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 남연희마저도 얼굴빛을 바꾸며 그녀에게 공손하게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었다.정안은 최서윤이 전에 자신을 아니꼽게 보았던 건 그녀의 신분과 인품 때문이 아니라 그녀와 남하준의 관계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넷째 남태준을 제외하고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했다.“완자야, 전에는 고모가 너 못 알아보고 실례했어. 너무 고모 탓하지 마.”남연희가 알랑거리는 투로 말하자 정안이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었다.“저 고모님 탓한 적 없어요.”최서윤은 냉담한 얼굴로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비꼬아 말했다.“오늘 어머님 생신 축하하는 자리에 모두 우리 식구들만 모였는데 그쪽은 무슨 신분으로 왔는지 몰라.”정안은 얼굴이 약간 어두워지더니 최서윤을 바라보았다.최서윤이 정안에게 시비를 걸자 다들 안색이 어두워졌다.“내가 알기로는 그쪽과 도련님의 결혼은 무효라고 하던데, 그럼 지금 도련님 아내도 아니고 여자친구도 아니잖아요? 여기 많은 사람 중에 그쪽만 외부인이라 대체 무슨 신분으로 왔는지 궁금해서 물었어요.”셋째 남영준이 창피해서 식탁 아래로 그녀의 발을 필사적으로 찼다.그러나 최서윤은 창피한 줄 모르고 소리쳤다.“당신 왜 그래요?”남영준은 순간 겁에 질려 고개를 떨구고 감히 그녀의 일에 관여하지 못했다.허윤미와 남창민은 며느리에게 미움을 살 수 없어 난처하게 서로 쳐다보기만 했다.첫째와 둘째 내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나설 생각이 없었고 남연희가 나서서 조롱했다.“이봐, 얘가 어디 남이야? 백완자잖아!”최서윤은 두 손을 가슴에 얹고 도도한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백완자면 왜요? 그래도 우리 집안 사람은 아니잖아요? 오늘 가족끼리만 모이는 회식이라면서요?”남하준의 안색이 어둡고 차가워지더니 날카로운 눈동자는 얼음장처럼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최서윤을 향해 쏟아졌다.“우리 결혼이 법적으로 무효라고 해서 완자가 내 아내가 아니란 뜻은 아니잖아?”남하준이 또박또박 꾸짖었다.“불만 있으면 나한테 말해. 괜히 완자 물고 늘어지
정안은 옅게 웃으며 남하준의 손을 밀어냈다. 자신의 존재로 인해 생일 파티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다.“오빠, 아주머니랑 생일 잘 보내세요. 난 확실히 이 집안 사람이 아니에요. 셋째 형님께서 나 보고 싶어 하지 않으니 내가 가야죠.”남하준은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래지고 분노가 끓어올라 말을 하려다가 정안에 의해 다시 중단되었다.그녀의 말투가 조금 더 강력해졌다.“이번 한 번만 내 말 들어요. 네?”말을 마친 정안은 모두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돌아섰다.남씨 가문 사람들은 전부 나서서 만류하지 않았다. 모두 최서윤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들은 최서윤이 확실히 지나쳤다고 생각하지만 그녀와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을 것이다.정안이 핸드백을 들고 본가를 떠났다.저녁노을의 잔광이 온 대지를 뒤덮고,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맑은 바람이 불어와 따뜻함이 넘쳤다.앞뜰에 꽃향기가 코를 찔렀지만 정안은 발걸음이 무거워 걱정스러운 듯 대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녀는 자신이 이곳에 속해 있지 않다고 느껴 알 수 없는 서글픔이 몰려왔다. 갑자기 뒤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정안이 돌아섰을 때 남하준은 이미 그녀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그녀는 약간 멍해졌다. 남자의 따뜻하고 두툼한 큰 손이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알 수 없는 감동과 설렘이 밀려와 눈시울이 붉어졌다.“왜 나왔어요?”태연한 표정의 남하준은 따듯한 웃음을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집에 가자. 맛있는 거 해줄게.”정안은 여전히 불안했다.“그래도 오늘은 아주머니 생신인데 여기 있어요.”남하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갔다.“와서 얼굴 봤고 선물도 줬어. 그리고 생일은 해마다 있지 뭐 올해만 있나?”“분명 속상해하실 거예요.”“그럴 리 없어.”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해 질 녘을 걷고 있는 두 사람의 평온한 겉모습에 비해 가슴은 들끓고 있었다.일찍 나왔기 때문에 류청의 차가 아직 그들을 데리러 오지 않
두 사람은 차를 탈 생각이 없었고 계속 이렇게 손잡고 걷고 싶었다.정안이 나지막이 대답했다.“네. 가야 해요.”“언제 가?”남하준이 묻자 정안은 가슴이 찌릿찌릿 아파졌지만 덤덤하게 말했다.“Z국은 이미 사람을 보내 나 데리러 왔어요. 그 사람이 내 앞에 온 순간이 바로 내가 떠나는 날이에요.”남하준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어두워진 하늘가를 바라보니 가슴이 먹먹하고 숨이 막히는 듯한 괴로움이 느껴졌다.정안이 계속 말을 이었다.“오빠가 계속 우리 부모님 행방을 찾아주셨으면 해요.”“그건 걱정 마.”“Z국에도 우리 부모님을 찾아달라고 요청할 거예요.”남하준은 또 침묵에 빠지고 발걸음도 무거워졌다.“오빠, 혹시 시간 나면 할아버지랑 할머니 뵈러 가줄 수 있어요? 두 분 모두 연세가 드셨고 가족도 없으셔서...”정안은 말할수록 괴로운 감정이 가슴에 차올라 목에 메어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두 분 모두 내 일에 대해 잘 모르셔서 내가 왜 자주 연락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려우실 거예요. 내가 M국에 돌아와서 뵐 수도 없고... 두 분한테 너무 미안해요.”남하준은 순간 발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그녀 앞에서 눈물을 흘릴까 봐 두려워 그녀의 얼굴을 볼 용기가 없었다.그는 괴로움을 참고 짐짓 덤덤하게 말했다.“10년 전, 네가 M국을 떠날 때 이미 평생 돌아오지 않을 각오를 한 거잖아.”“그래서 M국의 모든 인연을 끊었고. 친구들과 나를 포함한 모두와 연락을 단절했지”“백인호가 아니었으면 넌 M국에 오지 않았을 거야.”남하준은 희미한 눈으로 먼 곳의 불빛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물었다.“이번엔 얼마나 떠나 있을 거야? 5년? 10년? 아니면 15년?”정안은 마음이 찡하고 괴롭고 슬퍼 견딜 수 없었다. 머나먼 땅에서 한 남자가 그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지만 그녀는 어떤 약속도 미래도 줄 수 없으니 괴로워 울고 싶었다.그녀는 깊은 숨을 내쉬고 울먹이며 말했다.“오빠, 나 기다리지 말고 좋은 여자 만나요. 이제 달콤한 연애도 하고 결혼해서
밤은 아름답고 거리 풍경은 어슴푸레했는데 그날 밤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금원으로 돌아온 후, 남하준은 일이 바빠서 서재에서 하룻밤을 보냈고 다음 날 아침, 그는 그룹에 급한 일이 생겨서 일찍 금원을 떠났다.남하준은 그녀를 군전 그룹으로 데려가지 않았다.소탈하고 평온한 작별 인사였다.두 사람은 속으로 알고 있었다. 이번에 서로 헤어지면 평생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걸.아프고 섭섭한 마음으로 정중히 작별 인사를 하기보다는 그냥 무심코 지나치는 게 나았다.그는 군전 그룹에 가서 일하고 그녀는 Z국으로 돌아가 그녀의 연구를 계속하며 서로 낯선 사람이 되는 거였다.정안은 금원의 남은 물건을 정리하고 아쉬운 듯 이 집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그 거대한 책장, 따뜻한 장식, 모두 그녀가 좋아하는 디테일로 넘쳤다.가짜 백하린이 돌아왔을 때, 남하준은 지체 없이 이 집을 꾸미며 오랫동안 사랑한 여자와 결혼하기를 꿈꿨을 것이다.대체 어떤 힘이 이 남자를 십여 년 동안이나 그녀를 사랑하고, 결국 그녀의 모든 것을 태연하게 받아들이고, 결연히 그녀를 떠나보낼 수 있게 했을까?정안은 남하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났다.자신이 이 남자의 깊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 같았다.정안은 눈물을 훔치고 가방을 들고 금원을 떠났다.밖에서 기다리던 지윤이 정안이 나오는 걸 보고 급하게 가방을 받다가 그녀의 눈이 퉁퉁 부은 것을 보고 안쓰러워하며 물었다.“언니 눈이 엄청 부었어요. 밤새 울었어요?”정안은 두 손을 눈에 대고 아픈 눈을 쉬게 하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추슬렀다.“괜찮아.”“언니 며칠 후면 떠나는데 도련님은 갑자기 그룹으로 돌아가셨어요. 설마 언니 가는 거 마중도 안 해요?”“나 갈 때 알리지 말라고 했어.”정안은 말하다가 울음을 참지 못하고 흐느꼈다.“나 못 떠나게 하려고 어디 꼭꼭 숨겨둘까 봐 무섭대.”지윤은 마음이 아파서 다가가서 그녀를 껴안고 등을 토닥였다.“울지 말아요. 도련님은 언니를 너무 사랑해서 언
그래서 지금 그녀가 떠나려고 하는데, 그는 그녀를 배웅할 용기도 없고, 그녀가 언제 어디서 떠나려는지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그녀의 뒷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만 보지 않는다면 덜 아플까?운전에 열중하던 지윤은 눈물범벅이 된 정안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백씨 저택에 도착하고 정안은 무거운 걸음으로 거실로 들어가 소파에 앉아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보고 다가갔다.백진과 여은수는 반가운 마음으로 일어나 그녀를 반겼는데 그녀의 퉁퉁 부은 눈을 보고 화를 참지 못했다.백진이 화가 나서 물었다.“하준이가 너 괴롭혔어?”여은수는 마음이 아파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하준이 녀석 대체 뭐 하는 녀석이야? 왜 우리 완자를 울리고 그래? 지금 하준이 어디 있어? 내가 당장 가서 혼내주마!”정안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울먹였다.“하준 오빠 나 괴롭히지 않았어요.”여은수는 정안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가슴이 아파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런데 왜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거냐? 어제 한숨도 못 잔 거야?”정안은 그들을 소파에 앉히고 그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백진과 여은수는 당황해서 황급히 그녀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정안이 그들의 부축을 밀어냈다.“할아버지, 할머니. 앉아 계세요.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요.”“할 말 있으면 하면 되지. 왜 무릎을 꿇어?”정안은 여전히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못한 채 죄책감 가득 말했다.“죄송해요. 손녀가 불효를 저지르려고 해요. 앞으로 두 분 옆에 남아서 노후를 돌볼 수 없을 것 같아요.”여은수는 크게 당황하더니 얼굴이 창백해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정안의 손을 잡고 말했다.“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얼굴이 어두워진 백진은 그윽한 눈동자로 말없이 정안을 바라보며 그녀의 뜻을 짐작하는 듯했다.정안은 고개를 숙이고 울먹이며 말했다.“저 Z국으로 돌아가 원래 일을 계속해야 해요. 다시 출근하면 또 10개월 동안 연락할 수 없고 매년 설 연휴 전후로 한 달 동안만
한참을 운 후에야 여은수는 결국 정안을 너무 사랑해 타협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정안을 일으켜 세우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눈에는 애틋함이 가득했다.“이미 네가 가기로 마음먹었으니 할머니가 아무리 아쉬워도 강요하지 않으마. 너만 행복하고 즐거우면 된다.”정안은 숨도 못 쉴 정도로 가슴이 아팠고 감사했고 죄책감이 밀려왔다. 몸이 떨릴 정도로 울면서 할머니를 꼭 껴안고 울먹였다.“고마워요. 할머니.”백진은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며 눈가의 눈물을 훔치고 일어서서 정안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어렸을 때부터 정안은 사랑이 가득한 가정에서 살았다. 이 사랑은 그녀를 연약하지만 또 완강하게 보호해 주었고, 또한 그녀가 원하는 미래로 모든 것을 돌보지 않고 나아갈 수 있도록 지원했다.남은 시간 동안 정안은 매일 할아버지,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냈고 남태준도 자주 보러 갔다.그녀는 M국에서 처리해야 할 일을 모두 처리하고 친한 친구 지우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남태준에게도 떠나는 일을 말했다.그녀는 모든 것이 잘 처리되었다고 느꼈지만 심장은 오히려 텅 비어있는 것 같았고 알 수 없는 상실감에 마음이 괴로웠다.그녀는 그 텅 빈 부분이 남하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요즘 남하준은 마치 그녀를 잊은 듯 연락도 없었다.세월이 흘러 일주일이 지난 밤, 정안은 Z국에서 학생 때부터 직장생활까지 함께 한 선배 진도훈을 만났다.남자는 정장 차림에 준수한 외모를 가졌고 뿔테 안경을 쓴 문인 학자의 우아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그는 Z국 과학연구원에서 정안을 데려오라고 파견한 인물이었다.정안은 그를 본 순간 마음이 괴로웠지만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선배, 오랜만이에요.”진도훈은 안경을 부축하더니 흥분한 감정이 깃든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지난 3년 동안 네가 죽은 줄 알았어. 살아 있어 줘서 정말 다행이야.”정안은 씁쓸하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내가 이번에 왜 왔는지 알지?”“알아요
연결음 소리와 함께 정안의 심장은 기복이 심했고 긴장하여 위가 경련하는 것처럼 호흡마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잠시 후 통화가 연결되었다.“여보세요.”남자의 쉰 목소리는 힘이 빠진 듯, 영혼이 빠진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와 가슴을 아프게 했다.정안은 남자의 목소리에 억눌려 있던 감정이 일순간 소용돌이치고 가슴 끝을 조이며 아파졌다.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지 않기 위해 입을 막았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나와 그녀의 손바닥 안에 방울방울 떨어졌다.그녀는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따가워 한마디도 할 수 없었고 손을 놓으면 목 놓아 울 것 같았다.그녀는 지금까지 이 정도로 감정에 연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늘 이성적이고 사업 욕심도 컸는데 자신이 이렇게까지 나약할 줄은 몰랐다.전화기 너머로 남하준은 오랫동안 그녀의 목소리를 기다렸지만 돌아오는 건 조용하고 긴 침묵이었다.그는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얼었다.“완이 맞지? 왜 말이 없어?”정안은 온 힘을 다해 입을 틀어막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이미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물이 땅에 뚝뚝 떨어졌다.남하준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재치있게 말했다.“전화할 수 있다는 건 아직 M국에 있다는 거네? 영상통화 가능해? 보고 싶네.”너무 괴로운 정안은 휴대폰을 쥐고 울먹이는 입을 가리고 힘없이 털썩 내려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몸을 움츠렸다.더 이상 말을 하지 않으면 남하준이 전화를 끊을까 봐 무서웠다.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코를 훌쩍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이거 마지막 통화예요.”남하준의 목소리도 떨리고 목이 메었지만 그는 덤덤한 척 말했다.“그래. 마지막 통화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네. 앞으로 너 TV에 나오고, 더 위대한 무기를 개발하고, 미래에 노벨상을 따기를 바랄게.”정안이 고개를 저었다.“말도 안 돼요.”“그게 네 꿈이잖아.”정안은 울음을 참지 못하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요? 좀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없어요? 오빠가 이러면
지금 그녀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것이 아쉬운 감정이든 죄책감 때문이든 남하준은 기꺼이 만족했다.한 번도 그녀를 가져본 적이 없으므로 지금 그녀가 떠난다고 해서 잃을 것도 없었다.그런데도 그는 가슴에서 뜨거운 물이 끓어오르고 화끈거리는 듯한 아픔을 느꼈고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그녀에게 할 말이 많지만 다시는 말할 기회가 없었다.“일이 있어서 이만 끊을게.”그는 최대한 덤덤하게 말했다. 통제 불능이 되기 전에 통화를 끊어버리려고 애썼다.더 이상 전화를 끊지 않으면 그는 자신이 참을 수 없을까 봐, 즉시 비행기를 타고 그녀 곁으로 달려가 그녀를 강제로 붙잡아 둘까 봐 두려웠다.남하준은 먼저 통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내동댕이쳤다.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의자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어 눈을 감고 천장을 향해 고개를 젖히고는 두 손으로 주먹을 불끈 쥔 채 고통을 참아내고 있었다.너무 아프고 괴로웠다.눈가에 눈물이 고이고 주먹이 가늘게 떨리고 힘줄이 불끈 솟았다.요즘 꿈에서 그녀를 보는 것조차 마음이 아팠다. 감정에서 그는 조금도 강인하지 않았다.남하준의 눈가에 넘쳐흐르던 눈물이 차츰차츰 흘러내리면서 뺨을 타고 귓전으로 흘러내렸다.그때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남하준은 의자를 돌려서 들어온 사람에게 등을 돌렸고 입을 약간 벌리고 심호흡을 하며 몰래 눈가의 눈물을 닦았다.류청이 들어와 긴장한 채 말했다.“도련님, 안보국에서 정보를 보내왔는데 그 배신자와 백인호가 배를 타고 몰래 M국으로 입국한 후 종적을 감췄답니다.”남하준이 덤덤하게 물었다.“정호가?”“네. 그 배신자요. 돈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도련님까지 배신한 짐승이요. 제 손에 잡히기만 하면 반드시 대가리에 구멍을 뚫어줄 거예요.”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M국에 온 것은 분명 정안을 찾기 위해서였다.남하준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지윤에게 전화를 걸었고 통화가 곧 연결되었다.“도련님, 무슨 일이세요?”“백인호와 정호가 밀입국해 지금 M국에 잠입했어요
“그래 그럼.”남태준은 억지로 웃음을 짜냈다. 아무리 쓸쓸하고 힘들어도 그녀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기다리겠다고 약속했었다.지우가 그의 곁에 있는 한 그는 반드시 그녀의 마음, 그녀의 사랑, 그녀의 모든 것을 기다릴 수 있었다.그때, 입구의 벨이 울렸다.지우는 궁금한 얼굴로 남태준을 보았고 남태준도 입구를 보았다.“이 시간에 누구죠?”지우가 묻자 남태준이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아마 신우일 거야.”“먼저 먹고 있어.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볼게.”말하면서 그는 거실로 나와 문을 열었다.순간 남태준의 안색이 일그러졌다.바로 임다희였다.방금 차에서 내린 그녀는 한참을 생각했지만 이대로 남태준을 포기할 수 없어서 다시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찾아왔다.“태준아 난...”남태준은 바로 나가서 문을 닫고 임다희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집에 지우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두 사람이 재결합했다는 것을 임다희가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임다희가 알면 지우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고 불필요한 문제만 일으킬 수 있었다.그는 임다희가 그의 집에 있다는 것을, 임다희가 지우와 재결합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여긴 왜 왔어?”남태준은 불쾌한 듯 묻더니 그녀의 팔을 끌고 마당으로 향했다.임다희는 남태준의 언짢음과 난폭함을 느끼고 말했다.“너랑 다시 잘 얘기하려고 찾아왔어. 방금 너 쓰레기라고 욕한 거 사과할게. 너무 슬퍼서 홧김에 내뱉은 말이지 진심이 아니었어.”“나 쓰레기 맞아.”남태준은 그녀를 마당 밖으로 끌고 나가 철제 난간을 나와 철문을 걸어 잠그고 마당 바깥 입구에 서 있었다.“우리 친구는 될 수 있지만 연인으로는 얘기가 이미 끝났어.”“우리 앉아서 얘기 좀 해. 우리 다시 시작하자.”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의 덤덤한 눈을 올려다보며 울먹였다.“나 많이 변했어. 더 이상 이전의 임다희가 아니라고. 나 너를 많이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남태준은 몇 초 동안 어이없어 하더니 엄숙하게 말
지우는 예전에는 자신이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게 되었다.그녀는 남태준 같은 유형의 남자를 좋아했다.이런 성격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좋아함으로써 그의 성격도 좋아하게 된 것이다.지우는 부끄러운 듯 그의 목을 감싸고 나지막이 속삭였다.“아니요. 난 당신 같은 돌직구가 좋아요.”남태준은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의 붉어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맑고 큰 눈과 촉촉한 입술을 보니 저도 모르게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고 마음이 심란했다.그는 목젖을 위아래로 굴리며 그녀의 엉덩이를 한 손으로 감싸 안고 일어서더니 매력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가자. 밥 먹으러 가자. 다른 일에 주의력을 돌리지 않으면 내가 널 잡아 먹을 것 같아.”지우는 부끄러워하며 그의 어깨에 고개를 푹 묻었다.남태준은 그녀를 안고 식탁 앞에 놓아주었고 식탁 위의 반찬 세 가지와 국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너 정말 요리를 잘하는구나. 먹기도 전에 군침이 돌 정도로 비주얼이 훌륭해.”지우는 기분 좋게 앉아 그에게 국을 떠 주었다.남태준도 따라 앉아서 젓가락을 들어 한 입 맛보더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정말 맛있어. 지우가 한 음식이 이렇게 맛있다니.”지우는 그가 맛있게 먹는 걸 보고 뿌듯해졌다.그녀가 만든 건 그저 일상적인 가정식 음식이었고 평범한 재료를 이용해 만든 조리 방법도 단순했다.갈비찜, 토마토 달걀 볶음, 청경채, 그리고 어두 무찌개였다.그러나 남태준은 세상 맛있는 음식을 먹는 듯 싱글벙글했다.“내가 한 음식이 맛있다면서 그래도 나 음식 못하게 할 거예요?”지우가 궁금해서 묻자 남태준이 피식 웃더니 입에 든 음식을 삼키고 목을 축이고 말했다.“만약 네가 음식 만드는 거 좋아하고 취미라면 그리고 힘들지 않다면 해도 돼.”“하지만 네 취미도 아니고 임무를 완성하는 것처럼 한다면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거듭하며 네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어. 그러면 너도 힘들잖아.”남태준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등을 만지며 부드럽게 중얼거렸다
남자는 손으로 지우의 허리를 꼭 껴안고 눈빛은 뜨거웠다.“내 침대에서 좀 더 오래 자지 그랬어?”“네?”지우가 의혹스러운 듯 맑은 눈망울을 깜빡이며 어리둥절했다.“내가 돌아오면 같이 잘 수 있게.”지우는 얼굴이 살짝 뜨거워졌고 그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수줍게 중얼거렸다.“누구 좋으라고요!”“앞으로 나 밥해주지 마.”남태준은 그녀의 하얀 작은 손을 만지고 입가에 끌어당겨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왜요?”지우는 자신의 요리 솜씨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집에서도 늘 그녀가 요리했으니.“내가 돌아와서 하면 돼. 내가 바쁘면 요리사 부르면 되고.”남태준은 그녀의 손을 문지르며 안타까워하며 바라보았다.“내 여자친구는 요리나 집안일 같은 거 할 필요 없어.”그 말을 들은 지우는 호기심에 물었다.“그럼 여자친구가 뭘 해줬으면 좋겠어요?”남태준이 부드럽게 말했다.“정신적 지주 같은 역할? 나에게 네 일을 공유하고 내 일을 경청하고 각자의 일을 마친 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시시한 일을 했으면 좋겠어.”“뭐가 시시한 일인데요?”“영화 보고 밥 먹고 산책하고 쇼핑하고...”남태준은 말을 잇지 못하고 그녀에게 다가가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갑작스러운 키스에 지우는 저도 모르게 수줍은 소리가 목구멍에서 새어 나왔다.그의 키스는 뜨거웠고 큰 손은 천천히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끌어안아 그녀의 엉덩이를 안으로 오므렸다.진한 키스가 뜨거워질수록 지우는 그의 몸 반응이 점점 강렬해지는 것을 느꼈다. 앉은 위치가 애매해 커다란 것이 몸에 받치는 느낌이 들었다.그녀의 온몸은 저도 모르게 나른해지고 팔다리에는 마치 전류가 흐르는 것 같고 아랫배가 공허해졌다.떨림, 수줍음 그리고 왠지 모를 두려움이 그녀를 도망치게 했다.그녀가 옮기려고 할수록 남태준이 그녀를 껴안고 더 바싹 달라붙었다.진한 키스가 불러온 욕망에 두 사람의 숨결은 가빠졌다.남태준은 천천히 그녀의 입술에서 떠나 그녀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제 목소리를 잃은 듯 쉰 목소리로 가볍게 중
“그럼...”임다희는 믿기 싫은 듯 눈물이 핑 돌았다.“내가 목숨 걸고 널 구한 건 내가 경찰이기 때문이야. 사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어.”“그럴 리 없어.”임다희는 분노하여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울먹였다.“나 절대 못 믿어. 나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날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어?”남태준은 긴 한숨과 함께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임다희, 난 널 위해 목숨을 버린 적 없어.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무슨 논리?”임다희가 눈물을 쓱 닦았다.“넌 그래도 내가 사귀었던 여자친구니까 측은한 마음에 그 요트를 떠나라는 것을 상기시켰을 뿐인데 네가 내 신분을 폭로한 거야.”남태준은 그녀를 구하려던 동기를 차근차근 분석해줬다.“네가 내 스파이 신분을 폭로하면서 우리 둘 다 위험에 빠졌어. 도망가야 하는 상황에서 경찰로서 난 절대 자기 살길만 도모하고 다른 사람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어. 경찰의 책임감으로 너 데리고 도망친 거야.”임다희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이해하기 어려웠다.남태준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내가 죽을 뻔한 건 너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네가 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야.”지금 남태준이 그녀를 원망하지 않는 것은 그의 관대함 때문이었다.“너 지우 때문에 여기 와서 일하는 거야?”임다희가 눈물이 흐릿해져서 묻자 남태준이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맞아.”“하지만 지우가 너를 차버렸어.”임다희는 눈물을 닦고 고상한 자태를 뽐내며 조롱하듯 물었다.“이번에도 흔쾌히 승낙하고 깨끗이 잊은 거야?”남태준은 입술을 오므리고 몇 초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질투가 많은 여자는 신중하게 대처해야 했다.“맞아. 깨끗이 잊었어. 이미 끝난 인연이고 지나간 사람을 놓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겠어? 이 세상에 여자가 수도 없이 많은데 한 나무에만 매달릴 필요 없잖아?”임다희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매섭게 말했다.“쓰레기!”그리고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더니 문을
사람은 기쁜 일이 생기면 기분이 상쾌한 법이다. 하루 종일 바빠도 지우와의 관계를 회복한 생각만 하면 속으로 은근히 기뻐 났다.남태준이 막 차 옆으로 다가갔을 때 임다희가 차 뒤에서 걸어왔다.“태준아.”남태준은 멈칫하고 고개를 돌려 여유롭게 물었다.“임다희? 무슨 일이야?”“할 얘기가 있어. 아주 중요한 얘기야.”임다희는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타.”남태준이 쿨하게 대답하자 임다희는 그의 차에 올라탔고 남태준이 시동을 걸고 떠났다.차 안에서 남태준이 물었다.“어디서 얘기할래?”“너희 집.”남태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단호하게 거절했다.“그건 안돼.”“아주 중요한 일이야. 반드시 사람 없는 곳에서 얘기하고 싶어서 그래.”임다희는 남자의 준수한 얼굴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빛을 내뿜으며 엄숙하게 말했다.“마약 거래에 관한 얘기야.”“그럼 지금 얘기해.”남태준은 차를 길가에 세웠다.“차 안에는 우리 둘만 있으니까 안전해.”임다희가 앞뒤를 돌아보니 이 길은 행인도 없고 오가는 차량도 뜸했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남태준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지 않으려 하자 마지못해 핸드백을 열어 그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이 시간에 거래가 있을 거야.”그의 다년간 사건 처리 경험으로 볼 때, 이렇게 명확한 거래 장소와 시간은 임다희가 절대 알 수 없었다.이 정보가 가짜이거나, 누군가가 그녀에게 준 것이 틀림 없었다.“어디서 났어?”남태준이 묻자 임다희는 조금 켕긴 듯 대답했다.“건달인 친구가 알아낸 정보인데 내가 샀어.”남태준은 입꼬리를 꼬며 그녀의 거짓말이 좀 억지스러워서 계속 물었다. “네가 마약 형사도 아니고 이 정보를 왜 사는데?”“너 주려고.”남태준은 움찔하더니 침묵했다.임다희는 애정 어린 눈으로 남태준을 지그시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태준아, 우리 다시 만나자.”남태준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뭐라고?”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울먹였다.“전에는 내가 미안했어. 네
지하 카지노 사무실.육건우는 자료를 책상에 던지고는 화가 나서 일어나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임다희를 노려봤다.“너 혹시 남태준 스파이야?”임다희가 미소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그럴 리가 있나요? 우리는 같은 배에 탄 사람이잖아요. 내가 남태준을 도와서 얻을 수 있는 게 뭔데요? 난 단지 애매한 단서만 줬지 실질적인 증거를 준 적은 없어요.”“요즘 사복 경찰이 계속 우리 촬영장 밖을 배회하고 가끔 항공사진 드론이 공중을 선회하고 또...”육건우는 책상으로 가서 서류뭉치를 집어던졌다.“이건 전부 최근 경찰들에게 적발된 물건이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젠장!”임다희는 긴장해서 침을 삼키고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육건우는 분노하여 임다희를 가리키며 이를 갈았다.“네 신분을 잊지 마. 내가 너를 도와 남태준과 그 여자를 갈라놓겠다고 약속했고 그 동생까지 함정에 빠뜨렸어. 그런데 그 여자가 지금 나를 고소했다고. 젠장.”임다희는 웃어 보이며 말했다.“제가 어떻게 사장님의 큰 은혜를 잊겠어요? 다만... 저는 다시 전 남자친구와 재결합하고 싶어요. 그런데 하필 태준이가 마약 경찰이잖아요. 그래서 저... 이 일에서 손 떼고 싶은데 보스에게 사정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육건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이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임다희가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그해 남태준과 요트에서 탈출한 뒤 남태준은 그녀 때문에 다시 잡혀가 바다에 빠져 하마터면 숨질 뻔했지만 그녀는 사실 안전하게 귀국할 방법이 없었다.배후의 빅보스가 바로 그녀를 죽이려고 했지만 육건우가 빅보스에게 사정을 해서 그녀에게 살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그녀의 연예인 신분을 이용하여 마약을 갖고 귀국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그녀는 마지못해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십여 킬로그램의 마약을 촬영장 카메라 기둥에 숨긴 후 요트를 타고 귀국했다.그 이후로 그녀는 마약밀매 조직의 일원이 되었고 매번 물건을 가져오거나 몸을 헌신해야 했다.임
꽃가게 앞을 지날 때 남태준이 걸음을 멈추었다.“지우야. 나...”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는 재빨리 그를 끌고 나가 그의 팔을 껴안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부질 없는 곳에 돈 낭비하지 말아요.”“여자들은 다 꽃을 좋아하지 않아?”지우에 의해 팔이 단단히 조여진 남태준은 아주 편안했고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 번졌다.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안 좋아해요. 굳이 사주고 싶다면 차라리 다육식물을 줘요. 기르기도 쉽고 번식도 할 수 있잖아요.”“가방의 품질, 브랜드, 가격 중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가격이죠.”남태준은 피식 웃더니 그녀의 소비 관념과 가치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또 물었다.“다이아몬드와 금 중에 뭐가 좋아?”“금이요.”지우가 고민도 없이 대답하자 남태준은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좋아. 알겠어.”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을 때 흥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우야!”지우가 멈칫하고 뒤를 돌아보더니 그녀를 부른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바로 그녀에게 맞선 상대를 소개해 준 중매인이었다.그녀는 빠르게 남태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놀라움과 설렘이 가득해 말했다.“어쩐지 내가 그렇게 좋은 남자들을 소개해줘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라니. 알고 보니 눈이 이렇게 높았었네? 남편 어디 사람이야? 누가 소개해줬어?”지우는 어색하고 난처해하며 웃어 보였다.“친구가 소개해줬어요.”말하자면 백완자가 그들을 소개해 준 셈이었다.“외모도 빼어나고 큰 기에 몸매도 좋네. 어디 사람이야? 무슨 일 해?”역시 가십에 관심이 많은 중매인이었다.남태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지 않았지만 지우는 조금 당황한 듯했다.“안성 사람이에요. 아주머니, 제가 얼른 가서 밥해야 해서요. 다음에 얘기 나눠요.”“안성 좋지! 큰 도시 사람이네!”지우는 남태준의 손을 잡고 서둘러 떠났다.그녀는 매우 급하게 걸었지만 남태준의 얼굴에는
지우는 긴장되어 귀가 빨개졌다.“싫어?”남태준은 그녀의 진심을 떠보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와 재결합하고 싶은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의 허벅지에 몸을 기울여 앉았는데 긴장해서 등이 약간 뻣뻣했다.남태준은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덥석 끌어안고 뒤로 기댔다.지우는 그의 튼실한 가슴에 완전히 엎드렸고 몸이 나른해졌다. 수줍고 난처해 감히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그의 품에 안겨있는 느낌은 아주 편안하고 심장이 왠지 모르게 떨리면서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만약 네가 불편하거나 거부감이 든다면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남태준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갖고 싶었지만 그녀가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그 말을 들은 지우는 조바심이 났다.그녀는 남태준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그의 깊고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나 불편하지 않아요. 거부감도 들지 않고요.”“그러니까 너 지금...”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가 갑자기 입을 맞추었다.그러자 남자는 움찔했다.지우는 눈을 감고 두 손을 천천히 남자의 어깨에서 뒤로 걸어 목을 감은 뒤 수줍고 서툴게 그의 따뜻한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그녀는 심장이 천둥처럼 뛰었다.남태준은 몇 초 동안 멍해졌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마음은 더없이 흥분되었다.그는 지우의 뒤통수를 낚아채 옅은 키스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의 입술과 혀는 그녀의 어금니를 비틀어 열고 곧장 달려들어 여자의 혀와 한데 엉켰다.“음!”지우는 그의 공세에 못 이겨 수줍은 소리를 냈다.그동안의 갈망과 그리움을 남태준은 한숨에 모두 보상받고 싶은 심정이었다.지우를 꽉 껴안고 격렬하고 난폭한 키스를 계속 퍼부었다.긴 키스가 이어지고 지우는 입술이 다 아프고 호흡이 가쁜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남자의 가슴을 밀면서 고개를 뒤로 뺐다.남태준은 아쉬운 듯이 그녀를 놓아주었다.두 사람은 눈을 감고 서로 이마를 맞댔고 거친 호흡을 나누며 뜨거운 기운이 감돌
지우가 부랴부랴 그를 불렀다. “아니요. 나 안 더워요.”남태준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리모컨을 놓았다.그녀의 영롱한 큰 눈은 여전히 아름답고 맑고 깨끗했으며 매력적이었다.지우는 잔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한 후 용기를 내어 물었다. “태준 씨가 임다희와 사귀는지 물어보려고 왔어요.”남태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지우는 휴대전화를 꺼내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여 남태준에게 건넸다.순간, 지우는 자신의 이런 행동이 지나치다고 느꼈다. 이미 헤어진 이상 그와 다른 여자에 관해 물어볼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녀는 참지 못했다.확실히 묻지 않으면 그녀는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비록 죄책감을 느끼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다만 이때 그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은 그녀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아 보일 수 있었다.모두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이 저지른 일이지만 그녀는 동생의 취업을 위해 목적을 갖고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그렇게 생각한 지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뉴스를 본 남태준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긴장하며 설명했다.“지우야. 나와 다희 그런 사이 아니야. 나 믿어줘.”현재 임다희는 그의 정보원이기 때문에 보안 및 기밀 유지 계약으로 인해 임다희의 신분과 작업을 기밀로 유지해야 했으므로 지우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지우가 자신을 믿지 못할까 봐 초조하게 이마를 짚고 죽을상이 된 얼굴로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고 또 불안하게 소파에 기대어 지우를 바라봤다.지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이 여자가 먹여준 음식 먹었어요?”“그저 보통 친구와 밥 한 끼 먹은 거야. 나와 다희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 아니야.”“안 먹었어요?”“응. 거절했어.”“아.”지우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술을 오므렸다.그러자 둘 다 침묵에 빠졌다.남태준이 지우를 바라보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뭔가 고민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