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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Chapter 1281 - Chapter 1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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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1화

권다솔은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버렸다. 주변에서 밀려오는 말들은 차디차고 날 선 바람결 같았다. 손가락은 경직되고, 팔다리는 감각을 잃은 듯했다. 이곳에 남은 것은 껍데기뿐인 육신밖에 없었다.‘진호 씨가 나한테 숨겼던 일이 이거였어?’한참이 지나서야 권다솔은 그 상태에서 벗어나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녀가 위로 향하는 동안, 배진호는 이미 거실에 앉아 있었다. 단지 그의 얼굴빛은 들어올 때보다 한층 더 싸늘했고, 눈동자 깊숙한 곳에는 얼음꽃이 맺힌 듯 미세한 온기조차 엿볼 수 없었다. 곁에 있던 석규리는 억울함이 거의 실체를 띨 듯했다. 그녀는 정미진을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아주머니...” 석규리는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조건은 분명히 뛰어난데 배진호가 왜 이러는 걸까. 게다가 그녀는 어머니의 명을 어기고 몰래 이곳까지 찾아온 상황이었다. 조연숙은 배진호가 결혼한 적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 그를 원치 않았지만, 석규리는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날 밤 처음 배진호를 만났던 순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조연숙이 집을 비운 틈을 타 슬쩍 이곳으로 들어왔는데, 어째서 배진호는 여전히 차가운 태도로 일관하는 걸까? 전 아내와 비교해 그녀가 어떤 점에서 모자란다는 건가?“진호야, 규리가 틈내서 이렇게 어렵게 온 건데 얼굴 좀 피워봐.”정미진이 그를 나무랐다. 하지만 배진호가 이곳에 온 목적은 맞선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정미진이 주겠다고 한 물건을 받기 위해 방문했을 뿐인데 도리어 속은 셈이다. 그런데 어찌 좋은 표정이 나올 리 있겠는가?그는 더 이상 인내심이 남아있지 않은 듯, 벌떡 일어나 한겨울 칼바람 같은 표정으로 말을 뱉었다.“물건을 줄 마음이 없으시다면 제가 괜히 헛걸음친 거네요.” 그는 정말 이대로 나가버릴 기세였다. 정미진은 가까스로 그를 속여 불러놓고 이렇게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그녀는 다급히 문 앞으로 달려가 가로막았고, 석규리 또한 긴장한 얼굴로 일어났다. “알았어, 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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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2화

배진호는 마시고 싶지 않았다.그는 물건만 챙겨 가고 싶었지만, 정미진의 말투에는 미묘한 강압과 간청이 뒤섞여 있어 냉정하게 등을 돌리고 떠나기가 쉽지 않았다.게다가 그는 그 물건들을 권다솔에게 돌려주어야 했다. 아이를 잃은 경위를 그녀가 알 필요가 있었다. 또 다른 이유는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그의 어머니였다. 20여 년을 길러준 어머니 아니던가.배진호는 목울대를 조금 움직이며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이 한 잔으로 인연을 칼로 베듯 끊어버리려는 듯이 말이다.다 마신 뒤, 그는 홍경천 통을 들고 문밖으로 향했다.“진호 씨, 왜 가는 거예요?”석규리는 깜짝 놀라 일어섰다. 그러나 말을 마치자마자 몸이 격하게 흔들렸고 양 뺨은 유달리 붉게 달아올랐다.이미 현관까지 다다른 배진호는 머리를 움켜쥐고 뒤로 비틀거리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긴 다리가 탁자에 걸려 날카로운 마찰음을 냈다.아랫배 깊은 곳에서 불덩이 같은 열기가 타오르는 듯 격렬했고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목젖이 오르내리며 형언하기 어려운 갈망이 몸속 어딘가에서 피어났다.곁에 있는 석규리는 훨씬 더 상태가 심각했다. 그래도 배진호는 자제력이 좋아 약간의 의식이라도 남아 있었지만, 그녀는 이미 더위를 참지 못해 스스로 옷을 벗으려 하고 있었다.배진호는 그쪽을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최대한 떨어져 앉았다. 이 상황에서 그는 단번에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어머니, 그 물에 약을 탄 거예요?”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리는 눈빛으로 정미진을 바라봤다. 설마 친모가 이런 짓을 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지금 정미진은 대답할 여유조차 없었다.배진호의 상태를 보고 약이 듣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방 안에 숨은 배상준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 집의 방음이 꽤 좋은 탓에 배상준은 한참 뒤에야 밖으로 나왔다. “얼른 진호랑 규리 씨를 2층 침실로 옮겨.”정미진이 지시했다.2층에는 빈 침실이 세 개 있었고, 그중 두 개는 복도의 맨 왼쪽 끝과 맨 오른쪽 끝에 있어 거리가 멀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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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3화

배진호는 냉담하게 그녀를 밀어냈고, 석규리는 침대에 쓰러지며 답답한 신음을 토해냈다.그가 약간 힘을 뺀 게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아마 그녀는 바닥에 나뒹굴었을 터이다.“이미 말했잖아요. 다른 여자한테는 관심 없다고요.”배진호는 차가운 어조로 마지막 말을 던졌다.그는 곧장 문으로 가서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나 아무리 돌려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바깥에서 문을 잠근 것 같았다.뒤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작게 들려오자,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도 피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에 얇게 다문 입술을 살짝 움직였다.“차가운 물로 샤워라도 하는 게 어때요?”석규리는 붉어진 눈으로 그를 보며 중얼거렸다.“옷이 없어요.” 배진호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그럼 관두죠.”그에게 그녀가 입을 만한 옷은 전혀 없었다. 자기 옷을 빌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한편, 권다솔은 몇 번이나 고민하다가 마침내 배진호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잠시 뒤, 정미진이 문을 열었다.결국 지난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권다솔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문을 닫으려 했다.그런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이상한 웃음을 흘리며 다시 문을 열고 말했다.“다솔 씨, 잘 왔어요. 들어와요.”권다솔은 정미진의 태도가 이상하다고 느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를 들여보내기 싫어하던 정미진이었다.그런데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꿨을까? 혹시 동네 어르신들이 말했던 것처럼, 이 안에 배진호가 다른 여자와 있는 게 맞는 걸까?문턱을 넘어서면 두 사람이 정답게 대화를 나누거나 애정에 빠져 있는 장면을 마주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예리하게 찔렸다.권다솔은 심호흡을 하고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남은 미련이 있으니 직접 확인해야 했다.하지만 문턱을 넘어섰을 때, 그녀가 기대했던 충격적인 장면은 전혀 없었다. 배진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거실에는 배상준만 덩그러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내가 착각했나?’권다솔은 문득 스스로를 의심했다. 어쩌면 배진호는 정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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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4화

권다솔은 고개를 숙여 문손잡이를 보고는 찰칵 소리를 내며 문을 열었다.마침 석규리가 약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배진호에게 달려들던 순간이었다.배진호는 잠시 방심한 채 도와주려고 했던 상대가 되레 등 뒤에서 들이받을 줄 몰라 예기치 않게 큰 침대 위로 쓰러지고 말았다.석규리는 손을 더듬어 그의 입술로 키스하려고 했다.배진호의 눈동자는 순식간에 어두운 그림자로 뒤덮이며 고개를 젖혀 피했고 그녀의 입술은 그의 턱 끝에 스칠 뿐이었다.그는 찌푸린 얼굴로 그녀를 피한 바로 그때 문이 열렸다.배진호는 깜짝 놀라 문가를 바라봤고, 거기에 서 있는 사람은... 권다솔이었다.권다솔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다솔 씨, 잠깐만. 오해했어요!”항상 침착하고 무너지지 않던 그의 태도에 균열이 가고 허둥대며 일어서려 했다.하지만 권다솔은 그의 움직임에 겁이라도 난 듯 더 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으며 몸을 돌려 곧장 밖으로 나갔다.배진호는 뒤쫓으려 했으나, 석규리가 그를 끌어안으며 막았다.그는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두 눈을 부릅떴다.얼마나 익숙한 장면인가.지난번 권다솔이 떠났을 때, 그는 하루 밤낮을 그녀를 찾아다니고 또 이삼일을 애타게 기다려서야 겨우 그녀를 곁에 둘 수 있었다.이번에는 얼마를 기다려야 할까?이번에도 돌아와 주기는 할까?...권다솔은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마침 봄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도우미가 그녀를 보고 감추지 못할 놀라움을 드러냈다.“웬일이세요? 아직 병원에 계실 때 아닌가요?” 권다솔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누구와도 대화할 마음이 없었다.그녀는 자기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둔 뒤, 배진호의 흔적으로 가득한 공간을 바라보았다. 칫솔은 그의 것이고, 컵도 그렇고, 수건마저 그에게 속한 것이며, 침대 위 이불조차도 반은 그의 몫이었다.그는 언젠가 말했었다. 그녀 외에는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는 그 말을 지키지 못했다. 사람들은 모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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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5화

소미는 줄곧 여이현과 온지유 앞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려 애썼다.별이는 그녀를 무척 좋아했다. 온지유가 그녀를 보육원에 맡기려 했으나 소미는 온지유의 팔을 꼭 끌어안고 놓지 않았다.“이모, 지금 바로 이모네 집에 가면 안 돼요?”“이젠 우리 집이야.”옆에 있던 별이가 말했다.“네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까지나 머물 수 있어. 우리 아빠, 엄마 모두 정말 좋은 분들이고 여동생도 아주 귀여워.”어떤 아이들은 낯을 가리지만, 온하윤은 절대 그러지 않았다. 낯선 사람을 보아도 웃으며 울거나 떼쓰지 않는 아이였다.“응, 응.”소미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한 손으로 별이의 손을 잡았다.“다 같이 있으니 정말 좋아.”원래 여이현과 온지유는 이 도시에 사흘쯤 머무르며 놀 예정이었지만, 지금은 소미가 있으니 집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어졌다.떠나기 전, 그들은 아이들에게 물었다.“별아, 소미야, 놀이공원에 가보고 싶어?” “가고 싶어요!”별이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도 놀이공원에 가본 적은 있지만 늘 혼자서만 놀았다. 이번엔 엄마 아빠도 곁에 있고 방금 사귄 새 친구 소미도 있다. 그와 달리 소미는 좀 더 주저하는 듯했다.“그... 그런데 놀이공원이 뭐예요?” “엄청 재밌는 곳이야. 거기엔 놀이기구가 잔뜩 있고, 큰 목마를 탈 수도 있고,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 수도 있어. 사람보다 더 큰 인형들이 있고 맛있는 음식도 많아.”별이가 간단히 설명했다. 소미의 눈이 점점 반짝였다.“세상에 그런 곳도 있구나!” “당연하지, 혹시 지금까지 한 번도 못 가봤어?”이번엔 별이가 놀랐다. 해외에도 놀이공원은 있을 것이니 말이다.소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점점 목소리를 낮췄다.“엄마 아빠는 나를 한 번도 데려가지 않았어. 갈 때마다 동생들만 데리고 갔거든.” 주변 사람들이 모두 얼어붙은 듯 잠시 말이 없었다. 한참 뒤, 별이가 먼저 사과했다.“미안해, 내가 그런 말을 하지 말아야 했는데...” 그는 생각할수록 자신이 너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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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6화

“그래, 별이한테도 친구가 생겼으니 우리도 둘만 있을 시간이 더 많아지겠지.”여이현은 손가락으로 온지유의 손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따듯하면서도 간지러웠다.온지유는 붉어진 얼굴로 그를 밀어냈다.“그러지 마. 아이들이 밖에 있다고. 만약 소리를 듣기라도 한다면 안 좋아.”별이는 아주 똑똑한 아이였다. 만약 별이가 그것이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면 온지유는 정말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정말이지 너무도 민망했다.“이 호텔은 방음이 아주 잘 되어 있어. 더구나 꼬맹이들은 지금 티브이에 정신이 팔렸잖아. 그래도 걱정된다면 티브이 음량을 더 높이면 되지.”온지유가 반박의 말을 하기도 전에 여이현은 이미 손을 뻗어 리모컨을 들고 오더니 음량을 두 개 정도 높였다.그리고 몸을 돌려 그녀에게 키스했다.그의 리드에 온지유는 몸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하늘에 어둠이 깔리고 나서야 두 사람의 몸은 떨어지게 되었다. 온지유는 티브이를 끈 뒤 녹초처럼 침대에 흐느적 누웠다.땀에 몸은 끈적거렸기에 너무도 샤워하러 욕실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움직이는 것이 귀찮았다.여이현은 욕실로 들어가 욕조에 따듯한 물 받아놓았다. 그리고 다시 나와 온지유를 안은 후 천천히 그 욕조 안으로 내려놓았다.온지유는 몸을 감싸는 따듯한 온기에 온몸이 나른해졌다.“지유야.”여이현이 나직하게 그녀를 불렀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도 매혹적이었다.“나 오늘 너랑 같이 자면 안 될까?'온지유는 하마터면 그의 목소리에 홀려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다행히도 정신이 번쩍 들어 그의 요구를 거부했다.“안 돼. 꿈도 꾸지 마. 내일 아이들이랑 놀이공원도 가기로 했단 말이야.”이미 조금 전의 일로 힘이 전부 빠진 그녀였다. 만약 또 반복하게 된다면 내일은 아마 눈을 뜰 수 없을지도 모른다.여이현은 점점 더 짙은 미소를 지었다.“얼른 씻어. 밖에서 기다릴게.”그도 온지유를 피곤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목욕을 마친 온지유는 샤워 가운을 입고 나와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여이현은 자연스럽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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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7화

온지유는 소미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몰랐다. 그랬기에 종류별로 접시에 담아주었다.“먹어 봐, 입에 맞는 거 있으면 더 가지러 오면 되니까. 하지만 낭비하면 안 돼. 먹을 만큼 가져가야 해. 알았지?”“아주머니가 골라준 거라면 소미는 전부 좋아요.”소미는 정말로 음식을 낭비하지 않았다.온지유가 담아준 음식은 전부 먹어치웠고 수프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전부 마셨다.배를 채운 후 여이현은 그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소미는 처음에 어색해하면서 편히 놀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몇 개의 놀이기구를 타고 난 뒤 신나게 놀았다.“오빠, 난 회전목마가 좋아. 우리 한 번 더 타면 안 돼?”“아까 내가 큰 말에 탔으니까 이번엔 네가 큰 말에 타. 내가 작은 말에 탈게.”별이는 소미의 손을 잡았다.두 아이는 아직 어렸기에 위험한 놀이기구는 탈 수 없었다. 어린아이들이 타도 위험하지 않은 놀이기구를 전부 타본 뒤 마지막엔 온지유와 여이현과 함께 관람차를 탔다.관람차가 제일 높은 곳까지 올라갔을 때 소미는 두 손을 꼭 모아 말았다.“관람차가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갔을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들었어요. 전 오빠랑 오빠 가족이랑 평생 같이 살고 싶어요.”“그럴 거야.”온지유는 아이를 보며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가족 구성원이 넷이면 아주 좋았다. 다섯이면 더 말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놀이공원에서 나온 뒤 여이현은 호텔로 운전했다. 돌아가는 길에 고속도로를 지나서 온하윤을 태우려고 했다.온하윤은 이틀 동안 아빠와 엄마, 오빠를 보지 못해 반가웠는지 작은 손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아주 좋아했다.“소미야, 봐봐. 하윤이는 내 여동생이야. 귀엽지?”별이는 소미를 데리고 온지유 옆에 서 있었다. 두 아이는 온지유가 안고 있는 온하윤을 보았다.소미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온하윤의 입가로 가져다 댔다. 온하윤은 먹을 것인 줄 알고 혀를 내밀며 소미의 손을 깨물려고 했다.여이현은 얼른 소미를 안아 올렸다.“안 돼. 하윤이한테 손가락 물리면 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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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8화

소미는 얼른 약병을 숨기며 가방에 넣고는 태연하게 다시 바닥에 앉았다.“소미야, 나 왔어. 방금 뭐 하고 있었어?”별이는 소미의 곁으로 다가갔다. 소미와 함께 놀고 싶었기 때문이다.여하간에 소미는 6살 즈음 되는 어린아이였기에 표정 숨기는 것에 능하지 않았고 별이의 맑은 두 눈을 똑바로 볼 엄두가 나지 않아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아무것도 안 했어. 그냥 조금 졸려. 자고 싶어.”“그럼 좀 자. 이모님은?”“내가 배고파서 타르트 만들어 달라고 했어. 근데 지금은 너무 졸리니까 일단 좀 잘게. 이따가 말해.”소미는 소파에서 담요를 끌어당기며 얼굴까지 푹 뒤집어썼다.별이가 온하윤을 엄청나게 좋아했으니 만약 자신이 약을 먹였다는 사실을 별이가 알게 된다면 별이는 더는 자신과 말도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영원히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여하간에 별이의 부모님을 해치지 않았고 별이한테도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별이 동생은...아직 어리고 말도 못 하니 여이현과 온지유가 또 한 명 낳으면 된다고 생각했다.빠르게 김명자가 갓 구운 타르트를 들고 돌아왔다.“소미가 방금 막 잠들었어요. 타르트는 여기에 놔주세요. 이따가 소미가 깨면 먹을 거예요.”별이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행여나 소미가 깰까 봐 말이다.김명자는 고개를 끄덕였다.별이는 혼자 책을 읽었다. 소미는 처음에 자는 척했지만, 나중엔 정말 자게 되었다.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져버렸다. 김명자는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온하윤을 보며 이상하게 생각했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를 본 순간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세상에! 하윤이가 열이 나고 있잖아?”“네? 제 동생이 아파요?!”별이는 고개를 확 들었다.다급했던 별이는 옆에 누가 잠들어있다는 사실조차 신경 쓸 겨를이 없이 일어나 온하윤의 상황을 살펴보려 했다.“도련님, 일단 여기서 지켜보고 있어요. 내가 얼른 사장님이랑 사모님한테 가서 말하고 올게요.”김명자는 별이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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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9화

“엄마, 저도 갈래요.”별이는 온지유를 쫓아가며 큰 소리로 말했다.소미는 무의식적으로 별이를 붙잡으려 했으나 너무도 빨리 달려가는 별이에 공기만 잡았다.현관까지 걸어온 온지유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말했다.“별아, 엄마랑 아빠는 지금 정말로 정신이 없어서 별이까지 챙겨줄 수가 없어. 그러니까 별이는 집에 있어 줘. 집에는 이모님이 있으니까. 그래야 엄마랑 아빠도 마음 놓고 하윤이랑 병원에 갈 수 있을 것 같아.”비록 별이가 얌전하고 병원에 데리고 간다고 해도 칭얼대지 않으며 온하윤까지 돌봐줄 것이지만 병원엔 사람도 많고 그녀와 여이현은 별이에게 신경 써줄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가 만약 유괴범이라도 섞여 들어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만약의 상황을 위해 아이를 집에 두고 나가는 것이 나았다.“네. 그럼 엄마, 하윤이가 나아지면 바로 별이한테도 말해줘야 해요.”별이는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곤 걸음을 멈추었다. 집을 나서는 온지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속으로는 온하윤이 얼른 나아 건강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오빠.”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소미는 인형을 들고 다가왔다.“우리 같이 소꿉놀이하자. 나는 얘 언니 할게, 오빠는 오빠 해.”“미안해, 소미야. 난 지금 소꿉놀이할 기분이 아니야.”별이는 고개를 저었다.지금 아픈 사람은 인형이 아니라 별이의 친동생이었다.그러니 소미와 함께 소꿉놀이할 마음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소미는 입술을 틀어 물며 손을 뻗어 별이의 팔을 잡고는 작게 물었다.“오빠, 오빠는 하윤이가 아주 아주 좋아?”“당연하지. 난 하윤이가 너무너무 좋아. 나한테 하윤이는 우리 엄마랑 아빠 다음으로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라고.”별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별이가 동생을 잘 돌보게 된 것은 여이현과 온지유가 바쁜 이유도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정말로 동생을 좋아했기 때문이다.소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떨구었다....한편 병원.온하윤이 너무도 어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응급실로 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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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0화

“둘 다 아니에요. 최근에 구한 베이비 시터 이모님이 대신 돌봐주고 있었어요.”이렇게 말하니 온지유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의사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그다음으로 의사는 들고 있던 검사 결과를 그녀에게 건넸다.“하윤이는 중독으로 고열에 시달리고 있는 거예요. 다행히 제때 병원으로 데려와 치료할 수 있게 된 거고요. 만약 한 시간이라도 더 늦게 찾아왔다면 아마 정말로 다시는 못 보게 될 수도 있었을 거예요.”그 순간 온지유는 자신이 잘못 듣기를 바랐다.옆에 있던 여이현이 대신 검사 결과를 받았다. 하얀 종이엔 까만 글씨로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 온하윤의 혈액에서 대량의 독 성분이 검출되었다고 말이다.“전에 우리 병원에서 베이비 시터가 아기한테 약을 먹이고 찾아온 사례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 이모님은 수면제를 먹인 거죠. 아기가 자꾸 우니까 수면제를 먹여서 온 하루 자게 만든 거예요. 그런데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요. 아기한테 독을 먹이다니. 이건 두 분 아기의 목숨을 앗아가려고 계획한 거나 마찬가지예요.”의사는 너무도 황당했다.이렇게나 어린 아기를 죽여서 무슨 이득을 손에 넣을 수 있단 말인가.물론 다른 가능성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복수.“선생님, 얼른 제 딸 좀 치료해 주세요. 전 어떻게 된 일인지 가서 알아봐야겠어요.”온지유는 여이현을 보았다.두 사람은 함께 보낸 시간이 아주 길었기에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넌 하윤이 곁에 있어 줘. 내가 가서 알아보고 올게.”여이현은 그렇게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온지유는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작고 작은 몸에 가득 연결된 주삿바늘을 보며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그녀에게 대신 아파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정말이지 지금 당장 목숨이라도 바꿔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는 누군가 이 독을 어린 딸에게 아닌 자신에게 먹인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자신이 고통을 받는 건 얼마든지 괜찮았지만 어린 딸이 고통을 받으며 병원에 눈을 감고 누워있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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