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Chapter 911 - Chapter 920

1170 Chapters

제911화

사여묵과 송석석은 성문에서 멀지 않은 주점의 2층에 있었다. 이 주점의 2층 귀빈실은 위치가 가장 좋아 창문을 열면 성문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그들의 일정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사여묵은 송석석이 소 대장군을 볼 수 있게 일찍이 이 귀빈실을 예약했다. 송석석은 소 대장군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달려 내려가 어린 시절 때처럼 외조부의 품에 안겨 한바탕 울고 싶었다. 외조부에게 억울함을 쏟아내면 그는 석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곤 했다.“우리 석석이를 괴롭히는 사람이 누구냐? 외조부가 가서 혼내 줄 것이다!"그러나 지금 그녀는 이 2층에서 서서 외조부의 말이 백성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귀청이 터질 듯한 지지의 함성을 들으니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외조부는 이전보다 많이 늙은 것 같았다. 그가 비록 예전에도 귀밑머리가 희끗했어도 정신이 맑고 의지가 넘쳤다. 진성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몇 세트의 권법을 연습해도 얼굴이 붉어지거나 숨이 차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온통 백발이 되어 검은 머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비록 대장군의 위엄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며칠간 계속된 여정으로 인해 피로한 기색이 보였다.게다가 그는 전체적으로 많이 수척해 보였다. 예전에는 얼굴이 검게 그을렸지만 살이 통통했는데, 지금은 피부색은 변함없지만 빵빵하던 살이 축 늘어졌다.이는 노쇠의 징후였다. 소 대장군은 인파 속에서 힘겹게 전진하고 있었다. 때로는 두 손을 모아 감사를 표하고, 때로는 어전 시위들이 사람들을 밀어내는 것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백성들이 다칠까 염려했다.거의 반 시진이 지나서야 행렬이 주점 아래까지 도달했다.원래 순방영과 경위과 와서 길을 열어주려 했지만 백성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 완전히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안팎으로 드나들 수 있었으나 이제는 백성들이 철옹성처럼 모여 소 대장군을 보호했다.어떤 백성은 어전 시위와 실랑이를 벌이려 했다. 그러나 즉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17
Read more

제912화

필명과 오진이 경위와 순방영을 이끌고 인파 속으로 들어가 서서히 길을 만들어내어 마침내 소 대장군과 어전 시위들이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어전 시위들은 소 대장군을 이끌고 궁으로 들어가 황제를 알현하게 했다.그들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백성들의 소란과 외침이 숙청제에게 보고되었다.숙청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백성들이 자신을 향해 외치는 함성이 마치 그를 옭아매는 밧줄처럼 느껴졌다. 원래 그는 소승이 돌아오면 먼저 형부의 조건이 비교적 나은 감방에 수감하고 서경 사신에게도 핑계가 될 만한 처분을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척귀의 인도로 소 대장군은 어서방으로 들어가 황제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죄인 소승,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폐하 만수무강 하옵소서!”숙청제는 소승을 보기 전까지 머릿속에서 이 사건을 처리할 계획만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가 눈앞에 무릎 꿇고 예전의 위풍당당했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진 채 마치 쓰러진 산처럼 보이자 마음속에 찡한 감정이 올라왔다.그가 태자였을 때 소승과 송회안은 그를 무척이나 지지해 주었다. 그 또한 자주 진북후부를 찾아 송가의 아들들과 진심으로 교류하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제 황제가 된 그는 더 많은 것을 고려해야 했고, 마음도 예전처럼 순수하지 않게 되었으며 여러 걱정과 책략이 늘었다.오랜 세월이 지나 눈앞에 서 있는 그를 보니 국경의 매서운 바람이 이 철같은 노장을 산골의 노인처럼 변하게 만든 것이 느껴졌다. 숙청제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져 직접 일어나 그를 부축하며 말했다.“소 대장군, 어서 일어나시오.”소승은 눈물을 쏟아내며 말했다. “죄인 소승, 폐하께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숙청제가 깊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앉아서 이야기하시오.”숙청제는 직접 소 대장군을 부축하여 한쪽에 앉히면서 그가 진정으로 쇠약해졌음을 비로소 실감했다. 강철 같던 그의 어깨와 팔이 이제는 그 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18
Read more

제913화

예전에 송석석이 현갑군의 지휘사로 임명되었을 때 많은 조신들이 반대했었다. 여성이 이렇게 중요한 위치를 맡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제 황제의 일련의 조치를 보고 그의 의도를 깨닫게 된 조신들은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가다가는 현갑군에 결국 순방영만 남게 되어 귀족 자제들이 모이는 집합소로 전락할까 걱정하였다.현갑군은 원래 황성을 지키는 중요한 방패였다. 하지만 해체되고 분해되면서 그 권위를 잃은 듯하여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았다.더군다나 송석석이 지휘사로 임명된 이후 현갑군은 더욱 강력한 위엄과 안전감을 갖추게 되었고, 송석석에게 반감을 가졌던 이들도 이제는 진심으로 그녀를 인정하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송석석에 대한 인정이 숙청제로 하여금 더 빠른 개혁을 추진하게 했고, 어전 시위를 현철군으로 개편하는 발걸음을 재촉하게 했다. 앞으로의 개혁도 더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었다.한편 소 대장군은 근용위의 호위를 받아 소부로 돌아왔다. 오랜 세월 비워진 소부는 황폐해져 형편없는 상태였기에 근용위가 직접 들어가 잡초를 뽑고 청소를 했다. 오 대반은 몇몇 궁녀들 골라 들어가 시중을 들도록 조치했다.전북망은 직접 호위할 엄두를 내지 못했기에 소 대장군이 입주하자마자 스무 명의 근용위를 파견했다. 그 중 열 명은 소부 안에서, 나머지 열 명은 밖에서 세개의 대문을 지켰다. 정문에는 네 명, 후문과 측문에는 각각 세 명씩 배치했다.소 대장군이 소부에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아 회왕비가 사람들을 이끌고 정문 밖에 찾아와 면회를 요청했으나, 근용위에 의해 막혔다. 그녀는 시끄럽게 굴지 않고 밖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다른 일은 차치하더라도 아버지가 돌아왔는데 보러 오지 않는다면 사람들에게 비난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지금 왕야가 진성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왕야가 있었다면 아버지가 죄인의 신분인 만큼 그녀가 아버지를 찾아가는 것을 탐탁지 않아 가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황제가 그를 집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18
Read more

제914화

선평후는 주변에 시중드는 이 하나 없이 혼자 왔다. 청색의 옷에 검정색의 두꺼운 외투까지 입고 있어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 어느 집안의 하인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다.사여묵과 송석석은 먼저 일어나 기쁘게 그를 맞이하였고, 옆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따라 일어났다. 그들 또한 아무 말없이 도와준 선평후에게 마음 속 깊은 감사를 느끼고 있었다. 간단한 인사치레를 나눈 뒤, 선평후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송구스럽습니다. 그 녀석을 조건없이 동의하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장기문이 조건 하나를 내세웠는데, 왕비님과 시 소저에게 먼저 물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왔습니다.”선평후가 처음 송구스럽다고 이야기할 때 모두 놀랐지만 뒤에 이어진 말까지 듣자 안심했다. 시만자가 의아한 듯 물었다. “왜 제 의견을 물어야 하죠? 대체 뭘 하려는 건가요?”선평후도 이 말을 전하면서 다소 의아해하며 답했다.“장기문이 말하길, 시 소자를 사부로 삼고 싶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오진과 필명처럼 친히 가르침을 받는 제자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네? 저는 그를 가르친 적이 있는걸요?”시만자는 장기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해 잠시 당황했다. 그는 어전 시위에 속해 있어서 이미 함께 수업을 받을 수 있는데 왜 사부로 삼고 싶어 하는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미 제자는 세 명으로 정해 두었다고 말을 했었다.그러자 선평후가 설명했다.“그 녀석이 자기 실력으로 승진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어전에서 필요한 것은 무예와 민첩함인데, 민첩함은 충분하지만 무예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는 모양입니다.”“그런가요?”시만자는 짧게 대답하고는 송석석을 바라보았고 송석석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문제는 시만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했지만, 제자를 받는 일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시만자의 성격상 이미 오진 등 세 명의 제자를 받아들인 것만으로도 상당히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받아들이겠습니다.”시만자는 오랜 고민 없이 바로 대답하였다. 평소 같았으면 이러한 강압적인 요청은 절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18
Read more

제915화

장기문은 땅에 무릎을 꿇고 재빨리 외쳤다. “아버지, 안심하십시오. 좀처럼 얻기 힘든 좋은 기회인 것을 제가 압니다. 반드시 사부님께 열심히 배우고 절대 나태하거나 게으르지 않겠습니다. 또한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장기문은 시만자의 수업을 두 차례 들었었다. 하지만 다른 때는 당직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고, 그가 시간이 될 때는 시만자가 따로 가르쳐 주지 않아 매우 아쉬워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그의 부모님에게 몇 번이나 말하길, 만약 시 사부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너무 좋겠다고 했었다.장기문은 성릉관에 갔다가 이렇게 운이 좋은 기회를 얻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신의 방법이 좀 비겁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없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어전 시위가 독립하게 되면 현갑군의 지휘를 받지 않게 될 것이고, 시 사부님은 송 대인의 체면을 봐서 그들을 가르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어전 시위가 독립한 후에도 황제가 계속 가르치도록 허락한다 해도, 수업에 참여할 기회가 줄어들어 예전처럼 여러 번에 한 번 겨우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될 것이 뻔했다.장기문의 아내도 장기문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 남편이 사부를 모시는 예를 갖추니 자신도 함께 절을 올린 것이다. 시만자는 제자 부부가 올린 차를 받아 마신 후, 제자의 아내에게 팔찌를 선물로 건넸다. 장기문의 아내는 그 팔찌의 귀중함을 알았기 때문에 너무 비싸다며 사양했다.시만자는 말했다."받으시오. 내게 싼 물건은 없소."장기문의 아내는 잠시 망설이며 도와 달라는 눈치로 시어머니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장기문의 어머니가 말했다.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니 받도록 하여라. 앞으로 시간이 될 때마다 사부님을 찾아 뵙고 제자 며느리로서의 본분을 다하도록 해라.""알겠습니다." 장기문의 아내는 그제야 팔찌를 받고 감사를 표하며 말했다."감사합니다. 사부님!"사부 예식을 마친 후 장기문은 부모님께 먼저 돌아가시라고 전했다. 장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18
Read more

제916화

시만자는 송석석을 곁에 앉혀 두고 경기를 지켜보게 했다. 그녀는 송석석이 지금 외조부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제자들을 불러 시합을 하게 함으로써 그녀의 주의를 돌리려 했다. 무술은 송석석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니 이를 보면 마음을 다른 데로 돌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사여묵도 곁에서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목적 역시 석석과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했다.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장기문은 세 명을 상대하면서 거의 반격도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있었고, 그 모습은 꽤나 참혹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자들이 적당히 조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머리나 얼굴은 제외하고 주로 몸에 타격을 주었다. 누가 봐도 큰 문제가 없는 선에서 경기를 이어갔다.하지만 이렇게 계속 얻어맞다가는 장기문이 몇 번 버티지 못할 듯했다.사여묵이 경기를 멈추려는 찰나, 송석석이 먼저 나서서 멈추라고 외쳤다. 무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일방적인 폭행을 견디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웠다. 장기문의 단점이 일찍이 드러났다. 기초는 그럭저럭 다져져 있지만 기술이든, 주먹질이든, 발차기든 전부 엉망진창이었고 전혀 체계가 없었다.시만자는 송석석의 주의가 완전히 전환된 것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 얻어맞아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장기문을 바라보는 눈빛도 조금은 부드러워졌다.송석석이 장기문에게 물었다. "무술을 배운 지 얼마나 되었느냐?"장기문은 숨을 몰아 쉬며 막 대답하려는 찰나, 시만자가 재촉했다. “어서 사백께 대답 드려라.”송석석의 표정은 순간 굳어졌다. 그녀는 시만자와는 전혀 다른 문파였기 때문에 이들의 사부가 되고 싶지 않았다. 장기문은 비틀거리면서 힘들게 대답했다. “사백님께 말씀드리자면, 저는 일곱 살부터 무술을 배웠으니 지금까지 스무 해가 되었습니다.”“원래는 누구에게 배웠소?”장기문은 답했다. “정식으로 사부님을 모신 적은 없고, 집안의 교관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18
Read more

제917화

그렇게 그는 열세 살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정식으로 사부를 모시지 못한 탓에 무술을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매번 사부를 모시려 할 때마다 본인이 아프거나 사부에게 불길한 일이 닥치는 등 항상 문제가 생겼다. 결국 장기문의 아버지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그냥 배울 수 있는 만큼만 배우라고 했다.시만자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미친듯이 복잡해졌다. ‘이 사람 혹시 불운의 화신이 아닐까? 이렇게까지 불운할 수가 있나? 게다가 사부를 해치는 기운도 있는 것 같은데…… 나에게도 불행이 닥치는 건 아니겠지?’하지만 장기문의 지난 경험을 보면 모두 사부로 모시기 전에 생긴 문제들이었다. 이번에는 무사히 사부를 청하여 제자가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운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장기문은 정식으로 큰형님, 둘째 형님, 셋째 형님께 인사를 드렸다. 그의 성실하고 공손한 태도에 형님들도 그를 특별히 어렵게 대하지 않았다.송석석은 그에게 한 가지를 물었다. “너는 현철위 소속이지 않느냐. 이렇게 대놓고 사부를 청하러 와도 현철위에서 출세하는 데 문제가 될까 두렵지는 않느냐?”장기문이 공손히 답했다. “지금 당장은 출세하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충분한 실력을 쌓기만 하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무예를 갈고 닦지 않으면 설령 황제께서 중용하시더라도 능력이 부족해 결국 자리를 내려와야 할 테니 그게 더 볼품없을 것입니다. 저는 아직 젊으니 더 견딜 수 있습니다.”송석석은 그의 말을 듣고 격한 공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로 불운을 겪고도 올바른 길을 고수해 온 그의 끈기에 정말 감탄했다. 사여묵이 그를 믿고 받아들였던 이유가 확실히 있음을 알 수 있었다.그들이 떠난 뒤, 몽동이가 들어와서 선물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하지만 예전처럼 다가가서 뒤적거리지 않았다. 연초에 자신의 사부의 집에 한번 다녀오면서 그간 벌었던 돈을 전부 사부에게 드렸는데 오히려 한바탕 얻어맞았다. 이유는 그가 사온 많은 장신구와 화장품들 때문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18
Read more

제918화

다음날 밤, 사여묵과 송석석은 소부를 찾아갔는데, 소부 대문 밖에서부터 근용위가 정성껏 준비한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간판은 새로 걸렸고 문 앞은 깨끗하게 정돈되었으며 대문의 구리 몼가지 하나하나 빛나도록 닦여 있었다. 낮에는 백성들이 찾아와 그들의 정성을 담아 과일과 채소, 닭, 오리, 생선, 고기 등을 바쳤다. 백성들의 감정은 가장 소박했다.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힘을 보탠 것이었다.전북망은 문을 지켰지만 백성들과는 반대로 낮에는 올 염두를 내지 못하고 밤에 찾아와 보초를 섰다. 스스로 충분히 용기를 북돋은 후에 들어가서 죄를 고할 계획이었다.그러나 문을 밀고 들어갈 용기는 끝내 생기지 않았고, 매번 실패했다. 그러다 사여묵과 송석석이 다가오자 무심결에 뒤로 물러서며 몸을 숨겼다.이 반사적인 반응은 요즘 그를 향한 백성들의 엄청난 비난 때문이다. 그가 거리를 지나갈 때면 어떤 이는 그를 향해 썩은 채소를 던지기도 했다. 전북망은 성릉관에서의 공로가 지금은 백성들의 분노로 되돌아오는 것을 느꼈다.그러나 그는 묵묵히 그 비난을 감내하고 있었다. 이제는 어머니께 설명할 필요도, 그녀의 분노를 감당할 필요도 없었고 받을 것을 모두 받고 나면 이 일이 끝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여묵과 송석석이 말고삐를 함께 잡고 걸어오는 모습을 보며 그는 어쩐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송석석은 어두운 구름 무늬와 큰 국화 문양이 수놓아진 넓은 소매의 운단 옷을 입고 있었는데, 검고 속은 붉은 외투가 바람에 흩날렸다.최근에 몇 번 그녀를 볼 때마다 늘 관복 차림으로 관의 위엄을 뽐내는 모습이었는데, 오늘은 여성복을 입어 한층 더 화려한 미모가 돋보였다. 살짝 붉어진 눈가가 마치 복숭아꽃 빛을 띈 듯 해 한 번 보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모습을 자아냈다.전북망은 그녀를 한 번 힐끗 보고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문 앞의 등이 밝지 않기를 바라며 그들이 자신을 보지 않았기를 바랐다. 그는 사여묵을 마주 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18
Read more

제919화

그가 사여묵보다 먼저 손을 내밀어 그녀를 일으키며 어린 시절처럼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송석석은 어린 시절 조금이라도 억울하거나 불편한 일이 생기면 외조부를 찾아와 고자질을 하곤 했다. 작은 몸에 세상 불만이 가득 차, 누가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나쁜 말을 하면 모두 기억해 두었다가 외조부가 진성에 돌아오면 한껏 하소연하곤 했다.고자질을 마친 뒤에는 외조부의 품에 안겨 있었다. 겉으로는 억울해 보였지만 눈가에 가득 찬 웃음은 그녀가 얼마나 만족스러워하는지 드러냈다.송석석의 눈물이 끊어진 구슬처럼 뺨을 따라 굵게 흘러내렸다.외조부는 거친 손끝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애써 목소리의 떨림을 참으려 했지만 떨리는 목소리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누가 우리 작은 석석이를 괴롭혔단 말이냐? 그러나 이제는 다 커서 외조부가 나설 필요도 없겠구나. 네가 스스로 되갚아 줄 수 있으니 말이다.”외조부의 애틋함과 자랑스러움이 섞인 목소리에 송석석의 마음은 더욱 아려 왔다. 그녀는 급히 눈물을 닦으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이곳에 울려고 온 것도 아니고, 외조부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려 온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흐릿한 눈 너머로 바라보니 여전히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외조부의 눈빛은 그대로였지만, 그의 연세가 뚜렷이 보였다.지난 몇 년 동안 그녀가 겪어온 일보다 외조부는 더 많은 고난을 겪어 왔을 것이다. 송가의 불행만으로도 충분히 힘드셨을 텐데 삼야 삼촌은 팔이 잘리고, 일곱째 외삼촌은 세상을 떠나고…… 본인도 화살을 맞아 중상을 입는 등 한 고비 한 고비를 넘기며 힘겹게 견뎌 왔을 것이다. 이 모든 고비를 넘겨 오면서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외조부를 보며 다른 사람들은 존경할지 몰라도 그녀는 그저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사여묵 덕분에 가까스로 조부와 손녀는 마음을 달래고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송석석은 외삼촌과 외숙모의 안부를 묻고 싶었지만 일곱째 외삼촌을 떠올리게 할까 두려워 감히 말을 꺼내지도, 물어 보지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19
Read more

제920화

소 대장군은 사여묵의 뜻을 단번에 이해했다. 서경의 복수는 일종의 주고받기가 된 것이다. 만약 상국이 서경 마을을 학살했을 때 그들이 아무런 복수 없이 지금처럼 사절을 파견했다면 상국이 절대적으로 잘못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복수했다.소 대장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맞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마을 학살의 잘못만 있었다면 그들의 복수는 이미 충분합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항복한 자를 죽인 일도 있다는 것입니다.”항복한 자를 죽였다는 말은 일종의 표현일 뿐이었다. 실상은 한 나라의 태자를 극도로 모욕해 비참하게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었다. 서경 황제도 원래 그 평민들을 위해 정의를 되찾아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형을 위해 복수를 하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마을 학살은 덮을 수 있다 해도, 타국의 태자를 모살한 일은 어떻게 되는가?사여묵이 말했다. “지금은 항복한 자를 죽인 일이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습니다. 수란키가 전에 뒤로 물러난 것도 서경 태자의 체면과 서경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번에 사절단으로 온 사람이 냉옥 장공주이기 때문에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송석석도 덧붙였다. “그리고 이전에 남강 전장에서 수란키가 말하길, 서경으로 도망친 정탐조들이 모두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평 사저의 조사에 따르면 두 명이 도망친 것으로 보입니다. 사저는 그 두 명을 계속 추적해왔고, 이미 발견하였습니다. 그들이 현재 이곳으로 오는 중입니다.”그들이 한마디씩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소 대장군은 마음이 무겁지만 한편으론 기쁘기도 했다. 그들이 남강 전장에서 돌아온 이후로 줄곧 자신을 위해 발 벗고 뛰어다녔으니, 그가 진성에 돌아와 조사를 받게 될 때 모든 준비를 완벽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형부에 갈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어찌 됐든, 이 소부로 돌아와 며칠이라도 살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후회는 없었다.그는 두 손을 의자 팔걸이에 올리고 그들을 바라보며 깊은 목소리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19
Read more
PREV
1
...
9091929394
...
117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