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의 모든 챕터: 챕터 21 - 챕터 30

660 챕터

제21화 둘이서 함께한 연주

송재이는 주위 사람들을 쭉 훑어보다가 결국 주현아에게 시선이 멈췄다.그녀는 입가에 번진 미소를 미처 수습하지 못했다.어쩌면 오늘은 주현아가 오서희에게 뭐라고 꼬드겨서 오서희가 친히 송재이를 초대한 듯싶다. 뭇사람들 앞에서 따끔하게 혼낼 예정이지!송재이가 연주를 거절하면 오서희도 절대 그녀를 놓아줄 리가 없다.문예슬과 설도영이 송재이를 위해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자마자 오서희의 싸늘한 눈빛에 식겁하여 뒤로 물러섰다.문예슬은 난감한 표정으로 송재이를 쳐다봤고 설도영도 입 모양으로 그녀에게 못 도와주겠다며 말하고 있었다.송재이는 시선을 거두고 오서희와 팽팽한 신경전을 펼쳤다.분위기가 살얼음판에 도달했고 송재이는 더는 설영준이 나서서 도와주길 바라지도 않았다.하지만 기대가 없음에도 상처받은 심장은 너덜너덜해져서 한없이 가라앉았다.“송 선생님만 연주하면 뭐가 재밌겠어요?”이때 문득 감미로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고개를 돌려 보니 인파들 속에서 박윤찬이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그는 송재이의 옆에 서서 큰 키로 그녀의 시선을 거의 다 가렸다. 송재이는 앞이 안 보여 어떤 남자가 지금 미간을 구기고 있다는 것도 전혀 알지 못했다.박윤찬은 그녀를 향해 머리를 끄덕인 후 오서희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실례가 안 된다면 저랑 재이 씨가 함께 연주해도 될까요?”흥을 돋우려면 한 사람보단 당연히 둘이 더 떠들썩한 법이다.오서희는 입을 벌렸지만 딱히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박윤찬이 이미 몸을 돌려 송재이를 향해 눈썹을 들썩거리며 눈빛으로 그녀의 뜻을 물었다.그가 지금 자신을 도와주고 있다는 걸 송재이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오늘 만약 오서희의 체면을 짓밟았다면 송재이는 앞으로 더는 경주에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다.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것도 나름 좋은 방법이다.그녀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뭇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그녀는 박윤찬과 나란히 피아노 앞으로 다가갔다.“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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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그녀를 창녀 취급하다니?

송재이는 하려던 말을 멈추고 기회를 봐가며 그에게 목걸이를 돌려준 후 자리를 떠나려 했다.이때 설영준이 전화를 받았는데 업무상의 내용인 듯싶었다.그는 차분하게 통화를 마치고 컵을 탁자 위에 올려놓은 후 맞은편에 있는 설동훈에게 말했다.“저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요.”말을 마친 후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송재이는 이때다 싶어 재빨리 따라갔다.잠시 후 설영준이 손을 닦으며 화장실에서 나왔다.송재이는 복도에 서서 머리를 숙인 채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그녀도 인기척 소리에 고개 들어 설영준을 쳐다봤다.설영준의 눈빛은 한없이 차분했다. 둘은 눈을 마주쳤지만 그는 어떠한 흔들림도 없이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곧게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송재이가 황급히 쫓아갔다.“영준 씨, 나 줄 거 있어.”설영준은 지금 새 여친이 생겨서 송재이에게 시큰둥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그녀는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설영준이 단번에 허락했다.“발코니로 따라와.”“뭐?”송재이가 넋 놓고 있자 설영준이 고개 돌려 거만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줄 거 있다면서!”말을 마친 후 복도 끝의 발코니로 걸어갔다.송재이는 눈을 깜빡이다가 얼른 그를 따라갔다.밤바람이 조금은 차갑게 몸에 스며들었다.가을이 되니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했다.송재이는 얇게 입었던지라 무심코 제 몸을 감싸 안았다.설영준은 난간 앞에 서서 몸을 돌리더니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왠지 모르게 그의 눈빛에는 항상 그녀가 이해하지 못할 어떠한 감정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한편 송재이는 이런 걸 고민할 여지 없이 가방에서 목걸이를 꺼내 그에게 돌려줬다.“전에 택배로 보내준 거 돌려줄게.”“왜? 마음에 안 들어?”설영준은 힐긋 쳐다볼 뿐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돌려받을 기미가 없었다.송재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너무 비싸. 이런 걸 받을 이유가 없어...”“왜 없어?”그의 물음에 송재이는 가슴이 움찔거렸다. 곧이어 설영준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너랑 3년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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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이번 생은 헛된 망상 안 품어

“송 선생님이 선물을 대신 전해주라고 해서요.”설영준이 불쑥 말을 꺼내며 방금 송재이가 건넨 보석함을 오서희에게 전했다.“자, 받으세요.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대요 송 선생님이.”오서희와 송재이 모두 흠칫 놀랐다.오서희는 방금 다른 손님들과 얘기를 나눌 때 일부러 흘리듯 투덜댔었다.송재이처럼 하찮은 집안의 여자들은 역시 룰을 잘 모른다고, 빈손으로 초대에 응하는 게 무슨 경우냐고 잔뜩 불만을 토로했는데 이게 대체 무슨 경우지?진짜 가난해서 아무것도 살 능력이 안 돼 공짜로 한 끼 얻어먹으려고 온 줄 알았더니 인제 와서 선물을 덥석 건넬 줄이야!설영준이 산 목걸이로 지금 송재이에게 체면을 한껏 살려주고 있다.그녀는 괴롭고 난처할 따름이었다.설영준이 대체 왜 이렇게 나오는 걸까? 그녀는 이 남자를 힐긋 쳐다봤다.방금 사모님이 그토록 난감하게 굴 땐 선뜻 나서지도 않더니 지금 왜 도와주고 있지?변덕스러운 이 남자의 마음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송재이는 별수 없이 일단 입을 다물고 묵묵히 있었다.재벌가 사모님들은 발코니 입구에 서서 오서희가 의아한 표정으로 보석함을 여는 걸 지켜보았다.눈썰미가 좋은 누군가는 이 목걸이가 가격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그리고 또 더 눈치 빠른 누군가가 거침없이 쏘아붙였다.“어머? 이상하네. 이 목걸이는 오늘 영준이가 선물한 것과 똑같잖아요. 그 세트랑 정말 똑같아요!”송재이는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방금 말을 꺼낸 사람은 평소에 오서희와 친하게 지내는 서보경 사모님이다.다들 함께 어울려서 화투도 종종 치곤 한다.겉보기엔 친한 것 같아도 실은 암묵적으로 서로 헐뜯으며 복잡한 질투의 심리가 얽혀 있다.서보경은 금세 수상한 낌새를 느끼고 가까이 다가오더니 더 오버하며 외쳤다.“어머나, 세상에. 내가 뭐랬어요! 이거 완전 똑같은 거잖아요!”그녀는 웃으며 송재이와 설영준을 번갈아 보았다.“우리 영준이랑 도영의 피아노 선생님 안목이 이렇게나 똑같을 줄이야. 무슨 목걸이도 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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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담배가 늘었어

설영준이 음침한 눈빛으로 얼굴을 들었다.송재이는 이미 인파를 가르고 자리를 떠났다.설씨 일가의 대문을 나선 후에야 눈물을 쓱 닦았다.방금 머리가 백지장이 되어 그런 말을 내뱉었다.조금 충동적이긴 하지만 단언컨대 그녀의 진심이다.너무 급하게 뛰쳐나오느라 밤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그제야 외투를 놓고 나온 게 생각났다.다만 지금 이 상황에 다시 돌아가서 외투를 챙길 수도 없었다.그녀는 저 자신을 꼭 감싸 안으며 시린 마음을 추슬렀다.이때 갑자기 어깨에 외투가 하나 걸쳐졌는데 고개 들어 보니 박윤찬이 옆에 와 있었다.“재이 씨, 택시 잡아드릴까요?”오늘 밤에 박윤찬은 그녀를 두 번이나 도와줬다.송재이는 너무 감격스러웠다.방금 대문 앞에 서서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 바람에 아직도 얼굴에 눈물 자국이 마르지 않은 상태였다.이를 본 박윤찬이 옷 주머니에서 티슈를 꺼내더니 그녀에게 건넸다.“고마워요.”송재이가 티슈를 받고 이제 막 머리를 돌렸는데 가까운 곳에서 익숙한 남자의 실루엣을 발견했다.그는 바로 지민건이었다!대문 앞의 가로등 불빛이 환하게 비치자 그 남자의 초췌한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덥수룩한 수염과 초라한 몰골, 바람에 흩날리는 부스스한 머리카락은 왠지 더 안쓰러워 보였다.“지민건?”송재이가 물었고 박윤찬은 그녀의 시선 따라 머리를 돌렸다.“지민건 씨가 대표님을 일주일이나 찾아다녔는데 종일 안 만나주셨거든요. 여기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네요.”“지민건이 왜요?”설영준이 전에 그의 프로적트를 하나 취소한 건 송재이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고작 프로젝트 하나 손해 봤다고 이 지경으로 몰락한다는 말인가?“요즘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나 맡았는데 상대측에서 지민건 씨를 고소했대요. 원래 계약하기로 한 건축회사도 설한 그룹 계열사였다고 하네요. 우연인지는 몰라도 지민건 씨는 지금 두 번이나 피해를 보았는데 두 번 다 대표님과 연관이 있지 뭐에요.”현재 그 건축회사에서 지민건에게 법원 소환장을 보낸 상태이다. 상대가 고소를 취하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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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내가 창녀? 그럼 넌 뭔데?

설영준은 지민건과 통화를 마친 후 유유자적하게 몸을 돌렸다.이때 가까운 곳에 서 있던 주현아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방금 송재이도 울었었다.그가 ‘술집 아가씨’라고 욕할 때 눈물을 훔쳤었다.그런 말은 어떤 여자든 굴욕으로밖에 받아들일 수가 없다.심지어 송재이는 창녀가 아닌데...서러움과 괴로운 감정이 점점 더 북받쳤겠지.설영준은 뒤에 있는 난간을 잡고 차가운 시선으로 주현아를 쳐다봤다.“무슨 일이야?”주현아는 마치 서러움을 당한 초등학생처럼 한 마디 관심해주니 감정이 격해졌다.꾹 참았던 눈물이 한순간 울컥 쏟아지고 슬픔에 빠져버렸다.그녀는 설영준의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영준 씨, 나 약혼반지 잃어버렸어.”설영준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3초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어쩌다가?”“그게 그러니까... 화장실 갈 때 반지 빼서 세면대 옆에 놓아두고 안에서 볼일 보고 다시 나왔더니 반지가 사라졌어...”주현아는 진심으로 속상했다. 그 반지는 설영준이 선물한 반지였으니까.이제 곧 약혼식도 치러야 하고 약혼식 때 그 반지를 껴야 하는데 지금 잃어버리면 어떡하라는 거지?주현아는 미신을 믿는 사람이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 심장이 마구 쿵쾅댔다!왠지 자꾸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설영준은 아무 말이 없었고 주현아는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살짝 격앙된 듯 그의 넥타이를 잡아당겼다.“영준 씨가 찾아봐 줘. 손님들 아직 다 안 갔으니 CCTV 돌려봐 봐. 분명 누군가 훔쳐 갔을 거야! 흑흑...”설영준은 결국 그녀의 뜻대로 집사를 불러와 반지를 보았는지 물었다.집안에서 물건이 없어졌다는 말을 듣자 집사들은 전부 자신이 의심을 당할까 봐 그에게 반지를 본 적이 없다고 해명하기 바빴다.집안의 모든 CCTV도 점검했는데 거실이며 복도 전부 정상 작동이었다.유독 1층 복도의 화장실과 가까운 곳에 달린 CCTV가 공교롭게도 고장이 나버렸다!주현아는 카메라를 돌려보면 누가 반지를 가져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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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체면을 전혀 신경 쓰지 않다

그날 지민건과의 짧은 만남이 마지막일 거라고 송재이는 생각했다.하지만 며칠 뒤의 한 오후.지민건은 사람들로 가득한 연습실에 나타났다.송재이는 피아노 앞에 앉아 음정을 고르고 있었다.그때 서유리가 송재이의 귓가에 속삭였다.“재이 씨, 어떤 남자가 재이 씨 찾는데.”송재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민건이 보였다.그는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갑자기 털썩 무릎을 꿇었다.이를 본 오케스트라 단장도 화들짝 놀라 얼른 그쪽으로 뛰어갔다.“재이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송재이도 영문을 몰랐다.그녀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당황해하며 지민건을 일으켜 세웠다.“뭐 하는 거야? 얼른 일어나, 일어나서 얘기해.”“재이야, 내가 인터넷에 네 사진 올리고 그런 음란한 유언비어를 퍼트린 건 네가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아서 일부러 복수하려고 그런 거야. 네가 유부남한테 꼬리치지 않은 것도 알고, 그날 차에서 찍은 그 애정행각 사진은 다 내가 포토샵 한 거야. 이 일로 인한 명예 훼손은 내가 다 배상할게. 내가 잘못했어. 나 바라는 거 없어. 그냥 너에게 용서를 빌 뿐이야.”지민건은 하루 만에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정말 중간이라는 게 없이 여전히 극단적이었다.그는 송재이가 휘말렸던 유언비어를 전부 씻어주고 그 구정물을 자기가 다 뒤집어쓰고 있었다.지민건은 생김새로 보면 점잖고 얌전한 스타일이었다.만약 지민건이 뒤에 그런 비열한 짓을 하지 않았다면 송재이도 그를 인간쓰레기와 전혀 연관 짓지 못했을 것이다.남자가 돼서 자존심도 없이 이렇게 그녀 앞에 꿇어 있다. 통곡하며 애원하는 지민건을 보며 송재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하지만 그가 이렇게 울며 애원하자 뒤에서 송재이를 왈가왈부했던 사람들은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하여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지민건이 이렇게 서럽게 우는 걸로 봐서는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설마 정말 송재이를 오해한 걸까?연지수는 앞으로 팔짱을 낀 채 이 난리판을 구경하고 있었다.그녀는 오히려 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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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남성 호르몬의 폭풍 분비

이튿날.송재이는 씩씩거리며 설영준의 회사로 향했다.그가 일하는 회사에 온 건 처음이었다.예전에는 별장을 지키면서 그가 오면 언제든 만족해 주어야 하는 그런 여자에 불과했다.비서 여진은 노크하고 대표이사 사무실로 들어갔다.테이블 뒤에 앉아 있는 설영준에게 송재이라는 여자가 찾아왔다고 보고했다.사실 여진도 심장이 벌렁거렸다.사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설영준은 무시하기 일쑤였다.하지만 송재이는 당당했고 고작 몇 마디로 여진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여진은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하고는 설영준에게 보고하러 들어갔다.머리를 숙이고 뭔가를 쓰고 있던 설영준은 바로 들여보내라고 했다.펜슬이 종이에 스치는 소리와 함께 설영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들여보내세요.”뭔가 일찍부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전혀 놀라지 않았다.“영준 씨.”송재이가 안으로 들어왔을 때 설영준은 이미 소파에 앉아서 손에 든 서류를 보고 있었다.사실 송재이는 오늘 설영준에게 따지러 온 것이다.“지민건이 어제 우리 오케스트라로 찾아와서 울며불며 무릎까지 꿇었는데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 영준 씨가 보냈어?”“꿇어 마땅한 거 아닌가?”설영준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송재이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말을 이어갔다.“내 화풀이를 위해서다?”설영준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송재이를 힐끔 쳐다보더니 테이블에 놓은 담배를 하나 꺼냈다.송재이는 원래도 기분이 좋지 않은데 설영준이 담배를 피우려 하자 임신한 게 떠올라 바로 언성을 높였다.“담배 피우지 마!”설영준이 멈칫했다.그는 종래로 그녀 앞에서 담배 피우는 걸로 눈치를 본 적이 없었다.전에는 그녀도 별로 불만이 없었고 이렇게 큰소리로 그와 얘기한 건 처음이었다.설영준은 코웃음을 치더니 눈을 찌푸렸다.눈빛이 점점 어두워지며 날카로워졌다.송재이는 갑자기 얼음물 샤워라도 한 듯 순간 모든 광기가 사그라들었다.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아까보다는 기세가 많이 누그러들었다.“지민건이 나더러 영준 씨 찾아와서 고소 철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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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아이가 다칠까, 잃을까 무서운 그녀

그날 설씨 가문 저택의 발코니에서 설영준은 송재이를 ‘창녀’라고 했다.송재이는 이를 잊을 수 없었다. 이는 그녀에 대한 지독한 모욕이었다.매번 떠올릴 때마다 화가 나면서도 그런 자신이 너무 불쌍했다.설영준은 멈칫하더니 이내 송재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송재이는 설영준이 무엇을 하려는지 대략 알아챘다. 하지만 여기는 사무실이었다.“미쳤어? 우린 이미 헤어졌고, 영준 씨는 지금 약혼녀까지 있는 사람이야…”“그렇다고 너를 가지지 못하는 건 아니지.”설영준은 마치 귀가 먹은 것처럼 송재이를 안고 책상으로 향하더니 위에 놓여 있던 파일을 전부 바닥으로 쓸어내렸다.서류들이 이리저리 발 디딜 틈이 없이 바닥에 흩뿌려졌다.송재이의 마음도 그 종이처럼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았다.‘도대체 어떤 사람을 좋아한 거야 나는?’원칙과 기준이 없는 사람이었다. 약혼녀가 있으면서도 아무 부담 없이 그녀에게 이런 짓을 저지르려고 하고 있다.설영준은 송재이의 몸을 확 번졌다. 그 바람에 송재이의 아랫배가 책상 모서리에 부딪혔다.죽는 한이 있어도 협조하기 싫었지만 아랫배에서 전해지는 고통에 온몸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남자가 여자를 가지려고 마음만 먹으면 여자의 체력으로는 절대 상대할 수 없었다.  오늘은 피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송재이의 뇌리를 스쳤다.이를 악문 송재이는 설영준이 그녀가 입은 치마의 벨트를 풀려 할 때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설영준이 고개를 들어보니 송재이의 얼굴은 어느새 눈물범벅이었다.  송재이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영준 씨 짐승이에요?”그를 이렇게 속된 말로 욕한 건 그녀가 처음이었다.하지만 설영준은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전에 그도 그녀에게 상처 되는 말을 했으니 이걸로 퉁치면 된다고 생각했다.송재이는 이렇게 욕하면서도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고집스럽게 반항했다.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지금 매우 가까웠다.옅지만 익숙한 향기가 그의 코끝을 자극했다.청아하면서도 매혹적인 게 송재이 그 자체였다.순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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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나와 사랑을 나눈 게 수치스러워?

설영준이 미간을 찌푸렸다.몸의 쾌감 덕분인지 그의 인내심은 평소보다 더 좋았다.그는 차분하게 그녀를 쳐다보며 설명했다.“저번에 도영이가 때려눕힌 그 학생 병원비 대준 거 돌려주는 거야.”송재이는 입을 뻐끔거리더니 어딘가 궁색해 보였다.그녀는 상황이 어쩌다 또 이렇게 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렇게 그녀는 또 일방적으로 당했다.혹시나 반항했다가 그를 자극하기라도 하면 애가 다칠까 봐 걱정되어서였다.하지만 사랑을 나누는 과정에서 그녀는 설영준의 품이 좋았고 그 품이 그립고 애틋한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송재이는 고개를 숙이고 용모를 단정히 했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간질거렸다.그녀는 옆에 놓인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가다가 걸음을 멈췄다.“설영준 대표님, 나는 이런 원칙이 없는 행위가 수치스러워. 이게 마지막이길 바라. 아니면 마음의 부담이 클 것 같아.”송재이가 이렇게 말했다.“나랑 사랑을 나누는 게 수치스러워?”설영준은 담배가 당기기 시작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아까 얻었던 쾌감은 금세 짜증으로 바뀌었다.“이렇게 몰래 사랑을 나누는 게 수치스럽지 않다고?”송재이가 고른 단어는 하나같이 날카로웠다. 하지만 다 자기가 자초한 일이라 생각했다.이 말을 뒤로 송재이는 밖으로 나갔다.그녀가 신은 하이힐이 바닥과 부딪히며 또각또각하는 소리가 났다.그리고 그 소리는 설영준의 귓가에서 점점 멀어졌다.그녀가 떠나고 나서도 공기 속엔 아직 그녀의 향기가 맴도는 것 같았다.설영준은 의자를 돌려 바깥을 내다봤다.그렇게 혼자 사무실에 앉아 그 누구도 찾아오지 말기를 바랐다.…지민건이 공정 회사에 고소당한 일은 금세 그 판에서 소문났다.합의서를 손에 넣지 못한 지민건은 180억을 배상해야 했다.이 돈은 설영준과 같은 사람에겐 별문제 아니었지만 지민건과 같은 작은 사장에겐 생존이 걸린 큰 문제였다.한바탕 치르고 나니 지민건의 회사는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오랫동안 공들여 세운 회사가 이렇게 쉽게 무너진 것이다.지민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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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사람 좀 조사해 줘요 이름은 송재이

하지만 한 주간 미행해도 송재이의 하루 일과는 심플하기 그지없었다.오케스트라에 가지 않으면 가정교사로 일하는 집으로 가서 수업하는 게 전부였다.가끔 유은정, 문예슬과 나가서 밥 먹고 쇼핑하고 여자들끼리 모임을 가지는 것 외에 이상하다고 느낄만한 점이 없었다.문예슬은 귀국하자마자 집에서 운영하는 회사로 들어가 간단한 업무를 받아 진행하고 있다.위로 오빠가 2명 있는데 아버지가 남아 선호 사상이다 보니 말로는 문예슬에게 회사 업무를 배우라고 하지만 사실 업무적으로 그녀에게 바라는 게 별로 없었고 맨날 남자 친구를 찾을 것을 요구했다.문씨 집안 내외의 눈에 여자는 얼른 좋은 남자를 찾아 시집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문예슬도 찾고 싶긴 했지만 마땅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부모님은 늘 돈을 중히 여기다 보니 소개해 준 사람을 보면 돈은 많았지만 어디 내놓지 못할 그런 외모가 대부분이었다.설씨 집안 내외의 결혼기념일 파티에 다녀온 뒤로 문예슬은 설영준에게 첫눈에 반해 버렸다.당연히 전에도 설영준이라는 사람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문씨 집안의 지위는 최근 몇 년이 되어서야 경주시에서 점점 떠올랐다.이렇게 가까이서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정말 놀라웠다.마침 유은정이 문예슬에게 물었다.“그럼 넌 어떤 남자를 찾고 싶은데?”문예슬의 눈동자가 대뜸 반짝반짝 빛났다.“설영준 씨 같은 사람이면 바로 결혼하지.”옆에 앉은 송재이는 이 말에 하마터면 손에 든 젓가락이 파르르 떨렸다.하지만 문예슬은 이내 한숨을 내쉬며 아쉽다는 듯 한탄했다.“나도 그냥 그 얼굴에 빠진 거지. 설준영 씨는 약혼녀가 있잖아. 주현아 씨는 참 팔자도 좋아.”송재이와 설영준이 한동안 만났다는 사실은 유은정만 알고 있었다.유은정은 몰래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고 있는 송재이를 힐끔 쳐다봤다. 송재이의 태연한 표정을 확인하고 나서야 이제 다 내려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박경은 매일 지민건에게 송재이의 행적을 보고했지만 다 보잘것없는 일상이었고 지민건도 이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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