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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Chapter 1131 - Chapter 1140

1149 Chapters

제1131화

한편, 평서백부는 그야말로 혼비백산이 되었다.옥이가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 탓에 사람들은 최씨가 돌아와서 자초지종을 얘기해주고 나서야 이 일이 얼마나 심각한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오 부인이 왕청여의 뺨을 몇 번이나 강하게 내리쳤고 이 광경을 약왕당에 있던 환자들만 본 게 아니라 그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도 다들 약왕당으로 들어가 구경하기 바빴다.왕청여를 모시던 시녀의 말에 의하면 난리 난 와중에 누군가가 약왕당 안에 왕비가 계신다고, 이건 큰 실례를 범하는 거라고 외쳤다고 한다.최씨는 시녀의 말에 흠칫 놀랐다가 이내 약왕당 안에 있던 왕비가 송석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송석석은 평소에도 약왕당에 자주 찾아갔으니까.하지만 다이 약왕당에 있던 왕비가 누구든 이 일에 관한 소문이 퍼지게 되면 평서백부의 체면은 말이 아니게 될 것이 분명했다. 최씨는 외원에 앉아 한참동안 차를 마시다가 그제야 일어서서 일단 노부인을 찾아갔다.노부인은 최씨를 보자마자 그녀의 손을 덥석 잡더니 눈물을 보이면서 말했다.“아가야, 이 일을 어떡하면 좋을까… 아예 소문이 안 나게 막아버리거나 오 부인을 찾아가서 원하는 건 뭐든 줄 테니까 나서서 해명 좀 해달라고 할까? 오 부인이 이 모든 게 오해라고 말해야 이 일이 잠잠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최씨는 노부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노부인은 화가 많이 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이 일을 해결해보려고 많은 고민을 한 듯했고 그 중에서 유일하게 통할 것 같은 방법을 최씨에게 얘기한 것이다.최씨는 남희를 힐끔 쳐다보았는데, 그녀는 옆에서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멍하니 앉아있었다. 남희는 남편을 많이 사랑하지만 그녀에겐 자식도 있었다. 가족들 중 한 명 때문에 자신의 가족이 흥하거나 망할 수도 있어 걱정이었다. 더군다나 이건 간통에 관한 예민한 문제는 언급하기도 조심스러운 부분이기에 남희도 어쩔 수가 없었으며 그저 큰형님이 잘 처리해주기를 지켜볼 뿐이었다.이때, 최씨가 입을 열었다.“일단은 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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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2화

최씨는 노부인의 이런 태도를 바란 건 맞지만, 실제로 간곡하게 부탁하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안쓰럽고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노부인이 평소에 사리에 밝고 명석한 사람이긴 하지만 친자식과 관련된 일에 있어서는 불공평해질 수밖에 없다.홧김에 모진 말을 내뱉긴 했지만 딸 생각에 결국 마음이 약해졌다.한편, 최씨는 그 누구보다 자신의 처지가 제일 고통스러웠다. 최씨에게 닥친 일도 매우 머리가 아프기에 혹시 노부인이 조금 도와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하지만 지금, 노부인이 왕청여를 대하는 태도로 보면 왕표가 평처를 들인다고 해도 노부인은 결국 최씨에게 참으라고 할 것이 분명하다.노부인은 사리가 밝은 편이지만 유독 자신의 아들과 딸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럽고 포용심이 깊었다.왕청여가 이렇게 큰 사고를 쳤는데 노부인은 말로만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고 할 뿐, 결국은 딸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셋째 아가씨는 이렇게 끔찍하게 아껴주는 어머니가 있어서 참 좋겠네요.”최씨의 말에 노부인은 곧바로 자상한 표정을 지으며 최씨의 손을 덥석 잡았다.“난 너희들을 다 똑같이 아끼고 있어. 혹시라도 나중에 왕표가 너를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면 이 어미가 절대 왕표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고맙습니다… 어머님.”최씨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가볍게 웃으면서 대꾸했다.‘똑같이 아낀다고? 어머님이 정말 우리를 똑같이 아낀다면 그때 당시 왕표가 남강에 가기 전에 집안에 첩을 들였을 때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거야.’그때 당시 노부인은 부부의 일에 끼어들 수 없다고 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이때,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한 노부인은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더니 옆에 놓인 비단 이불을 손에 꽉 쥐고는 최씨와 남희 두 사람을 쓱 훑어보며 말했다.“너희 두 사람에게 확실하게 얘기해둘 게 있어. 만약 이 일이 잘 해결되지 못하고 전씨 가문에서 끝까지 청여를 쫓아내겠다고 하면 난 청여를 집안으로 데려올 거야. 청여가 평서백부에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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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3화

전북망은 전소환에게 방으로 들어가라고 호통을 치며 손마마를 불러 모든 하인을 물러나게 했다.그렇게 거실에는 전북망과 전북망의 부친, 그리고 형만 남았다.며칠동안 술을 진탕 마신 전북망은 얼굴이 창백해져 초췌해 보였으며 메마른 입술은 여기저기 다 터져서 피까지 고여 있었다. 온몸에서는 술냄새가 강하게 풍기고 있는 그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퇴폐했다.최씨는 그런 전북망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머릿속에 전북망이 왕청여와 결혼하겠다고 찾아왔던 예전의 그날이 떠올랐다. 그때 당시의 전북망은 외모도 수려하고 기품도 꽤 넘쳤는데 현재는 이런 몰골이 되어버렸다.전북망이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옆에 앉아있던 부친 전기가 먼저 입을 열었다.“사모님, 지금 밖에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왕청여가 방씨 가문에 있을 때부터 큰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어요. 정말 난리도 아닙니다. 저희 장군부가 손꼽힐 정도로 명문 가문은 아니지만 품행이 올바르지 못한 며느리를 계속 집안에 두고 있을 그런 허접한 가문도 아닙니다.”찾아오기 전부터 전씨 가문의 태도를 대충 예상하고 있었던 최씨는 전기의 말에 그리 놀라지도 않았으며, 전북망에게 아내를 내쫓지 말라고 간절하게 부탁하지도 않았다.최씨는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저도 염치가 있는 사람이라 다른 부탁은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하더라도 내년에 이혼하면 안 되는지 여쭤보고 싶네요.”최씨의 말에 전기가 위엄 넘치는 표정과 말투로 대답했다.“사모님,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내년까지 이 며느리를 집안에 두고 있으면 저희 장군부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겁니다. 더군다나 왕청여도 계속 내 아들과 이혼하고 싶어 했잖아요. 이제 왕청여 뜻대로 이혼을 해주겠다는데 뭐가 문제죠? 두 사람은 결혼하고 나서부터 거의 매일 싸웠어요. 조용한 날이 거의 없었죠. 겨우 임신을 했는데 결국 아이도 지키지 못한 걸 보면 두 사람은 인연이 아닌 것 같네요. 인연도 아닌 두 사람을 굳이 강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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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4화

일이 터진 뒤로 최씨가 왕청여를 보러 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침대에 누워있는 왕청여는 이불로 얼굴을 가린 채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는 태도를 보였다.하인이 의자를 가져와 침대 곁에 놓으며 최씨에게 앉으라고 했고, 최씨는 의자에 앉아 침대 위에서 몸을 조금씩 떨고 있는 왕청여를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 넌 어떻게 할 생각이야? 도피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야. 어차피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이잖아. 어머님은 나한테 노씨 부인을 찾아가서 빌어보라고 하셨어. 노씨 부인이 해명만 잘해주면 조용하게 해결될 거라고 하셨어. 노씨 부인이 우리 뜻대로 할지는 모르는 일이지. 그리고 내가 오늘 장군부에 찾아갔어. 전북망 씨는 오래 전부터 너에 관한 일들을 다 알고 있었다고 했어. 다만 대놓고 너한테 얘기하지 않았을 뿐이야. 네가 전북망 씨와 다시 잘 살 생각이 있다면 전북망 씨는 이 일을 그냥 조용하게 흘려 보낼 거라고 했어. 하지만 한 가지, 전북망 씨는 군대로 복귀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조용하게 듣고 있던 왕청여가 이불을 확 제치더니 퉁퉁 부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그 사람은 몰라요. 그 사람이 알 리가 없어요... 근데 저랑 이혼하지 않는 대신 조건을 내걸지 않았나요?”“말했잖아. 군대로 복귀할 거라고.”“계급도 안 되는 군인이나 하겠다고요?!”왕청여가 금세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이어갔다.“그럴 바에는 차라리 친정으로 돌아갈 거예요. 엄마가 나 살 곳을 확실하게 마련해준다고 했어요. 어떤 일이 생겨도 난 평서백부 셋째 딸이에요. 내가 전씨 가문에 가지고 간 예물만으로도 나 혼자서 평생 걱정 없이 먹고 살 수 있는데 왜 그런 지옥 같은 생활을 계속해야 돼요? 내가 왜 그런 가난에 찌든 삶을 살아야 하냐고요?”침대에 축 처져 있는 왕청여의 목에는 조인 흔적이 여전히 벌겋게 남아 있었다. 어느새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던 왕청여가 서럽게 소리를 질렀다.“다들 날 무시하고 있다는 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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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5화

최씨는 더 이상 왕청여와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았다.“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네가 끝까지 이혼하고 싶다면 나도 노씨 부인에게 찾아가 부탁할 필요도 없겠네.”최씨의 말에 왕청여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대답했다.“새언니… 그래도 노씨 부인에게 찾아가서 이 오해를 확실하게 설명하고 푸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제가 노세진과 함께했을 때 노세진은 아직 결혼하기 전이었어요. 그러니.. 이걸 전부 제 탓으로 돌리면 안 되잖아요. 그리고 새언니도 지금 조카에게 어울릴만한 남자를 찾아주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이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조카가 좋은 남자를 못 만날 수도 있잖아요.”최씨는 화가 치밀었지만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대꾸했다.“제 명이라고 봐야지 뭐. 넌 운이 좋아서 평서백부에서 태어났지만 네 조카는 명이 안 좋아서 너랑 같은 가문에서 태어난 거지. 운명이 그렇게 정해져 있으니 서러워도 참아야지 어쩌겠어. 자신을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잘못이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잖아.”“새언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나한테 전씨 가문으로 돌아가라고 강요라도 하는 거예요?”최씨는 왕청여의 말에 대꾸도 하기 싫어서 홱 돌아서서 떠났고 이제부터 이 일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기로 결심했다.왕청여가 끝까지 전북망과 이혼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노씨 부인에게 찾아가서 부탁해도 전혀 소용없었다. 이 일에 잘못 엮이는 순간엔 자신의 살점을 떼어내지 않는 이상 절대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다.한편, 북명황실에서.송석석의 말을 조용하게 듣고 있던 시만자는 입을 떡 벌린 채 하도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참 지나고 나서야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세상이 그런 사람들이 있어. 방화나 살인 같은 죽을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그냥 눈에 거슬리고 이유 없이 싫단 말이야. 지금 보니 왕청여 그여자랑 전북망이 꽤 어울리는 한 쌍이네.”시만자의 말에 송석석이 대꾸했다.“오늘 약왕당에서 나를 본 사람들이 꽤 있을 거야. 난동을 부린 주인공들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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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6화

”시부귀, 너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비관적으로 변한 것이야?”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왕이장이 송석석과 시만자의 뒤에 서서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끼어 들었다.. “너보다 힘든 사람들도 인생을 낙관적으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넌 그 사람들에 비해 돈도 많고 실력도 뛰어나고 얼굴도 예쁘잖아. 이 세상 여자들이 바라는 건 거의 다 가진 것 같은데 안 좋은 일을 한 번 겪었다고 그렇게 우울해 있으면 안 되지. 널 훌륭한 집안에 보내준 하늘에게 미안하지도 않아?!”시만자가 고개를 돌려 왕이장을 쳐다보았다. 건장한 몸매에 수려한 외모를 지닌 왕이장은 평소와 똑같이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은은한 불빛에 비춰진 구릿빛 피부는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고 실눈을 살짝 뜬 눈빛으로는 진지하게 시만자를 위로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장난으로 비꼬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가자. 기분이 우울할 땐 하늘을 훨훨 나는 게 좋아.”시만자의 손목을 덥석 잡은 왕이장은 단번에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하늘 위를 자유롭게 활보했고 그 모습에 시만자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왕노오의 경공이 이렇게 뛰어났었나?’시만자는 지금까지 왕이장을 별 볼일 없게 생각하고 있었다.갑작스러운 상황에 송석석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뭐지? 선배가 날 못 본 건가? 나한테 눈길 한 번 안 주고 인사도 하지 않는다니…’왕이장은 시만자를 데리고 왕경루의 맨 꼭대기층으로 갔다. 두 발이 허공에 뜬 채로 자리에 털썩 앉은 두 사람 눈 앞에 화려한 진성의 불빛들이 펼쳐졌다.꼭대기층으로 날아올라가기 전에 두 사람은 왕경루 안에서 술 두 병까지 몰래 챙겼고 사이좋게 한 병씩 손에 들고 마시고 있었다.햇빛이 뜨거운 낮과 달리, 밤바람은 무척이나 시원했다.어둠이 깃든 탓에 시만자와 왕이장은 서로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으며 이렇게 술까지 마시고 있으니 왠지 분위기가 야릇했다.눈치를 보던 왕이장은 이내 주머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는 야명주 한 알을 꺼냈고 주변을 순식간에 환하게 비췄다.“반짝이고 있는 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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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7화

하지만 왕이장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술병을 들고 술을 벌컥벌컥 마시며 야명주를 다시 주머니에 넣을뿐이었다. 환하게 비추던 불빛이 사라지고 남은 건 은은한 달빛과 별빛뿐이었다.한편, 시만자는 왕이장에게 이런 출생의 비밀이 있을 줄은 몰랐으며 전에 송석석도 시만자에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평소에 이곳저곳 기방들을 돌아다니면서 여인들의 노래소리에 취해 살거나 여인들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걸 좋아하는 탕자가 백부의 도련님이라니.왕이장이 침묵하고 있던 사이에 시만자의 머릿속에는 이미 집안 서열 싸움의 한 장면이 펼쳐졌다.왕이장의 출생은 아버지에게 행운이라고 했으니 왕이장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을 것이다.하지만 첩의 아들이 사랑을 받는다는 건 적모와 적자에게 곧 신분의 도전이고 위협이 되는 일이다. 아직 왕이장의 친모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서열 싸움에 강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친모가 수단 있는 사람이고 기싸움에 능했다면 왕이장은 지금처럼 돌아갈 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밖을 떠돌아다니지는 않았을 테니까.“평서백부 노부인이 널 집에 못 돌아가게 막고 있는 거야? 네가 돌아가서 가업을 빼앗기라도 할까 봐?”시만자가 조심스럽게 묻자 왕이장이 억지로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그 사람들은 내가 살아있는지도 몰라. 그러니 차라리 잘된 일이야. 평서백부는 겉으로 보기엔 무한한 영광을 누리는 듯하지만 사실 많은 위기가 잠재되어 있어. 그 사람들이 내가 살아있는 걸 알면 나한테 난장판이 된 집안을 해결해 달라고 할 거야. 난 그딴 뒤처리를 하기 싫어. 다만 진성에 있는 며칠 동안 내 형수님의 어려운 처지를 알게 돼서 마음이 좀 안타까워. 평서백부에서 형수님이 가문을 지키는 주모인 건 맞지만 결국 성씨도 다른 남이잖아. 형수님은 감당할 필요가 없는 책임들을 너무 많이 짊어지고 계셔.”시만자는 왕이장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네가 최씨 부인을 도와주려는 거야?”“도울 수는 없어. 그래서 마음이 더 불편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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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8화

왕이장은 또다시 침묵한 채 술만 벌컥벌컥 들이마실 뿐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술병을 비우고는 시만자의 술병까지 빼앗으려 했지만 시만자는 그가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같아서 끝까지 자신의 술을 넘겨주지 않았다.그렇게 두 사람은 왕경루 맨 꼭대기에서 티격태격 싸우고 있었으며 어느새 조금 전의 무거운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었다.시만자는 왕이장의 비밀을 송석석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았지만 왕이장이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 싫어하는 눈치였기에 시만자는 굳이 이 비밀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왕이장이 시만자를 친한 벗으로 생각하여 속마음을 얘기했기에 시만자가 당연히 그 비밀을 떠들고 다닐 수는 없었다.하지만 왕이장이 며칠 동안 계속 평서백부 주변을 맴돈 탓에 결국 순방영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되었다.오진은 이 사실을 송석석에게 알렸고 송석석은 왕이장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선배가 왜 평서백부 주위를 맴도는 거지? 혹시 그 집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는 건가?’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송석석은 왕이장에게 물었다.“선배, 요즘 뭐 하고 계세요?”송석석의 물음에 왕이장이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딱히 하는 일은 없어.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거지.”“평서백부 주변을 돌아다니고 계신 거 맞죠?”미간을 살짝 찌푸리던 왕이장은 고개를 돌려 시만자를 쳐다보았고 화들짝 놀란 시만자는 얼른 손을 내둘렀다.“난 아무 말도 안 했어.”송석석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한 명은 화가 난 듯 씩씩거리고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은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뭔가 비밀을 숨기고 있는 모습이었다.송석석이 두 사람에게 물으려던 그때, 사여묵이 송석석에게 반찬을 덜어주며 말했다.“일단 밥부터 먹게.”송석석은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로 시만자와 왕이장을 쳐다보았고 시만자와 왕이장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푹 숙이고는 다급하게 젓가락질을 했다.이때, 곁에 앉아있던 심청화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며칠 전에 두 사람이 왕경루에 술을 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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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9화

식사를 마친 뒤, 사여묵과 송석석은 심청화의 양팔을 꽉 잡은 채 서재로 끌고 갔다. 그러고는도망칠 틈도 전혀 주지 않게 앞을 단단히 막아섰다. “어허, 자네들 행동이 너무 거칠어. 이 손 좀 놓고 얘기하게.”결혼을 한 심청화는 말투에서 교양이 철철 넘쳐 흘렀지만 사여묵과 송석석은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심청화를 의자에 강제로 앉혔다. 어린 후배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심청화는 한숨을 살짝 내쉬며 말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그냥 대놓고 물어봐.”사여묵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자, 그럼 첫 번째 질문할게요. 오사형은 왜 요즘 평서백부 주변을 맴도는 거예요? 혹시 사숙이나 사부께서 따로 뭔가 분부하신 말씀이라도 있는 건가요? 혹시 왕표에 관해 뭔가를 알아낸 거 아니에요?”곁에 있던 송석석의 표정은 더욱 진지해졌다.“두 번째 질문은 제가 할게요. 오늘 따라 만자를 쳐다보는 오사형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어요. 심지어 둘이 티격태격 싸우지도 않잖아요. 분명 분위기가 평소와 다른데 대사형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계세요?”심청화는 평소에도 입이 아주 무거웠기에 해도 되는 말과 하면 안 되는 말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왕이장의 출신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건 너무도 당연하게 알고 있지만 굳이 가깝게 지내는 후배들한테까지 숨길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사부는 오래 전에 이미 심청화에게 왕이장의 출생에 대해 얘기해주며 왕이장을 잘 타이르라고 당부도 했었다. 심청화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인생을 살면서 그렇게까지 고집을 부릴 필요가 없다고 왕이장을 설득했지만 왕이장은 만종문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이라고 하면서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되든 전혀 상관없다고 반박했다.“왕이장은 평서백부 왕표와 왕준의 친동생이야. 왕청여가 왕이장의 친누나이고 최씨 부인은 왕이장의 형수야. 왕이장이 며칠 동안 평서백부 주변을 맴돌았던 건 평서백부에게 닥친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싶어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아. 노부인께서 앓아 누우셔서 단설환이 필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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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0화

심청화는 그 뒤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도 두 사람에게 얘기해주었다.점쟁이는 절에서 쫓겨난 왕교여가 절대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 나중에 늑대들에게 잡아 먹히면 뼈도 남지 못할 것이기에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하지만 상황은 점쟁이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그때 당시 임양운이 우연히 그 근처를 지나가다가 저녁쯤 되었을 때 갓난애가 우는 듯한 미세한 울음소리를 듣게 되었고 요괴가 아닐까 관심이 생긴 임양운은 미약한 울음소리를 쫓아갔다. 그런데 바닥에 쓰러져 있던 왕교여가 발견되자 너무 실망스러웠다. 요괴도 아니고 갓난아이도 아닌 곧 죽을 것처럼 보이는 대여섯 살 정도의 남자아이라니. 심지어 이곳에 방치된 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발가락 하나가 쥐들에게 뜯겨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이 근처에 독사도 자주 나타나지만 움직일 힘조차 없었던 왕교여가 꿈쩍도 하지 않은 덕분에 독사는 왕교여를 공격하지 않았다.불행 중 다행인 것은 임양운이 곧 죽어가는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며칠 동안 쌀죽을 먹이고 약도 달여서 먹인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아이가 기적처럼 살아났다. 진성에 있을 때 수많은 명의의 손을 거쳐도 전혀 호전이 없던 아이는 두 그릇의 탕약과 쌀죽으로 벌떡 일어난 것이다.실로 신기한 일이었지만 임양운은 여전히 아이가 크게 달갑지 않았다. 온몸에 뼈밖에 남지 않은 아이는 여섯 살이나 됐는데도 서너 살처럼 보였기에 이 아이를 키우기엔 너무 힘들 것 같았다.임양운은 왕교여를 내쫓으려고 하다가 갑자기 야산에서 아이를 처음 본 날이 떠올랐다. 독사에게 둘러싸여서도 전혀 겁도 먹지 않았고 소리 한 번 지르지 않았던 이 아이가 실로 강심장인 것 같았다.두려운 게 없는 사람이 가장 강한 자라고 생각했기에 임양운은 일단 아이를 키우기로 했다.한편, 여섯 살 왕교여는 모든 걸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사부를 믿은 왕교여는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전부 얘기했고 임양운은 사람을 시켜 확실하게 조사하고 나서야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다.절이 불에 타버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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