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329화

Author: 임공
다음 날, 시연은 수술이 있었다. 요즘 식욕도 좋아지고, 잠도 잘 자니 컨디션이 최상이었다. 문제 될 게 없었다.

프로젝트팀의 수술은 늘 긴 시간이 걸렸다.

시연의 핸드폰은 탈의실 사물함 안에서 계속 울리고 있었다.

결국, 그 전화는 해외에 있는 유건에게 다다랐다.

[여보세요. 고 대표님.]

유명한 산부인과에서 온 전화였다.

“무슨 일이에요?”

[고 대표님, 사모님께서 정기 검진을 받으셔야 하는데, 이미 예약일을 이틀이나 넘기셨습니다. 연락이 닿지 않아, 언제 오실 수 있는지 다시 조정하려고 합니다.]

‘이런 일이 있었다고?’

유건은 미간을 문질렀다.

“알겠어요. 내가 전달할게요.”

전화를 끊고, 유건은 바로 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응답이 없었다.

‘바쁘겠지. 아마 수술 중일 거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는 메시지를 작성했다.

[병원에서 전화가 왔어. 언제 시간이 되는지 연락 달래.]

보내고 나서도 답장은 없었다.

유건은 그녀가 일이 끝나면 볼 거라 생각하며 넘겼다.

그리고 곧이어 미팅 일정이 있어, 준비를 마치고 출발했다.

...

그 시각, 수술실에서 큰일이 벌어졌다.

시연은 손 씻는 공간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그녀는 막 수술을 마친 뒤, 가운을 벗고 손을 씻던 중이었다.

그리고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다행히 시연은 병원 내에서 즉시 응급조치를 받았다.

진아가 도착했을 때, 시연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마에 살짝 긁힌 상처 외에는 큰 이상이 없었다.

그녀는 눈을 뜨자, 울고 있는 진아와 눈이 마주쳤다.

시연은 깜짝 놀랐다.

“뭐야, 나... 죽기라도 한 거야?”

“야!”

진아가 친구를 째려보며 성질을 냈다.

“그런 말 하지 마! 나 진짜 놀랐다고!”

시연은 피식 웃었다.

“내 잘못이야? 울지 마. 나중에 진성빈이 알면, 또 내가 널 괴롭혔다고 할 게 뻔해.”

“친구야.”

진아는 볼을 부풀리며 입술을 삐죽였다.

“선생님이 그러는데, 네가 갑자기 기절한 건... 아마 배 속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크대. 나 너무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330화

    “나쁘다고는 할 수 없어.”오선화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그렇다고 좋다고 할 수도 없지. 아직 초기인데, 앞으로 여섯 달 이상 남았잖아. 이렇게 관리하다간 위험해질 수도 있어. 겁주려는 게 아니라, 진짜 조심해야 해.”임신은 원래부터 큰 고비였다. 과거에는 출산 자체가 생사를 오가는 일이었다.지금은 의료기술이 발달했지만, 임신 중 겪어야 할 어려움은 여전히 존재했다.“교수님, 어떻게 하면 될까요? 시키시는 대로 할게요.”진아는 간절한 눈빛으로 물었다.오선화는 진아를 한 번 쳐다보더니 더 심기가 불편해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왜 친구가 너를 데리고 온 거야? 네 남편, 고 대표는? 그 아이, 두 사람의 아이잖아?”시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원래부터 고유건과 상관없는 아이야.’“아기가 임신 주수보다 작아.”오선화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빠르게 설명을 덧붙였다.“영양 수액을 맞는 게 좋겠어. 몸 상태를 더 지켜보는 게 필요해.”영양 수액은 저렴한 치료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시연은 ‘고유건 대표의 예비 아내’였기에, 비용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만약 유건이 알게 된다면, 아이 상태가 좋지 않다는 사실에 가만히 있겠는가?그러나 시연은 잠시 고민하더니,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저... 당장은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교수님.”오선화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영양 수액은 몸에 전혀 해가 없어. 아이에게도 좋고.”“알아요.”시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남편이 없으니까, 돌아오면 상의한 뒤 결정할게요.”그럴듯한 이유였다.오선화도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다음 검진 때 다시 보자.”병원에서 나와, 진아는 시연의 팔을 잡았다. 입술을 꽉 깨물자 눈물이 핑 돌았다. 참고 또 참았지만, 결국 터졌다.“고유건한테 말할 거야?”“왜 말해?”시연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이 아이, 그 사람의 아이도 아니잖아.”진아는 말문이 막혔다.“그럼 너희 둘,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331화

    유건이 생각하기 지금 시연은 강울대에 있거나 강울대병원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별 문제는 없을 터였다.그는 너무 급하게 떠났으니, 돌아온 후에는 시연에게 한마디 전하는 것이 도리였다.그러나, 시연은 단호했다.“당신 혼자 가요. 난 안 갈게요. 아침에 이미 다녀왔어요. 지금은 할 일이 있어서, 다 끝나면 할아버지 뵙고 집에 갈 거예요.”그녀의 말을 듣고, 유건은 잠시 침묵했다.‘정말 바쁜 걸까, 아니면 나를 피하는 걸까?’잠시 고민하던 그는 조용히 물었다.[나한테 화난 거야?]시연은 피식 웃었다.“내가 화낼 이유라도 있어요?”그녀는 답을 기다리지 않았다.“일 때문이었잖아요. 나도 이해해요. 화낼 이유도 없어요. 나도 바쁘니까, 이해해 줘요. 할아버지께서 많이 기다리시니까, 어서 가봐요. 난 끊을게요.”[그래.]통화가 끝난 후, 유건은 핸드폰을 쥔 채 얼굴을 반쯤 가렸다.‘시연이가 말하는 대로 하는 게 맞겠지...’‘현재 상황을 감안하면, 시연이가 아무런 소란 없이 차분하게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니까.’...VIP 병실에서 유건은 고상훈과 짧게 안부를 나눴다.고상훈은 손자에게 당부했다.“예복 맞추는 건 서둘러야 해. 그리고 결혼식 전에, 너랑 시연이는 제남도에 다녀와야 해.”결혼식 과정 점검을 위해, 일종의 리허설을 진행해야 했다.이번 결혼식은 최대한 조용히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고씨 가문의 위상을 생각하면 최소한의 격식은 갖춰야 했다.“알겠습니다.”유건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이 가라앉았다.‘내 아이를 잃은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새로운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니...’VIP 병동을 나서며 시간을 확인했는데, 아직은 이른 시각이었다.그는 먼저 예복을 맞추러 가기로 했다.출발 전, 유건은 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나 예복 맞추러 가려고.”[네.]그녀는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아무 말이 없었다.‘끝이야?’유건은 핸드폰을 꼭 쥐며 말했다.“바쁘지 않으면 같이 갈래?”‘신부한테 신랑의 예복이 적절한지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332화

    시연은 제안했다.“아니면, 절차를 문서로 정리해서 달라고 하세요. 그대로 따르면 실수할 일도 없을 거예요.” “지시연.”여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갑게 끊겼다.유건의 냉랭한 얼굴이 보였다.시연은 침을 삼켰다.“안 돼요?”“하...”유건은 냉소하며 그녀를 바라봤다.“더 대충할 수도 있지 않을까? 결혼식도 대신해 줄 사람을 찾는 건 어때?” 이 말에는 날카로운 비아냥이 묻어 있었다.시연은 그걸 알아차렸고,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반박했다.“고유건 씨도 나랑 같은 마음인 거 아니에요?”유건은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난 대충하고 싶어요.” 시연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당신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너무 이기적으로 굴지 마세요. 우리 둘 다 잘 알고 있잖아요. 할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이 결혼 자체가 없었을 거라는 걸...”“서로 원치 않는 결혼이잖아요. 그냥 형식적인 거고, 난 이미 동의했으니까 협조할 거예요.”“그냥 번거로워서 제안한 거였어요. 당신이 싫다면 철회할게요.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잖아요.”여자의 말에 유건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시연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으니까. 이 결혼은 유건에게도 단순한 절차일 뿐이었다.시연은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당신이 원하는 대로 할게요. 일정은 내가 조정하면 되고요.”유건은 그녀를 한참 바라보았다. 복잡한 감정이 가득한 눈빛이었다.몇 초 동안 서 있다가, 그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서 나갔다....제남도 방문 날짜는 모레로 정해졌다.출발 전에, 유건과 시연은 오후 4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점심시간, 시연은 임진아와 함께 식사하기로 했다.요즘 식욕이 아주 좋아졌지만, 이날은 예상외로 입맛이 없었다.“왜 그래?”진아가 시연의 안색을 살폈다.“어디 아파?”“응.”시연은 숨기지 않았다. 아침부터 아랫배가 은근히 당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전 내내 나아지지 않았다.“진아야, 나 병원에 좀 가야 할 것 같아.”진아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밥이고 뭐고 필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333화

    시연이 제남도에 가야 한다는 사실에 진아는 몹시 걱정했다.“고유건한테 사실대로 말하면 안 돼?”시연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내 아이야. 그 사람에게 사실을 알릴 의무는 없어. 괜히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게 좋겠어.”“시연아...”진아는 시연을 꼭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만약 몸이 안 좋으면 바로 전화해! 무슨 일이 있어도 꼭!”“응, 알겠어.”...오후 4시, 유건이 도착했다.시연은 병원 앞에서 정확히 기다리고 있었고, 차가 멈추자마자 스스로 문을 열고 올라탔다.차에 타자마자 아무 말 없이 구석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유건은 그녀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피곤해?”“네.”시연은 짧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무리하면 안 돼. 일도 하고, 시험 준비도 하고... 몸부터 챙겨야지. 프로젝트팀은 잠시 쉬는 게 어때?”이 말을 듣자마자 시연은 즉시 눈을 떴다.“괜찮아요. 그냥 오늘 좀 피곤할 뿐이에요.”그녀는 심폐 프로젝트팀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 기회 자체는 유건 덕분에 주어진 것이었고, 지금은 ‘고유건 아내’라는 타이틀 덕에 팀원들이 별말 없이 받아주고 있었다.‘하지만 내가 언제까지 ‘고유건의 아내’일 수 있을까?’‘내가 지금 프로젝트팀에서 빠진다면, 나중에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그만둘 수 없었다.유건은 단순한 제안이었을 뿐이었다. 시연이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건 잘 아는 사실이었으니 말이다.상대방이 거절하자, 유건도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네 몸이니까, 네가 제일 잘 알겠지.”시연은 안도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두 사람은 배를 타고 제남도로 향했다.제남도는 G시에 속한 해안 관광지로, 결혼식은 섬 내 최고급 호텔인 소관 호텔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호텔 측에서는 미리 일정을 비워, 호텔 전체를 고씨 가문의 결혼식 장소로 사용할 준비를 마쳤다. 요트가 선착장에 도착하자, 호텔에서 준비한 차량이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334화

    유건은 손을 흔들어 매니저에게 나가라는 신호를 보냈다.“고 대표님, 사모님. 두 분이 먼저 상의하세요.”매니저는 눈치 있게 자리를 떴다.유건은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임진아 말고 친한 친구 또 있어? 같은 과에서 친한 사람 있었던 것 같은데.”몇 초 동안 고민하던 시연은, 남자의 의도를 알아차렸다.“설마, 나한테 들러리를 세우겠다는 거예요?”“당연한 거 아니야?”유건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네가 들러리 수를 정하면, 나는 거기에 맞춰서 진행할 거고...”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연은 웃음을 터뜨렸다.“아까 말했잖아요. 들러리는 필요 없다고요.”‘들러리가 왜 필요하지?’‘진아 같은 성격이면, 와서 울기만 할 텐데.’유건은 그녀를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지난번엔 내가 형식적으로 결혼식을 치르는 걸 비난하더니.’‘지금 보니까 나보다 더 무심하잖아?’ ‘결혼식을 해야 한다면 최소한의 절차는 따르는 게 일반적이야. 하지만 지시연은 그것조차 대충 넘어가려고...’‘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신경 쓸 필요는 없겠어.’“알겠어. 네가 원하는 대로 해.”유건은 결혼식 진행표를 두드리며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우주는 어떻게 할 거야?”“네?”시연은 놀라며 유건을 바라봤다. 그가 우주까지 신경 쓰고 있었다는 사실이 예상 밖이었다.‘진아도 초대하고 싶지 않은데, 우주도 당연히 안 부르겠지!’ 시연이 생각하기에 우주는 이제야 점점 세상을 이해하는 나이였다. 결혼식에서 불필요한 말을 듣거나 상처를 받으면, 지금까지 진행한 치료가 모두 헛수고가 될 수도 있었다.그녀의 속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유건은 이를 눈치채고 냉소를 지었다.“우주를 결혼식에 초대할 생각조차 안 했다고?”시연은 차분하게 대답했다.“네, 난 우주를 부를 생각이 없어요.”그녀가 직접 인정하자, 유건은 순간적으로 숨이 막혔다.‘대체 뭐지?’그는 우주가 시연의 유일한 가족이니, 결혼식 날 우주가 누나를 업고 웨딩카로 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335화

    “소리 내지 마!”“알았어요.”시연은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너, 고유건의 아내지?”“네.”시연은 인정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고유건 때문인가?’순간,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아, 고유건의 생명을 위협하는 적이 있다고 했는데!’ “그 아이! 몇 개월이야?”시연은 미간을 찌푸렸다.‘이 사람, 고유건에 대해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어. 내가 임신한 것까지 알고 있으니까.’“4개월이에요.”오늘까지 정확히.“좋아!”청소부는 흡족한 듯 웃으며 손을 들었다. 그리고 시연의 얼굴 쪽으로 손을 뻗었다.그리고 손바닥에는 한 장의 수건이 있었다.하지만, 청소부가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시연은 이미 냄새를 맡았다.그녀가 의사로서, 냄새에 민감했다. ‘수건에서 강한 에테르 냄새가 나!’그 수건이 얼굴에 닿는 순간, 시연은 숨을 참았다. 그리고 눈을 감으며 힘없이 쓰러졌다.청소부는 시연을 받아서 들고 신속하게 그녀의 입에 테이프를 붙였다. 이어서 준비한 밧줄로 그녀의 손과 발을 단단히 묶었다.그리고 시연이 들고 있던 가방을 구석에 내던졌다.마지막으로, 시연을 청소용 카트 아래의 수납공간에 밀어 넣고 커튼으로 덮었다.모든 과정이 계획된 듯 매끄럽게 진행됐다....시연은 눈을 떴다. 하지만 사방이 깜깜했다. 몸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바퀴가 구르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그녀는 조금 전 숨을 참아 마취제를 들이마시지 않았다. 정신을 잃은 척한 건 도망칠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이 청소부는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지?’‘아이에 관해서 물었는데, 그렇다면 목표는 아이인가?’‘하지만 왜?’스스로 답을 찾기 어려웠다.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었다.‘도망쳐야 해. 무조건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야 해. 침착하자. 당황하면 안 돼.’...그 시각, 화장실에 도착한 유건은 텅 빈 공간을 보고 얼굴이 굳었다.직원은 조심스럽게 말했다.“사모님께서 그냥 여기저기 둘러보고 계신 걸지도...?”매니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336화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순식간에 소란이 일었다.청소부로 위장한 사람은 순간 얼어붙었다.‘뭐야? 저 여자는 분명 에테르를 마셨을 텐데? 어떻게 뛰어내릴 수 있었지?’‘마취제도 안 통한다고?’“빨리 보안팀 불러!”누군가 다가와 시연을 부축하며 물었다.“괜찮아요? 납치범은 어디 있죠?”그때, 유건이 달려오고 있었다. 멀리서도 이 소란을 한눈에 알아차렸다.그리고 그 순간, 그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연을 발견했다.호텔 보안팀도 즉시 현장에 도착했다.“고 대표님!”유건은 그들을 한 번 쳐다보더니 차갑게 명령했다.“멍하니 서 있을 시간 없어. 당장 잡아!”“네!”“도망가지 마!!”청소부는 이를 악물고 도망치기 시작했다.그러나 그는 혼자였다. 숨어 있을 때는 유리했지만, 대놓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멈춰!”유건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았고, 곧장 시연에게 다가갔다.사람들을 밀어내며 시연의 입을 막고 있던 테이프를 단숨에 찢어냈다.“이봐, 당신은 누구야?”한 아주머니가 걱정스럽게 물었다.“제 아내입니다.”아주머니는 순간 멈칫하다가 쓴웃음을 지었다.“그럼 잘 좀 챙겨요! 아내가 납치당할 뻔했잖아요!”유건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슴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그는 묵묵히 시연의 손과 발을 묶고 있던 밧줄을 풀었다.그리고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품에 안았다.조금만 더 늦었다면...조금만 더 늦었다면, 유건은 숨이 멎을 뻔했다.시연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유건은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어디 다친 데 없어?”이 자세 때문에, 시연은 고개를 살짝 뒤로 젖혀야 했다.“안 다쳤어요. 근데...”“근데 뭐?”유건은 긴장하며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봤다.“어디 안 좋아?”그는 조금 전 시연이 청소 카트에서 구르며 떨어지는 걸 직접 보았다.시연의 눈꺼풀이 점점 내려갔다.“너무 피곤해요... 잠이 와요.”잠시 후, 유건은 그녀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렸다. 마치 부서지기 쉬운 도자기를 다루듯 조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337화

    유건이 병실에 도착했을 때, 고상훈은 아직 쉬지 않고 있었다. 손자를 보자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너, 지금쯤 제남도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시연이랑 같이.”“시연이는 잠들었어요.”유건은 시연을 언급할 때, 무심코 눈빛이 부드러워졌다.“조금 있다가 다시 가서 함께 있을 겁니다.”“무슨 일로 온 거야?”“할아버지, 시연이가 납치될 뻔했습니다.”유건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시연이가 똑똑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뭐라고? 그런 일이 있었다고?”고상훈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노련한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대담하네. 저질스러운 수법도 끝이 없고.”그 반응에, 유건은 확신했다. 지난번 장소미 사건은 고상훈의 소행이 아니었다.“할아버지, 그런데 왜 장소미 씨 사건을 인정하신 거예요? 혹시 아시는 게 있는 거예요?” 고상훈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난처한 기색이 스쳤다.‘어떻게 말해야 할까? 내 손자는 어릴 적 깊은 상처를 입었는데...’‘다신 상처받게 하고 싶지 않은데...’유건도 뭔가를 알아챘다.‘분명 무언가를 숨기고 계셔. 로얄호텔 사건부터, 칼에 찔린 일까지...’‘할아버지는 분명 처음부터 알고 계셨어.’“할아버지.”그는 미간을 좁히며 다시 물었다.“그 사람들은 점점 대담해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CA국에서는 폭탄 테러를 당할 뻔했습니다! 이젠 말씀해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지금까지 유건은 CA국 폭탄 사건을 일부러 고상훈에게 알리지 않았다.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고상훈은 그 말을 듣자, 매우 놀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놈들이 감히... 이럴 수가! 그 사람들,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그놈들이 누구입니까, 할아버지?”“그놈들은...”고상훈은 손자를 바라보며 마침내 입을 열었다.“그런 추악한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걸 너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추악한 인간들...’유건의 눈빛이 순간 차가워졌다.어렴풋이 감이 왔지만, 믿고 싶지 않

Latest chapter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45화

    “느낌이 안 좋네요...!”이호민은 다급히 벽 쪽 스위치를 눌렀다.불이 켜지는 순간, 두 사람은 그대로 얼어붙었다.방 안은 마치 태풍이라도 휩쓸고 간 듯,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책상과 의자는 비뚤게 기울어져 있었고, 바닥엔 깨진 유리 조각과 담배꽁초가 흩어져 있었다.공기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극적인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이 냄새는 또 뭐예요...?” 왕성애는 인상을 구기며 창문 쪽으로 달려갔다. “창문부터 열어야겠어요!못 견디겠어요!”“전 유건 도련님부터 볼게요.” 이호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쪽으로 들어갔는데, 소파에 구겨진 채 누워 있는 유건이 보였다. 셔츠도 그대로, 신발도 그대로. 온몸이 술과 담배에 절여져 있었다.“도련님.” 이호민이 조심스럽게 부르며 다가갔다.“유건 도련님, 일어나보세요.”숨소리는 있었지만, 전혀 깨어날 기미가 없었다.‘이 정도로 취했다고?’조심스레 어깨를 두드리려던 찰나, 갑자기 유건이 벌떡 일어나 그대로 욕실로 달려갔다.“윽...!”‘진짜 토하네...’이호민은 욕실로 다가가 보니, 유건은 변기에 몸을 웅크리고 술을 게워 내고 있었다.곧 물을 틀어 입을 헹구고, 세수하며 거울 앞에 섰다.“유건 도련님...”이호민이 수건을 건넸다.“대체 얼마나 마신 거예요... 아무리 젊어도, 이렇게 몸 상하면 어르신께서 얼마나 걱정하시겠어요.”“할아버지한텐 말하지 마세요.”유건은 수건으로 대충 얼굴을 닦고, 그대로 빨래통에 던졌다. 이어서 욕실을 나서며 배 쪽을 살짝 짚었다.“배... 괜찮으세요?”이호민이 걱정스레 다가오며 말했다.“이럴 때일수록... 사모님을 불러보면 어떨까요? 전 두 분 사이에 큰 오해가 있다고 봐요. 얘기만 잘하면...”“지시연 얘기는 하지 마세요.”유건의 목소리가 갑자기 낮게 가라앉았다.“앞으로 그 여자 이름을 한 번만 더 입에 올리면...”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끝을 세게 눌렀다.“진정한 고씨 가문의 사람이라면, 이럴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44화

    ‘말도 안 돼!!’강수희는 숨을 들이켰다. 놀라움, 당혹, 불신...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떠올랐다.“시연아, 넌 우리 은범이를 그렇게 아꼈잖아. 은범이 곁을 밤새워 지키기까지 했는데, 그래도 아무 감정이 없다고?”시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제가 은범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자 마지막이었어요.”“그렇게 말하지 마.” 강수희는 손을 뻗으려다 멈췄다. “아냐... 날 원망해서 그러는 거지? 내가 너희 사이 갈라놓았던 거, 다 인정할게. 앞으로 다시 만난다면, 절대 방해 안 할게. 아니다... 아예 안 보이게 사라질게. 너만 은범이 옆에 있어 준다면...”“사모님.”시연은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를 막아섰다. “그만 말씀하세요. 저는 은범이를 사랑하지 않아요. 이젠, 정말로... 아니에요.”강수희는 마치 뺨을 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그럴 리 없어... 너희 둘, 그렇게 사랑했는데...”“그건 과거일 뿐이에요.” 시연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미 지나간 이야기라고요.”그 말에, 강수희는 말문이 막혀 굳어버렸다. 시연은 한 박자 쉬고, 다시 입을 열었다.“물론 사모님의 부탁으로 잠시 은범이 곁에 있어 줄 순 있어요. 하지만, 그건 단지 일시적인 거예요. 제가 다시 떠난다면... 그땐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때 또 무너지면, 은범이는 더 나빠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은범이는 스스로 일어나야 해요. 온 세상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떠나도 견딜 수 있어야... 그게 진짜 회복이에요.”시연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가방을 메고, 마지막으로 강수희를 바라봤다.“사모님, 전 오늘 은범이 병실에 들어가지 않을게요. 제 존재가 지금 은범이에게 약이 될지, 독이 될지 모르니까요. 그럼 이만...”말을 마친 그녀는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강수희는 움직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굳은 채 앉아 있었다....집으로 돌아가는 길.지하철에서 내리자, 시연의 핸드폰이 진동했다.‘할아버지의 전화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43화

    “그 말... 누구한테 들으셨어요?”시연은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교수님한테...” 강수희는 급히 덧붙였다. “너도 알잖아, 우주 진료 보던 그 정신과 교수님. 그분이 직접 말했어, 네가 은범이한테 도움이 된다고.”“맞아요.” 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조용히, 천천히 손을 빼냈다.“하지만 교수님은 제가 원한다면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하신 거지, 제가 원치 않음에도 도와야 한다는 말씀은 안 하셨을 거예요.” 강수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아이... 너무 똑똑하네.’맞는 말이었다. 심재규는 정말 그렇게 말했다. ‘시연이 원할 경우에만’이라고.하지만 아들이 스스로 생을 끊으려 했던 그날 밤은 겪은 순간부터, 강수희의 모든 이성은 무너지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 앞으로 치료받는 동안 은범이 다시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이번엔 가까스로 살릴 수 있었지만, 다음엔 어떻게 될까?또 그다음엔? 그땐 정말,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강수희는 더 이상 아들의 생명을 ‘확률’에 걸 수 없었다.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은, 결국 시연이 곁에 있는 것이었다.“시연아... 너랑 은범이, 한때 사랑했던 사이잖니. 정말... 정말 이렇게 외면할 수 있어?”그 한마디로, 시연을 ‘사람 생명을 외면한 냉혈한’으로 몰아붙였다.‘나를 끌어들이려는 거구나. 이 감정에, 죄책감에, 죄의식에.’하지만 시연은 흔들리지 않았다. 손끝을 조용히 쥐며 입을 열었다.“제가 은범이 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은범이의 상태가 좋아지고, 나아지게 된다면... 좋죠. 하지만... 그다음은요?” “다음...?”“네, 제가 언젠가 자리를 뜨게 되면요?”급격히 표정이 굳은 강수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시연은 조용히 웃었다. 그 웃음엔, 안타까움도, 체념도 섞여 있었다.“사모님, 전 결혼했어요. 그리고 은범이와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고요.”“그... 그건...”강수희가 다급히 말을 덧붙이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42화

    지하는 여자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고, 걸음을 천천히 맞추며,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넘겨주기까지 했다.진아는 입을 벌렸다.‘세상에... 저렇게 다정하게 웃을 줄도 아는구나, 저 양반.’재빨리 핸드폰을 꺼냈다.“좋았어, 이거 한 장만 박제해 두자. 다음에 또 장난치면 바로 보여줘야지.”그녀는 그 장면을 확대하여 정확히 프레임에 넣었다.찰칵- 사진을 찍고는 핸드폰을 슬쩍 주머니에 넣었다.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여자 얼굴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나, 저 여자 어디서 봤지?’...그 시각, 시연의 집.시연은 느지막이 일어나, 진아가 남겨두고 간 국을 데워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갑작스레 걸려 온 전화.[시연아! 은범이가 깨어났어!]“정말요?”시연의 목소리가 반사적으로 높아졌다. 그리고 마음이 벅차오르는 걸 느꼈다.“정말 다행이에요. 어때요? 상태는?”[훨씬 나아졌대. 교수님도 그러시더라, 기적 같다고.]‘진짜로... 다행이다.’그 순간, 시연의 가슴 깊이 안도감이 내려앉았다. 그토록 무거웠던 짐 하나가 내려간 듯했다.[시연아, 시간 괜찮으면 병원에 들러줄래? 은범이가 널 보면 정말 기뻐할 거야.]잠시 망설였지만, 시연은 진아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확인할 건 해야지.’“네, 오늘 쉬는 날이라 금방 갈게요.”[정말? 정말 고맙다!]강수희는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그럼, 우리 기다리고 있을게.]“네.”...병원.병실 앞. 강수희는 병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시연이 오기를 기다린 듯한 얼굴이었다.“시연아!”그리고 시연의 손을 붙잡고 친근하게 웃으며, 팔짱까지 끼는 모습. 이전과는 딴판이었다.“어제 일은 잘 해결됐지? 고 대표님이랑도... 잘 풀었어?”너무도 티 나는, 의도된 질문. 시연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짧게 답했다.“문제없어요.”“그렇구나...” 강수희의 눈빛에 실망이 그대로 비쳤다. ‘생각보다... 잘 안됐구나’하는 반응이었다“그럼 들어가자. 은범이는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41화

    그날 밤.임진아는 다급히 시연이 사는 곳으로 찾아왔다.“야... 이게 뭐야? 진짜로 나온 거야?”짐이 구석구석 정리되어 있었지만, 분위기는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피식 웃었다.“응, 가짜로는 안 되지. 진짜로 나온 거야.”진아는 멍하니 둘러보다가 툭 내뱉었다.“근데 두 사람... 싸우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 근데 매번 이러다가 또 돌아갔잖아. 이번엔 진짜야?”시연은 잠깐 말이 없다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말했다.“응, 이번엔 진짜야.”그리고, 은범의 병실에서 벌어졌던 일을 털어놨다.“뭐??!”진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야, 그래서! 도대체 왜 그 침대에 누워 있었던 건데? 은범이가 널 안은 것도 아니고, 설마 네가 알아서 올라간 거야? 도무지 기억 안 나?”시연은 진아를 쳐다보며 한쪽 눈썹을 올렸다.“기억 상실 드립은 그만. 너 로맨스 소설을 너무 많이 봤나 보지?”“하긴...” 진아는 입을 삐죽였다. ‘그럴 리가 없지. 시연이가 은범한테 그런 마음 있을 리 없어.’“그럼... 진짜로 뭔가 이상한 거 아냐?”시연은 말없이 일어났다. 안방에서 두 개의 종이봉투를 들고 나왔다.“그건 또 뭐야?”“은범이 어머니가 준 거야. 임부복.”“뭐...?”진아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헐... 그 아줌마? 그 아줌마가 임부복을 챙겨줘? 몰라보게 바뀌었네... 예전엔 널 사람 취급도 안 하더니.”곧바로 뭔가 떠오른 듯, 진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시연아... 설마... 노은범 어머니가... 널 침대에 올려놓은 거 아니야?”시연은 작게 웃었다. 표정은 여유로웠지만, 그 안엔 감정이 억눌려 있었다.“그럴지도.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요즘 지나치게 친절하더라.”“세상에... 역겨워! 전엔 널 그렇게 무시하고 수치 주던 인간이, 이제 와서 태도를 바꾼다고? 자기 아들을 살릴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눈이 돌아간 모양이지?” 진아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외쳤다.“그래서..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40화

    “놔둬. 우리 고 대표, 요즘 상태 안 좋아. 그냥... 내버려둬.”...차 안.지한이 조심스럽게 운전대를 잡으며 물었다.“형님, 어디로 모실까요?”유건은 창밖을 바라보며 턱을 괴었다.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낮고 무심했다.“갈 데가 어디 있겠냐. 본가로 가자.”“네, 형님.”지한은 운전대를 돌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결국 돌아가시긴 하네... 형수님 그런 식으로 떠났는데, 형님은... 아직 포기 못하셨구나.’ ...고씨 가문 본가.차에서 내리자마자, 유건은 곧장 현관을 박차고 들어갔다. 걸음은 빠르고, 눈빛은 날카로웠다.하지만 집 안은 조용했고, 시연은 없었다.유건은 믿기지 않는 듯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 안방, 서재, 게스트룸, 드레스룸...어디에도 시연은 없었다.‘정말 가버린 거야?’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허겁지겁 계단을 내려와 왕성애와 이호민을 불러세웠다.“지시연, 어딨습니까?”넥타이를 세차게 잡아당기는 그의 목소리엔 급박함이 섞여 있었다. “예...?”이호민은 순간 얼이 빠졌다. “사모님요? 나가셨는데요... 도련님이 나가라고 하셨잖아요.”“내가?”“네... 저희도 다 들었어요. 기환이가 전화했을 때, ‘앞으로 그 여자 일로 날 귀찮게 하지 마’라고... 그 말, 솔직히 ‘더 이상 상관 없다’는 뜻 아니었나요?”“이모님,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유건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제가... 그랬다고요?”왕성애가 나섰다.“네, 저도 들었는걸요. ‘앞으로 그 여자 일로 날 귀찮게 하지 마’라는 게, 무슨 뜻인 줄 모르세요? 도련님, 그건 사모님을 쫓아내는 말이었다고요.” 유건은 할 말이 막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진짜... 그랬나?’ 그 순간이 떠올랐다. 기환이 급하게 전화했을 때, 술에 올라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그 한마디가 시연을 보낸 거였다.“됐어요. 알겠어요.”짧게 대답한 유건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계단을 올라갔다.“도련님!”이호민이 다급히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39화

    “고... 고 대표님...”무대에서 내려온 댄서가 입술을 깨물며 조심스레 다가왔다. 목소리는 부끄러움과 설렘이 섞여, 낮게 떨렸다.“제... 예명은 시연이에요.”뚝-순간, 공기 자체가 얼어붙은 듯했다. 주변의 시끄러운 음악, 사람들의 웃음소리까지.‘시연... 시연이라니...’유건은 천천히 그 이름을 되뇌었다.입꼬리는 올라갔지만, 그것이 웃음인지, 비웃음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래, 시연이구나.”목소리는 가볍지만, 그 안에 도사린 감정은 날이 서 있었다. 유건의 손끝이 떨리는 것을 가까이서 본 지하는 알아챘다.“고 대표님... 감사해요. 오늘... 무대를 봐주셔서요. 제가 한 잔 드릴게요.” 여자는 작게 고개를 숙이며 술병을 들었다.“고 대표님... 어느 잔이... 쓰시던 건가요?”그 말의 의미는 명확했다. 같은 잔으로, 같은 술을, 같이 나누자는 은근한 제안.지하와 강석, 정빈은 아무 말 없이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거, 일 터지겠는데...’유건은 천천히 턱을 들어, 가장 가까이 있는 잔을 가리켰다. “저거.”“네, 고 대표님.”여자는 긴장한 손으로 잔을 집으려 했다. 하지만 손이 닿기 직전, 유건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탁-그대로 테이블 위로 꾹 눌렀다.“고... 고 대표님?”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는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유건은 피식 웃었고, 웃음 끝에 감도는 건 조롱과 냉기였다.“너, 누구야?”“네...?”“아무나 내 잔에 손을 얹어도 된다고 생각했어? 내가 개나 소나 ‘고 대표님’이라고 부르면 상대해 줄 거라고 생각했냐고.” “저... 죄송합니다...”여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뭐야, 분명 아까까지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꺼져.”낮고 가라앉은 유건의 목소리. 그러나 그 말은 날카롭고 차갑게 뼛속까지 파고들었다.“네...?”“꺼지라고.”쾅!술잔이 바닥에 내던져졌고, 깨진 유리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꺅!”여자가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38화

    유건은 지하의 어깨에 팔을 걸쳤고, 약간 술에 취한 듯 입꼬리를 올렸다.“야, 그거 알아? 아까 무대 위에 있던 애, 나 걔한테 걸었다? 오늘의 ‘댄스 퀸’은 무조건 걔가 될 것 같았거든. 어때, 춤 괜찮았지?” 지하는 눈을 살짝 흘기며 잔을 들었다. ‘와... 진짜 맛이 갔구나.’ “응, 잘 추더라.”“그런데 유건아...” 무언가 진지하게 말을 꺼내려던 찰나, 벌떡 일어난 유건이 무대를 향해 우렁찬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좋아!”“잘한다! 브라보!”지하는 어이가 없어 술잔을 내려놨다. ‘진짜 망가졌네, 망가졌어.’무대가 끝났고, 분위기도 한풀 꺾였다. 유건은 흥이 남은 얼굴로 말했다.“자, 술 마시러 가자.”오늘은 일부러 룸을 잡지 않고, 메인 홀 자리에 앉았다. 유건이 일부러 ‘시끄럽고 복잡한 곳’에 머물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조용한 데 가면, 아무래도 생각이 많아질 테니까.’ 정빈은 이미 술을 채워두고 있었는데, 유건은 자리에 앉자마자 잔을 집어 단숨에 비웠다. 강석이 지하에게 눈짓을 보냈다. ‘어때? 얘기는 좀 들어봤어?’지하는 어깨를 으쓱였다. ‘방법이 없어. 지금은 완전히 벽이야, 벽.’그 순간, 클럽 매니저가 다가왔다.“고 대표님, 지하 도련님, 주 대표님, 강석 도련님, 반갑습니다.” 정중히 인사한 뒤, 본론으로 들어갔다.“아, 그리고 고 대표님, ‘댄스 배틀’ 결과 나왔습니다. 고 대표님이 베팅하신 8번 참가자가 오늘의 ‘댄스 퀸’으로 선정되었어요.”“그래?” 유건이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니까.”“상금은 현금으로 환전해 드릴까요, 아니면 칩으로 보관해 드릴까요?”“필요 없어.” 유건은 손을 툭 내저으며 말했다. “그냥 술값에 써. 테이블이나 돌리라고.”“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매니저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역시... 이런 분들한텐 돈보다 기분이지.’“그리고... 약속대로 오늘의 ‘댄스 퀸’이 술을 한 잔 따라드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37화

    “그렇게까지요...?”이호민은 더는 망설일 수 없었다. 바로 시연을 위해 차량을 호출했고, 기환은 말없이 그녀의 캐리어를 트렁크에 실었다.“집사님, 이모님, 기환 씨... 그동안 감사했어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시연은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조용히 차에 올랐다. 창문이 올라가며 그녀의 얼굴이 서서히 가려졌고, 차는 조용히 대문을 빠져나갔다.남겨진 세 사람은 말이 없었다. 대문 앞, 서로 눈을 바라보며 굳어 있었다.“기환아...” 이호민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넌 뭔가 알고 있는 거지?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그게...”기환은 한숨을 내쉬며, 하는 수 없다는 듯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병실에서 벌어진 일, 유건이 본 장면, 그리고 그 뒤에 생긴 오해까지... 사실대로, 차분히 말이다. “그래서, 그렇게 된 거예요.”이야기가 끝나자, 왕성애와 이호민은 동시에 외쳤다.“말도 안 돼! 사모님이 바람을 피워? 그건 아니지! 그럴 리 없어!”이호민의 얼굴이 붉어졌고, 왕성애는 황급히 팔짱을 풀며 어이없어했다.“사모님이 어떤 사람인데! 기환아, 정말 그 상황을 믿는 건 아니지?” “솔직히 말해서요...” 기환도 고개를 숙였다. “저도 믿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형님이 두 눈으로 직접 보셨어요. 그 자리엔 저도 있었고요.”차 안.시연은 두 팔을 가볍게 끌어안았다. 차 안은 너무 조용했다. 조용해서, 오히려 더 춥게 느껴졌다.‘추워... 정말 추워.’몸이 추운 게 아니라, 마음 깊숙한 데서 올라오는 냉기가 뼈를 때렸다. 그 차가운 공기 속에서, 시연의 감정이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심지어 눈을 감아도 ‘그 사람’의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앞으로 그 여자 일로 날 귀찮게 하지 마.”그 말은 정말이지 두 사람 사이에 마침표를 찍는 말이었다. ‘진짜... 끝이구나.’시연의 눈가가 점점 뜨거워졌고, 감정을 참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눈물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