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 일행이 남씨 본가에 도착해 남태준을 데리고 출국하겠다는 의사를 부모에게 말하자 두 사람 모두 지지했다.아들을 구할 수 있는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들은 모두 시도해 볼 의향이 있었다.하지만 남태준이 Z국 치료에 협조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 이 일을 정안에게 맡겼다.단풍잎 숲속 저택.정안이 다시 남태준을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완전히 새롭게 변했다.턱수염을 깨끗이 깎고 머리도 짧게 깎았고 캐주얼한 화이트 옷차림으로 깔끔하고 산뜻한 모습이었다.다만 이건 겉모습의 변화일 뿐 그의 몸은 여전히 야위고 퇴폐적이며 마치 산송장처럼 영혼이 없었다.지우가 남태준을 베란다로 밀고 가 햇볕을 쬐게 하자 그는 눈을 감고 뒤로 기대어 꼼짝도 하지 않았고 정안이 그에게 인사를 해도 대꾸조차 없었다.정안은 지우에게 진도훈을 소개했고 그들은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번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지우는 정안의 생각을 듣더니 경악했다.“Z국에 보내 치료한다고? 오늘 바로? 왜 이렇게 서둘러?”“미안해, 지우야. 나도 갑자기 결정한 거야. 태준 오빠를 외국으로 데려가 치료하고 싶은데 너도 같이 가줄 수 있어?”“나야 괜찮지.”지우는 한참을 머뭇거렸다.“하지만 태준 씨는 절대 쉽게 따라가지 않을 거야.”정안이 돌아보니 남태준은 햇빛 아래서 시든 나무처럼 음울한 냉기가 온몸을 뒤덮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정안은 거실을 나와 남태준 곁에 쭈그리고 앉아 그의 차가운 큰 손을 천천히 잡고 수척해진 얼굴을 올려다보며 속삭였다. “오빠, 나랑 외국에 치료하러 가요. 오빠 다리 반드시 치료할 수 있고 눈도 머리를 다쳐서 실명했을 뿐 완전히 가망이 없는 건 아니에요.”“계속 이렇게 자포자기해서는 안 돼요. 오빠, 정말 이 세상에 미련을 둘만 한 일이 하나도 없어요? 부모님도 있고 형제도 있잖아요. 가족분들이 오빠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낫기를 바라고 있어요.”“만약 두 다리도 움직일 수 있고 눈도 볼 수 있다면 열심히 살래요?”정안이 끊임없이 설득 했
정안이 남태준을 바라보았다.남태준의 몸이 아무리 야위고 정신이 퇴폐해도 1m 90㎝의 장신으로, 다년간 단련한 체력으로 여자 하나를 이기지 못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정안이 부드럽게 말했다.“나 지우 믿어. 분명 오빠를 잘 돌봤을 거야.”얼마 후 지우가 큰 캐리어 두 개를 끌고 내려왔고 진도훈과 지윤이 급히 가서 그녀를 도왔다.정안이 남태준의 휠체어를 밀고 밖으로 나갔고 그들은 곧 차에 올라 백씨 저택으로 향했다.정안은 조수석에 앉아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얼마나 지났을까, 뒷좌석에서 남태준의 허스키하고 매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얼음 동굴에서 나온 것처럼 서늘하고 아무 감정 없는 말투였다.“차 돌려.”지우가 말했다.“우리 지금 완자랑 함께 백씨 저택에 가서 짐 챙겨서 공항으로 가요. 그쪽 여권도 이미 내가 챙겼고 우리 치료받으러 외국 가요.”남태준이 이를 갈며 말했다.“차 돌리라고!”지우가 덤덤하게 말했다.“우리 치료받으러 외국 간다니까요.”“내 손에 죽는다?”지우는 두 손으로 가슴을 두르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그쪽이 날 죽여요? 참나. 밥은 내가 들이붓고, 샤워는 묶어서 하고 자기 전에 수면제를 먹어야 하는 사람이? 나 목 졸라 죽일 힘도 없으면서 지금 죽인다고 큰소리치는 거예요? 내 눈에 그쪽은 그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겁쟁이고 폐물이에요.”차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랐다.이게 바로 한 달에 800만 원짜리 간병인이란 말인가?남태준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했다.“너! 나 화나게 하지 마.”지우가 코웃음을 쳤다.“그쪽이 화나면 뭐 어쩔건데요?”정안은 듣다못해 다급히 지우를 바라보며 왜 그런 태도로 남태준을 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남태준은 이미 격노하여 통제 불능의 수사자처럼 창가에 앉아 있는 지우에게 몸을 돌렸다.그가 덤벼들자 지우는 재빨리 남태준의 두 손목을 잡고 몸을 뒤집어 그의 몸에 올라타 그의 두 손을 의자 등받이에 눌렀
“그쪽이 밥을 안 먹으면 난 당신을 짐승처럼 깔때기로 위에 쏟아부을 거고, 자지 않으면 수면제를 먹여 재울 거예요. 어쨌든 당신이 자살하지 못하게 잘 지켜보면 되니까. 당신은 내 평생의 돈줄이 되는 거죠.”차에 타고 있던 다른 세 사람은 이 말을 듣고 이미 화가 나서 온몸이 괴로웠다.자신이 그런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미칠 것 같은 분노가 극에 달했다.남태준이 이를 갈며 또박또박 소리쳤다.“백완자. 이 여자 당장 해고해.”이건 남태준이 다친 이후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정안은 흥분해서 눈시울을 붉히며 돌아보았다. 지우의 방법에 공감할 수 없지만 효과는 확실히 있는 것 같았다.그녀는 기쁨에 겨워 말했다.“태준 오빠. 나 해고 못 해요. 만약 맘에 들지 않으면 오빠가 직접 쫓아낼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남태준은 심호흡을 하고 몸부림을 멈추더니 온몸이 나른해져 침묵을 지켰다.지우는 그가 다시 나른해지고 아무런 반응이 없자 천천히 그의 몸에서 내려와 자리에 앉았다.그녀는 남태준의 반응을 슬쩍 곁눈질하고 겁에 질린 심장을 잡은 채 몰래 숨을 내쉬었다.침착하고 강한 척했지만 손은 이미 떨리고 있었다.백씨 저택에 도착하자 철문이 열리고 차량이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정안이 문을 지키는 경호원을 보니 좀 낯설어 이상하게 생각했다.차량은 화원 대로를 따라 운전해 별장 앞에 도착했다.“언니, 도착했어요.”정안의 말투가 좀 당황한 듯했다.“좀 이상한데요?”정안도 이를 발견하고 급히 차에서 내려 큰 철문 쪽을 돌아보니 경비원은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철문 앞에 서서 오만방자하게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정안이 다시 저택 입구를 바라보니 두 명의 낯선 건장한 남자가 대문 좌우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들의 모습은 흉악하고 손을 허리에 누르고 있는 모습이 마치 기회를 노리고 언제든지 움직이려는 것 같았다. 옷 아래에는 아마 권총이 있었을 것이다.“저 사람들 누구야?”차에서 내린 진도훈이 긴장하며 묻자 정안이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
소파에는 백진과 여은수가 모두 끈으로 묶여 있었는데 입은 테이프로 막혔고 몸에 폭탄을 두르고 있었다.눈에 공포로 가득 찼던 그들은 정안이 돌아온 것을 보자 더욱 안쓰럽고 슬퍼하면서 몸부림쳤다. 입으로는 흑흑 소리를 내었고 눈에는 핏발이 섰다.마치 ‘왜 돌아왔어? 얼른 도망가야지!’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할아버지, 할머니...”정안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두 분이 다칠까 봐 전전긍긍하며 백인호에게 고함을 질렀다.“백인호.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백인호는 소파 반대편에 앉아 다리를 꼬고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내가 뭘 하려는지 뻔하지 않아?”그때 총을 든 남자가 그들에게 다가와 휴대폰 워치를 포함한 모든 통신 전자제품을 제출하라고 협박했다.지우는 고개를 숙이고 남태준의 귓가에 기대어 말했다.“우리 지금 납치됐어요. 십여 명의 남자들이 십여 자루의 총을 들고 있어요. 그리고 몇십 근의 폭탄도 설치되어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우리 모두 잿가루로 변해요. 그 쪽에겐 정말 행운이죠? 드디어 죽게 됐네요. 좋아요?”남태준은 차가운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같이 죽어주니 저승길이 외롭지 않아서 좋겠네요?”남태준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그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어금니를 꽉 깨물며 이 여자를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죽음을 앞둔 이 순간에도 잊지 않고 그를 모욕하고 있었다.그는 눈이 멀었지 귀머거리는 아니니 그녀가 귓속말로 비웃을 필요가 없었다.백인호가 남태준을 발견하더니 안색이 어두워져서 천천히 걸어갔다.“태준아, 너 왜 이래?”그와 함께 자란 친구가 갑자기 휠체어를 타고 뼈만 앙상하게 남았고 한때 의기양양한 남자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위축된 모습이었다.정안이 백인호의 앞을 가로막고 용기를 내어 말했다.“네가 찾는 사람은 나잖아. 다른 사람들은 모두 풀어줘.”백인호가 차가운 얼굴로 다시 물었다.“태준이 왜 저러냐고?”“마약 경찰이었는데 잠복 수사하다 신분이 노출돼 폭행당해서 눈
백진의 100조 원 자산과 비교하면 백인호가 요구한 10조 원은 확실히 단기간에 마련할 수 있었다.“좋아. 약속하지.”정안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가리키며 진지하고 엄숙하게 말했다.“하지만 두 분 몸에 있는 폭탄과 밧줄은 풀어줘.”백인호는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부하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총을 든 건장한 남자가 걸어가서 두 노인의 밧줄을 풀고 폭탄을 제거했다.두 노인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진작 벌벌 떨고 있었다.백진은 입에 틀어박힌 천을 뜯고 고함을 질렀다.“백인호! 당장 내 손녀 풀어줘! 그럼 10조 원이 아니라 100조 원을 다 줘도 좋으니까.”백인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백진을 쏘아보았다.“진작 그렇게 나오지 그러셨어요? 지금은 수배자라 아버지의 100조 원을 상속받을 수 없잖아요.”백진이 분노를 금치 못하고 일어섰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놓아준다면 네가 원하는 만큼 주마.”“아버지는 지금 나랑 딜을 할 자격 없어요.”백인호가 오만하게 웃었다.“당신 손녀가 내 손에 있는 한 안 줄 수가 없잖아?”여은수는 손을 떨며 천천히 백진의 팔짱을 낀 채 당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영감. 말 작작 해요. 저 배은망덕한 늑대가 당신을 죽이면 어떡해요?”백인호가 부하에게 명령했다.“이 늙은 영감탱이 자금 이동해야 하니까 너희들 가서 컴퓨터 가져와. 경찰에 신고하는 즉시 죽여버려.”“네!”현장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다.그러자 총을 든 건장한 두 사내가 백진 부부를 끌고 서재로 들어갔다.백인호가 유유히 뒤로 기대어 정안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으며 서재를 가리켰다.“안에 폭탄이 수없이 깔렸어. 네 할아버지 할머니 잿가루 되는 거 보기 싫으면 내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거야.”정안은 천천히 이성을 되찾았다. 백인호는 Z국에서 수년간 의학을 공부했고 의술이 뛰어나서 의학계에서도 인정받는 실력자였다.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온화해졌고 말투도 가벼워졌다.“작은 아빠.”백인호는 흠칫 놀랐다. 그녀가 작은 아빠라고
남태준의 차트와 엑스레이를 확인한 백인호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정안이 그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팔에 살짝 손을 얹고 구걸의 눈빛을 띠었다.갑작스런 정안의 스킨십에 깜짝 놀란 백인호는 흠칫하더니 그녀의 손에 시선이 고정되었다.‘완자가 지금 내 손을 만진 거야?”그녀의 눈빛은 부드럽고 가련했는데 그에게 부탁이 있는 것 같았다.“작은 아빠.”정안이 다정하게 부르더니 입만 움직이며 거의 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말했다.“희망을 줘요. 제발.”백인호는 그 뜻을 깨닫고 목을 축이더니 말했다.“태준아. 네 다리 신경이 아직 완전히 죽은 건 아니야. 침술 치료와 재활 치료를 병행하면 1년도 안 돼 일어설 수 있어.”“그리고 눈은 뇌부 어혈에 눌려 실명한 거야. 어혈의 위치가 너무 위험해서 아마 많은 의사가 이 개두술은 살 희망이 1%도 없다고 했겠지.”“하지만 나에게는 그리 어려운 수술이 아니야. 적어도 이 어혈을 안전하게 제거할 가능성이 10%는 돼.”지우는 감격에 겨워 백인호의 손을 잡으며 순간 그가 납치범임을 잊었다. “백 선생님, 정말이에요? 이 사람 다시 빛을 볼 수 있는 거예요? 다시 일어설 수 있어요?”백인호는 사실 확신이 별로 없었지만 희망을 주겠다고 정안에게 약속했을 뿐이었다.“네. 무조건 가능해요.”지우는 순간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며 활짝 웃는 얼굴로 남태준 앞에 가서 몸을 웅크리고 앉아 그의 차가운 큰 손을 잡고 부드럽게 어루만졌다.“들었어요? 이 실력 있는 의사가, 당신의 친구였던 이 사람이 그쪽 눈 치료할 수 있고 다시 일어설 수도 있대요.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남태준은 눈을 감고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내가 좋아지면 네 돈줄도 끊기는 건데 왜 그렇게 기뻐해?”지우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한참 후 그녀는 웃음을 거두고 일부러 차갑게 비꼬았다.“하긴. 당신이 좋아지면 안 되죠. 눈도 계속 멀어야 하고 다리도 계속 절룩거려야 내가 실직하지 않는 거지.”남태준은 코웃음을 치며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그때,
“아아!”지우는 소리칠수록 서러웠고 감정을 담아 소리쳤다.“어떡하냐고!”한쪽에 있는 남태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귀를 닫고 이 시끄러운 소리를 차단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그는 혼자 조용히 이 세상을 떠나고 싶었다.이 여자는 하늘이 그를 치료하기 위해 보낸 사람이었다.그가 죽지도 못하게 매일 괴롭히고 죽는 것보다 더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하루 24시간 밀착 케어에 잠자리까지 그와 같은 방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그녀는 혼잣말을 좋아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자기와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며 자주 소리를 지르며 불쾌감을 토로하기도 했다.남태준이 침착하고도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방 안에 통신기구가 있는지 잘 찾아봐.”지우가 벌떡 일어나 앉더니 입을 딱 벌리고 남태준을 바라보며 큰 눈을 깜박였다.놀랍고 경악스러워 되물었다.“방금 나한테 말했어요?”남태준이 가볍게 탄식하더니 차갑게 물었다.“그럼 귀신한테 말했을까?”지우는 입술을 오므리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나한테 말한 거네!”“찾아!”남태준이 명령조로 말하자 지우가 일어나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휴대폰 찾아서 경찰에 신고해요?”남태준이 그녀의 접근을 피하며 불쾌하게 간지러운 귀를 만졌다.“경찰에 신고하면 넌 가루가 될 거야.”“그럼 누구를 불러야죠?”“내 동생.”“군전 그룹 수장이요?”남태준이 말이 없자 지우는 휠체어 손잡이에 팔꿈치를 대고 두 손으로 뺨을 괴고 큰 눈을 깜빡이며 남태준의 뺨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느릿느릿 중얼거렸다.“남하준 씨를 부르면 우리 모두 살 수 있어요?”남태준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지우는 또 한숨을 내쉬더니 손가락을 들어 그의 이목구비를 그리며 그의 모습을 자세히 감상했다.“이목구비가 꽤 잘생긴 편이네요. 전에는 그래도 멋지다는 소리 많이 들었죠? 근데 지금은 너무 말라서 해골 같아 무섭다니까요.”남태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또박또박 말했다.“핸드폰 찾으라고!”“없어요!”“찾지도 않았잖아!”“사람이 살
“오빠, 지금 정호와 백인호가 총을 든 십여 명의 부하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 침입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납치하고 집에 폭탄을 많이 묻었어요. 나, 지윤이, 도훈 선배, 그리고 태준 오빠와 지우가 모두 우리 집에 있어요. 우리를 인질로 잡고 할아버지에게 10조 원을 요구하고 있어요. 경찰에 신고하면 우리를 폭사시키겠다고 협박하고 뒤뜰 공터에 헬리콥터를 세워 도망갈 준비를 해 놓았어요.”정안은 황급히 이 메시지를 쓰고 보낸 후 급히 프로젝터를 끄고 목걸이를 옷깃 안에 넣었다.그녀는 긴장하며 입구를 보고 일어나 걸어갔다.남하준이 이 메시지를 볼 수 있을지, 그가 경찰을 부를지 아니면 군대를 보내 그들을 구할지, 모든 것이 미지수였다.시간은 1분 1초가 흘러갔고 정안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초조하고 불안해서 방안을 왔다 갔다 하며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그때 옆방에서 사내의 화가 섞인 몸싸움 소리가 들렸다.정안이 당황하여 급히 문을 열고 나갔다.입구를 지키던 남자가 총을 들고 그녀의 길을 막으며 흉악한 얼굴로 명령했다.“들어가가.”정안이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지금 누구 때리는 거야?”그때 남자의 화난 욕설이 옆방에서 들려왔다. “너처럼 매운맛이 좋다니까! 어디 때려봐! 계속 때리라고. 내가 너 오늘 제대로 잡아먹는다.”그러자 지윤의 고함이 하늘을 찌를 듯 울려 퍼졌다.“만지지 마! 이 쓰레기! 짐승!”정안은 마음이 급해져 그녀 앞을 가로막는 남자를 아랑곳하지 않고 무작정 뛰쳐나갔다.남자는 총을 그녀의 머리에 겨누었다.지윤이 맞는 소리와 몸부림치는 고함을 듣고 정안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고 자신의 생사를 도외시한 지 오래였다.만약 그들이 지윤을 건드리면 정안은 목숨을 버릴 수도 있었다.“어디 한 번 쏴봐!”정안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총을 든 남자를 이를 악물고 노려보더니 힘껏 밀치고 주저하지 않고 옆방으로 돌진했다.옆방 입구를 지키는 사람이 없어서 정안이 빨리 문을 열어보니 문을 지키는 두 남자가 방에서 지윤을
지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백건을 바라보았다.백건은 긴장하며 침을 삼키고 지우가 청혼서를 돌려줄까 봐 두려웠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손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슬쩍 바지를 만졌다.지우가 청혼서를 들더니 말했다.“건아, 사실은...”지우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백건은 긴장감에 허리를 굽혔다.“제가 아주머니보다 더 서연이를 아껴줄게요. 부디 허락해주세요.”지우는 어리둥절했고 남태준은 싱긋 웃으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너 때문에 건이가 아주 놀랐나봐.”지우는 서둘러 해명했다.“난 이런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던 거야. 우리 가족들은 두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을 거야.”백건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감사합니다.”“어서 앉아.”지우는 자리에 앉아 손을 뻗어 백건도 앉으라고 했다.자리에 앉은 백건은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눈에 띄게 긴장한 백건의 모습에 집안 어른들은 모두 기뻐했다.특히 몇몇 큰아버지들은 집안에서 가장 아끼는 공주님이 M국의 갑부와 결혼할 수 있고, 심지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남자라고 생각하니 더욱 만족스러웠다.모두들 잡담을 하고 있을 때, 남서연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와. 웬 선물이 이렇게 많아요? 이거...”말을 반쯤 마친 그녀는 이미 남우영을 따라 거실로 갔다.백건을 보자마자 그녀는 얌전하게 변했다. 장난기 많고 발랄하던 모습의 그녀는 곧 부끄러움에 휩싸여 긴장한 채 백건을 바라보았다.남자의 눈빛은 뜨거웠다.“이거 건이가 가져온 예물이야.”허윤미가 말했다.예물이라는 말을 들은 남서연은 심장이 쿵쾅거리고 더욱 부끄럽고 긴장했다. 입술을 오므리고 웃으며 남자의 시선을 피했다.지우는 딸의 반응을 보고 또 백건을 보더니 아무래도 두 사람이 연인 사이 같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서먹서먹한 수줍음이 감돌고 있었는데 마치 썸을 타는 시기 같았다.허윤미가 또 입을 열었다.“서연아, 며칠 후에 너도 선물을 갖고 정식으로 건이 부모님께 인사드려. 그리고 시간을 내서 양쪽 가족
백건은 모든 예물을 갖고 차에 올라 별장을 떠났다.유승아는 서윤아를 부축한 채 별장 문에 서서 떠나가는 차를 보며 안색이 극히 어두웠다.서윤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유승아는 분노가 점점 끓어올랐지만 꾹 참고 조용히 속삭였다. “아주머니, 서연이는 곱게 자란 공주님이고 건이와 어울리지 않지만 건이가 좋아하니 허락해주세요. 정말 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전 괜찮아요.”유승아는 자신이 이렇게 말하면 서윤아가 안쓰럽게 여겨 더욱 열심히 도울 줄 알았다.그런데 서윤아는 가볍게 탄식하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우리 건이와 결혼하기에는 서연이가 아깝지.”유승아는 어리둥절해 하며 서윤아를 바라보았다.곧 서윤아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서연이는 온실에서 작은 화초라 백지장처럼 단순해. 내 아들이 아니라 자기처럼 단순한 남자를 만나야 해.”그 말인 즉, 백건에게는 단순하지 않은 여자가 어울린다는 뜻인가?예를 들면 신분, 성격이나 능력 같은 것...유승아는 마침내 서윤아가 남서연을 좋아하지만 왜 며느리로 삼고 싶지 않은지 알 것 같았다.그녀는 아들을 내조할 수 있는 사업적 파트너를 찾아주고 싶어 했다. 듣기 싫은 말로 서로 이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여자였다.유승아는 조금 당황스러웠다.서윤아처럼 똑똑한 사람은 유승아가 단순하지 않고 수단이 있고 정치적 힘도 갖고 있다고 생각해 그녀를 며느리로 삼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그녀가 의심하고 있을 때, 서윤아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내가 너희 둘 결혼식을 책임질 테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유승아는 막막한 척 말했다.“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서윤아는 그녀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이 미소는 또렷하게 말해주고 있었다.“넌 똑똑한 애니까 알고 있잖아.”서윤아는 말없이 천천히 별장을 떠났고 유승아가 서둘러 쫓아갔다.그녀는 당연히 이해했다.결혼식은 이미 준비되었고 그녀는 백건과 남서연의 혼사를 망치고 그들의 감정을 깨뜨리기만 하면 순조롭게 백건의 아내가 될 수 있었다.유승
여자는 크면 집에 묶어둘 수 없는 법.남서연은 기쁨에 젖어 있었지만 가족들이 모두 자신의 혼사에 대해 걱정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왜냐하면 백건과 결혼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반드시 그의 부모님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으니....다음날 백건은 이미 푸짐한 예물을 준비했다.모두 직접 준비한 것으로 성의를 다했다.거실에서 하현우는 열심히 예물을 체크하고 있었다.그때 거실문이 열리고 유승아가 서윤아를 부축해 들어왔다.하현우는 들어온 사람을 보고 공손히 인사했다.“사모님, 승아 씨 오셨어요?”서윤아는 온화하게 웃었다.“이거 승아에게 주는 예물인가?”하현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침실 쪽을 돌아보았다. 백건이 빨리 나오기만을 기도했다.서윤아는 하현우 앞에 다가가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물었다.“내가 묻잖아?”하현우는 바짝 긴장해 대답했다.“서연 아가씨에게 주는 예물입니다.”유승아의 얼굴빛이 약간 어두워졌다.그러나 서윤아는 피식 웃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승아네 집에 갖다 주게.”“하지만...”하현우는 망설이며 뒤를 돌아보았다.서윤아는 소파에 앉아 차갑고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볼 필요 없어. 내가 갖다 주라면 갖다 주면 돼. 그 녀석 허락받을 필요 없어.”말을 마친 서윤아는 유승아에게 손을 내밀었다.“승아야, 앉아.”유승아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서윤아의 곁에 앉아 나지막이 말했다.“아주머니, 이건 건이가 남씨 가문에 주려고 준비한 예물이잖아요. 하 비서 난처하게 만들지 마세요.”“건이와 결혼하는 여자는 너이니 당연히 이 예물도 네 것이지. 나도 서연이를 아주 좋아하지만 아직은 건이 아내가 될 자격이 없어.”“사업적으로 건이를 도울 수 없고 또 일상생활에서도 건이가 서연이를 돌봐줘야 해. 너만큼 성숙하지도, 능력이 강하지도 않아. 게다가 우리 두 가문은 친척 관계잖아.”백건은 방문을 나서서 양복의 커프스를 정리하면서 침착하게 계단을 내려갔다.그의 싸늘한 말투는 얼음처럼 차가워 뼛속을 파고들 것 같았다.“서연이는 나를 행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백건은 차에 올랐고 차량은 서서히 남씨 본가를 떠났다.뒷좌석에서 백건은 한마디 말도 없이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으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하현우도 기뻐하며 말했다.“축하합니다. 대표님.”“고마워.”한 번도 이렇게 대답한 적 없었는데 보아하니 기분이 아주 좋은 것 같았다.하현우는 찬물을 끼얹어야만 했다.“대표님, 근데 사모님 고비는 어떻게 넘기실 거예요?”백건의 안색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그리고 차 안은 말이 없었다....남씨 본가 거실.모든 사람이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다.남태준과 지우는 딸이 가족들 앞에서 백건에게 청혼했다는 사실을 듣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남서연은 가족에게 둘러싸여 불심 검문을 당했다.“두 사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언제부터 만났어? 진도가 왜 이렇게 빨라? 갑자기 결혼 얘기까지 나오다니?”이러한 문제에 대해 남서연은 모두 털어놓았다.“우리는 정식으로 만난 적 없어요. 제가 어릴 적부터 오빠를 짝사랑했어요.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그럼 건이는 어떤 생각인데?”“오빠도 저와 결혼하고 싶대요.”남태준은 주먹을 쥐며 격분했다.“넌 단순하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애야. 분명 백건 그 자식이 오랫동안 음모를 꾸민 게 틀림없어.”지우가 나서서 말렸다.“당신 화부터 내지 말아요. 건이가 음모를 꾸몄든 아니든 인품은 좋은 애잖아요. 가짜 약혼녀 유승아를 빼고 다른 스캔들도 없었고.”남태준은 딸이 아까워 격노하며 물었다.“건이는 차갑고 예민해서 말도 잘 안 하는데 어떻게 우리 서연이와 어울려?”지우가 답했다.“난 두 사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서연이는 어릴 때부터 단순하고 걱정 없이 잘 웃으니 예민하고 차가운 건이 성격과 딱 상보적이잖아요.”허윤미는 시무룩해서 말했다.“하지만 서연이는 아직 너무 어려. 이렇게 일찍 결혼할 필요 없어.”“맞아요. 저도 동의해요.”“맞아요. 너무 어려요. 결혼을 서두를 필요 없어요.”남우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