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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의 모든 챕터: 챕터 211 - 챕터 220

915 챕터

제211화

후퇴의 여지를 주지 않은 키스는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유강후는 온다연이 감당할 수 없는 직전까지 몰아붙였다.집에 도착한 시간은 아주 늦었다. 유강후는 가는 길에 잠든 온다연을 침실까지 안아갔다.그녀는 아주 고된 밤을 보냈다. 새벽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던 것이다.밖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항상 열부터 끓어올랐다. 유강후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였다.그녀의 상태를 확인한 주성원은 별다른 말 없이 해열제를 처방했다. 그 외에 보탠 것이라고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는 말뿐이었다.아침이 되니 열이 내렸다. 그러나 아프고 일어난 온다연은 축 처져 있었다. 아침밥을 먹고 오후까지 자고 나서야 무기력감이 조금 가셨다.유강후는 이 시간에 보통 집에 없었다. 온다연은 그가 거뒀던 물건이 떠올라서 슬금슬금 서재에 가서 한참 어슬렁거렸다.‘대체 금고는 어디에 있는 거야?’이곳에서 지낸 시간이 길어지자 그녀는 슬슬 집 구조를 익히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금고는 찾아내지 못했다.그녀의 모든 중요한 물건이 금고에 있다. 찾기 어렵다고 해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구석구석 샅샅이 뒤졌는데도 금고는 끝내 찾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사람이 아닌 온다연은 장화연을 찾아가 정보를 캐내려고 했다. 유강후의 취미나 습관 같은 것을 말이다. 그의 습관만 알아도 금고의 위치를 추측할 수 있었다.장화연은 냉랭한 얼굴로 묻는 것만 대답했다. 유용한 정보는 하나도 알아내지 못했다. 그런데도 온다연은 급한 마음을 티 내지 못하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오후 5시쯤 되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온다연은 구월이를 안고 창가에 서서 눈을 구경했다.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니트 세트를 입고 있었다. 크림색은 뽀얀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검은 머리카락과 눈썹도 유난히 돋보였다.기온은 하루가 멀다 하게 떨어졌다. 그녀는 몸이 약했기에 장화연이 미리 집안 온도를 높였다. 그러고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케이프를 걸쳐줬다.부드러운 양털 케이프는 한눈에 봐도 비쌌다. 그만큼 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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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화

온다연은 우산도 쓰지 않고 그냥 나갔다. 유민준의 차는 멀지 않은 곳의 나무 아래에 세워져 있었다.그는 차 안에 있는 것이 아닌 밖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바닥에 버린 담배꽁초만 봐도 한참 기다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유민준은 얼굴만 유강후를 닮은 것이 아니라 취향도 닮았다. 온다연이 이런 착장으로 나타난 것을 보고 눈빛에는 빠르게 빛이 돌았다.“다연아, 난 네가 나올 줄 알았어.”온다연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나면서 거리를 유지했다.“무슨 일로 왔어요?”오늘따라 그녀가 더욱 아름다워 보였던 유민준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거리감 때문에 더욱 안달이 났다. 그가 쉽게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던 것이다.소유욕과 패배감이 샘솟았던 그는 다소 충동적으로 그녀를 차에 태우려고 했다.“밖에 추워. 차에서 말하자.”온다연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됐어요. 여기서 얘기해요. 오빠는 약혼자가 있으니까 오해할 소지를 만들면 안 된다고, 아저씨가 그랬어요.”나른하면서도 고집스러운 목소리였다.유민준은 대문을 지키는 장화연을 힐끗 봤다. 답답하다고 해서 함부로 행동할 수 있는 건 아닐 것 같았다.“네 이모를 만나고 왔어. 아이를 잃고 많이 속상해하는 것 같아.”온다연은 심장이 아프면서 답답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여전히 덤덤하게 말했다.“오빠한테는 좋은 일이겠어요.”“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네 이모를 싫어하는 건 사실이지만, 크게 관심도 없어. 그 아이가 남자든 여자든 나한테는 위협이 되지 않아. 그 아이는 평생 서자로 살 수밖에 없어. 내가 손을 쓸 가치는 없다는 말이야.”익숙한 말이다. 얼마 전 유강후도 비슷한 말을 한 적 있다.유씨 가문은 출신을 많이 따진다. 온다연도 당연히 알았다. 그런데도 가슴이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그녀는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정말 유씨 집안사람다운 말이네요.”“다연아, 그러지 마. 내가 전에 기분 나쁘게 했던 일은 전부 보상할게. 나 별장도 사놨어. 이제 가구만 들이면 되니까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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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화

마음이 급해진 유민준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마음에도 없는 말 하지 마. 난 할 만큼 했어. 벌써 며칠째 효진이 연락을 씹고 있다고. 내가 뭘 더 해야 할까?”말을 마친 그는 핸드폰을 꺼내 통화 기록을 보여줬다.“이거 봐. 전화 한 통 받지 않았어.”온다연은 마지못해 보는 척 시선을 돌려서 전화번호를 빠르게 외웠다. 그녀가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고 유민준은 속으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다연아, 난 걔한테 전혀 관심 없어. 내 마음속에는 오직 너 하나뿐이야. 여기서 며칠만 더 지내. 작은아버지가 약혼하면 그 핑계로 나랑 같이 나가서 살자.”온다연은 갑자기 몸을 흠칫 떨었다.“아저씨 언제 약혼해요?”빨리 자신과 함께 살고 싶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 유민준은 헤벌쭉해서 대답했다.“몇 달 안 지나서 약혼할 거야. 집안에서 벌써 상견례 준비를 시작했거든. 작은아버지 약혼은 나랑 달리 엄청 화려할 거야. 유명한 사람도 초대할 거라고 들었어.”이때 그는 무언가 떠오른 듯 말을 보탰다.“그러고 보니 작은아버지 지금 나은별 씨랑 같이 영운산에 있을걸? 나은별 씨한테 별장을 사준대. 별 볼 수 있게 천장 뚫린 그런 거 있잖아. 몸이 안 좋은 나은별 씨가 지내기는 딱 좋지. 장 집사만 입 다물면 작은아버지는 내가 온 줄도 모를 거야.”온다연은 그에게 잡힌 손을 빼내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나은별 씨한테 참 잘해주네요.”유민준은 그녀가 부러워하는 줄 알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천장 뚫린 집이 뭐라고. 갖고 싶으면 내가 얼마든지 사줄게.”“아뇨. 그냥 아저씨가 나은별 씨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요.”“아무래도 그렇겠지? 오랜 친구인 데다가 출신이 훌륭하잖아. 두 사람은 그냥 결혼할 운명인 것 같아. 나은별 씨한테 약간 문제가 생겼던 것만 아니었어도 애까지 낳고 살았을걸?”온다연은 침묵에 잠겼다.그새로 눈은 더욱 크게 내렸다. 차가워진 손과 함께 마음도 너무 시렸다.“좋네요... 소진수라고 하는 친구도 있었던 것 같은데, 셋이 친구인 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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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4화

온다연은 말없이 손을 빼냈다.“오빠 이만 돌아가요. 그리고 요즘은 찾아오지 마요. 아저씨가 보면 기분 나빠 할 거예요. 오빠한테 안 좋아요.”유민준은 아쉬운 듯 또 온다연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역시 날 걱정하는 건 너밖에 없어. 안 그래도 작은아버지가 투자를 전부 빼갔어. 근데 괜찮을 거야. 남도 아닌 친조카한테 모질어 봤자 1년 못 넘겨. 내가 일 처리를 끝내고 금방 데리러 올게.”온다연은 유민준의 손을 피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센 눈보라 속에서 그녀의 모습은 금방 사라졌다.집에 들어간 온다연은 손부터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저녁 식사 전에 유강후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녀가 먼저 전화를 건 경우는 별로 없었다. 전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연결되었고, 늘 그랬듯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 있어?”온다연은 전화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저녁에 아저씨가 좋아하는 반찬을 했어요. 돌아와서 먹을 수 있어요?”“안 돼. 할 일 있어.”“...그럼 남겨줄까요?”“됐어. 나 저녁에 못 들어가. 너 혼자 밥 먹고 약도 잘 챙겨 먹어. 잠이 안 오면 나한테 전화하고.”온다연은 입술을 깨물었다.“밖에 눈이 엄청 내려요. 유리 지붕 집에서 눈 구경하면 예쁠 것 같아요.”유강후는 진짜 바쁜 듯 황급히 대답했다.“눈 보고 싶으면 내일 온천 호텔에 가자. 오늘은 안 돼.”이때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강후 취향 죽이네. 여기 시야 제대로야. 마음에 드는 애 끌어안고 있으면 장난 아니겠어.”“야, 빨리 전화 꺼. 은별이 위에서 기다리잖아. 이러다 술이 다 깨겠어.”온다연은 핸드폰을 꽉 잡았다. 손바닥에서는 식은땀이 났다.유강후가 몇 마디 더 당부했지만, 그녀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다음에는 꽃방으로 걸어갔다.해바라기를 배경으로 한 그림을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 잠시 그림에 집중하는 사이 시간은 어느새 자정이 되었다.꽃방은 아주 따듯했다. 그런데도 창가에서 눈을 구경하려면 약간 쌀쌀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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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5화

탁 소리와 함께 온다연의 핸드폰은 바닥에 떨어졌다. 남자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이 시간에 남자한테 전화하는 거 아니야. 강후가 드디어 결혼한다는데 좀 도와줘야지.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전해줄게. 급한 일이 아니면 그냥 참고. 방해하는 건 아니다.”남자는 술을 적지 않게 마신 모양이다. 그는 ‘유하령’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한가득 퍼붓고 전화를 끊었다.남자의 목소리는 화살이 되어 그녀의 심장에 꽂혔다. 단단히 상처받은 그녀는 핸드폰을 주워들 힘도 없었다.그대로 한참이나 얼빠져 있던 그녀는 천천히 핸드폰을 들었다. 이때 핸드폰이 마침 울리기 시작했다. 낯선 번호로 걸려 온 전화였다.그녀는 잠깐 고민하다가 수락 버튼을 눌렀다. 전화 건너편에서는 여유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내 전화 안 받으면, 우리 일 유강후한테 전부 말한다고 했지.”온다연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그러나 핸드폰을 들고 있는 손은 덜덜 떨렸다.“눈 구경하고 싶어요. 지금 데리러 와줄 수 있어요?”상대는 잠깐 멈칫하다가 피식 웃었다.“이건 데이트 신청인가?”온다연은 손마디가 하얗게 될 정도로 힘을 준 채 되물었다.“맞다면요?”“나 이제 유하령 남자친구 아니야? 전에 유하령의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다면서? 우리 결혼도 할 사인데?”“그래서 올 거예요? 말 거예요?”염지훈은 한껏 여유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이 좋은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지. 나야 갈 수 있는데, 유강후가 널 내보내겠어?”“그건 신경 쓰지 마요. 올 수 있는지만 대답하면 돼요.”“쯧, 좋아. 내가 무슨 수로 널 이기겠어. 30분 후 도착이야.”대답을 들은 온다연은 전화를 끊고 패딩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직접 가져온 가방을 뒤져 봤다. 다행히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모양이다. 전에 지내던 집 열쇠까지 있는 걸 보면 말이다.간단하게 정리한 그녀는 침대에 앉아서 기다렸다. 하지만 금방 그것도 견딜 수 없었다. 머릿속에 온통 유강후와 나은별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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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6화

차 안에는 히터를 빵빵하게 틀었다. 추운 곳에서 따듯한 곳에 들어온 그녀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염지훈은 그녀를 힐끗 보더니 미리 준비해 놓은 우유를 건네줬다.“뜨거운 거야.”그녀가 우유를 받아서 들기 바쁘게 뒤에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네가 왜 이 시간에 줄까지 서서 우유를 산다고 했어. 넌 다 계획이 있었구나.”온다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머리를 돌렸다. 뒷좌석에는 한눈에 봐도 화려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새빨간 입술을 제외하고는 염지훈과 아주 비슷한 인상의 여자였다.그녀가 정신 차리기도 전에 여자가 손을 뻗어 볼을 꼬집었다.“귀여워! 볼도 탱글탱글해!”온다연은 깜짝 놀라면서 뒤로 피했다. 우유도 자칫 떨어뜨릴 뻔했다.여자는 아직도 만족하지 못한 듯 더 만지려고 했다. 그러나 염지훈이 그녀의 손목을 확 낚아챘다.“염지현, 시끄럽게 굴지 말고 가만히 있어.”염지훈이 정말 힘을 줬는지, 염지현은 아프다고 아우성쳤다.“아파! 아파! 이거 놔! 염지훈, 누나한테 이러기야?”“내 차에서 내려.”염지현은 욕설을 중얼거리다가 말했다.“앞에 사거리에서 내려줘. 그러면 알아서 돌아갈게.”“안 돼. 당장 내려. 그러게 누가 애 볼을 꼬집으래?”염지현은 조수석 의자를 툭툭 치며 온다연에게 말했다.“이름이 다연이라고 했죠? 이 자식 3일 밤을 새웠어요. 어디 나무에 들이받지 않게 조수석 역할 잘해요.”온다연은 어색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불편하면... 그냥 저 혼자 갈게요.”염지훈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염지현은 재빨리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어휴, 험한 말 하지 마. 네가 떠나면 난 오빠한테 죽었어. 저 자식이 다 꼰질러 버릴 거야.”말을 마친 그녀는 문을 닫았다. 염지훈은 빠르게 엑셀을 밟아 출발했다.온다연은 고개를 돌려 얇은 외투 한 장만 걸친 염지현을 바라봤다.“저 사람 지훈 씨 누나예요?”“응.”“이 시간에 혼자 길거리에서 위험하지 않을까요?”염지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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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7화

온다연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염지훈과는 별로 친하지 않아서 말을 길게 늘어놓기 불편했다. 그녀는 그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밤에 마시면 살찔까 봐서요.”“뭐? 얼굴이 내 손바닥보다도 작으면서, 유강후 씨 참 사람 보살필 줄 모르네. 나였으면 적어도 70kg은 만들었을 거야.”“70kg요? 그러면 저 정방형 되는 거 아니에요?”“하하, 건강하면 됐지.”염지훈은 우유를 빼앗아 들더니 직접 그녀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한 입만 마셔봐. 달콤해서 맛있을 거야.”온다연은 속는 셈 치고 조금만 마셔봤다. 그러고는 금방 눈을 반짝이며 한 모금 더 마셨다. 상상하던 우유 맛과 달리 훨씬 고소하고 달콤했다.이때 염지훈이 컵을 다시 가져가서 온다연이 썼던 빨대로 한 모금 마셨다.“괜찮네. 다들 좋아할 만해.”말을 마친 그는 다시 우유를 온다연에게 건네줬다. 하지만 온다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받아서 들지 않았다.그는 불쾌한 듯 말했다.“왜, 내가 입 댄 거라 싫어?”“조금요.”“입 댄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알아서 해. 만약 버리면 너도 같이 버릴 줄 알아.”온다연은 그를 바라보지 않고 빨대를 빼냈다. 그리고 뚜껑을 열고 그 채로 마셨다.“정말 맛있어요. 이렇게 맛있는 우유를 어떻게 버리겠어요.”그녀는 우유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홀짝대는 걸 보니, 이런 우유는 처음 먹어보는 듯했다.염지훈은 손을 뻗어 그녀의 입술에 묻은 거품을 닦아내 혀끝으로 스쳤다.“이렇게 하면 더 맛있지.”온다연은 귀 끝이 빨개졌다. 그녀는 컵을 꽉 잡으며 말했다.“마시고 싶으면 가져가서 마셔요. 왜 이러는 거예요...”염지훈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헝클었다.“처음 마셔보는 것처럼 구는 게 귀여워서.”염지훈이 보기에 너무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온다연은 시선을 내리깔며 말했다.“이런 우유가 처음이긴 해요.”“유강후가 이런 것도 안 먹여? 설마 몸에 안 좋다고?”온다연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여전히 컵을 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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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8화

낯설고도 가벼운 감정이지만, 염지훈은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온다연을 가엾게 여긴다는 것을 말이다.이 연약해 보이는 소녀는 재벌가에서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보다 못한 삶을 겪었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귀 뒤로 넘겨주며 물었다.“너 혹시 유씨 집안에서 구박받았어?”이 말을 들은 온다연은 몸을 흠칫 떨다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아니요.”관찰력이 뛰어난 염지훈은 그녀의 작은 몸짓과 표정 변화를 전부 보고 있었다. 그녀의 부정은 당연히 믿지 않았다.그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래도 유강후는 꽤 잘해주는 것 같던데? 네가 사는 그 집도 아끼는 곳이라며. 평소에는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는다고 들었어. 널 그곳에 머물게 한 걸 보면 신경 쓴다는 뜻 아닐까?”유강후가 언급되자, 온다연은 또다시 마음이 아팠다. 차 안에는 바람이 불지 않았고 난방도 빵빵한 데 한기가 느껴져서 몸을 떨었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이제 산에 가서 눈을 볼 수 있을까요?”염지훈은 그녀를 힐끗 바라보다가 손도 대지 않은 가방에 신경이 쏠렸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또다시 알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왠지 모르겠지만, 그는 온다연을 볼 때마다 불쌍하다고 느꼈다. 진정으로 마음이 아픈 불쌍함이었다.그는 그녀가 유씨 집안에서 이토록 힘들게 살고 있을 줄 몰랐다. 그래서 괜히 간식을 담은 가방을 그녀의 무릎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편의점에 있는 건 이런 것들뿐이야. 먹거리랑 손난로는 꼭 챙겨. 필요할 거야.”말을 마친 그는 차를 출발시켰다.가는 길 동안 두 사람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서로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산기슭에 도착했을 때, 온다연이 물었다.“영운산 정상에 별 보이는 지붕이 있는 별장이 있나요?”염지훈은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대답했다.“이제 막 지어진 그 집? 아직 공식적으로 판매되지 않았을걸? 하지만 팔리기 시작해도 쉽게 살 수 없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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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9화

온다연은 어둠 속에서 보이는 발코니 위의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순간, 그녀는 여러 해 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은 열등감이 다시금 되살아났다.그녀는 수많은 밤을 이렇듯 어둠 속에 몰래 서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미물과 같은 자세로 마음속 태양을 바라보곤 했다.그 시절의 그녀는 언젠가 유강후의 품에 안겨 입술을 맞출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꿈에서도 해본 적 없는 상상이었다.하지만 그날이 실제로 찾아왔을 때, 그녀는 어쩐지 슬픈 기분이 들었다. 잠시 거리가 가까워졌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그녀는 비참한 장난감일 뿐이고, 여전히 어둠 속에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존재일 뿐이었다.온다연은 유강후가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담배를 몹시 힘겹게 피우는 것처럼 보였다. 주황빛 불꽃은 희미하게 빛나다가 금세 사라졌다.한 개비를 다 피울 즈음, 나은별이 뒤에서 나타나 그를 껴안았다. 그러다가 나은별이 먼저 그를 놓아주었고, 두 사람은 무언가를 이야기하다가 곧 집 안으로 들어갔다.온다연은 멍하니 서서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쥐었다. 산 정상의 바람은 거세었고 눈도 많이 내렸다. 마치 이 눈이 그녀 마음속의 상처로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그녀는 점점 그 상처가 아프게 느껴졌다. 이 고통은 어린 시절 심미진이 그녀를 버렸을 때보다 더 심했다.온다연은 밝게 빛나는 창문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유강후가 전화를 받았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부드러웠다.“왜 이 시간까지 안 자고 있었어?”눈보라 속에서 온다연은 추위에 몸을 떨며 휴대폰을 꽉 쥐었다.“아저씨 어디예요? 저 잠이 안 나와요. 아저씨 보고 싶어요.”유강후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갑지 않았다.“볼 일이 있어서 나왔어. 오늘은 못 돌아가. 얼른 자고 내일 아침에 보자. 네가 깨어날 때 쯤에는 집에 있을 거야.”온다연은 가슴이 답답했다. 휴대폰을 쥔 손은 관절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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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0화

염지훈은 눈썹을 튕기며 온다연의 어깨를 감쌌다.“이런 집 좋아해?”“별 보이는 지붕이 엄청 예쁠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이랑 누워서 별 보면 로맨틱할 것 같지 않아요? 가을의 노을도, 겨울의 눈도 예쁠 거예요.”“안목 좋네. 우리 형한테 부탁하면 여기 집 알아보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닌데, 말해줄까?”온다연은 시선을 거두며 담담하게 말했다.“아니에요. 저한테 무슨 자격이 있다고...”이런 곳은 나은별처럼 재벌가 출신의 사람만 지낼 자격 있었다. 어둠 속에서 피어난 잡초 같은 그녀는 당연히 자격이 없었다.염지훈은 미소를 거두고 그녀의 이마를 작게 튕겼다.“무슨 소리를 아는 거야? 별걸 다 자격으로 나누고 있어.”온다연은 말없이 손난로를 얼굴에 댔다.“지훈 씨 술 좋아해요? 제가 술 사줄까요?”“나한테 뭐 해줄 돈 없다며?”온다연은 시선을 숙이며 담담하게 말했다.“술 살 돈은 있어요. 갈래요?”염지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눈은?”지금 내리는 눈은 전부 심장에 떨어지는 것 같아서 아프던 참이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차에 올라타며 말했다.“안 봐요. 이만 돌아가요.”염지훈도 당연히 그녀의 이상을 보아냈다. 하지만 그의 기억 속에서 온다연은 항상 이상한 여자였기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차는 금방 돌아서 산기슭에 도착했다. 그리고 온다연 집 근처에 있는 거리로 향했다.눈 오는 날에도 이곳은 사람 냄새를 물씬 풍겼다. 그들은 자그마한 야장에 들어가 술안주를 주문했다.어두컴컴한 조명 속에서 사장은 온다연에게 친절하게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그러게요. 오랜만이에요.”사장은 빠르게 움직이면서 온다연의 곁에 있는 남자를 힐끗 봤다.“이쪽은 남자친구예요? 잘 생겼네요.”온다연은 싱긋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염지훈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주변을 빙 둘러보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나한테 사준다는 게 이런 거였어?”온다연은 그의 품에서 벗어나며 말했다.“안 먹겠으면 구경이나 해요.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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