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지금 그녀가 떠나려고 하는데, 그는 그녀를 배웅할 용기도 없고, 그녀가 언제 어디서 떠나려는지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그녀의 뒷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만 보지 않는다면 덜 아플까?운전에 열중하던 지윤은 눈물범벅이 된 정안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백씨 저택에 도착하고 정안은 무거운 걸음으로 거실로 들어가 소파에 앉아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보고 다가갔다.백진과 여은수는 반가운 마음으로 일어나 그녀를 반겼는데 그녀의 퉁퉁 부은 눈을 보고 화를 참지 못했다.백진이 화가 나서 물었다.“하준이가 너 괴롭혔어?”여은수는 마음이 아파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하준이 녀석 대체 뭐 하는 녀석이야? 왜 우리 완자를 울리고 그래? 지금 하준이 어디 있어? 내가 당장 가서 혼내주마!”정안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울먹였다.“하준 오빠 나 괴롭히지 않았어요.”여은수는 정안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가슴이 아파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런데 왜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거냐? 어제 한숨도 못 잔 거야?”정안은 그들을 소파에 앉히고 그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백진과 여은수는 당황해서 황급히 그녀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정안이 그들의 부축을 밀어냈다.“할아버지, 할머니. 앉아 계세요.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요.”“할 말 있으면 하면 되지. 왜 무릎을 꿇어?”정안은 여전히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못한 채 죄책감 가득 말했다.“죄송해요. 손녀가 불효를 저지르려고 해요. 앞으로 두 분 옆에 남아서 노후를 돌볼 수 없을 것 같아요.”여은수는 크게 당황하더니 얼굴이 창백해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정안의 손을 잡고 말했다.“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얼굴이 어두워진 백진은 그윽한 눈동자로 말없이 정안을 바라보며 그녀의 뜻을 짐작하는 듯했다.정안은 고개를 숙이고 울먹이며 말했다.“저 Z국으로 돌아가 원래 일을 계속해야 해요. 다시 출근하면 또 10개월 동안 연락할 수 없고 매년 설 연휴 전후로 한 달 동안만
한참을 운 후에야 여은수는 결국 정안을 너무 사랑해 타협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정안을 일으켜 세우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눈에는 애틋함이 가득했다.“이미 네가 가기로 마음먹었으니 할머니가 아무리 아쉬워도 강요하지 않으마. 너만 행복하고 즐거우면 된다.”정안은 숨도 못 쉴 정도로 가슴이 아팠고 감사했고 죄책감이 밀려왔다. 몸이 떨릴 정도로 울면서 할머니를 꼭 껴안고 울먹였다.“고마워요. 할머니.”백진은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며 눈가의 눈물을 훔치고 일어서서 정안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어렸을 때부터 정안은 사랑이 가득한 가정에서 살았다. 이 사랑은 그녀를 연약하지만 또 완강하게 보호해 주었고, 또한 그녀가 원하는 미래로 모든 것을 돌보지 않고 나아갈 수 있도록 지원했다.남은 시간 동안 정안은 매일 할아버지,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냈고 남태준도 자주 보러 갔다.그녀는 M국에서 처리해야 할 일을 모두 처리하고 친한 친구 지우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남태준에게도 떠나는 일을 말했다.그녀는 모든 것이 잘 처리되었다고 느꼈지만 심장은 오히려 텅 비어있는 것 같았고 알 수 없는 상실감에 마음이 괴로웠다.그녀는 그 텅 빈 부분이 남하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요즘 남하준은 마치 그녀를 잊은 듯 연락도 없었다.세월이 흘러 일주일이 지난 밤, 정안은 Z국에서 학생 때부터 직장생활까지 함께 한 선배 진도훈을 만났다.남자는 정장 차림에 준수한 외모를 가졌고 뿔테 안경을 쓴 문인 학자의 우아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그는 Z국 과학연구원에서 정안을 데려오라고 파견한 인물이었다.정안은 그를 본 순간 마음이 괴로웠지만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선배, 오랜만이에요.”진도훈은 안경을 부축하더니 흥분한 감정이 깃든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지난 3년 동안 네가 죽은 줄 알았어. 살아 있어 줘서 정말 다행이야.”정안은 씁쓸하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내가 이번에 왜 왔는지 알지?”“알아요
연결음 소리와 함께 정안의 심장은 기복이 심했고 긴장하여 위가 경련하는 것처럼 호흡마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잠시 후 통화가 연결되었다.“여보세요.”남자의 쉰 목소리는 힘이 빠진 듯, 영혼이 빠진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와 가슴을 아프게 했다.정안은 남자의 목소리에 억눌려 있던 감정이 일순간 소용돌이치고 가슴 끝을 조이며 아파졌다.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지 않기 위해 입을 막았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나와 그녀의 손바닥 안에 방울방울 떨어졌다.그녀는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따가워 한마디도 할 수 없었고 손을 놓으면 목 놓아 울 것 같았다.그녀는 지금까지 이 정도로 감정에 연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늘 이성적이고 사업 욕심도 컸는데 자신이 이렇게까지 나약할 줄은 몰랐다.전화기 너머로 남하준은 오랫동안 그녀의 목소리를 기다렸지만 돌아오는 건 조용하고 긴 침묵이었다.그는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얼었다.“완이 맞지? 왜 말이 없어?”정안은 온 힘을 다해 입을 틀어막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이미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물이 땅에 뚝뚝 떨어졌다.남하준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재치있게 말했다.“전화할 수 있다는 건 아직 M국에 있다는 거네? 영상통화 가능해? 보고 싶네.”너무 괴로운 정안은 휴대폰을 쥐고 울먹이는 입을 가리고 힘없이 털썩 내려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몸을 움츠렸다.더 이상 말을 하지 않으면 남하준이 전화를 끊을까 봐 무서웠다.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코를 훌쩍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이거 마지막 통화예요.”남하준의 목소리도 떨리고 목이 메었지만 그는 덤덤한 척 말했다.“그래. 마지막 통화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네. 앞으로 너 TV에 나오고, 더 위대한 무기를 개발하고, 미래에 노벨상을 따기를 바랄게.”정안이 고개를 저었다.“말도 안 돼요.”“그게 네 꿈이잖아.”정안은 울음을 참지 못하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요? 좀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없어요? 오빠가 이러면
지금 그녀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것이 아쉬운 감정이든 죄책감 때문이든 남하준은 기꺼이 만족했다.한 번도 그녀를 가져본 적이 없으므로 지금 그녀가 떠난다고 해서 잃을 것도 없었다.그런데도 그는 가슴에서 뜨거운 물이 끓어오르고 화끈거리는 듯한 아픔을 느꼈고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그녀에게 할 말이 많지만 다시는 말할 기회가 없었다.“일이 있어서 이만 끊을게.”그는 최대한 덤덤하게 말했다. 통제 불능이 되기 전에 통화를 끊어버리려고 애썼다.더 이상 전화를 끊지 않으면 그는 자신이 참을 수 없을까 봐, 즉시 비행기를 타고 그녀 곁으로 달려가 그녀를 강제로 붙잡아 둘까 봐 두려웠다.남하준은 먼저 통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내동댕이쳤다.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의자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어 눈을 감고 천장을 향해 고개를 젖히고는 두 손으로 주먹을 불끈 쥔 채 고통을 참아내고 있었다.너무 아프고 괴로웠다.눈가에 눈물이 고이고 주먹이 가늘게 떨리고 힘줄이 불끈 솟았다.요즘 꿈에서 그녀를 보는 것조차 마음이 아팠다. 감정에서 그는 조금도 강인하지 않았다.남하준의 눈가에 넘쳐흐르던 눈물이 차츰차츰 흘러내리면서 뺨을 타고 귓전으로 흘러내렸다.그때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남하준은 의자를 돌려서 들어온 사람에게 등을 돌렸고 입을 약간 벌리고 심호흡을 하며 몰래 눈가의 눈물을 닦았다.류청이 들어와 긴장한 채 말했다.“도련님, 안보국에서 정보를 보내왔는데 그 배신자와 백인호가 배를 타고 몰래 M국으로 입국한 후 종적을 감췄답니다.”남하준이 덤덤하게 물었다.“정호가?”“네. 그 배신자요. 돈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도련님까지 배신한 짐승이요. 제 손에 잡히기만 하면 반드시 대가리에 구멍을 뚫어줄 거예요.”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M국에 온 것은 분명 정안을 찾기 위해서였다.남하준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지윤에게 전화를 걸었고 통화가 곧 연결되었다.“도련님, 무슨 일이세요?”“백인호와 정호가 밀입국해 지금 M국에 잠입했어요
“사람이 짐승일 때 짐승보다 더 무서운 법이니까.”남하준은 탄식하며 말했고 류청은 그의 기분이 가라앉은 것을 보고 또 정호의 행동이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을 생각하며 한 걸음 나아가서 진지하게 말했다.“전 절대 정호처럼 한낱 돈 때문에 도련님을 배신하지 않을 거예요. 전 무조건 도련님께 충성하니 걱정 마십시오!”남하준은 가슴에 감동이 일었다.“너 믿어.”“감사합니다.”류청이 엄숙한 표정으로 답했다.어둠이 짙어가는데도 그룹 사무실의 불은 여전히 켜져 있었고 밤새도록 꺼지지 않았다....이튿날 아침.정안이 깨어났을 때 눈이 빨간 복숭아처럼 빨갛고 부어 있었다. 너무 많이 울어서 잠을 잘못 잔 탓에 얼굴도 퉁퉁 부었다.그녀는 일어나서 깨끗이 씻고 평범한 원피스에 검은색 숄더백을 메고 포니테일을 하고 집을 나섰다.아래층에서 지윤과 진도훈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지윤이 일어나서 인사도 하기 전에 정안의 소리에 묻혔다.“잠깐 남씨 본가에 들를 거야. 지윤아 너 나랑 같이 가.”지윤은 의혹스러웠고 진도훈이 일어나 긴장하며 물었다.“완자야, 오후 비행기 타고 출발해야 하는데 어디 가려고?”정안은 발걸음을 멈추고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매우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태준 오빠 설득해서 우리랑 함께 Z국에 가서 치료받게 할 거예요.”지윤이 경악했다.“왜요?”“현대 의학으로 치료되지 않는 골질환을 Z국은 전통 의술로 치료할 수 있어. 요 며칠 인터넷을 통해 많은 사례를 조사했는데, 현대 의학으로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평생 장애를 선고받은 환자들이 침술과 물리 치료로 다시 일어섰어.”지윤은 화들짝 놀랐다.“만약 그렇다면 시도해볼 만 하네요. 저도 같이 설득해 볼게요.”“나도 같이 가.”진도훈도 따라나섰고 세 사람은 나란히 백씨 저택을 나왔다.지윤이 차를 가지러 간 사이 진도훈이 정안을 몇 번 흘끗 보더니 말했다.“설득하지 못하더라도 제시간에 출발해야 해. 비행기 시간 놓치면 안 돼.”정안이 단호하게 말했다.“그럴 리 없어요. 만약
정안 일행이 남씨 본가에 도착해 남태준을 데리고 출국하겠다는 의사를 부모에게 말하자 두 사람 모두 지지했다.아들을 구할 수 있는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들은 모두 시도해 볼 의향이 있었다.하지만 남태준이 Z국 치료에 협조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 이 일을 정안에게 맡겼다.단풍잎 숲속 저택.정안이 다시 남태준을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완전히 새롭게 변했다.턱수염을 깨끗이 깎고 머리도 짧게 깎았고 캐주얼한 화이트 옷차림으로 깔끔하고 산뜻한 모습이었다.다만 이건 겉모습의 변화일 뿐 그의 몸은 여전히 야위고 퇴폐적이며 마치 산송장처럼 영혼이 없었다.지우가 남태준을 베란다로 밀고 가 햇볕을 쬐게 하자 그는 눈을 감고 뒤로 기대어 꼼짝도 하지 않았고 정안이 그에게 인사를 해도 대꾸조차 없었다.정안은 지우에게 진도훈을 소개했고 그들은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번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지우는 정안의 생각을 듣더니 경악했다.“Z국에 보내 치료한다고? 오늘 바로? 왜 이렇게 서둘러?”“미안해, 지우야. 나도 갑자기 결정한 거야. 태준 오빠를 외국으로 데려가 치료하고 싶은데 너도 같이 가줄 수 있어?”“나야 괜찮지.”지우는 한참을 머뭇거렸다.“하지만 태준 씨는 절대 쉽게 따라가지 않을 거야.”정안이 돌아보니 남태준은 햇빛 아래서 시든 나무처럼 음울한 냉기가 온몸을 뒤덮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정안은 거실을 나와 남태준 곁에 쭈그리고 앉아 그의 차가운 큰 손을 천천히 잡고 수척해진 얼굴을 올려다보며 속삭였다. “오빠, 나랑 외국에 치료하러 가요. 오빠 다리 반드시 치료할 수 있고 눈도 머리를 다쳐서 실명했을 뿐 완전히 가망이 없는 건 아니에요.”“계속 이렇게 자포자기해서는 안 돼요. 오빠, 정말 이 세상에 미련을 둘만 한 일이 하나도 없어요? 부모님도 있고 형제도 있잖아요. 가족분들이 오빠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낫기를 바라고 있어요.”“만약 두 다리도 움직일 수 있고 눈도 볼 수 있다면 열심히 살래요?”정안이 끊임없이 설득 했
정안이 남태준을 바라보았다.남태준의 몸이 아무리 야위고 정신이 퇴폐해도 1m 90㎝의 장신으로, 다년간 단련한 체력으로 여자 하나를 이기지 못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정안이 부드럽게 말했다.“나 지우 믿어. 분명 오빠를 잘 돌봤을 거야.”얼마 후 지우가 큰 캐리어 두 개를 끌고 내려왔고 진도훈과 지윤이 급히 가서 그녀를 도왔다.정안이 남태준의 휠체어를 밀고 밖으로 나갔고 그들은 곧 차에 올라 백씨 저택으로 향했다.정안은 조수석에 앉아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얼마나 지났을까, 뒷좌석에서 남태준의 허스키하고 매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얼음 동굴에서 나온 것처럼 서늘하고 아무 감정 없는 말투였다.“차 돌려.”지우가 말했다.“우리 지금 완자랑 함께 백씨 저택에 가서 짐 챙겨서 공항으로 가요. 그쪽 여권도 이미 내가 챙겼고 우리 치료받으러 외국 가요.”남태준이 이를 갈며 말했다.“차 돌리라고!”지우가 덤덤하게 말했다.“우리 치료받으러 외국 간다니까요.”“내 손에 죽는다?”지우는 두 손으로 가슴을 두르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그쪽이 날 죽여요? 참나. 밥은 내가 들이붓고, 샤워는 묶어서 하고 자기 전에 수면제를 먹어야 하는 사람이? 나 목 졸라 죽일 힘도 없으면서 지금 죽인다고 큰소리치는 거예요? 내 눈에 그쪽은 그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겁쟁이고 폐물이에요.”차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랐다.이게 바로 한 달에 800만 원짜리 간병인이란 말인가?남태준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했다.“너! 나 화나게 하지 마.”지우가 코웃음을 쳤다.“그쪽이 화나면 뭐 어쩔건데요?”정안은 듣다못해 다급히 지우를 바라보며 왜 그런 태도로 남태준을 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남태준은 이미 격노하여 통제 불능의 수사자처럼 창가에 앉아 있는 지우에게 몸을 돌렸다.그가 덤벼들자 지우는 재빨리 남태준의 두 손목을 잡고 몸을 뒤집어 그의 몸에 올라타 그의 두 손을 의자 등받이에 눌렀
“그쪽이 밥을 안 먹으면 난 당신을 짐승처럼 깔때기로 위에 쏟아부을 거고, 자지 않으면 수면제를 먹여 재울 거예요. 어쨌든 당신이 자살하지 못하게 잘 지켜보면 되니까. 당신은 내 평생의 돈줄이 되는 거죠.”차에 타고 있던 다른 세 사람은 이 말을 듣고 이미 화가 나서 온몸이 괴로웠다.자신이 그런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미칠 것 같은 분노가 극에 달했다.남태준이 이를 갈며 또박또박 소리쳤다.“백완자. 이 여자 당장 해고해.”이건 남태준이 다친 이후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정안은 흥분해서 눈시울을 붉히며 돌아보았다. 지우의 방법에 공감할 수 없지만 효과는 확실히 있는 것 같았다.그녀는 기쁨에 겨워 말했다.“태준 오빠. 나 해고 못 해요. 만약 맘에 들지 않으면 오빠가 직접 쫓아낼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남태준은 심호흡을 하고 몸부림을 멈추더니 온몸이 나른해져 침묵을 지켰다.지우는 그가 다시 나른해지고 아무런 반응이 없자 천천히 그의 몸에서 내려와 자리에 앉았다.그녀는 남태준의 반응을 슬쩍 곁눈질하고 겁에 질린 심장을 잡은 채 몰래 숨을 내쉬었다.침착하고 강한 척했지만 손은 이미 떨리고 있었다.백씨 저택에 도착하자 철문이 열리고 차량이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정안이 문을 지키는 경호원을 보니 좀 낯설어 이상하게 생각했다.차량은 화원 대로를 따라 운전해 별장 앞에 도착했다.“언니, 도착했어요.”정안의 말투가 좀 당황한 듯했다.“좀 이상한데요?”정안도 이를 발견하고 급히 차에서 내려 큰 철문 쪽을 돌아보니 경비원은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철문 앞에 서서 오만방자하게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정안이 다시 저택 입구를 바라보니 두 명의 낯선 건장한 남자가 대문 좌우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들의 모습은 흉악하고 손을 허리에 누르고 있는 모습이 마치 기회를 노리고 언제든지 움직이려는 것 같았다. 옷 아래에는 아마 권총이 있었을 것이다.“저 사람들 누구야?”차에서 내린 진도훈이 긴장하며 묻자 정안이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