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321 - Chapter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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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1화

방 안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유건은 2초간 기다렸다. 그리고 여자의 가느다란 숨소리를 들었다. ‘화난 건가?’ 그도 밤새 잠을 못 자서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서 침대 곁으로 다가가서 인내심을 가지고 말했다. “일어나서 뭐라도 좀 먹고 자.” “네?” 시연이 눈을 떴다. 놀란 표정이었다. “아직 안 갔어요? 아까 말했잖아요. 나 안 먹어요. 그냥 잘 거예요.” 차 안에서 밤새도록 앉아 있었던 그 허리와 등의 뻐근함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하물며 그녀는 임산부였다. ‘화났네.’ 유건은 확신했다. 시연은 원래 그랬다. 화가 나도 히스테리컬하게 소리 지르는 법이 없었다. ‘왜 화가 난 거지?’ ‘어젯밤, 나한테 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내가 끝내 떠나서 그런 걸까?’ 사정이 있었고, 유건은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연을 혼자 남겨둔 건, 확실히 미안한 일이었다. 그래서 유건은 다시 한번 참고 말했다. “한 번 더 말할게. 일어나서 뭐라도 먹어. 빈속으로 있으면 속 상해.”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숙여 이불을 들추고, 여자의 손을 잡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시연이 앉자, 긴 머리가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그녀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안 먹는다니까요...!” “지시연!” 유건도 더는 참지 못하고 낮은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어젯밤에 네 곁을 지키지 않긴 했지만, 너한테 사실을 숨기진 않았잖아. 그런데 고작 그것 때문에 밥도 안 먹고 나한테 화를 내는 거야?” 시연은 어이가 없었다. ‘이 사람이 지금 내가 ‘화를 낸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녀는 피식 웃었다. “오해예요. 화 안 났고, 그냥 기분이 좀 안 좋을 뿐이라고요.”“그럼 뭐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은데?” 유건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난 바람난 것도 아니고, 어젯밤에 서재에서 잤어.” ‘뭐라고?’침착했던 시연은 이 말을 듣고 더 이상 태연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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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2화

갑자기, 얼굴이 굳어진 시연은 재빨리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뛰어갔다.“어디 가?” 유건이 바로 따라붙었다. “신발도 안 신었잖아!”아까 유건이 시연이를 안아서 내려왔으니, 그녀는 신발은커녕 양말도 없었다.결국, 시연이 변기를 붙잡고 토하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유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어떻게 된 거지? 요 며칠 동안은 멀쩡했는데?’유건은 말없이 웅크린 채로 시연에게 입을 헹굴 물을 준비해 주었다.곧이어 휴지도 건넸다. 시연은 그것을 받아서 들었다. “고마워요.”그리고 입을 닦은 후 또다시 말했다. “근데, 나 진짜 못 먹겠어요. 제발 억지로 먹이려 하지 마세요.”‘내가 강요했다고? 다 널 위해서였는데?’‘뭐야, 나한테 반항하려던 게 아니었나?’ “도련님...”왕성애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임신하면 원래 그래요. 먹고 싶지 않을 땐, 그냥 안 먹는 게 좋아요.”“들었죠?”시연이 유건을 힐끗 쳐다보고 일어섰다.그러자마자, 다시 유건에게 번쩍 안겼다.“나도 발 있어요. 걸을 수 있다고요!”“신발 안 신었잖아. 내가 안아줄게.”시연은 눈이 붉어졌다. ‘어쩜 이렇게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있을 수 있지? 남의 의사는 전혀 고려하지 않잖아!’ 침실로 돌아오자, 유건은 그녀를 침대에 내려놓았다.시연은 이불을 잡아당겨 얼굴까지 덮어버렸다. 지금은 유건을 보고 싶지 않았다.기분이 상한 유건은 풀이 죽은 채 방을 나섰다.왕성애가 유건을 붙잡고 조용히 말했다.“도련님, 사모님이요, 밤새 못 자서 입맛이 없는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밤새 못 잤다고요?”“네.”왕성애는 약간 놀란 듯한 얼굴로 말했다. “아침에 제가 일어났을 때, 그제야 들어오더라고요. 병원 일이 있었나 했죠. 도련님은 모르셨어요?”의사가 야간 근무를 하는 건 흔한 일이니 왕성애도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보니, 유건을 탓하지 않을 수 없었다.“도련님, 이번엔 좀 너무하셨어요. 사모님께서 밤새 안 들어왔는데 모르셨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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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3화

시연이 푹 자고 나니 오후 두 시가 되어 있었다.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배고픔이었다. 정말 허기가 져서 배가 등에 붙을 것 같았다.왕성애는 이미 음식을 준비해 놓고 시연을 기다리고 있었다.시연이 요즘 입맛이 좋지 않아 다양한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려놓았다. 하나라도 더 먹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그런데 예상과 달리, 시연은 이번 잠으로 뭔가 체력이 회복된 듯했다. 입맛이 확 돌아와 무엇이든 맛있게 먹었다.“어머, 배가 많이 고프셨나 보네요.”왕성애는 반가우면서도 걱정스러웠다.“천천히 드세요. 목 막히시겠어요. 갑자기 너무 많이 먹으면 또 토하는 거 아니에요?”“괜찮아요. 왠지 이제 다 나은 것 같아요.”시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볼이 빵빵해질 정도로 음식을 넣었다.임신한 몸은 예민한 법이었지만, 시연은 정말로 토하지 않았다.왕성애는 몹시 기뻤다.“이제야 좀 나아진 것 같네요. 앞으로는 잘 먹고 잘 마셔야죠! 배도 점점 풍선처럼 부풀어 오를 거예요. 아주 좋아요!”그때 초인종이 울렸다.왕성애가 나가서 문을 열고 돌아왔을 때, 손에는 상자가 들려 있었다.“뭐죠?”“케이크예요.”왕성애는 상자를 내려놓으며 물었다.“사모님, 제가 열어볼까요? 지한이 주문했다고 하는데, 아마 도련님께서 보내신 모양이에요. 지금 드시겠어요?” “지금은 도저히 못 먹겠어요.”시연은 둥글게 부푼 배를 문질렀다.“이모님, 좋아하시면 드세요.”“아니에요. 제가 왜 먹어요? 못 드시겠으면 그냥 놔둘게요. 밤에 간식으로 드시면 되잖아요.”“그것도 괜찮네요.”배부르게 먹고 나서, 시연은 서재로 갔다.오늘은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 그녀는 필요한 자료를 가방에 챙겨왔으니, 집에서 정리하면 됐다.오후 다섯 시쯤, 유건은 집에 들렀다. 저녁에 연회가 있어 옷을 갈아입으러 온 것이었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다이닝 룸으로 가서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냉장고 문을 닫는 순간, 남자의 눈에 띈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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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4화

집으로 돌아온 이후, 시연은 유건과 마주하는 순간마다 한 번도 마음 편할 때가 없었다.그는 매번 냉랭한 태도를 보이거나 트집을 잡기 일쑤였다.“당신도 기분 나쁘겠지만, 나도 똑같아요!”어떤 여자가 남자의 마음속에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옆에 머물고 싶겠는가?“나도 당신이 장소미랑 잘 되길 바라고 있어요. 그러니까 제발 나 좀 놓아줘요. 날 해방시켜 달라고요!”‘해방, 놓아주기...’유건의 숨이 잠시 멎었다. 형언할 수 없는 묵직한 통증이 가슴을 짓눌렀다.“그렇게 힘들다면, 대체 왜 내 곁으로 돌아온 거야?”“흥.” 시연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당신은 왜 날 내쫓지 않는 거예요?”서로 눈을 마주 보았다. 말이 없었다.유건은 불효자가 될 수 없었다.그리고 시연은, 은인을 저버릴 수 없었다.둘 다 어쩔 수 없었다. 선택지가 없었다.말없이, 유건은 조용히 서재를 떠났다.시연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아무렇지 않은 듯 자리로 돌아가 자료 정리에 몰입했다.이 결혼 생활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내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오직 내 미래뿐이야.’‘이런 의미도 없는 결혼생활에 신경을 쓸 시간 따윈 없어!’...밤 10시, 시연은 자료 정리를 마치고 욕실로 가 씻고 자려고 했다. 옷을 챙기던 중,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여보세요?”[시연 씨.]완전히 낯설지는 않은 목소리였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했다.[저는 부지하예요. 유건이 친구죠.]“안녕하세요.”시연은 기억했다. ‘부지하? G시에서 아주 유명한 부씨 가문의 도련님이자, 고유건의 죽마고우잖아!’ “무슨 일이시죠?”[다름이 아니라, 유건이가 많이 취했어요. 혹시 오셔서 데려갈 수 있나요?]시연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왜 하필 나야? 지한 씨는 어디 있고, 기환 씨는?’[그리고요...]지하는 먼저 설명을 덧붙였다.[유건이가 토했어요.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저희는 다 남자라 어쩌질 못하겠어요.]이는 시연이 거절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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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5화

차가운 얼음물이 닿자, 유건은 순간적으로 눈을 떴다.넓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리자, 또렷한 시야 속에 시연의 단정한 이목구비가 들어왔다.“깼어요?”시연은 눈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말했다.유건은 머리가 아파 어리둥절했다.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마치 순진한 아이 같았다.“가만히 있어요.”시연은 경고했다.“움직이면 또 물 뿌릴 거예요.”마치 겁먹은 어린아이처럼, 유건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얌전히 앉아 있었다.시연은 손을 뻗어 남자의 젖은 외투를 벗기고 셔츠 단추를 풀었다. 속까지 흠뻑 젖어 있었다.“기다려요.”그녀는 욕실로 가서 수건을 적셔 돌아와 간단히 물기를 닦아주었다.“일단 이렇게 하고, 집에 가서 씻어요.”그리고 준비해 온 옷을 하나하나 입혔다.어릴 때부터 키 180cm인 남동생을 챙기며 익숙해진 덕분에, 그녀는 유건을 돌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다 됐어요.”시연은 남자의 양복 깃을 정리하며 툭툭 털었다.“일어날 수 있어요? 집으로 가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자가 그녀를 허리에 감싸 안았다.시연은 굳어버렸다. 한순간도 움직이지 못했다.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유건의 짙은 갈색 머리를 올려다 보았다. 그녀의 손이 조심스럽게 올라가, 남자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힘들어. 너무 힘들어.”남자의 목소리는 흐릿하고 나른했다.“알아요.”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 본인이 지금 누구를 안고 있는지 알기나 할까?’ ‘혹시 나를 장소미로 착각한 건 아닐까?’‘뭐, 상관없어.’그녀는 천천히 유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나도 사랑했던 사람을 잃어본 적 있어요. 나도 어른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헤어진 적이 있다고요. 그 마음, 잘 알아요.”생이별의 아픔은, 죽음과 다를 바 없었다.시연은 그저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유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유건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는 맑았다.“네가 말하는 사람, 노은범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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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6화

정기환은 대표실에서 시연을 보자, 놀란 듯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형수님, 어쩐 일이에요? 지금 막 모시러 가려던 참이었는데요.”“괜찮아요.”시연은 웃으며 손을 흔들고 가방을 내려놓았다.“기환 씨도 바쁘잖아요. 난 애도 아니고, 혼자 올 수 있어요.”그리고 물었다.“유건 씨는 아직 회의 중이죠?”“네.” 기환이 옆방을 가리켰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알겠어요.”시연은 가방에서 책을 꺼내 펼쳤다.“그럼 난 공부하면서 기다릴게요.”“그래요.”기환은 그녀가 펼친 의학서를 흘깃 보았다.책이 꽤 두꺼웠다. 게다가 자신이 모르는 단어들도 빼곡했다. ‘형수님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회의실 쪽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중간에 주지한이 자료를 가지러 들렀다. 시연은 사업적 이야기를 잘 모르지만,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잠시 후, 유건이 지한과 함께 돌아왔다. 걸어오면서도 바삐 대화를 나눴다.“최대한 빠른 항공편으로 준비해. 직항이 없으면 경유라도 좋아.”“알겠습니다.”두 사람 모두 빠른 걸음이었다. 불필요한 말은 없었다.유건은 사무실로 들어서다가 시연을 발견하고 멈칫하며 이마를 찌푸렸다.‘아, 웨딩드레스 피팅.’“저기, 나...”“들었어요.”시연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분위기를 보고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괜히 유건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나 혼자 가도 돼요. 웨딩드레스 피팅, 별거 아니잖아요.”그녀의 배려심에, 유건은 죄책감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꼈다.“미안해. 정말 일이 있어서 그런데, 이틀만 기다려 줄 수 있어?”“괜찮아요.”시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이틀 후엔 나도 수술 일정이 있어서 못 가요.”그녀 역시 바빴다. 일도 해야 하고, 시험 준비도 해야 했다.더 나은 방법이 없었고, 유건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피팅하면서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꼭 얘기해줘. 불편하거나 싫은 건 참지 말고.”“네.”유건 일행은 시간이 촉박해 서둘러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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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7화

그 사람은 바로 노은범이었다.그는 이곳에서 고객을 만나고 내려오는 길이었다.생각해 보면, 은범과 시연도 그렇게 오랜만은 아니었다.하지만 지금, 두 사람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느꼈다.은범이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시연은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오랜만이야.”“오랜만이네.”은범의 가슴이 저릿했다.그날 이후, 은범이 아무리 찾아도 시연은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고, 메시지도 답이 없었다.은범은 오늘 마주쳤을 때도, 그녀가 외면할 거라 생각했다.은범이 카운터를 가리켰다.“저 팔찌, 마음에 들어? 내가 사줄게.”“아니, 필요 없어.”시연은 당연하다는 듯 남자의 팔을 붙잡고 거절했다.은범이 미간을 좁혔다.그가 말하기도 전에, 시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나 오늘 웨딩드레스 피팅하러 왔어.”은범은 충격을 받은 듯 굳어버렸다.‘내가 잘못 들은 걸까? 웨딩드레스?’‘시연이가 결혼한다고?’그는 간신히 물었다.“누구랑?”시연은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피할 수도 없었다.“유건 씨...”“그 사람이랑?”은범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한편으로는 예상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하지만 그 사람은... 장소미와...”‘만나고 있지 않을까?’은범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혹시라도 시연이 상처받을까 봐...그러나 시연은 차분했다. 상처받은 기색도 없었다.“사랑해서 결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세상에는 그런 결혼만 존재하는 게 아니야.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으니까.”‘무슨 말이야? 체념인가? 아니면 단순한 현실 수용?’갑자기, 은범은 깨달았다.“혹시 우주 때문이야?”‘웰스’로 가려면 많은 돈이 필요했다.‘내 도움을 거부한 이상, 시연이한테 남은 선택지는 고씨 가문뿐이잖아.’‘결국, 내가 시연이를 이렇게 만든 거야?’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시간이 됐네. 난 먼저 갈게.”가볍고도 덤덤한 인사였다.은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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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8화

“시연아.”진아는 간식을 먹을 생각도 없이, 핸드폰을 꺼내 시연 앞에 내밀었다.“이 사람, 너 맞아?”“뭐?”시연은 핸드폰을 들어 확인했다.또다시 실시간 검색어에 ‘폭탄’이 터졌다.그리고, 그녀가 그 주인공이었다.[GP그룹 대표, 결혼 공식 발표.]시연이 기사를 열어보니, 사진은 없었다.단순히 유건이 곧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며, 신부는 어릴 적 정혼한 상대인 시연이라는 내용뿐이었다.딱 고씨 가문의 스타일이었다.고상훈이 언급했던 일이었기에, 시연은 놀라지 않았다.그래서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담담하게 웃었다.“기사에 나온 그대로야. 나 맞아.”“그런데도 웃음이 나와?”진아는 화가 날 지경이었다.“노은범을 두고, 고유건 때문에 이러는 거야?”“응.”하은도 참다못해 끼어들었다. 유건이 재력가인 건 맞지만, 장소미와 얽힌 일을 듣고 난 후로는 그를 응원할 수 없었다.“시연아, 진지하게 생각해 봐. 괜히 부잣집에 시집가서 고생하는 거 아니야?”‘고생?’시연은 씁쓸하게 웃었다.‘아마 나보다는 고유건이 더 힘들 거야.’ ‘나는 ‘혜택’을 받았고, 은혜를 입었어.’ ‘그런 입장에서 ‘고생’이라는 말을 할 자격도 없지...’‘내가 감히 ‘고생’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면, 위선자가 되는 거 아닐까?’ 그래서 친구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했다.“나는 고상훈 어르신에게 큰 은혜를 입었어. 그에 대한 보답이 필요해.”이제 진아와 하은도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우주의 일과 빚을 지기 싫어하는 시연의 성격도 알고 있으니, 두 사람은 시연이 결혼으로 그 은혜를 갚는 것이 방법 중 한 가지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의 침묵을 보고, 시연은 웃음을 지었다.“왜 그렇게 심각한 얼굴들이야? 나는 지금 큰 집에서 살고, 차도 있고, 가정부까지 있어. 나쁘지 않아.”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고씨 가문으로 들어가면서 생활비 부담이 사라졌고, 수입도 온전히 저축할 수 있었다.“점심 같이 먹자. 내가 살게.”하은은 단순한 성격이었다.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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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9화

다음 날, 시연은 수술이 있었다. 요즘 식욕도 좋아지고, 잠도 잘 자니 컨디션이 최상이었다. 문제 될 게 없었다.프로젝트팀의 수술은 늘 긴 시간이 걸렸다.시연의 핸드폰은 탈의실 사물함 안에서 계속 울리고 있었다.결국, 그 전화는 해외에 있는 유건에게 다다랐다.[여보세요. 고 대표님.]유명한 산부인과에서 온 전화였다.“무슨 일이에요?”[고 대표님, 사모님께서 정기 검진을 받으셔야 하는데, 이미 예약일을 이틀이나 넘기셨습니다. 연락이 닿지 않아, 언제 오실 수 있는지 다시 조정하려고 합니다.]‘이런 일이 있었다고?’유건은 미간을 문질렀다.“알겠어요. 내가 전달할게요.”전화를 끊고, 유건은 바로 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역시나, 응답이 없었다.‘바쁘겠지. 아마 수술 중일 거야.’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는 메시지를 작성했다.[병원에서 전화가 왔어. 언제 시간이 되는지 연락 달래.]보내고 나서도 답장은 없었다. 유건은 그녀가 일이 끝나면 볼 거라 생각하며 넘겼다. 그리고 곧이어 미팅 일정이 있어, 준비를 마치고 출발했다....그 시각, 수술실에서 큰일이 벌어졌다.시연은 손 씻는 공간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그녀는 막 수술을 마친 뒤, 가운을 벗고 손을 씻던 중이었다. 그리고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다행히 시연은 병원 내에서 즉시 응급조치를 받았다.진아가 도착했을 때, 시연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마에 살짝 긁힌 상처 외에는 큰 이상이 없었다.그녀는 눈을 뜨자, 울고 있는 진아와 눈이 마주쳤다.시연은 깜짝 놀랐다.“뭐야, 나... 죽기라도 한 거야?”“야!”진아가 친구를 째려보며 성질을 냈다.“그런 말 하지 마! 나 진짜 놀랐다고!”시연은 피식 웃었다.“내 잘못이야? 울지 마. 나중에 진성빈이 알면, 또 내가 널 괴롭혔다고 할 게 뻔해.”“친구야.”진아는 볼을 부풀리며 입술을 삐죽였다.“선생님이 그러는데, 네가 갑자기 기절한 건... 아마 배 속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크대. 나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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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0화

“나쁘다고는 할 수 없어.”오선화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그렇다고 좋다고 할 수도 없지. 아직 초기인데, 앞으로 여섯 달 이상 남았잖아. 이렇게 관리하다간 위험해질 수도 있어. 겁주려는 게 아니라, 진짜 조심해야 해.”임신은 원래부터 큰 고비였다. 과거에는 출산 자체가 생사를 오가는 일이었다.지금은 의료기술이 발달했지만, 임신 중 겪어야 할 어려움은 여전히 존재했다.“교수님, 어떻게 하면 될까요? 시키시는 대로 할게요.”진아는 간절한 눈빛으로 물었다.오선화는 진아를 한 번 쳐다보더니 더 심기가 불편해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왜 친구가 너를 데리고 온 거야? 네 남편, 고 대표는? 그 아이, 두 사람의 아이잖아?”시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원래부터 고유건과 상관없는 아이야.’“아기가 임신 주수보다 작아.”오선화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빠르게 설명을 덧붙였다.“영양 수액을 맞는 게 좋겠어. 몸 상태를 더 지켜보는 게 필요해.”영양 수액은 저렴한 치료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시연은 ‘고유건 대표의 예비 아내’였기에, 비용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만약 유건이 알게 된다면, 아이 상태가 좋지 않다는 사실에 가만히 있겠는가?그러나 시연은 잠시 고민하더니,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저... 당장은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교수님.”오선화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영양 수액은 몸에 전혀 해가 없어. 아이에게도 좋고.”“알아요.”시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남편이 없으니까, 돌아오면 상의한 뒤 결정할게요.”그럴듯한 이유였다.오선화도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다음 검진 때 다시 보자.”병원에서 나와, 진아는 시연의 팔을 잡았다. 입술을 꽉 깨물자 눈물이 핑 돌았다. 참고 또 참았지만, 결국 터졌다.“고유건한테 말할 거야?”“왜 말해?”시연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이 아이, 그 사람의 아이도 아니잖아.”진아는 말문이 막혔다.“그럼 너희 둘,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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