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해도 지금은 네 말만으로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어. 하지만 만약 내가 이 감정서를 보여주기만 하면 어머니가 서명한 수술 동의서는 바로 무효가 될 거야.” 박한빈의 말이 끝나자 성유리의 얼굴에서 띠고 있던 모든 표정이 사라졌다. 그녀는 그저 조용히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분노 또는 슬픔, 아니면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나 놀랍다는 감정. 지금 성유리에게서는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그저 가만히 서서 마치 자신과 아무 관련 없는 낯선 사람을 바라보듯이 그를 응시했다. “왜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성유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박한빈 씨, 당신은 정말 당신의 딸이... 죽는 걸 보고 싶어요?” 이 순간, 어떤 금기 따위도 그녀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머릿속에 맴도는 건 단 하나, 끝없는 혼란뿐이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박한빈이 하는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다.도대체 박한빈이 왜 이런 선택을 하는지, 왜 하늘이에게까지 이런 잔인한 짓을 하려 하는지 모든 것이 이해가 안 갔다. 비록 박한빈이 하늘이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고 과거 성유리가 한 선택을 증오한다 해도 그것이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하늘이는 분명 그를 아빠라고 불러야 할 존재였다. 그런데 박한빈은 그런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일까? “가슴 아파?” 박한빈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오히려 비웃듯 웃음을 터뜨렸다. “성유리, 지난 2년 넘게 나는 매일매일 그렇게 살아왔어. 네가 나를 의심하던 그때도. 내가 아프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난 그 아이가 죽길 바라는 게 아니야. 난 그저... 네가 편하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박한빈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말은 깊은 저주처럼 그녀의 가슴에 뜨거운 쇠붙이로 쓴 낙인처럼 새겨졌다. 결국 성유리는 몰려오는 서러움을 견디지 못해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재회 후, 처음으로 박한빈 앞에서 흘린 눈물이었다. 곰곰이 떠올려보면 성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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