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511 - Chapter 520

587 Chapters

제511화

표정이 잠시 굳어지더니 성유리가 이내 말했다.“나... 하지만 하늘아, 너 지금 몸도 안 좋잖아. 우리...”“알아요.”하늘이가 말을 끊었다.“내가 몸이 안 좋으면 엄마가 더 힘들어질 거잖아요.”“그러니까 엄마 걱정 마세요. 그 사람 싫어도 저 얌전히 말을 들을 거예요. 하지만 아빠라고 부르고 싶진 않아요.”하늘이의 말에 성유리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고는 하늘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어쨌든 그 사람은 네 아빠야. 네게 생명을 준 사람이기도 하고 그 사람이 없었다면 엄마도 하늘이를 만나지 못했을 거야.”“아빠라고 부르지 않아도 돼. 싫어해도 괜찮아. 하지만 그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면 안 돼. 알겠니?”...그 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수술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하늘이의 상태도 빠르게 회복되었다.거부 반응도 거의 없었고 적혈구 수치도 빠르게 상승해 수술 한 달 후 성유리는 하늘이의 퇴원 수속을 밟았다.하지만 사하나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정말 거기로 이사 갈 거예요?”“응.”“왜요? 굳이 거기 갈 필요가 뭐 있어요? 금성에 살고 싶으면 우리 집에 빈집 많으니까 하늘이랑 같이 살면 되잖아요.”성유리가 웃으며 말했다.“언제까지나 네게 의지할 순 없지.”“그게 뭐 어때서요? 언니랑 하늘이 정도야 내가 먹여 살리는 데 문제없어요!”“그래도 안 돼.”성유리가 단호하게 말했다.“그리고... 이미 약속한 일이기도 하고.”그러자 사하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근데 결국 수술받은 사람도 그 여자가 아니었잖아요. 게다가 그 어르신이 이렇게까지 한 데는 분명 뭔가 속셈이 있을 거예요.”“짐은 다 챙겼니?”사하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사하나는 깜짝 놀라며 급히 뒤를 돌아봤다. 마주한 건 환히 웃고 있는 김서영의 얼굴이었다.나이로 따지자면 사하나가 그녀를 어르신이라 부르는 게 무리는 아니었다.하지만 지금 김서영의 모습은 그 호칭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최근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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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2화

“감사합니다.”김서영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성유리는 주방에서 하늘이를 위해 간식을 준비하고 있었다.이 집에는 도우미도 있고 요리사도 있었지만 성유리는 여전히 하늘이의 음식을 직접 만드는 걸 선호했다.새로운 환경이었지만 하늘이는 적응력이 뛰어나 아침에는 성유리와 함께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식사 때도 얌전히 먹었다.지금은 2층에서 혼자 낮잠을 자고 있었다.하늘이는 내내 조용하고 순종적이었다. 약을 먹을 때조차도 울거나 떼를 쓰는 일이 없었다.김서영은 그런 하늘이를 무척 좋아했지만 혹시 과도한 애정 표현이 하늘이를 놀라게 할까 봐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고 있었다.그러다 성유리가 잠시 짬을 내어 간식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김서영은 참지 못하고 말을 건넸다.순간 멈칫하며 성유리는 고개를 돌려 김서영을 바라보았다. 김서영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한 표정이었다.그러자 김서영이 대답했다.“하늘이를 정말 잘 키웠구나.”“저는 하늘이의 엄마예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성유리가 담담히 말했다.“그리고 하늘이는 제 딸이니까 이런 말씀은 안 하셔도 돼요.”성유리는 자신과 상대방의 관계를 분명히 선을 그었다.김서영도 성유리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겉으로는 이곳에서 살기로 동의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성유리는 상황을 역이용하려는 것이었다.그녀의 진짜 의도는 분명했다 하늘이가 더 나은 의료 혜택을 받도록 하는 동시에 자신과 박한빈 사이의 가능성은 이미 완전히 끝났음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김서영은 자신이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방법이라도 시도해 봐야 한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뒷마당 과일이 곧 익을 것 같아요.”김서영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하늘이가 케이크 좋아하나? 나중에 과일 따서 케이크를 만들어주면 어떨까?”“하늘이는 케이크를 좋아하지만 망고는 싫어해요.”성유리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딸기랑 초콜릿, 단 걸 더 좋아하죠.”“그렇군. 그럼 다음에 내가 사람을 시켜서...”“굳이 그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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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3화

이전에 그녀는 꽤 큰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문득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하늘이는 이곳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처음에 김서영을 마주할 때는 다소 어색해했지만 며칠을 함께 지내다 보니 얼굴에 미소도 점점 늘었다.김서영을 볼 때마다 먼저 ‘할머니’라고 부르며 인사하기도 했다.또한 그녀는 하늘이에게 많은 장난감을 사줬다.하늘이는 모두 감사히 받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여전히 작은 사자 인형이었다.매일 그 인형과 떨어지지 않고 잠잘 때도 꼭 끌어안고 있었다.성유리가 물었다.“그거 예전에 네가 가지고 있던 인형이 아닌 거 알아?”하늘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아요. 전에 것도 정말 좋아했어요. 그런데 이건 그냥 지금 좋아하는 거예요.”단순한 말이었지만 그 속엔 또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는 듯했다.성유리는 순간 그 의미를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그때, 갑자기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도련님이 돌아오셨습니다.”그 소리에 성유리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하늘이는 궁금한 듯 물었다.“엄마, 도련님이 누구예요?”성유리가 대답하려던 순간 그가 이미 집 안으로 들어왔다.그는 혼자가 아닌 옆에 낯선 여성과 함께 있었다.그날 마트에서 마주쳤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성유리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어차피 박한빈의 곁에는 늘 여자가 끊이지 않았으니 말이다.호기심 가득했던 하늘이는 박한빈을 보자마자 얼굴 표정이 굳어지더니 곧바로 성유리의 곁으로 달려와 그녀 뒤로 숨었다.그 순간, 김서영이 계단을 내려왔다.박한빈은 성유리를 보던 시선을 거두고 말했다.“어머니.”“안녕하세요, 어머님.”그의 옆에 있던 여성이 다가와 웃으며 인사했다.“저는 안희연이라고 합니다.”“반가워요.”김서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어서 와요.”“사실 전부터 뵙고 싶었는데 한빈 씨가 어머님께서 조용한 걸 좋아하신다고 해서 방해가 될까 봐 못 왔어요.”“괜찮아요. 시간 되면 자주 놀러 오세요.”김서영은 이렇게 말하며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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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4화

아이들의 감정은 가장 단순하고 직관적이다.누가 잘해주면 그 사람과 친해지고 그렇지 않으면 거리를 둔다.김서영은 언제나 친절한 태도로 하늘이를 대했다.하늘이를 볼 때마다 부드러운 미소를 잃지 않았기에 하늘이가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하지만 박한빈은 달랐다.첫 만남부터 하늘이에게 끔찍한 인상을 남겼고 성유리의 기억이 맞다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는 하늘이를 보며 웃은 적이 없었다.하늘이가 자신을 볼 때마다 박한빈은 항상 굳은 표정이었다.여기에 첫인상의 영향까지 더해져 하늘이가 그를 싫어하는 것도 당연했다.사하나는 정말 오랜만에 하늘이를 만났다. 그래서인지 오늘 두 사람은 유난히 들떠 있었다.식사를 마친 뒤 사하나는 하늘이를 데리고 게임센터로 향했다.사하나는 인형 뽑기 실력이 뛰어났다.두 사람은 가득 인형을 뽑아낸 후 그것들을 상가 입구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하늘이는 이런 일을 무척 좋아했다.하늘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인형을 나누어주는 틈을 타 사하나는 마침내 성유리에게 물을 수 있었다.“요즘 어떻게 지내요?”“뭐가?”“그러니까... 그 집에서 잘 지내고 있냐고요.”“응, 괜찮아. 하늘이도 잘 적응하고 있어.”“그럼... 한빈 씨랑 마주친 적은 없어요?”이 질문에 성유리는 잠시 멈칫했다.그러나 이제 와서 숨길 필요도 없기에 곧 고개를 끄덕였다.“봤어.”“정말요? 언제? 어디서? 어떤 태도였는데요?”사하나는 흥분한 듯 물었다.그러자 성유리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더니 말했다.“왜 그렇게 흥분해?”“나요? 흥분한 거 아닌데요? 나 흥분했어요?”사하나의 말에 웃음이 터질 뻔한 성유리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대답했다.“오늘. 그 사람이 여자친구를 데리고 어머님을 뵈러 왔더라고. 그래서 잠깐 얼굴을 보게 됐어.”“오늘... 잠깐, 방금 뭐라고 했어요? 여자친구를 데리고 왔다고요?”“예쁜 여자였는데 이름이 안... 뭐라고 했더라...”“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 자식 여자친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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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5화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정말 우연이에요.”구승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고 옆에 있던 사하나는 갑자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혹시 장성 그룹의 연 대표님 아니세요?”“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사하나 씨.”연정우는 곧 손을 내밀어 사하나와 악수를 나눴다.사하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성유리를 향해 눈으로 무언가를 묻는 듯했지만 성유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그러나 사하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이를 향해 물었다.“하늘아, 아저씨는 어떻게 알게 된 거야?”“아저씨가 병원에 나 보러 왔었어요.”하늘이는 진지하게 대답하며 덧붙였다.“이모, 아까 분수 보러 간다면서요?”“맞다! 그럼 가자, 분수 보러 가자!”사하나는 곧 하늘이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그리고 성유리에게 말하며 눈짓을 보냈다.“하늘이랑 분수 보러 갔다 올게요. 두 분이서 편히 얘기하세요.”이 말을 끝으로 사하나는 하늘이를 데리고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하늘이도 사하나의 행동에 맞춰 자연스럽게 움직였고 두 사람은 성유리가 말릴 틈도 없이 멀리 걸어가 버렸다.혼자 남겨진 성유리는 어쩔 수 없이 연정우를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딸이 엄마를 꽤 신경 쓰는 것 같네.”연정우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고 성유리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웃으며 대답했다.“농담하지 마. 아직 세 살도 안 됐는데 뭘 알겠어?”“아이들은 이런 문제에 굉장히 민감해. 방금 날 보고 무슨 질문 했는지 알아?”“무슨 질문 했는데?”“나한테 여자친구 있냐고, 혹시 여기 데이트하러 왔냐고 하더라고.”성유리는 순간 입가가 떨리는 것을 느꼈다.분명 사하나가 하늘이에게 이런 말을 가르쳐 준 것이 틀림없었다. 두 사람이 자신 몰래 얼마나 많은 장난을 쳤는지 알 수 없었다.“장난으로 한 말일 거야.”성유리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연정우에게 말했다.“너무 신경 쓰지 마.”“물론 아이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지. 근데 그 장난이 생각보다 꽤 적절한 것 같아서.”연정우의 말 속에는 분명한 의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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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6화

사하나는 완전히 중매자 역할에 몰두하기로 마음먹은 듯했다.하늘이와 충분히 놀고 난 사하나는 갑자기 급한 일이 있다며 먼저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유리와 하늘이를 집에 데려다주는 일을 자연스럽게 연정우에게 맡겼다.거짓말을 잘 못하는 사하나가 하는 행동들은 너무 티가 났기에 성유리의 눈에는 어설퍼 보이기 그지없었다.하지만 연정우는 그런 사하나를 굳이 들추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게 웃으며 그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심지어는 사하나에게 고맙다고 말하기까지 했다.사하나는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고 연정우를 쳐다보다가 하늘이에게 무슨 말을 몇 마디 더 속삭인 뒤에야 자리를 떴다.그녀가 아이에게 좋은 말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직감한 성유리는 돌아가는 길 내내 하늘이의 주의를 돌리려 노력했다.하늘이가 사하나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잊게 하려는 의도였다.하지만 하늘이는 책임감이 강한 아이였다.결국 돌아가는 길 끝 무렵에 하늘이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연정우에게 먼저 물었다.“아저씨, 나중에 시간 되면 저랑 같이 놀러 갈 수 있어요?"하늘이는 질문을 매우 직설적으로 던졌고 둥그런 눈으로 연정우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는 모습은 사뭇 진지했다.아이의 물음에 연정우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물론이지."그 답을 듣자마자 하늘이는 기뻐하며 환히 웃었지만 반면에 성유리는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마침 그때, 차는 엔절 월드에 도착했다.하늘이는 연정우에게 인사말을 전하며 차에서 내렸다.“아저씨, 안녕히 가세요! 다음에 또 만나요. 저랑 약속했으니까!"“그래. 안녕."연정우는 차에서 내려 잠시 저택을 바라보다가 별다른 말 없이 미소만 지은 채 자리를 떠났고 성유리는 그제야 하늘이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시간이 너무 늦지는 않았지만 김서영은 일찍 자는 습관이 있어 저택 안에는 몇몇 하인들만 남아 있었다.성유리가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도우미 중 한 명이 다가왔다.“성유리 씨, 저녁 식사는 하셨나요? 준비해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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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7화

성유리는 처음엔 우연히 만났을 뿐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잠시 망설이다 이렇게 답했다.“걱정해 주시는 거면 고마워요. 하지만 진실이 어떤지는 저랑 하늘이가 잘 알고 있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그 말을 끝으로 성유리는 하늘이의 손을 잡고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고 하늘이도 자연스럽게 그녀의 뒤를 바짝 따랐다.성유리는 끝내 박한빈에게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그러나 그녀가 하늘이의 목욕을 도와주던 중, 아이가 갑자기 물었다.“엄마, 아빠는 나를 정말 싫어하는 거야?"“아니야."성유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한 말투로 하늘이의 말에 반박했다.“그런데 왜 아빠는 나를 볼 때마다 그런 표정을 지어?"하늘이는 말하며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입꼬리마저 일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박한빈과 꽤 닮아 있었다.아이의 모습을 발견한 성유리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아니야. 네가 뭘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아빠가 원래 그런 사람이라서 그래."“정말? 근데 엄마가 전에 말했잖아. 하늘이는 엄마랑 아빠가 사랑해서 생긴 아이라고. 그럼 이제는 사랑이 없어진 거야?"그 말을 들은 성유리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서서히 사라졌고 손에 들고 있던 수건을 짜던 동작도 뚝 멈췄다.“엄마?"하늘이가 자신을 다시 부르는 소리에 성유리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아이를 바라보며 웃어 보였다.“응. 그래.”그러자 하늘이가 성유리에게 다시 물었다.“그럼 엄마는 정우 아저씨를 사랑할 수 있어?"“하늘아, 사랑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야.”성유리가 침착한 태도로 대답했다.“그리고 지금 엄마는 너만 있으면 돼. 다른 사람은 필요 없어."하지만 하늘이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그런데 엄마, 나는 엄마가 아저씨랑 같이 있으면 좋겠어요.”성유리는 아이의 말을 듣고 살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건 분명히 사하나 이모가 네게 이상한 말을 한 거지? 그 말 믿지 마. 엄마는...”“아니. 엄마. 그건 내 생각이야.”하늘이의 진지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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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8화

박한빈은 어젯밤 발코니에서 보았던 하늘이가 연정우와 인사하며 웃는 모습을 떠올렸다. 솔직히 그 장면은 너무나도 조화로워 보였고 마치 진짜 가족처럼 느껴졌다.그리고 박한빈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하늘이가 먼저 박한빈에게 말을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하지만 아이가 한 말은 다름 아닌 자신을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이었다.박한빈은 차마 하늘이에게 내가 내 집에 왜 있으면 안 되냐고 묻고 싶었지만 순진무구한 하늘이의 눈을 마주친 순간 모든 생각을 접었고 짧게 대답해 줬다.“그래.”그의 대답은 단호했지만 하늘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성유리를 찾았다.박한빈은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가슴 한구석이 무겁고 아픈 감각이 점점 더 선명해질 때쯤 그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거실에는 김서영이 이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박한빈을 발견한 그녀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빨리 와서 아침 먹어라.”“괜찮아요."박한빈은 대답하며 집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저 일이 있어서 먼저 나갈게요.”“그래도 아침은 먹고 가야지...”김서영이 박한빈에게 말을 더 붙이려 했지만 박한빈은 이미 집 문을 나섰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하려던 말을 삼키며 식당 쪽을 돌아보았다.성유리와 하늘이는 그곳에 있었다.어젯밤 박한빈에게 주어진 기회는 이미 지나갔고 오늘 아침 함께 식탁에 앉을 드문 기회조차 그는 놓쳐버렸다.김서영은 속이 상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어 한숨만 내쉬며 식당으로 들어갔다.“한빈이는 먼저 나갔어.”김서영의 말에도 성유리는 고개만 숙인 채 하늘이에게 삶은 달걀 껍질을 까주고 있었다.그녀의 말이 몇 초간 허공을 맴돌았고 성유리는 뒤늦게 그 말을 이해한 듯 고개를 들어 김서영을 바라보았다.그 시선은 마치 자신에게 한 말이 맞는지를 묻는 듯했다.그 눈빛을 본 김서영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고 그제야 성유리가 어색하게 대답하기 시작했다.“그래요?”김서영은 답답한 듯 한숨을 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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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9화

그로부터 며칠 동안 성유리는 박한빈을 다시 볼 수 없었다.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원래도 박한빈이 이곳에 자주 오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이상하게 여길 것도 없었으니까.그 안희연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선 사하나가 성유리에게 알려주었다.“전에 인터넷 방송하던 사람이래요. 지금도 스트리머로 활동 중인 것 같고요.”사하나는 말하며 미간을 찌푸렸다.그녀의 눈에 인터넷 방송은 그다지 품격 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특히 안염처럼 외모가 괜찮은 여자는 더더욱.사하나는 성유리에게 안희연이 진행했던 방송 영상을 보여주었다.화면 속의 안희연은 하얀 원피스를 입고 카메라 앞에서 웃으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성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지 않은 태연한 반응을 보였다.“그게 다예요?"그러자 사하나는 눈을 부릅뜨며 성유리에게 물었다.“아무 의견도 없어요?"“내가 무슨 의견을 말해야 되는데?"성유리는 사하나의 말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의아해하며 되물었다.“음... 예쁘긴 하네.”“그거 다 필터예요! 그리고 얼굴에 화장 얼마나 두껍게 발랐는지 안 보여요?”“그래도 이 업계가 원래 그런 거 아니야?”“그렇긴 해요. 그런데 이번엔 박한빈 씨 취향이 진짜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어떻게 이런 수준인 여자랑 만날 수 있죠? 눈이 이렇게 낮아졌나?”성유리는 한숨을 푹 내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냥 둘이 좋으면 된 거지. 네가 왜 이렇게 신경 써?"“그냥 보기 불편해서 그래요.”사하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더니 금세 화제를 돌렸다.“언니는요? 요즘 연정우 씨랑 만난 적 있어요?”“아니."“왜요? 그 사람이 언니한테 연락 안 했어요?”“그런 건 아닌데 그냥 내가 만나고 싶지 않아.”“왜요? 저는 연정우 씨 참 괜찮은 사람 같던데. 두 사람 옛날에 결혼까지 거의 갈 뻔했잖아요. 지금 다시 잘될 기회가 생긴 거면 좋은 거 아닌가요?”성유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건 다 지나간 일이야. 지금은 그런 거 생각하고 싶지 않아.”“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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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0화

성유리는 사하나의 마지막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사실 유효정의 집안이 몰락한 이유가 누구 때문인지 성유리도 아직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이제 와서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하늘이가 회전목마에서 내려오자 둘은 함께 그곳을 나왔다.아이는 너무 신나게 놀아 얼굴에 땀이 잔뜩 맺혀 있었다.성유리가 하늘이의 땀을 닦아주기 위해 몸을 숙이려는 순간, 옆에 있던 사하나가 갑자기 손을 뻗어 성유리의 팔을 꽉 잡았다.너무 갑작스러운 사하나의 행동에 성유리는 깜짝 놀라는 한편 잡혀있는 팔이 너무 아팠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지만 사하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성유리의 손을 잡은 채 앞쪽을 가리켰다.“언니, 저기 빨리 봐요! 저 사람 누구예요?"사하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었고 직접 손가락으로 가리키지도 않았다.성유리는 대체 사하나가 왜 이러는지 궁금해 그녀의 시선을 따라 앞을 바라보았다.현재 그들은 쇼핑몰에 있었고 방학 기간이라 오고가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그렇기에 성유리는 사하나가 말한 사람이 누군지 단번에 알아채지 못했다.사하나는 그런 성유리가 답답한 듯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언니 바로 앞에. 브랜드 매장 들어가려는 여자 말이에요!"성유리는 이날 안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멀리 있는 사람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다행히 매장 조명이 밝았고 그 여자의 검은 웨이브 머리가 눈에 띄었기에 뒤늦게 그녀가 누군지 알아챘다.그 여자는 다름 아닌 박한빈의 새 여자 친구, 안희연이었다.“봤어. 근데 그래서?"성유리가 물었다.“언니 진짜 둔하네요. 안희연 씨 옆에 있는 남자는 못 보셨어요?”성유리는 안희연을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기 때문에 옆에 있는 남자를 볼 여유는 없었다.안희연과 남자는 이미 매장 안으로 들어갔으니 사하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성유리를 끌고 같은 매장으로 향했다.“우리는 왜 들어가?”성유리는 사하나의 의도를 눈치채 재빨리 물었고 사하나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당연히 확인해야죠! 둘이 무슨 관계인지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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