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의 모든 챕터: 챕터 401 - 챕터 410

920 챕터

제401화

뚜뚜.핸드폰이 두 번 울렸다.정안이 울적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꺼내 열어보니 지우가 보낸 계좌이체였다.지우가 매달 정기적으로 돈을 갚는 것을 보고 또 마음이 아팠다.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지우가 여전히 열심히 사는 걸 보면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서다인의 신분이 없었다면 그녀는 평생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사는 친구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평범한 학력, 평범한 일자리, 내세울 만한 가정 배경도 없고 부모의 도움도 없이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두 손에 운명이 달린 사람.아버지가 암에 걸려 전 재산을 털어 병을 치료하는 바람에 집안은 가난해지고 정안에게 수천만 원의 빚을 졌다.이 돈은 정안에게 언급할 가치도 없이 적은 돈이라 갚을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지우는 기어코 갚겠다고 고집했다.그건 그녀의 자존심이고, 신용이고, 진심이라 생각했다.정안은 열심히 사는 이 친구를 생각하니 마음이 좀 불편해져서 휴대폰을 들고 그녀의 번호를 눌렀다.연결음이 몇 번 울리더니 지우가 목소리를 낮추어 전화를 받았다.“완자야, 왜?”정안이 웃으며 말했다.“돈 받았어. 이렇게 급하게 갚지 않아도 돼. 너 여유로워지면 갚아.”“설마 돈이 적다고 무시하는 거임?”“그런 뜻 아니란 거 알잖아.”“알아. 넌 내가 안 갚길 원하잖아. 하지만 난 네가 자선 화가 지완이라서, M국 갑부의 손녀라서 너랑 친구가 된 게 아니야. 내 맘 알아?”“알겠어.”“나 지금 알바 중. 먼저 끊는다.”정안이 급히 물었다.“어디서 알바해?”“오늘 휴식이라 강변에서 노점상으로 수공예품 팔아.”정안이 생각하더니 말했다.“주소 좀 줘봐. 나도 노점상에서 수공예품 파는 거 체험해보고 싶어.”“그래. 주소 줄게.”지우는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고 정안에게 주소를 보냈다.정안은 집으로 돌아가 가방과 휴대폰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그녀는 콜택시에 앉아 창문을 열고 두 손을 창가에 얹고 턱을 팔에 얹은 채 조용히 길가의 풍경을 바라보았다.길가의 건물이 한 프레임씩 스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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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2화

남하준은 2초간 침묵하더니 정안이 그의 교통사고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지 않고긴장해 하며 물었다.“너 외출했어?”정안이 덤덤하게 대답했다.“네. 지우 만나러 가다가 마침 봤어요.”“경호원은 데리고 나왔어? 지윤 씨도 같이 나왔고?”그의 말투가 점점 진지해졌다.“아니요. 저 혼자요.”남하준이 다급하게 물었다.“주소 줘. 사람 보낼게.”정안은 다시 침묵했다. 남하준은 그녀의 물음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남하준의 교통사고를 걱정하고 있는데 그는 교통사고에 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그녀의 안위만 걱정하고 있었다.“괜찮아요. 잠깐 친구 만나러 가는 거예요.”정안은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를 속일 수밖에 없었다. “이따가 지윤이도 올 거예요.”남하준은 엄숙하지만 아주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앞으로 외출하려면 꼭 나한테 말해. 절대 혼자 나가지 말고 경호원과 같이 나가고. 알겠어?”정안은 잘못해서 혼나는 아이처럼 중얼거렸다.“알겠어요. 그럼 오빠는요?”남하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그제야 자기 일을 말했다.“방금 추돌사고가 있었는데 별일 아니야.”“안 다쳤죠?”정안이 걱정스레 물었다.“안 다쳤어.”정안은 방금 유미와 그가 손을 잡는 모습이 생각나 왠지 질투심이 생겨 묻고 싶었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잠시 우물쭈물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때 옆에서 유미의 장난기 가득한 말투가 들려왔다.“젼형적인 어장관리네. 너 이렇게 걱정하면서 언제 너 낚아 올린대?”그 말을 들은 정안은 가슴 전체가 마비되는 것 같았다.그녀가 언제 남하준을 어장 안의 물고기로 여겼다고.유미는 또 두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었다.정안은 심호흡을 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오빠, 옆에서 파리처럼 앵앵거리는 사람 유미 씨에요?”남하준은 의문스러워서 하며 물었다.“들렸어?”정안은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물었다.“내가 듣는 거 싫어요?”“그 말이 아니야.”정안은 마음이 더욱 무거워져 짜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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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화

정안은 화가 나서 온몸이 쑤셨다. 남하준 같은 대쪽 같은 남자 옆에 여우 같은 여자가 있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형제 같은 감정이라니?유미는 분명 남하준에게 딴마음을 품고 있는데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단 말인가?전화를 끊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하준의 전화가 걸려왔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고 끊어버렸다.그의 전화가 다시 걸려오자 정안은 문자 한 통을 보냈다.“배터리 없어요.”그러고 나서 그녀는 전원을 껐다.차량이 강변에 도착하자 넓은 도로에 아름다운 상품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고 강변에는 많은 관광객이 왕래하고 있었다.정안은 계속 위로 올라가서 인파를 뚫고 걸어가다 보니 끝에 있는 지우가 보였다.지우의 작은 노점상에는 다양한 상품들이 놓여 있었는데 종류가 많고 가격이 저렴했다.모두 매우 평범한 공예품, 작은 장식품과 머리 장신구 등등이었다.“완자!”지우는 정안을 보자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고 신이 나서 낮은 의자에서 일어나 정안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정안도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 그녀의 앞에 진열된 상품을 내려다보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쓰렸다.이거 다 팔아도 20만 원도 안 될 것 같았다.지우는 정안을 끌어당겨 유일한 낮은 의자에 그녀를 앉히고 자신은 쪼그리고 앉아 정안을 보며 낙관적으로 말했다.“오늘 사람 많아서 아까 엄청 바빴잖아. 그래서 너랑 길게 얘기 못 했어.”“아주 바빠?”정안이 안쓰러워하며 다정하게 물었다.“바쁠 때도 있고. 손님이 몰리면 잠깐 바쁘다가 또 없으면 그냥 앉아있지 뭐.”정안은 지우의 손을 잡더니 물었다.“오늘 얼마 벌었는데?”지우는 감격스러운 눈빛을 하고 흐뭇하게 말했다.“아침 내내 4만 원 벌었어. 만약 저녁까지 기다린다면 10만 원 넘을 수 있을 것 같아!”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마음이 씁쓸했다.지우가 또 말했다.“너 저녁에 집 가지 마. 내가 국수 사줄게.”그때 한 손님이 다가와 유리구슬 팔찌를 집어 들며 물었다.“이거 얼마예요?”지우는 벌떡 일어서서 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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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4화

잠시 후 정안은 봉투 하나와 간이 테이블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지우가 어리둥절해 있는데 정안은 테이블을 펴고 봉투에서 A4 용지 한 묶음, 붓과 먹을 꺼냈다.그녀는 백지에 몇 글자를 써서 노점상에 붙였다.[2만 원 이상 구매 시 수묵화 그림 한 장 증정!]정안이 먹을 갈기 시작하자 지우가 좌우를 살피며 말렸다.“여기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야. 평소 명화 같은 거엔 관심이 없어서 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야.”정안은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지완의 공식 계정에 로그인하여 게시물 하나를 올렸다.[친구를 위해 물건 파는 중. 2만 원 이상 구매 시 그림 무료로 증정.]정안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싱글벙글 웃으며 지우를 보았다.“기다려봐.”지우는 감사한 마음이 컸지만 정안의 곁에 쪼그리고 앉아 조금 불안했다.“네 그림이 얼마나 비싼데 여기 노점상 전체 상품을 합해도 네 그림 가격 천만 분의 일도 안 돼. 네가 네 몸값 낮춰 가며 나 도와주면 나 엄청 죄책감 느낄 거야.”정안은 A4 용지를 휙휙 저으며 말했다.“나 원래 자선 목적으로 그림 그렸어. 널 돕는 것도 일종의 자선이야. 그리고 이렇게 작은 종이에 그리는 그림은 별로 가치도 없어.”지우는 반신반의했다.정안은 가치가 없다고 했지만 30분 후, 그들의 노점상 앞에 십여 대의 고급차량이 세워졌다.노점상 앞에 줄을 서서 그림을 기다리는 남자들은 모두 양복 차림에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이 거리의 품격과 어울리지 않았다.온 사람들은 수집가이거나 회사 대표들의 비서였다.“여기 있는 상품 전부 살 테니 지완 씨 그림에 서명해 주시기 바랍니다.”이것은 모든 호기로운 손님들의 요구였다.그러면 정안이 예의 바르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서명이나 사진은 안 됩니다.”그녀는 일단 그녀가 서명하거나 그림과 사진을 찍으면 이 그림은 물이 불어나서 몇백만 원 이상의 가격에 팔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렇게 되면 그녀가 지우를 도우려는 원래 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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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5화

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었다. 지우를 도울 수 있어 기분이 좋은 그녀는 유미와 남하준의 걱정거리를 진작 잊고 있었다.지우가 젓가락을 들고 국수를 먹으며 궁금해서 물었다.“기사 보니까 너 그림 한 장이 몇십억 원이라던데, 정말이야?”정안은 엷게 웃더니 젓가락을 놓고 냅킨을 들어 입을 닦았다.“그런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어. 보통은 몇천에서 몇억 정도.”지우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왜 그렇게 값이 나가는 거야?”“예술은 재능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노이즈 마케팅과 셀럽 효과가 더 크지. 나 처음에 온라인에서 그림 그렸거든. 그때 자선 경매를 하는데 아빠가 나 몰래 40억 원으로 내 그림을 샀어. 난 또 그 거금을 산간 지역의 학교에 기부하면서 하루아침에 유명해졌지. 그 후로는 걷잡을 수 없이 값이 치솟았어.”“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네 그림은 몇십 억 원의 가치가 있고 소장 가치가 있다고 여겼고 모두 네 스타일을 연구하고 그림을 모사하기 시작한 거네?”정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지우는 유유히 면을 먹으며 감탄했다.“부자들 세상을 난 모르겠지만 네가 부럽네. 널 그렇게 사랑하는 아빠가 계시잖아.”정안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니 아빠 얘기에 그녀는 쓸쓸한 기색과 슬픈 표정이 역력했다.“지우야, 너희 아버지 요즘 건강은 어떠셔?”“지난달에 돌아가셨어.”지우는 고개를 숙이고 목이 메어 말했다.정안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한동안 어떻게 그녀를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모아둔 돈을 모두 탕진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아 어렵게 수술을 마치고 모두 좋아지고 있다고 느꼈을 때, 갑자기 돌아가셨다.불행은 늘 힘든 사람에게 닥친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불치병 환자의 슬픔이었다.정안은 사과의 뜻으로 지우의 손을 꼭 잡았다. 지우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고개를 저었다.모두 지난 일이었다.정안이 생각하더니 또 물었다.“지우야, 너 전에 정신병원에서 심리상담 자원봉사로 일한 적 있다고 하지 않았어?”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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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6화

정안은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안 돼. 돈은 꼭 줘야 해. 아니면 너 한 시간도 못 버틸 거야.”지우는 경악했다.“그 정도로 심각해?”지우는 돈도 벌고 싶고 존경할만한 마약 경찰을 돕고 싶어 하겠다고 응수했다.정안은 남태준의 업무 특성과 어쩌다 다쳤고, 현재 어떤 상태인지 지우에게 낱낱이 알려줬다.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일 무렵, 정안은 지우의 손을 잡고 국숫집을 나갔다.막 몇 걸음 걸어 나온 두 사람은 입구 큰길의 남자를 보고 걸음이 뚝 멈추었다.검은색 승용차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는데 바로 남하준, 유미 그리고 류청이었다.남하준이 어두운 얼굴로 다가가 따져 물었다.“지윤 씨는? 경호원은? 왜 혼자 다녀?”지우는 남하준이 왜 갑자기 완자에게 화를 내는지 몰라 어리둥절했다.정안이 어둑한 하늘을 보니 아마 연회가 끝난 것 같았다.그녀의 시선이 남하준을 넘어 유미를 향해 흘끗 보더니 마음이 불편해졌다.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나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남하준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고 엄숙한 투로 말했다.“너 때문에 지금 인터넷이 난리인데 어떻게 모를 수 있어?”정안은 침묵했다. 그녀는 남하준이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의 곁에 유미가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지우가 나서려 했다.“사실은...”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미가 남하준 곁으로 다가가더니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완자 씨, 아까 왜 하준이 전화 끊었어요? 전원까지 꺼서 하준이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요? 외국 지도자를 접대하는 중요한 연회에서 하준이 계속 불안해하고 있었다고요. 그 나이 먹고 왜 아직도 철이 없어요?”정안은 어안이 벙벙해서 유미를 보며 말문이 막혔다.유미는 지금 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녀를 설교하고 있을까?그녀가 남하준의 전화를 끊었다고 해도 이건 유미가 나서서 혼낼 일이 아니었다.정안은 자신의 격을 낮춰가며 유미를 비난하고 싶지 않아 남하준을 바라보았다.촉촉한 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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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7화

유미는 미간을 찌푸리고 정안을 흘끗 바라보더니 정의롭고 늠름한 자세로 남하준의 편에 서서 말했다.“부부라니요? 완자 씨가 부부라고 인정한대요? 대체 하준이를 뭐로 생각하는지 몰라요. 아무런 명분도 주지 않으면서 계속 인연도 끊지 않고. 보통 친구도 아니지 않아요?”류청이 급히 앞으로 나가 유미를 뒤로 당기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유미 씨, 그만 하세요.”유미는 류청의 손을 뿌리치고 울분에 차서 말했다.“난 그쪽 도련님 생각해서 말하는 거잖아요? 언제까지 저 여자 손에 놀아 나게 할거예요?”정안은 말없이 남하준을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눈 밑이 촉촉해지고 가슴이 아팠다.그는 정말 유미가 하는 모든 말에 동의하고 있는 걸까?그녀를 정말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으로 생각할까?정안은 실망한 듯 지우의 손을 잡고 돌아섰고 괴로워서 목소리마저 힘이 빠졌다.“지우야, 가자.”지우가 그녀를 따라갔다.“그래.”두 사람이 막 한 걸음 걸었을 때 남하준이 정안의 앞으로 성큼 다가가더니 깊고 어두운 눈동자를 하고 부드러운 말투에는 약간의 근심이 묻어났다.“또 어디 가는데?”정안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숨을 참으며 억울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지만 남자는 알아채지 못하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집에 가자. 친구랑 같이 집에 가서 놀아 밖에서 돌아다니지 말고. 위험해.”지우는 가소롭다는 듯 차갑게 말했다.“나랑 함께 있는데 뭐가 위험해요? M국 치안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데요? 곳곳에 감시 카메라와 순찰 경찰들이 있으니 도련님께서는 걱정할 필요 없어요.”남하준은 지우를 흘끗 쳐다보더니 탄식했다. 지우는 상황을 모르고 있으니 두려움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다만 정안은 자신의 신분이 특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게다가 블랙 섀도우 본부에서 이미 신분을 폭로했으니 언제 어디서든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정안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덤덤하게 말했다.“도련님의 관심은 감사하지만 금원에는 가지 않을 거예요. 그러다 도련님 형제분께서 내가 도련님 마음 갖고 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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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8화

정안은 생각하면 할수록 괴로워 그의 뒤에 있는 유미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저 여자는 아마 지금쯤 고소해 하고 있겠지?’‘나랑 오빠 사이가 틀어지는 걸 보면서 얼마나 속이 시원할까?’정안은 억울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신이 잘못한 것도 알고 이기적으로 행동한 것도 알고 있었지만 남하준이 친구 앞에서 무조건 그녀의 편이 되어주고 감싸주기를 바랐다.이 남자의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편애를 받고 싶었다.정안은 생각할수록 괴로워 이미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지만 덤덤한 척 말했다.“그래요. 나 변덕 심해요. 오빠 나 때문에 다쳤으니까 며칠 돌봐준 것뿐이에요. 이제 몸도 회복했으니 내 책임은 다한 거죠.”“책임?”남하준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두 글자를 중얼거리더니 비참하게 씩 웃었다.“책임이라. 내 상처에 대해 단지 책임을 졌다 이 말이야?”정안은 아랫입술을 깨물고 꾹 참으며 눈을 내리뜨고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분명 그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 말을 듣고 슬퍼할 줄 알면서도 참지 못하고 말을 꺼내고 말았다.남하준이 상처 입었다고 생각하니 또 후회가 몰려왔다.그는 충혈된 눈으로 심호흡을 하면서도 자칫 그녀를 놓칠까 봐 그녀의 팔을 꽉 잡고 있었다.그녀의 앞에서 남하준은 어쩔 수 없이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나 아직 완전히 회복한 거 아니니까 너 책임을 다하지 못한 거야. 몇 시까지 놀고 싶어? 내가 옆에 있어 줄게. 놀고 싶은 만큼 다 놀고 나랑 집에 가.”그 말을 들은 정안은 마음이 완전히 녹아내렸다. 유미에게 속상한 말을 듣고, 또 그가 그녀를 감싸지 않았지만 더 이상 따지고 싶지 않았다.유미는 타협하는 남하준의 말투를 듣더니 열이 차올라 달려들어 따져 물었다.“하준아, 너 왜 이렇게 비굴하게 굴어? 정신 좀 차리라고!”막 마음이 약해진 정안은 유미의 개입에 번뜩 정신을 차리고 유미를 무시한 채 남하준을 마주 보며 또박또박 물었다. “오빠, 우리 사이 일을 외부인이 왈가불가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남하준이 막 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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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9화

그는 지금 유미를 감싸고 있는 걸까?정안은 심지어 이 남자가 자신에 대한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 그저 어린 시절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그녀를 위해 유미에게 그 어떤 상처도 주지 않으려 했다.정안은 심호흡을 하더니 힘껏 남하준의 손을 뿌리쳤다. 화가 나서 온몸이 떨리고 가슴이 괴로워 소리쳤다.“내 몸에 손대지 마!”그녀는 남하준에게서 뒷걸음질 치고 두 손으로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쓱쓱 닦았다. 지금의 자신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비참한 사람 같았다.지우가 보다 못해 걸어가서 정안의 손을 잡았다.“가자.”지우의 팔짱을 끼고 떠나며 계속 눈물을 닦던 정안은 참지 못하고 그를 돌아보았다.그녀의 뒤를 따라온 건 류청이었고 남하준과 유미는 여전히 제자리에서 서 있었다.그녀는 완전히 절망했다.자신의 결정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남하준은 그녀가 Z국의 과학 연구 사업을 포기하고 M국으로 돌아올 가치가 없는 남자였다.정안은 생각할수록 슬펐고 이번에는 뒤돌아보지 않고 지우를 따라 떠났다.가로등 아래에서 정안의 뒷모습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본 남하준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졌고 차가운 얼굴은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졌다.유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의 곁으로 다가와 부드럽게 위로했다.“하준아, 됐어. 저런 여자는 좋아할 가치도 없어.”남하준이 차갑게 또박또박 되물었다.“저런 여자가 어떤 여잔데?”유미는 남하준의 말투가 뼈에 사무칠 정도로 차갑다는 느낌이 들어 침을 삼키더니 태도를 바꿨다.“그만 생각해. 돌아가자.”남하준은 얼음처럼 차가운 눈으로 유미를 바라보며 엄숙하게 말했다.“유미야, 내가 비열했던 건 인정해. 널 빌미로 완자에게 명분을 달라고 강요하고 싶었어.”유미는 경악하더니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너도 잘 알 텐데? 내가 얼마나 완자 사랑하는지?”남하준은 경고하는 투로 또박또박 말했다.“계속 나랑 친구 하고 싶다면 선 잘 지켜. 나랑 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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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0화

인기척이 없는 깊은 밤, 금원의 불빛이 환하게 빛났다.거실에서 남하준은 소파에 앉아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한 손은 눈에, 다른 한 손은 소파 등받이에 걸치고 있었다.그의 양복 외투는 옆으로 벗어졌고, 넥타이는 풀렸고, 흰색 셔츠의 단추는 두 알이 풀렸다.그는 무기력하고 나른한 자세로 미동도 하지 않았고 퇴폐함 속에 약간의 피로가 배어 있었다.그의 주위에는 암울한 적막감이 감돌고 있었다.연회에서 술을 마셨기 때문에 취기가 부쩍 올랐고 마음속의 슬픔은 알코올에 의해 몇 배 증폭되었으며 머릿속은 방금 눈물을 흘리던 정안의 모습들로 가득 찼다.그는 자신이 미쳤다고 느꼈다.왜 정안이 유미의 따가운 질책에도 그에게 명분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보통 친구? 아니면 남자친구? 그는 명분을 얻기 위해 미쳤던 것 같았다.이전의 그는 어떤 여자와도 명분 없는 썸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하지만 상대는 백완자였으니 그는 자신의 룰을 깨고 명분이 없어도 될 것 같았다.그녀가 그의 마음을 갖고 놀든, 썸을 타든, 심지어 잠자리를 갖고 싶다 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그녀만 원한다면.그때 휴대폰 벨이 울렸고 남하준은 천천히 허리를 펴고 손을 뻗어 탁자에서 휴대폰을 가져와 귓가에 연결했다.잠긴 목소리는 아주 낮았고 무기력하게 물었다.“지금 온대?”류청이 말했다.“도련님, 아가씨께서 친구분이랑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고 낯선 남자랑 춤까지 추고 계세요.”남하준은 허리를 굽히더니 머리를 숙여 손으로 이마를 짚고 팔꿈치를 무릎에 괴고 말했다.“놀게 놔둬. 잘 지켜보고. 충분히 다 놀면 데려와.”류청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제가 방금 아가씨 데려가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는데 금원에는 절대 안 간대요. 놀다가 백씨 저택에 갈 거래요.”남하준은 침묵하더니 엄숙하게 말했다.“안 오겠다면 납치해서라도 데려와.”“네, 알겠습니다.”류청은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고 남하준은 휴대전화를 옆으로 휙 던지고 소파 등에 쓰러져 고개를 들고 눈을 감았다.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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