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윤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그래도 다행이에요. 아저씨 아주머니가 살아계신단 것만으로도 좋은 소식이잖아요.”정안도 그렇게 여겼지만 마음이 착잡했다. 부모님이 살아계신 건 다행이지만 그들이 처한 처지를 생각하니 슬프고 절망스러웠다.그녀는 어떻게 해야 부모님과 어린 남동생을 구할 수 있을까?돌아가는 길, 정안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지윤이 차를 몰며 물었다.“금원으로 가요?”“응.”정안이 얼떨결에 대꾸했고 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그녀가 발신자 표시를 확인하더니 전화를 받고 귓가에 갖다 댔다.“지우야.”지우의 부드러운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깃들었다.“네가 저번에 말한 그 알바. 나 해보고 싶어.”“좋아. 지금 시간 있어?”“응.”“그래. 그럼 나 지금 남씨 본가로 갈게. 우리 대문 앞에서 만나.”전화를 끊은 후 정안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지윤아, 남씨 본가로 가.”지윤은 즉시 핸들을 돌려 본가로 향했고 그들이 본가에 도착했을 때 지우는 이미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두 사람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들어갔다.정안은 남태준의 심리 상담사 겸 간병인으로 지우를 남창민과 허윤미에게 소개해주었다.하지만 허윤미는 상냥한 얼굴에 연약한 모습의 지우를 보고 걱정하며 말했다.“완자야. 네가 우리 태준이 신경 써준 건 정말 고마워. 하지만 이 아가씨는 적임자가 아닌 것 같구나.”지우가 진지하게 말했다.“아주머니, 저 믿으세요. 저 할 수 있어요!”허윤미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지우 씨. 이거 쉬운 일 아니에요. 태준이 깨어난 후로 우리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어요. 정신과 의사만 수십 명을 바꿨고 간병인도 3일을 버티는 사람이 없었어요. 남자 간병인도 자주 다치는데 연약한 지우 씨가 할 일이 아니에요. 다칠까 봐 걱정돼서 그래요.”지우는 긴장된 표정으로 정안을 바라보았고 마침내 시간당 수당이 40만 원이나 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그렇게 위험하다고? 설마 짐승인가?정안은 지우의 손을 꼭 잡고 설명했다.“지우야,
단풍나무 숲에는 요양하기 적합한 아름답고 깨끗한 환경을 갖춘 독특한 작은 건물이 있었다.정안은 지우를 데리고 가면서 설명했다.“이름은 남태준, 올해 30살이야. 전에는 아주 용감한 마약 단속 경찰이었어. 훈장도 많이 받았고. 최근 몇 년 동안 M국 국경을 넘나들며 잠복 요원으로 일했고, 국경을 넘어 마약 밀매업자들과도 오랫동안 거래했어.”“마약 경찰로서 늘 초심과 본분을 잊지 않았고 덕분에 많은 마약을 노획했고 많은 사람을 구했지.”“하지만 이번엔 신분이 폭로돼 그 쓰레기 같은 인간들에게 오랫동안 시달렸어. 발견했을 땐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어.”“의사가 염라대왕 손에서 다시 구해왔는데 깨어나 보니 자신이 장애인이란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지금은 폐인처럼 살고 있어.”지우가 물었다.“그렇게 극적으로 다시 살았으면 어떻게든 잘 살아가야 하는 거 아니야?”“사실 난 가끔 태준 오빠 마음이 이해가 가. 살아도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이잖아. 차라리 명예롭게 죽는 게 더 낫지.”정안은 탄식하더니 말했다.“태준 오빠가 죽으면 가족들은 슬퍼하겠지만 태준 오빠가 죽지 않으면 오빠가 괴롭잖아.”정안은 잠시 생각하더니 또 말했다.“참, 그리고 첫사랑한테 배신당해서 신분이 폭로됐어.”“뭐? 여자친구한테 배신당했다고?”지우가 경악해서 정안을 바라보며 묻자 정안이 고개를 저었다.“아니, 여자친구 말고 첫사랑. 이미 헤어진 지 몇 년이 지났는데 한 마약 밀매업자 두목의 집에서 그 첫사랑이 마약을 운반하는 걸 발견했대.”“오빠는 그 여자를 구하고 싶었지만 상대방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어. 여전히 마약 두목의 달콤한 거짓말을 믿었고 심지어 태준 오빠가 M국에서 경찰대를 졸업하고 반년 동안 마약 경찰로 일했지만 후에 사라졌다는 것도 말해버렸어.”“그 두목이 M국에 사람을 보내 깊이 조사한 결과 태준 오빠의 정체를 알아낸 거지.”지우는 화가 나서 이가 간질간질하며 물었다.“그럼 그 썩어 죽을 년은 어떻게 됐어? 죽었어?”“태준 오빠가 강제로 마약 소굴에서 끌
“꺼져!”남태준이 노호하며 옆에 있던 술병을 마구잡이로 깨뜨렸다.집 안에 깨지는 소리가 나더니 날카로운 유리 부스러기가 여기저기 흩날렸다.정안은 지우가 다칠까 봐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반면 지우는 모든 공격을 피해 남태준의 휠체어를 빠르게 빈 구석으로 밀어냈다.상황을 파악한 정안은 급히 거실로 뛰어 들어가 지우와 협력하여 집안의 모든 위험물을 봉투에 넣어 갖고 나갔다.남태준은 죽은 사람처럼 두 손을 아래로 축 늘어뜨리고 휠체어에 머리를 기댄 채 나른한 모습이었다.지우가 그에게 다가가서 숨을 헐떡이며 눈앞의 남자를 열심히 살폈다.흐트러진 머리칼이 눈을 가릴 정도로 길었고, 수척한 볼은 그루터기로 뒤덮여 퇴폐적이며, 검은 바지가 그의 마른 몸을 감싸고 있었다.지금의 그는 영혼이 없는 허약한 몸만 남았을 뿐 삶의 의욕이 조금도 없었다.정안이 다가가 눈물을 글썽이고 남태준을 바라보며 마음이 아파 울먹였다.“오빠, 이제 좀 그만해요. 계속 이렇게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으면 몸이 망가져 죽을 거예요.”지우는 정안을 문밖으로 밀어내고 정중하게 말했다.“여기는 나한테 맡기고 너 먼저 돌아가. 1년만 시간을 주면 내가 네 빚도 다 갚고 이 남자 포동포동하게 살 찌워 놓을게.”정안은 그녀에게 돈을 갚으라고 할 생각은 없었지만 정말 남태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지우는 그녀를 향해 살짝 웃으며 천천히 문을 닫았다.문이 닫히는 순간 정안은 여전히 불안하고 걱정이 앞섰다.집 안.문을 잠근 지우가 남태준 앞에 다가서자 부드러웠던 눈빛이 엄숙하고 강인하며 단호하게 굳어졌고 선서 같기도 하고 경고 같기도 한 말을 또박또박 내뱉었다.“안녕하세요. 저는 지우라고 해요. 오늘부터 도련님의 일상생활을 돌보고 심리치료를 해줄 24시간 밀착 간병인이에요.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금부터 당신은 반드시 저의 모든 계획에 협조해야 합니다.”남자는 죽은 사람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입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글자를 내뿜었다.“꺼져.
남씨 본가를 떠난 정안은 차를 타고 금원으로 돌아갔다.피곤한 발걸음으로 대문을 여는 그녀의 마음은 우울했다. Z국의 일, 부모님의 일, 남태준의 일 하나하나가 그녀를 숨 막히게 해 언제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현관에서 신발을 갈아 신고 고개를 드는 순간 거실 소파에 있는 남하준을 본 그녀의 마음속 슬픔은 순식간에 몇 배로 커졌다.그의 품에 뛰어들고 싶은 고통스러운 충동이 생겼다.남하준은 그녀가 돌아오는 소리를 듣고 즉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일어섰다.“왔어?”남하준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가랑비가 그녀의 가슴을 스치는 듯 순간적으로 따뜻해졌다.정안은 갑자기 그에게 달려들어 그의 허리를 덥석 껴안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바싹 붙였다.그녀의 갑작스러운 포옹에 놀란 남하준은 멍해져서 두 손을 잠시 허공에 널어놓으면서 행복은 언제나 그토록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정안은 그를 더 꽉 껴안았고 그의 손은 몇 초 동안 멈추었다가 천천히 그녀의 위로 떨어졌다. 한 손은 그녀의 등을 안고 다른 한 손은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다정하게 물었다.“왜 그래?”“오빠, 나 너무 힘들어요.”정안이 그의 품에서 속삭였다.“무슨 일인지 말해 줄래?”정안은 묵묵히 말이 없었고 남하준은 가슴이 벅차오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말해봐. 내가 도울 수도 있잖아.”정안은 아직 남하준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생각 못 했다. 특히 Z국이 그녀가 M국으로 돌아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아서 남하준이 슬퍼할까 봐 걱정되었다.“그냥 오빠 안고 있을래요.”정안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비벼댔고 그의 품에서 속삭이며 위로를 얻으려 했다.심장이 벌렁이는 남하준은 그녀를 힘껏 껴안고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그들은 이렇게 조용히 서로를 껴안고 아무도 말도 없이 찰싹 붙어 있었다. 평안하고 아름다운 시간이 조금씩 흘러갔다.한참 후, 마음을 추스른 정안이 그를 놓아주었고 남자의 뜨겁고 애틋한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나 가짜 백하린 만나고 왔어요. 우리
정안은 천천히 주먹을 움켜쥐고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을 꾹 참으며 말했다.“생각 좀 해볼게요. 그래도 되죠?”남하준이 기대에 차서 말했다.“그래. 네 대답 기다릴게.”정안은 피곤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가며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방에 돌아온 그녀는 씻고 모든 고민을 안은 채 잠에 빠졌다.얼마나 지났을까. 말랑말랑한 느낌의 무언가가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는 느낌이 들었다.그건 부드러운 촉감이었고 뜨거운 기운이 그녀의 얼굴에 뿌려져 간지럽혔다.그녀가 천천히 게슴츠레한 졸린 눈을 떴을 때 앞에는 잘생긴 얼굴이 가까이 다가와 시야가 흐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그러나 남하준이 그녀에게 키스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눈을 깜박이더니 두 손으로 남하준의 목을 감싸고 그의 얇고 차가운 입술을 물었다.남하준은 깜짝 놀랐다. 물러서기에는 이미 늦었고 그녀에게 목이 잡혀 도리어 키스를 당하고 있었다.정안이 힘껏 몸을 뒤척이자 남하준이 그녀의 의도를 느끼고 그녀의 허리를 안고 옆으로 몸을 돌렸다.정안이 남하준의 몸 위에 누워 서로 뜨거운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방의 공기는 점점 후끈 달아올랐다. 두 사람의 입과 혀가 서로 뒤엉켜 뜨거운 숨결을 나누며 점점 더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욕망의 늪에 빠진 정안은 키스에 정신이 혼미해져 가냘픈 신음을 냈고 이 소리는 남자에게 치명적이었다.그러나 그의 착한 손은 여전히 그녀의 등만 쓰다듬고 있었다.오히려 정안이 참지 못하고 두 손을 남자의 옷 속으로 집어넣어 그의 튼튼한 가슴을 마구 만졌다.그녀의 아랫배가 남자의 반응이 강한 아랫배에 대고 뭉그적거리다가 그 강렬하고 두려운 곳을 느끼고 나니 그녀는 무섭기도 하고 또 기대되었다.분위기가 더욱 짙어져 거의 통제 불능이 되려는 순간, 남하준이 몸을 뒤척여 정안을 몸 밑에 깔고 그녀의 손목을 베개 위에 꾹 눌렀다.그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그녀의 입술을 떠났고, 욕망으로 가득 찬 이글거리는 두 검은 눈동자로 정안의 붉은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
정안은 심장이 아파졌다.“그게 무슨 말이에요?”남하준은 미간을 살짝 찡그리고 깊고 흐릿한 눈매에는 애틋함이 넘쳤다.“만약 네가 언젠가 M국을 떠나, 나를 떠나 Z국으로 돌아가 생활한다면 내가 굳이 네 몸을 어지럽히고 네 미래에 오점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정안은 가슴이 아파 순간 눈물이 핑 돌고 목이 잠겨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게 왜 오점이에요?”남하준은 눈시울을 붉히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Z국에 살다 보면 너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야 할 거잖아.”정안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오빠도 알았어요?”“응. Z국 최고지도자가 전화를 걸어와 상황을 설명했는데 아주 강경한 태도로 너 포기할 수 없다고 했어.”“그런데도 나한테 프러포즈 한 거예요?”남하준은 그녀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천천히 훔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만약 우리 사이에 장애물이 없다면 너 나랑 결혼할 거야?”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나 오빠랑 결혼하고 싶고 오빠랑 변경에 가서 생활하고 싶어요.”남하준은 옆으로 누워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붉고 촉촉한 검은 눈동자를 감고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파묻고 속삭였다.“그거면 충분해.”“오빠.”남하준은 그녀를 꼭 껴안았지만 하반신은 그녀의 몸에서 조금 떨어져 자제하고 참고 있었다.“안고 자자.”“나 오빠랑 잠자리 갖고 싶어요. 참을 필요 없어요.”정안이 용기를 내어 말했지만 남하준이 냉정하고 엄숙하게 거절했다.“내가 원하지 않아.”정안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고 몸과 피부가 불덩이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고 격렬한 반응이 일어난 걸 보면 그는 분명 원하고 있었다.“남자들은 모두 좋아하는 여자와 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남하준은 묵묵히 그녀의 머리를 천천히 밀어내고 그녀와 약간의 거리를 유지했다.이제 감히 그녀를 안지도 못했다.남하준은 누군가를 사랑하면 강제로 소유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존중하고 아끼고 보호해
고모 남연희마저도 얼굴빛을 바꾸며 그녀에게 공손하게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었다.정안은 최서윤이 전에 자신을 아니꼽게 보았던 건 그녀의 신분과 인품 때문이 아니라 그녀와 남하준의 관계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넷째 남태준을 제외하고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했다.“완자야, 전에는 고모가 너 못 알아보고 실례했어. 너무 고모 탓하지 마.”남연희가 알랑거리는 투로 말하자 정안이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었다.“저 고모님 탓한 적 없어요.”최서윤은 냉담한 얼굴로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비꼬아 말했다.“오늘 어머님 생신 축하하는 자리에 모두 우리 식구들만 모였는데 그쪽은 무슨 신분으로 왔는지 몰라.”정안은 얼굴이 약간 어두워지더니 최서윤을 바라보았다.최서윤이 정안에게 시비를 걸자 다들 안색이 어두워졌다.“내가 알기로는 그쪽과 도련님의 결혼은 무효라고 하던데, 그럼 지금 도련님 아내도 아니고 여자친구도 아니잖아요? 여기 많은 사람 중에 그쪽만 외부인이라 대체 무슨 신분으로 왔는지 궁금해서 물었어요.”셋째 남영준이 창피해서 식탁 아래로 그녀의 발을 필사적으로 찼다.그러나 최서윤은 창피한 줄 모르고 소리쳤다.“당신 왜 그래요?”남영준은 순간 겁에 질려 고개를 떨구고 감히 그녀의 일에 관여하지 못했다.허윤미와 남창민은 며느리에게 미움을 살 수 없어 난처하게 서로 쳐다보기만 했다.첫째와 둘째 내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나설 생각이 없었고 남연희가 나서서 조롱했다.“이봐, 얘가 어디 남이야? 백완자잖아!”최서윤은 두 손을 가슴에 얹고 도도한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백완자면 왜요? 그래도 우리 집안 사람은 아니잖아요? 오늘 가족끼리만 모이는 회식이라면서요?”남하준의 안색이 어둡고 차가워지더니 날카로운 눈동자는 얼음장처럼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최서윤을 향해 쏟아졌다.“우리 결혼이 법적으로 무효라고 해서 완자가 내 아내가 아니란 뜻은 아니잖아?”남하준이 또박또박 꾸짖었다.“불만 있으면 나한테 말해. 괜히 완자 물고 늘어지
정안은 옅게 웃으며 남하준의 손을 밀어냈다. 자신의 존재로 인해 생일 파티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다.“오빠, 아주머니랑 생일 잘 보내세요. 난 확실히 이 집안 사람이 아니에요. 셋째 형님께서 나 보고 싶어 하지 않으니 내가 가야죠.”남하준은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래지고 분노가 끓어올라 말을 하려다가 정안에 의해 다시 중단되었다.그녀의 말투가 조금 더 강력해졌다.“이번 한 번만 내 말 들어요. 네?”말을 마친 정안은 모두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돌아섰다.남씨 가문 사람들은 전부 나서서 만류하지 않았다. 모두 최서윤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들은 최서윤이 확실히 지나쳤다고 생각하지만 그녀와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을 것이다.정안이 핸드백을 들고 본가를 떠났다.저녁노을의 잔광이 온 대지를 뒤덮고,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맑은 바람이 불어와 따뜻함이 넘쳤다.앞뜰에 꽃향기가 코를 찔렀지만 정안은 발걸음이 무거워 걱정스러운 듯 대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녀는 자신이 이곳에 속해 있지 않다고 느껴 알 수 없는 서글픔이 몰려왔다. 갑자기 뒤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정안이 돌아섰을 때 남하준은 이미 그녀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그녀는 약간 멍해졌다. 남자의 따뜻하고 두툼한 큰 손이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알 수 없는 감동과 설렘이 밀려와 눈시울이 붉어졌다.“왜 나왔어요?”태연한 표정의 남하준은 따듯한 웃음을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집에 가자. 맛있는 거 해줄게.”정안은 여전히 불안했다.“그래도 오늘은 아주머니 생신인데 여기 있어요.”남하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갔다.“와서 얼굴 봤고 선물도 줬어. 그리고 생일은 해마다 있지 뭐 올해만 있나?”“분명 속상해하실 거예요.”“그럴 리 없어.”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해 질 녘을 걷고 있는 두 사람의 평온한 겉모습에 비해 가슴은 들끓고 있었다.일찍 나왔기 때문에 류청의 차가 아직 그들을 데리러 오지 않
지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백건을 바라보았다.백건은 긴장하며 침을 삼키고 지우가 청혼서를 돌려줄까 봐 두려웠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손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슬쩍 바지를 만졌다.지우가 청혼서를 들더니 말했다.“건아, 사실은...”지우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백건은 긴장감에 허리를 굽혔다.“제가 아주머니보다 더 서연이를 아껴줄게요. 부디 허락해주세요.”지우는 어리둥절했고 남태준은 싱긋 웃으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너 때문에 건이가 아주 놀랐나봐.”지우는 서둘러 해명했다.“난 이런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던 거야. 우리 가족들은 두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을 거야.”백건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감사합니다.”“어서 앉아.”지우는 자리에 앉아 손을 뻗어 백건도 앉으라고 했다.자리에 앉은 백건은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눈에 띄게 긴장한 백건의 모습에 집안 어른들은 모두 기뻐했다.특히 몇몇 큰아버지들은 집안에서 가장 아끼는 공주님이 M국의 갑부와 결혼할 수 있고, 심지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남자라고 생각하니 더욱 만족스러웠다.모두들 잡담을 하고 있을 때, 남서연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와. 웬 선물이 이렇게 많아요? 이거...”말을 반쯤 마친 그녀는 이미 남우영을 따라 거실로 갔다.백건을 보자마자 그녀는 얌전하게 변했다. 장난기 많고 발랄하던 모습의 그녀는 곧 부끄러움에 휩싸여 긴장한 채 백건을 바라보았다.남자의 눈빛은 뜨거웠다.“이거 건이가 가져온 예물이야.”허윤미가 말했다.예물이라는 말을 들은 남서연은 심장이 쿵쾅거리고 더욱 부끄럽고 긴장했다. 입술을 오므리고 웃으며 남자의 시선을 피했다.지우는 딸의 반응을 보고 또 백건을 보더니 아무래도 두 사람이 연인 사이 같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서먹서먹한 수줍음이 감돌고 있었는데 마치 썸을 타는 시기 같았다.허윤미가 또 입을 열었다.“서연아, 며칠 후에 너도 선물을 갖고 정식으로 건이 부모님께 인사드려. 그리고 시간을 내서 양쪽 가족
백건은 모든 예물을 갖고 차에 올라 별장을 떠났다.유승아는 서윤아를 부축한 채 별장 문에 서서 떠나가는 차를 보며 안색이 극히 어두웠다.서윤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유승아는 분노가 점점 끓어올랐지만 꾹 참고 조용히 속삭였다. “아주머니, 서연이는 곱게 자란 공주님이고 건이와 어울리지 않지만 건이가 좋아하니 허락해주세요. 정말 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전 괜찮아요.”유승아는 자신이 이렇게 말하면 서윤아가 안쓰럽게 여겨 더욱 열심히 도울 줄 알았다.그런데 서윤아는 가볍게 탄식하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우리 건이와 결혼하기에는 서연이가 아깝지.”유승아는 어리둥절해 하며 서윤아를 바라보았다.곧 서윤아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서연이는 온실에서 작은 화초라 백지장처럼 단순해. 내 아들이 아니라 자기처럼 단순한 남자를 만나야 해.”그 말인 즉, 백건에게는 단순하지 않은 여자가 어울린다는 뜻인가?예를 들면 신분, 성격이나 능력 같은 것...유승아는 마침내 서윤아가 남서연을 좋아하지만 왜 며느리로 삼고 싶지 않은지 알 것 같았다.그녀는 아들을 내조할 수 있는 사업적 파트너를 찾아주고 싶어 했다. 듣기 싫은 말로 서로 이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여자였다.유승아는 조금 당황스러웠다.서윤아처럼 똑똑한 사람은 유승아가 단순하지 않고 수단이 있고 정치적 힘도 갖고 있다고 생각해 그녀를 며느리로 삼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그녀가 의심하고 있을 때, 서윤아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내가 너희 둘 결혼식을 책임질 테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유승아는 막막한 척 말했다.“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서윤아는 그녀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이 미소는 또렷하게 말해주고 있었다.“넌 똑똑한 애니까 알고 있잖아.”서윤아는 말없이 천천히 별장을 떠났고 유승아가 서둘러 쫓아갔다.그녀는 당연히 이해했다.결혼식은 이미 준비되었고 그녀는 백건과 남서연의 혼사를 망치고 그들의 감정을 깨뜨리기만 하면 순조롭게 백건의 아내가 될 수 있었다.유승
여자는 크면 집에 묶어둘 수 없는 법.남서연은 기쁨에 젖어 있었지만 가족들이 모두 자신의 혼사에 대해 걱정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왜냐하면 백건과 결혼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반드시 그의 부모님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으니....다음날 백건은 이미 푸짐한 예물을 준비했다.모두 직접 준비한 것으로 성의를 다했다.거실에서 하현우는 열심히 예물을 체크하고 있었다.그때 거실문이 열리고 유승아가 서윤아를 부축해 들어왔다.하현우는 들어온 사람을 보고 공손히 인사했다.“사모님, 승아 씨 오셨어요?”서윤아는 온화하게 웃었다.“이거 승아에게 주는 예물인가?”하현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침실 쪽을 돌아보았다. 백건이 빨리 나오기만을 기도했다.서윤아는 하현우 앞에 다가가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물었다.“내가 묻잖아?”하현우는 바짝 긴장해 대답했다.“서연 아가씨에게 주는 예물입니다.”유승아의 얼굴빛이 약간 어두워졌다.그러나 서윤아는 피식 웃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승아네 집에 갖다 주게.”“하지만...”하현우는 망설이며 뒤를 돌아보았다.서윤아는 소파에 앉아 차갑고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볼 필요 없어. 내가 갖다 주라면 갖다 주면 돼. 그 녀석 허락받을 필요 없어.”말을 마친 서윤아는 유승아에게 손을 내밀었다.“승아야, 앉아.”유승아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서윤아의 곁에 앉아 나지막이 말했다.“아주머니, 이건 건이가 남씨 가문에 주려고 준비한 예물이잖아요. 하 비서 난처하게 만들지 마세요.”“건이와 결혼하는 여자는 너이니 당연히 이 예물도 네 것이지. 나도 서연이를 아주 좋아하지만 아직은 건이 아내가 될 자격이 없어.”“사업적으로 건이를 도울 수 없고 또 일상생활에서도 건이가 서연이를 돌봐줘야 해. 너만큼 성숙하지도, 능력이 강하지도 않아. 게다가 우리 두 가문은 친척 관계잖아.”백건은 방문을 나서서 양복의 커프스를 정리하면서 침착하게 계단을 내려갔다.그의 싸늘한 말투는 얼음처럼 차가워 뼛속을 파고들 것 같았다.“서연이는 나를 행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백건은 차에 올랐고 차량은 서서히 남씨 본가를 떠났다.뒷좌석에서 백건은 한마디 말도 없이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으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하현우도 기뻐하며 말했다.“축하합니다. 대표님.”“고마워.”한 번도 이렇게 대답한 적 없었는데 보아하니 기분이 아주 좋은 것 같았다.하현우는 찬물을 끼얹어야만 했다.“대표님, 근데 사모님 고비는 어떻게 넘기실 거예요?”백건의 안색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그리고 차 안은 말이 없었다....남씨 본가 거실.모든 사람이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다.남태준과 지우는 딸이 가족들 앞에서 백건에게 청혼했다는 사실을 듣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남서연은 가족에게 둘러싸여 불심 검문을 당했다.“두 사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언제부터 만났어? 진도가 왜 이렇게 빨라? 갑자기 결혼 얘기까지 나오다니?”이러한 문제에 대해 남서연은 모두 털어놓았다.“우리는 정식으로 만난 적 없어요. 제가 어릴 적부터 오빠를 짝사랑했어요.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그럼 건이는 어떤 생각인데?”“오빠도 저와 결혼하고 싶대요.”남태준은 주먹을 쥐며 격분했다.“넌 단순하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애야. 분명 백건 그 자식이 오랫동안 음모를 꾸민 게 틀림없어.”지우가 나서서 말렸다.“당신 화부터 내지 말아요. 건이가 음모를 꾸몄든 아니든 인품은 좋은 애잖아요. 가짜 약혼녀 유승아를 빼고 다른 스캔들도 없었고.”남태준은 딸이 아까워 격노하며 물었다.“건이는 차갑고 예민해서 말도 잘 안 하는데 어떻게 우리 서연이와 어울려?”지우가 답했다.“난 두 사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서연이는 어릴 때부터 단순하고 걱정 없이 잘 웃으니 예민하고 차가운 건이 성격과 딱 상보적이잖아요.”허윤미는 시무룩해서 말했다.“하지만 서연이는 아직 너무 어려. 이렇게 일찍 결혼할 필요 없어.”“맞아요. 저도 동의해요.”“맞아요. 너무 어려요. 결혼을 서두를 필요 없어요.”남우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