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척이 없는 깊은 밤, 금원의 불빛이 환하게 빛났다.거실에서 남하준은 소파에 앉아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한 손은 눈에, 다른 한 손은 소파 등받이에 걸치고 있었다.그의 양복 외투는 옆으로 벗어졌고, 넥타이는 풀렸고, 흰색 셔츠의 단추는 두 알이 풀렸다.그는 무기력하고 나른한 자세로 미동도 하지 않았고 퇴폐함 속에 약간의 피로가 배어 있었다.그의 주위에는 암울한 적막감이 감돌고 있었다.연회에서 술을 마셨기 때문에 취기가 부쩍 올랐고 마음속의 슬픔은 알코올에 의해 몇 배 증폭되었으며 머릿속은 방금 눈물을 흘리던 정안의 모습들로 가득 찼다.그는 자신이 미쳤다고 느꼈다.왜 정안이 유미의 따가운 질책에도 그에게 명분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보통 친구? 아니면 남자친구? 그는 명분을 얻기 위해 미쳤던 것 같았다.이전의 그는 어떤 여자와도 명분 없는 썸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하지만 상대는 백완자였으니 그는 자신의 룰을 깨고 명분이 없어도 될 것 같았다.그녀가 그의 마음을 갖고 놀든, 썸을 타든, 심지어 잠자리를 갖고 싶다 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그녀만 원한다면.그때 휴대폰 벨이 울렸고 남하준은 천천히 허리를 펴고 손을 뻗어 탁자에서 휴대폰을 가져와 귓가에 연결했다.잠긴 목소리는 아주 낮았고 무기력하게 물었다.“지금 온대?”류청이 말했다.“도련님, 아가씨께서 친구분이랑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고 낯선 남자랑 춤까지 추고 계세요.”남하준은 허리를 굽히더니 머리를 숙여 손으로 이마를 짚고 팔꿈치를 무릎에 괴고 말했다.“놀게 놔둬. 잘 지켜보고. 충분히 다 놀면 데려와.”류청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제가 방금 아가씨 데려가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는데 금원에는 절대 안 간대요. 놀다가 백씨 저택에 갈 거래요.”남하준은 침묵하더니 엄숙하게 말했다.“안 오겠다면 납치해서라도 데려와.”“네, 알겠습니다.”류청은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고 남하준은 휴대전화를 옆으로 휙 던지고 소파 등에 쓰러져 고개를 들고 눈을 감았다.두
정안은 어렴풋이 누가 그녀에게 묻는 소리가 들렸다.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고?그녀는 무겁고 흐릿한 눈망울을 뜨고 살짝 깜빡였는데 시선의 남자는 보일 듯 말 듯하더니 남하준의 서늘하고 잘생긴 얼굴이 보였다.그녀는 씁쓸하게 웃더니 말을 하지 않고 또 눈을 감았다.잠시 후 남자의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너 누구를 좋아하는 거야? 누구를 사랑하는데?”정안은 마음이 욱신욱신하며 더 괴로워져 천천히 내뱉었다.“하준 오빠.”남하준은 넋이 나갔다.지금 그를 부르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의 물음에 답을 한 걸까?더욱 괴로워진 정안이 그의 품에서 몸을 뒤척였다.“하준 오빠.”남하준은 그제야 그녀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응?”“나 토하고 싶어. 힘들어.”정안은 속이 뒤집히는 걸 참느라 무척 괴로웠다.남하준은 급히 그녀를 안고 화장실로 갔고 그녀를 변기 옆에 내려놓았다.화장실에 들어서자 그녀는 급히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변기 뚜껑을 열더니 고개를 숙이고 토했다.남하준은 허둥지둥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주고 휴지를 건네주고 토한 뒤 가글과 수건을 건네줬다.그녀가 입을 헹구며 뱉은 물이 그녀의 옷을 적셨다.토한 그녀는 정신이 조금 맑아지더니 불그스름한 볼과 흐리멍덩한 눈동자로 일어나려 했다.남하준이 그녀를 일으켜 세워 그녀의 뒤에서 그녀를 껴안고 두 손을 잡고 세면대에서 씻게 했다.온몸에 힘이 풀린 정안은 몸의 무게를 전부 남하준의 품에 기댔다. 그녀의 등이 남자의 가슴에 딱 달라붙어 따뜻하고도 편안했다.남자의 큰 손이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문지르며 차가운 수도꼭지 아래에서 씻겨주고 있었다.정안은 반쯤 취해서 중얼거렸다. “오빠, 나 옷이 젖어서 불편해.”남하준은 수건을 잡아당겨 그녀의 손을 닦아주며 부드럽게 말했다.“가서 네 잠옷 가져올게. 혼자 갈아입을 수 있지?”정안이 고개를 끄덕였다.“네.”남하준은 그녀를 변기 위에 앉혀놓고 당부했다.“나 가서 옷 갖고 올 테니까 여기 꼼짝 말고 있어. 함부로
정안은 침대에 누워서 꼼지락거리더니 곤히 잠들기 시작했다.“완아?”남하준은 그녀의 앞머리를 살짝 넘기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그는 눈살을 찌푸리고 금욕적인 목소리가 낮고 매혹적이었다.“완아. 이대로 자면 안 돼. 저녁에 이불 안 덮으면 감기 걸릴 거야.”정안은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좀 시끄러워 짜증스럽게 손으로 귀를 비벼대고는 자세를 바꿔서 옆으로 잤다.남하준은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며 이불을 다시 덮어 주었다.그는 자신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할까 봐 바닥에 이부자리를 깔고 잤다.이 밤, 남하준은 한밤중에 일어나 그녀가 이불을 잘 덮고 자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느라 잠을 설쳤다.밤새도록 그녀를 돌봤다.이튿날 아침.아침 햇살이 밝고 상쾌한 바람이 베란다 밖에서 불어와 커튼을 흔들며 방을 따뜻하게 비췄다.잠에서 깨어난 정안은 어질어질하여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고는 눈을 비볐다.머릿속으로 어제의 일을 회상하고 있었다.어제 남하준과 헤어진 후 기분이 너무 안 좋아서 지우와 술집에 가서 술을 많이 마시고 나서...정안은 눈을 감고 계속 생각했지만 필름이 끊겨 버렸고 흐릿한 화면만 기억났다. 어렴풋이 남하준이 그녀를 안고 있는 것이 보이고 그녀가 토할 때 물과 휴지를 건네주고 목욕도 씻겨준 것 같았다.이에 깜짝 놀란 정안은 눈을 번쩍 뜨고 이불 속으로 두 손을 빠르게 쓸어 넣었다.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신의 몸을 만지자 갑자기 멍해졌다.‘미쳤어. 어제 필름 끊기고 하준 오빠랑 대체 뭐한 거야?’정안은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깊은숨을 내쉬며 긴장한 듯 이불을 들추어 고개를 숙여 몸을 주시했다.“악!”그녀는 여전히 만취 후의 행각을 받아들일 수 없어 이불을 머리까지 덮으며 수줍어했다.‘미쳤어. 나 미쳤어 진짜.’남하준과 잤는데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이건 그녀의 첫 경험인데 어떻게 다 잊을 수 있을까?정안은 속으로 울부짖으며 이불 속에서 주먹으로 침대를 쥐어박았다.그녀는 자신이 기억을 잃은 것에 화가 났을
정안은 공기마저 후끈 달아오른 것 같아 힘껏 숨을 쉬고는 용기를 내어 걸어갔다.발소리가 들리자 남하준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정안은 별다른 인사도 없이 차가운 얼굴로 맞은편 소파에 앉았고 냉랭한 태도를 유지했다. 수줍은 눈빛을 최대한 감추고 뾰로통해서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남하준은 미간을 약간 찡그리고 그녀 얼굴이 불그스름하고 눈가에 수줍음이 가득하고 약간 어수룩하지만 또 약간 화가 난 것을 보았다.그는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먼저 부드럽게 인사를 건넸다.“아직도 머리 아파?”그의 목소리가 너무 낮아 정안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희미하게 아직도 아프냐는 것만 들렸다.정안은 이를 악물고 짐짓 덤덤한 척 그를 노려보며 약간 노기를 띠고 말했다.“정말 너무 하다는 생각 안 해요?”어제저녁 그녀가 서글프게 울던 것이 떠오른 남하준은 노트북을 덮고 죄책감 가득해서 말했다.“미안해. 내가 사과할게.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정안은 안색이 돌변하며 마음이 불편했다.‘앞으로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대체 날 뭐로 보는 거야? 원나이트 상대?’“그게 지금 무슨 말이에요?”정안은 주먹을 불끈 쥔 채 서러운 눈물을 글썽이며 촉촉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움찔 놀란 남하준은 급히 손에 들고 있던 노트북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왜 울어? 내 사과가 성의가 부족했어? 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그녀는 아무것도 바랄 수 없었다. 그녀가 여전히 Z국의 과학자인 이상 그녀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그에게 명확한 명분을 줄 수도 없고 함부로 그와 결혼할 수도 없었다.“나 왜 여기로 데려왔어요?”정안은 애써 참으며 질문했지만 눈 밑에는 서운함이 더 짙어졌다.그가 조용히 대답했다.“네가 내 곁에 있어야 보호하기 쉽잖아.”정안은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이유라 그녀는 말없이 싸늘하게 일어나 돌아섰다.그녀가 막 몇 걸음 걷자 남하준이 쫓아와서 그녀를 홱 잡아당겨 두 팔을 잡았다. 그는 허리를 굽히고
정안은 주먹을 불끈 쥐고 잠시 마음을 다잡더니 물었다.“나랑 유미 중에 한 사람만 선택해요.”남하준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너.”“그럼 어젠 나한테 왜 그랬어요?”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호소했다.“그 여자가 나를 그렇게 구박하는데 도와주지도 않고 오히려 그 여자 말에 동의했잖아요.”“내가 미안해.”“사과 안 받아요.”정안은 차갑게 한마디 던지고 돌아섰다.“완아...”남하준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고 재빨리 쫓아가 그녀의 몸을 덥석 껴안고 그녀가 떠나지 못하게 힘껏 조였다.정안은 몸이 굳어지고 멍해졌고 심장 박동이 더욱 강렬해졌다.남자는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명분을 갖고 싶었어. 그래서 유미를 이용해 널 압박했던 거야.”“네가 슬퍼하는 거 보면서 나도 아무렇지 않았던 건 아니야. 나도 괴로웠다고.”남하준은 눈을 감고 살짝 울먹이며 그녀의 팔에 점점 더 힘을 주었다.“하지만 네 마음속에 내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어. 나 때문에 네가 힘들어하는지도 알고 싶었고.”정안은 몰래 눈물을 훔쳤다.남하준은 가슴이 답답하며 아파지는 것 같아 입술을 살짝 벌리고 호흡했다. 뜨거운 입김이 정안의 목피부에 뿌려져 그녀는 피부가 간지럽고 몸이 나른하고 힘도 빠지는 것 같았다.“내가 전에 말했잖아요. 순조롭게 M국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우리 계속 부부로 지내자고. 그건 명분이 아니고 뭔데요?”남하준은 그녀를 자신의 심장에 비벼 넣을 기세로 힘을 주어 그녀를 꼭 껴안고 눈을 감고 위안을 찾으려 했다.“나 사랑해?”남하준이 자신 없이 계속 물었다.“진심으로 나랑 결혼하고 싶은 거야?”정안은 남자의 힘에 의해 몸이 부서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괴로운 듯 나지막하게 속삭였다.“지금은 아무런 확신도 줄 수 없어요.”“나 기다릴 수 있어.”“그럼...”정안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떨구고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앞으로 진짜 내 몸에 손 안 댈 거예요?”남하준은 얼떨떨해져서 눈을 뜨고
“콜록!”류청의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정안은 남하준의 품에서 한 걸음 물러서며 어색하게 고개를 떨구었고 류청은 눈을 흘기면 못 본 척하며 말했다.“도련님, 지윤 씨께서 아가씨 보러 오셨어요.”정안이 반색하며 몸을 돌렸다.“지윤이요? 어디 있어요?”그때 지윤이 들어오더니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도련님, 안녕하세요. 언니!”정안이 다가가 지윤의 손을 덥석 잡더니 이내 기분이 좋아졌다.“왔어?”지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약간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남하준에게 말했다.“도련님, 언니랑 같이 외출할 일이 있어요.”“류청이 데리고 가요.”남하준은 지윤의 안색이 어두운 것을 보고 걱정하며 말했다.지윤은 정안을 바라보며 눈빛으로 그녀의 의견을 물었고 지윤의 눈빛에서 난처함을 읽은 정안이 남하준에게 말했다.“오빠, 그럴 필요 없어요. 지윤이랑 있으면 별일 없을 거예요.”남하준은 정안의 견고한 눈빛을 바라보며 그녀가 걱정되었지만 그녀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녀에게 늘 가장 많은 존중과 자유를 주는 그였다.“그래, 가봐. 꼭 조심해.”“네.”남하준이 당부하자 정안이 대답했다.“제가 언니 잘 지킬게요.”말을 마치자 정안이 지윤을 데리고 거실을 떠났고 류청이 남하준에게 물었다.“제가 몰래 따라갈까요?”남하준은 몇 초 동안 생각하더니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들고 뚜껑을 열며 말했다.“아니. 개인적인 일이 있겠지.”류청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하준은 늘 그녀를 아끼고 존중해줬는데 이건 그가 본 적 없는 깊은 감정이었다.정안과 지윤은 차에 올라 번화한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정안이 덤덤하게 물었다.“Z국 쪽 일은 어떻게 됐어?”지윤은 표정이 굳어졌다.“잘 안 되고 있어요. 연구소도 동의하지 않고 Z국도 동의할 생각이 없어요. 언니가 빨리 업무에 복귀하도록 타이르라고 했어요.”정안은 긴 한숨을 내쉬며 의자의 등받이에 맥없이 기댔다.“언니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걸 알고 Z국은 이미 언니를 설득할 사람을 보냈어요
정안이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조직에서 백인호를 구해갔어. 아직 모르나 봐?”베스엔나의 얼굴이 침울해지더니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정안을 바라보았다.“조직에서 M국의 유명한 과학자 두 명을 납치해 백인호와 바꾸겠다고 협박했어.”“콕 집어서 백인호를 원한다고 했지만 너에 관해서는 언급도 없었어. 너를 구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이용가치가 없어서 포기한 거지.”엔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믿기지 않아 고함을 질렀다.“헛소리!”“내가 지금 와서 너를 왜 속여?”엔나는 차갑게 웃었고 웃음 속에는 조롱과 서글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그녀는 웃다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애초에 백인호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어. 널 죽였다면 내가 이 지경까지 이르지 않았다고.”정안이 물었다.“넌 내 자리를 대신하고 싶어 했지. 남하준이 다시 나를 좋아하게 됐다는 걸 알았을 때 네가 몇 번이나 사람을 보내 날 죽이려 했는지 잊었어?”엔나는 냉소를 짓더니 눈물을 흘리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네 목숨이 그렇게 질길 줄은 몰랐지. 넌 매번 교묘하게 위험에서 벗어났어. 널 죽이진 못하고 오히려 기억까지 회복하게 했으니, 신이 날 버린 거지.”정안은 이제야 모두 그녀가 한 짓이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결과를 고려하지 않는 그녀의 이런 무모한 행동은 자신의 정체를 쉽게 드러낼 수 있었고 그래서 조직이 그녀를 포기한 거였다.“그럼 내 부모님은 어디 있어?”정안은 여전히 백인호의 말을 믿지 않았고 마음속에 일말의 희망을 품고 부모님의 행방을 계속 추적했다.엔나는 갑자기 어리둥절해져서 복잡한 눈빛으로 정안을 바라보았다.정안이 다급해서 계속 물었다.“내 부모님 어디 있어? 대체 어디 숨겼냐고!”엔나는 냉소를 짓더니 수화기에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나 여기서 구해준다면 네 부모님 행방을 알려줄게.”무너진 희망이 되살아난 정안은 흥분에 가득 찼다.“안 죽고 살아계시지? 맞지?”“그래, 안 죽었어.”엔나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네 아버지는 M국 갑부의 아들이
지윤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그래도 다행이에요. 아저씨 아주머니가 살아계신단 것만으로도 좋은 소식이잖아요.”정안도 그렇게 여겼지만 마음이 착잡했다. 부모님이 살아계신 건 다행이지만 그들이 처한 처지를 생각하니 슬프고 절망스러웠다.그녀는 어떻게 해야 부모님과 어린 남동생을 구할 수 있을까?돌아가는 길, 정안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지윤이 차를 몰며 물었다.“금원으로 가요?”“응.”정안이 얼떨결에 대꾸했고 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그녀가 발신자 표시를 확인하더니 전화를 받고 귓가에 갖다 댔다.“지우야.”지우의 부드러운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깃들었다.“네가 저번에 말한 그 알바. 나 해보고 싶어.”“좋아. 지금 시간 있어?”“응.”“그래. 그럼 나 지금 남씨 본가로 갈게. 우리 대문 앞에서 만나.”전화를 끊은 후 정안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지윤아, 남씨 본가로 가.”지윤은 즉시 핸들을 돌려 본가로 향했고 그들이 본가에 도착했을 때 지우는 이미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두 사람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들어갔다.정안은 남태준의 심리 상담사 겸 간병인으로 지우를 남창민과 허윤미에게 소개해주었다.하지만 허윤미는 상냥한 얼굴에 연약한 모습의 지우를 보고 걱정하며 말했다.“완자야. 네가 우리 태준이 신경 써준 건 정말 고마워. 하지만 이 아가씨는 적임자가 아닌 것 같구나.”지우가 진지하게 말했다.“아주머니, 저 믿으세요. 저 할 수 있어요!”허윤미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지우 씨. 이거 쉬운 일 아니에요. 태준이 깨어난 후로 우리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어요. 정신과 의사만 수십 명을 바꿨고 간병인도 3일을 버티는 사람이 없었어요. 남자 간병인도 자주 다치는데 연약한 지우 씨가 할 일이 아니에요. 다칠까 봐 걱정돼서 그래요.”지우는 긴장된 표정으로 정안을 바라보았고 마침내 시간당 수당이 40만 원이나 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그렇게 위험하다고? 설마 짐승인가?정안은 지우의 손을 꼭 잡고 설명했다.“지우야,
“그래 그럼.”남태준은 억지로 웃음을 짜냈다. 아무리 쓸쓸하고 힘들어도 그녀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기다리겠다고 약속했었다.지우가 그의 곁에 있는 한 그는 반드시 그녀의 마음, 그녀의 사랑, 그녀의 모든 것을 기다릴 수 있었다.그때, 입구의 벨이 울렸다.지우는 궁금한 얼굴로 남태준을 보았고 남태준도 입구를 보았다.“이 시간에 누구죠?”지우가 묻자 남태준이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아마 신우일 거야.”“먼저 먹고 있어.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볼게.”말하면서 그는 거실로 나와 문을 열었다.순간 남태준의 안색이 일그러졌다.바로 임다희였다.방금 차에서 내린 그녀는 한참을 생각했지만 이대로 남태준을 포기할 수 없어서 다시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찾아왔다.“태준아 난...”남태준은 바로 나가서 문을 닫고 임다희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집에 지우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두 사람이 재결합했다는 것을 임다희가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임다희가 알면 지우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고 불필요한 문제만 일으킬 수 있었다.그는 임다희가 그의 집에 있다는 것을, 임다희가 지우와 재결합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여긴 왜 왔어?”남태준은 불쾌한 듯 묻더니 그녀의 팔을 끌고 마당으로 향했다.임다희는 남태준의 언짢음과 난폭함을 느끼고 말했다.“너랑 다시 잘 얘기하려고 찾아왔어. 방금 너 쓰레기라고 욕한 거 사과할게. 너무 슬퍼서 홧김에 내뱉은 말이지 진심이 아니었어.”“나 쓰레기 맞아.”남태준은 그녀를 마당 밖으로 끌고 나가 철제 난간을 나와 철문을 걸어 잠그고 마당 바깥 입구에 서 있었다.“우리 친구는 될 수 있지만 연인으로는 얘기가 이미 끝났어.”“우리 앉아서 얘기 좀 해. 우리 다시 시작하자.”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의 덤덤한 눈을 올려다보며 울먹였다.“나 많이 변했어. 더 이상 이전의 임다희가 아니라고. 나 너를 많이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남태준은 몇 초 동안 어이없어 하더니 엄숙하게 말
지우는 예전에는 자신이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게 되었다.그녀는 남태준 같은 유형의 남자를 좋아했다.이런 성격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좋아함으로써 그의 성격도 좋아하게 된 것이다.지우는 부끄러운 듯 그의 목을 감싸고 나지막이 속삭였다.“아니요. 난 당신 같은 돌직구가 좋아요.”남태준은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의 붉어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맑고 큰 눈과 촉촉한 입술을 보니 저도 모르게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고 마음이 심란했다.그는 목젖을 위아래로 굴리며 그녀의 엉덩이를 한 손으로 감싸 안고 일어서더니 매력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가자. 밥 먹으러 가자. 다른 일에 주의력을 돌리지 않으면 내가 널 잡아 먹을 것 같아.”지우는 부끄러워하며 그의 어깨에 고개를 푹 묻었다.남태준은 그녀를 안고 식탁 앞에 놓아주었고 식탁 위의 반찬 세 가지와 국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너 정말 요리를 잘하는구나. 먹기도 전에 군침이 돌 정도로 비주얼이 훌륭해.”지우는 기분 좋게 앉아 그에게 국을 떠 주었다.남태준도 따라 앉아서 젓가락을 들어 한 입 맛보더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정말 맛있어. 지우가 한 음식이 이렇게 맛있다니.”지우는 그가 맛있게 먹는 걸 보고 뿌듯해졌다.그녀가 만든 건 그저 일상적인 가정식 음식이었고 평범한 재료를 이용해 만든 조리 방법도 단순했다.갈비찜, 토마토 달걀 볶음, 청경채, 그리고 어두 무찌개였다.그러나 남태준은 세상 맛있는 음식을 먹는 듯 싱글벙글했다.“내가 한 음식이 맛있다면서 그래도 나 음식 못하게 할 거예요?”지우가 궁금해서 묻자 남태준이 피식 웃더니 입에 든 음식을 삼키고 목을 축이고 말했다.“만약 네가 음식 만드는 거 좋아하고 취미라면 그리고 힘들지 않다면 해도 돼.”“하지만 네 취미도 아니고 임무를 완성하는 것처럼 한다면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거듭하며 네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어. 그러면 너도 힘들잖아.”남태준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등을 만지며 부드럽게 중얼거렸다
남자는 손으로 지우의 허리를 꼭 껴안고 눈빛은 뜨거웠다.“내 침대에서 좀 더 오래 자지 그랬어?”“네?”지우가 의혹스러운 듯 맑은 눈망울을 깜빡이며 어리둥절했다.“내가 돌아오면 같이 잘 수 있게.”지우는 얼굴이 살짝 뜨거워졌고 그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수줍게 중얼거렸다.“누구 좋으라고요!”“앞으로 나 밥해주지 마.”남태준은 그녀의 하얀 작은 손을 만지고 입가에 끌어당겨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왜요?”지우는 자신의 요리 솜씨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집에서도 늘 그녀가 요리했으니.“내가 돌아와서 하면 돼. 내가 바쁘면 요리사 부르면 되고.”남태준은 그녀의 손을 문지르며 안타까워하며 바라보았다.“내 여자친구는 요리나 집안일 같은 거 할 필요 없어.”그 말을 들은 지우는 호기심에 물었다.“그럼 여자친구가 뭘 해줬으면 좋겠어요?”남태준이 부드럽게 말했다.“정신적 지주 같은 역할? 나에게 네 일을 공유하고 내 일을 경청하고 각자의 일을 마친 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시시한 일을 했으면 좋겠어.”“뭐가 시시한 일인데요?”“영화 보고 밥 먹고 산책하고 쇼핑하고...”남태준은 말을 잇지 못하고 그녀에게 다가가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갑작스러운 키스에 지우는 저도 모르게 수줍은 소리가 목구멍에서 새어 나왔다.그의 키스는 뜨거웠고 큰 손은 천천히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끌어안아 그녀의 엉덩이를 안으로 오므렸다.진한 키스가 뜨거워질수록 지우는 그의 몸 반응이 점점 강렬해지는 것을 느꼈다. 앉은 위치가 애매해 커다란 것이 몸에 받치는 느낌이 들었다.그녀의 온몸은 저도 모르게 나른해지고 팔다리에는 마치 전류가 흐르는 것 같고 아랫배가 공허해졌다.떨림, 수줍음 그리고 왠지 모를 두려움이 그녀를 도망치게 했다.그녀가 옮기려고 할수록 남태준이 그녀를 껴안고 더 바싹 달라붙었다.진한 키스가 불러온 욕망에 두 사람의 숨결은 가빠졌다.남태준은 천천히 그녀의 입술에서 떠나 그녀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제 목소리를 잃은 듯 쉰 목소리로 가볍게 중
“그럼...”임다희는 믿기 싫은 듯 눈물이 핑 돌았다.“내가 목숨 걸고 널 구한 건 내가 경찰이기 때문이야. 사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어.”“그럴 리 없어.”임다희는 분노하여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울먹였다.“나 절대 못 믿어. 나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날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어?”남태준은 긴 한숨과 함께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임다희, 난 널 위해 목숨을 버린 적 없어.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무슨 논리?”임다희가 눈물을 쓱 닦았다.“넌 그래도 내가 사귀었던 여자친구니까 측은한 마음에 그 요트를 떠나라는 것을 상기시켰을 뿐인데 네가 내 신분을 폭로한 거야.”남태준은 그녀를 구하려던 동기를 차근차근 분석해줬다.“네가 내 스파이 신분을 폭로하면서 우리 둘 다 위험에 빠졌어. 도망가야 하는 상황에서 경찰로서 난 절대 자기 살길만 도모하고 다른 사람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어. 경찰의 책임감으로 너 데리고 도망친 거야.”임다희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이해하기 어려웠다.남태준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내가 죽을 뻔한 건 너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네가 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야.”지금 남태준이 그녀를 원망하지 않는 것은 그의 관대함 때문이었다.“너 지우 때문에 여기 와서 일하는 거야?”임다희가 눈물이 흐릿해져서 묻자 남태준이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맞아.”“하지만 지우가 너를 차버렸어.”임다희는 눈물을 닦고 고상한 자태를 뽐내며 조롱하듯 물었다.“이번에도 흔쾌히 승낙하고 깨끗이 잊은 거야?”남태준은 입술을 오므리고 몇 초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질투가 많은 여자는 신중하게 대처해야 했다.“맞아. 깨끗이 잊었어. 이미 끝난 인연이고 지나간 사람을 놓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겠어? 이 세상에 여자가 수도 없이 많은데 한 나무에만 매달릴 필요 없잖아?”임다희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매섭게 말했다.“쓰레기!”그리고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더니 문을
사람은 기쁜 일이 생기면 기분이 상쾌한 법이다. 하루 종일 바빠도 지우와의 관계를 회복한 생각만 하면 속으로 은근히 기뻐 났다.남태준이 막 차 옆으로 다가갔을 때 임다희가 차 뒤에서 걸어왔다.“태준아.”남태준은 멈칫하고 고개를 돌려 여유롭게 물었다.“임다희? 무슨 일이야?”“할 얘기가 있어. 아주 중요한 얘기야.”임다희는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타.”남태준이 쿨하게 대답하자 임다희는 그의 차에 올라탔고 남태준이 시동을 걸고 떠났다.차 안에서 남태준이 물었다.“어디서 얘기할래?”“너희 집.”남태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단호하게 거절했다.“그건 안돼.”“아주 중요한 일이야. 반드시 사람 없는 곳에서 얘기하고 싶어서 그래.”임다희는 남자의 준수한 얼굴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빛을 내뿜으며 엄숙하게 말했다.“마약 거래에 관한 얘기야.”“그럼 지금 얘기해.”남태준은 차를 길가에 세웠다.“차 안에는 우리 둘만 있으니까 안전해.”임다희가 앞뒤를 돌아보니 이 길은 행인도 없고 오가는 차량도 뜸했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남태준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지 않으려 하자 마지못해 핸드백을 열어 그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이 시간에 거래가 있을 거야.”그의 다년간 사건 처리 경험으로 볼 때, 이렇게 명확한 거래 장소와 시간은 임다희가 절대 알 수 없었다.이 정보가 가짜이거나, 누군가가 그녀에게 준 것이 틀림 없었다.“어디서 났어?”남태준이 묻자 임다희는 조금 켕긴 듯 대답했다.“건달인 친구가 알아낸 정보인데 내가 샀어.”남태준은 입꼬리를 꼬며 그녀의 거짓말이 좀 억지스러워서 계속 물었다. “네가 마약 형사도 아니고 이 정보를 왜 사는데?”“너 주려고.”남태준은 움찔하더니 침묵했다.임다희는 애정 어린 눈으로 남태준을 지그시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태준아, 우리 다시 만나자.”남태준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뭐라고?”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울먹였다.“전에는 내가 미안했어. 네
지하 카지노 사무실.육건우는 자료를 책상에 던지고는 화가 나서 일어나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임다희를 노려봤다.“너 혹시 남태준 스파이야?”임다희가 미소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그럴 리가 있나요? 우리는 같은 배에 탄 사람이잖아요. 내가 남태준을 도와서 얻을 수 있는 게 뭔데요? 난 단지 애매한 단서만 줬지 실질적인 증거를 준 적은 없어요.”“요즘 사복 경찰이 계속 우리 촬영장 밖을 배회하고 가끔 항공사진 드론이 공중을 선회하고 또...”육건우는 책상으로 가서 서류뭉치를 집어던졌다.“이건 전부 최근 경찰들에게 적발된 물건이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젠장!”임다희는 긴장해서 침을 삼키고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육건우는 분노하여 임다희를 가리키며 이를 갈았다.“네 신분을 잊지 마. 내가 너를 도와 남태준과 그 여자를 갈라놓겠다고 약속했고 그 동생까지 함정에 빠뜨렸어. 그런데 그 여자가 지금 나를 고소했다고. 젠장.”임다희는 웃어 보이며 말했다.“제가 어떻게 사장님의 큰 은혜를 잊겠어요? 다만... 저는 다시 전 남자친구와 재결합하고 싶어요. 그런데 하필 태준이가 마약 경찰이잖아요. 그래서 저... 이 일에서 손 떼고 싶은데 보스에게 사정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육건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이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임다희가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그해 남태준과 요트에서 탈출한 뒤 남태준은 그녀 때문에 다시 잡혀가 바다에 빠져 하마터면 숨질 뻔했지만 그녀는 사실 안전하게 귀국할 방법이 없었다.배후의 빅보스가 바로 그녀를 죽이려고 했지만 육건우가 빅보스에게 사정을 해서 그녀에게 살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그녀의 연예인 신분을 이용하여 마약을 갖고 귀국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그녀는 마지못해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십여 킬로그램의 마약을 촬영장 카메라 기둥에 숨긴 후 요트를 타고 귀국했다.그 이후로 그녀는 마약밀매 조직의 일원이 되었고 매번 물건을 가져오거나 몸을 헌신해야 했다.임
꽃가게 앞을 지날 때 남태준이 걸음을 멈추었다.“지우야. 나...”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는 재빨리 그를 끌고 나가 그의 팔을 껴안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부질 없는 곳에 돈 낭비하지 말아요.”“여자들은 다 꽃을 좋아하지 않아?”지우에 의해 팔이 단단히 조여진 남태준은 아주 편안했고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 번졌다.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안 좋아해요. 굳이 사주고 싶다면 차라리 다육식물을 줘요. 기르기도 쉽고 번식도 할 수 있잖아요.”“가방의 품질, 브랜드, 가격 중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가격이죠.”남태준은 피식 웃더니 그녀의 소비 관념과 가치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또 물었다.“다이아몬드와 금 중에 뭐가 좋아?”“금이요.”지우가 고민도 없이 대답하자 남태준은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좋아. 알겠어.”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을 때 흥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우야!”지우가 멈칫하고 뒤를 돌아보더니 그녀를 부른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바로 그녀에게 맞선 상대를 소개해 준 중매인이었다.그녀는 빠르게 남태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놀라움과 설렘이 가득해 말했다.“어쩐지 내가 그렇게 좋은 남자들을 소개해줘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라니. 알고 보니 눈이 이렇게 높았었네? 남편 어디 사람이야? 누가 소개해줬어?”지우는 어색하고 난처해하며 웃어 보였다.“친구가 소개해줬어요.”말하자면 백완자가 그들을 소개해 준 셈이었다.“외모도 빼어나고 큰 기에 몸매도 좋네. 어디 사람이야? 무슨 일 해?”역시 가십에 관심이 많은 중매인이었다.남태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지 않았지만 지우는 조금 당황한 듯했다.“안성 사람이에요. 아주머니, 제가 얼른 가서 밥해야 해서요. 다음에 얘기 나눠요.”“안성 좋지! 큰 도시 사람이네!”지우는 남태준의 손을 잡고 서둘러 떠났다.그녀는 매우 급하게 걸었지만 남태준의 얼굴에는
지우는 긴장되어 귀가 빨개졌다.“싫어?”남태준은 그녀의 진심을 떠보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와 재결합하고 싶은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의 허벅지에 몸을 기울여 앉았는데 긴장해서 등이 약간 뻣뻣했다.남태준은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덥석 끌어안고 뒤로 기댔다.지우는 그의 튼실한 가슴에 완전히 엎드렸고 몸이 나른해졌다. 수줍고 난처해 감히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그의 품에 안겨있는 느낌은 아주 편안하고 심장이 왠지 모르게 떨리면서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만약 네가 불편하거나 거부감이 든다면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남태준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갖고 싶었지만 그녀가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그 말을 들은 지우는 조바심이 났다.그녀는 남태준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그의 깊고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나 불편하지 않아요. 거부감도 들지 않고요.”“그러니까 너 지금...”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가 갑자기 입을 맞추었다.그러자 남자는 움찔했다.지우는 눈을 감고 두 손을 천천히 남자의 어깨에서 뒤로 걸어 목을 감은 뒤 수줍고 서툴게 그의 따뜻한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그녀는 심장이 천둥처럼 뛰었다.남태준은 몇 초 동안 멍해졌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마음은 더없이 흥분되었다.그는 지우의 뒤통수를 낚아채 옅은 키스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의 입술과 혀는 그녀의 어금니를 비틀어 열고 곧장 달려들어 여자의 혀와 한데 엉켰다.“음!”지우는 그의 공세에 못 이겨 수줍은 소리를 냈다.그동안의 갈망과 그리움을 남태준은 한숨에 모두 보상받고 싶은 심정이었다.지우를 꽉 껴안고 격렬하고 난폭한 키스를 계속 퍼부었다.긴 키스가 이어지고 지우는 입술이 다 아프고 호흡이 가쁜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남자의 가슴을 밀면서 고개를 뒤로 뺐다.남태준은 아쉬운 듯이 그녀를 놓아주었다.두 사람은 눈을 감고 서로 이마를 맞댔고 거친 호흡을 나누며 뜨거운 기운이 감돌
지우가 부랴부랴 그를 불렀다. “아니요. 나 안 더워요.”남태준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리모컨을 놓았다.그녀의 영롱한 큰 눈은 여전히 아름답고 맑고 깨끗했으며 매력적이었다.지우는 잔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한 후 용기를 내어 물었다. “태준 씨가 임다희와 사귀는지 물어보려고 왔어요.”남태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지우는 휴대전화를 꺼내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여 남태준에게 건넸다.순간, 지우는 자신의 이런 행동이 지나치다고 느꼈다. 이미 헤어진 이상 그와 다른 여자에 관해 물어볼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녀는 참지 못했다.확실히 묻지 않으면 그녀는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비록 죄책감을 느끼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다만 이때 그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은 그녀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아 보일 수 있었다.모두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이 저지른 일이지만 그녀는 동생의 취업을 위해 목적을 갖고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그렇게 생각한 지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뉴스를 본 남태준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긴장하며 설명했다.“지우야. 나와 다희 그런 사이 아니야. 나 믿어줘.”현재 임다희는 그의 정보원이기 때문에 보안 및 기밀 유지 계약으로 인해 임다희의 신분과 작업을 기밀로 유지해야 했으므로 지우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지우가 자신을 믿지 못할까 봐 초조하게 이마를 짚고 죽을상이 된 얼굴로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고 또 불안하게 소파에 기대어 지우를 바라봤다.지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이 여자가 먹여준 음식 먹었어요?”“그저 보통 친구와 밥 한 끼 먹은 거야. 나와 다희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 아니야.”“안 먹었어요?”“응. 거절했어.”“아.”지우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술을 오므렸다.그러자 둘 다 침묵에 빠졌다.남태준이 지우를 바라보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뭔가 고민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