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처럼 다가온 그 남자의 모든 챕터: 챕터 71 - 챕터 80

100 챕터

제71화 저 좀 놔줘요

옆에 있는 남자는 일부러 번호판을 채림의 얼굴 앞에 들며 제 얼굴과 멀리했다. 그 행동에서 채림은 대충 짐작했다. 다행히 그녀도 어느 정도 대비를 해두었다.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호가를 하기 시작했지만, 채림이 번호표를 들 때면 옆에 남자는 어김없이 바로 따라 했다. 채림이 숨을 죽이고 관찰했더니, 남자가 점차 제 반응을 살핀다는 걸 알 수 있었다.채림은 머리가 어지러운 척 관자놀이를 문지르고 문밖으로 나갔다. 옆에 있던 남자는 채림이 갑자기 나가리라고 생각지 못했는지 잠깐 망설이다가 이내 따라붙었다. 채림은 앞에서 급히 걸었다. 심지어는 일부러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맨 마지막 줄에 다다랐을 때 왼쪽에서 갑자기 팔 하나가 쑥 나와 그녀 앞을 막았다. 너무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라 채림은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그 사람의 품에 넘어졌다.채림은 고개를 들어 어두운 불빛 아래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놀란 듯 상대를 불렀다.“문...”‘이 사람은 왜 어딜 가나 나타나?’이런 중소형 규모의 경매에 지후가 참석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채림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까 전 들었던 귀에 익지만 생각나지 않았던 목소리가 바로 원강현이었다.“저기요! 그 여자는 제 파트너예요.”그때 뒤에 있던 두 남자가 따라왔다가 채림이 휠체어에 앉은 남자 품에 기대 있는 걸 보고는 그녀를 데려가려고 했다.“응?”휠체어에 앉은 남자는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콧소리가 살짝 섞여 있었는데 매우 언짢아 보였다. 그가 눈을 들자 강렬한 카리스마와 위압감이 뿜어져 나와 앞으로 다가오던 두 남자가 흠칫 놀라 걸음을 멈췄다. 아까까지만 해도 앞으로 다가가 채림을 부축하려 하던 둘은 이 순간 고민하고 있었다.지후가 강현에게 두 사람을 잡아들이라고 명령하려는 찰나, 품속에 엎드려 있던 채림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문 대표님, 저 좀 놔줘요.”“음?”지후는 몸에 힘을 주며 미간을 찡그렸다.‘내가 지켜주는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저 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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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괜찮으니까 걱정 마요

그 시각, 벤 안.채림이 차 안으로 던져지자마자 차 안에 있던 사람이 그녀를 보호하더니 이내 두 남자를 제압했다.아까 두 사람이 어떻게 채림을 제압했다면,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그걸 10배 정도 돌려줬다.“채림 씨, 이 두 놈과 접선하려던 사람은 우리가 이미 통제하고 있습니다. 이놈이 저들 두목이니 이 자식한테 물어보세요.”사립 탐정 김지섭이 채림에게 말했다.채림을 미행하던 두 남자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꽁꽁 묶였다.“나를 납치하라고 한 거 누구야?”채림은 모자를 벗고 주름진 치마를 정리하더니 물었다.“저희도 몰라요. 살려주세요. 저희는 그저 돈 받고 시킨 대로 했을 뿐이에요.”건달 세 명은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누가 사주했는지 말하면 용서할게. 안 그러면 절대 쉽게 용서 안 해.”채림의 목소리는 일순 날카로워졌다.“우리는 정말 몰라요. 근식 형님이 고객과 연락했고 우리는 시키는 대로만 했어요.”그중 채봉규라는 똘마니 하나가 애원하며 다급히 모든 걸 실토했다.“저희가 아가씨를 납치한 것도 근식 형님께 알려드려야 해요. 그래야 다음에 어디로 데려가야 할지 알아요.”마침 여기까지 말했을 때 채림의 핸드폰이 갑자기 진동했다.확인해 봤더니 지후한테서 전화가 걸려 온 거였다.[어때요?]전화 건너편 목소리는 차가우면서도 급박해 보였다.“괜찮으니까 걱정 마요.”채림은 지후가 저를 걱정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건너편에서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확실해요?]“당연하죠. 저 지금 바빠서 이따 얘기할게요.”뚜뚜, 하는 기계음에 뒤쪽 차 안에 있던 지후는 미간이 푹 파였다. 안 괜찮을 텐데 괜찮다, 확실하다 하는 건... 협박당했다는 뜻이고, 암시도 안 했다는 건 차 안 상황이 매우 급박하다는 뜻이었다.지후는 얇은 입술을 오므리고 단호하게 분부했다.“따라붙어요.”“네!”조현국은 다급히 액셀을 밟으며 힘차게 내달렸다.잠시 뒤, 벤 안에서 운전하고 있던 지섭은 핸들이 급격히 돌아가면서 차가 흔들리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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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똑같이 갚아준 것뿐이야

“네.”지섭은 흔쾌히 대답하고는 또 물었다.“그럼 채림 씨는 병원에 갈 건가요?”“가야죠.”채림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백사나가 저를 보고 싶어 한다면 만나서 완전히 포기하게 헤야죠.”“네. 제가 밖에서 대기해 채림 씨한테 절대 아무 일 없게 하겠습니다.”...예성병원, 903호실.채림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팔과 다리에 깁스를 한 채 침대에 쭈그려 누운 백사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양새는 매우 안쓰러웠다. 게다가 백사나는 민낯이었는데 피부 상태가 걱정될 정도로 최악이었다. 그도 그럴 게, 장기적으로 짙은 화장을 하고 다니던 그녀였기에, 화장을 안 한 모습이 조금 충격이었다.“백채림?”사나는 채림이 들어오자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박근식 이 자식이!”근식이 말도 없이 사람을 보내는 바람에 사나는 미처 화장도 하지 못해 준비 없이 채림을 맞아야 했다. 게다가 그녀는 온몸에 상처투성이인데 채림은 멀쩡한 채로 걸어들어왔으니, 그 모습이 딱 저를 비웃으러 온 것 같았다.사나는 얼른 머리를 정리하며 눈을 부릅뜬 채 유세를 떨었다.“내 사람이 너한테 너무 예의를 차렸나 보네!”채림은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네가 가장 주목받는 글로벌 퀸이 되고 BM그룹에 들어가 주주가 되면, 아무도 널 어떻게 할 수 없을 줄 알았어?”사나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백채림, 네 가장 큰 약점은 그 자부심이야. 내가 너 하나 처리하는 건 몇 분도 안 걸려!”“그래도 나한테 그렇게 당하고 좀 얌전해질 줄 알았는데, 어쩜 점점 겁이 없어져?”채림은 비꼬아서 대꾸했다.그 말에 사나의 눈빛은 순식간에 악랄해졌다.“오경수를 걷어찬 게 너일 줄 내가 모를 줄 알아? 그러면서 그걸 나한테 덮어씌웠어?”“난 그저 네가 한 대로 똑같이 갚아준 것뿐이야.”“오경수가 자기를 찬 사람이 너라는 걸 알게 되면, 너도 좋은 꼴 못 당할 거야!”사나가 위협했다.“오경수가 너랑 같은 줄 알아?”채림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사나를 어릿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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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내가 너무 오냐오냐해줬나요?

그 시각 병원 앞에 세워진 지섭의 차 안에서 채림은 차분하게 앉아 예쁜 눈은 싸늘하게 번뜩였다. 사나는 항상 멍청하게 굴어, 매번 그녀를 상대할 때면 채림이 직접 나설 필요가 없다.“채림 씨.”그때 지섭의 목소리가 채림의 생각을 끊어버렸다.“아까 채림 씨 사람이라고 했던 분... 아직도 따라오고 있어요...”채림은 예쁜 눈을 번쩍 들어 올리며 놀란 듯 백미러를 확인했다.그랬더니 역시나 지후의 검은색 마이바흐가 뒤에 가만히 멈춰 서 있었다. 채림은 어이없어 피식 웃고는 잠깐 뜸 들이다 입을 열었다.“됐어요. 이제 더 이상 할 일은 없어요. 오늘 다들 수고했어요. 난 이만 가볼게요.”“채림 씨는 우리 아가씨의 가장 친한 친구인데 당연히 도와야죠. 고마워할 거 없어요.”지섭은 예의 있게 대답했다.곧이어 채림은 뒤에 세워진 마이바흐로 다가갔다. 채림이 다가오는 걸 본 조현국이 얼른 문을 열었다.채림은 지후를 흘긋 보고는 차 안 냉장고를 열어 음료수 한 병을 꺼내 몇 모금 들이켰다. 차가운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흐르자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아까 경매장에서 비틀거리던데, 혹시 미약에 당했어요?”지후가 물었다.“네.”채림은 물을 마시며 말을 아꼈다.“병원에 데려다줄게요.”지후가 다시 말했다.“필요 없어요.”채림은 고개를 저었다.“그때 숨을 참아서 얼마 들이켜지 않았어요. 돌아가서 휴식하면 괜찮아져요.”“채림 씨를 해치려던 사람은 해결했어요?”지후가 또 물었다.“네.”채림은 이번에 고개를 끄덕였다.지후는 채림을 몇 초 동안 관찰하다가 눈썹을 움직였다. 채림은 머리가 너무 빨리 돌아가 그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지후는 생각을 접고 다시 물었다.“그동안 물어보지 않았는데, 후각은 타고난 거예요?”채림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그러자 지후는 알았다는 듯 눈썹을 치켜 올리며 또 물었다.“뉴스까지 나와 이목이 쏠린 마당에, 왜 경매장에 왔어요? 그 왕관 때문이에요?”“네.”“왜죠?”지후가 물었다.채림은 아버지가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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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남편이 행해야 할 의무가 뭐지?

“그게 무슨 뜻이죠?”지후를 등지고 있던 채림은 뜬금없이 꾸중을 들어 화가 났다.“무슨 뜻인지도 모르겠어요? 본인이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지후의 목소리는 더 낮아졌고,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채림은 숨을 돌리고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저한테 아내로서의 의무를 따지기 전에 왜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행했는지는 물어보지 않아요?”채림은 단단히 화가 뻗쳐 지후를 등진 상태로 할 말을 하고는 씩씩거리며 욕실을 나갔다.하지만 채림이 밖으로 나갔더니 도우미 김선주가 유필규를 모시고 서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유 선생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채림은 의아해서 물었다.“문 대표님을 치료하러 왔어요.”유필규는 흰 수염을 내리 쓸며 말했다.그때, 욕실 문이 열리더니 지후가 지팡이를 짚은 채 안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러자 김선주가 얼른 가다가 그를 부축해 앉히더니 이윽고 유필규가 그에게 침을 놓고 마사지했다.“문 대표님, 이 발은 너무 많이 움직이지 마세요. 안 그러면 회복에 지장 있을 겁니다.”유필규가 당부했다.‘정말 다쳤나?’채림은 놀란 눈으로 지후를 바라봤다.“언제 다쳤어요?”“사모님은 모르셨나요? 문 대표님은 이틀 전에 돌아오자마자 다쳤어요. 그런데 방치하다 예전에 다쳤던 게 덧나기까지 했고요.”유필규가 말했다.“이틀 전?”채림은 그제야 알아차리고 다시 물었다.“산사태 때 다쳤어요?”“사모님도 계셨나요?”유필규가 의아한 듯 물었다.“저 사람과는 아무 상관 없어요.”채림이 대답하기도 전에 지후가 차갑게 끼어들었다. 지후가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채림은 계속 옆에 있었다. 산사태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권경민이 분명 문지후는 크게 다치지 않아 H시로 돌아갔다고 했다.그런데 이렇게 심하게 다칠 줄은 몰랐다.이번에 지후가 다친 건 따지고 보면 채림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이춘덕을 집에 바래다주겠다고 하지 않았다면 산사태 현장에 있지 않았을 테니까. 그때를 떠올리니 채림은 순간 죄책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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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네, 잠깐만 기다려요. 바로 갈게요.”채림은 말을 마치자마자 다급히 상자를 내려놓고 외투와 가방을 챙겨 나갔다.조사팀은 표절 건을 조사하러 왔다. 그들은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하느라 프로젝트팀 팀원들을 일일이 조사하였고 그중에 채림도 포함되었다. 프로젝트에 참석했던 직원들은 대부분 물음에 물 흐르듯 대답했다.점심 휴식 시간 때, 채림은 조사팀 직원들에게 예의 있게 물었다.“혹시 이번 사건에 대한 결론은 났나요?”조사팀 직원은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솔직히 우리는 DL 그룹을 먼저 조사하고 여기로 온 거거든요. 오기 전에 협회장과 그때 현장에 계셨던 심사위원분들이 기본적인 상황은 설명해 주셔서 대략적인 짐작을 했는데, 입증하기 쉽지 않더군요.”그 말인 즉 DL 그룹이 일을 주도면밀하게 처리해 조사팀에서 수사에 난항을 겪었다는 뜻이다.“큰일 났어요!”그때, 향수 사업부 동료가 채림에게 핸드폰을 넘겨주었다.“백 대표님, 큰일 났어요.”10분 전, 인터넷에 갑자기BM그룹과 DL그룹 기획안이 똑같았다는 기사가 났다. 게다가 기사에서는 DL그룹이 BM그룹보다 먼저 기획안을 발표했다는 걸 강조했다.이건 여론몰이나 다름없었다.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에 갑자기 BM그룹에 불리한 여론이 계속 생기면서, 모두가 BM그룹이 상업적인 이익을 위해 동종 업계 아이디어를 표절하는 비겁하고 악랄한 기업이라고 비판했다.“백 대표님, 이거 분명 DL그룹에서 한 짓이 틀림없어요. 홍보팀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생각보다 빨리 퍼지고 있대요. 그렇다는 건 분명 누군가 뒤에서 댓글 알바를 조종하고 있다는 뜻이에요.”향수팀 동료들은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 했다.그때 조사팀 직원이 입을 열었다.“현재 상황은 BM그룹에 불리해요. 이대로라면 향수 협회도 여론의 압박을 못 이겨요. 그러면 BM그룹 신제품 라인 개발에 대한 승인을 중단해야 할 수도 있어요.”채림은 눈살을 찌푸렸다.제품 라인이 출시를 앞두고 있는데, 지금 중단되면 매일 무의미한 손실이 늘어날 거고 BM그룹도 결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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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미끼

속사정을 알 리 없는 채림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또 열심히 일을 하기 시작했다.그날 오후 조사팀 직원들은 조사를 끝내고 짐을 챙겨 떠났다. 그러면서 가기 전 본인들의 태도를 내비쳤다.“백 대표님, BM그룹이 만약 결백하다는 걸 입증하지 못하면 현재의 여론과 증거가 모두 BM그룹을 가리키기에, 저희는 그 책임을 BM그룹에 물을 수밖에 없어요.”“저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저희 신제품 라인은 이미 준비가 끝난 상태예요. 지금 중단하면 BM그룹에 영향이 너무 커요.”채림은 향수 사업부 직원들과 함께 조사팀을 따라가면서 기회를 얻으려고 최선을 다했다.“지금은 말만 한다고 소용없어요. 증거를 내놓으셔야 해요.”조사팀 직원들은 귀찮았는지 걸음도 멈추지 않고 대꾸했다.“증거가 없다면, 저희도 시간 낭비할 필요 없어요.”조사팀 직원들이 차를 타고 떠나려 할 때, BM그룹로비에 젊은 남성 한 명이 갑자기 튀어나오며 소리쳤다.“잠깐만요.”“저한테 증거가 있어요.”BM그룹 로비까지 쫓아 나온 남자는 키가 크고 두터운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는 조사팀 직원들 앞에 다가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저한테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상대가 우리 기획안을 훔친 거라는 걸 제가 입증할 수 있어요.”조사팀 직원들은 그 즉시 걸음을 멈추고 남자를 바라봤다.그러자 남자는 안경을 쓱 밀어 올리며 말했다.“저는 기술팀 직원 이형택입니다. 백 대표님이 입찰하러 가기 전날 밤, 누군가 우리 모니터링 시스템에 악의적으로 침입했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그렇다는 건 누군가 그때 우리 회사 기획안을 훔쳤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CCTV 자료가 삭제되었어요.”“그럼 그 자료를 복구할 수 있나요?”채림이 다급히 물었다.“네!”형택은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다가 겨우 CCTV 자료를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좀 걸려요.”“얼마나 걸리죠?”조사팀 직원이 물었다.“24시간이요.”형택은 자신 있게 말했다.“하지만 CC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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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스파이

갑작스럽게 내리쬔 불빛에 꿍꿍이를 가지고 몰래 기어들어 왔던 침입자는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쳤다. 그는 상황이 틀어진 걸 짐작하자마자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문 앞에 매복한 경비원 몇 명에게 제압당했다.“백... 백 대표님. 아까 이미 돌아가신 거 아니었어요?”침입자는 책상에 얼굴이 눌려 꼼짝도 하지 못했다. 이윽고 제압된 상태로 놀란 눈을 굴리며 채림을 바라봤다.채림 역시 날카로운 눈빛으로 침입자를 봤다.“나만 안 간 게 아니라 조사팀 직원들도 안 갔어요. 아까 당신이 한 말 조사팀 직원들도 다 들었어요.”채림의 말이 끝나자마자 조사팀 직원들과 향수팀 팀장이 안으로 들어와 형형한 눈빛으로 침입자를 노려봤다. “스파이가 당신일 줄 몰랐네요. 송현호 씨.”채림은 아쉽다는 듯 말했다.“지난번에 의료팀이 산지에서 당한 일만 해도 여러 가지 의문점이 있었는데, 아귀가 들어맞지 않았거든요. 그때 생각하다 못해 우리 회사에 DL그룹 스파이가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게 송현호 씨일 줄은 몰랐네요.”“아니에요. 저 아니에요!”송현호는 당황하여 급히 부인했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 그가 했던 말을 들었기에 아무도 그의 변명을 믿지 않았다.“송현호 씨, DL그룹과 내통하여 회사 문서를 빼돌린 건 엄연한 산업 스파이 행위에 해당하고, 동기의 생명을 위협한 건 형사 범죄에 속해요. 지금까지 한 짓 솔직히 털어놓으세요. 송현호 씨 배후와 상세한 범행 내역을 말해야 그나마 형량을 줄일 수 있어요.”조사팀 직원이 겁을 줬다.그 말을 들은 송현호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마구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여전히 자백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아직도 말 안 할래요?”채림은 현호 앞으로 다가가 그의 속을 긁었다.“솔직히 자백하면 DL그룹에서 약속받은 잔금을 못 받을까 봐 그래요? 현호 씨 말 돌려줄게요. 돈이 중요해요? 목숨이 중요해요? 아직 젊은 분이 남은 인생을 평생 감옥에서 보내도 괜찮겠어요?”“말... 말할게요.”송현호는 결국 멘탈이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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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오늘 웬일로 이렇게 돈을 써?

채림은 예쁜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형택 씨가 가장 덩치가 크고 튼실해서 맷집이 좋을 것 같았거든요.”“네?”형택은 머리를 긁적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옆에서 순식간에 웃음이 터지자 채림도 웃으며 말했다.“농담이에요. 형택 씨가 가장 용감하고 우직할 것 같았거든요. 실제로도 그랬고요. 잘했어요! 제가 약속할게요. 우리 향수 제품 라인은 전체 사업부의 스타 제품이 될 거예요. 그때가 되면 형택 씨 연봉이 5배 가까이 뛰는 것도 문제 없어요.”현장에는 진심 어린 환호와 축하가 터져 나왔다.스파이 건을 해결하고 나니 채림은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그보다 더 좋은 건 집에 지후가 없다는 거였다.그날 밤 채림은 유난히 편하게 잤다.다음 날 점심, 채림은 지수에게 식사 대접을 했다.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가득한 음식을 보고 지수는 환호했다.“채림아, 너 무슨 일이야? 오늘 웬일로 이렇게 돈을 써?”“요즘 너한테 신세 많이 졌잖아. 맛있는 거 사 줄게!”채림은 웃으며 지수에게 음식을 짚어 주었다.지수는 그걸 바로 입에 넣더니 맛있다고 감탄했다.“우리 어머니가 고객들 밥 살 때 평가가 가장 좋은 곳이 여기야. 그래서 특별히 너를 데려왔지.”채림은 웃으며 말했다.“뭐 이렇게까지. 어릴 때부터 우리 가장 친했잖아. 내 건 네 거나 다름없어!”지수는 헤실 웃으며 대답했다.그 미소에 채림도 따라 웃었다.“하긴. 내 것도 네 거야. 그러니까 나중에 BM그룹에 남성 향수 라인이 생기면 홍보는 너희 회사에 맡기려고.”“정말이야?”지수는 눈을 땡그랗게 떴다.“남성 향수 모델로 문윤재를 섭외했다며? 이거 손만 대면 대박 나는 거 아니야? 이러다 우리 앉은 자리에서 돈만 세겠어.”채림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동안 너희 집 사립 탐정을 고용한 비용이라고 쳐.”지수는 헤실 웃으며 눈을 반짝이더니 확신에 찬 말투로 약속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우리 회사 직원들한테 일 제대로 하라고 일러둘게. 절대 네 체면 깎는 일은 없을 거야.”채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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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체면을 세워줘

채림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운데 가만히 앉아 있는 지후를 바라봤다. 그는 진한 눈썹을 찡그린 채 눈도 쳐들지 않았다.MS그룹 측에서 계속 압박 질문을 하고 공격해 대는 걸 보니, 정말 피티하러 오라고 한 게 맞나 의심될 정도였다. 이건 이미 인신공격이나 다름없었다.“혹시 할 말이 없나요?”시안은 점차 어두워지는 지후의 표정을 살피며 자기 추측이 맞다고 확신했다. 문 대표님은 분명 백채림의 기획안을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거라고. 때문에 그녀도 더 이상 거리낄 것 없이 공격했다.“BM그룹에서 아직 그것도 생각하지 못했다면 오늘 협업은...”“그만!”지후가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기획안을 테이블 위에 내팽개치며 말했다.“오늘은 이만하죠.”강현은 심장이 졸려 미칠 지경이었다. 그도 그럴 게, 눈치 없는 직원들이 자꾸만 제 목숨 깎이는 줄도 모르고 아슬아슬한 질문을 던졌으니까.“채림 씨는 돌아가서 연락을 기다리세요.”강현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채림을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채림은 입을 오므리고는 차갑게 대답했다.“네.”화를 억누른 채림은 회의실 밖에 있는 소파에 앉아 속히 냉정을 되찾았다. 그녀가 이번에 MS그룹에 온 목적은 윤재를 홍보 모델로 섭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건 물론 대체 왜 안 됐는지 이유도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번에 괜히 온 거랑 뭐가 다른가?그때 마침 회의실에서 몇몇 팀장들이 걸어 나왔다. 그중에서도 윤재의 매니저 채시안이 계속 공격적인 질문을 던졌기에, 채림은 결심이라도 내린 듯 그녀를 막아섰다. “시안 매니저님, 저희는 정말 윤재 씨를 홍보 모델로 섭외하고 싶습니다. 매니저님도 아시잖아요. 저희가 제출한 기획안이 어디가 마음에 안 드나요? 나중에 수정할 테니 협업 건은 다시 얘기합시다.”채림은 기회를 얻으려고 공손히 말했다.하지만 시안은 오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너무 많아서 한꺼번에 말 못 하겠시네요.”“그럼 시간 나실 때 천천히 앉아서 예기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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