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의 모든 챕터: 챕터 641 - 챕터 650

735 챕터

제641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한빈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성유리만 뚫어져라 쳐다봤다.그 눈빛을 본 성유리는 혹시 그가 자신의 말에 숨은 의도나 계획을 알아차렸을까 봐 마음 졸이고 있었다.하지만 이내, 박한빈이 순순히 동의했다.“그래. 내가 가져다줄게. 언제 필요한데?”“빠르면... 빠를수록 좋죠. 마침 박한빈 씨도 요 며칠 할 일이 없으시지 않나요?”박한빈은 말이 없었다.“오후에 가실래요?”다시 묻는 성유리의 말에 박한빈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조금 강한 박한빈의 힘에 성유리는 뼈마디가 아파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아파요.”“미안. 내가 또 아프게 했네.”박한빈은 금방 사과했지만 목소리에는 어떠한 파동도, 미안하다는 감정도 묻어있지 않았다.성유리가 무슨 말을 더 하려던 때, 박한빈이 먼저 말을 꺼냈다.“그럼 지금 티켓사라고 할게. 아마 오래는 안 걸릴 거야. 저녁에는 돌아올 수 있을 거고.”성유리는 잠깐 멈칫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노트북이랑 원고 말고 또 필요한 거 있어?”“아니요.”“괜찮아. 도착하면 너한테 영상통화 할게. 받을 거지?”박한빈의 물음에 성유리는 잠시 굳어가는 듯했지만 금세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당연하죠!”“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지금 티켓사라고 한다?”박한빈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려고 방을 나섰고 당일치기였기에 그는 따로 짐을 챙길 필요도 없었기에 준비도 무척이나 빨랐다.성유리는 원래 박한빈더러 경운시에서 하룻밤 자고 오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하도 예민한 사람이니까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야.’박한빈은 성유리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그녀의 어떤 거짓말이라도 다 알아차렸고 단번에 진짜 의도를 파악했다.방금 전도 마찬가지로 성유리는 박한빈이 자신의 의도를 알아차린 줄 알았지만 그건 그저 착각이었다.그 시각, 성유리는 저택 안 사람들과 함께 박한빈을 배웅해 주고 있었다.“저녁에 올 거니까 나 기다려야 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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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2화

성유리는 곧 자기 방으로 돌아가 방문을 잠그고는 책상 앞에 마주 앉았다.그리고는 미리 준비한 종이와 연필을 꺼내 들었다. 준비해 둔 종이의 개수와 맞먹게 성유리는 하늘이한테 해줄 말이 많았다.심지어는 하늘이가 새해마다 자신이 쓴 편지를 볼 수 있게 가득 써놓으려는 생각도 했었다.하지만 막상 연필을 집어 드니 도통 무슨 말을 써야 할지 감이 안 잡혔고 머릿속은 하얗게 변해갔다.그러다 문득, 성유리는 사실 자기는 할 말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느꼈다.필경 그녀의 선택은 제일 직접적인 사실이니까, 그리고 하늘이도 자기 같은 나약한 엄마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성유리는 엄마로서 하늘이에게 편지를 남길 자격도 없다고 여겨 연필을 천천히 내려놓았다.한참 뒤, 성유리는 다른 서랍을 열어 며칠 동안 몰래 숨겨둔 유리 조각을 꺼냈다.사람을 죽이면 목숨으로 갚는다는 말은 누구라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아무리 부정해도 사하나는 결국 하늘이 때문에 세상을 떠난 것이 확실했고 아직 어린아이에게 성유리는 그 어떠한 상처도, 타격도 주고 싶지 않았다.그러니 사씨 가문에서 원하는 목숨을 성유리는 본인이 갚기로 마음먹었다.이렇게 되면 그들이 두 번 다시는 하늘이가 사하나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말을 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어차피 성유리가 자기 생명으로 “빚”을 갚을 거니까.생각에 잠겨있던 성유리는 유리 조각을 손에 들고는 맞은편에 있는 거울을 쳐다봤다.그곳에 있는 커다란 거울은 성유리의 모든 행동을 비추고 있었기에 그녀는 자신의 경동맥을 쉽게 찾아냈다,‘이제 힘껏 그으면 돼.’‘근데 이러면 보기 너무 흉할 텐데.’박한빈이 새로 산 집에서 이렇게 험한 몰골도 죽고 싶지 않았지만 성유리는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그가 하루 종일 성유리를 지켜보고 모든 말과 동작을 감시하니까.그래서 성유리는 남겨질 집과 박한빈에게 미안한 감정이 가득했다.만약 오늘 그런 핑계를 대 박한빈을 보내지 않았다면 성유리에게는 이런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생각에 잠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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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3화

뒤따라 방으로 들어온 가사도우미들은 펼쳐진 광경에 놀라 비명을 질렀다.하지만 박한빈은 아주 침착했고 담담한 말투로 고개를 돌려 도우미들에게 말했다.“의사 불러오세요.”그 말에 정신이 든 도우미들은 서둘러 움직였고 누군가는 의사를 부르고, 다른 누군가는 성유리를 말리려고 다가왔다.성유리는 그제야 박한빈을 똑바로 쳐다보며 힘겹게 말을 꺼냈다.“역시... 다 알고 계셨던 거죠? 다 맞히셨네요?”박한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조용히 성유리를 품에 끌어안았다.이미 이성을 살짝 잃은 성유리는 그런 박한빈을 힘껏 밀어내며 고래고래 외쳤다.“내 몸에 손대지 마! 이거 놔! 놓으라고! 역시 이럴 줄 알았어. 아까부터 당신은 다 알고 있었던 거지? 일부러 그런 거야?”“제발 나 좀 죽게 내버려두라고! 박한빈, 제발 부탁이야. 나 좀 죽게 해줘.”눈물은 성유리의 볼을 타고 흘러 박한빈의 옷을 적셨지만 그는 여전히 그녀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절대 너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거야.”박한빈이 입을 열었다.“한빛시는 네가 가자고 해서 간 게 아니야. 스키장도 네가 가라고 해서 간 게 아니고. 눈사태가 벌어진 것도 유리 네 잘못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네가 이런 책임을 물 이유는 없어.”“그렇지만 하나가 죽었어요! 죽었다고요. 하나가 하늘이 때문에 죽었어요... 만약 걔가 하늘이를 보호하지 않았다면 하나도 살 수 있었어요. 근데...”“그래. 하나 씨가 하늘이를 구해줬어. 그래서 난 하나 씨에게 너무 고마워. 그렇지만 유리 네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잖아. 그러니까 죽을 이유도 없다고.”“그리고 네가 죽는다 해도 하나 씨는 돌아오지 않아. 이건 명확한 사실이고.”박한빈의 목소리는 여전히 냉랭했다. 이럴 때마저도 그는 성유리를 탓하거나 나무라지도 않았다.‘그래서 어젯밤은 나한테 준 보상이었던 건가?’박한빈은 그제야 성유리가 보인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죽으려고 했으니 사씨 가문도 찾아가고 하늘이한테도 갔구나.’그는 성유리가 자신에게 미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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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4화

“어르신, 사모님, 박 대표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사씨 저택, 류수미는 어쩌다 기분이 괜찮아져 밥을 먹고 있었지만 도우미에게서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어버렸다.류수미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이를 악문 채로 물었다.“왜 또 왔대요?”“두 분과... 상의할 일이 있다고 하십니다.”“상의? 뭐를 상의하는데요? 가서 말해요. 절대 만나지 않겠다고!”말을 마친 류수미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위층으로 올라갔다.사민혁은 식탁에 마주 앉아 고민하더니 차분한 말투로 도우미에게 말했다.“돌아가시라고 하세요. 오늘은 손님 맞을 기분이 아니라서.”“이미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박 대표님께서...”“그럼 됐어요. 거기서 기다릴 거면 기다리라고 하죠.”사민혁은 한마디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떴고 이렇게 하면 박한빈도 곧 떠날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서재에서 한참 동안 책을 읽던 사민혁이 창문을 힐끔 내려다보았고 박한빈이 아직도 밑에서 기다리는 것을 발견했다.오늘 금성의 온도는 너무 낮지 않았지만 눈이 조금 내리고 있어 박한빈이 더욱더 쓸쓸하고 고독해 보였다.사민혁은 그런 박한빈을 가만히 내려다보다 결국 도우미에게 그를 집안으로 들이라고 했다.“박 대표님, 도대체 무슨 일로 찾아오신 겁니까?”사민혁은 짜증 섞인 말투로 박한빈에게 따지듯 물었다.“이게 지금 며칠 쨉니까? 매일 찾아오시면 어떡하죠? 누가 보면 저희 사씨 가문이 사고라도 친 줄 알겠습니다.”사민혁의 물음에도 박한빈은 그저 옅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는데 눈이 오는 밖에 오랫동안 서 있은 박한빈의 코는 이미 빨개졌고 귀도 살짝 얼어있었다.하지만 허리는 여전히 꼿꼿하게 핀 상태였고 호흡을 고르던 박한빈은 그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처음 왔을 때랑 똑같은 일입니다. 두 분이 성유리를 한 번만이라도 보셨으면 합니다.”“대체 우리가 왜 걔를 보러 가야 하는 거죠?”사민혁이 대답하기도 전, 한쪽에서 날카로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류수미는 자기 방에서 사민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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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5화

박한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죄송합니다. 그럼 이만.”운전기사는 계속 대문 밖에서 박한빈을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기사는 오늘도 박한빈이 하루 종일 사씨 저택에 머물 줄 알았다.그래서 자기가 마실 커피를 사러 갔다 오려고 했지만 시동을 걸기도 전, 박한빈이 저택에서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기사는 얼른 차에서 내려 문을 열어줬고 박한빈은 조용히 차에 올라탔다.굳이 묻지 않아도 운전기사는 박한빈이 오늘도 사하나의 가족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사실 어찌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필경 핏덩이 같은 딸을 잃은 부모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다른 사람의 생사에 관여할 수 있겠는가?이런 도리는 박한빈 또한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의사조차도 성유리가 아픈 원인이 사하나의 죽음으로 인한 마음의 병이라고 했으니까.박한빈은 성유리를 위해서라면 하늘의 별도 따다 줄 수 있을 정도로 헌신했다. 죽은 사람을 되돌리는 일 빼고는 모든 것을 해줄 수 있었다.그래서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파렴치하지만 유가족을 찾아가 한번, 또 한 번 비는 것뿐이었다.박한빈은 유가족이 성유리를 용서한다는 단 한 마디만 해줬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었다.만약 그 사람들이 위로를 건넨다면 성유리가 나아질지 지도 모르니까 말이다.그러니 어떤 수를 쓰든지, 무슨 대가를 치르든지 박한빈은 해야만 했다.이내 박한빈이 탄 차는 실버 포레스트에 도착했고 원래 두 눈을 감고 있던 그는 귀신처럼 도착하자마자 눈을 번쩍 떴다.기사가 문을 열어주기도 전에 박한빈이 직접 문을 열어 차에서 내리자 도우미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대표님.”도우미들의 손에는 보기 좋은 음식이 들려있었지만 그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사모님께서... 아무것도 드시지 않으십니다.”박한빈은 아무 말 없이 도우미의 손에서 음식을 건네받았고 그 시각, 성유리는 창문가에 앉아 있었다.비록 집안에 난방이 잘 되긴 하지만 성유리는 옷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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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6화

설날.봄에 피는 꽃들이 하나둘 피어나고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한다.시대의 발전과 맞먹게 지금은 예전의 설날 느낌은 없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제일 기대하고 설레는 날이다.설날이 되면 사람들은 다들 새 옷을 곱게 차려입는다. 그리고는 지나간 해에 벌어진 일들과 나쁜 기억을 잊기로 한다.사람들의 마음 깊은 속, 설날은 기쁜 날이자 기대되는 날이고 온 가족이 모이는 풍요로운 날이다.성유리는 지금껏 한 번도 설날을 기대한 적도, 풍요롭다고 느낀 적도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이번 설날은 하늘이에게 있어 제일 즐거운 날이 되어야 한다.지나간 몇 해 동안 설날은 모녀 둘이 조용히 보냈었다. 성유리가 아무리 열심히 준비한다고 해도 텅텅 빈 집을 볼 때면 공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하지만 성유리는 자기뿐만 아니라 사씨 가문 또한 제일 최악의 설날을 보내고 있을 것 같았다.가족을 잃은 슬픔과 고통은 특히 이런 명절에 더 심해진다.성유리는 전에 사하나가 사씨 저택에서 설날을 보낸 뒤, 바로 경운시로 날아와 두 사람과 함께 명절을 보내던 것이 생각났다.사하나는 늘 하늘이에게 세뱃돈을 준비해 뒀지만 이제 더 이상 아이는 그 돈을 받을 수가 없게 되었다.그런데도 하늘이는 사하나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아이에겐 아빠랑 할머니가 늘 옆에 있었으니까.성유리는 오랫동안 하늘이가 이모를 찾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이제 아이는 사하나를 잊어버렸다고 확신했다.‘어떻게 이렇게 쉽게 잊을 수 있지?’솔직히 성유리는 하늘이를 조금 원망했다. 사하나의 죽음은 하늘이에 의해 초래된 것이었지만 아이는 이제 이모를 떠올리지도 않고 있으니 말이다.만약 그날 스키장에 가지만 않았다면...“성유리.”다정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동시에 성유리는 그 사람의 손이 자신의 어깨에 놓인 것을 봤다.박한빈 손의 온기가 느껴지고 나서야 성유리는 정신을 차렸고 방금까지 자신이 하고 있던 생각에 소스라치게 놀랐다.‘어떻게 나까지 하늘이를 탓해...’‘3살짜리 애가 뭘 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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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7화

하지만 성유리도 사실 어떤 말을 아이한테 해줘야 하는지 잘 몰랐다.옆에서 조용히 엄마의 말을 기다리던 하늘이는 결국 고개를 돌려 박한빈에게 대답했다.“감사합니다.”“이거 어떻게 접은 거야? 나도 배워 줄 수 있어?”박한빈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하늘이에게 물었다.“완전 쉬워요!”그 물음에 하늘이는 잔뜩 신나 하며 박한빈의 옆으로 다가가더니 하나하나 가르쳐주기 시작했다.박한빈은 겉으로 보기에 아이의 설명을 경청하는 것 같았지만 한쪽으론 성유리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성유리는 그런 박한빈의 손을 몇 번이나 뿌리치려고 했지만 실패해 그냥 포기해 버렸다.저녁 메뉴는 매운탕.늘 제일 순한 맛으로 먹던 김서영조차 오늘은 특별히 매운 맛으로 먹겠다는 말을 남겼다.먹음직스러운 칼칼한 국물의 냄새가 식당에 퍼졌지만 하늘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성유리를 보며 말했다.“엄마. 너무 많이 먹지 마. 많이 먹으면 목 아프잖아. 전에 이모랑...”말하던 아이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입을 가렸는데 문득 어느 한순간에 사하나의 존재를 떠올린 것 같았다.그리고 그제야 사하나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한 것 같기도 했다.어린 하늘이도 느꼈으니 식사 장소에 모여 있던 다른 사람은 더 빨리 알아차렸을 것이다. 성유리의 표정이 이미 잔뜩 굳어졌다는 사실을.어색한 침묵을 뚫고 김서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맞아.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돼. 너무 맵게 하지 말라고 했으니 그렇게 심하게 맵지는 않을 거야.”“자, 이제 식사합시다.”박한빈도 김서영의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사실 성유리는 바로 자리를 뜨려고 했다. 필경 요즘 입맛도 별로 없고 먹고 싶은 의욕도 없었으니까.매번 밥을 먹을 때마다 박한빈이 어르고 달래서야 성유리는 겨우 몇 입을 먹었었다.지금 성유리는 자신의 가슴이 뭔가에 꽉 막힌 듯한 느낌이 들어 아무런 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그래서 결국, 성유리는 박한빈에 의해 반강제로 자리를 지켜야 했지만 음식들을 씹고 있어도 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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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8화

오늘은 성유리가 처음으로 엔젤 월드에서 밤을 보내는 날은 아니었지만 박한빈의 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은 처음이었다.하늘이는 원래 엄마랑 같이 자고 싶다고 떼를 썼지만 성유리는 아이를 달래서 돌려보냈다.행여나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악독한 말들을 아이에게 뱉을까 두려웠고 어떻게 하늘이를 대면해야 할지 아직 잘 몰랐기 때문에.성유리는 이러면 안 되는 사람이다.그녀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아이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그리고 아무런 걱정도 없이 살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하지만 도대체 아까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성유리는 하늘이의 얼굴을 차마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이와 멀어지려는 선택을 내렸던 것이다.하늘이는 도우미와 함께 떠나갔지만 아이가 접은 종이는 여전히 방에 남아있었다.아이가 종이로 접은 모양은 바로 “봄”이라는 글자였다. 불필요한 요소가 단 하나도 없는 아주 단순한 글자의 모양.커다란 창문에 붙어있는 그 “봄” 자를 보고 있자면 어딘가 쓸쓸해 보였지만 성유리는 멍하니 계속 바라만 봤다.박한빈이 다가와 뒤에서 성유리를 끌어안기 전까지.성유리는 그제야 정신을 다잡더니 고개를 휙 돌렸다. 하지만 박한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그녀를 꼭 끌어안고 있을 뿐이었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잔뜩 굳어있던 성유리 몸에 힘이 조금씩 풀렸고 이내 고개를 숙여 박한빈의 손을 쳐다봤다.전에 일은 이미 지나간 일이었고 도우미와 의사, 박한빈 빼고는 아무도 그날의 일을 모른다.그리고 성유리도 그날부로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늘 깨어있을 때마다 박한빈이 따라다니며 “감시”했기 때문에.성유리가 잠에 든 뒤에 외출을 할 때마저도 박한빈은 도우미더러 그녀를 지켜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떠나기 전, 방안에 위험한 물건이 있는지 확인했고 만약 조금이라도 날카로운 물건이 있다면 바로 챙겨갔다.하지만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성유리는 죽으려고 노력하지 않지만 삶의 의지도, 살아가려고 노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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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9화

그녀가 아무리 원하지 않았더라도 그 순간 느낀 것은 오랜만에 경험하는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감각이었다.성유리는 눈을 질끈 감았고 금세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바로 그때, 박한빈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더니 곧바로 입술로 향했다.그러자 성유리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다. 그의 혀끝이 그녀의 입술을 밀고 들어오는 순간, 성유리는 정신이 들었는지 힘껏 그를 밀어내기 시작했다.그녀의 저항은 더 칠어졌고 박한빈은 성유리가 무엇을 꺼리는지 알면서도 씩 웃으며 오히려 더 세게 입을 맞췄다.결국 성유리는 하는 수 없이 박한빈의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두 사람의 입안에 피비린내가 퍼졌지만 박한빈은 이미 이런 고통에 익숙해졌다.그는 아프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성유리가 더 화내기 전에 그녀를 놓아주었다. 풀려난 성유리는 박한빈의 가슴을 한 대 치며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았다.“뭐가 무섭다고 그래? 더러운 것도 아니잖아.”“입 닥쳐!”성유리는 더욱 화가 나 박한빈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그는 짐작한 듯 곧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그 순간, 박한빈의 허리띠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금속이 바닥에 부딪히는 쨍한 소리가 울렸다. 시간은 이미 깊은 밤이었다.김서영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하늘과 저택의 다른 직원들도 성유리의 생활 패턴에 맞춰 움직였기 때문에 주변은 매우 조용했다.너무나도 고요해서 성유리는 자신의 귓가에 울리는 작은 소리마저 확대되어 들렸다. 이로 인해 그녀는 점점 더 긴장하고 난처해졌다.성유리의 손은 박한빈의 등을 꼭 움켜쥐었고 흐릿했던 목소리는 점점 애원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이 순간의 박한빈은 평소와 달랐다.더 이상 배려도 없고 부드러움도 없었다. 거친 움직임은 마치 그의 존재를 그녀에게 각인시키고 다시는 헤어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했다.“성유리, 유리야...”박한빈은 성유리의 이름을 귀 옆에서 계속해서 불렀다.그 소리에 성유리가 몇 번이나 대답했지만 그럴 때마다 박한빈이 하는 말은 똑같았다.“내가 누구야?”“박...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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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0화

성유리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베개 밑에 숨겨진 붉은 봉투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봉투 안에는 돈과 함께 평안부 하나가 들어 있었다.잠시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성유리는 조용히 봉투를 제자리에 두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 시각, 거실에서는 김서영과 하늘이가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그들뿐만 아니라 저택의 다른 도우미들도 함께 있었고 다들 즐겁게 카드놀이를 하며 피스타치오를 판돈으로 삼고 있었다.하늘이가 이긴 판이었는지 아이는 기분 좋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신이 나 있었다.성유리가 모습을 드러내자 하늘이는 더욱 밝은 미소를 지으며 달려와 자랑했다.“엄마, 나 또 이겼어! 이것 봐, 내가 얼마나 많이 땄는지.”하늘이의 순수한 웃음에 성유리는 평소대로 칭찬을 건네고 싶었지만 목구멍에 뭔가 걸린 듯한 기분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결국 그녀는 어색하게 미소만 지어 보였지만 그 미소조차도 자연스럽지 못했다.하늘이는 성유리의 눈을 마주하자 방금 전까지의 흥분돼 있던 감정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그리고 성유리는 그런 하늘이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도통 스스로를 억제할 수 없었다.결국 보다 못한 김서영이 다가와 말했다.“자, 그만하고 너희 엄마 아직 아침도 못 먹었잖니. 그리고 공민지 언니도 널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만 도망가고 다시 와서 하자.”“저는 도망가지 않을 거예요!”그 말에 하늘이가 즉시 대답했다.그러면서도 여전히 아쉬운 눈빛으로 성유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끝내 김서영의 말을 듣고 돌아서서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제 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성유리는 하늘이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자신이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하늘이가 지금 얼마나 실망하고 속상해하고 있을지도 알고 있었다.하지만...“괜찮아.”이런저런 생각에 이를 악물고 있을 때, 김서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성유리가 고개를 돌리자 김서영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하늘이는 착한 아이잖니. 게다가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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