그렇게 둘의 시선이 정확히 마주쳤다.성유리는 순간 멈칫하더니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너...”박한빈이 뭔가 말하려 했지만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성유리가 갑자기 몸을 기울여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밖은 여전히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고 창문 너머로는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하지만 방 안은 난방이 켜져 있어 춥지 않았고 오히려 체온이 점점 더 높아졌다.박한빈의 힘은 강했다. 자신의 허리를 꽉 쥐고 있는 박한빈의 힘에 성유리는 아프기까지 했다.사실 그는 더 부드럽게 하려 했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버렸기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처럼 보였다.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처럼 말이다. 박한빈은 신혼 첫날 밤보다도 더 서툴렀다.그는 예전과 달리 자신의 힘을 조절하지 못했고 성유리가 손톱으로 그의 팔뚝을 꽉 눌렀을 때에야 그는 자신의 행동을 자각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아프게 했어?”성유리는 눈을 감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박한빈은 성유리가 화가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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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0화

성유리가 다시 깨어났을 때, 이미 바깥은 날이 밝아 있었다.그녀는 박한빈이 회사에 갔을 거라 생각했지만 몸을 돌리자 뜻밖에도 그는 여전히 그녀 옆에 있었다.박한빈은 침대 머리맡에 등을 기댄 채 노트북으로 일을 하고 있었고 화면 밝기를 최저로 낮추고 키보드 소리도 최소화한 상태였다.성유리는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멈칫했다.그때, 박한빈은 금방 성유리의 반응을 알아채고 말했다.“깼어?”그는 노트북을 닫으며 미소를 지었다.“피곤해? 어디 아픈 데는 없어?”그제야 성유리는 몸이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다는 걸 뒤늦게 느꼈다.하지만 고통은 이제 그녀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그래서 성유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괜찮아요.”“배고프면 말해. 먹을 걸 가져오라고 할게.”박한빈이 그렇게 말하며 침대에서 내려가려 하자 성유리가 갑자기 물었다.“오늘 회사 안 가셔도 돼요?”“응. 안 가도 돼.”“사실... 굳이 매일 여기 있으실 필요는 없어요. 저 이제 괜찮아졌으니까요. 대표님께서 매일 출근 안 하시면 정말 괜찮겠어요?”성유리의 말에 박한빈이 웃음을 터뜨리더니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되물었다.“왜? 내가 회사 말아먹을까 봐 걱정돼?”“걱정 마. 집에서도 다 처리하고 있으니까.”성유리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군 채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그녀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자 박한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누군가에게 죽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그리고 한편, 성유리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세면대 앞으로 갔다.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박한빈은 이미 음식을 테이블 위에 차려두고 있었다.“왜 식탁까지 내려가서 안 먹어요?”성유리의 질문에 박한빈은 잠시 멈칫하다가 웃으며 대답했다.“글쎄, 그냥 방에 너랑 같이 있고 싶어서.”박한빈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며 성유리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넓은 테이블과 소파가 있었음에도 박한빈은 굳이 그녀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성유리는 약간 불편해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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